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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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하다선량은 착하고 어진 성품이란 뜻이다. 그에 비해 차별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하고 나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어질고 착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등급이나 수준에 따라 나누고 구별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성립될 수 있는 말일까? 그러나 역설적으로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제목만큼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있다. 20대때 집 근처 복지관에서 꽃꽂이 강습을 받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꽃을 손질하고 아름답게 꾸미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은 졸업 시즌이라 장미꽃 스무 송이를 빨간 종이 상자에 담아 포장하는 패키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수업 내내 창밖에서 우리가 꽃을 다듬고 포장하는 것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고 바쁜 일이 있어서 제일 먼저 밖으로 나왔는데 우리 수업을 지켜보던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휠체어를 탄 젊은 남성이었는데 나를 보자 다가오더니 꽃다발 상자를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문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나의 반응이었다. 나는 그 순간 꺄악!” 소리를 지르며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나는 왜 놀라서 소리를 질렀을까? 지금 같았으면 오히려 그에게 꽃이 담긴 상자를 기꺼운 마음으로 내어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아마 그 사람의 눈빛보다 그가 타고 있는 커다란 휠체어와 성별이 내게 먼저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나의 행동에 대해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다. 분명히 그렇게 소리를 지를 마음은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차별을 받으면 받았지, 내가 누군가나 어떤 집단을 차별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차별은 나쁜 것이고, 그것은 힘이 있고, 권력을 가진 집단이나 사람들이 하는 행동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현재 편안하게 누리고 있는 권리에 대하여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누구나 누리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무지하다고 함부로 판단했다.



장애인이 버스를 타면 시간이 더 걸리니까 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26.p

라고 말한 학생과 생각이 조금 다르지만, 시간이 촉박할 때 마침 휠체어를 탄 사람이 버스를 탔던 적이 있었는데 시간을 끄는 상황에 짜증이 났던 일이 있었다. 나처럼 비장애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 것 이면에는 그들에게 유리한 속도를 외면하고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혹 누군가는 차별하는 것이 왜 나쁘냐고 반감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와 그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질문일 수 없다. 우리는 과거 귀족과 평민, 노비에 따른 신분 차별과 성별, 피부색 등으로 평가하는 야만적인 사회의 제도와 관념을 깨고, 현재 민주주의 사회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받았던 혜택과 자유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평소에 책 읽기를 매우 좋아하는 데 집 가까이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많이 있고, 상호대차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어 편하게 독서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편리한 서비스가 대한민국 전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과 경기도만 해도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전체적으로 범주화하고, 단순화시키면 한 지역이나 도시에 몰려있는 서비스가 숫자상으로는 전체가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객관적이고 면밀하게 이 사회를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차별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인간은 예전부터 기준을 정해놓고 타인들을 구분하거나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신분에 따라 옷의 색깔과 길이, 장식의 제약을 두고 어기는 사람에게는 큰 불이익을 주었으며, 글을 아는 사람들만이 수많은 정보와 기회를 선점했다. 그것이 점점 쌓이다 보면 나와 네가 다르다는 인식이 저절로 싹틀 수밖에 없다. 과거 남아공에서는 굳이 백인과 흑인 아이가 같이 노는 것을 강제로 억누르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흑인 구역에는 하수도 시설과 화장실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흑인 구역 아이들은 지저분하고 역한 냄새가 났을 것이다. 백인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서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차별적인 행동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임대와 일반아파트를 구분하고,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빈부와 성적으로 나누는 차별은 더욱 견고해지고, 그대로 발현되고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내 안에도 차별적인 시선과 가치관이 나도 모르는 채 내재화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과 행동으로 수없이 차별적 행동을 했었던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역전되고 자리가 바뀌게 되면 그때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당연히 행해져야 할 일들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산에서 넘어져 발목에 골절 사고를 당하여 수술한 경험이 있다. 수술 후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6개월 정도 걸렸는데 목발을 하고 밖에 나갔다가 작은 턱도 넘지 못하여 힘들어했던 일이 생생하다. 우리 사회가 소수자와 약자에 대하여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몸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장실은 그 사회의 평등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꽤 훌륭한 척도다.’ 172.p

나는 평소에 우리나라 공공화장실의 시설과 청결 상태를 높이 평가했었다. 이것 또한 다수가 사용하는 화장실에 국한된 평가라는 것을 깨닫고 나의 시선의 한계를 느꼈다. 동성애자나 게이, 레즈비언 등을 나는 한 명의 존재자로 바라보았는가. 아마 생각에서 아예 배제하고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성인으로만 구분하였던 것같다. 그들도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높은 인식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일에 있어서 불편과 수치심을 느낀다면 그것은 개조하고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당연한 절차이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나 나를 포함하여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아니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며, 객관적 시선을 유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가치관과 타인을 대하는 태도, 사회를 향했던 나의 시선 등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다. 저자의 연구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적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같아 놀랐다.



