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작은몸, 큰몸 작은손

[푸른하루 8] 두더지



  밭둑에 대추나무 세 그루가 있습니다. 지난해는 가지가 늘어지게 대추가 열렸습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는 조금 적게 열립니다. 벌레먹은 떨어진 대추가 더 많습니다. 사다리를 놓고서 대추를 따다가 구멍에 빠질 뻔합니다. 나무 언저리에 난 구멍을 메우자고 여기면서도 아직 손길이 미치지 못 합니다. 이동안 구멍이 물길처럼 바뀌고,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밭과 길을 갈라놓을 듯합니다. 


  지난여름 끝에 큰비가 왔습니다. 어마어마하구나 싶은 빗물이 우리집 마당을 휘돌아서 흘러갔습니다. 그때 뽕나무 둘레 흙을 쓸면서 구멍이 났고, 밭둑으로 가는 길이 막혔습니다. 손바닥만 한 부추밭 흙도 빗물에 휩쓸려 갔습니다.


  대추는 그만 따고서 구멍을 들여다봅니다. 구멍이 난 자리는 처음에는 조그마했습니다. 두더지가 판 구멍 같았습니다. 뱀도 나온 자리입니다. 이러다 큰비가 오면서 두더지길을 뚫은 듯싶고, 우리 밭이 깊이 패기까지 했습니다. 그나저나 이 구멍을 메워야 할 텐데, 아직 손을 못 대었으니, 또 큰비가 오면 이 구멍은 더 패겠지요.


  우리집 꽃밭에 두더지가 곧잘 지나가는 듯합니다. 여느때는 멀쩡한 밭흙인데, 문득 보면 살이 부슬부슬 갈라지듯 흙이 일어나곤 합니다. 처음에는 꽃밭을 지나갈 적마다 발로 땅을 밟아서 다졌습니다. 그렇지만 꽃밭에 새로 구멍이 생기고 흙이 일어납니다. 두더지가 그만 지나가기를 바라며 젓가락을 꽂아 보기도 하지만, 두더지는 젓가락쯤 아랑곳하지 않는 듯합니다.


  어떡할까 한참 헤아리다가 두더지길을 안 밟기로, 젓가락도 안 꽂기로 합니다. 그냥 나는 나대로 두더지는 두더지대로 다니면 되려나 어림합니다. 두더지가 늘 다니는 길로만 다니면서, 맨드라미 뿌리를 안 건드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저 지나가기만 하고 꽃은 안 건드리기를 바라고요.


  두더지를 보면 손이 참 큽니다. 두더지 손(앞발)을 보면 땅을 참 잘 파겠구나 싶습니다. 몸은 작아도 손이 야무집니다. 땅밖에서, 땅을 발바닥으로 디디면서 살아가는 나는, 사람은, 우리는 손이 두더지처럼 크지는 않습니다. 작은 몸에 커다란 손인 두더지이고, 커다란 몸에 자그마한 손인 사람입니다. 두더지는 땅밑에서 조용히 굴을 파면서 고요히 지냅니다. 사람은 땅밖에서 손으로 뚝딱뚝딱 만지고 지으면서 시끌벅적하게 삽니다.


  두더지 이야기를 남깁니다만, 나는 두더지가 썩 반갑지 않습니다. 밭을 할퀴듯 헤집고, 남새를 갉으니까요. 꽃밭도 어지럽히는 듯하고, 아무래도 안 반갑습니다. 그러나 두더지 눈으로 보자면, 조용하던 멧골에 난데없이 이것저것 때려짓고 올려세우고 시끄러운 사람이 못마땅할 만합니다. 제발 조용히 살자면서 슬그머니 흙을 포슬포슬 뒤집어서 티를 낼는지 몰라요. 좀만 조용하면 안 되겠느냐고, 좀만 파헤치면 안 되겠느냐고, 좀만 같이 살면 안 되겠느냐면서 말없이 흙으로 몸짓말을 할는지 몰라요.


