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케네스 & 글로리아 코플랜드 지음 / 사랑의메세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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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다

 

 

저마다 삶의 무게가 있듯,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누구에게나 두려움은 있다. 사업이 잘 될까. 시험에 합격할까. 이번 일이 잘 해결될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모양은 달라도 저마다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성경에는 "두러워하지 말라"는 말이 365번 등장한다. 갖가지 두려움에 떠는 인간을 향해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무려 365 차례나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한마디로 1년 365일 동안 '날마다' 두려움을 몰아내고 자유와 평안을 누리라는 것이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자유와 평안이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로 두려움이 사라지진 않는다. 여전히 그대로인 상황에서 두려움을 몰아내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해도 마음속 두려움은 요지부동인 경우가 허다하다. 설 명절을 하루 앞둔 오늘 같은 경우, 많은 주부들이 시댁과 친정의 차별이나 해도해도 끝이 없는 가사노동, 장시간의 귀향 과정을 두려워한다. 과거 주부들이 유독 명절증후군에 시달렸으나 갈수록 남편과 시어머니와 미혼자 등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명절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전세대를 아우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온가족이 만나 즐거워야 마땅한 명절이 핵가족의 개인주의 문화가 정착되면서 두려운 날로 변해가고 있으니 씁쓸하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라는 책제목에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비결이 '사랑'임을 눈치챌 수 있다. 대체 어떤 사랑이 삶에서 맞딱뜨리는 온갖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며 동시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슬픔과 실패와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두려움 속으로 내몰지 않는다는 내용이 주제처럼 흐르는 책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그분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것임을 모르진 않지만, 막상 자신에게 적용하는 건 다른 문제다. 이런 문제까지 하나님이 개입하실까, 이 문제는 하나님도 어쩌지 못하실거야,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우리를 가로막기 때문에 망설여진다.

 

저자 코플랜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성경 말씀에 구체적으로 적용해 문제를 해결했다. 멈추지 않는 식탐과 그로 인한 비만, 평생 고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난폭한 언어에서 해방 된 것이다. 그의 그칠 줄 모르는 식탐과 타인과 가족에게 쏟아붓던 폭언은 오랫동안 몸에 밴 나쁜 습관이었다. 고치려고 수없이 노력하고 애를 썼으나 고쳐지지 않던 습관이었다. 코플랜드는 식탐과 상대에게 비수를 꽂는 난폭한 언어에 관해 성경이 어떻게 적고 있나 면밀히 살펴보았다.

 

바로 이 태도가 저자와 나의 다른점이었다. 나는 나의 좋지 않은 습관에 대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텐데, 언젠간 고쳐지겠지, 하고 안일하게 대응한 반면, 저자는 성경을 펼치고 자신의 나쁜 습관에 관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찾아내었다는 것이다. 또 찾아낸 말씀을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하고 대입해 실천으로 옮겼다. 식탐을 고치기 위해서 금식기도까지 불사한 저자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식탐보다 더 나쁜 습관에 젖어 있으면서도 금식기도로 매달릴 생각을 해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식탐에서 벗어나기 위해 금식기도로 매달리는 그에게 하나님은 음식에 관해 가르쳐주셨다. 탐식하는 자와 술주정뱅이는 가난해진다는 말씀(잠  23:21)을 통해 탐식하는 사람과 술주정뱅이를 같은 등급으로 보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탐식가임을 고백하며 이렇게 기도했다.

 

"아버지, 저는 음식중독자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오늘 이후로 저의 몸이 지탱 할 수 없는 해로운 음식은 절대로 저의 입속으로 넣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제 진력이 났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선택합니다."(p73)

 

물론 그 이후로 좋아하는 음식을 향해 불일듯 욕망이 일었으나 절제했다고 한다.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고 음식 대신에 예수님을 선택하고, 말씀을 선택한다고 선포하면 욕망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또한 어릴적부터 칼로 찌르는 듯한 가혹하고 잔인한 말을 하던 습관을 에베소서 5장 3-4절 말씀을 적용해 고쳤다.

