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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 ㅣ 교유서가 시집 4
기혁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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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한 삶을 읽고 싶다

[읽는하루 7] 기혁, 《소설책》


《소설책》

기혁 지음

교유서가 펴냄

2025.12.24.



《소설책》을 읽었다. 이 시집은 시에 소설을 앉히는 길을 볼 수 있는 책 같다. 시집을 슬쩍 읽고서, ‘견본책’이라고 겉종이에 적는다. 내가 왜 새롭게 보는지 더는 궁금하지 않을 때까지 붙여놓고 싶다.


시집을 하나 다 읽었지만, 글마다 다른 글 같으면서 하나로 가닿는다. 글책을 읽을 적에는 이야기를 잘 따라가면서, 다 읽고 난 뒤에는 어떤 그림이 남는다. 그런데 아직도 시를 읽는 일은 어렵다.


시를 배워도 시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시집을 읽고서 섣불리 글을 쓰면 어쩐지 나만 더 못난이로 드러내는 꼴인지 모른다. 한참 머뭇거렸다. 몇 달을 숨죽였다. 시집을 한 권씩 읽을까 하다가도 한꺼번에 한 출판사 시집을 몽땅 사들여서 한달음에 몽땅 읽어치우듯이 펼치고 나니 참 어지럽다.


아마 눈으로만 훑었다고 해야겠지. 아마 머리에는 하나도 안 젖었겠지.


이제 몇 글자라도 적는다. ‘검증된 시’라든지 ‘평론이 붙은 시’가 아닌, 살림하는 사람으로서 읽은 시를 느낀 몇 글자를, 안동 멧골에서 일하는 쪼꼬미로서 읽은 시를 느낀 몇 마디를, 대구라는 곳을 오가며 시골과 도시가 어떻게 어긋나는지 지켜보는 동안에 느낀 몇 줄을, 그냥 적어 본다.


《소설책》은 시로 적은 소설 같다. 시창작을 어떤 길로 가면 되는지 알려주는 듯하다. 글을 갈무리하고서 책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책잔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를 시로 말한다. 소설·비소설·미소설로 묶은 시를 읽다 보면, 신문이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이야기까지 시로 들어온다.


그러나, 느낌을 좀 적어 보려고 하면서도 또 망설인다. 한 권을 다 읽어도 나는 시를 왜 쓰는지 나 스스로 묻는 말부터 끙끙거린다. 나는 도무지 시를 왜 쓰고 싶은지부터 모르겠다. 시를 쓰겠다고 좇아다닌 나날이 어느덧 아홉 해가 되는데, 나는 그저 책가방만 들고 다녔구나 싶다. 그저 시를 놓지 않으려고 문단사람들과 수강생과 원로작가 들이 있는 무리에 끼기만 했다. 앞으로도 그냥 그대로 낀 몸일는지, 이제는 튕겨나올는지, 아니면 무리를 스스로 벗어나 홀로 갈는지 나 스스로도 모른다.


시와 시집은 무엇일까. 줄거리, 말하는 이, 나오는 이, 흐름, 자리, 생각, 느낌, 이야기, 그림, 가락, 모습, 빗대는 길, 이것저것 다 들여다보면서 건져내고 싶다.


숨을 돌려 본다. 창밖으로 꿩이 우는 소리를 들어 본다. 아직 우는 개구리가 있네. 왜가리는 겨울에 어디로 가서 지낼까.


시는 경험을 바탕으로 쓴다고 본다. 느끼지 않은 시는 뜬다고 느낀다. 경험이라는 삶을 바탕으로 쓰는 시가 아니라면, 이러한 시에 나오는 줄거리는 그림을 잘 그리기 어렵다. 이 시집 《소설책》은 직접진술을 하기도 한다. 머리에 있는 그림을 별똥별이 떨어지는 모습으로 바꾸기도 한다. 한 문장을 한 줄로도 쓴다. 꽃봉오리와 밤과 이슬과 응어리가 얽히다가 풀리기도 한다. 고단하게 살아가는 동안에도 새롭게 태어나는 시쓰기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읽었어도 제꺽제꺽 알아차리지 못하는 나인데, 아무래도 자꾸자꾸 뭐에 빗대는 글을 쓰기 때문일까. 경험이 아니라 다른 사람 삶을 빗대는 시라면, 곱씹으며 풀어보는 맛이 있을는지 모르나, 나로서는 읽고 읽어도 모르기만 하다. 아니, 이렇게 골치 아픈 시를 왜 읽어야 하는지, 그냥 다 그만두고 싶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하루에 붙은 이야기를 풀어서 시로 쓰고 싶다. 나는 시인들 스스로 살아가는 하루에 붙은 이야기를 그분들 시집으로 읽고 싶다. 경험한 삶이 있는 이야기를 시로 쓰고 싶고, 시로 읽고 싶다.



