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머레이의 기도 응답의 비밀
앤드류 머레이 지음, 유정희 외 옮김 / 두란노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나에겐 간절히 응답을 기다리는 기도제목이 하나 있다. 이 문제를 놓고 여러달째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계속해서 침묵하신다. 언젠가 내 기도가 응답될 거라는 확신은 있지만 현실을 바라보면  마음이 급해져서, 가장 좋은 때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느냐고 자주 묻곤한다. 눈을 감고 엎드리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가도 현실을 바라보면 더딘 응답에 지쳐 나를 자책하기도 한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게 있어서 응답이 더딘 거야, 변화되지 못한 나 때문에 응답이 지연되는 거야, 모든 게 나 때문인거야, 라면서. 자책은 마음을 무겁게 하고 무거운 마음은 기도를 방해한다. 날마다 엎드리긴 하지만 중언부언 하는 날에는 기도 후에도 마음이 무거워 종일 찜찜한 기분으로 보낸다. 어느 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 조급함대신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답답해지고 가끔씩 우울해진다. 확신은 있지만 여전한 현실에 눌리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읽은 책이 두란노에서 발행한 [앤드류 머레이의 기도 응답의 비밀]이다. 책을 통해 평생 응답을 받은 저자의 기도와 내 기도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며 평소 나의 기도를 점검해 보기로 했다. 저자가 말하는 기도 응답의 비밀은 세 가지로,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과 중보기도의 능력이다. 십자가를 경험하는 기도,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기도, 중보기도가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의 기도 응답의 비밀]은 기도 응답을 받으려면 우선 십자가의 심오하고 소중한 진리를 알고 경험해야 한다고 말하며, 십자가의 능력과 응답받는 비결의 연결고리를 탁월하게 풀어낸다. 십자가의 능력을 다룬 1장을 읽는 동안 나에 대한 착각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동안 내 믿음이 썩 괜찮은 줄 알았는데 책은 정색하고 알려준다. 그렇지 않다고.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에 대해 죽고 세상에 대해 죽고 죄에 대해 죽으려는 갈망이 나에게 없다고 책은 확인시켜 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를 부인하셨듯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남에게 말해줄 수는 있지만, 막상 나를 부인하는 게 나는 싫다. 나를 부인하는 것, 죄악 된 본성과 싸우는 것, 내 전부를 버리고십자가를 지고 사는 게 나에게는 부담이고 짐이다. 모든 것을 전부 버리고 주님을 따르라고 요구하실까 두렵기까기 한 내가 응답을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며 모순이라는 걸 알았다. 어렵고 힘든 건 피하고 욕심을 채우는 기도, 쉽고 편한 길을 구하는 이기적인 기도, 주님을 따르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소중히 끌어안고 사는 나는 절대 믿음이 좋은 게 아니었다. 나는 지독한 에고이스트일뿐이다.

 

십자가의 교훈을 삶으로 실천하지 않고 십자가의 흔적을 지니지 못한 내 삶이 많이 부끄럽다. 이 부끄러움이 잠시 잠깐 머물다 사라질까 두렵다. 알긴 아는데 실천하지 못해서 딜레마에 빠질까 두렵다. 바울은 이를 간파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권면하고, 저자는  주님을 향한 내 사랑을 생각하지 말고, 성령을 통해 주신 나를 향한 주님의 큰 사랑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그리고 자신의 성령으로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덕분에 우리는 죄와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 앞에서 타인들을 위해 중보할 수 있는 것이다."

 

바라기는, 나를 도우시는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기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중보기도의 용사가 되기 원하며, 십자가의교훈을 알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 원한다. 그리고 내 기도가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기를, 기도에 걸맞는 삶으로 변화되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기도가 전부 응답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서 가서 한숨자라고 밀어대는 통에 엄마를 태운 버스가 떠나는 것도 못 보고 터미널을 나왔다.
엄마가 다녀가시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오늘도 가슴에 황량한 바람이 분다.
집으로 가려다 장릉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평일 한낮의 장릉은 한적했다.
어린 왕 단종이 누워있는 맞은편에 앉아서 내리쬐는 햇살을 그대로 받았다.
뜨거운 햇살을 저항할 의지도, 눈을 뜰 힘도 없어 눈을 감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핸드폰에서 열두시라고 알려준다.
엄마를 태운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다.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엄마, 엄마도 버스에서 눈좀 붙여.


