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라는 가능성 - 나의 세상을 확장하는 낯선 만남들에 대하여
윌 버킹엄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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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라는 가능성

윌 버킹엄 |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인문 에세이 / p.352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80년대의 노퍽 시골에서 낯선 사람의 등장은 언제나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삼촌이 콜롬비아에서 우리 집으로 찾아왔을 때, 삼촌은 조깅용 반바지를 입고 새벽에 마을로 나가 경보를 했다. 이러한 삼촌의 행동은 경악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이 물었다. 동틀 녘에 맨 다리를 내놓고 거리를 걸어 다니는 저 이상하고 까무잡잡한 남자는 누구야?

p.200

낯선 사람들의 존재는 현지인 사람들에게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나 또한 아버지의 직장 이동으로 인해 부산에서 대구로 그리고 다시 서울로 이동함에 따라 전학을 해야 했었고, 그때마다 새로운 곳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이미 그 무리에 정착한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존재는 입에 오르내리며 관심사의 대상이 되었고, 무엇보다 낯가림이 심했던 나였기에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조금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언제나 주위의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우리. 태어남과 동시에 가족이라는 집단부터 시작해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 따라 친구, 이성, 직장동료 등 범위를 넓혀가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맺어간다. 그리고 ‘대인관계’에 따라 사회성 발달뿐만 아니라 지적 능력과 정서적 특징의 발달에 영향을 받는다.

「타인이라는 가능성」의 내용이 팬데믹의 장기화로 고립, 단절의 상황이 계속된 요즘 재정상태보다 대인관계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2030세대의 소식과 맞물리며 최근 떠오른 ‘관계 맺기’ 열풍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한다.





집과의 미약한 연결조차 끊어졌을 때, 한 장소와 한 공동체 그리고 그동안 기반을 쌓아왔고 내가 이방인이 아니었던 세상의 한구석과 우리를 이어주는 끈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누구인가?

p.26

아내 엘리의 죽음으로 인해 ‘집’이 주는 의미에 대해 그리고 우연히 거리에서 타인으로부터 뜻하지 않게 받은 위로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저자는 엘리와 함께했던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낯선 사람들 곁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세우기 위해, 삶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그렇게 여행을 하게 된 저자를 통해 고대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야>에서 그려진 낯선 만남들과 국적이 다른 이들과 이웃하게 될 때 실제로 벌어지는 일, 풍성한 만찬과 선물에 담긴 의미까지, 다양한 문화 속에서 그들이 이방인을 환대하는 여러 모습을 만나게 된다.




책을 통해 오랫동안 잊고 있던 ‘환대’의 의미를 떠올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손님을 위한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빚을 지던 사람들과 배가 부르다는 손님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래도 정말 못 먹겠냐고 되묻던 주인 그리고 자신의 식사 자리에 초대하고 싶은 마음에 낯선 사람을 거의 납치하다시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던 에피소드에선 불편함이 자리 잡기도 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이 차를 마시자고 권해오면 다른 저의가 있을 거라 의심이 되고, 혹 자리를 함께하게 되어 차를 마시게 되면 외국인이 약물을 탄 차를 마시고 쓰러졌다가 깨어나 보니 여권과 돈, 옷이 없어졌다는 끔찍하고 근거 없는 의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기도 한다는 말에선 절로 공감을 하기도.

그럼에도 용기 내어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건 삶을 공유할 때 느껴지는 안정감에서 온기를 느끼고, 세상의 어려움 앞에서 혼자가 아님을 언제나 우리를 보살펴줄 사람이 있음을 알려주었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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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2 - 일상에서 발견하는 호기심 과학 사물궁이 2
사물궁이 잡학지식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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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2

사물궁이 잡학지식 지음 | 아르테

기초과학도서 / p.268

어느 순간부터 핸드폰 사진에는 아이들 사진 아니면 책 사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아마도 살이 찐 이후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셀카를 찍은 사진과 다른 사람이 나를 찍어준 사진을 비교하다 보면 이건 누구인가?! 싶을 정도다. 정말 "나 아니야. 아냐, 그럴 리 없어."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단지 전면 카메라와 후면 카메라의 화소와 좌우 반전의 차이일 뿐이라고? 더 슬픈 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비슷해 보인다는 것! 저자의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한 자체 실험과 영국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심리학 연구팀의 논문을 참고하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저자로 인해 머리로는 이해를 했으나 계속 부정의 말이 나오던 첫 이야기. 아냐, 그럴 리 없어. ㅋㅋㅋㅋㅋ





