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감자 밭 비룡소의 그림동화 91
애니타 로벨 글.그림,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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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사람은 밭을 일구지 않는다

[읽는하루 4] 자주꽃도 흰꽃도 감자로


《어머니의 감자 밭》

 아니타 로벨

 장은수 옮김

 비룡소

 2003.2.17.



  자주감자를 심는다. 우리 시골에서는 빨간감자라고도 한다. 가을에 캐고, 봄에 씨감자로 심는다. 감자를 자르면, 보조개처럼 들어간 자리에서 싹이 튼다. 새해 새봄에 심어서 그해 유월에 캔 감자를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감자 하나를 잘라 둘을 심으면 두 포기를 이룬다. 땅밑에서 주렁주렁 달리는 감자는 배고프던 날에 고마운 밥이다. 노란감자는 볶음으로 누리고, 빨간감자는 찌개로 삶는다. 어린날에는 쌀이 없어서 보리와 좁쌀을 섞어서 먹었는데, 언제나 감자가 우리 배를 채웠다.


  노란감자는 하얀꽃이 핀다. 빨간감자는 보라꽃을 피운다. 바람에 살랑이는 꽃을 보면, 이 골짜기가 싱그럽게 살아숨쉰다고 느낀다. 그런데 어린날에는 감자를 늘 먹었으면서도 감자꽃을 보지 못 했다. 아니, 감자꽃이 필 무렵에 감자밭을 안 가 보았겠지. 그때는 감자밭이 집에서 꽤 떨어진 비탈진 산에 있었다.


  그림책 《어머니의 감자 밭》을 본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밭을 담으로 둘러싼다. 밭 옆으로 숱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어머니는 두 아들이 섣불리 바깥을 넘보지 않기를 빈다. 그렇지만 마침내 두 아들은 서로 다른 군대를 멋지다고 쳐다보았고, 두 아들은 저마다 담을 넘어서, 한 아들은 빨간 군대에 가고, 다른 아들은 파란 군대에 간다.


  엄마는 혼자서 바깥에 눈을 돌리지 않고 밭을 일군다. 서로 다른 군대는 끝없이 싸운다. 서로 다른 두 군대는 싸우다가 배고프고 지친 나머지 ‘어머니 감자밭’까지 쳐들어온다. 담을 허물고 집을 부수고 감자밭을 짓밟는다. 이러다가 두 아들은 무너진 집에 드러누운 엄마를 알아본다. 두 아들은 뒤늦게 빌면서 운다.


  어머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동안 건사한 감자를 나누어 주면서 집도 밭도 고친다. 이제 군인들을 모두 ‘저희 집’으로 가라면서 돌려보낸다. 두 아들은 칼과 훈장을 땅에 묻는다.


  그림책을 덮고서 생각한다. 우리는 싸우려고 담을 세우고 더 먹으려고 이웃집까지 쳐들어가서 부순다. 더 얻어야 한다고 여긴다. 남한테 있으면 빼앗으려고 한다. 이러면서 미끼에 휘둘린다. 함께 나누던 감자 한 알을 쉽게 잊는다. 감자 한 알을 함께 먹으면서 마음이 쌓은 이야기를 스스로 무너뜨린다.


  이 감자이든 저 감자이든 모두 감자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 나라이다. 서로 다투거나 밟거나 빼앗을 일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밭을 스스로 일구면서 나눌 일이라고 본다.


  글쓰는 사람들을 보면, 나라일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여기는데, 다들 이쪽이나 저쪽 한 가지 목소리만 내려고 한다. 《어머니의 감자 밭》에 나오는 어머니처럼 ‘밭일’을 하기보다는 두 아들처럼 이쪽 군대나 저쪽 군대에 들어가서 훈장을 차고 칼을 휘두르려고 한다. 이제 글쓰는 사람들도 밭을 일구어야 하지 않을까? 감자는 어느 곳에서나 감자이다. 함께 나눌 감자를 손수 심고서, 감자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2026.9.9.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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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은 없었다 - 프랑스 최고의 유전학 박사가 밝힌 mRNA 코로나 백신의 모든 것
알렉상드라 알리옹 코드 지음, 목수정 옮김 / 에디터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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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가 늙어가는가

[읽는하루 3] 병원에만 나를 맡기느라


《마법은 없었다》

 알렉상드라 앙리옹 코드

 목수정 옮김

 에디터

 2023.10.10.



  뼈나이를 알아보니 여든살로 나온다. 튼튼할 줄 알던 뼈인데, 여든 넘은 엄마뼈와 맞먹는다니 앞이 캄캄하다. 골다공증 주사를 맞는다. 한 팔은 피를 뽑고 한 팔은 주사를 맞는다. 어깨로 그림자가 밀려와 가슴을 지나 왼팔로 넘어오는 듯하다. 몸을 돌아눕기도 힘들고, 살갗인지 뼈마디인지 벅차게 아프다. 주사와 약이 몸을 돌았다. 쌍화탕을 마셨다.


