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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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2018년에는 문학계의 많은 이들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지인을 통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첫사랑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사담을 듣고 선택한 황현산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와 올해 나온 <사소한 부탁>을 읽다가 부고를 들었다. 암으로 고생하면서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문학평론가로서의 그의 인생은 끝이 났지만, 그가 남긴 글들은 다음 세대와 또 다른 다음 세대로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제목은 <사소한 부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칼럼과 문학평론을 보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안타까우면서도 날카로운 시선과 작품과 작가에 통한 우리가 품고 가야할 고민들이 담대하고 무겁게 담겨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모국어란 따지고 보면 한 사람이 태를 묻고 성장한 땅의 방언이기도 하다. 이 방언은 세상의 모든 말을 익히고 이해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 …… 문학의 언어는 고백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토론의 언어다. …… 토론은 고백을 끌어안아야 토론이고 표준어는 방언을 포섭해야 표준어다. …… 공공의 언어는 게으를 수 없다.

방언과 표준어의 변증법 (2013. 10. 12) 47.p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언어를 다르는 일과 도구가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한글날의 위세를 업고 이 사소한 부탁을 한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한글날에 쓴 사소한 부탁(2014. 10. 11) 97.p

 

특히 언어에 대한 사랑과 질책, 거목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는 작가를 두고도 한쪽으로 쏠리지 않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바라보고 당부하는 선생님의 마음도 느낄 수 있다.

 

미당은 2000년 말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러 장르에 걸쳐 거의 거르는 날이 없이 글을 썼다. 양이 방대하고 좋은 글도 그만큼 많다. …… 미당은 어떤 방식으로 서두를 끌어내어 이야기를 엮어도 중간에 그러나를 넣지 않고는 말하기 어려운 시인이다. 미당은 명백하게 친일시를 썼고 광복 이후에도 몇 차례에 걸친 정치적 과오를 저질렀다. 그러나 이 그러나이후의 말은 복잡하고 섬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시 명백한 것은 한국어를 아름답게 일으켜 세운 그의 공로를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당은 한국어가 말살 위기에 처했던 1930년대와 1940년대에 한국어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깊이를 만들었다. …… 미당의 정치적 과오는 하나같이 우리의 역사적 비극과 연결돼 있다. 그 접점에서 미당은 옹호되고 비판돼야 한다. …… 그의 명예에 먹칠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고뇌의, 혹은 그 비겁함의 짐을 역사의 이름으로 함께 나누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당의 그러나’-미당 서정주 전집(2017. 8. 28) 328~329

 

 

  앞으로 누가 우리에게 날카로운 해안과 따뜻한 마음을 품고 이 시대의 담론과 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비판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올 해 문학계의 많은 어른을 잃었다. 그만큼의 세계를 잃은 것이기도 하다. 눈치 보지 않고 객관적이고 진실한 글을 잃지 않도록 황현산 선생님이 남기고 간 사소한 부탁을 지키며 우리만의 세계를 일구어 나가고 싶다.

  작가 허수경은 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작 나는 작가의 시보다 소설 <아틀란티스야, 잘 가>와 산문<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를 먼저 읽었다. 정작 시는 선생님의 암투병과 부고를 접하고 읽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 시대의 올곧고 단단한 아름다운 작가를 잃었다는 것이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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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과 상처, 고통스러운 현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들의 양면적인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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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오다 - 다큐 피디 김현우의 출장 산문집
김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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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오다를 읽다가 잠시 숨을 멈췄다. #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 <하늘엔 원래 별이 많다>에서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 떠 있는 별들의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저자가 출장을 다녀온 많은 나라들 중에 내가 갔던 곳과 겹치는 도시가 종종 나왔지만 같은 풍경을 이야기하거나 비슷한 감정을 표현한 문장은 없었다. 똑같은 장소에 다녀와도 그곳에서의 경험과 느낌은 그 수만큼 다양하니까. 그런데 코타키나발루에 대한 저자의 느낌과 글은 곧 나의 마음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저자와 그의 글이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졌다. 너도 봤구나! 그곳에 떠있는 별들을. 그것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친구를 그도 잘 알고 있으며, 좋아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 그런 두려운인간에 비해 자연은 한없이 고요했고, 하늘엔, 정말 별들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 정말 전구를 흩뿌려놓은 것 같은 그 별빛 아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별빛이 사람을 미치게 할 수도 있겠구나였다. 인공조명과는 다른, 상상도 하기 어려울 만큼 먼 거리에 분명히 있다는 그 별들이 쏟아내는 빛은, 맨 정신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별들 하나하나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처럼 느껴졌고, 내 안에서 무언가가 울렁거림을 넘어 터질 듯이 뻐근했다. …… 그건 뭐랄까, 내게 익숙한 세상이 세상 전부는 아님을 확인하는 숙연함이었을 것이다. <135>

 

 

  나는 문장들 사이사이로 내가 본 별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지난 10월 나도 친구와 함께 말레이시아 키나발루산 야베스 산장에서 그 별들을 보았다고.

