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 -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김선우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비채 / 2008년 12월
평점 :
휴일을 제외하고 날마다 하루에 한 번씩 우리집에 다녀가시는 분이 계시다.
신문을 가지고 오시는 집배원 아저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늘처럼 매서운 바람이 부는 날이나
우체부 아저씨는 어김없이 산골 마을 맨 끝자락에 위치한 우리 집으로 날마다 신문을 나른다.
나는 아저씨가 오실 때쯤이면 귀를 쫑끗 세우고 있다가 오토바이 소리에 쏜살같이 현관문을 밀치고 뛰어나간다.
더운 날에는 시원한 음료캔을 들고, 오늘처럼 강풍 이는 날에는 따뜻한 호빵을 싼 비닐을 들고 한걸음에 뛰어간다.
내가 뛰는 이유는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아저씨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서,
차곡차곡 스크랩하는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100편'을 빨리 읽기 위해서이다.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는 조선일보에 연재되어 화제를 모은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100편' 중 50편을 골라 시집으로 엮은 책이다.
이 책은 한국 현대시 100년 기념으로 우리 시대 대표 시인들이 추천한 사랑시와 시평, 일러스트로 구성되었다.
책에는 정호승, 함민목, 김소월, 문태준, 한용운, 황동규, 김남조, 신경림, 유치환 등의 아름다운 사랑시가 실려 있다.
'사랑'을 키워드로 한 50편의 시를 천천히 아주 느리게 음미하며 읽었다.
골짝도 깊이 잠든 겨울밤,
간헐적으로 들리는 스산한 바람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로 밤의 정적을 깨우며 읽었다.
나에게 시는 어렵다.
밑도 끝도 없이 잘라놓은 짧은 글귀를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딴에는 시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시인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서,
부러 깊은 밤시간을 택해서 읽었으나 여전히 어려웠다.
하지만 장석남 시인과 김선우 시인이 들려주는 시평이 시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며 시에게로 한발자국 이끌어 주었다.
책으로 만나기 전 신문을 통해 읽을 때에도 맛깔난 시평에 매료되었고,
시 못지 않게 좋은 해설을 한 번 읽고 버리기가 아쉬워 스크랩을 시작했다.
두 시인의 시평은 자신들의 내밀한 시적 경험을 풀어놓으며 시를 돋보이게 해준다.
시의 뒷이야기, 시에 얽힌 사연, 시의 탄생 배경, 작가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준다.
두 시인의 도움으로 독자들은 시의 맛과 멋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친근감 있는 시, 마음으로 읽는 시를 가능하도록 해준다.
50편의 시는 저마다 고유의 느낌과 향취를 풍긴다.
따뜻하고 유쾌한 사랑시가 있는가 하면,
그리움으로 가슴 저미는 시가 있으며,
애틋한 사랑시가 있고,
지독하게 고독하고 쓸쓸한 시도 있고,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
감미롭고 달콤하게 사랑을 노래한 시까지
모두 저마다 특유의 언어로 절정의 연금술을 자랑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면 좋은 책이다.
가을에 읽으면 가을의 맛이 나고,
겨울에 읽으면 겨울을 맛을 내는,
계절에 상관없이 독자들을 사랑의 심연으로 초대하는 아름다운 시집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하게 추억 속을 거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