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가을은 온통 노래

[푸른하루 6] 귀뚜라미



  해가 등성이를 넘어가자 멧그림자가 골목에 내려옵니다. 새아침처럼 귀뚜라미가 울고 나뭇잎이 바람에 사락사락 소리를 냅니다. 가을을 몰고 오는 바람이 나뭇잎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흔들거리는 나뭇잎이 물결소리를 냅니다. 바람소리 사이로 풀벌레가 울고요. 풀벌레노래를 듣는데 톡톡 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내가 글을 쓰려고 글판을 톡톡 치는 소리와 다릅니다. 달콤하게 부르는 노랫소리와 다릅니다. 절집에는 바람새가 바람에 따라서 울리는데, 이런 소리와 다릅니다. 풀밭에서 흐르는 소리는 참으로 맑고 곱다고, 머잖아 예순 살이 될 나이인데, 새삼스레 느끼고 생각합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살짝 멈춥니다. 서로 맞물리면서 내는 풀벌레 소리가 나는 창을 열어 봅니다. 봄에 심어서 꽃을 다 피우고서 시든 꽃이 있습니다. 흙으로 돌아가라며 줄기를 베어서 눕혔지요. 이 언저리쯤, 또는 곧 푸짐하게 올라올 산국에 돋아날 자리께, 아니면 이 모든 곳에다가 우리집을 둘러싼 멧자락 모든 곳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풀벌레는 소리로만 만나요. 풀벌레는 어디에 숨어서 우는지 시골에서도 얼굴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가까이에서 듣고 싶어서, 가까이에서 얼굴 좀 보고 싶어서 다가가거나 지나가면 어느새 울음을 그쳐요.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는 모두 작은 풀벌레인 듯합니다. 풀벌레는 노래를 잘 해야 사랑을 받나 봅니다. 나는 노래를 썩 못 하는데, 나처럼 노래를 못 하는 풀벌레는 없을 듯합니다.


  푸른빛 사마귀와 나무빛 사마귀가 마당에 나옵니다. 사마귀도 노래하려나? 잘 모르겠습니다. 사마귀도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에 춤을 출 듯합니다. 


  새가 지저귑니다. 휘파람소리에 풀피리소리를 내며 풀벌레노래에 섞입니다. 소리는 줄을 서서 흐릅니다. 겨울끝에 따사로이 볕을 쬐며 들판을 누비고 전봇대에 앉아 떼로 다니는 참새소리에 꼬리주황새에 딱새가 울고 나면, 이제 뻐꾸기가 울어요. 땅에서는 개구리떼가 울고 한여름에 매미가 목터지게 울고, 어느덧 풀벌레가 울 때입니다. 가을은 작은울음이 꽃처럼 피어납니다.  


  풀이 잘리고 또 잘려도 자라는 풀밭에는 메뚜기도 풀벌레도 매미도 곱게 울음빛을 터트립니다. 새는 귀뚜라미 소리가 어떻게 들릴까요? 나도 새가 되어 귀뚜라미 곁을 날고 싶습니다.


  첫가을인 구월은 봄여름가을겨울이 함께 깃든 듯합니다. 봄은 눈으로 보여주고, 여름은 코로, 가을은 귀로요. 한 번 보면 잊지 않는다는 말이 있죠. 눈빛이 그만큼 세니까요. 귀는 더 또렷해요. 울리니까요. 소리는 그림을 그리라고 해요. 고요히 귓가를 맴돌아요.  


  살갑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조용한 하늘에 대고 부르는 소리입니다. 메뚜기는 무르익는 벼논을 마당처럼 뛰어 놀아요. 귀뚜라미는 앞날개를 비비며 노래를 부르고, 메뚜기는 뒷다리를 앞날개에 대고 노래를 부른다지요. 뒷산으로 이은 벼랑 언저리 풀밭에서 귀뚜라미가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느새 우리집 가까이 찾아왔나 봅니다. 


  짙은 보라빛 칡꽃이 핍니다. 귀뚜라미는 칡꽃한테 들려주려고 우는 듯합니다. 풀보다 나뭇잎이 많은 벼랑이 그늘도 있어 아늑한가 봅니다. 사람도 귀뚜라미처럼 노래를 해요. 노래는 마음을 달래주고요 하늘로 가장 높이 올라가는 소리를 폅니다. 봄부터 끊임없이 노래가 흘러나와요.  