엄마를 배웅하는 마음이 이렇듯 휑한데 엄마를 잃어버린 너와 너희 형제들, 그리고 네 아버지 마음은 오죽할까.
너의 엄마의 부재는 내 마음을 자꾸만 엄마에게 향하게 만든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면 새벽녘이라도 전화를 걸어 별고 없는지 확인하게 되고,
궂은 날에는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누르며 눈물을 삼킨다.
가까이 살 때 잘해드리지 못한 마음이 불쑥불쑥 차올라 괴로울 때도 있다.
네가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엄마의 소중함을 알았던 것처럼, 나도 네 엄마의 부재를 통해서 엄마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옆에 있을 때 몰랐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은 너와 너희 형제들, 그리고 네 아버지를 깊은 후회 속으로 밀어넣는 걸 보았다.
아직 사랑할 시간이 많이 남았음을 깨우쳐줘서 고맙다고, 회한의 눈물을 조금이라도 줄여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지만 너를 아프게 할 것 같아 참으련다.
너의 엄마와 내 엄마는 참 많이 닮아 있다.
우선 나이가 비슷하고, 비슷한 나이에 결혼한 것이 닮았고, 한글을 겨우 읽는 게 비슷하고,
가난한 살림에 5남매를 번듯하게 키운 것이 닮았고,
당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자식들에게 내어준 것과 자식들이 엄마를 갉아먹으며 산 게 닮아 있다.
너의 엄마 말투와 희생은 내 엄마 너무 똑같다.
너의 엄마의 말인지 내 엄마의 말인지, 너의 엄마의 행동인지 내 엄마의 행동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그래서 많이 울었다. 내 엄마가 나에게 하는 소리 같아 너를 따라 울었고,
너희 가족이 추억하는 엄마의 모습 속에 내 엄마가 들어있어서 가슴이 미어졌다.


엄마 집과 20분 거리에 살 때 엄마는 우리집에 오시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일년에 1번 정도 오시더라도 가져온 김치만 내려놓고 선걸음으로 돌아가셨다.
마흔 넘은 딸네집 냉장고에는 엄마가 담근 김치가 종류별로 다있다.
포기김치를 비롯해 사위가 좋아하는 물김치, 딸이 좋아하는 열무김치와 알타리, 손주들이 잘 먹는 깍뚜기까지 없는 게 없다.
일년에 1번 정도 딸네 오시는 날은 가져가라고 해도 안 가져간 김치를 직접 가져 오시는 날이다.
어렵게 걸음 한 날 함께 차도 마시고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먹으면 좋으련만 엄마는 언제고 앉지도 않고 가신다.
불편하단다.
- 딸네집이 왜 불편해?
- 내 집이 편해. 집에 가서 할일도 많고...


그랬던 엄마가 우리가 산간 벽지로 이사한 재작년부터는 내 집에서 며칠씩 묵으신다.
작년에는 감자를 심는 초봄부터 콩을 터는 초겨울까지 매달 내 집에 오셨다.
오실 적마다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지내면서 밭일을 하신다.
엄마가 오시면 엄마를 따라 밭일을 하느라 나도 앉아볼 틈 없이 바빠진다.
어둑어둑한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 밭으로 나가는 엄마를 말린 일이 있다.
- 뜨거운 대낮에 하는 것 보단 이게 낫다. 너는 더 자. 애들 학교 가는 거나 신경 쓰고 네 할일이나 해.
그러면 못이기는 척 다시 눕는다.
나는 참 철딱서니 없는 딸이다.


