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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나무의 노래 - 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 조율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 도나타 벤더스 사진 / 니케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바이올린 제작자가 나무를 다듬어 노래하게 하듯이, 신은 우리를 나무 삼아 작업하신다
고지대에서 서서히 자라는 가문비나무는 위쪽에만 가지가 나 있다고 한다. 밑둥에서부터 40-50미터까지는 가지 하나 없이 줄기만 뻗어 자라는데 바이올린 공명판으로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가문비나무는 천천히 자라면서 아래쪽 가지들을 스스로 떨구어낸다. 어두운 산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빛이 닿지 않는 아래쪽 마른 가지들은 떨구어내고 위쪽 가지들은 빛을 향해 뻗어오른다. 이처럼 가지 없는 목재는 바이올린을 만들기에 그만이라고. 수목 한계선 바로 아래의 척박한 환경과 메마른 땅에서 자라 단단해진 목재에서 울림의 진수가 생기기 때문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늘진 아래쪽 마른 가지들을 스스로 떨구는 가문비나무의 지혜를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다. 죽은 것을 버리고, 옳지 않은 것과 헤어지고, 빛을 가리는 행동과 결별하고, 생명과 소명에 해로운 것을 버리는 지혜를. 가문비나무는 울림의 진수는 죽은 것을 떨쳐낸 자리에서 생기는 사실을 일깨워주며 울림을 방해하는 것을 버리는 용기를 가지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끊임없이 결정해야 합니다. 고지대의 가문비나무에서 우리는 귀한 지혜를 봅니다. 가문비나무는 어둠 속에 놓인 마르고 죽은 가지를 스스로 떨굽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죽은 것을 떨쳐낸 자리에서 울림의 진수가 생겨납니다."(14)
노래하는 나무가 될 만한 재목은 1만 그루 중 한 그루가 될까 말까 하다고 한다. 웬만한 인내심이 없으면 숲에서 노래하는 나무를 찾기가 여간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노래하는 나무들은 대부분 어렵고 불리한 조건에서 자라기 때문에 깊은 산을 오르고 계곡을 건너며 숲을 뒤져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저자는 울림이 좋은 바이올린 재목을 찾는 데 이렇게 수고를 들이는데, 울림 있는 삶을 사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삶은 순례의 길이라고 말한다. 소중한 것을 얻으려면 수고를 감내해야 하며 순례자는 '아는 사람'이 아니라 '찾는 사람'이라고 덧붙인다.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평생 소중한 것을 추구하는 일, 그것이 인간 정신이 따라야 할 소중한 계명입니다."(p18)
마틴 슐레스케는 현재 뮌헨에서 바이올린 제작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해마다 약 20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만드는 장인이다. 그는 가문비나무가 주는 교훈과 바이올린 제작 과정을 통해 삶의 방식과 소명, 지혜와 깨달음을 [가문비나무의 노래]에 담아낸 놀라운 영성의 소유자다.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울림이 있는 나무를 찾아나서는 일에서부터 완성하기까지 전과정에서 길어 올린 통찰들이 성경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 바이올린 만드는 일을 소명으로 인식하는 그에게서 삶과 말씀의 일치가 보인다.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한 과정 한 과정이 그에겐 사명을 완수하는 시간이며, 작업장은 사명지로 비춰진다. 그에게서 교회 안과 교회 밖의 생활이 다를 리 없어 보인다. 그는 책에서 바이올린 제작자로서 성공과 권위를 과시하지 않으며 어떤 처세술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글에서 부드럽고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성품이 느껴진다. 문장 하나하나에 시선이 머물때마다 햇빛이 나뭇잎 안에서 탄소를 변화시키듯 부드러운 햇살이 마음 속에 드며든다. 그 햇살이 우리 안에서 생명에너지로 바뀌어 정신의 광합성을 만들어 낸다. 부드럽지만 힘과 생명이 전달되는 글이다.
"바이올린 제작자가 나무를 다듬어 노래하게 하듯이, 신은 우리를 나무 삼아 작업합니다."(p97)
이 책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문장으로 읽힌다. 좋은 바이올린이 되려면 나무가 제작자의 뜻에 무조건 따라야 되는 건 아니란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나무 삼아 작업을 하시지만, 무조건 당신 뜻에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으시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바이올린 제작자가 나뭇결을 존중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미완의 우리를 존중하시고 인정하신다. 하나님은 문제있는 나무로도 훌륭한 울림을 지닌 형태로 빚으시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바이올린 장인이 작업장에서 길어 올린 통찰들이 깊은 울림을 주는 글들로 채워져 있어 큐티용으로 제격이다. 평범하고 간결한 이야기 안에 심오한 진리와 삶의 지혜가 녹아 있어 비그리스도인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다만 번역과정의 오류인지 원작의 실수인지 잘 모르겠으나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표기한 부분은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