  귀뚜라미는 귀가 무릎에 있다고 합니다. 메뚜기는 귀가 배에 있대요. 내 몸에 귀가 무릎에 있다고 헤아려 봅니다. 내 귀가 배에 있다고 헤아려 봅니다. 나는 이러다가는 귀는 늘 깨질 듯합니다. 반쯤 엎드러 자는 동안 귀는 납짝해질 듯합니다. 웃음이 납니다. 저마다 다른 자리에 귀가 있고 소리를 냅니다. 철따라 나왔다가 떠나는 숨결은, 알고 보면 뜨겁습니다. 그래서 귓가에 맴돕니다. 



2026.9.17.


'생물다양성 증가'의 함정, 흔한 종 조용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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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강하면 좋은 거 아니었나? 태양광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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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사이 나타난 버섯, 정말 하루 만에 자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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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속 또 다른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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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동안 썩지 않은 ‘펭귄 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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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09-17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이라는 철은
그야말로
노래가 노래로 잇고 피어나는 길목이지 싶습니다.

푸른노래를 들으면서
사람노래도 하나하나
맞아들일 만하구나 싶고요.
 

집에 들어오려는 너

[푸른 하루5] 푸른개구리



  나는 푸른개구리하고 잡니다. 벌하고도 잡니다. 물꼭지를 틀려고 보니 손잡이에 푸른개구리가 앉았습니다. “응, 거기에 있어도 돼.” 혼잣말을 하지만 혼자말이 아닙니다. 푸른개구리는 이 말을 알아듣고는 눈을 껌뻑입니다.


  푸른개구리가 앉은 코앞을 지나면서 팔을 뻗쳐도 가만히 있습니다. 빗자루를 들고 나와도 가만히 있습니다. 벌써 폴짝 뛰어서 다른 곳으로 갔을까 싶지만, 아직 여기에 가만히 있습니다. 딸기나무 잎에 사는 푸른개구리는 어디 숨어서 나를 보나 봅니다. 어디 가나 목소리를 듣나 봅니다. 


  풀밭에는 얼룩개구리가 얼굴을 숨깁니다. 나뭇잎에는 푸른개구리가 이파리에 풀빛 몸을 숨겨요. 숨어도 가끔 얼굴이 드러납니다. 잿빛몸을 입은 푸른개구리도 나옵니다. 등푸른 푸른개구리도 나옵니다. 어두워서 살짝 불을 켤 때라든지, 삐리릭 소리를 내며 방문을 열 때에도 이 여러 개구리는 어디서 나를 지켜볼는지 모릅니다. 푸른개구리가 우리 집에 들어오고 싶은가 봅니다. 내가 며칠 집을 비우면 몰래 들어올는지 모릅니다. 


  이따금 집안에서 마주치는 푸른개구리를 밖으로 내보냅니다. 어디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한 마리를 내보내면 또 한 마리가 어느새 들어와요. 자다가 얼굴이 축축할 때가 있어요. 푸른개구리는 벽을 척척 타고서 내려오다가 내 얼굴에 떨어졌나 봅니다. “넌 여기서 살 수 없어.” 하고 속삭이면서 문밖에 내다놓습니다. 여름 볕에 달아오른 집이기에, 사람처럼 옷을 입지 않은 촉촉한 푸른개구리 같은 몸은 바싹 마르기 쉽습니다.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 하면, 푸른개구리는 우리 집안 한구석에서 숨이 막혀 다리를 펴지도 뛰지도 못한 채 바싹 말라버립니다.


  하루는 집안에서 자꾸만 흙 내려오는 소리가 났습니다. 벼랑에서 흙이 떨어지는 소리인 줄 여겼습니다. 그런데 푸른개구리가 바깥벽으로 폴짝 뛰어서 붙을 적에 나는 소리였습니다. 착 달라붙는 발이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꽉 잡으며 긁는 소리예요. 이제 이런 소리가 나도 문을 열지 않습니다. 거꾸로 세워둔 빗자루에 저녁이면 푸른개구리가 앉아요. 집을 갖고 싶은가 봐요.