이사한 첫해, 집 옆 척박한 땅을 엄마와 둘이서 개간했다.
여러해 전에 누군가 밭으로 사용한 흔적이 있긴 하나 오래 묵혀두어서
웃자란 들풀이 무성하고 흙보다 돌이 더 많은 척박한 땅을 호미 한 자루로 옥토로 바꿔놓았다.
복 중 뙤약볕을 한 장 수건으로 가리고 새벽부터 서산마루로 해가 넘어갈 때까지 김을 맸다.
호미자루가 몇 개씩 부러져나가고, 호미끝이 휘어지고, 손가락마다 물집이 잡히고, 물집이 터지고,
허리가 끊어져나가는 고통을 견디며 김을 맸다.
엄마는 허리가 아플 때마다 한번씩 일어나 허리에 손을 짚고 뒤를 돌아보고는
아, 이쁘다 꼭 쌀밥 같다, 너랑 나랑 둘이서 쌀밥 같이 맨들어놨다, 하셨다.


너의 엄마가 이야기꾼이라면 내 엄마는 비유꾼이다.
들풀만 무성했던 척박한 땅을 판판하게 일궈놓고 흰쌀밥에 비유하신다.
언젠가 한번은 마당에서 풀을 뽑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 얘좀 봐 멱살만 잡아뜯고 있네, 그럼 하나마나여.
멱살만 잡아 뜯는다는 엄마의 표현에 나는 동네가 떠나갈 듯 웃었다.


밭을 일구는 것으로 시작된 엄마의 내 집 행차는 감자를 놓을 때, 옥수수를 심을 때, 고추모를 심을 때,
콩을 놓고, 고구마와 배추를 심고, 콩을 털고, 김장을 할 때까지 이어졌다.
작년, 감자 캘 엄두가 안 나서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당장 내려오신단다.

다음 날 첫차로 도착한 엄마를 마중나갔다.
일흔이 넘은 몸으로 먼길 오는 것도 힘겨울텐데 엄마는 커다란 가방을 3개나 들고 내리셨다.
오실 때마다 가방 서너개는 기본이다.
엄마의 가방은 젊은 내가 들기에도 무거워 질질 끌다시피해서 차에 실었다.
이걸 엄마가 들고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 뭐가 이렇게 무거워요?
- 풀어놓으면 먹을 것 하나도 없는데 무겁기만 한거여
- 이걸 터미널까지 어떻게 들고 갔대?
-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들고 가느라고 죽을뻔했다. 가면서 몇 번을 쉬었는지 물러.
- 다음부턴 옷가방 하나만 가지고 오세요.
- 변변한 것도 없이 무겁기만 한거여.


너의 엄마가 너희들 먹이려고 보따리를 이고, 지고, 들고, 메고, 그것도 모자라 속것에다 넣어가지고 서울역 앞에 내린 것과 내 엄마가 여행 가방 크기의 가방에 나와 내 새끼들 좋아하는 먹거리를 가득 담아 온 것이 흡사해 놀랐다.
내 엄마가 저기도 있었네, 하면서.
당신 입에 들어가는 것은 아까워하면서도 자식들 입에는 하나라도 더 넣어주려는 엄마의 사랑은 무거움도 힘듦도 능가한다.
네 오빠도 그 많은 짐을 보고 엄마가 이걸 어떻게 가져왔는지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던 것처럼 나도 그랬다. 너의 엄마가 아니었다면, 내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마 가져올 수 없었을 게다.


엄마만 오시면 집주변과 밭이 새롭게 변한다.
뒤곁 항아리들이 반짝반짝 윤이 나고, 들인지 밭인지 분간할 수 없던 밭들이 제모습을 찾는다.
콩밭은 콩밭 같아지고, 고추밭은 고추밭 같이 변하고, 옥수수밭은 옥수수밭 같아진다.
장정들도 힘든 일을, 아니 농기계로해야 될 일을 당뇨병을 앓는 몸으로,
비 오는 날에도 극구 말리는 나를 뒤로하고 우비 입고 장화 신고 밭으로 나가신다.
돌덩이 같은 감자 자루를 머리에 이고 가뿐 숨 몰아쉬며 멀리 떨어진 창고에 들이고,
행여 딸 힘들어할까봐 힘든 일은 아무도 모르게 새벽에 일어나 혼자 하시고,
밭일에 지쳐있는 딸 안쓰러워 세탁기 안에 든 빨랫감 꺼내 후다닥 빨아 널고,
당신 반찬 신경 안 쓰도록 아이들 태우러 간 사이에 김치찌개 한 냄비 끓여 놓고
내 반찬 신경 쓰지 마라. 난 이거랑 먹으면 된다, 하신다.
'나이에 장사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엄마는 내 집에만 오시면 철인으로 둔갑하신다.


