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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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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하는 작가 중 최고의 작가'라고 한다. 영문학자 에드워드 멘델슨이 한 말이다. 내가 뽑은 리뷰 제목이 엄살이 아니라는 건, 퓰리처 수상과 관련된 일화를 접해보면 알 수 있다. 핀천의 작품 <중력의 무지개(1973)>는 1974년  심사위원의 전원일치로 퓰리처상 선정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집행위원회에서 수상을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작품이 난해하여 읽기 힘들고 외설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출처-위키피디아). 퓰리처상 집행위원들도 어려워하는 핀천의 작품을 내가 잘 이해하고 서평을 쓸 수 있었다면 지금쯤 내가 아마도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작가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퓰리처상 수상자로서 상이 집행되지 못했다는 것 말고도 또 있다. 그는 얼굴없는 작가이다. 그의 사진은 아주 젊은 해군시절 단체 사진에 들어 있는 게 알려진 것의 전부인 듯하다. 코넬 대학에서 공학물리를 전공하다 잠시 해군에 복무한 후 인문대로 전공을 바꿨고 1959년 영어학으로 학교를 마친 그는, 출판사와의 계약 및 작품 활동에 필요한 모든 업무는 대리인을 통해 하고 자신은 시상식에서조차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다고 한다. 한 문학상 시상식에는 코메디언을 대리인으로 내보냈다. 얼마전 읽은 자전적 소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시상식 예식을 똥물을 뒤집어쓰는 거라 비유하고 시상식에서 느낀 불쾌감을 표현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천재적인 문학가들은 문학상 시상에 초연한 것 같다.

 

어렵다. 졸리다(잘하면 불면증을 치료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위대한 작가의 초기 소설집이다.  
'대가의 탄생을 알리는 핀첨의 초기 작품들'이라는 소제가 붙은 이책은 핀천이 대학생때 쓴 습작들과 그 이후 쓴 초기작품들을 1980년대인 이삼십년의 후에 엮어 세상에 내보낸 작품집이다. 이 작품집을 내면서 작가는 매우 긴 서문을 썼는데, 대부분 자신의 이 치기어린 작품들을 비판하거나, 작품과 관련된 해설, 그리고 작가로서의 성찰을 담은 내용이었다. 젊은 날 아직 성숙하지 않은 초보 작가가 쓴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오류를 지적하고 비평과 힘께 집필 당시의 시대적 조류들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어려운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

 

그는 인생의 초년기에 자신이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초기 작품집을 통해 내보인다. 

 

우리는 자신이 안고 있는 무지의 범위와 구조에 대해 종종 알아차리지 못한다. 무지는 그저 개인의 정신적 지도 위에 존재하는 텅 빈 공간이 아니다. 그것에는 등고선과 일관성이 있다. 중략.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글을 쓴 결과로서, 우리는 자신의 무지와 그로 인해 좋은 이야기를 망칠 수 잇는 가능성에 익숙해져아 한다. 

 