  종이로 환풍기를 덮습니다. 이 틈으로 자그마한 푸른개구리 한 마리가 들어온 적이 있어요. 참으로 작은 푸른개구리였습니다. 푸른개구리는 울 적에 오리를 닮은 소리를 냅니다. 꽥꽥 울어요. 작은 몸에서 어떻게 큰소리가 나올까요. 큰소리는 작은 몸이라서 내고, 나중에 몸이 크면 거꾸로 작게 소리로 낼까요.


  풀밭에 있어야 할 푸른개구리한테 얘기해요. “사람 사는 집으로 들어오면 너희 몸이 말라버려. 너희는 숲에 있어야 몸이 촉촉하지. 너희 숲으로 돌아가.”


  이제 밤이면 확 춥습니다. 밤바람도 찹니다. 불을 때지 않고서 밤을 보내면 선뜻 놀라서 깹니다. 한밤에 깨서 두리번거리는데 어느새 들어와서 벽에 붙은 푸른개구리를 또 봅니다.


  비가 오려고 하면 산에서 푸른개구리가 웁니다. 한낮에 집안에 앉아도 어느 틈으로 들어오는지 창가에 있더니 이젠 새끼 귀뚜라미까지 들어옵니다. 푸른개구리는 높은 곳을 좋아합니다. 물가를 찾을 줄 알고요. 나뭇잎에 살면서 이슬을 받아먹고 살아요. 나무를 타고 잎에 몸을 숨겨요. 포도나무 꼭대기에 살다가 단풍나무로 옮겨살다가, 얼룩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모습을 드러내기도 해요. 작은이웃을 바라보며 다시 속삭입니다. “집안까지는 들어오지 마. 어서 가. 너는 풀밭에서 푸르게 살아.” 




2026.9.11. 숲하루


벼 잎 잡고 구애의 울음 ‘수원청개구리’…논 줄어 멸종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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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만 바꿔도 도시가 식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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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생태계 보전, 산림에서 연안까지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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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외교장관 "히말라야 쓰나미...탄소 다배출국이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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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선 사라지고 무주에선 살아난다...엇갈린 반딧불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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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포장재 비용, 시민 대신 기업...네덜란드의 역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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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나무를 심는 손님

[푸른하루 4] 담비



  아침에 일어나니 강아지 한 마리가 안 보입니다. 측백나무 옆으로 난 비탈에서 내려오지 못하며 다리를 떱니다. 굵은 나무를 놓아 줍니다. 이 나무를 밟으며 내려오라고 하는데 아직 발을 다리를 떱니다. 다른 강아지가 나무다리를 오르내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 강아지가 뒤따릅니다.


  우리 집에서 담비를 자주 봅니다. 가만히 살피면, 측백나무 오솔길을 건너고 고구마밭을 지나서 호두나무를 타더군요. 오가다가 문득 멈칫하더니 어느새 재빨리 숲으로 사라집니다.


  담비는 호두알도 따먹는 듯합니다. 가까이 사는 밭임자는 열 해 넘도록 후두알을 건사하지 못 했다고 합니다. 우리 집에 강아지를 둘 들인 뒤로는 담비가 좀처럼 호두나무 쪽으로 다가오지 못 한다고 느낍니다.


  담비는 아침 일찍 다닙니다. 담비를 본 강아지 한 마리는 짖고, 다른 강아지는 고구마싹을 풀쩍풀쩍 뛰어넘어서 호두나무 코밑으로 갑니다. 담비는 꼼짝을 않는 듯하다가 강아지가 얼핏 등을 돌린 사이에 길을 건너서 산으로 들어갑니다. 강아지는 사라진 담비 쪽을 보며 내내 짖어댑니다. 살짝 나타난 담비는 참나무를 타고 올라서 소나무로 건너더니 휙 사라집니다.


  담비는 벼랑을 잘 탑니다. 집에 있다가 부스럭하는 가랑잎 밟는 소리가 나면 ‘아, 왔나?’ 싶어서 창문 옆에 숨어서 지켜봅니다. 담비는 벼랑을 오가며 나무를 탑니다. 이러다가 벼랑 가운데짬에서 강아지 눈에 띄고 맙니다. 강아지는 그길로 벼랑을 뛰어오릅니다. 가랑잎에 미끄러지고 더는 못 올라갈 무렵, 담비는 이미 벼랑에 걸친 나무 둔치에 앉아서 강아지를 내러다봅니다. 강아지는 올라오지 못하는 줄 아는 듯합니다. 