  사람은 이제 거의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닙니다. 어른이 되면 웬만한 사람들은 커다란 쇳덩이인 자가용을 굴리고, 트럭을 더 굴린다든지, 포크레인도 갖춥니다. 시골이라면 경운기에 트랙터에 콤바인처럼 커다랗고 무겁고 시끄러운 농기계를 갖추기도 합니다.


  두더지는 오직 맨손으로 땅을 조금 팝니다. 사람은 갖은 큰쇳덩이로 온갖 곳을 파헤치고 밀고 무너뜨립니다. 우리는 공장이나 체육관이나 아파트나 고속도로를 내면서 “두더지도 같이 지낼 땅뙈기 조금” 남겨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추를 따다가 한참 딴생각을 했습니다. 소쿠리를 챙겨서 집으로 갑니다. 올해 대추알은 몇 건사하지 못 하지만, 벌레먹어서 땅에 떨어진 대추쯤이면, 두더지도 밤에 살그머니 나와서 맛을 보려나요. 어쩐지 미안해서 두더지길 귀퉁이에 벌레먹은 대추를 몇 내려놓습니다. 




2026.10.9. 숲하루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기다리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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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10-0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더지와 사람이
살갑게 사귈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을과 숲과 나라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숲하루 2026-10-09 13:24   좋아요 0 | URL
두더지가 땅을 파서 말썽꾸러기라 여겼는데
되려 사람이 기계를 부리며 땅을 시끄럽게 한 듯해요.
두더지가 큰 손으로 말하고 있는 줄도 새삼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헌책 식당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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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을 물려받는 네가 부러워

[읽는하루 6] 조용하고 시끄러운 이곳



《헌책 식당》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문학동네

 2024.1.15.



  《헌책 식당》을 읽는 동안 부러웠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문학을 배우고, 글을 쓸 뿐 아니라, 할아버지가 꾸리던 헌책방을 물려받는데, 이 헌책방을 고모할머니랑 나란히 꾸리는 모습도 부럽다. 나도 《헌책 식당》에 나오는 젊은 아가씨처럼 누구한테서 책집을 물려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논밭을 물려받지 않아도 좋다. 작은책집을 한 곳 물려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물려받은 책집에서 내가 말린 찻잎도 팔고, 내가 구운 빵도 팔고, 내가 키운 남새도 팔면 좋겠다.


  글을 쓰는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이 머물 자리를 꾸리고 싶다. 아름다운 책을 골라서 읽으면서 작가라는 꿈을 키우는 책집을 해보고 싶다. 작가를 불러서 수다도 떨고 싶다. 책수다를 들으러 찾아오는 손님들 발걸움으로 문턱이 반질반질 닳는 책집을 차리고 싶다.


  도시에서는 마당이 사라진 집이 늘어난다. 도시에서는 카페가 자꾸 생긴다. 카페에는 빵을 함께 놓는다.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책을 두는 카페도 제법 보이는데, 책은 꼭 장식처럼 꽂아둔다.


  카페를 다니다가 가끔 생각한다. 책꽂이에 있는 책이 사람을 찾아간다면 어떨까. 사람이 책을 찾아보려고 손을 내밀기 앞서, 책이 맞춤한 사람을 찾으려고 나서 본다면 재미있을 듯하다. 책도 사람 못잖게 스스로 길을 내며 산다. 


  책을 만나기 앞서와 책을 만나고 난 뒤는 다르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시골을 좋아하면서도 도시를 놓지 못하지만, 내가 책집을 꾸릴 수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모두를 담고 싶다. 스스로 풀죽지 말라고 북돋우면서, 풀죽은 이웃이 이곳에서 기운을 차릴 수 있기를 빈다. 더디게 자라는 나처럼 더디게 걸어가는 이웃과 책을 사이에 놓고서 이야기하고 싶다.