밭일을 끝내고 다음번까지 먹을 김치와 밑반찬을 다 만들어 놓고 엄마는 올라가신다.
딸네 집에서 진액을 소진하고 올라가시면 엄마는 몇 날을 꼼짝못하고 앓아 눕는다.
호미질을 하도 해서 손가락 관절염까지 걸려 고생하면서도 나 걱정할까봐 숨기셨다.
지난 겨울 김장을 해주고 엄마가 올라간 다음 날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니 엄마 풍 맞은 것 같다, 니 엄마 입이 돌아갔어, 아버지는 가늘게 떨고 계셨다.
엄마가요? 왜요? 언제부터요? 병원 가보셨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병원에 가보시라는 말이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털석 주저앉아 엄마를 부르며 오래도록 흐느꼈다.
나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딸,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못난 딸이다.
내 입이 돌아갔다면 엄마는 한걸음에 달려오셨을텐데, 나는 상황을 핑계대며 엄마에게 달려가지 않았다.
엄마가 그지경인데도 나는 내 생활이 더 중요하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너의 엄마도 머리가 깨어지는 듯 아팠지만 너희들 걱정 할까봐 통증을 숨기고,
그 와중에 너희들 편하게 해주려고 서울에 올라오셔서 어이없게 실종되었다.
너는 엄마가 심상치 않다는 걸 짐작하고 걱정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괴롭고 마음이 아플거라 생각한다.
나도 아버지 전화를 받은 날 엄마에게 달려가지 않을 걸 두고두고 후회한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엄마의 얼굴을 무릎에 올려놓고 내려다보던 너처럼 내 무릎에 엄마를 누이고 싶다.
그리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싶다.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난 한 여인의 이야기를, 엄마의 멍에를 벗은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너희 가족이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인생도 중요하다고. 그 인생을 잘 들여다 보라고.
엄마는 희생만 하는 존재가 아니며 희생으로 엄마의 인생을 제한하지 말라고,
엄마도 보호받고 의지하고 싶은 연약한 존재라고,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은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너희 가족이,
아니 실종된 너의 엄마가 에둘러 알려주었다.


자식에게 다 파먹히고 그루터기만 남은 엄마의 앙상한 모습이 이제 보인다.
자식에게 다 내어주고 빈가슴이 된 엄마의 외로움이 이제야 들어온다.
같은 여자이면서 엄마의 희생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며 끝없이 받기만 원했다.
그러면서도 엄마처럼 내 자식에겐 온전히 나를 내어주지 않는 나는
엄마에겐 잔인하고 자식에겐 무심한 지독한 에고이스트이다.


허전하다.
엄마의 빈자리는 다녀갈수록 조금씩 커진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외롭게 살다간 어린 왕 무덤 위로
버스에 앉아 쓸쓸히 웃으며 손을 흔들던 엄마의 얼굴이 겹쳐지자 가슴에 격랑이 인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엄마를 태운 버스가 지나는 쪽을 향해 나직히 중얼거렸다.
엄마, 이번에 올라가서는 아프지 마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보다는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하며 소신대로 사는 사람보다는 안전하고 익숙한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가치관과 세계관은 그저 철학일뿐이지 그것을 삶에 끌어들이지 못한다.  가치관과 사는 모습이 별개인 것은 사회의 통념과 시스템, 다수가 택한 길을 걷는 게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타인의 평가에 연연해 한다. 남에게 보여지는 행복은, 절대 행복이 아닌 비교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임혜지 작가의 가족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일상에서 그대로 실천하며 살고 있다.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롭고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별종 가족이다. 저자는 고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한 뒤 극과 극이지만, 그래서 잘 통하는 남편을 대학 시절에 만나 20년 넘게 같이 살고 있다. 첨단 기기를 개발하는 회사에 근무하는 남편은 물리학 박사이고, 저자는 문화재 실측 조사와 발굴 연구를 하는 프리랜서다. 독일에서도 공부를 많이 한 편에 속하는 부부는 공부 덕분에 부귀영화를 누려본 적도 없고, 또 부귀영화가 없다고 해서 불행하게 느낀 적도 없다. 부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돈이 아닌 가족과 함께하는시간이며, 순간의 안락함보다는 인간으로서의 품위이며, 강요와 간섭이 아닌 자유와 존중이다.

