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고 가꾼 삶을 책으로


책이 이쁘게 나왔다고 듣고 이레 만에 제 두 손에 고이 올려봅니다. 새 책 냄새를 맡아보고 자수를 쓰다듬어 보고 가슴에 안아 봅니다. 그리고, '숲하루 작가께 숲하루 드림'이라고 적어서 내게 줍니다. 책을 기다리던 이레가 참 길었네요. 무척 떨리고 부끄러웠어요. 또 나를 한 꺼풀 벗는 마음이랄까요. 책은 글쓴이 빈틈이 고스란히 담으니깐요. 생각이 치우치지만, 책을 읽는 마음을 쓰는 하루가 나를 북돋우고, 내 눈길을 닦도록 마음을 기울이고 손끝으로 깃들어서 삶 글을 짓는 밑거름이 되고, 내 글도 활짝 피어날 수 있다는 훈련으로, 글피로 가닿을 징검다리를 놓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2026.08.03.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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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아가는] 


이렇게 살아가는1 2026.08.03.


1. 놀린다고 하더라도


미루나무 사라지고 너른길 사그라들고 너는 사라지지 않고 눈이라도 마주치려고 두 고개 넘어오는데 한 손에 든 낱말책 자전거를 쭉쭉 굴리는 뒷모습만 보아도 달아오르던. 스물다섯 해 만에 처음 만나 넌지시 털어놓는 말에 큰눈에 내 마음을 들인다. 혼자만 간직한 마음 어디서 무엇을 보면 아득하던 너른길이 보여 가슴 가득 벅차게 속에 둔. 하루쯤 만나주지 그랬어 이 마음을 알리던 분이가 너를 가로챌 줄이야.


2 콧구멍 


그곳에서만큼은 깃털처럼 가볍다. 잘 뛰지 못하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팔로 헤엄쳐서 갈 수 있다. 바닥에 살짝 가라앉는다. 숨을 참다가 떠오른다. 물방울이 콧구멍으로 다 빠져나올 때쯤이면 가슴을 찢던 일도 잊을 수 있을까. 그곳은 걷지 않아도 나아가는 곳이다. 바람이 콧구멍으로 살갗으로 살랑인다. 그곳에 없는 바람은 뭘까. 여태껏 가장 쉬웠지만 힘들던 일. 파란하늘을 눈으로 마셨거나 물에 뜬 별을 따거나. 아니면 난 처음부터 날개를 폈는지도.


3 안는 품도 모르고


끌어당겨야 안길 때가 있다. 너는 물소리보다 먼저 뛰어든다. 너를 숨죽이며 지켜보다가는 안지 못 한다. 바위에 앉아 가슴을 졸이며 물속으로 뛰어들 때에는 머리카락만 물낯에 말풀처럼 퍼진다. 얼마나 길고 숨막히게 안았나. 이대로 가라앉으면 죽음 문턱이다. 물거품을 천천히 다 뱉고 가라앉는다. 오빠는 팔을 뻗어서 머리카락을 당기고 물낯으로 안고 오며 살려주고도 좋은말을 듣지 못 했다. 열다섯 오빠는 그냥 끌어안았는데.


4 아기칸 공책을 읽고


아기칸 공책을 읽는다. 내 몸을 빌리지 못 한 채 떠나버린 어린 목숨이 떠오른다. 버림받은 첫날도 아니고 질경이도 아닌데 나는 두 목숨을 뭉갰다. 몸을 판 적이 없는데, 9주가 된 어린 목숨을 떼어냈고, 태어난 모습을 본 적 없는 어린 목숨이 서른 해 지나서 꿈에 나왔다. 눈빛이 으스스했다. 꿈에서 두 어린 목숨을 아기칸 한켠에서 처음 만나서 처음 보는 얼굴로 토닥토닥한다. 어느새 눈빛이 돌아온다. 처음은 벌어야 해서 지웠다. 다음은 아들이 아니라서 지웠다. 한집안을 이어주어야 한다는는 짐이 무거워서 너희를 보내고 말았다. 서른 해 넘게 내 곁에서 그림자로 살다가 간 너희인데, 꿈에서 보며 반가웠다. 다음 삶에서는 꼭 내 몸을 받아서 천천히 이곳으로 오라고 속삭인다.