첫 시작부터 부정하면서 시작된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2권에는

왜 어릴 적 일들은 잘 기억이 안 나지(엄마에게 기억상실증 걸린 적 있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을정도 ㅋㅋ),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그렇게 졸다가도 신기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때쯤이면 눈이 떠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높은 곳에서 우산 들고뛰어내리면 낙하산 역할을 할지, 스카치테이프가 여러 겹일 땐 왜 노랗게 보이고, 수저 밑에 휴지를 까는 것이 정말 위생적일지, 일란성 쌍둥이는 대리 시험이 가능할지 등

호기심 유발이 가득한 신비로운 뇌 이야기와 엉뚱한 실험 이야기, 일상에서 생길 수 있는 생활 궁금증, 몸에 관한 궁금증, 잡다한 궁금증을 주제로 담은 40편을 만날 수 있다.





정말 엉뚱하고 재미있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읽다 말고 옆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신랑에게 이거 왜 이런 줄 아냐고 여러 번 물어보게 되었고, 신랑이 결국은 대답을 하다 하다가 도대체 무슨 책을 보고 있는 거냐며 쳐다본다. ㅋㅋㅋ 대한민국 청소년이 추천하는 베스트 유튜브 채널 3년 연속 선정되었다는 사물궁이라서인지 둥이들도 보자마자 바로 안다.(오옷!)

호기심 가득한 궁금증도 재미가 있었지만 중간중간 귀엽게 그려진 그림을 보는 재미도 있다. 그림으로 설명되는 부분에서 은근 큭큭거리며 웃게 되는데, 정말 귀엽다.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읽어도 좋지만 중간중간 심심할 때 더 관심이 가는 이야기부터 찾아보기에도 좋은, 안 궁금하던 것도 궁금하게 만드는 '궁이'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과학도서였다. 정말 이렇게만 배운다면 쉽게 잊지도 않고 재미있게 기억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역시 학교에서 배우는 건 '공부'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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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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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 | 권지현 옮김 | 소담출판사

프랑스 소설 / p.248

👦"뭐야, 조는 거야?"

🧑"아니, 「토스카」 듣는 중이야."

👦"「토스카」라……. 어느 부분이야?"

🧑"질투심에 불탄 스카르피아가 마리오를 죽일 결심을 하는 장면이지."

👦"죽여야지. 아님 어쩔거야."

운전하며 「토스카」를 듣게 된 제롬은 그 음악에 빠져 충만해져가는 행복함에 차를 멈추고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내를 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된다. 하지만 다급한 마음에 급하게 잡아당긴 백미러를 통해 보게 된 장면은 「토스카」가 웬 미친년이 꽥꽥 질러대는 알 수 없는 끔찍한 소리로 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제롬 몰래 그의 친구가 아내 모니카에게 전했던 말도 놀라웠는데, 제롬이 백미러를 통해 본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대박'을 외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아내가 보이던 행동으로 인해 제롬이 본 것이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찰나의 잘못된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게 했다.




이처럼 첫 이야기 '비단 같은 눈'부터 강렬하게 파고들었던 「길모퉁이 카페」에는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다 계획했던 것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와 남편의 외도를 의미하는 풍경을 마주하게 되고 남편의 진실을 알게 되었던 '내 남자의 여자', 이럴 거면 낚시를 왜 하러 간 건지 의아하게 했던 미치광이 모습을 보여주던 세 명의 '낚시 시합', 도박으로 돈을 날려 가족들이 원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지 못한 지메네스트르 씨가 자비라는 이름 아래 돈을 얻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던 '개 같은 밤' 등

248페이지의 길지 않은 분량 속에 임팩트가 강한 열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처음엔 '이 분량에 열아홉 편의 이야기라고?!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 거야?'라는 궁금증도 있었으나 평소 인물의 이름을 외우고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는 나로서는 최근에 만난 저자의 3권의 책 중 제일 마지막으로 미루어 읽은 책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인물을 알아가고 이야기에 빠져드는 시간들이 힘들지 않다. 아니, 오히려 잘 읽혀 신기해하며 읽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 짧은 이야기 속에 많은 걸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반전도 있다는 것!

