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어제

고향 소꿉친구가 죽었다.

자다가 죽었단다.

소꿉친구네 집에서는 이틀 동안 몰랐단다.

소꿉친구가 지내는 방문을 열어 보지도 않았단다.


부검을 마치고 장례식을 한단다.

화장을 해서 고향 산골로 간단다.


어릴적 동무들이 모처럼 모였다.

늦도록 함께 있었다.

친구 하나는 새 구두를 신고 왔다는데

집으로 가려니 구두가 사라졌단다.

아침에 구두 한 켤레가 남았다는데

친구 것이 아니라 다른 구두란다.


내 신은 그대로 있다.

나도 아직 여기 있다.





2026.10.22. 숲하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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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논에서 고요히

[푸른하루 10] 왜가리 



  들녘에 벼가 누렇게 익어갑니다. 오월에는 모가 물에 잠겨 살아날까 싶더니, 어느새 진흙을 잡고 무럭무럭 자라고는 벼꽃이 여물어 고개를 숙입니다. 이제는 논바닥에 물이 없습니다. 손으로 논바닥을 눌러 봅니다. 말랑말랑합니다. 밟으면 빨려들거나 쭉 미끄러질 듯하지만, 꾸덕꾸덕 마릅니다. 볏잎과 논바닥은 가을볕에 마르고, 벼는 가을볕에 익습니다.


  논삶이를 할 무렵부터 논을 찾아오는 새가 있습니다. 깃이 온통 하얀 새가 있고, 얼룩이 진 듯 무늬가 있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눈이 덜 녹은 겨울에도 빈논에 앉곤 합니다. 으레 혼자 있습니다. 봄을 지나고 여름이 와서 논에 물을 댈 때부터는 아주 논에 삽니다.


  논에 모를 옮겨심는 일이며, 모가 자라는 날이며, 이제 벼가 익고 논바닥이 말라가는 모습이며, 하얀새와 왜가리는 고스란히 지켜봅니다. 논에 농약을 뿌려도 아직 개구리는 살아갑니다. 하얀새와 왜가리는 논에서 살며 개구리를 잡습니다. 냇가나 물가에서 살아갈 새일 텐데, 이 멧골에도 논이 있다 보니, 하얀새와 왜가리는 이곳까지 찾아오는구나 싶습니다.


  새여름에 파릇하게 한 뼘쯤 자란 무논에 하얀새나 왜가리가 내려앉거나 선 모습을 보면, 꼭 한 폭 그림과 같습니다. 겨울에도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한결같이 그림으로 서는 새를 지켜봅니다. 새는 논을 지켜보고, 나는 새를 지켜봅니다.


  하얀새와 왜가리는 낚시꾼 같습니다. 오래 기다리고 서고 걷다가 해질녘에서야 훨훨 날아서 저희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얀새와 왜가리는 고요히 기다리는 듯합니다. 문득문득 보아도, 창밖으로 한참 바라보아도, 늘 몸짓이 반듯합니다. 바닥이 온통 흙빛인 논에서 살아가더라도 깃털은 늘 하얗습니다. 긴다리로 사뿐히 다니는 걸음걸이는 멋있기까지 합니다.


  함께 다니는 모습도 드물게 보지만, 어쩐지 하얀새와 왜가리는 혼자 다니는 듯합니다. 하나가 다니면 하나는 둥지를 지킬까요? 하나가 개구리를 사냥하고서 둥지로 돌아가면, 다른 하나가 개구리를 찾으러 논으로 날아올까요?


  나는 오며가며 하얀새와 왜가리를 지켜보는데, 마을에 계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새를 못 느끼는 듯합니다. 아니, 새가 무슨 이름인지 모를 수 있습니다. 논일을 하며 으레 만났을 테지만, 무슨 새이름인지 모를 수 있어요.


