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오다 - 다큐 피디 김현우의 출장 산문집
김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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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오다를 읽다가 잠시 숨을 멈췄다. #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 <하늘엔 원래 별이 많다>에서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 떠 있는 별들의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저자가 출장을 다녀온 많은 나라들 중에 내가 갔던 곳과 겹치는 도시가 종종 나왔지만 같은 풍경을 이야기하거나 비슷한 감정을 표현한 문장은 없었다. 똑같은 장소에 다녀와도 그곳에서의 경험과 느낌은 그 수만큼 다양하니까. 그런데 코타키나발루에 대한 저자의 느낌과 글은 곧 나의 마음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저자와 그의 글이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졌다. 너도 봤구나! 그곳에 떠있는 별들을. 그것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친구를 그도 잘 알고 있으며, 좋아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 그런 두려운인간에 비해 자연은 한없이 고요했고, 하늘엔, 정말 별들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 정말 전구를 흩뿌려놓은 것 같은 그 별빛 아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별빛이 사람을 미치게 할 수도 있겠구나였다. 인공조명과는 다른, 상상도 하기 어려울 만큼 먼 거리에 분명히 있다는 그 별들이 쏟아내는 빛은, 맨 정신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별들 하나하나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처럼 느껴졌고, 내 안에서 무언가가 울렁거림을 넘어 터질 듯이 뻐근했다. …… 그건 뭐랄까, 내게 익숙한 세상이 세상 전부는 아님을 확인하는 숙연함이었을 것이다. <135>

 

 

  나는 문장들 사이사이로 내가 본 별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지난 10월 나도 친구와 함께 말레이시아 키나발루산 야베스 산장에서 그 별들을 보았다고.

 

 

  서울을 떠나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차를 타고 달려간 곳은 키나발루산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산장이었다. 그날 밤, 안개가 하늘을 잔뜩 가리고 있었다. 맑은 날 밤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쉽게 방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속으로 안개가 사라지길 기도할 수밖에. 그런데 거짓말처럼 별빛이 하나 둘, 뿌연 안개를 뚫고 빛나기 시작하더니 점점 번져나갔다. 수많은 별들이 얼굴을 내밀고 나를 만나러 와준 것 같았다. 산장 주인은 우리를 위해 정원의 조명들을 꺼주더니 이내 더 잘 보이는 곳이 있다고 그곳으로 이끌었다. 캄캄한 밤이었지만 별 때문에 겁도 없이 들뜬 마음으로 산장 주인 부부를 따라갔고, 그곳에서 이미 와있던 다른 일행들과 몇 억 년 전부터 빛나고 있었을 별들을 만났다. 비가 내리는 것처럼은 아니지만 소원을 빌 수 있을 만큼 별똥별이 떨어졌다. 캄캄한 밤하늘을 목이 아플 정도로 올려다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뿌연 은하수와 별무리들을 바라보았다. 별 뒤에 별이 있고, 별 앞에도 또 별들이 있는 별세상이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과 핸드폰의 앱을 켜고 별자리를 찾아가며 웃고 감탄하고 고마워했던 밤이었다. 바로 그런 밤에 대해, 빛나고 또 빛나던 별에 대해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 책은 내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대학교 때,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방학이 되면 집으로 내려가는 것이 부러웠다. 나의 고향이 서울이 아닌 다른 곳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은 아마도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와 낯선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삶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을 하게 된 이후로는 출장 때문에 외국에 자주 나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정작 본인들은 그곳 날씨나 사람들, 풍경에 대하여 기억나는 것 없이 피곤할 뿐이라고 말했지만, 비행기를 타고 어디로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지인들이 부러워하는 나를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에필로그에서 삶은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그건 좀처럼 자신이 생기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했다. 그러나 매일 비슷해 보이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나에게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났던 순간이 있었다고 알려주는 것은 잊혀 지지 않기 위해, 혹은 잊고 싶지 않아 기록한 글들과 사진들이다.

 

 

천하 일이란, 매양 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느냐 못 건너느냐는 싸움이라 할 수 있으니…… <박지원 <흑정필담> 열하일기중에서>

 

 

  오늘도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머뭇거렸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머뭇거리면서도 무언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조금씩 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가고 있는 것이겠지. 나는 생각했다. 돈키호테의 외침처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손을 뻗으며 내일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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