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과 난제가 명쾌하게 풀리다
어렴풋이 알던 것을 정확히 알게 되고, 궁금증과 의문이 풀리고,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독서의 즐거움이자, 유익이다. 하지만 모든 책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전문서적도 아니면서 필요이상으로 어려운 책이 있는가하면 뭔가 살짝 부족해 아쉬움이 남는 책이 있고, 가독성이 떨어져 읽히지 않는 책도 있다. 그런가 하면 쉽고 재미있는데다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알찬 책이 있는데, 이럴 땐 나도 모르게 "유레카!"를 외치게 된다.
[김남국 목사의 창세기 파헤치기 1]이 바로 유레카를 연달아 외치게 한 책이다. 이 책은 창세기 파헤치기 시리즈 1권으로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 다루고 있다. 읽기 전에는 창세기 11장까지 파헤칠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인류의 죄악과 타락, 아담의 계보와 노아홍수사건, 하나님의 언약과 바벨탑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기록된 본문은 그동안 설교를 통해 무수히 들어왔던 내용들이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김남국 목사님을 따라 교정된 눈으로 읽은 창세기는 새로운 것은 물론 이해되지 않았던 몇몇 사건들이 완전히 이해되었다. 뿌옇게 보였던 부분이 선명하게 보이고,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못한 사건이 이해되었으며, 아무 생각없이 읽었던 내용이 인류 역사의 기원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남국 목사님을 일컬어 왜 "말씀에 관한 일이라면 물러서지 않는다", "말씀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표현하는지 알게 되었다.
김남국 목사님은 우선 창세기를 읽는 시선부터 교정해준다. 창세기의 저자는 모세다. 모세는 출애굽 시대의 인물이며, 이는 모세오경이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배경 위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모세가 창조 때 살아서 창세기를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먼저 출애굽시키신 후 모세를 통해 계시한 첫 번째 말씀인 것이다. 저자의 지시대로 광야에 장막을 치고 여호와 하나님을 뵈러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선으로 창세기를 보니 모든 게 새롭고 선명하게 보인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사건을 먼저 경험한 후에야 태초에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에 대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이 말씀을 접한 순서대로 한다면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순서가 바뀌어야 합니다."(p15)
구약성경의 모세오경 순서인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가 아닌 실제 역사 순서인 <출애굽기-창세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순으로 읽으면, 창세기가 뚫리고 창세기가 뚫리면 성경이 뚫리고, 성경이 뚫리면 인생이 뚫린다고 김남국 목사님은 주장한다. 창세기 1장에서 11장은 창세기의 선언이자 모세오경의 선언이며 성경 전체의 선언이다.
저자가 요구한 순서대로, 즉 하나님에 대해 구전으로만 전해들은 이스라엘이 백성이 되어 창세기를 읽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십분 이해된다. 400여 년간 종살이하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불평하며 '죄-회개-죄사함'의 싸이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은 경험했지만 그분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나님을 애굽의 신들보다 조금 강하고 뛰어난 신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후 400년이 넘도록 이야기로만 전해들었을 뿐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의문과 궁금증이 증폭되었을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알려준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한마디는 하나님이 다른 신보다 우위를 점하는 신이 아니라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창조주라는 자기선언인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을 알면 그분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이 사실을 알아야 죄와 구원을 이해하게 된다.
[창세기 파헤치기 1]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을 가지고 질문을 던진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는 진정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이었나? 또 우리가 사는 오늘날 이 세상은 어떤가? 이 모순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얻으면 인류의 죄악이 보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소망을 갖게 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속시원했던 부분은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을 부른 가인과 아벨의 제사 문제이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가 내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였다. 수없이 많은 설교를 들었지만 누구도 명쾌하게 내 의문을 풀어주지 못했는데, 오늘에서야 수수께끼가 풀렸다. "유레카~!" 가인의 정성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제물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 해답은 창세기 4장 6-7절 말씀에 있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6-7)
가인은 얼굴을 들지 못할 만큼 삶에 문제가 있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말씀을 청종하는 삶이다. 그런데 가인은 말씀을 청종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제물이 아니라 삶을 드려야 좋은 제사인데 제멋대로 살면서 제물을 드렸으니 하나님이 받으실 리 없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제물은 한데 묶여 있으니 그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은 건 당여한 결과이다. 가인과 사울 왕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은 것은 두 사람 모두 선을 행하지 않고 말씀을 청종하지 않은 삶에 있었다(p97-101).
그렇다면 우리는 아벨처럼 예배하는가? 나는 어떤가? 나는 이 문제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인의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이며 나의 문제다. 하나님은 말씀과 유리된 자의 예배를 받지 않으실 게 분명하다.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하는 이유,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확인하며 깊이 회개했다.
책을 통해 아벨이 죽은 뒤 태어난 셋과 가인으로 인해 인류가 두 줄기로 나뉘게 되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지금도 역사는 셋의 후예와 가인의 후예가 교차하며 역사가 흘러가고 있는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바로 그들이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의인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네피림에 속지 말아야 할 이유, 역사가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때마다 '다른 씨'를 통해 구원의 계획을 계속 이루어 가신다는 노아와 아브라함의 평행이론을 흥미롭게 읽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성경 역시 그렇다. 알아야 제대로 볼 수 있고 알아야 믿을 수 있다. 아는 만큼 믿음이 생기는 법이다. "기독교는 믿어서 아는 게 아니라 알아야 믿는 종교입니다. 헌신은 하나님을 아는 크기에서부터 나옵니다.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믿음이 자랍니다."(p252)
호세아 선지자의 주장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힘써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김남국 목사님과 함께 창세기를 명쾌하고 시원하게 파헤치면서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제대로 알게 되었다. 창세기 파헤치기 시리즈 2권이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