 

"나는 거친말을 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비판의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나는 즉시 이 원리를 내 삶에서 실행하기로 결정했다."(129)

 

나쁜 습관에서 해방된 저자에게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자유와 사랑이다. 진정한 자유와 온전한 사랑! 고난과 질병, 실패와 시련 등 모든 영역에서 성경의 원리에 따라 살면 그 어디에도 두려움이 설 자리는 없다. 이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부분적으로 행하거나 행하지 않는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럽다. 사탄은 이 자유를 빼앗고 두려움을 주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두려움은 사탄의 최고 무기다. 아주 사소한 미움, 혹은 한 알갱이의 불화조차도 마음속에 내버려두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이것이 두려움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두려움은 죽음으로 연결되는 영적인 고리라고(히 2:14-15) 경고한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형제를 미워하는 상태로 지낸다면 당신의 삶에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두려움을 내어쫓는 것은 그 사랑이다. -중략-  어쩌면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렸을 수도 있다. 혹은 누군가가 당신에게 상처를 준 말이나 행동을 떨쳐버리지 못하고서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수도 있다."(p178) 

 

왜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언제나 그렇듯 하나님은 책을 통해 말씀하시고 꼭 필요한 책을 시의적절하게 읽히신다. 이제 저자의 권유대로 내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내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그런 후 어느 쪽의 문제이든 사랑으로 해결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따를 참이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온전해질 테니까. 두려움이 자리할 틈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테니까.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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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31일 기도습관 - 나를 죽이고 성령으로 기도하는 기도 체험하기 내 인생을 바꾼 31일
이대희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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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변화된 나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일

 

 

사랑하는 연인들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무엇을 얻지 못해도, 좋은 곳에 다니지 않아도 함께 있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 오랫동안 같이 있어도 지루하지 않고 지겹지 않다. 끊임없이 사랑을 속삭여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져 아쉽게 헤어진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하는 것은 사랑하는 이들의 특징이다. 하지만 사랑이 식으면 함께 있는 게 고역이다. 사랑할 땐 그렇게 빨리 흐르던 시간도 사랑이 식으면 왜 그렇게 더디 가는지. 딱히 할 말도 없고 듣고 싶은 말도 없어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한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고 끊임없이 사랑의 고백을 하게 된다. 아무리 오랫동안 함께 있어도 지루하지 않고, 끊임없이 할 말이 이어진다. 우리는 이것을  기도라고 말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친밀한 기도, 사귐의 기도는 아무리 오래해도 지겹지도 지치지도 않는다. 도리어 기쁨과 사랑과 은혜로 충만해진다. <내 인생을 바꾼 31일 기도습관>의 저자 이대희 목사님은 우리가 친밀한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주님과 사귀는 기도의 시간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오랫동안 주님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나의 삶이 변화된다. 주님을 흠모하게 되고 주님을 자꾸 본받고 싶어진다. 만약 기도함에도 이런 변화가 없다면 아직 친밀한 기도가 안 되어서 그렇다. 친밀한 관계는 서로가 신뢰할 때 가능해진다. 친밀한 관계가 되면 모든 대화가 가능해진다."(p186)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목적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는 우리 자신의 '변화'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대희 목사님은 기도를 통하여 얼마나 변화되었는지가 중요하며, 변화를 이끄는 동력은 다름 아닌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친밀한 기도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해져 친밀한 기도가 되면 기도시간이 즐겁고 기다려지게 마련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도에 흠뻑 빠져든다. 온종일 기도해도 지겹지 않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되며 이처럼 기도에 빠져들 수 있을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친밀도가 높아진다고 이 책은 대답한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기도하게 된다. 은혜받은 만큼 기도하는 법이다. 은혜받은 만큼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법이다. 말씀을 먼저 읽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말씀 없이 기도하면 내 중심의 기도가 된다. 그러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음성을 들으면 기도는 저절로 달라진다. 거룩하신 하나님,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나의 기도가 달라진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꾸려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p88) 