2026.10.28.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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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10-28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하루 님 삶으로 쓰는,
삶으로 노래하는 글을 기다립니다.
 
헌책 식당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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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을 물려받는 네가 부러워

[읽는하루 6] 조용하고 시끄러운 이곳



《헌책 식당》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문학동네

 2024.1.15.



  《헌책 식당》을 읽는 동안 부러웠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문학을 배우고, 글을 쓸 뿐 아니라, 할아버지가 꾸리던 헌책방을 물려받는데, 이 헌책방을 고모할머니랑 나란히 꾸리는 모습도 부럽다. 나도 《헌책 식당》에 나오는 젊은 아가씨처럼 누구한테서 책집을 물려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논밭을 물려받지 않아도 좋다. 작은책집을 한 곳 물려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물려받은 책집에서 내가 말린 찻잎도 팔고, 내가 구운 빵도 팔고, 내가 키운 남새도 팔면 좋겠다.


  글을 쓰는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이 머물 자리를 꾸리고 싶다. 아름다운 책을 골라서 읽으면서 작가라는 꿈을 키우는 책집을 해보고 싶다. 작가를 불러서 수다도 떨고 싶다. 책수다를 들으러 찾아오는 손님들 발걸움으로 문턱이 반질반질 닳는 책집을 차리고 싶다.


  도시에서는 마당이 사라진 집이 늘어난다. 도시에서는 카페가 자꾸 생긴다. 카페에는 빵을 함께 놓는다.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책을 두는 카페도 제법 보이는데, 책은 꼭 장식처럼 꽂아둔다.


  카페를 다니다가 가끔 생각한다. 책꽂이에 있는 책이 사람을 찾아간다면 어떨까. 사람이 책을 찾아보려고 손을 내밀기 앞서, 책이 맞춤한 사람을 찾으려고 나서 본다면 재미있을 듯하다. 책도 사람 못잖게 스스로 길을 내며 산다. 


  책을 만나기 앞서와 책을 만나고 난 뒤는 다르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시골을 좋아하면서도 도시를 놓지 못하지만, 내가 책집을 꾸릴 수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모두를 담고 싶다. 스스로 풀죽지 말라고 북돋우면서, 풀죽은 이웃이 이곳에서 기운을 차릴 수 있기를 빈다. 더디게 자라는 나처럼 더디게 걸어가는 이웃과 책을 사이에 놓고서 이야기하고 싶다.


  누가 나한테 책집을 맡아 달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열쇠를 받겠다. 나는 꿈을 내려놓지 않는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꿈에서도 이곳에서도 하루를 그린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작은책집을 하고 싶다. 아파트를 팔고서 이층집을 얻고 싶다. 한 층은 잠을 자고 글도 쓰는 곳으로 삼고, 한 층은 책집으로 꾸리고 싶다. 살림집이자 책집인 작은 이층집을 돌보면서 시인도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작은책집을 차릴 수 있다면 언제나 책하고 살아가면서 글하고도 가깝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틈나는 대로 책집을 찾아간다. 시집만 파는 곳, 독립책방, 헌책방. 아기를 보며 헌책방을 꾸리는 어느 곳을 보면, 아기는 어느새 자라 유치원에 다닌다. 어느 책집은 사흘만 열더니 닫았다. 태어난 옛집을 고쳐서 책집으로 삼은 부부도 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부부가 하는 책집도 있다. 지친 얼굴로 겨우 버티는 듯한 책집이 있고, 환하게 핀 얼굴로 일하는 책집이 있다.


