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나남창작선 115
김주욱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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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이 삼성에게 자신들의 디자인 침해를 주장했던 내용 중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의 모양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미국 내 법정에서 대부분의 애플의 주장에 삼성이 패소했지만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이라는 디자인 부분에서는 배타적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것은 애플의 영원한 세계적 조롱 거리가 됐다. 우리는 사각형, 세모, 네모와 같이 일반적인 형태에 대해 그것이 자기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태생적으로 네모이고 납작할 수밖에 없는 스마트 폰 모서리에 디자인 변화를 주기 위해 조금 둥글리고 슬림하게 만들었다고 디자인 침해를 주장한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억지스럽고, 빈약한 지를 반증한다. 그러나 진실은 둥근 모서리 디자인 너머에 있다. 삼성은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애플이 5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한 아이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을 집중적으로 벤치마킹하여 여러가지 디자인적 조합들을 다각도로 응용하고 변형하여 전설의 명기가 된 갤럭시 시리즈를 세게 시장의 정상에 세웠고, 그 결과 세계 시장 탈환에 성공했다.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은 애플 주장의 일부일 뿐, 전체적으로는 누구라도 인정할 명백한 표절이었다. 

 

처음, 이승우 작가의 <지상의 노래>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아 이건 내 수준의 제한된 언어와 빈약한 사유로 리뷰가 가능한 종류의 소설이 아니야.. 였다. 소설을 제대로 이해할만한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뒤지던 중 내가 만난 키워드는 '표절'이라는 자극적인 단어였다. 이 작품(표절)을 쓴 김주욱 작가가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를 자신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라 주장하는 기사였다. 게다가 공모전 심사 위원에서 자신이 낙선시킨 작품을 표절했다니, 쇼킹 그 자체였다. 신동아 2013년 3월호 기사이고 인터넷에 전문이 공개되어 있다. 이것이 다시 소설로 엮여 나왔다.


기사 중 실명을 밝히지 않은 K라는 비평가 겸 교수는 '그 텍스트를 가져다놓고 다시 읽으면서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신동아는 표절이라는 사실을 납득시키기 위한 근거로 교수이면서 동시에 문학평론가인 사람의 권위를 이용하면서 막상 실명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어떤 문학평론가가 그러는데 표절 맞다더라.라는 거다. 문학 비평가가 표절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소신을 실명으로 직접 표절을 사회에 알리고 비평하는 것이 비평가의 의무 아닌가? 그 비평가는 무엇때문에 실명을 밝히지 않는가. 김주욱이 주장하는 중견문학인들의 문학권력 때문에? 그렇다면 비평가들은 모두 문학권력의 눈치만을 살피고 그들에게 기생하고, 표절당한 젊은 문학지망생의 억울함을 묵과하나? 

 

소설가 이승우는 책에서 G라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 책에서 G라는 인물은 대략 이렇게 묘사된다.

비평가들로부터 윤리적 관점이 창작의 궁극적 동기여서는 안된다는 비평을 받기도 했다.

G는 후배들이 자기를 보는 줄 착각하고 계속 재미없는 농담을 했다.24

항상 예의바른 행동에 억양도 나지막하고 차분한 선비인 양했다. 24
맛없는 안주같은 중견 소설가 27
G의 의뭉스러운 눈빛을 계속 피해가며 25
유독 G는 의뭉스러워서 대면하기 싫었다. 29

 

독자는 이렇게 처음부터 표절을 당했다고 상상하는 작가의 임의적 감정과 판단에 의지해, G로 변신한 이승우를 만난다. 작가가 표절의 주장을 소설을 통해 알리고 싶었다면 자신의 판단을 납득시킬 수 있는 행동과 대화에 디테일이 있어야 한다. 이 책에 한 인간으로서의 G는 없다. G의 인격과 도덕성은 정당한 사유 없이 형용사로 정의된다. 소설 <표절>은 1인칭 시점으로 '내'가 느낀 G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로 전달하다가, 3인칭으로 시점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3인칭 전지적 시점에서도 작가는 객관적이지 않다. G의 내면에 깊숙히 들어가서 G의 고뇌와 G의 처절한 창작에 대한 몸부림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G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의 행동에 감정적으로 개입하여 마땅찮은 시선을 보낸다.  