 

기도한다고 다 기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무조건 소리를 지르고 오래한다고 기도가 아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욕심으로 하는 육적인 기도는 더 이상 기도가 아니다. 허공을 메아리치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기도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리 없고 응답하실 리 없다. 이쯤에서 우리는 자신의 기도를 점검해봐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기도를 정직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p160-161)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능력있는 기도는 어떤 기도인지, 왜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하는 자세는 어때야 하는지,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는 무슨 기도인지,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기도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인생을 바꾼 31일 기도습관>은 이에 대해 아주 친절하고 세밀하게 안내해준다. 죄에 대한 회개와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준비단계인 '기도의 뜰', 자신을 죽이고 온전하신 주님안에 거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기도의 성소', 예수님의 심정을 공감하고 그리스도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는 기도의 깊은 영역인 '기도의 지성소', 기도는 종교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이뤄지게 하는 '기도의 삶' 등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신의 기도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는 물론 일련의 궁금증들이 선명하게 해결된다.

 

기도의 뜰과 기도의 성소와 기도의 지성소를 경험한 사람은 이제 세상 속에서 거룩함을 실천해야 한다. 기도를 통해 자신의 삶이 변했다면 거기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변화에 안주하지 말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는 까닭은 세상을 말씀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의 기도가 더욱 간절해졌다. 이전까지는 아이들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후반부를 읽으며 아이들 자신의 변화는 물론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도의 용사, 변화의 주역이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사도 중에 사도인 바울의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고백은 우리가 매일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기도는 나를 죽이는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해야 된다. 하지만 대게의 경우 몰라서 못 하는 사람보다 알면서도 안 하고 못 한다. 시간이 없어서, 당장의 응답이 없어서, 믿음이 없어서, 기도할 줄 몰라서, 바쁘고 피곤해서 등 기도 안 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기도를 며칠 쉬면 하나님이 사인을 보내신다. 꿈을 통해서 신호를 보내시거나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을 통해서 기도하라고 사인을 보내주신다. 꿈을 꾸거나 불안한 마음이 들면 기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 엎드리게 된다. 이런 현상이 어찌보면 부담스럽지만 내겐 더 없는 사랑의 신호로 해석된다. 하나님께서 먼저 대화하자고 요청을 하시는 셈이니 이보다 큰 기쁨이 있을까.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살아도 재미가 없다. 의욕도 없고 활력도 없다. 그러나 거룩한 성전이나 은밀한 골방에서 하나님과 독대하고 영으로 교제하면 활력이 넘치고 기쁨이 샘솟는다. 이 기쁨은 아는 사람만 아는, 누려본 사람만 누리게 되는 진짜배기 즐거움이다. 최근 기도의 기쁨을 다시 회복하게 되어서 기쁜 차에 이 책을 만나서 기도의 깊이와 지경을 넓히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책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책을 통해 깊은 기도에 대한 도전과 계획을 알려주시는 듯하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


<내 인생을 바꾼 31일 기도습관>의 '기도 말씀-기도 생각-기도 실천-기도 생활'의 4단계 구성은 매일의 기도생활에 생생하면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기도하고 싶으나 마음대로 기도가 안 되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거나, 깊은 기도에 이르기 원하거나,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한 독자들에게 더없이 좋은 기도 지침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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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그 여자 2 - 부족하고 서툰 내 사랑에 용기를 불어넣어 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93 그 남자 그 여자 2
이미나 지음 / 걷는나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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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아닌 사랑을 읽었다 

 

 

다른 환경 다른 배경에서 성장한 남자와 여자는 생각하는 방식과 언어와 행동이 서로 다르다. 다른 남녀가 사랑을 할 때 서로의 다름을 인식하면 상대를 잘 이해할 수 있고 사소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한마디로 사랑 싸움을 최소화하게 된다. 하지만 사랑 싸움도 아주 드물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무조건적인 이해와 참음은 한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게 되니까. 서로의 노력과 배려,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사랑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랑일 것이다.   