<이슬비>는 핀치의 처녀작이다. 군대 내 막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다 대화를 중심으로한 서술이 앞뒤 연결없이 느닷없고 배경도 익숙하지 않아, 작품의 서사가 잘 안보이고 안개처럼 희미했다. 대학시절에 썼다면, 아직은 모방을 통한 습작, 자전적 내용과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어떤 서사가 주를 이룰 수 밖에 없을 듯한데, 이 작가의 처녀작은 이미 기존의 소설적 구성과 틀을 벗어나 있다. 남자는 모든 게 권태롭다. 그는 군대라는 조직에 현실을 회피하듯 자신을 맡기고, 페이퍼백을 들고 다니며 읽는다. 루이니애나 지역 허리케인으로 끔찍하고 엄청난 희생을 목격하면서도 시체 차리 과정을 건조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로우랜드>의 플랜지는 중년 가까운 남자의 어이없는 하루와 그가 겪는 실제와 환상의 그 어딘가를 그렸다. 변호사인 그는 쓰레기 수거인인 술친구 스콰르초네가 놀러오자 사무실을 아예 나가지 않고 술을 푸다가 역시 술로 신혼여행을 망쳐버린 또다른 친구 피그 보딘의 방문으로 아내에게 쫓겨난다 .갈 곳이 없어진 그들은 쓰레기 폐기장에서 각종 쓰레기로 오두막을 짓고 사는 친구에게로 가서 계속해서 술판을 벌인다. 그들은 취한채 독자로서는 뭔소린지 배경도 설명도 없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바다이야기와 시체를 훔친 이야기 등을 두서 없이 하다가 집시가 산다는 말을 듣고 폐기장에서 주워온 매트리스 위에서 잠든다. 소녀가  부르는 소리에 깨어난 그는 아름다운 집시 소녀를 따라가는데 거게에서도  이상한 체험을 한다. 다른 모든 작품 중에서 그나마 가장 가독성이 있던 소설이었다. 그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사실, 로우랜드라는 폐기된 쓰레기가 가득한 세상에서 어떤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 속으로 매몰되어 가는 권태로운 인간의 본질 같은 걸 표현한 것 같다.

 

<엔트로피>는 삼박 사일동안 계속되는 술파티와그 건물의 4층 죽어가는 새를 가슴에 품고 지내는 커플의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그려져있다. 이 소설은 모든 소설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다. 3층의 술파티는 무질서와 혼동을 의미하고 새를 품은 4층은 완벽하고 균질된 세상을 의미한다는 것 같다. 그것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찰라를 기술한 듯. 의미만 어려운 게 아니라, 문장 자체가 한자 한자 독해가 필요하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교차지점을 알아차리기가 힘들고, 등장인물과 배경등에도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려운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 대해 작가는 추상적인 것으로 소설을 시작하고 나서야 플롯과 등장인물을 진전시키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으며, 이는 앞뒤가 바뀐 것이며, 이같은 글쓰기는 인간의 실제 삶에 근거하지 않는 한 연습생의 또다른 습작에 머물기 쉽다고 스스로 지적하고 있다.

 

<언더 더 로즈>는19세기 후반의 이집트를 배경으로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 패권을 놓고 이집트에서 각축을 벌이는 동안 독일 스파이 몰드윕과 영국 스파이 포펜타인의 팽팽한 긴장을 그렸다.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하여 특히 표절에 대한 뼈아픈 성찰을 보여준다. 그는 당시 이 작품을 쓴 자신을 사십년 동안 약 200만 달러를 털었던 미국의 악명높은 은행강도에 빗대면서 자신은 베데커 여행 안내서를 털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한번도 가번족이 없던 시간과 장소의 모든 세부사항과 외교단의 이름까지 털었다고 하면서 작가 지망생들과 독자들에게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을 거라고 믿고 데이터를 훔치는 일은 더더욱 삼가'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읽을 때는 역시 어려웠지만 그 글에 영향을 준 것은 초현실주의라는 작가 서문을 다시 읽어보니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당시 그가 선택한 선택 과목 중 현대 미술이 있었는데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자신을 사로잡았고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 접근하는 게  실질적으로 불가능 했던 자신은 정상적으로는 함께 모여 있기 어려운 요소들을 하나의 틀 안에 결합해 놓으면 비논리적이고 깜짝 놀랄만한 효과를 창출한다는 생각에 매료되어 있었다고 한다.

 

<은밀한 통합>은 작가 스스로 습작에서 벗어난 초기 작품이라고 했는데,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돋보이는 작품성을 집작할 수는 있었다. 인종 차별 문제를 어린이들의 환상적 놀이의 세계에서 우회한 방법으로 제기하는 이 작품은 왜 핀천에게 비범한 찬사와 수식어들이 따라다니는지를 알게 하는 작품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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