  누가 나한테 책집을 맡아 달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열쇠를 받겠다. 나는 꿈을 내려놓지 않는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꿈에서도 이곳에서도 하루를 그린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작은책집을 하고 싶다. 아파트를 팔고서 이층집을 얻고 싶다. 한 층은 잠을 자고 글도 쓰는 곳으로 삼고, 한 층은 책집으로 꾸리고 싶다. 살림집이자 책집인 작은 이층집을 돌보면서 시인도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작은책집을 차릴 수 있다면 언제나 책하고 살아가면서 글하고도 가깝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틈나는 대로 책집을 찾아간다. 시집만 파는 곳, 독립책방, 헌책방. 아기를 보며 헌책방을 꾸리는 어느 곳을 보면, 아기는 어느새 자라 유치원에 다닌다. 어느 책집은 사흘만 열더니 닫았다. 태어난 옛집을 고쳐서 책집으로 삼은 부부도 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부부가 하는 책집도 있다. 지친 얼굴로 겨우 버티는 듯한 책집이 있고, 환하게 핀 얼굴로 일하는 책집이 있다.


  책집은 조용하다. 그렇지만 책방은 시끌벅적하다. 조용하던 책집은 잔치집이 된다. 그러니까 《헌책 식당》이라는 이름처럼, 책집은 북적이는 잔치집 식당과 같고, 또 조용하게 잠기는 집과 같다. 



2026.9.29.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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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10-1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잖아
숲하루 님 손끝으로 피어날
즐거운 마을책집을 기다립니다.
꿈을 씨앗으로 품으면
어느 날 틀림없이 피어날 테니까요.

숲하루 2026-10-14 10:42   좋아요 0 | URL
바람은 씨앗 같다는 말처럼 읽혀요.
꿈꾸며 글을 가꾸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굴에서 살던 작은날개

[푸른하루 7] 박쥐



  우리 집은 이백 살이 넘는다. 오두막 같은 방 세 칸을 헐어서 하나로 쓴다. 천장은 둥그스름하다. 아래채에는 마루와 방과 부엌이 있다. 부엌은 새카맣게 그을린 모습이다. 빗장문과 벽에는 삼발이가 있고, 113이라는 글씨도 남았다. 흙과 나무로 지은 집이다. 여기에 시멘트를 덧발라 놓았다.


  우리 집에는 담이 따로 없고, 멧자락이 둘러싼다. 아래채 맞은켠에는 동굴이 있다. 마당에서 보면 위채와 아래채 사이 물길 너머로 굴이 보인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올 적을 떠올린다. 그때 굴은 2/3쯤 막혔다. 큰 통을 엎어 놓은 듯했다. 이따금 굴을 들여다보곤 했다. 이제 칡덩굴이 퍼지고 마르면서 굴 어귀를 가린다. 흙도 흘러내려서 실눈처럼 틈을 조금 남긴 채 다 가린다.


  마을 어른한테 얼핏 들으니, 일흔 해쯤 앞서 한창 전쟁이 나던 때에, 사람들이 이 굴에서 몸을 숨겼다고 한다. 먹을거리를 넣어두기도 했고, 우리가 오기 앞서도 이럭저럭 썼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에 한 길이 넘는 구렁이 한 짝이 서로 몸을 꼰 모습을 대문 너머 멧자락에서 보기도 했다. 구렁이가 이 굴을 드나들지는 않을까. 아무래도 집에 가까이 붙은 굴을 그냥 둘 수 없으니, 짝한테 굴을 확 트자고 했다.


  굴 어귀에 쌓인 흙이 무척 많다. 삽으로 퍼낸다. 굴을 덮던 통도 치운다. 굴 안쪽은 하얗게 말랐고, 정으로 깎은 자국이 있다. 돌처럼 보여서 만지니 흙처럼 부서진다. 이때 굴에서 주먹만 한 박쥐를 보았다. 보라색 줄이 있다. 거꾸로 매달려서 우리를 지켜본다. 날개를 손처럼 포개고 매달렸더라.


  “괜찮아, 거기 있어도 돼.”