  강아지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면 담비를 쫓겠다며 덤빕니다. 아마 강아지는 짖어댈 수는 있어도 잡지는 못 할 텐데, 담비는 눈에 잘 띄는 검은털로 날렵하게 숲을 날듯 달리며 살아갑니다.


  담비가 따먹어서 호두알을 못 누린다고 하지만, 호두를 따먹는 담비이기에 이 멧숲에 호두나무를 심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토리를 따먹으면 참나무를 심을 테지요. 나무열매를 따먹는 멧짐승은 멧숲 곳곳에 열매나무를 한 그루씩 심으면서 살아갑니다.


  어느 날은 뒤에서 누가 보는구나 싶어서 돌아보니, 담비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나를 빤히 내려다보더군요. 담비한테는 강아지까지 두 마리를 집에 둔 사람이 못마땅할 수 있습니다. 조용히 나무열매를 누리던 삶을 흔드는 사람들일 테니까요. 담비는 사람처럼 아파트를 올리지 않고 자동차를 달리지 않아요. 그저 조용히 열매를 누리고 나무를 심어요.


  다음에도 담비랑 눈을 마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마주보면서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기를 빕니다. 말을 걸고 싶어요. 숲에서 무얼 하고 지내는지 묻고 싶고, 담비는 새끼를 어떻게 낳아서 돌보는지 듣고 싶어요. 이 숲에서 사람을 지켜보면서 무엇을 느끼는지 알고 싶어요. 





2026. 9. 5. 숲하루




히말라야 수력 1100곳 밀집 개발…6년 전 ‘누적 영향’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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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공급 대신 ‘용산공원’…녹색 복지일까, 녹색 불평등일까?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276044.html


9월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서울개발나물 선정

https://www.eenews.kr/6054


"1.8도 넘으면 못 돌아와"…유엔, 기후 마지노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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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열화가 바꾼 동물 색깔, 목숨까지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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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우는 소리

[푸른하루 3] 노루



  벼꽃이 피었습니다. 들판이 푸릅니다. 고구마가 밭을 덮고, 길가 풀은 허리춤까지 올라옵니다. 능금나무에 썩은 능금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이웃 아저씨는 이레마다 능금밭에 약을 칩니다. 병든 능금과 고추에 약을 치고 길에 핀 풀도 죽입니다. 고추는 반은 익고 반은 희나리가 되어 말라갑니다.  


  이른아침 길에서 고라니를 만났습니다. 나도 놀라고 고라니도 놀랐습니다. 한동안 머뭇거리던 고라니가 도랑을 풀쩍 뛰어 고추밭으로 들어가 산자락으로 달아났습니다.


  봄에는 집 뒤 참나무 밑에서도 고라니를 보았습니다. 내가 낸 오솔길에는 짐승 발자국이 늘 있습니다. 마당에서 훠이 소리를 지르면 고라니는 그다지 놀라지도 않고 뒷산을 휘돌아 무덤 너머로 올라갑니다. 가랑잎이 사락사락 흔들려 노루가 걸어가는 그림이 훤히 보입니다. 어미일까 아기일까 짝일까. 먹을것도 마땅찮은 숲으로 가랑잎에 몸을 누이고 햇볕을 쬐며 졸까요.


  해질 무렵이면 고라니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우하하하, 우웨액 꿰에액.


  싸우는 소리인지 사랑을 부르는 소리인지 새끼를 찾는 소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마을사람한테 물으니 밖에 나간 새끼를 부르는 소리라고 합니다.


  “집이 여기야. 이리 와.”


  나는 밤마다 새된 소리를 들으며 고라니 보금자리를 들킬까 걱정스럽습니다. 한 번은 나도 노루처럼 크게 소리를 질러 봅니다. 내 목소리에 내가 놀라고 귀가 먹먹합니다. 한동안 조용하던 고라니가 다시 웁니다. 소리가 다르다는 듯합니다. 왕겨 창고 쪽으로 걸어가니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고라니가 보입니다. 사람 사는 곳을 내려다보며 낮잠을 잤는지 눈이 마주쳐도 달아나지 않습니다. 내가 어흥 하자 그제야 우리 집 골짜기를 떠나갑니다. 그 뒤로 아랫집 쪽에서 고라니 울음소리가 납니다. 마을사람들은 고라니를 쫓을 뿐, 잡지 않습니다. 잡으면 다른 고라니가 또 오니까요.


