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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어서 가서 한숨자라고 밀어대는 통에 엄마를 태운 버스가 떠나는 것도 못 보고 터미널을 나왔다.
엄마가 다녀가시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오늘도 가슴에 황량한 바람이 분다.
집으로 가려다 장릉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평일 한낮의 장릉은 한적했다.
어린 왕 단종이 누워있는 맞은편에 앉아서 내리쬐는 햇살을 그대로 받았다.
뜨거운 햇살을 저항할 의지도, 눈을 뜰 힘도 없어 눈을 감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핸드폰에서 열두시라고 알려준다.
엄마를 태운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다.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엄마, 엄마도 버스에서 눈좀 붙여.
엄마를 배웅하는 마음이 이렇듯 휑한데 엄마를 잃어버린 너와 너희 형제들, 그리고 네 아버지 마음은 오죽할까.
너의 엄마의 부재는 내 마음을 자꾸만 엄마에게 향하게 만든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면 새벽녘이라도 전화를 걸어 별고 없는지 확인하게 되고,
궂은 날에는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누르며 눈물을 삼킨다.
가까이 살 때 잘해드리지 못한 마음이 불쑥불쑥 차올라 괴로울 때도 있다.
네가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엄마의 소중함을 알았던 것처럼, 나도 네 엄마의 부재를 통해서 엄마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옆에 있을 때 몰랐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은 너와 너희 형제들, 그리고 네 아버지를 깊은 후회 속으로 밀어넣는 걸 보았다.
아직 사랑할 시간이 많이 남았음을 깨우쳐줘서 고맙다고, 회한의 눈물을 조금이라도 줄여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지만 너를 아프게 할 것 같아 참으련다.
너의 엄마와 내 엄마는 참 많이 닮아 있다.
우선 나이가 비슷하고, 비슷한 나이에 결혼한 것이 닮았고, 한글을 겨우 읽는 게 비슷하고,
가난한 살림에 5남매를 번듯하게 키운 것이 닮았고,
당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자식들에게 내어준 것과 자식들이 엄마를 갉아먹으며 산 게 닮아 있다.
너의 엄마 말투와 희생은 내 엄마 너무 똑같다.
너의 엄마의 말인지 내 엄마의 말인지, 너의 엄마의 행동인지 내 엄마의 행동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그래서 많이 울었다. 내 엄마가 나에게 하는 소리 같아 너를 따라 울었고,
너희 가족이 추억하는 엄마의 모습 속에 내 엄마가 들어있어서 가슴이 미어졌다.
엄마 집과 20분 거리에 살 때 엄마는 우리집에 오시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일년에 1번 정도 오시더라도 가져온 김치만 내려놓고 선걸음으로 돌아가셨다.
마흔 넘은 딸네집 냉장고에는 엄마가 담근 김치가 종류별로 다있다.
포기김치를 비롯해 사위가 좋아하는 물김치, 딸이 좋아하는 열무김치와 알타리, 손주들이 잘 먹는 깍뚜기까지 없는 게 없다.
일년에 1번 정도 딸네 오시는 날은 가져가라고 해도 안 가져간 김치를 직접 가져 오시는 날이다.
어렵게 걸음 한 날 함께 차도 마시고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먹으면 좋으련만 엄마는 언제고 앉지도 않고 가신다.
불편하단다.
- 딸네집이 왜 불편해?
- 내 집이 편해. 집에 가서 할일도 많고...
그랬던 엄마가 우리가 산간 벽지로 이사한 재작년부터는 내 집에서 며칠씩 묵으신다.
작년에는 감자를 심는 초봄부터 콩을 터는 초겨울까지 매달 내 집에 오셨다.
오실 적마다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지내면서 밭일을 하신다.
엄마가 오시면 엄마를 따라 밭일을 하느라 나도 앉아볼 틈 없이 바빠진다.
어둑어둑한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 밭으로 나가는 엄마를 말린 일이 있다.
- 뜨거운 대낮에 하는 것 보단 이게 낫다. 너는 더 자. 애들 학교 가는 거나 신경 쓰고 네 할일이나 해.
