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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최후의 숨결
에밀 부르다레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 민족 근현대사의 정치인 10명을 다룬 역사서를 읽자마자 집어든 책이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이다.
먼저 읽은 책이 근현대사의 중앙에서 활약한 정치인들의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민중들의 삶과 민속, 근대화되는 도시와 변하지 않는 시골의 풍경을 세밀히 담고 있다.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의 저자 에밀 부르다레는 프랑스 고고학자로
경의선 등 우리나라 철도가 놓이는 데 기술자문을 하러 왔던 인물이다.
부르다레는 대한제국을 두 차례, 4년간 체류하면서 프랑스 철도와 광산 개발에 관련된 기술자문을 하면서
대한제국 당시의 자연과 환경, 민중의 생활상과 제도, 시대적 분위기 등을 관찰기록해 1904년 프랑스에서 펴냈다.
1900년부터 서울에서, 평양, 금강산, 목포, 군산, 강화, 마포, 제물포로 국토를 종단한 기록이다.
이 책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몇 해에 대한 관찰로서 주목할 만하며
'협률사 내부 구조와 공연 레퍼토리’, '궁중 연회 식순'의 상세한 기록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이 지닌 또 다른 가치는
여행 하면서 꼼꼼히 기록한 저자 덕분에 구전으로도 전해지지 않는 여러 사실들을 접할 수 있는 것,
오늘날 잊혀지거가 사라진 풍습을 옆에서 보는 듯 생생하게 옮겨놓은 점,
민중들의 생활상을 소상히 기록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구중궁궐이나 양반 사대부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충분할 정도로 많지만,
일반 백성들의 생활상이나 도시와 시골 풍경, 자연의 모습, 서민들의 문화, 풍속 등을 다룬 책은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은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게 서민들의 생활을 묘사하고 있으며 설화까지 전해준다.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을 따라 당시의 민중 속으로 들어가보자.
거기엔
끼니를 굶어가며 굿을 하는 궁핍한 백성이 있고,
우리의 무속신앙을 야만적 신앙으로, 요란한 굿판은 쇼로 간주하는 이방인이 있다.
전차를 타고 교외로 놀러 나가 유람 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있고,
가축을 먹이는 모습과 가축을 죽이는 모습이 있고,
마구잡이식 벌목으로 황폐해진 산야가 있고,
양반들의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있고,
물고기를 낚아 내장도 꺼내지 않고 양념에 찍어 뼈째 씹어먹는 낚시꾼들이 있고,
코를 찌르는 악취와 불결한 위생 상태가 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오두막들이 있고,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절절 끓는 온돌방이 있다.
아련한 그시절의 풍경이다.
이뿐인가.
밤마다 도시 전체를 울리는 다듬이질 소리가 들리고,
낮에는 '물러 서라'는 행차소리가 들리고,
'이리 오너라'며 주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공방의 망치질 소리가 들리고,
소몰이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무당의 징소리와 북소리가 들리고,
청년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 시절 조선 민중이 내는 그리운 소리들이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높은 식견을 쌓은 저자는
일본의 근대화로 포장된 식민지 침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
"프랑스 또한 제국주의 국가로서 전 세계에서 못된 짓을 자행했지만,
저자는 자국의 이해관계를 떠나 반제국 주의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일제 식민통치가 앗아간 것이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도 모르는 민중의 이야기와 생경한 풍경을 담은 흑백사진을 선물한 백안의 지식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유럽인이라는 편견 없이 객관적이고 솔직한 시선으로 대한제국을 기록한 점도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