 

형님은 문학상과 창작기금 잘 챙겨 먹잖아요.

부러우면 너도 열씸히 써. 먹물들이 좋아 할 얘기로 말이야. 128

이 소설 <표절>에는 또 다른 소설이 있고, 그 속에 또 다른 소설이 있고, 그 속에 또 소설이 있다. 소설들 속에서는 알파벳으로 된 인물들과 사람이름으로 되 인물들이 섞여 있는데, 알파벳 대문자 이름은 실제 현실의 인물들을 말하고 이름으로 된 인물은 완전 가상의 이름을 말하는 듯하다. 그 모든 소설 속 소설에는 이승우에 대해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그의 정보들을 그대로 가진 G가 등장하고, 그 G는 계속해서 의뭉스럽고, 탐욕스럽고, 창작의 소재가 고갈되어 베껴쓸 다른 작품들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여자 교수와 여자 아이를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늙고 심술맞은 기득 권력이다. 한편 본인을 빗댄 Q는 그와는 반대이다. 그는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디자인과 직접 발로 얻은 정보로 남들보다 앞서는 창작물을 만들어 내고, 다른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모방한다. 그리고 자신 Q의 작품과 작품 활동을 끊임없이 알리고 방어한다.

 

골치 아픈 철학적 사유가 깔린 부분을 읽으면서는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몰라도 작가가 인간 존재에 대해서 다른 해석을 내린 것 같아서 밑줄 치면서 곰곰이 따져 보기도 했다.

다시 실제 작가가 표절 이라 주장한 실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예를 들어 피카소의 작품이 누구의 표절작이라고 하자. 우리늘 피카소의 그림이 매우 훌륭하기 때문에 그것이 누구의 작품을 실제로 표절한 것이든 아니든 원작자라고 주장하는 화가의 작품에도 경외감을 갖게 되고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다. 처음 원작자가 사용한 기법, 사용 재료, 의미, 미학적 가치 등등. 마찬가지로 문학 작품에서 표절을 말하려면 해당 작품의 서사가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주욱 작가와 말이 안통하는 부분은 이런 것들이다. 작가는 이승우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에게 이승우의 글은 스스로 언급한 것처럼 '골치아픈 철학적 사유가 깔린 부분이고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이고,  '문학상과 창작 기금을 챙겨먹'기 위해, '먹물들이 좋아할 만한 소설'만을 쓰는 중견 작가이다. 작가 김주욱에게 이승우의 글은 먹물들이 좋아할 글이지 자신은 좋아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작품에 대한 해석을 통해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가 표절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대신 이승우가 가진 팩트들을 가진 작가 G를 창조하고 자신의 주장에 유리한 부패하고 무능한 문학 권력과 변태적이고 의뭉스런 인격을 불어넣어 인신공격을 한다. 그는 자신이 가진 이승우 작가의 모든 정보를 이용해서,  G라는 교수의 꼬투리를 잡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중견 소설가는 공지영 박범심류의 인기 작가가 아니고 매체에서도 무관심한지라 사생활이 노출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G에 대한 행동과 심리 묘사가 얼개 없이 허술하다.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창작지원금과 책의 홍보용으로 인용된 그에 대한 비평 등은  Q의 G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그래서, G는 거의 이런 사람이다 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주입시키기에 급급하면서 실제로 가장 중요한 작품에 대해서는 직접 구체적으로 비평하지도 못한다. 