'와~ 이런 글도 쓸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이때까지 읽었던 저자 특유의 느낌이 담겨있으면서도 색다른 느낌이 더해져 있었고 왠지 추리소설을 썼어도 엄청 잘 썼을 거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정말 '대반전이었다. 상황, 사람들, 생각, 프로그램, 파티의 결말까지도. p.195'

'결별'을 테마로 쓴 열아홉 편의 이야기 중 처음엔 루이스로 인해 욕하면서 봤다가 예상치 못한 방향의 전개로 당황하며 숨죽여 읽어 내려가다 마주친 진실에 심쿵사 했던 '로마식 이별'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특히 책 뒤표지에 적혀있던 '로마는 로마에 있고, 사랑도 로마에 있다. p196' 이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이야기였다.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죽는다'는 생각에 피부가 벗겨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던 마르크가 병원을 나서며 갑자기 현관에 나타난 '삶'을 마주하고 자신의 운명의 결단을 내렸듯 죽음, 삶, 사랑 등 다양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과 함께 마주하며 지금을 생각해 보게 하던 이야기 「길모퉁이 카페」였다.

ps. 프랑수아즈 사강의 추리소설이 정말 읽어 보고 싶어진다. 정말 잘 쓰셨을 거 같은데,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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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푸른 상흔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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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푸른 상흔

프랑수아즈 사강 | 권지현 옮김 | 소담출판사

프랑스 소설 / p.192

사랑에 빠지고 싶다. 사랑 때문에 가슴 저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싶다. 같은 앨범을 열 번이나 되풀이해서 듣고, 아침에 눈을 떠 익숙했던 자연의 축복을 한껏 들이마시고 싶다. p.10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그 마음이 뭔지 알 것만 같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저자가 담담히 써 내려간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꼭 독자에게 말을 걸듯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프랑수아즈 사강. 마치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마저 든다. 그리고 그녀가 1960년 발표한 첫 번째 희곡 '스웨덴의 성'에 나왔던 주인공 세바스티앵과 그의 누이 엘레오노르 두 사람을 「마음의 푸른 상흔」에서 만나게 된다.

저자와 비슷한 또래인 반 밀렘 남매. 무일푼으로 프랑스에 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한마디로 빌붙어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런 남매가 「마음의 푸른 상흔」에서 어떻게 프랑스에서 살아남는지 '소설'로 그려지는 '파리 생존기'와 함께 이 이야기를 집필하고 있는 저자의 '생존기'가 동시에 그려진다. 즉, 소설과 에세이 형신의 중간을 넘나드는 특이한 작품인 것이다.




소설 속 남매는 무일푼임에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현재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어떠한 불안과 나약함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더 불안해했고 그들의 노후까지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그들의 끝이 궁금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희극처럼 다가왔던 남매 이야기 중간중간 저자가 들려주던 자신의 이야기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글을 쓸 때 어떤 심정인지, 팬들이 자신에게 전하던 말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었는지 그리고 현재 사회에 대한 생각과 비판까지. 저자가 반 밀렘 남매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던 시간이었고, 서로 다른 두 이야기에서 조금은 독자가 저자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




처음엔 특이한 형식에 생겼던 호기심이 다였다. 그런데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저자의 필력이라니! 무엇보다 저자가 가진 특유의 문체가 주는 재미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도 있어 좋았고, 저자가 마지막 반 밀렘 남매의 이야기 속 인물이 되어 그들과 함께 하고, '안녕'이란 말과 함께 하나의 이야기로 끝난 마무리까지, 정말 좋았다.

사강 저자의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다른 책을 또 읽고 싶게 만드는 마술이 탑재되어 있는 거 같다. 같은 주제도 다르게 표현되는 그녀만의 문체에 어느덧 푹 빠져들게 되었나 보다. 그래서 또 다음에 읽게 될 책에선 어떻게 그 주제들이 표현이 될지 기대가 된다.

왜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는 가장 훌륭하고 감수성이 강한 작가 한 사람을 잃었다'라고 말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 「마음의 푸른 상흔」이었다.

마음의 푸른 상흔, 인상 깊은 글귀

책추천, 자전적 소설 에세이로 프랑수아즈 사강을 만나다

▶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다. 그렇지만 열다섯 살 때 그랬듯, 내게는 절대적인 것이 없다. 불행히도 나는 삶의 쾌락을 꽤 많이 맛본지라 내게 절대적인 것이란 뒷걸음질, 나약함일 수밖에 없다. 온 힘을 다해 일시적이기를 바란 나약함. 그것은 틀림없이 자만심 때문일 테고, 이번에도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죽음은 최소한의 악이다. p.11

▶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아마 그런 것이리라, 늙는다는 것은. 자기 것을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는 것. 십오 년 전부터 내 몸에 가까이 왔던 수많은 몸들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p.16

