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않는 너를

[푸른하루 2] 두꺼비



  산초나무 밑에 구멍이 났어요. 뿌리 밑이 동굴 같아요. 하루는 창가에 턱을 괴고서 산초나무 밑을 바라보는데 두꺼비 눈이 보여요. 낭떠러지처럼 이룬 길 올라간 자국도 옅게 있어요. 하루를 꼬박 지켜보는데 두꺼비는 꼼작하지 않고 눈감고 입만 소처럼 되새김질하면서 가만히 한자리에 있어요. 두꺼비는 낮에는 잠을 자고 쉬고 있다가 밤이 되면 밖으로 나와 배를 채우나 봐요. 석 달 넘게 두꺼비하고 만나는데 어느 날부터 두꺼비가 보이지 않아요.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이면 여러 두꺼비가 마당으로 나와요. 여기도 한 마리 저기도 한 마리, 이렇게 다섯 마리가 나와서 기어요. 큰비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자리를 옮기는지 몰라요. 삽으로 바닥을 긁어 쇳소리를 내면, 두꺼비는 가만히 있다가 발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요.


  우리 숲밭에 비닐집이 있고, 이곳에서 뱀을 곧잘 봐요. 비닐집 뒷문 풀밭에 뱀 한 마리가 있어요. 뱀도 두꺼비처럼 달아나지 않아요. 집게를 들어서 잡으려고 하는데, 뱀 아가리에 커다란 두꺼비 몸이 반쯤 들어가더군요. 얼른 집게로 뱀을 잡자, 두꺼비가 뱀 아가리에서 나와요. 그런데 두꺼비 등이 피투성이예요.


  며칠 지나서 두꺼비를 다시 만나요. 두꺼비는 뱀한테 잡혀서 죽을 뻔했지만, 용케 살아나고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기어다녀요. 살아나서 고마워요.


  우리 집 뒤뜰은 바로 산으로 잇습니다. 산자락에 아주 큰 둥근 바위가 있어요. 공룡알처럼 박혔어요. 숲흙은 아주 보드랍기에 숲에는 돌이 없다시피 해요. 그런데 이렇게 큰 돌이 가끔 보이고, 골목 밖에도 하나 있어요. 꼭 굴에서 떨어져 나간 듯이 생긴 돌이죠. 큰돌은 칡과 찔레가 덮어요.


  우리는 이쪽으로 길을 내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찔레와 칡을 하나하나 자르고서 뿌리를 걷어냈어요.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냈지요. 이 숲길은 바위부터 난 셈인데, 어느 날 이 바위에 두꺼비가 올라오는군요. 밤에 불을 켤 무렵이면 어느새 바위에 올라와요. 그래서 가뭄에는 바위에 물을 한 바가지를 더 놓고서 먹으라고 말을 걸어요. 이 더위에 저도 얼마나 더울까 싶어 물을 등에 뿌려주면 눈을 지그시 감고서 가만히 있어요. 꼭 말을 알아듣는 듯해요. 


  어릴 때 의성 금성산길에서 두꺼비를 이따금 보았어요. 나무를 베고 난 뒤 자라는 작은 참나무 밑에서 자주 봤어요. 어릴 때에는 “옴이야!” 하고 놀라서 펄쩍 뛰어요. 놀라서 머리칼이 서곤 했는데, 이제는 무섭지 않아요. 두꺼비는 처음부터 우리를 보고서 달아나지 않았는데, 나도 이제는 두꺼비를 보고서 놀라거나 달아나지 않아요.


  오늘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인데, 이 땅을 우리 집으로 삼기 앞서부터 두꺼비도 살고 뱀도 살았겠지요. 우리 집에 찾아오는 두꺼비라기보다는, 두꺼비와 뱀이 옛날부터 살던 곳에 난데없이 나타나서 밀어냈다고 할 수 있어요.


  등짝이 울긋불긋 오돌토돌 덮고서 뼛속까지 느린 두꺼비예요. 한참 지켜보면 두꺼비는 참 생각이 깊은 듯해요. 서둘러 달아나지 않고, 그대로 멈춘 듯 숨죽이며 때를 기다리는 듯해요.


  이곳에 두꺼비가 있다면, 두꺼비가 밥으로 삼는 거미와 벌레도 있고, 두꺼비를 노리는 뱀도 있다는 얘기예요. 다같이 어울리는 숲이니까 두꺼비도 뱀도 있을 테지요. 우리는 낮에 일을 한다면, 두꺼비는 밤에 돌아다닐까요. 우리가 낮에 돌아다닌다면, 풀벌레는 밤에 노래해요.