그러면 못이기는 척 다시 눕는다.
나는 참 철딱서니 없는 딸이다.
이사한 첫해, 집 옆 척박한 땅을 엄마와 둘이서 개간했다.
여러해 전에 누군가 밭으로 사용한 흔적이 있긴 하나 오래 묵혀두어서
웃자란 들풀이 무성하고 흙보다 돌이 더 많은 척박한 땅을 호미 한 자루로 옥토로 바꿔놓았다.
복 중 뙤약볕을 한 장 수건으로 가리고 새벽부터 서산마루로 해가 넘어갈 때까지 김을 맸다.
호미자루가 몇 개씩 부러져나가고, 호미끝이 휘어지고, 손가락마다 물집이 잡히고, 물집이 터지고,
허리가 끊어져나가는 고통을 견디며 김을 맸다.
엄마는 허리가 아플 때마다 한번씩 일어나 허리에 손을 짚고 뒤를 돌아보고는
아, 이쁘다 꼭 쌀밥 같다, 너랑 나랑 둘이서 쌀밥 같이 맨들어놨다, 하셨다.
너의 엄마가 이야기꾼이라면 내 엄마는 비유꾼이다.
들풀만 무성했던 척박한 땅을 판판하게 일궈놓고 흰쌀밥에 비유하신다.
언젠가 한번은 마당에서 풀을 뽑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 얘좀 봐 멱살만 잡아뜯고 있네, 그럼 하나마나여.
멱살만 잡아 뜯는다는 엄마의 표현에 나는 동네가 떠나갈 듯 웃었다.
밭을 일구는 것으로 시작된 엄마의 내 집 행차는 감자를 놓을 때, 옥수수를 심을 때, 고추모를 심을 때,
콩을 놓고, 고구마와 배추를 심고, 콩을 털고, 김장을 할 때까지 이어졌다.
작년, 감자 캘 엄두가 안 나서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당장 내려오신단다.
다음 날 첫차로 도착한 엄마를 마중나갔다.
일흔이 넘은 몸으로 먼길 오는 것도 힘겨울텐데 엄마는 커다란 가방을 3개나 들고 내리셨다.
오실 때마다 가방 서너개는 기본이다.
엄마의 가방은 젊은 내가 들기에도 무거워 질질 끌다시피해서 차에 실었다.
이걸 엄마가 들고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 뭐가 이렇게 무거워요?
- 풀어놓으면 먹을 것 하나도 없는데 무겁기만 한거여
- 이걸 터미널까지 어떻게 들고 갔대?
-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들고 가느라고 죽을뻔했다. 가면서 몇 번을 쉬었는지 물러.
- 다음부턴 옷가방 하나만 가지고 오세요.
- 변변한 것도 없이 무겁기만 한거여.
너의 엄마가 너희들 먹이려고 보따리를 이고, 지고, 들고, 메고, 그것도 모자라 속것에다 넣어가지고 서울역 앞에 내린 것과 내 엄마가 여행 가방 크기의 가방에 나와 내 새끼들 좋아하는 먹거리를 가득 담아 온 것이 흡사해 놀랐다.
내 엄마가 저기도 있었네, 하면서.
당신 입에 들어가는 것은 아까워하면서도 자식들 입에는 하나라도 더 넣어주려는 엄마의 사랑은 무거움도 힘듦도 능가한다.
네 오빠도 그 많은 짐을 보고 엄마가 이걸 어떻게 가져왔는지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던 것처럼 나도 그랬다. 너의 엄마가 아니었다면, 내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마 가져올 수 없었을 게다.
엄마만 오시면 집주변과 밭이 새롭게 변한다.
뒤곁 항아리들이 반짝반짝 윤이 나고, 들인지 밭인지 분간할 수 없던 밭들이 제모습을 찾는다.
콩밭은 콩밭 같아지고, 고추밭은 고추밭 같이 변하고, 옥수수밭은 옥수수밭 같아진다.
