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고생담은 성공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여겨진다.

그래서 미화되어 민초들 앞으로 나오는 성공담도 더러 있다.

고생은 인생을 기름지게 해주는 자양분인 것이 사실이지만 감추고 싶거나 잊고 싶은 기억을

포함하기 때문에 포장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고생담이 아니더라도 드러내놓길 꺼리는 삶의 파편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마주하기 차마 두렵고 떨리는 과거를 무의식 속에 가두고 빗장을 굳게 채운다.

 

신경숙이 그토록 마주하길 꺼려했던 기억은 유년과 성년 사이의 공백기간, 열여섯에서 열아홉까지 4년의 시간이다.

유신말기에 낮에는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니던 4년여 세월은

서른일곱 개의 방이 미로 속에 있던 붉은 벽돌집 안에 그녀의 외딴방이 있던 시절이며,

아프고 잔인했던 시절이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문학소녀의 꿈이 영글어 가던 시절이다. 

[외딴방]을 통해 그녀는 잊고 싶었던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그때 그 시절 그 장소로 되돌아가서 그 쓰라린 현장을

다시금 언어로써 복원해낸다.

 

이 가난하고 아픈 서사를 촉발한 인물은 산업체특별학급의 친구 하계숙이다.

하계숙은 유명한 소설가가 된 '나'에게 전화를 걸어

"너는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네게 그 시절이 있었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니?

넌 우리들하고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더라"는 말로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신경숙이 못살던 시절과 그때의 동료들을 창피해서 가슴에 묵혀두었던 것만은 아니다.

희재언니의 끔찍한 죽음을 저도 모르게 방조한 충격이 크게 자리하기 때문이다. 

 

'나'와 희재언니, 그리고 하계숙은 유신말기 산업혁군의 풍속화 속 주인공이다.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는 70년대 말, 80년대 초 한국 노동현장이 담긴 모습이다.

열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 노조에 대한 회사와 당국의 탄압이 극심했던

당시 노동자들의 생활현장과 작업현장을 생생하게 그린 [외딴방]은 드물게 '감동적인 노동소설'이라는 평을 듣는다.

민중문학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의 억압과 빈곤을 감동적으로 그려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꿈을 성취한 '나'의 성공에는 본인의 노력과 재능도 기여하지만

최홍이 선생님과의 만남과 큰오빠의 뒷바라지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큰오빠의 눈물 겨운 고생은 명치끝이 아파올 정도로 가슴 저리다.

큰오빠 어깨 위에 얹혀진 힘겨운 삶의 무게가, 장남의  의무를 짓누루는 고단한 일상이 너무도 측은하다.

마치 '나'를 돌봐주려고 이 세상에 온 사람 같은 큰오빠의 실연과 맞선 이틀 후에 올리는 약혼식은 슬픔의 정점을 이룬다.

 

계산해보니 신경숙과 나는 같은 해에 고등학교를 입학했다.

그녀의 늦은 입학과 나의 이른 입학이 같은 해 입학을 부른 것이나 그녀는 행운처럼 최홍이 선생님을 만났고

운명처럼 헌신적인 큰오빠를 가졌다.

운명도 행운도 비껴갔던 내 지난날은 서러운 눈물을 소리없이 흘리게 한다.

성공한 작가의 고백성사를 부러움으로 바라보는 까닭은 내 안에 숨어있는 외딴방 때문이다. 

외딴방의 빗장을 열어젖힌 그녀는 이제 한결 자유로울 것이다.

그곳에 갇힌 희재언니를 불러낸 그녀는 이제 통과했던 4년의 시간을 되찾아 열다섯 살 뒤로 열여섯을 잇는다. 



그 시절의 외딴방으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그녀가 잃었던 생의 시간을 되찾은 후 나직히 말을 건넨다.

외딴방에 움크리고 있는 또 다른 나를 위해 이제 그만 빗장을 열라고.

외딴방을 투영할 현재를 갖게되면 그러겠다고 나는 그녀 대신 내 안의 나에게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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