  새를 보려고 하면 새가 언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논을 짓고 논을 돌보면 벼에 언제 꽃이 피고, 벼를 언제 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살며 자가용을 몰면, 고속도로 나들목을 하나하나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 많지만,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 많기에, 더 알고 싶습니다. 하얀새와 왜가리가 혼자 다니는 듯한 뜻도 알고 싶고, 겨울에는 어떻게 추위를 견디는지 알고 싶습니다. 개구리가 다 겨울잠에 들면 겨우내 어떻게 지내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말없이 논에 고요히 선 듯한 새입니다. 한참 지켜보아도 우는 소리 하나 없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서면서도 말 한 마디가 없는 새인데, 조용히 논과 하나가 되는 새인데, 나는 어디에서 무엇과 살아가는지, 무슨 말을 떠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를 잡으려고 이렇게 오래 말없이 서서 기다리는 새인데, 나는 글 하나가 잘 나오지 않는 날에는 너무 투정을 부리는 듯합니다.



2026.10.18.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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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에



올해 한가위에는

세 아이 모두 못 본다


막내는 올해 대학원 졸업반이라지

일자리를 찾느라 바쁘다고 한다


작은딸은 아기 때문에 힘들다지

아기를 차에 태우고서 멀리 못 간다


큰딸은 많이 바쁜 듯하다

바쁘면 느긋이 쉬어야 낫다


세 아이가 북적거리던 일은 옛날 같다

조용조용 지내면서 나들이라도 하자




20261013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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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10-15 0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하루님 쓰신 시 맞나요?

숲하루 2026-10-15 08:12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쓴 시가 맞아요.
저는 시집도 낸 적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hnine 님
 

쇳소리 아닌 새소리

[푸른하루 9] 꿩



  귀뚜라미 울음이 여리게 퍼지는 사이로 앓는 소리처럼 쇳소리가 들립니다. 창문을 열고 소리나는 벼랑을 훑어봅니다. 이쪽이 아닙니다. 소리는 건너에서 들립니다. 건너숲에서 짧게 한마디로 울고 울며 또 웁니다. 누구일까. 무슨 뜻일까. 아침에 아이들을 모아서 함께 밥을 먹는가요. 이제 쇳소리는 사라지고 새소리만 맑게 들려옵니다.


  지난봄에 마당에 둘러앉아 떡을 먹는데, 이때에도 건너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랑잎이 부스럭거리고 후다닥 떠밀리듯 내려오는 소리가 크더군요. 소리가 나는 밭둑으로 얼른 가 보았습니다. 그때는 감자싹이 한창 오르던 무렵입니다. 밭고랑에 고개를 숙이고 쪼그려앉습니다. 이쪽부터 저쪽까지 고랑을 살핍니다. 한 고랑 두 고랑 세 고랑 네 고랑까지 살피자, 끝에 누가 웅크렸군요. 그쪽은 머리를 숨겼다고 다 숨은 줄 여기는 듯하지만, 나한테는 다 보입니다.


  살짝 웃었습니다. 꽤 크게 울리는 소리라서 큰짐승인가 싶어 처음에는 덜컥 무서웠습니다. 그렇지만 이 멧골에 큰짐승은 없을 텐데 싶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까투리입니다. 조금씩 다가가는데, 내 발소리에 놀랐는지 어느새 솟아오릅니다. 날갯짓하는 까투리 소리에 외려 더 놀랐습니다. 힘차게 쏜살같이 날아오른 까투리는 소나무가 있는 숲 어디쯤에 내려앉은 듯합니다. 


  쇳소리를 닮은 듯한 꿩울음인데, 겨울에도 곧잘 듣습니다. 어느 때에는 꼭 앓는 소리 같습니다. 어디가 아프려나, 숲에서 아프면 어떡하려나, 한참 생각해 봅니다. 설마 겨울에 알을 낳지는 않을 테지만, 아무쪼록 그만 울고 잘 지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철마다 어떤 소리가 이 숲에 흐르는지 돌아봅니다. 봄이면 새소리가 노랫가락마냥 멧골에 아름다이 울려요. 이다음에는 개구리가 멧골이 떠나가도록 울고요. 뻐꾸기가 이어서 울어요. 그리고 꿩이 내 때가 되었다는 듯이 아침마다 쇳소리마냥 꽁꽁 껑껑 크게 소리내며 모습도 드러냅니다. 꿩은 언제나 혼자 우는 듯해요. 