  어린 날에 노루를 본 적 있습니다. 송아지만 한 노루가 앞발 뒷발을 묶인 채 아궁이가 있는 나무에 거꾸로 매달렸습니다. 살아서 움직였습니다. 얼마나 떨었을까요. 노루를 잡으면 재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뒤 아버지가 아팠고 오빠도 다쳤습니다. 숲 어디선가 어린 노루를 바라보았을 어미 노루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박곡마을에서 매실을 따던 날에는 탈탈이 소리에 놀란 새끼 노루가 풀밭에서 튀어나오기도 했습니다. 울타리 밖 숲에는 어미 노루가 있었습니다. 어미는 컥컥 소리를 내며 새끼를 부르면서도 사람 때문에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새끼를 보고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어미를 보다가, 노루는 사람한테 들키면 그만 헤어지고 마는구나 싶었습니다.


  새벽마다 마당 언덕에 발자국이 있습니다. 벼락비가 내린 어느 새벽에 고라니 한마리가 도랑에서 뛰어올라 눈앞을 휙 지나 비닐집 사이로 다리를 휘청이며 달렸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내가 잠든 사이 고라니는 우리 집을 지나 이 산에서 저산으로 건너갔더군요. 우리 집은 울타리가 없으니, 고라니로서는 지나다니는 길목이었습니다.


  햇고구마 두 포기를 캤습니다. 보랏빛 껍질에 힘줄이 돋아났습니다. 내 손등에 올라온 힘줄처럼 말이죠. 가뭄에 풀이 죽은 줄기가 밤이면 다시 살아납니다. 숲 어디에서 고라니도 고구마잎을 바라보며 침을 삼킬는지 모릅니다. 두 강아지가 밭을 지키기에 가까이 오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선녀와 나무꾼이 있는 곳을 알려준 짐승이 노루예요. 아마 노루는 하늘을 잘 읽나 봅니다. 봄이면 참나무 가랑잎 사이로 노루귀 꽃대가 올라옵니다. 노루를 닮은 꽃입니다. 나는 요즘 노루잠을 잡니다. 자다가 자꾸 깹니다.


  숲은 노루며 고라니한테 큰집입니다. 숲은 곳간이고 숨이고 바다이고, 나무가 사는 집입니다, 숲은 밥이고 둑이고 병풍이고 무덤입니다. 그 사이에 노루가 살고 나도 살아갑니다.



20260828 숲하루




에너지의 날, 불을 끄고 별을 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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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경고] 지구가열화로 '재난 패턴'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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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난 곰, 뜨거워진 숲...지리산 반달가슴곰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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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경고] 탄소 배출 적은 네팔, 왜 기후재난 최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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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열화가 바꾼 동물 색깔, 목숨까지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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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는 왜 불탄 숲 '원래대로' 복원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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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않는 너를

[푸른하루 2] 두꺼비



  산초나무 밑에 구멍이 났어요. 뿌리 밑이 동굴 같아요. 하루는 창가에 턱을 괴고서 산초나무 밑을 바라보는데 두꺼비 눈이 보여요. 낭떠러지처럼 이룬 길 올라간 자국도 옅게 있어요. 하루를 꼬박 지켜보는데 두꺼비는 꼼작하지 않고 눈감고 입만 소처럼 되새김질하면서 가만히 한자리에 있어요. 두꺼비는 낮에는 잠을 자고 쉬고 있다가 밤이 되면 밖으로 나와 배를 채우나 봐요. 석 달 넘게 두꺼비하고 만나는데 어느 날부터 두꺼비가 보이지 않아요.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이면 여러 두꺼비가 마당으로 나와요. 여기도 한 마리 저기도 한 마리, 이렇게 다섯 마리가 나와서 기어요. 큰비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자리를 옮기는지 몰라요. 삽으로 바닥을 긁어 쇳소리를 내면, 두꺼비는 가만히 있다가 발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요.