 

이승우의 작품 <지상의 노래>는 무겁고 어렵고 복잡하고 옴니버스 형태의 다중적 인물이 각기 다른 세계를 살아가다가 어느 한 지점으로 수렴되는 구조적으로 복잡한 형태를 갖는다. 게다가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은 작품의 일부인 6장 카다콤 중에서도 일부인 미용실이라는 작업공간이다. 300여 쪽 중 서너장에 불과하고, 그 서너장 중 마저도 나의 판단으로는 <허물>의 풍경, 주제와는 비슷하지 않다. 미용실 내 거울 이 나오고, 소파에 앉았다는 표현을 <허물>에서 먼저 썼으니 표절이라는 주장이다. 그림의 예를 들자면, <허물>이 인물화라면, <지상의 노래>는 대성당의 벽화라고 할 때, 벽화의 한 쪽 구석 아주 작은 어떤 사람의 얼굴 표정이 그 인물화  그림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6장 카다콤 부분을 펼쳐보자.   미장원 장면은 그 중 주요 인물인 후의  인생 여정 중 매우 일부이며 미용사와 미용실 자체의 공간적 배경은 이 작품내에서  거의 상징성을 갖지도 않는다. 후가 접대하는 사모님은 미용실이 아닌 마사지실이고 그 공간은 김주욱이 <허물>에서 묘사한 생동감 넘치는 미의 창조로서의 공간과 달리 폐쇄된 금기의 공간이고 사람들 몰래 육체적 욕망을 사고 파는 공간이다. 또한 후가 미용실에서 일을 하게 된 동기는 김주욱의 <허물>과는 달리 미용 기술을 배우거나 욕망을 채울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누이를 찾기 위해서다.  그가 찾는 그의 누이가 1장쯤의 어딘가에서 시골의 미용실에서 떠나기 마지막까지 일했기에 누이는 도시의 어딘가에서 미용실을 할 것이란 정보를 듣고,  이 도시 저 도시의 미용실을 하나씩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성접대까지 하게 되는데 누이의 소식을 알려주는 그 성접대의 공간인 마사지실이 바로 <허물>에서 그대로 베꼈다는 그 생동감넘치는 미용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상의 노래>에서 성행위가 이루어지는 마사지실이라는 공간은 <허물>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미용실, 식당, 커피전문점, 술집, 길에 채이는 이런 일반적인 직업군에 대해 소설적 모티브니, 영감이니 하는 말로 자신만의 아이디어라며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려는 것은 아이폰의 모서리가 둥근 네모를 자기들만의 디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그냥 네모 자체를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다.  두 소설은 주제도 문체도 다르고 소설을 크게 분류하자면 범주 자체가 다르다. 허물은 미용실에서 일어나는 현장감이 자세하다.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는 관념적이고 철학적이다. 특정 행위에 대한 배경적 묘사는 최소한으로 이루어지고 인물이 무엇을 생각하는가와 무엇을 행동하는가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생생한 현장감이 없고, 또, 그래서 <지상의 노래>에서 후가 전전한 곳이 미용실이건 식당이건 당구장이건 목욕탕이건 별 상관이 없다. 단지 누이가 있을 만한 곳이며, 성을 판매할 수 있기만 하면 소설의 정체성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만큼, 미용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중요한 곳이 아니다. 반면 <허물>에서 미용실은 소설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다큐나 현장 취재보다도 더 상세하게 미용 행위, 미용 용어, 미용인에 대한 예술적 갈망이 드러난다. 또한 <허물>의 최명규가 미용실을 전전하는 이유가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인 것에 반해 <지상의 노래>에서 후가 미용실을 전전하는 이유는 오로지 누이가 일하는 미용실을 찾기 위한 여정일 뿐, 미용 기술을 배우거나 할 목적은 전혀 없다.

 