 

타인의 사랑 이야기를 엿보는 일은 흥미롭고 아름다우며 괜시리 설레고, 가슴 짠해지는 일이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너와 나, 우리의 사랑 이야기와 닮아 있어  <그 남자 그 여자2>가 내 얘기처럼 읽힌다. 사랑을 시작하기 전의 망설임, 사랑이 막 시작되었을 때의 서툼과 그로인한 오해, 차츰 사랑이 무르익어가면서 조금씩 소홀해지는 상대에 대한 서운함과 토라짐.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음직한 사연을 읽으며 내 마음에도 사랑이 번진다.  

 

사랑은 참 묘하다. 새로운 사랑을 할 때마다 매번 서툴고 매번 쉽지 않다. 이별 역시 그러하다. 매번 힘들고 죽을만큼 매번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찾고 사랑에 기대게 되니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로 지어졌는갑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다시금 사랑에 빠지는 걸 보면 사랑에는 불가항력적인 마력이 있는 듯. 

 

지난 10년 간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은 <그 남자 그 여자2>가 출간 10주년 기념해 현대적인 언어로 리라이팅해 새롭게 탄생했다. 개정판 <그 남자 그 여자2>에는 수많은 청춘들을 울리고 웃긴 MBC FM [이소라의 음악도시]의 인기 코너 ‘그 남자 그 여자’에서 가장 뜨거운 공감과 찬사를 받았던 93편의 사랑 이야기와  MBC FM [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의 ‘사랑을 말하다’에서 감동을 준 사랑 고백 30편을 선별해 담았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번지는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페이지마다 다른 색상의 내지 위에 실린 120여 편의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는 읽는 이의 가슴을 사랑으로 물들인다.  

1교시 수업에 지각할까봐 화장도 못한 채 잰걸음으로 걷다 남친을 만나 당황한 여자를 남친이 오해한다. 여자는 반쪽짜리 눈썹과 감지 않은 머리, 뾰루지 난 생얼을 들킬까 피하는데 남자는 여자가 변했다고 오해하며 같이 점심 먹자는 말도 못하고 애를 태운다. 두 청춘 남녀의 사소한 오해마저 사랑스럽고 예쁘게 다가온다. 하지만 당사자는, 특히 여자가 변했다고 오해하는 남자의 속은 숯덩이처럼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뒷이야기를 상상해본다. 속사정을 뒤늦게 안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로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군." 하겠지. 그리곤 여친에게 "너의 반쪽짜리 눈썹까지 사랑스럽게 보여, 감지 않은 머리와 뾰루지도 내 눈엔 귀여워. 너의 생얼까지 사랑해~ 오해해서 미안해~!" 하지 않을까. 미소가 절로 번지는 상상이다. 

 

남자는, 붙잡는 팔을 뿌리치고 냉정하게 돌아서는 여친이 낯설고 당혹스럽다. 내가 지금껏 좋아했던 여자가 저렇게 독하고 냉정한 사람이었나? 남자는 마음이 아프고 쓰리다가, 끝내 마음이 없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한다. 목구멍이 아프다가, 두 눈이 쓰리다가,  마치 자기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인다. 이별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이별은 정말이지 죽을만큼 힘들다.

 

"너무 빠른 동작으로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에

나는 마음이 아프다가

마음이 쓰리다가

마음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p86)

 

사랑을 하면 궁금한 게 많아진다.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 사람은 정말 나를 좋아할까? 그 사람 마음도 나와 같을까? 그 사람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다. 사랑은 수많은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이며 시간일지도. 더 이상 궁금한 게 없으면 사랑에 빨간 불이 켜진 위험한 상황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닐 게다.

