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망이다
제프 헨더슨 지음, 나선숙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올들어 벌써 '희망'을 말하는 책을 여러권 읽었고 앞으로도 읽을 것이다.

희망을 주제로 한 책들은 대체로 희망으로 향하는 방향을 제시하거나,

희망을 품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져야 함을 말하는 책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온몸으로 희망을 말하며 자기 자신이 희망이라고 자신있게 외친다.

책마다 희망을 길어 올리는 방법이 다양한 만큼 내게 전달되는 희망의 감도도 저자에 따라 모두 다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프고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며 감동적으로 희망을 말하는 이 책은

희망의 교과서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나는 희망이다]의 제프 핸더슨은 애초에 희망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태생부터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가난과 범죄가 만연한 흑인 동네에서 흑인으로 태어난 제프 핸더슨을 기다리는 것은 가난과 멸시와 편견, 그리고 홀어머니다.

아버지의 부재와 가난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열망으로 가득하지만 현실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도둑질밖에 없다.

그에게 도둑질은 하나의 습관, 자연스런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제프 핸더슨은 샌디에이고로 이사하면서 마약 밀거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마약을 직접 조제, 거래하여 어린 나이에 샌디에이고 최고의 마약 딜러가 된다.

많은 돈을 벌어 비싼 차와 향략을 일삼지만 그에게 죄책감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스물네 살에 체포되어 19년 7개월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마당 쓸기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주방으로 쫓겨난다.

주방이 제프에게 운명의 장소가 될 줄은, 새로운 전환점이 될 줄은, 천직을 발견하게 되는 장소가 될 줄은 그 자신도 몰랐다.

증기와 그을음으로 가득한 거대한 주방에 갇힐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새로운 꿈을 발견하게 된다.

그에게 주방은 행운이다. 행운은 이처럼 항상 보기 좋은 모양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지저분하고 볼품없는 포장에 싸여 정체를 살짝 숨기고 다가온다.

어쨌든 괴로울 줄 알았던 주방에서 그는 요리의 세계에 빠진다.

 

요리에 매료되어 요리를 배우는 과정,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출소 후 요리사가 되는 꿈을 키우는 과정,

출소후 심한 텃세와 모략, 전과자에 대한 경계와 불신은 끝 간 데 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제프의 열정과 집념이 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도 남았기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모두를 극복하고

마흔두 살에 수백 명을 책임지는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의 총주방장이 된다.

 

최악의 환경과 전과자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강인한 정신력을 기르게 해준 것이다.

인간이 극복하지 못할 환경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이 극복하지 못할 약점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제프.

그는 절망이 기다리는 교도소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거둬 그것을 나누는 희망 전령사가 되었다.

그가 퍼뜨리는 희망의 씨앗이 두루 사방에 퍼져 어렵고 불행한 청소년들이 꿈을 틔우게 되기를 희망한다.

나는 희망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제프 헨더슨은 환경을 탓하는 청소년들의 좋은 롤 모델이다.

절망에서 기적을 일군 제프 헨더슨, 그는 분명 희망이다.

나도 누군가의 가슴에 희망으로 남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인식의 위대한 도전
임진국 지음 / 북오션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교야구가 한참 인기를 모았던 시절 동대문구장을 꽤나 열심히 찾던 극성팬이었다. 

지금 기억나는 야구명문고는 인고와 동산고, 선린상고와 천안북일고 정도.

프로야구가 창단된 원년에는 야구장에서 살다시피하며 얼굴을 까맣게 그을릴 정도로 야구를 좋아했다.

앉았다 하면 야구 얘기, 모였다 하면 선수들 이야기로 즐거워하던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김인식의 위대한 도전]은 빛바래 희미해진 지난날의 감흥을 되살려주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행복한 3월을 안겨준 '국민 감독' 김인식의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WBC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은 김인식 감독과 젊은 선수들로 인해 우리는 살맛나는 3월과 한목소리로 응원하는 감격을 누렸다.

한국 야구는 꽃샘추위도 물러가게 할 만큼 국민들 가슴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세계는 물론 우리 국민들까지 깜짝 놀란 WBC 준우승!

비록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게 한 준우승이지만 우리 모두는 우승보다 값지고 귀한 준우승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메이저리그와 일본 감독이 동시에 인정한 엄연한 사실이니까.

 

[김인식의 위대한 도전]의 임진국 저자는 20년간 스포츠 기자로서 이름을 날린 베테랑 기자다.

