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거 그리고 죽어 1
토요다 미노루 지음, 이은주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4월
평점 :
작게 삶으로 88 즐거운 일
《이거 그리고 죽어 1》
토요다 미노루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4.4.23
지난달 시골에 머물 때 몇 권 들고 간 책 가운데 《이거 그리고 죽어 1》는 쉽게 읽었다. 만화라서 쉽게 읽었을까.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면서 짬이 없거나 지칠 적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모아서 읽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작문’ 시간이 참 따분했다. 그렇다고 그때에 만화를 읽지도 않았다.
《이거 그리고 죽어 1》를 보면, 담임 교사가 아이한테 “만화 같은 건 그 어디에도 도움이 안 돼요!(22쪽)” 하고 말한다. 아마 나는 고등학교 때에 이렇게 여겼는지 모른다. 그때 어른들도 만화는 삶에 이바지하지 않는다고 여겼을 테고.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달랐다. 막내는 만화책을 좋아했다. 읽고 또 읽고 외울 만큼 읽고 혼자 까르르 웃었다. 막내는 만화를 읽으면서 누나가 배우는 눈높이를 조금씩 알아갔다. 그래서 “만화는 거짓이 아니다(24쪽)” 하고 나오는 말에 고개를 끄떡끄떡한다.
가만히 보면 이 만화책은 ‘만화’를 말하는 줄거리인데, ‘만화’를 ‘시’나 ‘글’로 바꾸어서 읽을 만하다. 사람들은, 또 이 나라는, ‘만화’뿐 아니라 ‘시’나 ‘글(문학)’도 삶에 이바지하지 못 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작게 삶으로 나오는 책을 북돋우는 길은 없어 보인다. 방위산업이나 첨단과학이나 대규모관광단지나 대형발전소 같은 데에만 마음을 쓴다. 아이들도, 나 같은 어른들도, 틈을 내어 느긋이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삶을 돌아볼 겨를 같은 데에는 마음을 못 쓴다.
‘만화’를 좋아할 뿐 아니라 사랑하는 아이들은 ‘테즈카 오사무 선생 연역법 작법(158쪽)’을 배우기도 한다. 미리 죽 틀이나 금을 세워 놓지 않은 채, 꼬리에 꼬리를 물듯 차근차근 돌고돌면 어느새 이야기 한복판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한다. 시나 글도 이렇게 꼬리를 물듯 차근차근 돌고돌아서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다.
시를 배우고 글을 처음 써 볼 적에 으레 ‘필사(베껴쓰기)’를 시키더라. 잘 쓴 글을 베껴 보라고 한다. 그런데 잘 쓴 글을 베끼는(필사) 일을 자꾸 하다 보면, 내 글을 잊고 내 삶도 잊은 채, 잘 쓴 글을 흉내내거나 따라하는 틀에 갇히지 않을까? ‘창작(짓기)’이란 내 손으로 내 삶을 옮기거나 담는 길일 텐데, ‘필사(베끼기)’에 길들면, ‘필사 같은 창작’, 그러니까 흉내내는 겉멋만 나온다고 느낀다.
내가 시나 글을 쓸 깜냥이 안 되니까, 잘 쓴 시나 글을 베끼면서 배워야 하는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잘 쓴 시나 글을 자꾸 보고 외우고 베끼다 보면, 내 삶이 초라해 보이고 내 시와 글도 나란히 초라해 보인다고 느낀다. 이러면서 요 몇 달 동안 책도 제대로 읽지 못 했고, 책글도 아예 못 썼다. 시도 도무지 못 쓰겠더라.
못 쓴 시나 글이어도 내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고 본다. 《이거 그리고 죽어 1》에 나오는 아이도 그림을 되게 못 그린다. 그렇지만 이 아이는 그림만 못 그릴 뿐,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모두를 웃긴다. 이야기에 마음이 담겨서 모두를 울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도 못 쓰는 시나 글을 창피하게 여기지 말아야겠다. 잘 쓴 글을 흉내내는 필사는 멈춰야겠다. 남이 내 글을 안 좋게 보면 어떡하나 하고 눈치나 걱정을 내려놓아야겠다.
《이거 그리고 죽어》를 그린 분은, 그야말로 떨어지고 또 떨어진 ‘퇴짜 맞은’ 이야기를 엮었다고 한다. 만화책에 나오는 담임 교사는 학생한테 만화가인 줄 숨기며 스스로 움츠린다. 그렇지만 담임으로 맡은 학생이 담임 교사 만화를 사랑한다. 학생은 담임 교사가 그 만화를 그린 사람인 줄 아직 모르지만, 담임 교사는 학생이 만화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서 조금씩 마음이 움직인다.
책을 써내고 나면, 잘 팔리거나 이름을 알리기를 바라면서 꿈에 부푼다. 그나마 꿈꿀 때에는 힘을 조금 얻는다. 이러다가 막상 부딪쳐서 깨지면 꿈도 사라진다. 요즘 나는 마음이 바닥을 친다. 심부름을 하기 싫은 아이처럼 글쓰기도 그만두고 싶고, 글을 쓰는 길도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이 문득문득 든다. 그래서 스스로 되물어 본다. 나는 뭘 하고 싶은가? 나는 뭘 쓰고 싶은가? 나는 글로 무슨 삶을 남기고 싶은가?
날마다 들여다보는 누리길(SNS)에는 온통 책과 작가를 알리는 사진이 넘친다. 그런데 책과 작가를 알리는 듯하지만, 제대로 작품을 바라보거나 읽거나 적는 글은 아닌 듯하다. 좀 아닌데 싶은 책조차 방방 띄우는 사진이 넘쳐난다.
이제 가을로 접어들고, 또 여러 문화재단에서 공모를 낼 텐데, 내 글을 다시 보내려고 생각해 본다. 뽑힐는지 안 뽑힐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꼭 보내어서 심사를 기다리고 싶다. 이곳에서는 나를 알아보려 하지 않을 수 있으니, 저곳으로 글을 보낼 수 있다. 이 만화책에서도 말하지 않는가. 떨어지고 또 떨어져도 다시 그리고 또 그려서 보낸다고. 떨어졌으니 주눅이 들거나 울기보다는, 붙을 때까지 다시 그리고 또 그려서, “이거 그리고 죽”도록 그린다고.
2024.09.23. 숲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