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가을은 온통 노래

[푸른하루 6] 귀뚜라미



  해가 등성이를 넘어가자 멧그림자가 골목에 내려옵니다. 새아침처럼 귀뚜라미가 울고 나뭇잎이 바람에 사락사락 소리를 냅니다. 가을을 몰고 오는 바람이 나뭇잎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흔들거리는 나뭇잎이 물결소리를 냅니다. 바람소리 사이로 풀벌레가 울고요. 풀벌레노래를 듣는데 톡톡 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내가 글을 쓰려고 글판을 톡톡 치는 소리와 다릅니다. 달콤하게 부르는 노랫소리와 다릅니다. 절집에는 바람새가 바람에 따라서 울리는데, 이런 소리와 다릅니다. 풀밭에서 흐르는 소리는 참으로 맑고 곱다고, 머잖아 예순 살이 될 나이인데, 새삼스레 느끼고 생각합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살짝 멈춥니다. 서로 맞물리면서 내는 풀벌레 소리가 나는 창을 열어 봅니다. 봄에 심어서 꽃을 다 피우고서 시든 꽃이 있습니다. 흙으로 돌아가라며 줄기를 베어서 눕혔지요. 이 언저리쯤, 또는 곧 푸짐하게 올라올 산국에 돋아날 자리께, 아니면 이 모든 곳에다가 우리집을 둘러싼 멧자락 모든 곳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풀벌레는 소리로만 만나요. 풀벌레는 어디에 숨어서 우는지 시골에서도 얼굴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가까이에서 듣고 싶어서, 가까이에서 얼굴 좀 보고 싶어서 다가가거나 지나가면 어느새 울음을 그쳐요.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는 모두 작은 풀벌레인 듯합니다. 풀벌레는 노래를 잘 해야 사랑을 받나 봅니다. 나는 노래를 썩 못 하는데, 나처럼 노래를 못 하는 풀벌레는 없을 듯합니다.


  푸른빛 사마귀와 나무빛 사마귀가 마당에 나옵니다. 사마귀도 노래하려나? 잘 모르겠습니다. 사마귀도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에 춤을 출 듯합니다. 


  새가 지저귑니다. 휘파람소리에 풀피리소리를 내며 풀벌레노래에 섞입니다. 소리는 줄을 서서 흐릅니다. 겨울끝에 따사로이 볕을 쬐며 들판을 누비고 전봇대에 앉아 떼로 다니는 참새소리에 꼬리주황새에 딱새가 울고 나면, 이제 뻐꾸기가 울어요. 땅에서는 개구리떼가 울고 한여름에 매미가 목터지게 울고, 어느덧 풀벌레가 울 때입니다. 가을은 작은울음이 꽃처럼 피어납니다.  


  풀이 잘리고 또 잘려도 자라는 풀밭에는 메뚜기도 풀벌레도 매미도 곱게 울음빛을 터트립니다. 새는 귀뚜라미 소리가 어떻게 들릴까요? 나도 새가 되어 귀뚜라미 곁을 날고 싶습니다.


  첫가을인 구월은 봄여름가을겨울이 함께 깃든 듯합니다. 봄은 눈으로 보여주고, 여름은 코로, 가을은 귀로요. 한 번 보면 잊지 않는다는 말이 있죠. 눈빛이 그만큼 세니까요. 귀는 더 또렷해요. 울리니까요. 소리는 그림을 그리라고 해요. 고요히 귓가를 맴돌아요.  


  살갑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조용한 하늘에 대고 부르는 소리입니다. 메뚜기는 무르익는 벼논을 마당처럼 뛰어 놀아요. 귀뚜라미는 앞날개를 비비며 노래를 부르고, 메뚜기는 뒷다리를 앞날개에 대고 노래를 부른다지요. 뒷산으로 이은 벼랑 언저리 풀밭에서 귀뚜라미가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느새 우리집 가까이 찾아왔나 봅니다. 


  짙은 보라빛 칡꽃이 핍니다. 귀뚜라미는 칡꽃한테 들려주려고 우는 듯합니다. 풀보다 나뭇잎이 많은 벼랑이 그늘도 있어 아늑한가 봅니다. 사람도 귀뚜라미처럼 노래를 해요. 노래는 마음을 달래주고요 하늘로 가장 높이 올라가는 소리를 폅니다. 봄부터 끊임없이 노래가 흘러나와요.  


  귀뚜라미는 귀가 무릎에 있다고 합니다. 메뚜기는 귀가 배에 있대요. 내 몸에 귀가 무릎에 있다고 헤아려 봅니다. 내 귀가 배에 있다고 헤아려 봅니다. 나는 이러다가는 귀는 늘 깨질 듯합니다. 반쯤 엎드러 자는 동안 귀는 납짝해질 듯합니다. 웃음이 납니다. 저마다 다른 자리에 귀가 있고 소리를 냅니다. 철따라 나왔다가 떠나는 숨결은, 알고 보면 뜨겁습니다. 그래서 귓가에 맴돕니다. 



2026.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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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09-17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이라는 철은
그야말로
노래가 노래로 잇고 피어나는 길목이지 싶습니다.

푸른노래를 들으면서
사람노래도 하나하나
맞아들일 만하구나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