 

<그 남자 그 여자 2>는 사랑에 적신호가 들어온 커플, 남몰래 가슴앓이를 하는 이들, 권태기를 지나는 연인, 그 남자 그 여자의 속마음을 읽고 싶은 남녀를 포함해 사랑을 꿈꾸는 모든 사람에게 감동과 재미,추억과 사랑을 선물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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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26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아끼는 사랑 이야기를
늘 즐겁게 누리시기를 빌어요
 
골 때리는 교회 이야기 - 다음 세대를 살리는 예배 혁명
이창호 지음 / 두란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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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미친 사람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성도는 예배를 통해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살아갈 힘과 에너지를 공급 받는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면 그 기쁨과 감격으로 세상의 공격과 유혹을 물리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힘이 생긴다. 오래 전부터 찬양과 기도와 말씀 속에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기쁨이 충만한 예배를 갈망하지만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철야예배나 부흥집회, 기도원이나 성령대망회에서 경험하는 치유와 회복의 기쁨을 주일예배에선 왜 누리지 못할까?  한동안 그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으려고 몸부림친 시간이 있었다. 말씀에 집중하고 은혜를 사모하고 더욱 간절함으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갔으나 결과는 언제나 마찬기지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원인을 깨달았다. 

 

"준비 찬양은 뜨거웠고 헌금과 광고를 비롯한 모든 과정도 질서정연했다. 담임 목사님의 설교 역시 너무나 은혜로웠다. 설교 후에는 온 성도가 일어나 함께 찬양했다. 그날의 설교와 잘 어우러지는 찬양이어서 말씀의 감동이 더욱 마음에 차올랐다. 이윽고 목사님은 함께 기도하자고 하셨다. 그래서 감동을 기도 가운데 쏟아내려는데, 불과 1,2분도 안 되어 기도를 마무리하더니 축도로 예배를 마치시는 게 아닌가. 정해진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감동을 털어놓지도 못했는데, 내 마음을 주님께 전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맥 없이 예배가 끝나버리니 참으로 안타까웠다."(p24) 

 

대다수 교회의 예배 형태가 이렇다. 다음 예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예배를 마쳐야 하고, 그러려면 기도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말씀에 은혜를 받아 그 감동을 기도로 토해내려는 순간 기도를 마치라는 종이 울리면 서둘러 기도를 마무리 해야 한다. 그 안타까움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얼마나 아쉽고 속이 컬컬하고 개운하지 않은지. 

 

몇 해 전 시골로 이사온 뒤 교회를 정하기 위해 여러 교회를 방문하면서 주일예배 도중 1,2분의 기도시간마저 주지않는 교회들이 수두룩 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파를 초월해 내가 방문한 여덟 교회 중 어느 한 교회도 설교 후 기도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 교회의 목사님께 예배 후 합심기도 시간을 넣으면 어떠냐고 말씀드렸으나 허사였다. 기도시간이 짧든 길든 설교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던 습관이 몸에 밴 나로서는 적응하기 어려운 예배환경이었다. 게다가 점잖게 앉아서 무표정한 얼굴로 찬송을 부르는 것도 25년 간 섬기던 이전 교회의 찬양 분위기와 대조적이어서 이래저래 힘들었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시골 교회의 특성상 예배에 변화를 주기가 어렵겠지만, 그대로 가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교회로 머물까 안타깝다.    

 

<골 때리는 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성령이 운행하는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을 전해준다. 저자 이창호 목사님이 시무하는 '넘치는교회'는 경직되고 무거운 예배를 탈피해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역동적인 예배를 드린다. 전 성도가 예배의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로 예배한다. 성령께 주도권을 맡긴 채 시간에 매이지 않고 예배한다. 매주일 이창호 목사님은 성전 안에 있는 시계를 가린 채넥타이를 풀고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청년들과  6-7시간 동안 춤을 추며 찬양하고 뜀 뛰며 찬양하고 부르짖어 기도한다. 점잖게 앉아서 찬양하고 조용조용 기도하는 게 거룩인가? 춤추며 찬양하는 게 경박하고 거룩하지 못한 걸까? 이 질문에 이창호 목사님은 이렇게 답한다. 