  이제 바닥을 쓸자 박쥐가 휙 날아간다. 고개를 드니 이미 담벼락을 넘어가고 없다. 박쥐는 언제부터 이 굴에 살았을까. 우리가 이 집에 들어서기 앞서부터 살았나. 혼자 살아가나.


  우리가 이곳에서 닭을 치기에, 박쥐는 그저 조용히 머물면서 파리에 벌레를 실컷 사냥하며 함께 지냈을 만하다. 이 골짜기에는 모기가 없다시피 한데, 모두 박쥐가 사냥했기 때문일 수 있다.


  굴에 있으니 밖보다 서늘하다. 굴에 감자를 넣어둔다. 비트도 넣는다. 나중에 들여다보아도 껍질이 쪼그라들지 않는다. 굴은 어느새 우리 차지가 된다. 우리 살림을 굴에 넣은 뒤로는 박쥐를 보기 어렵다. 박쥐는 어디로 옮겼을까.


  낮에는 알록달록한 작은새가 드나들고, 밤에는 조용히 나들이하는 박쥐가 곁에 있는 멧골집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곳에서 밤에 돌아다니지 않아서 박쥐가 날아다니는 줄 몰랐을 뿐이다.


  이러고서 한참 흐른 어느 날, 어둑어둑할 무렵 머리 위로 뭐가 휙 날아간다. 빠르게 지나가는데 날개가 크다. 아니, 길던가. 참새는 아니고, 딱새도 박새도 아니다. 아마 박쥐였을까. 굴에서 살던 박쥐일 수 있고, 그냥 이 멧골에서 살아가는 박쥐일 수 있다. 



2026.9.24.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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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비의 또 다른 세계를 찾아서
크리스토퍼 엣지 지음, 민지현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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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별에 있을 나는

[읽는하루 5] 나를 찾아가는 나



《앨비의 또 다른 세계를 찾아서》

 크리스토퍼 엣지

 민지현 옮김

 크레용하우스

 2017.8.30



  《앨비의 또 다른 세계를 찾아서》를 읽어 본다. 앨비는 보름쯤 앞서 죽은 엄마를 찾아가고 싶다. 이곳에서는 엄마가 죽었지만, 다른 차원에서는 엄마를 만날 수 있으리라고 여긴다. 엄마가 옆에 있을 적에 함께 이야기하고 해본 여러 가지를 떠올린다. 양자물리학 실험을 제대로 해낸다면, 틀림없이 아직 살아서 나를 따뜻하게 안을 엄마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고 여긴다. 오늘 이곳에 있는 아빠하고는 아무 말을 할 수 없다. 아빠는 엄마가 떠나고 난 뒤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이대로는 안 되겠기에 다른 차원으로 다녀와서 엄마한테 도움말을 듣고 싶다.


  언젠가 수영을 하다가 물밖으로 나와서 의자에 앉았다가 다시 물속에 들어가려는데, 또 다른 내가 앞으로 걸어가서 뛰어들려고 선 모습을 느낀 적이 있다. 꿈에서 내가 하는 일을 바라볼 때도 있다. 산꼭대기에 서서 어깨를 젖히다가 내가 다른 곳에 온 듯이 낯설기도 하다.


  우리는 먼지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별에서 온 먼지와 같다고 한다. 얼핏 보면 먼지이지만, 빛이라는 에너지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움직이지 않는 듯해도 문득 움직여서 이곳에 있고, 내가 하는 모든 일도 아직 이루거나 일어나지 않았지만 문득 일어나서 어느 곳에서 움직인다고 한다.


  내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하루를 돌아본다. 앞에서 입으로 밥을 먹고, 몸을 거쳐서 뒤에서 똥으로 나온다. 먹으면 먹은 대로 다 나온다. 배가 고프다고 여겨 밥을 먹으면 몸에서 힘이 생긴다. 힘이 생기고 나면 이제부터 밥찌꺼기를 내보낸다고 할 만하다.