차별에 민감하거나 둔감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며, 너무나도 익숙한 어떤 발연, 행동, 제도가 차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가? 내가 보지 못한 차별을 누군가가 지적했을 때 방어하고 부인하기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경청하고 성찰할 수 있는가?’ 189.p

다양하게 제시된 사례와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책 읽기를 멈추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사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 또한 대한민국의 기독교인으로서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례하게 굴었던 일부 보수 기독교계로 인해 상처받은 소수자들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또 짧은 뉴스 기사나 SNS를 통해 단편적으로 접했던 사회 문제를 긴 호흡으로 읽고 들여다보며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기도 했다.



앞으로 내가 지녀야 할 태도는 어떤 것인가?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지 여전히 과제와 고민이 가득하다.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사회적 담론과 상황에 따른 깊은 사유와 공부, 연대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고민하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도 한국 사회가 빠르게 변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며 부딪치면서 해법을 찾아 나갈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언제나 차별하는 자에서 차별당하는 자로 자리를 바꾸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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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2-10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미나 벌레나 지렁이를 보며 징그럽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많고, 파리나 모기를 보며 싫다고 여겨 바로 때려죽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거미와 벌레와 지렁이가 없으면, 사람은 밥을 아예 못 먹습니다. 파리와 모기가 없으면, 사람은 쓰레기밭에 파묻혀 죽습니다. 다름(차이·차별)을 자꾸 작은이(소수자) 쪽으로만 몰아가려는 ‘진보’가 넘치는데, 여태 어느 ‘진보’도 ‘시골에서 자가용 없이 군내버스 타는 작은이 권리’를 말한 적이 없습니다. 어느 ‘진보’도 ‘시골에서 농약·농기계·비료·비닐 없이 논밭을 돌보는 작은이 인권’을 말한 적마저 없어요. 예부터 ‘깍두기’라고 해서 모든 쪽에 어울리며 같이 노는 살림살이로 ‘다름’을 품었습니다. 틀에 박는 ‘인권·태도’가 아닌, 너랑 내가 다르기에 다른 만큼 새롭게 어울리는 사랑을 바라볼 때라야 모든 실마리를 푼다고 느낍니다.

hope&joy 2025-02-13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바라보지 못한 곳에 차별이 매우 많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내일의 연인들
정영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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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가던 11월 늦은 밤, 첫눈이 펑펑 내렸다. 눈은 습기를 머금은 채 3일 내내 너무나 많이 내렸고, 애꿎은 나뭇가지를 뚝뚝 부러뜨리기도 했다. 나는 갑상선에 이상이 생겨 입원한 동생과 함께 병원에서 4박 5일을 보냈다. 병원에서의 하루는 단조롭고 규칙적이어서 가지고 있던 정영수 작가의 <<내일의 연인들>>을 꾸준히 다 읽을 수 있었다. 눈 내리던 첫째 날은 일찍 병실 불을 끈 후 복도로 나가 자리를 잡고 앉아 <우리들>과 <내일의 연인들>을 읽었고, 다음 날 수술 직후 약 기운에 취해 깊이 잠든 동생 옆에서 <더 인간적인 말>과 <무사하고 안녕한 현대에서의 삶>, <기적의 시대>를 읽었다. 동생은 수술 후 바로 거동이 자유로웠기에 보호자로서 해줄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동생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보다는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중요했다. 옆에 있으면서 나는 나대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고, 그것이 소설을 읽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모처럼 휴식처럼 찾아온 조용한 시간이기도 했다.    