  우리 숲밭에 비닐집이 있고, 이곳에서 뱀을 곧잘 봐요. 비닐집 뒷문 풀밭에 뱀 한 마리가 있어요. 뱀도 두꺼비처럼 달아나지 않아요. 집게를 들어서 잡으려고 하는데, 뱀 아가리에 커다란 두꺼비 몸이 반쯤 들어가더군요. 얼른 집게로 뱀을 잡자, 두꺼비가 뱀 아가리에서 나와요. 그런데 두꺼비 등이 피투성이예요.


  며칠 지나서 두꺼비를 다시 만나요. 두꺼비는 뱀한테 잡혀서 죽을 뻔했지만, 용케 살아나고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기어다녀요. 살아나서 고마워요.


  우리 집 뒤뜰은 바로 산으로 잇습니다. 산자락에 아주 큰 둥근 바위가 있어요. 공룡알처럼 박혔어요. 숲흙은 아주 보드랍기에 숲에는 돌이 없다시피 해요. 그런데 이렇게 큰 돌이 가끔 보이고, 골목 밖에도 하나 있어요. 꼭 굴에서 떨어져 나간 듯이 생긴 돌이죠. 큰돌은 칡과 찔레가 덮어요.


  우리는 이쪽으로 길을 내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찔레와 칡을 하나하나 자르고서 뿌리를 걷어냈어요.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냈지요. 이 숲길은 바위부터 난 셈인데, 어느 날 이 바위에 두꺼비가 올라오는군요. 밤에 불을 켤 무렵이면 어느새 바위에 올라와요. 그래서 가뭄에는 바위에 물을 한 바가지를 더 놓고서 먹으라고 말을 걸어요. 이 더위에 저도 얼마나 더울까 싶어 물을 등에 뿌려주면 눈을 지그시 감고서 가만히 있어요. 꼭 말을 알아듣는 듯해요. 


  어릴 때 의성 금성산길에서 두꺼비를 이따금 보았어요. 나무를 베고 난 뒤 자라는 작은 참나무 밑에서 자주 봤어요. 어릴 때에는 “옴이야!” 하고 놀라서 펄쩍 뛰어요. 놀라서 머리칼이 서곤 했는데, 이제는 무섭지 않아요. 두꺼비는 처음부터 우리를 보고서 달아나지 않았는데, 나도 이제는 두꺼비를 보고서 놀라거나 달아나지 않아요.


  오늘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인데, 이 땅을 우리 집으로 삼기 앞서부터 두꺼비도 살고 뱀도 살았겠지요. 우리 집에 찾아오는 두꺼비라기보다는, 두꺼비와 뱀이 옛날부터 살던 곳에 난데없이 나타나서 밀어냈다고 할 수 있어요.


  등짝이 울긋불긋 오돌토돌 덮고서 뼛속까지 느린 두꺼비예요. 한참 지켜보면 두꺼비는 참 생각이 깊은 듯해요. 서둘러 달아나지 않고, 그대로 멈춘 듯 숨죽이며 때를 기다리는 듯해요.


  이곳에 두꺼비가 있다면, 두꺼비가 밥으로 삼는 거미와 벌레도 있고, 두꺼비를 노리는 뱀도 있다는 얘기예요. 다같이 어울리는 숲이니까 두꺼비도 뱀도 있을 테지요. 우리는 낮에 일을 한다면, 두꺼비는 밤에 돌아다닐까요. 우리가 낮에 돌아다닌다면, 풀벌레는 밤에 노래해요.


  어린 날에 “두껍아 두껍아, 헌이 줄게 새이 다오.” 하고 노래하다가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하고 노래하며 놀았어요. 두꺼비는 사람한테 재물을 주는 짐승인가 봅니다. ‘금두꺼비’라는 말도 있잖아요. 재물 때문은 아니지만, 두꺼비 곁에서 착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2026.8.15. 숲하루



식물 서식 적합지, 북쪽·고지대로 이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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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 방지 스티커보다 세다...도시 새 구하는 뜻밖의 벽돌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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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에너지 개발 때문에 목숨 잃는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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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먹황새’ 다시 우리 하늘로… 국립생태원, 몽골과 손잡고 복원 본격화

https://www.eenews.kr/5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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