야구와 특히 인연이 많은 저자는 야구기자에서 야구부장, 야구전문기자를 거쳐 편집국장을 역임했고,

김인식 감독과는 수십 년간 인연을 맺어온 지기라고 한다.

저자가 김인식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20년 야구인생을 재조명한 것이 이 책이다.

그러나 야구 밖 김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빠진 것과

꼭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가 군데군데 보이는 것, 지나친 칭찬일색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김인식 감독을 한마다로 표현하자면 나는 인간적인 감독이라고 말하겠다.

그의 용병술은 사람을 신뢰하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야구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믿음 하에 한 번 기용한 선수를 끝까지 믿는 모습이나,

노장 선수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는 모습,

선수들의 가치를 진심으로 알아주고 인정하는 모습,

작전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작전을 맞추는 모습,

선수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되는 전략 등이 인간적인 감독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리더십을 다룬 많은 책들이 일 중심 보다 관계 중심을 강조하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하게 된 셈이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해 실수하더라도 질타하지 않고 끝까지 신뢰하고 독려하며 믿음야구를 보여주는

그는 겸손과 뚝심, 인내와 끈기를 소유한 지도자이기도 하다.

상당히 빠르고 날렵할 것 같은 야구 감독이지만 뭐든지 느리고 평소 말수가 적고 낯을 많이 가린다는 건 의외다.

그러나 신중히 생각하고 꼭 필요하다 싶은 말만 해서 좀처럼 말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대목은 믿음직스러움을 더해준다.

우리의 3월을 흥분과 감격으로 만들어준 것처럼 환화 이글스 팬들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주길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
에밀 부르다레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 민족 근현대사의 정치인 10명을 다룬 역사서를 읽자마자 집어든 책이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이다.

먼저 읽은 책이 근현대사의 중앙에서 활약한 정치인들의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민중들의 삶과 민속, 근대화되는 도시와 변하지 않는 시골의 풍경을 세밀히 담고 있다.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의 저자 에밀 부르다레는 프랑스 고고학자로

경의선 등 우리나라 철도가 놓이는 데 기술자문을 하러 왔던 인물이다.

부르다레는 대한제국을 두 차례, 4년간 체류하면서 프랑스 철도와 광산 개발에 관련된 기술자문을 하면서

대한제국 당시의 자연과 환경, 민중의 생활상과 제도, 시대적 분위기 등을 관찰기록해 1904년 프랑스에서 펴냈다.

1900년부터 서울에서, 평양, 금강산, 목포, 군산, 강화, 마포, 제물포로 국토를 종단한 기록이다.

 

이 책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몇 해에 대한 관찰로서 주목할 만하며

'협률사 내부 구조와 공연 레퍼토리’, '궁중 연회 식순'의 상세한 기록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이 지닌 또 다른 가치는

여행 하면서 꼼꼼히 기록한 저자 덕분에 구전으로도 전해지지 않는 여러 사실들을 접할 수 있는 것,

오늘날 잊혀지거가 사라진 풍습을 옆에서 보는 듯 생생하게 옮겨놓은 점,

민중들의 생활상을 소상히 기록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구중궁궐이나 양반 사대부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충분할 정도로 많지만,

일반 백성들의 생활상이나 도시와 시골 풍경, 자연의 모습, 서민들의 문화, 풍속 등을 다룬 책은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은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게 서민들의 생활을 묘사하고 있으며 설화까지 전해준다.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을 따라 당시의 민중 속으로 들어가보자.

거기엔

끼니를 굶어가며 굿을 하는 궁핍한 백성이 있고,

우리의 무속신앙을 야만적 신앙으로, 요란한 굿판은 쇼로 간주하는 이방인이 있다.

전차를 타고 교외로 놀러 나가 유람 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있고, 

가축을 먹이는 모습과 가축을 죽이는 모습이 있고,

마구잡이식 벌목으로 황폐해진 산야가 있고,

양반들의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있고,

물고기를 낚아 내장도 꺼내지 않고 양념에 찍어 뼈째 씹어먹는 낚시꾼들이 있고,

코를 찌르는 악취와 불결한 위생 상태가 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오두막들이 있고,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절절 끓는 온돌방이 있다.

아련한 그시절의 풍경이다.

 

이뿐인가.