  책집은 조용하다. 그렇지만 책방은 시끌벅적하다. 조용하던 책집은 잔치집이 된다. 그러니까 《헌책 식당》이라는 이름처럼, 책집은 북적이는 잔치집 식당과 같고, 또 조용하게 잠기는 집과 같다. 



2026.9.29.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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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10-1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잖아
숲하루 님 손끝으로 피어날
즐거운 마을책집을 기다립니다.
꿈을 씨앗으로 품으면
어느 날 틀림없이 피어날 테니까요.

숲하루 2026-10-14 10:42   좋아요 0 | URL
바람은 씨앗 같다는 말처럼 읽혀요.
꿈꾸며 글을 가꾸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앨비의 또 다른 세계를 찾아서
크리스토퍼 엣지 지음, 민지현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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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별에 있을 나는

[읽는하루 5] 나를 찾아가는 나



《앨비의 또 다른 세계를 찾아서》

 크리스토퍼 엣지

 민지현 옮김

 크레용하우스

 2017.8.30



  《앨비의 또 다른 세계를 찾아서》를 읽어 본다. 앨비는 보름쯤 앞서 죽은 엄마를 찾아가고 싶다. 이곳에서는 엄마가 죽었지만, 다른 차원에서는 엄마를 만날 수 있으리라고 여긴다. 엄마가 옆에 있을 적에 함께 이야기하고 해본 여러 가지를 떠올린다. 양자물리학 실험을 제대로 해낸다면, 틀림없이 아직 살아서 나를 따뜻하게 안을 엄마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고 여긴다. 오늘 이곳에 있는 아빠하고는 아무 말을 할 수 없다. 아빠는 엄마가 떠나고 난 뒤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이대로는 안 되겠기에 다른 차원으로 다녀와서 엄마한테 도움말을 듣고 싶다.


  언젠가 수영을 하다가 물밖으로 나와서 의자에 앉았다가 다시 물속에 들어가려는데, 또 다른 내가 앞으로 걸어가서 뛰어들려고 선 모습을 느낀 적이 있다. 꿈에서 내가 하는 일을 바라볼 때도 있다. 산꼭대기에 서서 어깨를 젖히다가 내가 다른 곳에 온 듯이 낯설기도 하다.


  우리는 먼지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별에서 온 먼지와 같다고 한다. 얼핏 보면 먼지이지만, 빛이라는 에너지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움직이지 않는 듯해도 문득 움직여서 이곳에 있고, 내가 하는 모든 일도 아직 이루거나 일어나지 않았지만 문득 일어나서 어느 곳에서 움직인다고 한다.


  내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하루를 돌아본다. 앞에서 입으로 밥을 먹고, 몸을 거쳐서 뒤에서 똥으로 나온다. 먹으면 먹은 대로 다 나온다. 배가 고프다고 여겨 밥을 먹으면 몸에서 힘이 생긴다. 힘이 생기고 나면 이제부터 밥찌꺼기를 내보낸다고 할 만하다.


  사과를 먹지만 사과가 되지는 않는다. 고기를 먹어도 고기가 되지 않는다. 사마귀가 메뚜기를 잡아먹어도 사마귀는 메뚜가기 되지 않는다. 새가 벌레를 잡아먹어도 새는 벌레가 되지 않는다. 그저 작은 다른 목숨이 우리 몸을 움직이는 빛에너지가 되는 듯하다.


  《앨비의 또 다른 세계를 찾아서》에 나오는 어린 엘비는 또 다른 지구가 있고 또 다른 엄마가 있다고 여긴다. 아마 나도 여기에 있는 ‘숲하루’가 아니라, 다른 지구에 있는 ‘별하루’나 ‘바다하루’가 있을 만하다. 나는 또 다른 지구에서 여자 그대로일 수 있고, 남자일 수 있겠지. 착한 나일 수 있고, 못된 나일 수 있다.


  엄마를 찾으러 끝없다고 할 양자물리학 여행을 하는 엘비는 또 다른 엄마를 만나기 앞서 ‘또 다른 나’인 ‘또 다른 엘비’를 하나둘 만난다. 나랑 같은 나(엘비)를 만날 적마다 놀라면서도 설레고,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바로 ‘나’일 테니까 죽은 엄마하고 다르더라도 나한테 이야기를 들려줄 엄마라고 여긴다.