  사과를 먹지만 사과가 되지는 않는다. 고기를 먹어도 고기가 되지 않는다. 사마귀가 메뚜기를 잡아먹어도 사마귀는 메뚜가기 되지 않는다. 새가 벌레를 잡아먹어도 새는 벌레가 되지 않는다. 그저 작은 다른 목숨이 우리 몸을 움직이는 빛에너지가 되는 듯하다.


  《앨비의 또 다른 세계를 찾아서》에 나오는 어린 엘비는 또 다른 지구가 있고 또 다른 엄마가 있다고 여긴다. 아마 나도 여기에 있는 ‘숲하루’가 아니라, 다른 지구에 있는 ‘별하루’나 ‘바다하루’가 있을 만하다. 나는 또 다른 지구에서 여자 그대로일 수 있고, 남자일 수 있겠지. 착한 나일 수 있고, 못된 나일 수 있다.


  엄마를 찾으러 끝없다고 할 양자물리학 여행을 하는 엘비는 또 다른 엄마를 만나기 앞서 ‘또 다른 나’인 ‘또 다른 엘비’를 하나둘 만난다. 나랑 같은 나(엘비)를 만날 적마다 놀라면서도 설레고,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바로 ‘나’일 테니까 죽은 엄마하고 다르더라도 나한테 이야기를 들려줄 엄마라고 여긴다.


  다른 별에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본다. 다른 별 나는 말을 잘 할까. 배운 만큼 나를 잘 드러내면서 즐거울까. 노래는 잘 부를까. 잘 하는 내가 있다면 나도 좀 우쭐해 보고 싶다. 또 다른 나를, 마치 쌍둥이 같은 다른 나는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다.


  어제 겪은 일은 무엇일까. 오늘 지내는 일은 무엇일까. 아직 태어나기 앞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나는 무엇을 그렸을지 알고 싶다. 내가 여기에서 그리는 모습대로 생각이 자라서 또 다른 나를 다른 별에서 자꾸자꾸 지어내지는 않나 궁금하다. 



2026.9.20.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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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가을은 온통 노래

[푸른하루 6] 귀뚜라미



  해가 등성이를 넘어가자 멧그림자가 골목에 내려옵니다. 새아침처럼 귀뚜라미가 울고 나뭇잎이 바람에 사락사락 소리를 냅니다. 가을을 몰고 오는 바람이 나뭇잎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흔들거리는 나뭇잎이 물결소리를 냅니다. 바람소리 사이로 풀벌레가 울고요. 풀벌레노래를 듣는데 톡톡 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내가 글을 쓰려고 글판을 톡톡 치는 소리와 다릅니다. 달콤하게 부르는 노랫소리와 다릅니다. 절집에는 바람새가 바람에 따라서 울리는데, 이런 소리와 다릅니다. 풀밭에서 흐르는 소리는 참으로 맑고 곱다고, 머잖아 예순 살이 될 나이인데, 새삼스레 느끼고 생각합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살짝 멈춥니다. 서로 맞물리면서 내는 풀벌레 소리가 나는 창을 열어 봅니다. 봄에 심어서 꽃을 다 피우고서 시든 꽃이 있습니다. 흙으로 돌아가라며 줄기를 베어서 눕혔지요. 이 언저리쯤, 또는 곧 푸짐하게 올라올 산국에 돋아날 자리께, 아니면 이 모든 곳에다가 우리집을 둘러싼 멧자락 모든 곳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풀벌레는 소리로만 만나요. 풀벌레는 어디에 숨어서 우는지 시골에서도 얼굴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가까이에서 듣고 싶어서, 가까이에서 얼굴 좀 보고 싶어서 다가가거나 지나가면 어느새 울음을 그쳐요.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는 모두 작은 풀벌레인 듯합니다. 풀벌레는 노래를 잘 해야 사랑을 받나 봅니다. 나는 노래를 썩 못 하는데, 나처럼 노래를 못 하는 풀벌레는 없을 듯합니다.