20260803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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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이야기 비룡소 클래식 58
루머 고든 지음, 폴린 베인스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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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92 바라는 대로



《인형 이야기》

루머 고든

햇살과 나무꾼 옮김

비룡소

2023.9.28.



인형은 사람하고 달라요.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살아 있지만, 인형은 누군가 같이 놀아주기 전에는 정말로 살아 있는 게 아니랍니다. (65쪽)


여름에 《인형 이야기》를 장만하고서, 대구에서 시골로 오갈 적마다 꾸러미에 담고 다녔다. 으레 책상 한쪽에 두었다. 두고두고 읽은 느낌을 글로 적어 보는데, 깜빡 잊고 갈무리를 안 한 탓에 그만 글이 날아갔다. 어째 글도 갈무리를 안 해 놓고서 날린담 하고 혼잣말을 하다가 생각한다. 아마 처음부터 새로 쓰라는 뜻이지 않을까.


《인형 이야기》는 여러 ‘인형’하고 아이들이 마음을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형끼리 주고받는 마음을 마치 누가 옆에서 귀담아들은 듯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바라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짚는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인형을 가슴에 폭 안고서 스스로 바라는 말을 끝없이 속삭이곤 한다. 아이들한테 ‘인형’이란 꿈을 비는 속마음을 말로 털어놓는 알뜰한 동무라고 할 수 있다.


어느덧 크리스마스를 앞둔다. 여섯 달 동안 《인형 이야기》를 책상맡에 놓고서 들여다보았다고 깨닫는다. 나도 우리 집 세 아이도 이제는 어린이가 아니다. 우리 집 막내도 머잖아 서른 살로 다가가는 나이에 이른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에 어떤 인형을 아이들한테 베풀었는지 돌아본다. 우리 아이들은 인형을 품을 적에 무슨 속마음을 빌었을까? 나는 의성 멧골마을에서 어린 나날을 보낼 적에 인형을 구경할 수 없었는데, 내가 어릴 적에 인형을 품어 볼 수 있었다면 어떤 속마음을 빌었을까?


고등학교 다닐 적에 뒤에 앉은 아이가 보육원에서 다녔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하고 어울리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도 보육원 애들하고는 어울리지 않으려고 했다. 보육원에서 오던 두 아이는 늘 같이 다녔는데 한 아이는 또래보다 작았다.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은 어딘가 모르게 티가 났다. 못생기기도 하고 다른 나라 사람 같기도 한 겉모습이기도 하지만 늘 풀이 죽었다. 말도 적고 눈치를 살핀다. 보육원 얘기는 밖에서 못하게 하는지 거의 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남한테 기대지 않으려는 마음이 셌다. 도움받는데 익숙한 얘들과 달리, 안 받고 바라지도 기대지도 않았다. 예전에는 이 아이하고 가끔 글월을 주고받으며 지냈는데,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로 끊겼다. 이제 이 아이는 어떤 얼굴일까. 어디에서 잘 살까. 집은 어디일까. 짝은 맺었을까. 아이가 있다면 밝게 키웠겠지. 


아이들이 있어 인형이 살아간다. 바람은 씨앗 같아서, 바람으로 훅 날려 주는 말씨도 마음씨도 함부로 뿌리지는 안 되겠지.


크리스마스에 인형을 받는 오늘날 여러 아이들은 어떻게 마주할까? 인형한테도 마음이 있는 줄을, 인형도 서로 말을 주고받는 줄을, 인형이 우리 꿈을 가만히 귀담아듣고서 살며시 빛을 뿌려서 잘 이룰 수 있도록 이어 주는 줄을,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보는 아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2024.12.25.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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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최종규 지음 / 스토리닷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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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91 숲내음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최종규

스토리닷

2024.11.9.



