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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완성하는 미술관 - 10대의 정체성, 소통법, 진로, 가치관을 찾아가는 미술 에세이 ㅣ 사고뭉치 6
공주형 지음 / 탐 / 2013년 12월
평점 :
딸과 다르게 아들들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미주알고주알 전하는 법이 없다. 어지간한 대형사건이 아니면 이러쿵저러쿵 먼저 말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저 물어보는 말에 짧게 대답하거나 곤란한 질문은 모르쇠로 일관해 대화에 진전을 보지 못한다. 신체적 변화가 큰 사춘기를 지날 때에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진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온가족이 모여 두런두런 일상을 나누는 시간을 만들 수 없을까? 고민 끝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가정예배! 매일 일정한 시간에 모여 그날 그날의 말씀을 주제로 각자의 느낌이나 깨달음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가정예배는 성경공부는 물론 부모로서의 바람이나 아이들의 요청을 주고받는 자연스런 대화의 장으로 그만이다. 이런 게 바로 일거양득이다. 자녀에게 심어준 성경적 세계관과 삶의 기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전달하기 때문에 부드러울 수밖에 없으며 아이들에게 잔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당시를 떠올리면 가정예배 드리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를 완성하는 미술관]은 '그림'을 통해서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타인과의 소통법을 배우며,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과 삶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돕는 미술 에세이다. 저자 공주형 교수님이 들려주는 그림과 화가 이야기는 한 편 한 편이 단편소설처럼 재미있고 흥미롭다. 기성세대가 차세대에게 직접화법으로 "이렇게 하라, 혹은 저렇게 하지 마라." 했다면 분명 잔소리나 뻔한 이야기로 들릴 터. 그러나 '그림'이라는 훌륭한 도구로 그림에 읽힌 이야기와 배경, 그림설명과 화가들의 삶을 소개하며 그 속에서 교훈을 발견하도록 이끌고 있어 강제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 화가에게선 어떤 점을 본받아야 하나, 이 화가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뭐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꼬집어 말하지 않아도 집필의도를 찾아가도록 쓰여져 있다. 구어체로 쓰여져 있어 부드럽게 읽힌다. 친절한 미술 선생님이 옆에서 명화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주시는 느낌이다.
예술가, 특히 화가들의 삶은 평탄하면 안 되는 것인 양 많은 화가들이 비운의 삶을 살았다. 가난, 고독, 질병, 이혼, 자살, 요절 등으로 질곡의 세월의 살다갔다. 고흐, 툴루즈 로트레크, 칼로, 렘브란트, 박수근, 윤두서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들에게 아픔과 상처는 그림의 좋은 재료가 되어 불타는 예술혼으로 승화되었다. 당대에는 비운의 주인공이었으나 길이 남을 작품을 후대에 남기고 간 그들을 위로할 길이 없어 안타깝다. 작품에 투영된 예술혼은 저자가 청소년들에게 말하고 싶은, 청소년들이 배워야 할 삶의 자세이고 가치이며 정신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대략적이로나마 많은 화가들의 삶을 알게 되었고 그림을 보았다. 고흐를 비롯해 툴루즈 로트레크와 박수근, 칼리, 윤두서, 세잔, 렘브란트의 이야기가 특히 와 닿았다. 특히 양반이면서도 서민을 주인공으로 그린 조선시대 선비 화가 윤두서의 <자화상>이 인상적이다. 그의 <자화상>에는 벼슬아치들의 신분을 상징하는 관모를 쓰는 머리 윗부분이 싹뚝 잘려 있고 귀가 쑹덩 잘려 있다. 윤두서는 이 괴상한 그림을 통해 스물다섯에 과거 시험에 합격하고도 관직에 나아갈 수 없는 자신의 슬픈 현실을 표현했다. 하지만 슬픈 현실에 절망하지 않았다.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는 불리한 조건들이 그를 늘 깨어 있게 했다는 것이다. 윤두서의 눈에 포착된 것은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었다. 굶주린 서민들에게 곡식을 내주고, 일자리를 주고, 소금을 주고, 노비에게 신분의 자유를 주었다. <나물을 캐는 노인>, <짚신 삼는 노인>, <돌 깨는 석공> 등의 작품은 서민을 향한 그의 애정인 동시에 '나는 어떤 존재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설명한다.
"이 예술작품들은 그가 끊임없는 고민을 하며부끄러움 없는 군자로 살았다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절친한 벗이 남긴 한 기록이 전하는 대로 말입니다."(p30)
6척도 안 되는 몸으로 온 세상을 초월하려는 뜻이 있네. 긴 수염 나부끼고 얼굴은 기름지고 붉으니, 바라보는 자는 신선이나 검객이 아닌가 의심하지만, 저 진실로 자신을 낮추고 양보하는 기품은 또한 돈독한 군자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없구나
-윤두서의 그림 친구 이하곤이 남긴 시 중에서-(p29)
한 점의 그림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길이 담긴 이 책은 청소년뿐 아니라 부모세대가 읽어도 유익하다. 자녀의 책상 위에 이 책을 살짝 올려놓는 센스를 발휘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