 

이러한 행복의 기준을 실천하기 위해 저자 부부는 자동차를 포기했다. 자동차로 사람의 계급과 재력과 교양과 성품을 가늠하는 독일에서  자가용 없이 당당하게 살아간다. 식탁에서는 고등어와 변태 딸기를 금했다. 삼면이 육지인 독일에서 엄청난 연료를 소비하며 이동해 온 먼 나라의 고등어보다는  독일의 제철 음식, 제철 과일을 먹겠다는 말이다. 지구 환경을 위해서 자동차와 고등어를 포기하고 난방과 온수를 포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부부는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소비를 최소화하고 만들수 있는 물건은 만들어 쓰고, 세끼 식사를 온 가족이 함께하기 위해 부부는 직업적인 성공을 일부 포기했다. 무섭게 절약하며 살기 때문에 돈이 더 필요한 것도 아니고 승진이나 출세에 욕심을 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있는 돈도 다 못 쓴다며 남편더러 그만 벌어 오라고 말한다. 남의 이목에 초연하다보니 이들에겐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다. 상대적 빈곤을 느끼지 않으니 흐트러지지 않는 품위가 배어나온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하고 인격을 존중하며개성을 발휘하도록 한다. 어떠한 강요나 간섭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녀를 존중해준다. 공부가 늦되다고 채근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는 부부의 모습에서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고등어를 금하노라]는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가족의 행복한 삶을 보여준다. 행복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들, 그 기준을 따라 묵묵히 제 갈 길을 걷는 사람들, 품위 있는 삶을 위해 자발적으로 포기도 할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났다. 다소 유치해 보였던 책 제목이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제목에 담긴 의미와 저자 가족의 삶이 우아하고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ES24 블로거 29인의 내 삶의 쉼표 - 제3회 YES24 블로그 축제 수상작 모음집
YES24 블로거 29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어서 몇 년 전부터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난 느낌이나 생각, 줄거리를 글로 남기는 작업은 귀찮지만, 리뷰를 쓰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고 필요할 때 자료로 활용할 수 있어서 요긴하고 내용을 오래 기억한다는 장점 때문에 귀찮아도 리뷰를 쓴다. 그리고 서평을 쓰면서 쓰는 습관을 들이게 되어서 무엇보다 좋고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엿보는 일도 흥미롭다. 한 권의 책을 읽은 열 명의 생각은 모두 조금씩 다르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다른 사람이 받은 감상, 삶에 미치는 영향 등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보여주어 시야를 넓혀주므로 다른 사람의 리뷰를 챙겨 읽는 편이다.  잘 쓴 리뷰를 보면서 쓰기에 대한 도전과 배움을 얻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읽기와 쓰기를 병행하고 있는데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다.

 

[내 삶의 쉼표]는 책이나 영화,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29편의 리뷰로 정리한 책이다. '내 인생의 책, 영화, 음악'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제3회 YES24 블로그 축제에서 선정된 블로거들의 글을 모아 책에 담았다. 리뷰대회에서 수상한 수상자들의 글은 평범한 사람들의 글이라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유려하다. 29편의 다양한 글은 저마다 독창적인 이갸기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한 권의 책이, 한 편의 영화가, 한 곡의 음악이 어떻게 자신의 삶에 울림을 주었는지, 어떤 에피소드를 낳고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매끄러운 문체로 전달해준다.

 

읽는 도중 반가운 이름도 눈에 띄었다. 영화 <엑스맨>을 보고 '영화를 잃고 사랑을 얻었네'라는 제목으로 가난한 시절 지금의 아내와의 추억을 풀어놓은 몽사가님의 글은 한 편의 수필처럼 아름답다. 간결한 문체로 코끝이 찡해오는 감동을 선사한 몽상가님의 글솜씨에 새삼 놀랐다. 장 그르니에의 [섬]을 읽고 쓴 은이후니님의 '내 안의 섬을 찾아서'는 대상다운 글이라 여겨진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하게 해주는 글로 구성과 내용면에서 단연 돋보인다. 은이후니님의 이런 내공이 책 부문에서 대상과 영화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게 한 것 같다.

