[자유로운 삶 1,2]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80년대에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국인 유학생이 자신의 고국을 떠올리면,  썩은 관료들에게 연줄을 대고 뇌물을 바쳐야 일이 처리되고, 원하는 바와는 상괌없이 당이 정해준 학교로 가서 당이 정해준 전공을 공부하고 당이 정해준 직업을 가져야 하는 황폐한 땅이었다. 개인의 취향과 자연스러운 욕구를 억제당하는 곳이었고, 회피와 부정으로 얼룩진 삶에 길들여지는 곳이었다. 그 유학생의 텐안문 사건에 대한 부주의한 발언이 당국에 반체제 인물로 낙인찍히는 계기가 되어, 감시와 통제 하에 놓여지게 된 것은 그 머나먼 땅 고국을 영원히 떠나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갈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음을 의미했다. 


그래도 1980년대의 이민자들은 작은 소망을 품을 수 있는 토대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문맹이고, 가난했던 초기 중국 이민자들이 낯설고 차별적인 땅에 정착하여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두려움 속에서 살아남기에 급급한 채 노예처럼 혹사당해야 했던 것과는 달리, 80년대 중국 이민자들은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중국을 벗어나 먼 이국 땅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똑똑하고 선택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이 미국에서 이민자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중국에서 이루어놓은 성취를 밀어놓고 좌절당한 삶을 비통해하는 것이었다. 낯선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아닌 그 낯섬의 바닥에 자신을 던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을 뜻했다.  아내에거 점점 무능해져가는 것이었고, 공산주의 체제에서 성장한 사람이 자본주의라는 경멸스런 체제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법으로 일해야 하는 것이었다. 


유색인 우대 정책으로 배정된 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흑인이기를 바랐던 엉뚱한 것이었다. 하찮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 숱한 면담을 하러 다니지 않기를 꿈꾸는 소박한 것이었다.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더라도 반체제인물로 체포되지 않도록 미국 시민이기를 바라는 아이러닉한 것이었다. 낯선 사람들보다는 동포에게 엮이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깨닫는 쓸쓸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살에 박힌 가시처럼 사는 것. 동네 나온 빈집에 중국인이 들어오는 걸  원하지 않는 이웃이 있는 동네로 이사가는 것이었다.

 

주인공 난 우에게 첫사랑 베이나는 갖지 못할 이상이었다. 먹고 살고,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현실적인 장벽이 시를 쓰는 것을 가로막는 것처럼, 빨간색 일본 승용차를 사줄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한 경제적 환경은 베이나에게로 향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그에 비해 자신을 바라보는 아내 핑핑은 현실이었다. 사랑하고 싶어 괴로워하면서도 사랑하게 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미국이자 안주해야 할 곳, 운명이 정해진 잔인한 곳이기도 했으며, 악착같이 벌어서 집을 사고 빚을 갚고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에게는 시를 쓰고 싶은 욕망만 있을 뿐, 시를 쓸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은 소망만 있을 뿐, 노동의 굴레에서 한 발작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자유는 그를 버리고 떠난 첫사랑 베이나이자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시쓰기이기도 했다. 아이를 위해 선택한 삶이었기에, 아내와 가족은 자신의 이상이 아닌, 굴레였다. 자유가 아닌 구속이었다. 이혼할 수도 없는 것. 돌아갈 곳 없는 것. 돌아갈 수 없어서 결국 요리사가 되는 것. 한권 한권 사서 모은 책들을 눈쌓인 쓰레기 더미 옆에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난의 아내 핑핑에게 1980년대에 미국에 살면서 중국을 생각했을 때, 깨끗한 화장실을 필사적으로 찾아 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에 산다는 것은 더이상 깨끗한 화장실을 찾아 헤매는 악몽과을 꾸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천안문 광장으로 인해 아이와 가족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머나먼 땅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안전함이었다. 그녀에게 미국에 아이를 데려와 정착한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매일 똑같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살면서도 이혼할 수 없는 림보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남편을 덜 사랑했었다면, 그녀는 덜 불행했을까. 아이가 주인집 도둑 누명을 썼다가 진실이 밝혀졌어도 값싼 노동력에 대한 댓가로 제공해주는 다락방을 당장 떠날 수 없는 서글픈 것이었다. 머나 먼 타국 땅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함께 살면서도 이미 떠난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남편의 쓸쓸한 뒷모습만을 바라보는 외로운 나날을 포기할 수도 없는 것. 둘이어서 더 외롭지만 혼자일 수 없어 이혼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부부가 선택한 삶은 중국인 이민자가 아무 기술 없이 그저 고된 노동을 정직하게 보상받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소박한 것이었다. 노동한 것만큼의 댓가로 먹고 사는 일을 보장받는 것이었다. 시인 지망인이 현실을 직시하자 우 부부는 동시에 한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다.  난 우가 이상을 멀리하고 밀착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첫사랑의 환상 베이나를 잊고, 시를 쓰고자 하는 욕망을 잊는 것이었다. 핑핑의 소박한 소망인 매일매일 똑같을 수 있는 날들이 가까와 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함께 같은 곳을 보고 걷는 길에서 둘은 조금씩 서로를 배려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을, 사랑하지 않던 사람에게는 뜨겁지 않아도 의무와 책임이 아닌 조금 다른 종류의 사랑이 싹터감을 배우게 했다. 그 속에는 왕부부처럼 30년을 살아도 여전히 어울리지 못하고 허수아비처럼 주변을 배회하는 이방인 신세가 될까 걱정히는 것. 교회에 나가지 않는 한 고립된 삶을 살다가 고독과 외로움이 노후를 덮칠 것을 알고 있는 것. 그렇지만 어떻게든 정착히고 싶은 곳. 달리 갈 곳이 없는 것. 부모의 어눌한 영어가 종종 아이를 당황스럽고 짜증나게 만드는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아득한 외로움과 서로에 대한 의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깨닫게 된다. 이민자의 삶은 중국인 사회와 완전히 단절하고 방해받지 않고 살고 싶어도 중국이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 본토의 홍수 피해를 모른 척 할 수 없도록 중국인 사회에서 그들을 알고 기부금을 걷으러 와서 애국심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는 걸 참아야 하는 것.  불안정하게 사는 걸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자신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감을 느끼는 것이기도 했다.


하루하루 매일 메모하듯 건조한 문체로 써 내려간 소설. 간결한 문체는 일상의 아주 작은 일들이 빼곡히 쌓이고 모여져 어느 정도 큰 덩이의 시간 뭉치를 만들어 내면 안쪽에부터 깊은 울림을 준다.  하루하루의 일과를 따라가다 보면 몽상가 같았던 난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사랑. 그는 정직했으므로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아내를 사랑받지 못하는 채로 견디게 했다. 헌신하는 핑핑에게 마음쓰는 일, 고마워하는 것들 그런 소소함이 사랑의 원천이 될 수도 있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자각하지 못했다. 안타까웠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에 걸쳐, 너무나 길고 외롭고 고통스럽게 한참을 걸어간 후에야 또 그 만큼의 시련을 겪은 후에야 난과 가족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에서 애틋한 존재로 바뀐다. .

 

1권 2권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아 많이 두 권으로 나누었겠지만, 내용적으로도 1권과 2권이 분리가 된다. 2권에서는 이민자로서 긴 시간동안 이루어내야 할 생활의 안정을 달성한 후 난의 자아에 대한 탐색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1편에서 이민자로서 생활고와 씨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2편에서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시쓰기라는 자아의 실현을 위해 겪는 일상을 다룬다. 2편에서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