  다른 별에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본다. 다른 별 나는 말을 잘 할까. 배운 만큼 나를 잘 드러내면서 즐거울까. 노래는 잘 부를까. 잘 하는 내가 있다면 나도 좀 우쭐해 보고 싶다. 또 다른 나를, 마치 쌍둥이 같은 다른 나는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다.


  어제 겪은 일은 무엇일까. 오늘 지내는 일은 무엇일까. 아직 태어나기 앞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나는 무엇을 그렸을지 알고 싶다. 내가 여기에서 그리는 모습대로 생각이 자라서 또 다른 나를 다른 별에서 자꾸자꾸 지어내지는 않나 궁금하다. 



2026.9.20.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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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감자 밭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91
애니타 로벨 글.그림,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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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사람은 밭을 일구지 않는다

[읽는하루 4] 자주꽃도 흰꽃도 감자로


《어머니의 감자 밭》

 아니타 로벨

 장은수 옮김

 비룡소

 2003.2.17.



  자주감자를 심는다. 우리 시골에서는 빨간감자라고도 한다. 가을에 캐고, 봄에 씨감자로 심는다. 감자를 자르면, 보조개처럼 들어간 자리에서 싹이 튼다. 새해 새봄에 심어서 그해 유월에 캔 감자를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감자 하나를 잘라 둘을 심으면 두 포기를 이룬다. 땅밑에서 주렁주렁 달리는 감자는 배고프던 날에 고마운 밥이다. 노란감자는 볶음으로 누리고, 빨간감자는 찌개로 삶는다. 어린날에는 쌀이 없어서 보리와 좁쌀을 섞어서 먹었는데, 언제나 감자가 우리 배를 채웠다.


  노란감자는 하얀꽃이 핀다. 빨간감자는 보라꽃을 피운다. 바람에 살랑이는 꽃을 보면, 이 골짜기가 싱그럽게 살아숨쉰다고 느낀다. 그런데 어린날에는 감자를 늘 먹었으면서도 감자꽃을 보지 못 했다. 아니, 감자꽃이 필 무렵에 감자밭을 안 가 보았겠지. 그때는 감자밭이 집에서 꽤 떨어진 비탈진 산에 있었다.


  그림책 《어머니의 감자 밭》을 본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밭을 담으로 둘러싼다. 밭 옆으로 숱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어머니는 두 아들이 섣불리 바깥을 넘보지 않기를 빈다. 그렇지만 마침내 두 아들은 서로 다른 군대를 멋지다고 쳐다보았고, 두 아들은 저마다 담을 넘어서, 한 아들은 빨간 군대에 가고, 다른 아들은 파란 군대에 간다.


  엄마는 혼자서 바깥에 눈을 돌리지 않고 밭을 일군다. 서로 다른 군대는 끝없이 싸운다. 서로 다른 두 군대는 싸우다가 배고프고 지친 나머지 ‘어머니 감자밭’까지 쳐들어온다. 담을 허물고 집을 부수고 감자밭을 짓밟는다. 이러다가 두 아들은 무너진 집에 드러누운 엄마를 알아본다. 두 아들은 뒤늦게 빌면서 운다.


  어머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동안 건사한 감자를 나누어 주면서 집도 밭도 고친다. 이제 군인들을 모두 ‘저희 집’으로 가라면서 돌려보낸다. 두 아들은 칼과 훈장을 땅에 묻는다.


  그림책을 덮고서 생각한다. 우리는 싸우려고 담을 세우고 더 먹으려고 이웃집까지 쳐들어가서 부순다. 더 얻어야 한다고 여긴다. 남한테 있으면 빼앗으려고 한다. 이러면서 미끼에 휘둘린다. 함께 나누던 감자 한 알을 쉽게 잊는다. 감자 한 알을 함께 먹으면서 마음이 쌓은 이야기를 스스로 무너뜨린다.


  이 감자이든 저 감자이든 모두 감자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 나라이다. 서로 다투거나 밟거나 빼앗을 일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밭을 스스로 일구면서 나눌 일이라고 본다.