소설은 삼각 ,사각적인, 중첩의 액자 구조로 되어 있는데 내부 액자와 외부 액자들 사이들이 딱히 구별해야 할 이유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또한 같은 인물이 액자 사이를 오가는 유기적 관계도 잘 드러나지 않고, 무엇보다도 나로서는 왜 이런 구조를 택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맨 안쪽 가운데 있는 소설이 실제 김주욱이 이승우에게 표절당했다는 작품 <허물>인듯 한데. 이것은 표절의 문제를 떠나 단독 작품으로 읽는 재미가 있다. 미장원 내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생생함이 작품에 생기를 주고, 뱀 사육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치밀한 현장 취재가 강렬한 행동 사건들과 맞물리며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그러나 이 맨 안쪽 작품만으로 소설을 냈다면?  물론 <표절>만큼 이목을 끌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 작품 <표절> 및 표절 스캔들을 둘러싼 김주욱 작가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진실로 본인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 맨 안쪽 소설에서는 G나 Q, R과 같이 현실 인물로 설정한 알파벳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순수한 문학의 형태는 차명규와 김원장 최건호라는 완전 허구의 이름을 이 안쪽 소설일 뿐이다. 그 바깥쪽은 모두 김주욱 자신 Q와 이승우 G가 현실에서 그들이 가진 객관적 팩트들을 그대로 가지고 반복적으로 재등장한다.

 

두번째 안쪽 액자에서  김주욱 자신은 Q이고 자기 작품을 표절한 교수는 G이다. 이 두번째 액자에서 G는 실제 언론에 알려진 교수의 약력을 그대로 가져왔다. 지방대 교수,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알아주는 작가, 노벨상 후보감, 관념적인 글, 아버지와의 관계를 소설적 모티브로 삼는다는 점 등이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실제 인물의 객관적인 평가와 팩트를 소설의 인물에 그대로 차용하면서 동시에 작가 자신이 만들어 낸 허구의 부정적 이미지를 덮어 씌었다. 표절에 대한 의심이 진의라고 해도 그 방법이 노골적이고 치졸하다. 상습적인 표절, 여대생을 향한 음흉한 시선, 긴 생머리에 대한 은밀하고 변태적 욕망이 그런 것들이다. 반면 본인과 대응되는 Q라는 인물은 본인 삶에 대한 애착과 자전적인 저술 태도가 배어있다. 일본 잡지에서 디스플레이 디자인을 그대로 베꼐내는 풍토 속에서 독특한 소재를 이용한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고, 자신이 만든 시안이 다른 브랜드에서 그대로 도용당한다. 또 공모전에 출품할 의상 스케치를 여자 디자이너에게 보여줬는데 제작이 불가능하여 포기했던 디자인을 그 여자 디자이너가 그대로 갖다가 수정하여 공모전 대상을 수상하고 유명 브랜드로 이직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렇게 본인의 분신인 Q를 옹호하려면 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전환했으며, 왜 K라는 교수를 통해 소설을 쓰게 했는지. 여기서 한 가지 의문. 왜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베끼는걸까? 이 소설에서처럼 표절이 Q에게 유독 많이 일어나는 것은 그의 아이디어가 워낙 독창적이고 우수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아이디어를 베끼는 건가? 혹 모서리가 둥근 네모는 모두 아이폰의 아류작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이제 세번째 액자로 나와 보자.  이 프레임은 아마도 이것이 넌픽션이라는 것을 강하게 강조하기 위하여 자신과 Q, 이승우와 G를 직접 연결시키기 위한 장치로 쓰인 듯한데, 여기서는 작가 G가 표절했다는 Q의 주장의 세부 내용을 분노와 좌절감과 섞어 전달한다. 여기서도 객관적인 사실에 주관적인 감정을 섞어 진실을 왜곡한다. 여기서도, Q와 G 사이에 실제로 오간 이메일과 표절 시비에 대한 G의 대응 내용, 뉴아시아 기사 내용이 픽션을 거의 가져다 쓴 듯했고, 나머지 부분 G 작가의 작가로서의 비양심적인 심리 묘사로 강한 Q의 감정 이입을 유도한다. 문학으로 갖추어야 할 은밀함이나 메타포 없이, 직접적으로 감정적으로 표절 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는 비루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여기까지가 마지막 액자에서 K라는 교수가 이 표절 사건을 소설화 한 소설이다. 맨 바깥쪽 액자는 그 전 액자 세 번째 액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K라는 교수가 Q를 대신해서 그 안쪽 소설들을 쓰고 바깥쪽으로 나와 원래의 1인칭으로 전환된다. K교수는 여류 소설가이고 후배 Q를 대신해서 표절 시비를 소설로 쓰는 역할을 한다.  이 마지막 액자가 실제를 그대로 반영하는 걸 조금 더 강조하기 위해 K라는 인물을 1인칭으로 등장시켜 G에 대한 1인칭적 느낌과 주관적인 서술을 보태고 Q를 초월자적 선의의 인물로 묘사하는 데 이용된다. Q가 나에게 다가와 키스한다는 이 뜬금없는 마무리. 이건 또 뭥미. 이런 여러겹의 프레임적 구성은 참신한 시도라기 보다는 G를 향한 일차원적 분노를 겹겹이 포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사실 이렇게 길게 리뷰를 쓸만한 컨텐츠를 갖지는 않았다.  단지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를 읽고 난 후 표절 시비가 다른 신문이나 잡지에는 전혀 실리지 않고 유독 한 잡지사에 기고된 후 그 정황을 알고 싶었는데.  기사에서 주장한 것 이상의 컨텐츠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책 내의 작가의 원 소설 <허물>과 <지상의 노래> 둘 다 읽어본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표절 이라는 자극적 소재와 마치 중견 소설가의 비리를 고발하려는 듯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는 이 책은 뜨기 위해 작정하고 둔 치졸한 무리수로 읽히는 건 왜일까. 책을 읽는 행위는 자기 시간을 투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신이 앙심을 품은 기성 작가에 대한 표절의 고발이라는 자극적 소재를 이용하여 시선을 끌고, 창작이라는 문학이라는 고귀한 이름으로 소중한 독자의 시간에 왜곡된 자신의 주장과 넋두리를 심는 건 표절만큼 위험한 발상이다.
 