 

 "사실 '거룩'은 구별되었다는 뜻인데, 교회에서 춤추면 어쩐지 '거룩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춤추며 즐거워하라고 말한다. 다윗도 미리암도 하나님 앞에서 춤추었다. 시편에 나오는 찬양 방법 중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바로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다."(p108)  

 

이처럼 춤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사탄의 속이는 생각에 동의한다. 춤은 기쁨을 표현하는 좋은 수단이다. 그럼에도 사탄은 이 좋은 것을 마치 더러운 장소에서만 쓰는 것처럼 속이고 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예배 때 춤을 추면 마치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창호 목사님은 춤추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 춤추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한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이 선물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얼굴 찡그리지 말고 즐겁게 춤추며 반응하면 하나님께서 최고로 기뻐하신다는 저자의 지론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1 시간에서 1 시간 반 예배를 드리면서도 지루해 몸을 꼬고 시계를 들여다보며 끝날 시간을 기다리는데, 어떻게 6-7시간씩 예배를 드리는지 궁금할 것이다. 또 이런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이 교회는 대체 전도가 될지 궁금할 것이다. 이창호 목사님은 어떤 경로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지, 또 예배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는 무엇인지, 왜 이토록 강하고 깊은 예배를 강조하고 예배에 목숨을 거는지, 어째서 '실미도교회'로 불리는지 그 모든 궁금증이 <골 때리는 교회>에 담겨 있다.  

 

넘치는교회의 매 주일예배는 그야말로 통곡의 시간이라고 한다. 설교 후 강대상 아래로 내려가면 청년들이 흘린 눈물로 바닥이 흥건해서 발을 뗄 때마다 '쩍쩍' 소리가 난나고. 청년들을 강한 군대로 키워 다음 세대의 주역으로 세우는 넘치는교회의 매 주일예배는 수련회를 방불케 한다. 따로 수련회가 필요없을 정도로 주일예배에서 치유와 회복의 모든 역사가 일어난다. 수련회도 필요 없고, 치유 세미나도 필요 없고, 내적 상담도 필요치 않다. 주일예배에서 모든 게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넘치는교회 수련회 때에는 교제하며 먹고 즐기며 실컷 놀다 온다는 것. 보통 교회와 정반대다. 얼마나 멋진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교회학교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이 때에 청년들이 몰려와서 미친듯이 예배하는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예배를 꿈꾸며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있어 감사하다. 최소한 영화 한 편보다는 긴 예배, 줄서서 먹는 유명한 맛집보다 더 가고싶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한 이창호 목사님이 계서 든든하다. 목회자들에겐 강한 도전과 자극을, 예배의 회복을 원하는 교회와 청년들에겐 그 해답이 들어 있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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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나무의 노래 - 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 조율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 도나타 벤더스 사진 / 니케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바이올린 제작자가 나무를 다듬어 노래하게 하듯이, 신은 우리를 나무 삼아 작업하신다

 

 