  

 무언가를 특별히 해주지 않아도 옆에 함께 있어 주는 것은 서로에게 위로와 힘을 준다. 특히 타인과 타인이 만나서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연인이라면 그 애틋함은 더할 것이다. 점과 점이 만나서 선이 되고, 선이 된 두 사람은 자기들만의 독특한 도형을 만들어 나간다. 비슷해 보이면서도 각기 다른 모습들, 그렇지만 또 뻔한 우리 사랑의 모습들. 이런 설레면서도 뻔한 사랑 이야기에 계속 마음이 가는 것은 모두의 연애가 그 안에서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사랑과 연애의 담론이자 다양한 연인들의 삶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창하기보다 오히려 궁상맞고 초라한 군상들의 모습이 밉지 않게 다가온다. 아니 안타깝고 안쓰럽다.     


 우리 매년 여름마다 여기 올까?”

 우리가 단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 없는 다음 여름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현수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우리가 단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 없는 다음의 다음또 다음의 여름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현수는그리고 우리는 그날의 분위기가 좋았던 것이다그 이후 잠시 동안결코 길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정적이 흘렀다매해 여름이란이런 아름다운 계절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이 지속될 여름이란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아득하고 눈부신 말이었다

<우리들>, 35.p     


 깨어질 사랑을 붙잡고 영원을 이야기하는 생명체가 인간 말고 또 있을까.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사랑은 깨지고 공허함만 남겠지만, 누군가는 슬픈 소망을 갖게 될 것이다. 혼자 남은 외로움 속에서도 지나간 나의 사랑은 어떠했는지 복기하고 기록하면서 사랑했던 나를 존재하게 할 테니까.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도 후회하지도 말고, 상처를 준 이들에게는 조금 미안해하면서 살아가기를.      

  

 내가 한때 머물렀던 남현동 산자락의 조용하고 아늑한 빌라의 소유주는 선애 누나와 그녀의 남편으로두 사람은 그곳에서 오 년 정도 결혼생활을 한 뒤 파경을 맞이했다

 - <내일의 연인들> 45.p     


 ‘내가 한때 머물렀던 남현동 산자락으로…’로 시작하는 <내일의 연인들>은 그러니까 한때 누군가의 사랑이 시작되고 끝난 곳에서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이 살을 비비고, “넌 정말 대단해.”라는 말로 서로를 구원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그 공간을 통해 사랑의 기대와 소멸을 지켜보며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지인의 조카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하면서 엄청난 부동산 시세를 알게 되었고, 청년주택이나 신혼부부 임대주택 등을 알아보다가 어느새 흐지부지되더니 연인과도 헤어졌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렇다고 연애나 결혼을 포기한 건 아니지만, 마음 놓고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연인들에게는 얼마나 매혹적이고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공간에서도 연인은, 부부는 헤어진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정말 어쩌다 헤어졌을까?”     

 창가에서 들여오는 풀벌레 소리가 점점 아득해졌고나는 문득 끝나지 않을 시간에 갇혀서 텅 빈 공간을 떠다니고 있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왠지 그 밤은 영영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그것은 내게 앞을 다가오거나 다가오지 않을 무수히 많은 행복한 시간들과 외로운 시간들의 징후처럼 느껴졌다나는 비스듬히 누운 채 아직 잠들지 않았을 지원의 윤곽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우리는 어쩌면 그들의 유령들이 아닐까생각하면서.

