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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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해방이란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나에게는 해방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다. 아니 무척 친숙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누비고 다녔던 서울의 동네 이름이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비슷한 제목의 드라마까지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해방이란 단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묶였던 것에서 풀리고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 정도로만 이해하고 살았다. 단어와 삶이 일치하지 않은 채 고정된 지식으로 자리했던 두 단어가 이 소설을 읽으며 새롭게 다가왔다. 초록색 바탕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 그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아버지를 묶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 그것에서 벗어나 가볍게 날아가는 한 사람의 해방 일지를 몰래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말이다.


  이 소설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전체적인 구조였다. 소설을 구성하는 방식은 단순하다. 지리산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아버지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던 외동딸 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을 알게 된다. 자신이 최대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부모를 원망하고 살아왔던 는 친척들과 아버지의 지인들을 만나면서 한 존재로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슬픔을 대놓고 슬프다 말하지 않고 웃음과 비판을 담아 술술 풀어낸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소설에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읽으며 웃고, 울 수 있었고,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의 현대사를 뒤돌아볼 수 있었다. 자유, 이념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신념을 갖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등등 다양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해 주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거대한 질문 앞에 서면 언제나 뒤로 밀릴 수 있는 가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란 말을 들으면 그리움이 느껴진다.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이란 시를 읽었을 때 느꼈던 마음, 뿌듯함과 저절로 지어졌던 미소를 기억한다. 명절을 함께 보내기 위해 큰집으로 모인 하룻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밤을 지새우며 나누는 들뜬 목소리, 여인네들이 만드는 음식 냄새가 늦게 잠든 화자의 영혼에 그대로 스며 들어가는 장면이 내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정겨운 소리와 향기, 그날의 분위기에서 유대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보호 받고 있는 편안함을 잊을 수가 없다. 부모와 자녀, 친족의 관계는 개인에게는 정체성의 시작이고 힘이다. 이들은 유전자로 묶여 있고, 같은 성을 쓰고, 생김새와 성격이 닮아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진 시간이 끊어지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가족을 어떻게 외면하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옥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252.p

 

 4년을 빨치산으로 살았던 아버지 때문에 와 그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너무나 크다.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 보면 4년이란 시간은 짧다고 할 수 있다. 그 시간이 아버지를 박제 된 인생으로 살게 했다. 그것은 아버지로 끝나지 않고 가족과 친척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가 신념을 품고 살아낸 시간 때문에 그는 동생과 평생 원수가 되었다. 조카인 큰집 오빠는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입학을 거절 당했다. 아버지의 딸인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앞두고 헤어져야만 했다. 신념을 가진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그 신념을 지키고 살았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역사라는 거창한 존재가 아닌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속박 당하고 거절 당하며 박제 된 시간을 살아야 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원망과 냉대를 그대로 받아내며 견디는 시간 동안 아버지의 삶이 어떠했는지 외동딸인 나는 관심이 없다. 아버지의 인생이 있듯이 나의 인생이 있고, 그것은 각자가 알아서 챙겨야 할 몫이다. 그런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의 삶을 정리하는 것은 이제 딸인 '나'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앞에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이제 아버지와 그들이 그리고 내가 서로의 시간 속에 엉키었던 삶을 풀어내야 할 순간이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 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249.p


 자랑스럽게 여겼던 형에 대하여 떠벌렸던 이유로 할아버지를 잃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던 어린 작은아버지는 형의 죽음 앞에서 지난 과거의 시간을 풀어야 했다.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한때는 작은아버지의 자랑이었다니.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순찰 중에 숨어 있던 사람을 못 본 척 눈감아 주어 목숨을 건졌던 사람이 아버지의 말처럼 공무원이 되어 찾아오고, 심지어 학교 아이들에게 놀림 받고 왕따가 되어 담배를 피우며 방황하는 어린 소녀에게 아버지가 담배 친구가 되어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알던 아버지는 누구였을까. 나는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과 나약해진 노년의 마지막 모습을 알게 되며 화해하게 된다. 그에게 품었던 원망도 조금은 사라진 듯 하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의 해방 일지라기 보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해방 일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의 아버지도 5년 전에 병을 앓고 돌아가셨다. 성인이 된 후 아버지의 손을 오랜 시간 길게 잡아 보았던 때가 바로 그때였다. 지금도 길고 가느다란 아버지의 손가락과 온기 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가족들과 아버지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있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눈으로 사람을 보게 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만 그 사람일 거라 착각할 때가 많다. 한 사람이 하나의 우주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평생 다 알지 못하고 헤어진다. 그러니 누구에 대하여 잘 안다고 말하는 것은 참 교만한 일이다.

 

아버지는 더 오랜 세월을 구례에서 구례 사람으로, 구례 사람의 이웃으로 살았다

인척이 구례에 있고, 칠십년지기 친구들이 구례에 있다. 아버지의 뿌리는 산이 아니다. 아버지의 신념은 그 뿌리에서 뻗어나간 기둥이었을 뿐이다. 기둥이 잘려도 나무는 산다. 다른 가지가 뻗어 나와 새순이 돋고 새 기둥이 된다.’ 253.p


 화장한 아버지의 뼈는 지리산에 전부 뿌려지지 않았다. 그곳은 아버지의 젊음과 신념이 묻혀 있는 곳이지 오랜 시간 아버지가 살았던 곳은 아니었다. 잠시 머물렀던 곳에는 그 만큼의 뼛가루가 조금 뿌려지고, 또 장소를 옮겨 아버지가 호흡하며 일상을 나누었던 곳곳에 뿌려진다. 육신을 벗어나 자유로워진 아버지의 혼은 해방감을 느꼈을까.


 시간은 흐른다. 사람들은 각각 자신만의 시간을 통과했고, 통과한 사연만큼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그 안에서 이 땅의 현대사는 요동치고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누구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이념들은 국토를 갈라 놓았고,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 놓았으며, 증오와 불행을 심어 놓았다. 우리는 아직도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조금만 애정을 갖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아파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념이 심어 놓은 유령의 껍질을 벗기면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울며, 웃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과거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사람을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글 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도 다양한 이념과 이야기에 자유로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해방은 현재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말일지 모른다. 빨치산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렇게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왔던 이야기가 또 있었을까. 그것 만으로도 이 책은 제 몫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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