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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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요일에는 일을 마치고 지하철 역 앞에 있는 카페에 간다. 나는 퇴근 시간에 맞춰 쏟아져 나온 사람들을 피해 한 시간 정도 책을 읽고 집으로 돌아간다. 높은 천장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읽다 보면 복잡한 머리와 피곤한 몸이 조금씩 풀리고 편안해진다. 내가 속한 세상은 때때로 치열하고 가끔 단조롭다. 사람과 일 사이에서 부딪치고 견디며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체력은 약해지고, 마음은 점점 무뎌진다. 말랑했던 나의 정서가 점점 딱딱해져 가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순간 우연히 카페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 나 아닌 타인과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 세상과 또 다른 세계의 경계에 서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듯한 경험을 한다. 무엇보다 실제로 갈 수는 없지만, 다른 시공간으로 빠져들었다가 되돌아올 수 있는 것이 좋다. 그때 읽은 책 중 한 권이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였다. 창경궁 안에 있는 대온실 수리 공사를 통해 그곳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쫓아가면서 나 또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었다.


 ‘원서동으로 시작하는 소설 속에는 한때 창경원으로 불렸던 창경궁과 그 안에 자리하고 있던 하얀색 유리 온실, 지금도 가끔 찾아가는 춘당지가 등장한다. 나에게도 익숙하고 추억이 깃든 장소를 책 속에서 발견하게 되니 반갑고 기뻤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도 등장인물들과 함께 그곳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공 영두에게 원서동과 창경궁은 10대 시절, 짧은 기쁨과 사랑 그리고 억울함과 분노를 안겨준 곳이다. 상처를 안고 자기 안으로 숨은 채 떠나온 동네를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가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석모도에서 원서동 낙원 하숙으로 옮겨와 살던 10대의 영두가 상처를 입고 떠밀리듯 떠났다가 다시 자기가 살았던 동네로 돌아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아픔과 상처를 극복해내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영두에게 원서동의 낙원 하숙과 창경궁은 어떤 곳이었을까? 어떤 장소는 오래된 나무처럼 시간을 품은 채, 사람들의 역사를 지켜보고 얽히고설킨 사연을 풀어주는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아무리 외면하고 모른 척하려고 해도 결국 다시 돌아와 해결하게 만드는 운명 같은 곳 말이다. 창경궁의 대온실은 문화재로서 가치는 충분하지만,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아픈 손가락 같은 곳이다. 영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친구의 소개로 건축사 사무소에서 창경궁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게 된 영두는 10대 시절 원서동 낙원 하숙에 위장  전입하여 강남에 있는 중학교에 다녔었다. 부유한 친구들의 놀림과 쌀쌀맞고 냉정한 룸메이트 리사와의 갈등 속에서도 문자 할머니와 하숙집 사람들, 그리고 첫사랑 순신과의 추억은 그 시절이나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를 버틸 수 있게 해준 힘이었다. 그러나 믿었던 친구에 의해 누명을 쓰고 중학교를 자퇴한 뒤, 다시 석모도로 돌아가야 했던 영두는 자신의 시간에서 그 시절을 통째로 지웠다. 사과 받지 못한 채 회복되지 못한 상처를 마음속에 묻어버린 영두는 그로 인해 힘들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 다짐했는데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어느새 원서동과 창경궁을 수시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은 계속해서 영두에게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와 의문을 던져준다.


  소설을 다 읽은 후 아직도 마음에 남는 부분이 있다. 영두가 순신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성당 앞에서 구원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는 장면이다. 낙원 하숙에 살게 되면서 문자 할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영두는 얼마 동안 할머니 대신 야시장에 가서 일수를 받아야 했다. 10대의 어린 소녀가 거친 시장 상인들에게 돈을 받아내야 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지만, 동행해 준 순신 때문에 영두는 힘들지 않았다. 아니 그 시간이 오히려 행복했다. 그러나 원서동을 떠나오면서 아름다운 추억과 그리움을 지워버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뭐라고?”

나는 얘가 귓구멍이 막혔나 싶어서 어깨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고 사랑한다고, 안 들려?” 하고 외쳤다. 순신은 양쪽 다리로 자전거를 지탱하더니 핸들바를 놓고 뒤돌아 나를 꽉 안았다. 나는 좋은 부분을 오려내 남기지 못하고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이해한다. 소중한 시절을 불행에게 다 내주고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리움과 죽도록 싸워야 하는 사람들을. 156.p

 

구원에 대해 배워.” 나는 성당에서 늘 들었던 단어를 답했다.

구원이 뭔데?”

어려운 질문이었다. 누가 그것에 답을 할 수 있을까. 157.p

 

  하숙집 주인이었던 문자 할머니 또한 영두와 비슷한 또래일 때, 이곳 창경궁 온실에서 가족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로 인해 일본으로 떠나지 못하고 서울에 남게 되면서 또 다른 인연과 사연을 만들어갔다. 같은 장소가 각각의 사람들에게 다른 추억과 아픔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하나의 장소는 고통과 회복을 모두 품고 있는 연리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창경궁에 가보았는가. 그 안에 있는 춘당지 앞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본 적이 있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거침없이 달리는 차들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라진다. 하늘은 뚫려 있는데 바깥과 완벽히 차단된 채 시간을 돌아서 과거로 가서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창경궁은 우리 궁궐 중 유난히 슬픔과 서러움을 많이 품고 있는 곳이다. 과거 궁궐과 그곳의 나무와 꽃들과 호수, 벌레와 동물들은 뒤주에 갇혀서 죽어가는 사도세자의 신음을 들었을 것이다. 조선의 궁궐을 오락 시설물로 변질 시키려고 내농포(임금이 직접 밭을 일구고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던 곳)를 헐어버리고 호리병 모양의 춘당지를 조성하는 일제의 횡포를 보았을 것이며, 동물원과 놀이터를 조성하여 유원지로 만드는 과정을 모두 겪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상처와 아픔은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공간도 상처 받고 땅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식물과 동물, 그곳의 공기와 흙 등 모든 존재가 함께 아픔을 겪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영두의 아픔은 동생과 아버지를 눈앞에서 잃고 국적을 속인 채 살아가야 하는 문자 할머니에게로 이어지고, 전쟁 중 온실 바닥에 묻힌 채 은폐 된 사람의 죽음으로 연결되며,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실어증에 걸린 친구와 그 친구를 도와주고 싶어 안타까워하는 어린 산아까지 연결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고통과 상처를 받는다.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아픔을 마주하며 괴로워한다. 그것을 깔끔하게 해결할 방법도 많지 않다. 안타깝지만 스스로 조금씩 덜어내거나 잊어가면서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려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꿋꿋하게 살아간다. 창경궁처럼. 그곳의 온실과 춘당지처럼. 상처를 주었던 곳이 또 위로를 주는 장소가 되기도 했던 것처럼


  나에게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원서동의 창경궁을 통해 상처와 치유, 시간에 대한 사유로까지 이어지게 해준 소설이었다. 다만 한 가지 역사적 고증에 따른 당시 주요 인물에 대한 편향된 시각과 온실을 만들게 된 배경 중 일부 배제된 사실로 인해 역사를 왜곡했다는 견해를 받을 수 있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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