 - <내일의 연인들> 72.p     


 그래도 세상 모든 연인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시간이 그들을 잡아먹기 전에. 사랑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사랑이 변한다기보다 시간을 통과한 연인이 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 그래도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지나간 나의 청춘 한때도 그러했었을 것이며, 앞으로의 삶 또한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순간만은 황홀하고 아름다웠을 테니까. 그 뒤 그리움이나 혹은 후회와 상처가 남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인간은 사랑하고 아파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을. 노래 가사처럼 사랑을 많이 한 사람이나 한 번도 사랑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는 한때를 함께 보냈던 존재에 대하여 미소 짓는 순간이 있을 것이며, 또 이미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할 테니. 그러니 지금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길. 그렇지 않다면 사랑하기를 꿈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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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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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소한 것이 있을까? 사소한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사소한 것일까? 사소한 일들은 외면하고 무시하면서 살아가도 되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내가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루고 무언가를 쌓아 올리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며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일들은 모두 각각의 사소한 일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치열했던 20~30대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일을 마치고 학원으로 달려가 외국어와 다양한 기술 등을 배우려고 노력했었다. 그때의 짧은 시간과 아무것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하루가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주인공 펄롱또한 사소해 보이는 일상에서 가정을 이루며, 아내와 힘을 합쳐 다섯 명의 딸을 키우고 이만하면 행복한 삶이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 그는 아버지 없이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열여섯 살의 어린 엄마에게 태어났지만, 개신교도로 큰집에 혼자 살면서 일꾼 네드와 펄롱의 엄마, 그리고 펄롱에게 따뜻한 집과 음식, 일 등을 제공한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자기의 가정을 꾸리고 지켜나갈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평범한 아이들보다 못한 가난하고 힘겨운 일, 무시 당하는 삶의 연속이었지만,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린 펄롱은 누구나 어휘를 갖춰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미시즈 윌슨 덕분에 맞춤법 대회에서 1등을 하였고,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라고 칭찬해준 그녀로 인해 마음과 정신이 성장할 수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 오롯이 존재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과 가르침을 받게 된다. 누구나 좋은 어른을 만날 수 있어야 하며 그들로 인해 어려움을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없이 태어난 펄롱이 교육을 받고 일을 하며,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어른들이 옆에서 함께 해주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볼품없고 가난한 펄롱이 성장하여 살아가는 일상의 소소한 모습을 물 흐르듯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는 일이 고되지만, 할 일이 없어 새벽부터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자들의 무리에 들지 않는 것에 감사한다. 그는 집안일은 물론 다섯 명의 딸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자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나가는 부지런하고 다정한 아내가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자기의 몫을 다하며 건강하게 자라나는 딸들을 보면 저 애들이 과연 나의 자녀인지 의심이 갈 때도 있다.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지나 이제 행복한 날만 기대하며 살아가도 될 것 같은 자신인데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으로 헛헛하고 무력하다. 과연 이런 것을 인생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 이게 다 무엇 때문일까? 펄롱은 생각했다. 일 그리고 끝없는 걱정. ……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 뭐가 중요한 걸까. ……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었다.

 

…… 똑같은 일이 날이면 날마다 여름 내내 반복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44.p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무엇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삶이 어떠하든 약간의 심리적 동요는 생길 수 있으나 자신과 자기 울타리 안의 사람들이 평안하게 잘 살아간다면 만족과 기쁨을 느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나 아닌 타인을 긍휼히 여기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창조 될 때부터 인간 유전자 안에 심어져 있는 것처럼. 펄롱 또한 실체를 맞닥뜨리기 전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엄습해 오는 불안과 무기력한 마음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선한 목자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방치된 채 노동에 시달리는 소녀들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그것을 방관했다는 것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다시 아기를 빼앗기고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울며 고통스러워하는 소녀를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아기를 찾아 달라며 펄롱에게 도움을 구하는 소녀의 말에 괴로워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어린 소녀의 아픔은 이제 그에게 넘어왔다. 소녀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잘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신에게 돌아올 수많은 불이익을 감수하며 그 소녀를 도와줄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물론 소녀를 외면했다고 해서 비난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소녀보다는 조금 나은 환경에 있지만, 펄롱 또한 녹녹지 않은 삶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왜 소녀를 도와주기 위해 결정을 내리고 자기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때까지 힘겨워하고 스스로 수치심까지 느껴야만 했을까? 나는 외면하고 돌아서지도,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며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도 그저 함께 아파하고 애통해하는 모습을 통해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타인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그것이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혼자 서 있을 수 없다. 존재와 존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신경들로 이어져 있나 보다. 그래서 내가 보고 마주친 사람들이 고통에 처해 있는데 그를 외면하면 나도 아프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 줄 수 없지만, 내 옆에, 내 눈에 들어온 사람에게 마음 한쪽과 손을 내밀 수 있는 것, 그것이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상을 지탱하고 계속 살아가게 만들어 주는 힘이 아닐까. 내 옆에 있었고 현재와 앞으로도 존재해줄 그들에게 감사하며, 나 또한 누군가의 천사라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천사가 뭐 대단한 사람인가. 따뜻한 마음과 손을 내밀어주면 그가 바로 천사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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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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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해방이란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나에게는 해방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다. 아니 무척 친숙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누비고 다녔던 서울의 동네 이름이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비슷한 제목의 드라마까지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해방이란 단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묶였던 것에서 풀리고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 정도로만 이해하고 살았다. 단어와 삶이 일치하지 않은 채 고정된 지식으로 자리했던 두 단어가 이 소설을 읽으며 새롭게 다가왔다. 초록색 바탕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 그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아버지를 묶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 그것에서 벗어나 가볍게 날아가는 한 사람의 해방 일지를 몰래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말이다.