  어린 날에 “두껍아 두껍아, 헌이 줄게 새이 다오.” 하고 노래하다가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하고 노래하며 놀았어요. 두꺼비는 사람한테 재물을 주는 짐승인가 봅니다. ‘금두꺼비’라는 말도 있잖아요. 재물 때문은 아니지만, 두꺼비 곁에서 착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2026.8.15. 숲하루



식물 서식 적합지, 북쪽·고지대로 이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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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 방지 스티커보다 세다...도시 새 구하는 뜻밖의 벽돌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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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에너지 개발 때문에 목숨 잃는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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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먹황새’ 다시 우리 하늘로… 국립생태원, 몽골과 손잡고 복원 본격화

https://www.eenews.kr/5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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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밭 옥수수를 나보다 많이 먹는

[푸른하루 1] 너구리



  시골에는 대문이 없는 집이 많습니다. 담벼락이 없는 집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밭에 울타리를 칩니다. 비탈진 숲이 둘러싸인 밭에서 그물 울타리를 곧잘 봅니다. 우리 집과 밭은 산으로 둘러쌉니다. 멧자락 쪽 밭둑을 따라 죽죽 그물을 쳤습니다. 지난해 우리 밭을 부치던 과일밭 아저씨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봄에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고구마를 심을 자리에는 비닐을 씌웠습니다. 모퉁이 자리가 남습니다. 비닐을 씌운 이랑에 옥수수를 심어도 되는데, 맨땅에 심는다고 잔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실 갔다가 비탈진 둑길에 고구마를 심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 작았습니다. 빈터만 남아도 한 줄이라도 심는 손길이 살뜰히 보입니다.


  둑길 작은밭이 무척 예쁩니다. 어린날 소꿉놀이를 다시 하는 셈일까요. 그만 한 너비라면 저도 해볼 수 있습니다. 비닐을 씌우지도 않고, 그대로 두면 풀만 자랄 듯하지만, 따로 심을 땅도 있지만, 나도 따라서 둑길에 심고 물을 주느라 땀을 뺐습니다.


  올여름은 무덥습니다. 가뭄이 깁니다. 옥수수는 잎을 넓게 내어 스스로 그늘을 펴면서 땡볕을 견딥니다. 쉰세 포기를 심었는데 가장자리 옥수수는 잘 자라지 않습니다. 햇볕에 나가면 얼굴이 따갑습니다. 물도 제때 못 주니 말라버릴 듯합니다. 그러나 하늘은 죽을 만큼 견디게 하고는 딱 맞게 비를 뿌려요. 비는 좀 세차게 내립니다. 흙이 파여 옥수수가 비스듬히 넘어집니다. 비를 같이 맞으면서 고랑을 밟아 줍니다.


  어느 날 마당에서 옥수수밭을 보니 쑥쑥 자랍니다. 쓰러진 옥수수도 일어납니다. 가까이 가니 옥수수가 여물었어요. 알도 크고요.


  며칠 뒤에 옥수수를 꺾으러 갔더니 누가 먼저 꺾어 먹었어요. 누구일까요. 그물을 치지 않은 대문 쪽으로 너구리가 들어와서 옥수수를 따먹었더군요. 한 포기에 둘씩 열리는데 쉰세 포기면 백여섯 자루는 먹을 수 있는데, 우리는 스물다섯 자루만 겨우 땁니다. 너구리가 엄청나게 먹었습니다.


  골짜기 끝에는 두엄칸이 있습니다. 거름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병아리가 나가고 나면 왕겨와 섞인 똥을 걷어서 쌓습니다. 죽은 병아리도 두엄칸에 둡니다. 두엄칸에 거름을 낼 때에는 안동시에 살펴보아야 밭에 거름으로 쓸 수 있어요. 그런데 너구리는 두엄칸에 둔 병아리를 밤에 먹는 듯합니다. 여기저기 파낸 자국이 있습니다.


  오소리는 땅을 파고 다닙니다. 병아리 맛을 보았다면, 우리가 키우는 병아리집에도 파들어와서 잡아먹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나마 병아리가 자라는 동안 우리 밭 옥수수를 따먹어서 조금 마음을 놓았습니다. 


  너구리하고 딱 마주친 날이 있습니다. 밤마다 개가 밭 쪽으로 갑자기 뛰어가며 짖을 때가 있어요. 너구리가 옥수수를 먹으러 이 밭에 자주 올 테니, 개가 짖고 달려가면 그물을 친 산밑에서 멈춰요. 아마 가까이에 너구리가 있거나 숨을 수 있습니다. 그물 밑으로 흙을 파고서 밭으로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는데, 바로 마당 앞이라 너구리도 쉽지는 않겠지요. 이랑에 심은 땅콩도 문득 걱정스럽습니다. 너구리는 땅콩을 잘 파먹습니다.