  글쓰는 사람들을 보면, 나라일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여기는데, 다들 이쪽이나 저쪽 한 가지 목소리만 내려고 한다. 《어머니의 감자 밭》에 나오는 어머니처럼 ‘밭일’을 하기보다는 두 아들처럼 이쪽 군대나 저쪽 군대에 들어가서 훈장을 차고 칼을 휘두르려고 한다. 이제 글쓰는 사람들도 밭을 일구어야 하지 않을까? 감자는 어느 곳에서나 감자이다. 함께 나눌 감자를 손수 심고서, 감자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2026.9.9.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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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은 없었다 - 프랑스 최고의 유전학 박사가 밝힌 mRNA 코로나 백신의 모든 것
알렉상드라 알리옹 코드 지음, 목수정 옮김 / 에디터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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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가 늙어가는가

[읽는하루 3] 병원에만 나를 맡기느라


《마법은 없었다》

 알렉상드라 앙리옹 코드

 목수정 옮김

 에디터

 2023.10.10.



  뼈나이를 알아보니 여든살로 나온다. 튼튼할 줄 알던 뼈인데, 여든 넘은 엄마뼈와 맞먹는다니 앞이 캄캄하다. 골다공증 주사를 맞는다. 한 팔은 피를 뽑고 한 팔은 주사를 맞는다. 어깨로 그림자가 밀려와 가슴을 지나 왼팔로 넘어오는 듯하다. 몸을 돌아눕기도 힘들고, 살갗인지 뼈마디인지 벅차게 아프다. 주사와 약이 몸을 돌았다. 쌍화탕을 마셨다.


  수면내시경에서 깨어나니 베개맡에 침이 흘렀다. 마취도 잠일까. 누울 때와 다른 자리에 있고 어떻게 보냈는지 개운하지 않다. 세 아이를 낳을 때 전신마취를 했고, 무릎 수술도 전신마취였다. 건강검진마다 수면내시경을 했다. 아프지 않으려고 나를 통째로 맡겼다.


  《마법은 없었다》를 읽었다. 여태 내가 몸을 맡겨온 약과 주사를 다시 바라본다. 유전학 박사인 글쓴이는 코로나19 백신을 둘려싼 이야기를 우리한테 먼저 물어보고서, 의학계 뒷모습을 파헤친다. 코로나19는 우리 삶도 바꾸었다. 모이지 못하게 막고, 집에서 일하라 했으며, 택배나 새벽배송이 늘었다. 이러는 사이 작은가게는 하나둘 문을 닫았다.


  나는 코로나19가 퍼졌을 때 백신을 맞았다. 덜 아프려고 주사를 맞고, 빨리 낫는다는 약을 먹었다. 그러나 약이 늘 몸을 지켜주지는 않는다. 한 번 먹은 약을 줄여가며 끊어야 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픈 일도 겪었다. 약을 끊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시골집 창가 벼랑에는 늦여름 금은화가 핀다. 어릴 때에는 꽃을 따서 꿀을 빨아먹었다. 나는 볕에 말려 자루에 담지만, 짝은 닭죽이나 감주에 넣지 말라고 한다. 《마법은 없었다》를 읽으니, 금은화가 바이러스를 막는다는 대목이 있다. 잡초라고 여기는 흔한 풀을 다시 바라본다. 농약을 맞고도 자라는 풀, 흔해서 뽑아버리는 풀, 우리가 미처 모르는 풀마다 우리를 살리는 힘이 있을지 모른다.


  짝이 세 달마다 타오는 약이 한 보따리이다. 나이가 들수록 약봉지가 늘어난다. 약이 몸을 길들이는데, 설마 병원이라는 곳이 사람들이 마지막 머무는 집이 되어가지는 않을까.


  아프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믿고 맡기던 주사와 약을 다시 돌아본다. 약이 나를 살린다고 하는 동안, 나는 거꾸로 죽어가고 늙어갔는지 모른다. 나는 내 몸을 하나도 모르는 채, 아니 나는 내 몸을 스스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채 나이만 먹었다고 해야겠지. 




2026.9.2.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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