  이 소설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전체적인 구조였다. 소설을 구성하는 방식은 단순하다. 지리산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아버지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던 외동딸 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을 알게 된다. 자신이 최대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부모를 원망하고 살아왔던 는 친척들과 아버지의 지인들을 만나면서 한 존재로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슬픔을 대놓고 슬프다 말하지 않고 웃음과 비판을 담아 술술 풀어낸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소설에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읽으며 웃고, 울 수 있었고,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의 현대사를 뒤돌아볼 수 있었다. 자유, 이념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신념을 갖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등등 다양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해 주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거대한 질문 앞에 서면 언제나 뒤로 밀릴 수 있는 가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란 말을 들으면 그리움이 느껴진다.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이란 시를 읽었을 때 느꼈던 마음, 뿌듯함과 저절로 지어졌던 미소를 기억한다. 명절을 함께 보내기 위해 큰집으로 모인 하룻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밤을 지새우며 나누는 들뜬 목소리, 여인네들이 만드는 음식 냄새가 늦게 잠든 화자의 영혼에 그대로 스며 들어가는 장면이 내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정겨운 소리와 향기, 그날의 분위기에서 유대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보호 받고 있는 편안함을 잊을 수가 없다. 부모와 자녀, 친족의 관계는 개인에게는 정체성의 시작이고 힘이다. 이들은 유전자로 묶여 있고, 같은 성을 쓰고, 생김새와 성격이 닮아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진 시간이 끊어지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가족을 어떻게 외면하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옥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252.p

 

 4년을 빨치산으로 살았던 아버지 때문에 와 그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너무나 크다.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 보면 4년이란 시간은 짧다고 할 수 있다. 그 시간이 아버지를 박제 된 인생으로 살게 했다. 그것은 아버지로 끝나지 않고 가족과 친척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가 신념을 품고 살아낸 시간 때문에 그는 동생과 평생 원수가 되었다. 조카인 큰집 오빠는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입학을 거절 당했다. 아버지의 딸인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앞두고 헤어져야만 했다. 신념을 가진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그 신념을 지키고 살았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역사라는 거창한 존재가 아닌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속박 당하고 거절 당하며 박제 된 시간을 살아야 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원망과 냉대를 그대로 받아내며 견디는 시간 동안 아버지의 삶이 어떠했는지 외동딸인 나는 관심이 없다. 아버지의 인생이 있듯이 나의 인생이 있고, 그것은 각자가 알아서 챙겨야 할 몫이다. 그런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의 삶을 정리하는 것은 이제 딸인 '나'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앞에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이제 아버지와 그들이 그리고 내가 서로의 시간 속에 엉키었던 삶을 풀어내야 할 순간이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 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249.p


 자랑스럽게 여겼던 형에 대하여 떠벌렸던 이유로 할아버지를 잃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던 어린 작은아버지는 형의 죽음 앞에서 지난 과거의 시간을 풀어야 했다.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한때는 작은아버지의 자랑이었다니.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순찰 중에 숨어 있던 사람을 못 본 척 눈감아 주어 목숨을 건졌던 사람이 아버지의 말처럼 공무원이 되어 찾아오고, 심지어 학교 아이들에게 놀림 받고 왕따가 되어 담배를 피우며 방황하는 어린 소녀에게 아버지가 담배 친구가 되어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알던 아버지는 누구였을까. 나는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과 나약해진 노년의 마지막 모습을 알게 되며 화해하게 된다. 그에게 품었던 원망도 조금은 사라진 듯 하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의 해방 일지라기 보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해방 일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의 아버지도 5년 전에 병을 앓고 돌아가셨다. 성인이 된 후 아버지의 손을 오랜 시간 길게 잡아 보았던 때가 바로 그때였다. 지금도 길고 가느다란 아버지의 손가락과 온기 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가족들과 아버지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있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눈으로 사람을 보게 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만 그 사람일 거라 착각할 때가 많다. 한 사람이 하나의 우주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평생 다 알지 못하고 헤어진다. 그러니 누구에 대하여 잘 안다고 말하는 것은 참 교만한 일이다.