책이름이 긴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를 다시 읽는다. 도시에 있는 책집에 들꽃내음이 있을까? 무슨 소리인가 갸웃거리며 읽다 보니, ‘들꽃내음’은 글쓴이가 일본 도쿄 책거리에 갔을 적에 겪은 일이다. 북적이는 곳도 아니고 큰길도 아닌 마을 안쪽, 골목이 이은 작은집이 잇달은 곳에 핀 들꽃을 보았고, 이 들꽃 곁에 서서 꽃내음을 맡고서 고개를 드니 바로 앞에 조그마한 책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바둑 전문책집이었고, 이 바둑 전문책집에서 뜻밖에도 우리나라 책을 여럿 만나서 놀랐다고 한다.


글쓴이는 ‘1벌 읽을 책’이 아닌 ‘적어도 100벌 되읽을 책’을 고른다고 한다. 아니, ‘100벌’을 넘어서 ‘300벌이나 1000벌 되읽을 책’이기를 바라면서 고른다고 한다. 그런데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고 해도 같은 책을 100벌이나 되읽을 수 있을까? 우리 집 셋째 아이는 만화책을 좋아해서 만화책에 나온 말을 외우면서 보고 또 보았는데, 스무 벌쯤 되읽지 않았나 싶다.


글쓴이가 출판사에서 일하며 국제도서전에서 만난 아이가 ‘읽고 또 읽어 너덜너덜한 그림책’을 가지고 온 적이 있다고 한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아주 사랑하는 그림책을 다시 사주고 또 사주었다는데, 마침 국제도서전을 한다고 해서 다시 새 그림책을 사주려고 나왔다고 한다. 그림책이 너덜너덜하도록 되읽는데, 또 사주고 다시 사주었다면, 그 아이는 1000벌을 훌쩍 넘어 3000벌도 더 읽었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이 곁에서 어머니도 아이 못지않게 같은 책을 자꾸자꾸 되읽으면서 마음으로 깊이 스미는 이야기가 있을 만하다.


어제는 예천에 다녀왔는데, 아는 언니하고 간 어느 모임자리가 꽤 시큰둥했다. 둥근 책상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서 수다를 나누는데, 나는 밖으로 살포시 빠져나왔다. 혼자 조용히 시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를 읽으면, 글쓴이도 따분한 모임자리에 어쩔 수 없이 껴야 하면,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빠져나와서 책방에서 한 시간쯤 책을 읽고서 다시 슬그머니 자리에 낀다고 적는다. 그래서 나는 늘 책을 챙겨서 다닌다. 빠져나올 수 있으면 빠져나오지만, 못 빠져나온다 싶으면 얌전히 말없이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글쓴이는 한창 책사랑으로 살다가 군대에 들어가느라 여섯 달 동안 책도 볼펜도 만질 수 없었다고 한다. 군대에서 여섯 달 만에 처음 책과 볼펜을 잡고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내 예전 일을 떠올린다. 나는 일기쓰기를 오래오래 이어오는데, 가게일을 한다며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그만 다섯 해나 일기쓰기를 못 한 적이 있다. 이동안 괴로워서 발버둥을 쳤다. 이제는 예전처럼 바쁘고 힘들게 매이지 않기에, 도서관에도 책집에도 갈 수 있고, 숨을 돌릴 수 있다.


내가 스스로 알아보려는 눈이 없다면 누가 가르쳐도 알 턱이 없다. 내가 스스로 찾아보려는 마음이 없다면 누가 알려주어도 그저 못 알아 들이거나 못 알아듣는다. (44쪽)


나는 무엇을 알아보려는 삶일까. 나는 무엇을 읽고서 배우려는 하루일까. 내가 나한테 붙인 이름인 ‘숲하루’처럼, 하루하루 숲을 배우고 알아보려는 길인가. 아직 숲을 하루하루 곁에 두지 않고서 잊는 길이지는 않은가.