삼성이 아이폰을 베껴 천문학적 배상금을 물도록 판결났음에도 불구하고, 모서리가 둥근 네모 라는 디자인적 요소에 대한 애플의 주장은 조롱거리이다.  아이폰이 미국 법정에서 삼성을 상대로 이긴 건 삼성이 실제로 구석 구석 많은 디자인 요소와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벤치마크하고 표절했기 때문이지 모서리가 둥근 네모 라는 일반적인 형태 때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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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 2014-04-1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신 분은 이 작가에게 애정이 있는 분 같네요. 이 작품이 그런 사연이 있는 작품인 줄 몰랐습니다. 덕분에 알게 되었고 <표절>만 읽은 저로서는 이 작품은 그저 표절이라는 문단의 고질적 병폐에 대해 생각해 보게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자기 창작물은 소중한 거 아닐까요? 그런 시비가 있었다고 해서 자신의 작품을 그 사건의 희생양으로 만들고 싶진 않았을거 같은데요. 소설은 그냥 소설인 거죠 뭐.

CREBBP 2014-04-23 19:57   좋아요 0 | URL
소설은 복수하기 위해 쓰여졌는데, 복수도 제대로 못한 거죠. 희생양으로 만들었다기 보다는 제 관점에서는 노이즈 마케팅을 하려는 시도였을 듯 싶습니다. 조금 격앙된 톤으로 썼다가, 조금씩 고쳤습니다. ㅎㅎ

우리두리 2014-04-18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사기 전에 이 리뷰를 봤으면 좋았을 것을 안타깝네요. 첫장을 읽자마자 아 이거 잘못 샀다는 느낌이 팍 왔습니다. 자신의 이야기건 아니건 이런 흥미로운 소재를 제대로 풀어내기에는 작가의 역량이 부족한 듯 싶습니다. 재미없는 소재는 아니나 글을 너무 못 쓰셨더라고요. guiness님의 글을 읽으니 작가분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으셔서 그랬나봅니다. 정말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길게 리뷰를 쓸 만한 컨텐츠가 없어요.

CREBBP 2014-04-23 19:59   좋아요 0 | URL
제 말이... 저는 이승우 작가의 <지상의 노래>를 읽으면서 어떤 경외감 같은 게 있었는데,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만일 표절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너무나 실망할 것 같아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