 

아버지는 더 오랜 세월을 구례에서 구례 사람으로, 구례 사람의 이웃으로 살았다

인척이 구례에 있고, 칠십년지기 친구들이 구례에 있다. 아버지의 뿌리는 산이 아니다. 아버지의 신념은 그 뿌리에서 뻗어나간 기둥이었을 뿐이다. 기둥이 잘려도 나무는 산다. 다른 가지가 뻗어 나와 새순이 돋고 새 기둥이 된다.’ 253.p


 화장한 아버지의 뼈는 지리산에 전부 뿌려지지 않았다. 그곳은 아버지의 젊음과 신념이 묻혀 있는 곳이지 오랜 시간 아버지가 살았던 곳은 아니었다. 잠시 머물렀던 곳에는 그 만큼의 뼛가루가 조금 뿌려지고, 또 장소를 옮겨 아버지가 호흡하며 일상을 나누었던 곳곳에 뿌려진다. 육신을 벗어나 자유로워진 아버지의 혼은 해방감을 느꼈을까.


 시간은 흐른다. 사람들은 각각 자신만의 시간을 통과했고, 통과한 사연만큼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그 안에서 이 땅의 현대사는 요동치고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누구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이념들은 국토를 갈라 놓았고,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 놓았으며, 증오와 불행을 심어 놓았다. 우리는 아직도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조금만 애정을 갖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아파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념이 심어 놓은 유령의 껍질을 벗기면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울며, 웃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과거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사람을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글 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도 다양한 이념과 이야기에 자유로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해방은 현재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말일지 모른다. 빨치산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렇게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왔던 이야기가 또 있었을까. 그것 만으로도 이 책은 제 몫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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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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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연이 베풀었던 위로와 치유, 경이로움, 나를 작고 겸손하게 만들어 주었던, 그래서 행복했고 고마웠던 수많은 순간이 수시로 떠올랐다. 제주도 여행 중 친구와 심하게 다투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 쏟아질 듯 끝없이 펼쳐져 있던 반짝거리는 별들을 보며 갑자기 화가 풀리고 함께 웃었던 일, (정말로 그 순간 친구와 싸웠던 일이 별거 아닌 일이 되었다.)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가던 중 넘어져서 어깨에 가늘게 금이 갔지만, 반 깁스를 한 채 천천히 걸어가며 사람들과 나무, 공기, 심지어 북스페인 소들에게까지 받았던 위로와 도움은 나를 끝까지 산티아고를 향해 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존재(장소와 기후까지 포함하여)들을 통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자원을 얻을 뿐 아니라 한없는 지혜와 치유까지 선물 받고 있다.


 

 저자는 일관되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세계가 생명과 삶이자 동반자임을 말해 주고 있다. 현재의 편한 삶을 추구하며 도시의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우리가 그것을 알거나 보고 싶어 하지 않을 뿐이지만. 자연은 인간을 오래 기다려주고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바라보라고. 조물주가 심어 놓은 자연 속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을 통해 인공으로 해결할 수 없는 힘을 찾아보라고.


 

아동 성도착자에게 시달린 4년 반, 그리고 우리 세 식구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을 겪고도 어떻게 그런 식으로 캘리포니아를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일까? 삶의 방향이 꺾이고 고통에 봉착할 때마다 나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28~29.p



동틀 녘 구슬피 우는 산비둘기 소리, 인적 없는 토팡가협곡과 로렐협곡,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산토끼들, 주마와 레오카릴로의 긴 해변들, 그 해변에서 하얗게 부서지던 파도내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거대했던 파도. 이 소리들과 장소들이 없었다면, 주삿바늘처럼 날카롭게 (또 다른 날에는) 연기처럼 자욱하게 벨리에 쏟아지던 햇살이 없었다면, 갓 맺힌 단추 모양 유칼립투스 꼬투리의 톡 쏘던 내음과 내 손가락에 달라붙던 후추나무 이파리들이 없었다면, 이것들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소멸되었을 것이다. 짐승의 침대에 축축한 헝겊 인형처럼 팽개쳐져 있다가 다른 문을 통과해버렸을지도. 74~75.p



