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작은몸, 큰몸 작은손

[푸른하루 8] 두더지



  밭둑에 대추나무 세 그루가 있습니다. 지난해는 가지가 늘어지게 대추가 열렸습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는 조금 적게 열립니다. 벌레먹은 떨어진 대추가 더 많습니다. 사다리를 놓고서 대추를 따다가 구멍에 빠질 뻔합니다. 나무 언저리에 난 구멍을 메우자고 여기면서도 아직 손길이 미치지 못 합니다. 이동안 구멍이 물길처럼 바뀌고,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밭과 길을 갈라놓을 듯합니다. 


  지난여름 끝에 큰비가 왔습니다. 어마어마하구나 싶은 빗물이 우리집 마당을 휘돌아서 흘러갔습니다. 그때 뽕나무 둘레 흙을 쓸면서 구멍이 났고, 밭둑으로 가는 길이 막혔습니다. 손바닥만 한 부추밭 흙도 빗물에 휩쓸려 갔습니다.


  대추는 그만 따고서 구멍을 들여다봅니다. 구멍이 난 자리는 처음에는 조그마했습니다. 두더지가 판 구멍 같았습니다. 뱀도 나온 자리입니다. 이러다 큰비가 오면서 두더지길을 뚫은 듯싶고, 우리 밭이 깊이 패기까지 했습니다. 그나저나 이 구멍을 메워야 할 텐데, 아직 손을 못 대었으니, 또 큰비가 오면 이 구멍은 더 패겠지요.


  우리집 꽃밭에 두더지가 곧잘 지나가는 듯합니다. 여느때는 멀쩡한 밭흙인데, 문득 보면 살이 부슬부슬 갈라지듯 흙이 일어나곤 합니다. 처음에는 꽃밭을 지나갈 적마다 발로 땅을 밟아서 다졌습니다. 그렇지만 꽃밭에 새로 구멍이 생기고 흙이 일어납니다. 두더지가 그만 지나가기를 바라며 젓가락을 꽂아 보기도 하지만, 두더지는 젓가락쯤 아랑곳하지 않는 듯합니다.


  어떡할까 한참 헤아리다가 두더지길을 안 밟기로, 젓가락도 안 꽂기로 합니다. 그냥 나는 나대로 두더지는 두더지대로 다니면 되려나 어림합니다. 두더지가 늘 다니는 길로만 다니면서, 맨드라미 뿌리를 안 건드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저 지나가기만 하고 꽃은 안 건드리기를 바라고요.


  두더지를 보면 손이 참 큽니다. 두더지 손(앞발)을 보면 땅을 참 잘 파겠구나 싶습니다. 몸은 작아도 손이 야무집니다. 땅밖에서, 땅을 발바닥으로 디디면서 살아가는 나는, 사람은, 우리는 손이 두더지처럼 크지는 않습니다. 작은 몸에 커다란 손인 두더지이고, 커다란 몸에 자그마한 손인 사람입니다. 두더지는 땅밑에서 조용히 굴을 파면서 고요히 지냅니다. 사람은 땅밖에서 손으로 뚝딱뚝딱 만지고 지으면서 시끌벅적하게 삽니다.


  두더지 이야기를 남깁니다만, 나는 두더지가 썩 반갑지 않습니다. 밭을 할퀴듯 헤집고, 남새를 갉으니까요. 꽃밭도 어지럽히는 듯하고, 아무래도 안 반갑습니다. 그러나 두더지 눈으로 보자면, 조용하던 멧골에 난데없이 이것저것 때려짓고 올려세우고 시끄러운 사람이 못마땅할 만합니다. 제발 조용히 살자면서 슬그머니 흙을 포슬포슬 뒤집어서 티를 낼는지 몰라요. 좀만 조용하면 안 되겠느냐고, 좀만 파헤치면 안 되겠느냐고, 좀만 같이 살면 안 되겠느냐면서 말없이 흙으로 몸짓말을 할는지 몰라요.


  사람은 이제 거의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닙니다. 어른이 되면 웬만한 사람들은 커다란 쇳덩이인 자가용을 굴리고, 트럭을 더 굴린다든지, 포크레인도 갖춥니다. 시골이라면 경운기에 트랙터에 콤바인처럼 커다랗고 무겁고 시끄러운 농기계를 갖추기도 합니다.


  두더지는 오직 맨손으로 땅을 조금 팝니다. 사람은 갖은 큰쇳덩이로 온갖 곳을 파헤치고 밀고 무너뜨립니다. 우리는 공장이나 체육관이나 아파트나 고속도로를 내면서 “두더지도 같이 지낼 땅뙈기 조금” 남겨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추를 따다가 한참 딴생각을 했습니다. 소쿠리를 챙겨서 집으로 갑니다. 올해 대추알은 몇 건사하지 못 하지만, 벌레먹어서 땅에 떨어진 대추쯤이면, 두더지도 밤에 살그머니 나와서 맛을 보려나요. 어쩐지 미안해서 두더지길 귀퉁이에 벌레먹은 대추를 몇 내려놓습니다. 




2026.10.9. 숲하루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기다리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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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10-0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더지와 사람이
살갑게 사귈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을과 숲과 나라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숲하루 2026-10-09 13:24   좋아요 0 | URL
두더지가 땅을 파서 말썽꾸러기라 여겼는데
되려 사람이 기계를 부리며 땅을 시끄럽게 한 듯해요.
두더지가 큰 손으로 말하고 있는 줄도 새삼 느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