  수면내시경에서 깨어나니 베개맡에 침이 흘렀다. 마취도 잠일까. 누울 때와 다른 자리에 있고 어떻게 보냈는지 개운하지 않다. 세 아이를 낳을 때 전신마취를 했고, 무릎 수술도 전신마취였다. 건강검진마다 수면내시경을 했다. 아프지 않으려고 나를 통째로 맡겼다.


  《마법은 없었다》를 읽었다. 여태 내가 몸을 맡겨온 약과 주사를 다시 바라본다. 유전학 박사인 글쓴이는 코로나19 백신을 둘려싼 이야기를 우리한테 먼저 물어보고서, 의학계 뒷모습을 파헤친다. 코로나19는 우리 삶도 바꾸었다. 모이지 못하게 막고, 집에서 일하라 했으며, 택배나 새벽배송이 늘었다. 이러는 사이 작은가게는 하나둘 문을 닫았다.


  나는 코로나19가 퍼졌을 때 백신을 맞았다. 덜 아프려고 주사를 맞고, 빨리 낫는다는 약을 먹었다. 그러나 약이 늘 몸을 지켜주지는 않는다. 한 번 먹은 약을 줄여가며 끊어야 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픈 일도 겪었다. 약을 끊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시골집 창가 벼랑에는 늦여름 금은화가 핀다. 어릴 때에는 꽃을 따서 꿀을 빨아먹었다. 나는 볕에 말려 자루에 담지만, 짝은 닭죽이나 감주에 넣지 말라고 한다. 《마법은 없었다》를 읽으니, 금은화가 바이러스를 막는다는 대목이 있다. 잡초라고 여기는 흔한 풀을 다시 바라본다. 농약을 맞고도 자라는 풀, 흔해서 뽑아버리는 풀, 우리가 미처 모르는 풀마다 우리를 살리는 힘이 있을지 모른다.


  짝이 세 달마다 타오는 약이 한 보따리이다. 나이가 들수록 약봉지가 늘어난다. 약이 몸을 길들이는데, 설마 병원이라는 곳이 사람들이 마지막 머무는 집이 되어가지는 않을까.


  아프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믿고 맡기던 주사와 약을 다시 돌아본다. 약이 나를 살린다고 하는 동안, 나는 거꾸로 죽어가고 늙어갔는지 모른다. 나는 내 몸을 하나도 모르는 채, 아니 나는 내 몸을 스스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채 나이만 먹었다고 해야겠지. 




2026.9.2.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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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카 유적의 비밀
카르멘 로르바흐 지음, 박영구 옮김 / 푸른역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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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같은 모래그림

[읽는하루 2] 하늘을 보는 마음


《나스카 유적의 비밀》

 카르멘 로르바흐 글

 박영구 옮김

 푸른역사

 1999.5.8.



  어릴 때 우리 마을에 가뭄이 크게 들었다. 논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쩍쩍 갈라졌고, 마른논을 걷다가 갈라진 틈에 발이 빠져 넘어지기도 했다. 논밭이 타들어갈 적에는 비를 보내 달리는 비손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늘 가까이 높이 올라가서 하늘이 잘 보이는 꼭대기에서 두 손을 비비고 빈다.


  마을 할머니는 장독대 앞에 서서 아이를 보내 달라고 빌기도 했다. 하늘에 대고 빌면서 마음을 다스린 셈이다.


  《나스카 유적의 비밀》을 읽었다. 나스카 유적이 어디일까? 지도를 펼친다. 스페인과 페루, 태평양과 대서양 같은 곳이 만난다. 마리아 라이헤라는 분은 스물아홉 살에 독일에서 페루로 건너갔다고 한다. 스페인이 한창 페루를 쥐락펴락할 무렵이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또 쥐락펴락하던 때이다. 1900년에 태어난 우리 할아버지는 한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고 마당에서 도리깨질할 때이다. 이맘때에 마리아 라이헤라는 젊은 고고학자는 혼잣몸으로 비행기를 타고 기구를 타면서 페루 모래벌에 드넓게 펼친 그림을 살피고 찾고 기록으로 남겼다.


  나스카 모래벌에 누가 그림을 남겼을까. 옛날옛적 숲사람이 바위에 그림을 새기듯이 나스카 옛사람도 모래벌에 그림을 남겼을까.