 

 

  서울을 떠나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차를 타고 달려간 곳은 키나발루산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산장이었다. 그날 밤, 안개가 하늘을 잔뜩 가리고 있었다. 맑은 날 밤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쉽게 방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속으로 안개가 사라지길 기도할 수밖에. 그런데 거짓말처럼 별빛이 하나 둘, 뿌연 안개를 뚫고 빛나기 시작하더니 점점 번져나갔다. 수많은 별들이 얼굴을 내밀고 나를 만나러 와준 것 같았다. 산장 주인은 우리를 위해 정원의 조명들을 꺼주더니 이내 더 잘 보이는 곳이 있다고 그곳으로 이끌었다. 캄캄한 밤이었지만 별 때문에 겁도 없이 들뜬 마음으로 산장 주인 부부를 따라갔고, 그곳에서 이미 와있던 다른 일행들과 몇 억 년 전부터 빛나고 있었을 별들을 만났다. 비가 내리는 것처럼은 아니지만 소원을 빌 수 있을 만큼 별똥별이 떨어졌다. 캄캄한 밤하늘을 목이 아플 정도로 올려다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뿌연 은하수와 별무리들을 바라보았다. 별 뒤에 별이 있고, 별 앞에도 또 별들이 있는 별세상이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과 핸드폰의 앱을 켜고 별자리를 찾아가며 웃고 감탄하고 고마워했던 밤이었다. 바로 그런 밤에 대해, 빛나고 또 빛나던 별에 대해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 책은 내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대학교 때,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방학이 되면 집으로 내려가는 것이 부러웠다. 나의 고향이 서울이 아닌 다른 곳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은 아마도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와 낯선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삶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을 하게 된 이후로는 출장 때문에 외국에 자주 나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정작 본인들은 그곳 날씨나 사람들, 풍경에 대하여 기억나는 것 없이 피곤할 뿐이라고 말했지만, 비행기를 타고 어디로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지인들이 부러워하는 나를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에필로그에서 삶은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그건 좀처럼 자신이 생기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했다. 그러나 매일 비슷해 보이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나에게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났던 순간이 있었다고 알려주는 것은 잊혀 지지 않기 위해, 혹은 잊고 싶지 않아 기록한 글들과 사진들이다.

 

 

천하 일이란, 매양 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느냐 못 건너느냐는 싸움이라 할 수 있으니…… <박지원 <흑정필담> 열하일기중에서>

 

 

  오늘도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머뭇거렸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머뭇거리면서도 무언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조금씩 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가고 있는 것이겠지. 나는 생각했다. 돈키호테의 외침처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손을 뻗으며 내일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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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에 묻힌 사람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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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얼마 전에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친구와 여행을 갔을 때, 잠결에 문득 이빨 가는 소리에 잠을 깼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아래 이빨이 쑥 빠지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이빨이 빠지면 누군가 죽는 꿈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번뜩 정신이 들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침에 친구가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며 점심 시간이 지나면 알려준다고 말했다. 친구의 꿈은 물건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아마도 우리는 여행 중 느낀 피로와 긴장때문에 좋지 않은 꿈을 꾸었나보다.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숙소를 나서기전 우리는 잠시 기도를 했다. 마음이 편해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프로이트는 꿈은 우리 소원의 성취라고 했다. 우리가 바라는 일이 꿈을 통해 나온다고.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꿈을 통해 나타나거나 순간 스치고 지나갔던 장면 혹은 들었던 소리가 무의식 속에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묻힌 무덤을 꿈속에서 보게 된 데이지 베이비는 그 꿈때문에 일상이 깨어지지만 호기심과 알 수 없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끝까지 그 꿈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탐정 피나타가 데이지에게 힘이 되어 준다. 주인공 데이지는 남편의 뜻대로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연극을 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꿈을 통해 나타난 자신의 존재와 근원을 찾아가는 모험을 하게 된다.


"좋은 결혼 생활에는 일정 부분 역할극이 포함되어 있어요."    - 63.p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복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고통스럽더라도 나의 진짜 모습을 찾아갈 것인가의 선택에서 데이지는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결혼이 연극이 아니듯이 평생 맡은 역할만 하면서 살 수 없는 것이니까. 꿈은 아무 힘이 없지만 그것을 풀이하고 해석해 나가는 사람에 의해 인생은 다르게도 펼쳐질 수 있는 일이다.


"난 그날을 잃어버린 게 아니에요. 잃어버리진 않았죠. 그날은 아직도 어딘가에 있어요. 여기저기. 오래전에 썼던 어딘가에요. 그 날은 아직도 그대로 있어요. 그래요. 숨어 있긴 하죠. 하지만 잃어버리진 않았어요."  -  91.p


 살다보면 감추고 싶은 것이 많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든 아니면 자녀나 타인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우리는 누구가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던 시간과 장소로 돌아가고 싶겠지만 그런 일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고 그것을 무마시키기 위해 또 다른 일들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우리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인연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일어난 일은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고, 그로 인해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댓가를 치루며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렸다고 생각해도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니까.