 

[내 삶의 쉼표]는 평범한 사람들이 책이 주는 울림을 삶으로 확장시킨 이야기를 평범하치 않은 글솜씨로 표현하며,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은 감상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진솔하게 들려준다. 책이나 음악, 영화를 단순히 읽고 보고 듣는 것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삶에 연결시키는 이들의 글쓰는 능력이 부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뒤바뀐 딸
마크 탭 외 지음, 김성웅 옮김 / 포이에마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이 당하는 고통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은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일 게다. 특히 갑작스런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은 다른 것보다 더한 충격이며 슬픔이다. 사랑하는 자녀의 죽음보다 더 큰 슬픔이나 상실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 않던가.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운동회를 앞둔 5월에 끔찍한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은 친구는 해마다 5월이 되면 심하게 몸살을 앓는다. 아이를 먼저 보낸지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해마다 운동회 철만 되면 밤새 신열에 시달리며 아파한다. 자신의 아이가 천국에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5월만 되면 그리움에 사무쳐 몸살을 앓는 것이다. 언젠가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마저 없다면 아마 실성했을 것이라고 친구는 여러번 내게 말했다.

 

영화 같고 소설 같은 [뒤바뀐 딸]은 실제 일어났던 놀라운 사건이다. 2006년, 테일러 대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이 탄 승합차가 졸음 운전으로 중앙선을 넘어온 대형 화물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5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한 명은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로라는 가족들의 극진한 간호와 기도로 차츰 의식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들은 석연치 않은 점들을 발견한다. 로라 큰어머니와 아버지 친구들은 로라가 아닌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로라는 자신의 이름을 휘트니라고 말하는 등 미심쩍은 행동을 보여 로라의 아버지는 병원에 치아 기록 조사를 의뢰한다. 치아 기록 조사 결과, 병원에 있던 로라는 로라가 아니라는 게 밝혀진다. 신원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체격과 얼굴이 닮고 머리빛이 같은 휘트니와 로라가 바뀐 것이다. 5주 동안 돌보던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로라 가족에게 사고만큼이나 끔찍하고 잔인한 현실이지만 로라 가족은 원망하지 않는다. 이미 딸의 장례를 치른 휘트니 가족은 딸이 살아있다는 기쁜 소식에도 들뜨지 않는다. 오히려 로라 가족을 걱정하고 위로하며 슬퍼한다. "우리의 기쁨이 그들의 고통이라는 것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신원이 바뀐 실수의 책임 소재를 따지거나 탓하지 않고, 끔찍한 사고를 원망하지도 않고, 서로를 배려하고 위로하는 두 가족의 성숙한 신앙은 신앙인의 삶이,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뒤바뀐 딸]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딸이 뒤바뀐 놀라운 사건이 아니다. 두 가정을 붙들어 주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두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말씀하시며 고통 가운데서도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책이 말하려는 진짜 이야기다.  처참한 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휘트니는 사고로 인해 많이 달라졌다. 활달했던 성격이 내성적인 성격으로 바뀌었지만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애쓰지 않는다. 사고 이후 신실하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 휘트니는 하나님을 더 알고 싶다는 열망에 타오르고 있다. 혹시 자신이 거창하고 큰 일에 쓰임받기 위해 끔찍한 사고를 당한 건 아닐까하는 부담감에 눌리기도 했지만  휘트니는 대단한 일을 이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자유로워진다. 학생의 삶에 변화를 주는 교사, 아이를 사랑하는 평범한 엄마로 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기 원한다. 

 

[뒤바뀐 딸]은 고통보다 더 큰 사랑과 은혜로 우리 삶에 찾아오시는 그분을 모셔들인 깊은 경지의 믿음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떤 일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며 하늘의 소망을 증거한다. 두 가정의 놀라운신앙에 경의를 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