  시골에 있는 비닐집은 길이가 80미터쯤 된다. 뒷산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까만 막대기처럼 곧게 가로세로로 돌이 놓인 듯이 보인다. 나스카 사막에 남은 그림은 시골 비닐집보다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는데, 어떻게 반듯하거나 둥그스름하면서 여러 무늬로 그림을 남겼을까. 비행기로 하늘 높이 올라가야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은 어떻게 남겼을까.


  모래벌을 가본 적이 없어서 모래벌이 어떠한지 모른다. 모래벌에 남은 그림이 참으로 오래도록 닳지도 않는다니 놀랍다. 아직 나스카 유적 수수께끼를 못 풀었다고 하는데, 풀지 못 하는 수수께끼라고 하더라도, 이런 수수께끼 그림이 페루 모래벌 한복판에 있다고 알린 사람이 있고, 이 그림을 알린 사람을 제대로 이야기하려고 찾아간 사람이 있다.


  책이란 여행일기일까. 아직 모르는 수수께끼를 알려고 쓰는 책일까. 앞으로도 알기 어렵지만 물어보고 생각하려고 읽는 책일까. 밤이면 하늘에 별이 빛나고, 낮이면 하늘에 해가 환하다. 어린 날 마당에 누워 바라다보던 바다처럼 파란하늘에 숱한 별처럼 내가 찾아볼 별은 어디에 있을까. 


2026.8.24.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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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사라 산 스케치 통신 - 화가의 마음이 담긴 아름다운 생태 일기
스즈키 마모루 지음, 이규원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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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도 젊어서도 숲에서

[읽는하루 1] 숲에서 피어나는 이야기


《바사라 산 스케치 통신》

스즈키 마오루

이규원 옮김

한울림어린이

2008.1.25.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숲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어머니 품이고 보금자리인 숲이 있어야 사람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숲은 차츰 사라지고, 논밭도 어느새 줄어들고, 태양광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찻길이 늘어나고, 높은 집채가 더 솟는다.


  마음에 돋는 별처럼 숲을 찾아본다. 마음을 밝히는 별처럼 숲에서 살림을 하는 나를 돌아본다. 올해(2026년) 여름은 가뭄이 길어서 소나무도 누렇게 말라간다. 이러다가 여름더위에 소나무마저 저절로 사라질지 모르겠다. 안동 멧골에서 지내다가 대구로 나와 보면, 길가에 선 나무조차 손바닥만큼밖에 흙을 못 누린다.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탓에 너무 좁고 작은 구멍에서 뿌리를 뻗을 데도 못 찾을 듯하다.


  적잖은 사람들이 정년퇴직이나 은퇴를 하고서 봇물 터지듯 시골살이를 하려고 떠나곤 한다. 젊어서는 숲을 품지 않다가 늙어서야 비로소 숲을 찾으려고 한다. 젊어서 도시에서 지친 몸과 사람물결에 치인 마음을 숲에서 달래려고 하는 듯하다. 그런데 젊을 적부터 숲에 깃들면 몸이 지치거나 마음이 치일 일도 줄거나 없지 않을까? 젊어서부터 숲과 시골을 품는 길은 없을까?


  《바사라 산 스케치 통신》은 내가 지내는 시골과 다르지 않은 삶을 보여준다. 일기 같고 동화 같고 그림책 같다. 아마 일기이면서 동화이고 그림책이겠지. 이 책을 쓰고 그린 분은 여태 그림책을 숱하게 냈는데, 하나같이 푸른빛으로 물결치는 이야기가 흐른다.


  늘 지켜보고 마주하는 하루를 담아내는 책인데, 늘 숲을 지켜보고 숲을 마주하는 하루이다. 그래서 온통 숲살림 이야기이다. 요즈음 어린이한테는 낯설 수 있고, 요즈음 어른한테도 낯설 수 있겠지. 그렇지만 우리 모두 숲을 품으며 살아가는 사람일 적에 스스로 빛난다는 이야기를 배울 만하다고 느낀다. 먼나라를 여행하는 이야기보다는 숲에서 나무를 지켜본 이야기로 우리 스스로 살린다. 멋스런 카페를 찾아다닌 이야기보다는 숲에서 새를 살펴본 이야기로 우리 스스로 깨운다.


  나는 오늘 안동 멧골집에서 무슨 이야기를 느끼면서 쓸 수 있을까. 나는 안동 멧골집에서 지내다가 대구 시내 아파트로 살짝 쉬러 나오면 무슨 하루를 느끼면서 말할 수 있을까. 《바사라 산 스케치 통신》을 써낸 스즈키 마모루 님은 모든 쪽마다 숲짐승과 숲풀꽃과 숲나무 이야기를 적었다. 나도 이렇게 멧골에서도 대구에서도 숲내음으로 푸른 이야기를 적어 보고 싶다. 


2026.8.15.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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