 그래서 생각한다.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설사 후회할 일이 발생하였어도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데이지의 부모나 남편 짐이 그녀를 독립된 존재로 보았거나 자신과 동등한 입장에 서 있는 부인으로 인정하였다면 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짜 삶에서도 이런 부모와 남편들이 꽤 많이 존재하기에 그녀의 선택과 행동을지지했다. 이제 진짜 자신의 인생을 시작할 선에 서 있는 데이지를 응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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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뒤에서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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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우리를 구속할 수 없다

루이자 메이 올컷<어둠 속의 속삭임>

 

 

  일본에 태풍 짜미가 몰아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다카마츠에 있는 호텔에서 나오시마 여행 계획을 점검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제 밤, 짐을 다 정리하고 느긋하게 TV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태풍 때문에 여행 일정이 전부 취소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가족들은 가기 전에 통보가 와서 다행이라며, 하루만 일찍 갔으면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혔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얼마 전 홋카이도에 지진이 났을 때, 자다가 호텔이 흔들려 깨어났다며 불안과 굶주림에 떨다 귀국한 지인의 말도 생각났다. 결국 여행대신 터덜터덜 도서관에 가서 루이자 메이 올컷<어둠 속의 속삭임>을 읽었다. 가볍게 넘긴 책장은 재미있게 술술 읽혔다. 후견인인 삼촌을 따라 나선 시빌이 장차 남편이 될지도 모를 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당돌하면서도 대담한 행동을 보이는 모습에 혀를 차면서 말이다.

 

 

나 자신의 대담함을 만족스러워하면서 나는 한 팔을 삼촌 목 부근에 올려놓고 그에게 고상하게 키스한 후 더할 수 없이 자연스러운 태도로 대담하게 그의 무릎에 올라가 앉았다. (196)

 

 

그러나 곧 이 철없는 열여덟 살 소녀의 행동은 삼촌의 강하고 거센 힘에 의해 제압당한다.

 

 

삼촌은 잠시 말없이 나를 보았다. 그러더니 나를 꽉 껴안으며 내 입술과 볼, 이마에 일부러 대단히 열정적으로 키스를 되돌려주는 바람에 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삼촌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그동안 삼촌은 내 수치심이 분노로 바뀌고 내가 단호하게 놓으라고 명령할 때까지 어둡고 음산한 웃음을 터뜨렸다. (197)

 

 

이 부분에서 뒤에 펼쳐질 내용들을 짐작했어야 하는데 그때까지도 나는 학창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하이틴 로맨스 소설들을 떠올려가며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시빌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한 삼촌과 교활하고 음흉한 의사에 의해 정신병원에 감금당해 피폐해져가는 그녀를 보게 되었다.

 

 

젊음과 아름다움이 준 자신감 속에서 나는 그에게는 경멸을, 삼촌에게는 반항을 드러내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힘을 과시해 나를 괴롭힘으로써 잔인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247.p)

 

 

나는 고통에서 비롯된 쓰라린 눈물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도 없는 비통한 눈물을 흘렸다. (249.p)

 

 

  부모를 잃고, 후견인의 도움아래 결혼을 해야 하며,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오직 젊음과 아름다움을 무기삼아 남성에 맞서야 하는 시빌에겐 힘이 없었다. 그녀의 인권과 존엄함은 너무나 쉽게 짓밟히고 유린당했다. 두 모녀를 구속할 권리가 그들에겐 없었으나 폭력이 폭력 아닌 상식의 얼굴을 하고 너무나 당연하게 자행되어 온 것이 잔인하고 가슴 아팠다. 정신병적인 발작과 몽유병 증세를 보이며 망가져 가는 시빌을 통해 자유를 빼앗긴 인간의 밑바닥을 볼 수 있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거세당하고 힘들게 살아오고 있다. 이것은 여성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갈 남성들에게도 비극이다.

 

 

올컷이 소설을 썼던 19세기 중반에 감금, 폭행, 중혼, 강간 등을 다룬 선정적인 소설들이 각종 주간신문에 발표되었다는데 그것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소설을 통해 잘못된 인식을 각성하고 개선해 나가는 데 힘을 보탰을지 아니면 속된 쾌감을 느끼며 그 상황 속으로 빠져들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누군가는 어둠 속에서 자유를 갈구하는 간절한 속삭임을 듣고 행동했을 것이다.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미투 운동을 벌이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는 또 다른 모습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것일까. 실험기구가 폭발하는 사고 때문에 겨우 정신병원을 탈출한 시빌를 만나 안정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지만, 그녀가 계속해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누구나 다함께 그 자유를 누리고 인정하며,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여성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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