장정들도 힘든 일을, 아니 농기계로해야 될 일을 당뇨병을 앓는 몸으로,
비 오는 날에도 극구 말리는 나를 뒤로하고 우비 입고 장화 신고 밭으로 나가신다.
돌덩이 같은 감자 자루를 머리에 이고 가뿐 숨 몰아쉬며 멀리 떨어진 창고에 들이고,
행여 딸 힘들어할까봐 힘든 일은 아무도 모르게 새벽에 일어나 혼자 하시고,
밭일에 지쳐있는 딸 안쓰러워 세탁기 안에 든 빨랫감 꺼내 후다닥 빨아 널고,
당신 반찬 신경 안 쓰도록 아이들 태우러 간 사이에 김치찌개 한 냄비 끓여 놓고
내 반찬 신경 쓰지 마라. 난 이거랑 먹으면 된다, 하신다.
'나이에 장사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엄마는 내 집에만 오시면 철인으로 둔갑하신다.
밭일을 끝내고 다음번까지 먹을 김치와 밑반찬을 다 만들어 놓고 엄마는 올라가신다.
딸네 집에서 진액을 소진하고 올라가시면 엄마는 몇 날을 꼼짝못하고 앓아 눕는다.
호미질을 하도 해서 손가락 관절염까지 걸려 고생하면서도 나 걱정할까봐 숨기셨다.
지난 겨울 김장을 해주고 엄마가 올라간 다음 날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니 엄마 풍 맞은 것 같다, 니 엄마 입이 돌아갔어, 아버지는 가늘게 떨고 계셨다.
엄마가요? 왜요? 언제부터요? 병원 가보셨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병원에 가보시라는 말이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털석 주저앉아 엄마를 부르며 오래도록 흐느꼈다.
나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딸,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못난 딸이다.
내 입이 돌아갔다면 엄마는 한걸음에 달려오셨을텐데, 나는 상황을 핑계대며 엄마에게 달려가지 않았다.
엄마가 그지경인데도 나는 내 생활이 더 중요하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너의 엄마도 머리가 깨어지는 듯 아팠지만 너희들 걱정 할까봐 통증을 숨기고,
그 와중에 너희들 편하게 해주려고 서울에 올라오셔서 어이없게 실종되었다.
너는 엄마가 심상치 않다는 걸 짐작하고 걱정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괴롭고 마음이 아플거라 생각한다.
나도 아버지 전화를 받은 날 엄마에게 달려가지 않을 걸 두고두고 후회한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엄마의 얼굴을 무릎에 올려놓고 내려다보던 너처럼 내 무릎에 엄마를 누이고 싶다.
그리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싶다.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난 한 여인의 이야기를, 엄마의 멍에를 벗은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너희 가족이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인생도 중요하다고. 그 인생을 잘 들여다 보라고.
엄마는 희생만 하는 존재가 아니며 희생으로 엄마의 인생을 제한하지 말라고,
엄마도 보호받고 의지하고 싶은 연약한 존재라고,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은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너희 가족이,
아니 실종된 너의 엄마가 에둘러 알려주었다.
자식에게 다 파먹히고 그루터기만 남은 엄마의 앙상한 모습이 이제 보인다.
자식에게 다 내어주고 빈가슴이 된 엄마의 외로움이 이제야 들어온다.
같은 여자이면서 엄마의 희생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며 끝없이 받기만 원했다.
그러면서도 엄마처럼 내 자식에겐 온전히 나를 내어주지 않는 나는
엄마에겐 잔인하고 자식에겐 무심한 지독한 에고이스트이다.
허전하다.
엄마의 빈자리는 다녀갈수록 조금씩 커진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외롭게 살다간 어린 왕 무덤 위로
버스에 앉아 쓸쓸히 웃으며 손을 흔들던 엄마의 얼굴이 겹쳐지자 가슴에 격랑이 인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엄마를 태운 버스가 지나는 쪽을 향해 나직히 중얼거렸다.
엄마, 이번에 올라가서는 아프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