  뱀이 봉숭아를 싫어한대서 앞뜰 뒤뜰에 봉숭아를 꽤 심었습니다. 봉숭아는 작은씨앗이었지만 몰라보게 커서 봉숭아 줄기와 밑동이 어른 팔목만큼 굵어요. 너구리는 땅을 파다가 봉숭아 줄기와 밑동이 굵은 나머지 더 파지 못 한 듯합니다. 나비도 봉숭아를 먹고서 날아가고, 개미도 기어와서 먹고, 진딧물도 벌도 알을 낳고 가는 봉숭아입니다. 너구리는 배고파서 밭으로 올 수밖에 없겠지요. 목숨을 걸며 밥을 찾아야 합니다. 


  이곳 와룡산은 나지막하게 구불구불 손가락처럼 숲줄기가 뻗습니다. 골골마다 마을이 있거나 사람이 삽니다. 우리는 병아리를 키운다고 이 골짜기를 통째로 씁니다. 옆 골짜기에서는 소를 키운다고 통째로 씁니다. 저쪽 골짜기에서도 병아리 키운다고 통째로 씁니다. 멧자락이 골골이 막힙니다. 멧줄기를 타고서 이 골 저 골 밤마다 짐승들이 오갈 테지요. 숲짐승도 우리처럼 이곳을 삶터로 삼습니다. 이제 옥수수를 다 땄는데, 너구리와 오소리는 또 무엇을 찾으러 밭으로 올까요. 





2026.8.15.숲하루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여우, 소백산의 품으로

https://www.eenews.kr/5951


멸종위기 저어새 번식개체군 크게 늘었다… 서해안 넘어 남해안으로 확대

https://www.eenews.kr/5953


8월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홍줄나비 선정

https://www.eenews.kr/5938


[기후·멸종 콕콕] "그린벨트에 주택공급? 그건 틀렸다"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34


삶의 공간과 생명을 되찾은 멸종위기종 4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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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가꾼 삶을 책으로


책이 이쁘게 나왔다고 듣고 이레 만에 제 두 손에 고이 올려봅니다. 새 책 냄새를 맡아보고 자수를 쓰다듬어 보고 가슴에 안아 봅니다. 그리고, '숲하루 작가께 숲하루 드림'이라고 적어서 내게 줍니다. 책을 기다리던 이레가 참 길었네요. 무척 떨리고 부끄러웠어요. 또 나를 한 꺼풀 벗는 마음이랄까요. 책은 글쓴이 빈틈이 고스란히 담으니깐요. 생각이 치우치지만, 책을 읽는 마음을 쓰는 하루가 나를 북돋우고, 내 눈길을 닦도록 마음을 기울이고 손끝으로 깃들어서 삶 글을 짓는 밑거름이 되고, 내 글도 활짝 피어날 수 있다는 훈련으로, 글피로 가닿을 징검다리를 놓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2026.08.03.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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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아가는] 


이렇게 살아가는1 2026.08.03.


1. 놀린다고 하더라도


미루나무 사라지고 너른길 사그라들고 너는 사라지지 않고 눈이라도 마주치려고 두 고개 넘어오는데 한 손에 든 낱말책 자전거를 쭉쭉 굴리는 뒷모습만 보아도 달아오르던. 스물다섯 해 만에 처음 만나 넌지시 털어놓는 말에 큰눈에 내 마음을 들인다. 혼자만 간직한 마음 어디서 무엇을 보면 아득하던 너른길이 보여 가슴 가득 벅차게 속에 둔. 하루쯤 만나주지 그랬어 이 마음을 알리던 분이가 너를 가로챌 줄이야.


2 콧구멍 


그곳에서만큼은 깃털처럼 가볍다. 잘 뛰지 못하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팔로 헤엄쳐서 갈 수 있다. 바닥에 살짝 가라앉는다. 숨을 참다가 떠오른다. 물방울이 콧구멍으로 다 빠져나올 때쯤이면 가슴을 찢던 일도 잊을 수 있을까. 그곳은 걷지 않아도 나아가는 곳이다. 바람이 콧구멍으로 살갗으로 살랑인다. 그곳에 없는 바람은 뭘까. 여태껏 가장 쉬웠지만 힘들던 일. 파란하늘을 눈으로 마셨거나 물에 뜬 별을 따거나. 아니면 난 처음부터 날개를 폈는지도.


3 안는 품도 모르고


끌어당겨야 안길 때가 있다. 너는 물소리보다 먼저 뛰어든다. 너를 숨죽이며 지켜보다가는 안지 못 한다. 바위에 앉아 가슴을 졸이며 물속으로 뛰어들 때에는 머리카락만 물낯에 말풀처럼 퍼진다. 얼마나 길고 숨막히게 안았나. 이대로 가라앉으면 죽음 문턱이다. 물거품을 천천히 다 뱉고 가라앉는다. 오빠는 팔을 뻗어서 머리카락을 당기고 물낯으로 안고 오며 살려주고도 좋은말을 듣지 못 했다. 열다섯 오빠는 그냥 끌어안았는데.