밤마다 도시 전체를 울리는 다듬이질 소리가 들리고,

낮에는 '물러 서라'는 행차소리가 들리고,

'이리 오너라'며 주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공방의 망치질 소리가 들리고,

소몰이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무당의 징소리와 북소리가 들리고,

청년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 시절 조선 민중이 내는 그리운 소리들이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높은 식견을 쌓은 저자는

일본의 근대화로 포장된 식민지 침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

"프랑스 또한 제국주의 국가로서 전 세계에서 못된 짓을 자행했지만,

저자는 자국의 이해관계를 떠나 반제국 주의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일제 식민통치가 앗아간 것이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도 모르는 민중의 이야기와 생경한 풍경을 담은 흑백사진을 선물한 백안의 지식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유럽인이라는 편견 없이 객관적이고 솔직한 시선으로 대한제국을 기록한 점도 마음에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고생담은 성공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여겨진다.

그래서 미화되어 민초들 앞으로 나오는 성공담도 더러 있다.

고생은 인생을 기름지게 해주는 자양분인 것이 사실이지만 감추고 싶거나 잊고 싶은 기억을

포함하기 때문에 포장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고생담이 아니더라도 드러내놓길 꺼리는 삶의 파편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마주하기 차마 두렵고 떨리는 과거를 무의식 속에 가두고 빗장을 굳게 채운다.

 

신경숙이 그토록 마주하길 꺼려했던 기억은 유년과 성년 사이의 공백기간, 열여섯에서 열아홉까지 4년의 시간이다.

유신말기에 낮에는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니던 4년여 세월은

서른일곱 개의 방이 미로 속에 있던 붉은 벽돌집 안에 그녀의 외딴방이 있던 시절이며,

아프고 잔인했던 시절이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문학소녀의 꿈이 영글어 가던 시절이다. 

[외딴방]을 통해 그녀는 잊고 싶었던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그때 그 시절 그 장소로 되돌아가서 그 쓰라린 현장을

다시금 언어로써 복원해낸다.

 

이 가난하고 아픈 서사를 촉발한 인물은 산업체특별학급의 친구 하계숙이다.

하계숙은 유명한 소설가가 된 '나'에게 전화를 걸어

"너는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네게 그 시절이 있었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니?

넌 우리들하고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더라"는 말로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신경숙이 못살던 시절과 그때의 동료들을 창피해서 가슴에 묵혀두었던 것만은 아니다.

희재언니의 끔찍한 죽음을 저도 모르게 방조한 충격이 크게 자리하기 때문이다. 

 

'나'와 희재언니, 그리고 하계숙은 유신말기 산업혁군의 풍속화 속 주인공이다.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는 70년대 말, 80년대 초 한국 노동현장이 담긴 모습이다.

열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 노조에 대한 회사와 당국의 탄압이 극심했던

당시 노동자들의 생활현장과 작업현장을 생생하게 그린 [외딴방]은 드물게 '감동적인 노동소설'이라는 평을 듣는다.

민중문학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의 억압과 빈곤을 감동적으로 그려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꿈을 성취한 '나'의 성공에는 본인의 노력과 재능도 기여하지만

최홍이 선생님과의 만남과 큰오빠의 뒷바라지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큰오빠의 눈물 겨운 고생은 명치끝이 아파올 정도로 가슴 저리다.

큰오빠 어깨 위에 얹혀진 힘겨운 삶의 무게가, 장남의  의무를 짓누루는 고단한 일상이 너무도 측은하다.

마치 '나'를 돌봐주려고 이 세상에 온 사람 같은 큰오빠의 실연과 맞선 이틀 후에 올리는 약혼식은 슬픔의 정점을 이룬다.

 

계산해보니 신경숙과 나는 같은 해에 고등학교를 입학했다.

그녀의 늦은 입학과 나의 이른 입학이 같은 해 입학을 부른 것이나 그녀는 행운처럼 최홍이 선생님을 만났고

운명처럼 헌신적인 큰오빠를 가졌다.

운명도 행운도 비껴갔던 내 지난날은 서러운 눈물을 소리없이 흘리게 한다.

성공한 작가의 고백성사를 부러움으로 바라보는 까닭은 내 안에 숨어있는 외딴방 때문이다. 

외딴방의 빗장을 열어젖힌 그녀는 이제 한결 자유로울 것이다.

그곳에 갇힌 희재언니를 불러낸 그녀는 이제 통과했던 4년의 시간을 되찾아 열다섯 살 뒤로 열여섯을 잇는다. 