고지대에서 서서히 자라는 가문비나무는 위쪽에만 가지가 나 있다고 한다. 밑둥에서부터 40-50미터까지는 가지 하나 없이 줄기만 뻗어 자라는데 바이올린 공명판으로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가문비나무는 천천히 자라면서 아래쪽 가지들을 스스로 떨구어낸다. 어두운 산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빛이 닿지 않는 아래쪽 마른 가지들은 떨구어내고 위쪽 가지들은 빛을 향해 뻗어오른다. 이처럼 가지 없는 목재는 바이올린을 만들기에 그만이라고. 수목 한계선 바로 아래의 척박한 환경과 메마른 땅에서 자라 단단해진 목재에서 울림의 진수가 생기기 때문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늘진 아래쪽 마른 가지들을 스스로 떨구는 가문비나무의 지혜를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다. 죽은 것을 버리고, 옳지 않은 것과 헤어지고, 빛을 가리는 행동과 결별하고, 생명과 소명에 해로운 것을 버리는 지혜를. 가문비나무는 울림의 진수는 죽은 것을 떨쳐낸 자리에서 생기는 사실을 일깨워주며 울림을 방해하는 것을 버리는 용기를 가지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끊임없이 결정해야 합니다. 고지대의 가문비나무에서 우리는 귀한 지혜를 봅니다. 가문비나무는 어둠 속에 놓인 마르고 죽은 가지를 스스로 떨굽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죽은 것을 떨쳐낸 자리에서 울림의 진수가 생겨납니다."(14)

 

 

 

노래하는 나무가 될 만한 재목은 1만 그루 중 한 그루가 될까 말까 하다고 한다. 웬만한 인내심이 없으면 숲에서 노래하는 나무를 찾기가 여간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노래하는 나무들은 대부분 어렵고 불리한 조건에서 자라기 때문에 깊은 산을 오르고 계곡을 건너며 숲을 뒤져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저자는 울림이 좋은 바이올린 재목을 찾는 데 이렇게 수고를 들이는데, 울림 있는 삶을 사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삶은 순례의 길이라고 말한다. 소중한 것을 얻으려면 수고를 감내해야 하며 순례자는 '아는 사람'이 아니라 '찾는 사람'이라고 덧붙인다.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평생 소중한 것을 추구하는 일, 그것이 인간 정신이 따라야 할 소중한 계명입니다."(p18

 

 

마틴 슐레스케는 현재 뮌헨에서 바이올린 제작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해마다 약 20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만드는 장인이다. 그는 가문비나무가 주는 교훈과 바이올린 제작 과정을 통해 삶의 방식과 소명, 지혜와 깨달음을 [가문비나무의 노래]에 담아낸 놀라운 영성의 소유자다.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울림이 있는 나무를 찾아나서는 일에서부터 완성하기까지 전과정에서 길어 올린 통찰들이 성경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 바이올린 만드는 일을 소명으로 인식하는 그에게서 삶과 말씀의 일치가 보인다.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한 과정 한 과정이 그에겐 사명을 완수하는 시간이며, 작업장은 사명지로 비춰진다. 그에게서 교회 안과 교회 밖의 생활이 다를 리 없어 보인다. 그는 책에서 바이올린 제작자로서 성공과 권위를 과시하지 않으며 어떤 처세술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글에서 부드럽고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성품이 느껴진다. 문장 하나하나에 시선이 머물때마다 햇빛이 나뭇잎 안에서 탄소를 변화시키듯 부드러운 햇살이 마음 속에 드며든다. 그 햇살이 우리 안에서 생명에너지로 바뀌어 정신의 광합성을 만들어 낸다. 부드럽지만 힘과 생명이 전달되는 글이다.

 

 

"바이올린 제작자가 나무를 다듬어 노래하게 하듯이, 신은 우리를 나무 삼아 작업합니다."(p97)

 

 

이 책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문장으로 읽힌다. 좋은 바이올린이 되려면 나무가 제작자의 뜻에 무조건 따라야 되는 건 아니란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나무 삼아 작업을 하시지만, 무조건 당신 뜻에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으시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바이올린 제작자가 나뭇결을 존중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미완의 우리를 존중하시고 인정하신다. 하나님은 문제있는 나무로도 훌륭한 울림을 지닌 형태로 빚으시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바이올린 장인이 작업장에서 길어 올린 통찰들이 깊은 울림을 주는 글들로 채워져 있어 큐티용으로 제격이다. 평범하고 간결한 이야기 안에 심오한 진리와 삶의 지혜가 녹아 있어 비그리스도인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다만 번역과정의 오류인지 원작의 실수인지 잘 모르겠으나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표기한 부분은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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