  어릴때에는 꿩깃을 주워서 글씨를 적으며 놀았어요. 장끼 깃털은 아주 예쁘거든요. 의성 멧골에서는 장끼도 까투리도 곧잘 만났는데, 안동 멧골에서는 좀처럼 장끼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렁찬 목소리는 장끼 소리가 틀림없습니다. 장끼는 우리집 앞에 사는 듯합니다. 그저 우리 눈에 띄지 않게 살며시 다니며 까투리를 부르는 듯합니다. 


  나는 쇳소리라고 느끼지만, 꿩은 ‘쇠’가 아니라고, 서로 사랑으로 주고받는 소리라고 말할 테지요. 그래요, 새는 늘 ‘새소리’입니다. ‘쇠소리’가 아니지요. 새는 숲에 우거진 나무가 심심하지 말라면서 이 나무 저 나무로 찾아갑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우리 같은 사람한테도 철따라 ‘새노래’를 들려줍니다. 새가 들려주니 새로운 노래입니다.


  쇳소리라기보다 그냥 새소리인 꿩을 다시 곱씹습니다. 어린날 우리집에서 가까워 곧잘 놀러다닌 금성산 숲자락이 떠오릅니다. 그곳에 있던 옹달샘도 떠오릅니다. 안개가 끼면 뿌옇게 잠기는 멧골이었는데, 엄마아빠 밭일을 도우러 멧밭을 걸어다니던 일이 떠오릅니다.


  예나 이제나 멧골이 마을을 먹여살립니다. 우리는 멧골에서 나물도 열매도 얻고, 땅을 일구어 논도 밭도 짓습니다. 공장이 없어도 우리가 손수 지어서 누리고 나눕니다. 땔감도 베푸는 멧숲이고, 쌀도 콩도 고구마도 딸기도 머루도 고루 베푸는 멧숲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멧숲 어디에서나 토끼가 흔했지만, 이 시골에 고양이가 늘면서 토끼는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멧골은 겨울이 더 일찍 옵니다. 곧 서리가 내릴 텐데, 꿩은 겨우내 어떻게 지내려나요. 부디 겨우내 포근히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쇳소리라고 여기지 말고, 우리 밭자락 귀퉁이에라도, 멧짐승과 멧새가 겨우살이를 할 밥을 조금은 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에는 까치밥을, 밭에는 새밥을, 조금조금 두려고 합니다. 오래오래 우렁찬 새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2026.10.12.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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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 작은몸, 큰몸 작은손

[푸른하루 8] 두더지



  밭둑에 대추나무 세 그루가 있습니다. 지난해는 가지가 늘어지게 대추가 열렸습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는 조금 적게 열립니다. 벌레먹은 떨어진 대추가 더 많습니다. 사다리를 놓고서 대추를 따다가 구멍에 빠질 뻔합니다. 나무 언저리에 난 구멍을 메우자고 여기면서도 아직 손길이 미치지 못 합니다. 이동안 구멍이 물길처럼 바뀌고,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밭과 길을 갈라놓을 듯합니다. 


  지난여름 끝에 큰비가 왔습니다. 어마어마하구나 싶은 빗물이 우리집 마당을 휘돌아서 흘러갔습니다. 그때 뽕나무 둘레 흙을 쓸면서 구멍이 났고, 밭둑으로 가는 길이 막혔습니다. 손바닥만 한 부추밭 흙도 빗물에 휩쓸려 갔습니다.


  대추는 그만 따고서 구멍을 들여다봅니다. 구멍이 난 자리는 처음에는 조그마했습니다. 두더지가 판 구멍 같았습니다. 뱀도 나온 자리입니다. 이러다 큰비가 오면서 두더지길을 뚫은 듯싶고, 우리 밭이 깊이 패기까지 했습니다. 그나저나 이 구멍을 메워야 할 텐데, 아직 손을 못 대었으니, 또 큰비가 오면 이 구멍은 더 패겠지요.