 저자는 어린 시절 소시오패스의 병적 자아도취자이자 아동 성도착자인 쉰여섯 살의 남자에게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성폭행을 당했다. 힘없는 어린 남자아이는 자기가 잘못하여 병에 걸린 것이란 협박과 폭력에 대항하지 못했다. 심리적으로 엄마와 어린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과 그에게 벗어나 도망갈 수 없다는 절망에 제압 당한 채 새아버지를 따라 맨해튼으로 이사가 기 전까지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때 받았던 고통은 저자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따라다녔고, 수십 년 동안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그랬던 그가 순간 순간 고통을 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주는 위로와 치료가 아닌 자연의 경이로움과 동물들이 살아가는 매일의 모습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상처를 회고해 나가는 글의 소제목을 무섭도록 풍부한 물하늘 한 조각이라고 정하였다.


 

고통 속에 놓여 있는 인간이 숨 쉴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는 것에 어떤 것이 있을까? 어린 소년에게는 캘리포니아의 물과 햇살, 동물과 나무들, 소리가 구원이자 힘이었다. 자연의 광대함과 성실함, 황폐한 환경과 무언가를 덮친 것 같은 공포를 뚫고 기어이 존재를 드러내는 자연의 구성원들이 소년의 삶을 붙잡아 주었다. 자연은 저자는 그것을 우리에게 글로 남겨 주었다. 나는 그 고백이 눈물 나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물이 상처 입은 소년의 몸과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내 안에서 점점 커지는 광막한 사막을, 나를 위협하는 그 무엇을 나도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거라고 물을 찾기만 하면 될 거라고.

알고 보니 나의 물은 보통의 삶이었다.…… 자기 삶 깊숙이 무언가를 간직하려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결심이 물이었다. 그것은 한눈팔기를 멀리하는 태도였다. 75.p

 


 사막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물은 생명이다. 그 물이 있어 타는 갈증을 견디고 모래바람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저자가 자연에서 얻은 힘은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고, 먼 훗날 고통의 현장에 직면하게 했으며,(물론 너무나 힘겹고 역겨운 고통의 과정이었지만) 몸과 마음을 옥죄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온몸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자연이 준 선물이자 그에 대한 은혜 갚음이다.



 나는 요즘 고래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 고래에 관한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글을 쓰고 공부하면서 나 자신부터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은 얼마나 많은 수의 종을 멸종 시켜야 사라질까?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이 아닌 다른 종에 대하여 알아가면 갈수록 멸종의 끝에 인간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확실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충분히 그것을 막을 수 있을 거라 교만해 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가 속한 세상은 많이 부서지고 병들고 부패해가고 있다. 자연 보호와 환경오염에 대해 외치는 것이 너무나 촌스러운 슬로건이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렇지만 우리는 3년의 코로나 시대를 겪지 않았나. 나는 비교적 뒤늦게 코로나에 전염되어 다른 사람들처럼 매우 심하게 앓지는 않았지만 메마르고 갈라진 목을 약과 따뜻한 물로 버티면서 앞으로 또 다른 전염병이 유행하게 될지 지레 겁을 먹었었다. 우리가 다른 종의 영역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고, 그들의 삶을 파헤치고, 포획하고 죽이기를 반복한다면 자연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반격해 올지 겁이 난다.



 고래를 공부하면서 내가 깨닫게 된 건 우리가 다른 종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지구의 다른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그들이 자연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자연은 인간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구라는 공간을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게 분명히 좋은 일일 것이다


 이 책을 거의 다 읽어 갈 때 나는 엄마와 강릉에 있었다. 저녁을 먹고 식당에서 20분 가량 떨어져 있는 숙소까지 엄마와 함께 바다를 보며 걸었다. 중간 중간에 모래사장에 놓여 있는 나무 그네에 앉아 말없이 바다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안하고 따뜻한 저녁이었다. 멀리 떨어진 깊은 바다에 향유고래들이 서서 잠을 잔다고 한다. 바닷속에서 나무처럼 서서 잠든 향유고래들의 모습이 신비하게 느껴졌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바다 어디에서도 혹시 잘못 알고 헤엄쳐온 향유고래가 서서 잠을 자고 있지 않을까. 나는 강릉 경포 바다에서 향유고래가 서서 자는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해 했다. 그리고 여기 살아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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