4 아기칸 공책을 읽고


아기칸 공책을 읽는다. 내 몸을 빌리지 못 한 채 떠나버린 어린 목숨이 떠오른다. 버림받은 첫날도 아니고 질경이도 아닌데 나는 두 목숨을 뭉갰다. 몸을 판 적이 없는데, 9주가 된 어린 목숨을 떼어냈고, 태어난 모습을 본 적 없는 어린 목숨이 서른 해 지나서 꿈에 나왔다. 눈빛이 으스스했다. 꿈에서 두 어린 목숨을 아기칸 한켠에서 처음 만나서 처음 보는 얼굴로 토닥토닥한다. 어느새 눈빛이 돌아온다. 처음은 벌어야 해서 지웠다. 다음은 아들이 아니라서 지웠다. 한집안을 이어주어야 한다는는 짐이 무거워서 너희를 보내고 말았다. 서른 해 넘게 내 곁에서 그림자로 살다가 간 너희인데, 꿈에서 보며 반가웠다. 다음 삶에서는 꼭 내 몸을 받아서 천천히 이곳으로 오라고 속삭인다.


20260803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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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이야기 비룡소 클래식 58
루머 고든 지음, 폴린 베인스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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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92 바라는 대로



《인형 이야기》

루머 고든

햇살과 나무꾼 옮김

비룡소

2023.9.28.



인형은 사람하고 달라요.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살아 있지만, 인형은 누군가 같이 놀아주기 전에는 정말로 살아 있는 게 아니랍니다. (65쪽)


여름에 《인형 이야기》를 장만하고서, 대구에서 시골로 오갈 적마다 꾸러미에 담고 다녔다. 으레 책상 한쪽에 두었다. 두고두고 읽은 느낌을 글로 적어 보는데, 깜빡 잊고 갈무리를 안 한 탓에 그만 글이 날아갔다. 어째 글도 갈무리를 안 해 놓고서 날린담 하고 혼잣말을 하다가 생각한다. 아마 처음부터 새로 쓰라는 뜻이지 않을까.


《인형 이야기》는 여러 ‘인형’하고 아이들이 마음을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형끼리 주고받는 마음을 마치 누가 옆에서 귀담아들은 듯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바라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짚는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인형을 가슴에 폭 안고서 스스로 바라는 말을 끝없이 속삭이곤 한다. 아이들한테 ‘인형’이란 꿈을 비는 속마음을 말로 털어놓는 알뜰한 동무라고 할 수 있다.


어느덧 크리스마스를 앞둔다. 여섯 달 동안 《인형 이야기》를 책상맡에 놓고서 들여다보았다고 깨닫는다. 나도 우리 집 세 아이도 이제는 어린이가 아니다. 우리 집 막내도 머잖아 서른 살로 다가가는 나이에 이른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에 어떤 인형을 아이들한테 베풀었는지 돌아본다. 우리 아이들은 인형을 품을 적에 무슨 속마음을 빌었을까? 나는 의성 멧골마을에서 어린 나날을 보낼 적에 인형을 구경할 수 없었는데, 내가 어릴 적에 인형을 품어 볼 수 있었다면 어떤 속마음을 빌었을까?


고등학교 다닐 적에 뒤에 앉은 아이가 보육원에서 다녔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하고 어울리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도 보육원 애들하고는 어울리지 않으려고 했다. 보육원에서 오던 두 아이는 늘 같이 다녔는데 한 아이는 또래보다 작았다.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은 어딘가 모르게 티가 났다. 못생기기도 하고 다른 나라 사람 같기도 한 겉모습이기도 하지만 늘 풀이 죽었다. 말도 적고 눈치를 살핀다. 보육원 얘기는 밖에서 못하게 하는지 거의 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남한테 기대지 않으려는 마음이 셌다. 도움받는데 익숙한 얘들과 달리, 안 받고 바라지도 기대지도 않았다. 예전에는 이 아이하고 가끔 글월을 주고받으며 지냈는데,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로 끊겼다. 이제 이 아이는 어떤 얼굴일까. 어디에서 잘 살까. 집은 어디일까. 짝은 맺었을까. 아이가 있다면 밝게 키웠겠지. 


아이들이 있어 인형이 살아간다. 바람은 씨앗 같아서, 바람으로 훅 날려 주는 말씨도 마음씨도 함부로 뿌리지는 안 되겠지.


크리스마스에 인형을 받는 오늘날 여러 아이들은 어떻게 마주할까? 인형한테도 마음이 있는 줄을, 인형도 서로 말을 주고받는 줄을, 인형이 우리 꿈을 가만히 귀담아듣고서 살며시 빛을 뿌려서 잘 이룰 수 있도록 이어 주는 줄을,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보는 아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2024.12.25.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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