  우리집 꽃밭에 두더지가 곧잘 지나가는 듯합니다. 여느때는 멀쩡한 밭흙인데, 문득 보면 살이 부슬부슬 갈라지듯 흙이 일어나곤 합니다. 처음에는 꽃밭을 지나갈 적마다 발로 땅을 밟아서 다졌습니다. 그렇지만 꽃밭에 새로 구멍이 생기고 흙이 일어납니다. 두더지가 그만 지나가기를 바라며 젓가락을 꽂아 보기도 하지만, 두더지는 젓가락쯤 아랑곳하지 않는 듯합니다.


  어떡할까 한참 헤아리다가 두더지길을 안 밟기로, 젓가락도 안 꽂기로 합니다. 그냥 나는 나대로 두더지는 두더지대로 다니면 되려나 어림합니다. 두더지가 늘 다니는 길로만 다니면서, 맨드라미 뿌리를 안 건드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저 지나가기만 하고 꽃은 안 건드리기를 바라고요.


  두더지를 보면 손이 참 큽니다. 두더지 손(앞발)을 보면 땅을 참 잘 파겠구나 싶습니다. 몸은 작아도 손이 야무집니다. 땅밖에서, 땅을 발바닥으로 디디면서 살아가는 나는, 사람은, 우리는 손이 두더지처럼 크지는 않습니다. 작은 몸에 커다란 손인 두더지이고, 커다란 몸에 자그마한 손인 사람입니다. 두더지는 땅밑에서 조용히 굴을 파면서 고요히 지냅니다. 사람은 땅밖에서 손으로 뚝딱뚝딱 만지고 지으면서 시끌벅적하게 삽니다.


  두더지 이야기를 남깁니다만, 나는 두더지가 썩 반갑지 않습니다. 밭을 할퀴듯 헤집고, 남새를 갉으니까요. 꽃밭도 어지럽히는 듯하고, 아무래도 안 반갑습니다. 그러나 두더지 눈으로 보자면, 조용하던 멧골에 난데없이 이것저것 때려짓고 올려세우고 시끄러운 사람이 못마땅할 만합니다. 제발 조용히 살자면서 슬그머니 흙을 포슬포슬 뒤집어서 티를 낼는지 몰라요. 좀만 조용하면 안 되겠느냐고, 좀만 파헤치면 안 되겠느냐고, 좀만 같이 살면 안 되겠느냐면서 말없이 흙으로 몸짓말을 할는지 몰라요.


  사람은 이제 거의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닙니다. 어른이 되면 웬만한 사람들은 커다란 쇳덩이인 자가용을 굴리고, 트럭을 더 굴린다든지, 포크레인도 갖춥니다. 시골이라면 경운기에 트랙터에 콤바인처럼 커다랗고 무겁고 시끄러운 농기계를 갖추기도 합니다.


  두더지는 오직 맨손으로 땅을 조금 팝니다. 사람은 갖은 큰쇳덩이로 온갖 곳을 파헤치고 밀고 무너뜨립니다. 우리는 공장이나 체육관이나 아파트나 고속도로를 내면서 “두더지도 같이 지낼 땅뙈기 조금” 남겨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추를 따다가 한참 딴생각을 했습니다. 소쿠리를 챙겨서 집으로 갑니다. 올해 대추알은 몇 건사하지 못 하지만, 벌레먹어서 땅에 떨어진 대추쯤이면, 두더지도 밤에 살그머니 나와서 맛을 보려나요. 어쩐지 미안해서 두더지길 귀퉁이에 벌레먹은 대추를 몇 내려놓습니다. 




2026.10.9. 숲하루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기다리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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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10-0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더지와 사람이
살갑게 사귈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을과 숲과 나라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숲하루 2026-10-09 13:24   좋아요 0 | URL
두더지가 땅을 파서 말썽꾸러기라 여겼는데
되려 사람이 기계를 부리며 땅을 시끄럽게 한 듯해요.
두더지가 큰 손으로 말하고 있는 줄도 새삼 느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