그 시절의 외딴방으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그녀가 잃었던 생의 시간을 되찾은 후 나직히 말을 건넨다.

외딴방에 움크리고 있는 또 다른 나를 위해 이제 그만 빗장을 열라고.

외딴방을 투영할 현재를 갖게되면 그러겠다고 나는 그녀 대신 내 안의 나에게 약속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 인물로 읽는 한국사 (김영사) 10
이이화 지음 / 김영사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이화 선생님의 <인물로 읽는 한국사>시리즈는 인물을 통해 시대사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역사 속 인물을 재조명하는 책들이나 이이화 선생님의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를 읽다보면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정신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광해군이 아마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광해군은 동생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시킨,

부모도 모르고 사은의 나라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왕이라는 오명을 벗고

임진왜란 기간 동안 많은 업적을 세우고, 전란 후 페허가 된 나라를 수습, 재건하고, 대동법을 실시하며,

등거리외교를 통해 실리를 추구한 탁월한 외교전문가로 되살아났다.

광해군의 이러한 평가는 인조의 자리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다.

동인이나 서인의 입장도 아닌 조선이라는 국가의 관점에서 그를 평가한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 속 인물을 평가할 때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는 이이화 선생님의<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 열 번째 권으로,

근대와 현대에 활동한 열 명의 정치가들을 담았다.

이들은 모두 한국 근대와 현대의 주역이거나 그에 맞선 인물들이다.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는 첨예한 갈등과 대립으로 정치적 혼돈과 이데올로기가 극심했던 시기다.

저자는 식민지를 벗고 해방이 되었으나 남과 북이 갈라지는 아픔을 겪고,

동족상잔의 비극과 남북이 각각 독재권력 정권을 유지하며 대결구도로 접어든 시기의 정치가를 모았다.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는 이승만, 박정희, 신익희, 조병옥, 조병암, 장면, 김두봉, 김일성, 허헌, 백남운을

네 부류로 나누어서 소개한다.

우리는 이들이 써놓은 역사 위에 오늘의 역사를 이어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역사를 달리 썼다면 오늘의 역사 또한 달라졌을 것이고 이들에 대한 평가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만약 이승만의 정치적 맞수 신익희가 석연찮은 죽음을 맞지 않았다면,

조봉암이 간첩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지 않았다면 건국논쟁의 주인공이 되어 국민을 혼란 속에 몰아넣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 역시 이승만의 장기집권 도모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다면 독재는 희석되고 경제대통령으로 부각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역사에서 '가정'은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책이 다룬 열 명의 정치가 중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허헌을 자세히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한 사람의 생애와 그와 연관된 사건이나 시대를 읽는 재미는 역사책을 즐겨읽는 이유가 되어준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과 관련자 14인을 포함한 47인에 대한 변론을 맡은 허헌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법조인이다.허헌은 변호사 업무 외에 여러 사업을 벌이고 교육 사업에도 열중한다. 

구미 유학의 뜻을 품고 떠난 미국에서 유학의 꿈을 접고 6개월 동안 여러 나라를 시찰하다가

벨기에에서 개최된 국제약소민족대회와 반제동맹 창립대회에 참관한다.

이 대회는 사회주의권에서 주도한 것으로 참가 뒤 새로운 현실관을 갖게 된다.

그는 식민지 시기 한 번도 일제와 타협한 적이 없는 지조를 지닌 인물이다.

일제에 의해 모진 고문과 딸의 망명 혐의도 죄명에 포함 된 옥고를 58세의 늙은 몸으로 치르나

김일성대학 총장으로 개학식에 참석하려고 대령강을 건너다가 범람한 홍수로 배가 뒤집혀 익사한다.

저자는 "그가 줄기차게 민족운동과 민권운동을 벌이고 난 뒤, 마지막 인민공화국에 참여한 사실을 두고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혼란스럽다." 라고 그에 대한 평가를 아낀다.

 

역사 중 근현대사는 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나  이 책을 통해 흥미롭게 근현대사를 살필 수 있었다.

인물로 읽는 한국사는 한 인물과 그와 관련된 또 다른 인물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준다.

허헌이 그의 딸 허정숙과 이용익을 자연스럽게 내 궁금증 안으로 불러들인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역사책만 주는, <인물로 읽는 한국사>시리즈만 갖고 있는 커다란 매력이다.

두 사람을 다룬 책을 살피러 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