  푸른빛 사마귀와 나무빛 사마귀가 마당에 나옵니다. 사마귀도 노래하려나? 잘 모르겠습니다. 사마귀도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에 춤을 출 듯합니다. 


  새가 지저귑니다. 휘파람소리에 풀피리소리를 내며 풀벌레노래에 섞입니다. 소리는 줄을 서서 흐릅니다. 겨울끝에 따사로이 볕을 쬐며 들판을 누비고 전봇대에 앉아 떼로 다니는 참새소리에 꼬리주황새에 딱새가 울고 나면, 이제 뻐꾸기가 울어요. 땅에서는 개구리떼가 울고 한여름에 매미가 목터지게 울고, 어느덧 풀벌레가 울 때입니다. 가을은 작은울음이 꽃처럼 피어납니다.  


  풀이 잘리고 또 잘려도 자라는 풀밭에는 메뚜기도 풀벌레도 매미도 곱게 울음빛을 터트립니다. 새는 귀뚜라미 소리가 어떻게 들릴까요? 나도 새가 되어 귀뚜라미 곁을 날고 싶습니다.


  첫가을인 구월은 봄여름가을겨울이 함께 깃든 듯합니다. 봄은 눈으로 보여주고, 여름은 코로, 가을은 귀로요. 한 번 보면 잊지 않는다는 말이 있죠. 눈빛이 그만큼 세니까요. 귀는 더 또렷해요. 울리니까요. 소리는 그림을 그리라고 해요. 고요히 귓가를 맴돌아요.  


  살갑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조용한 하늘에 대고 부르는 소리입니다. 메뚜기는 무르익는 벼논을 마당처럼 뛰어 놀아요. 귀뚜라미는 앞날개를 비비며 노래를 부르고, 메뚜기는 뒷다리를 앞날개에 대고 노래를 부른다지요. 뒷산으로 이은 벼랑 언저리 풀밭에서 귀뚜라미가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느새 우리집 가까이 찾아왔나 봅니다. 


  짙은 보라빛 칡꽃이 핍니다. 귀뚜라미는 칡꽃한테 들려주려고 우는 듯합니다. 풀보다 나뭇잎이 많은 벼랑이 그늘도 있어 아늑한가 봅니다. 사람도 귀뚜라미처럼 노래를 해요. 노래는 마음을 달래주고요 하늘로 가장 높이 올라가는 소리를 폅니다. 봄부터 끊임없이 노래가 흘러나와요.  


  귀뚜라미는 귀가 무릎에 있다고 합니다. 메뚜기는 귀가 배에 있대요. 내 몸에 귀가 무릎에 있다고 헤아려 봅니다. 내 귀가 배에 있다고 헤아려 봅니다. 나는 이러다가는 귀는 늘 깨질 듯합니다. 반쯤 엎드러 자는 동안 귀는 납짝해질 듯합니다. 웃음이 납니다. 저마다 다른 자리에 귀가 있고 소리를 냅니다. 철따라 나왔다가 떠나는 숨결은, 알고 보면 뜨겁습니다. 그래서 귓가에 맴돕니다. 



2026.9.17.


'생물다양성 증가'의 함정, 흔한 종 조용히 사라진다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87


햇빛 강하면 좋은 거 아니었나? 태양광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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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사이 나타난 버섯, 정말 하루 만에 자란 걸까?

https://www.hkb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2638


기후위기 속 또 다른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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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동안 썩지 않은 ‘펭귄 미라’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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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09-17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이라는 철은
그야말로
노래가 노래로 잇고 피어나는 길목이지 싶습니다.

푸른노래를 들으면서
사람노래도 하나하나
맞아들일 만하구나 싶고요.

숲하루 2026-10-14 10:45   좋아요 0 | URL
시월 가을 추위에
귀뚜라미 소리가 막바지에 이르는 듯해요.
밤이면 꽤 추운데
노래를 멈추지 않은 작은 몸이 대견스럽습니다.
고맙습니다. 파란놀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