목숨이 목숨을 낳는다. 목숨이 목숨을 읽는다. 목숨이 목숨을 아낀다. 목숨이 목숨으로 살아간다. (162쪽)


나무한테서 받은 종이에 이야기를 얹은 책을 읽고 쓴다. (246쪽)


글쓴이는 두 아이를 손수 돌보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시골에서 살림을 짓는 글쓴이 곁에서 아이들은 시골빛을 머금고 살림빛을 나란히 배우겠지. 내가 다가가는 곳에 들꽃내음이 있는지 돌아본다. 내가 찾아가는 작은책집에서 어떤 책을 손에 쥐는지 돌아본다. 숲내음을 맡으면서, 숲내음을 글로 쓰면서, 숲내음으로 살아가려고 붙인 ‘숲하루’라는 내 이름을 사랑하는 길을 새삼스레 돌아본다.




2024.12.13.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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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디 에센셜 The essential 1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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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90 흉내



《한강》

한강

문학동네

2023.6.1.



올해 늦가을에 제주도에 다녀오면서 《한강》을 장만했다. 제주에서 보름살기를 하는 동안 제주 마을책집을 돌아보았고, 이때에 눈여겨보았다. 《한강》이라는 책에는 한강 씨가 쓴 소설과 시와 산문을 싣는다. 그런데 〈희랍어 시간〉을 읽으며 자꾸 흐름이 끊긴다.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 이야기가 너무 길다. 뭔가 낱낱이 그리는 듯하지만 오히려 말만 너무 긴 듯해서 답답하다. 어제를 돌아보며 오늘을 빗대는 듯하지만 잘 모르겠다.


〈종이 피아노〉로 넘어간다. 어릴 적에 피아노를 하고 싶은데 집안살림이 안 되어서 종이 피아노를 놓고서 치던 이야기를 그린다. 그런데 한강 씨 아버지는 소설가이고 집에 책이 많았다. 피아노를 만질 수 없어서 종이 피아노를 눌렀다지만, 책이 잔뜩 있던 한강 씨네 살림이 오히려 부럽다. 나는 어릴 적에 교과서를 뺀 다른 책을 만지지도 보지도 못 했다.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내가 배우고 싶으면 배워 보라고 피아노학원이라든지 다른 어느 곳도 보낼 수 없었다. 아마 보내려는 엄두조차 못 내었으리라. 의성 멧골마을에 무슨 학원이 있겠으며 무슨 책집이 있겠는가.


나는 세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수 있었다. 의성을 떠나 대구에서 살았으니, 도시에는 학원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쉽게 보낼 수 있다. 나는 내가 못 배웠다는 마음에 아이들을 학원에 밀어대듯 보냈다. 그러나 거꾸로 우리 아이들을 괴롭힌 셈이더라. 내가 못 배웠으면 내가 다니면 그만 아닌가.


한강 씨는 스웨덴으로 날아가서 노벨상을 받는다. 스웨덴에서 했다는 강연을 아침에 들어 보았다. 한강 씨가 말을 마치자마자 손뼉소리가 우렁차다. 손뼉소리에, 멋쩍어하며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한강 씨 얼굴에, 나도 모르게 북받친다. 요즘 온나라는 계엄령 탓에 시끄러운데, 저 먼 나라에서는 글꽃으로 잔치이네.


〈기억의 바깥〉을 읽고 〈출간 후에〉를 읽는다. 토막토막 짧은 글이다. 한강 씨는 날마다 시집과 소설을 한 권씩 읽는다고 한다. 아마 아침이든 저녁이든 어느 때에 이르면 꾸준히 글을 쓸 테지. 나도 날마다 책을 한두 권씩 읽고, 나도 날마다 어느 때에 꼬박꼬박 글을 쓰면 내 눈길과 글길이 나아갈까.


나는 작가 흉내를 내는지 모른다. 내가 몇 살을 살는지 모르지만, 나무 한 그루보다 오래 못 살 수 있는데, 나보다 오래오래 살아갈 나무를 섣불리 베어낼 일을 벌어는지 모른다.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묶는다면 어느 곳에서 내 책을 보듬어 줄까. 앞으로 100년 뒤에도 내가 쓴 글을 묶은 책을 고이 둘 곳은 몇 곳이나 있을까. 




2024.12.13.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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