▶ 내가 섬기는 유일한 우상, 유일한 신은 시간이다. 오직 시간만이 나에게 심오한 기쁨과 고통을 줄 수 있다. p.42

▶ 생각해 보면 우울증을 피할 수 있다고, 적어도 그 병에서 회복될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면 왜 글을 쓰겠는가? 모든 텍스트의 절대적인, 고유의 존재 이유는, 그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심지어 논문이든, 이처럼 늘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p.135

▶ 행복과 불행, 무사태평, 삶의 기쁨은 백 퍼센트 건전한 요소이다. 우리는 그것을 가질 권리를 백 퍼센트 가지고 있지만 한 번도 만족할 만큼 가지지 못하며 거기에 눈이 먼다. p.172

▶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악몽은 바로 '만약'이다. '만약 내가 알았더라면', '만약 내가 이해했더라면'……. '만약'은 내게 항상 생명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하고 상상만 한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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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소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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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소

프랑수아즈 사강 | 최정수 옮김 | 소담출판사

프랑스 소설 / p.212

베르트랑의 얼굴보다 훨씬 더 탐나는, 그리고 내 마음에 드는 뭔가가 있었다.

p.24

누군가를 보는 순간 내 마음을 빼앗기며 첫눈에 반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저 책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소재였고, 사랑이 내 마음처럼 되는 건 아니니깐 그럴 수 있지 하며 넘어갔던 상황이기도 하다.

도미니크의 첫 애인 베르트랑 그리고 베르트랑의 삼촌 여행가 뤽.

베르트랑의 주선에 뤽을 함께 만나게 된 도미니크가 뤽에게 매력을 느끼며 시작된 이야기를 보며 도미니크와 뤽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예감을 했었지만 뤽에게 아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미니크가 그 아내와 좋은 유대감을 형성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던 전개였다. 이 와중에 뤽 아내의 이름이 프랑수아즈라고?!(동공지진중!!😱)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프랑수아즈 사강 저자가 한 TV 쇼에서 했던 말이 매번 그녀의 책을 읽을 때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저자의 모습을 도미니크를 통해 보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뤽 아내의 이름을 알게 된 뒤로는 모든 게 혼란스러워졌다.

이 넷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책, 대화, 걸어서 하는 산책을 끊어야 했을까. 그리고 돈이 주는 쾌락, 경박함과 다른 흥미진진한 오락이 주는 쾌락의 기슭에 도달해야 했을까. 그럴 수 있는 수단들을 갖는 것 그리고 아름다운 하나의 대상이 되는 것. 뤽은 그런 것들을 좋아했을까?

p.33

나는 당신을 아주 좋아해. 당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우리 두 사람이 함께하면 아주 즐거울 거야. 오직 즐겁기만 할 거야.

p.37

늘 선택되는 쪽이었던 그녀는 아무것도 결정해 본 적 없는 인생 본연의 모습인 긴 속임수 속에서 무분별한 행동만을 절박하게 바라는 젊은 사람에 속했다. 어쩌면 그녀의 첫 선택이었을지도 모르는 매력적인 존재였던 뤽. 그리고 그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그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도미니크.

뤽과의 만남 속에서 진정으로 사랑을 나눈 건 맞나 의아할 정도로 애틋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사랑이었다. 오히려 행복함과 숨막힘 사이에서 불명확한 중압감으로 흔들렸던 그녀였고, 이런 그녀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저자만이 가진 특유의 매력적인 문체로 생생하게 그려지며 실감 나게 다가왔다. 그래서 프랑수아즈의 반응이 그녀만큼이나 무섭고 걱정이 되기도 했던 이야기였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고, 자신의 삶으로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아무것도'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던 도미니크에게서 왜 난 계속 저자의 모습을 보는 걸까? 뤽의 아내 프랑수아즈가 자신이 애정 하던 도미니크와 남편의 관계를 알고 난 후 보였던 반응은 의아함이 가득했지만 어쩌면 그녀를 통해 자신이 이야기해 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해본다.

「어떤 미소」의 책 소개를 보면 매력적인 유부남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겪은 뒤 성숙해 가는 과정을 그린 젊은 여성의 이야기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마지막 뤽의 전화를 받고 거울 속 미소 짓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정말 성숙해짐을 상징한 게 맞을까? 다음과 같은 이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으로 인해 오히려 이 이야기가 정말 단순한 이야기였을지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혼자라는 것. 나는 나 자신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혼자, 혼자라고. 그러나 결국 그게 어떻단 말인가? 나는 한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이다.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였다. 얼굴을 찌푸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p.200

가벼운 거 같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았던 「어떤 미소」였다.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어떤 미소」, 인상 깊은 글귀

▶ 그런데 내가 정말 정직한 여자예요? 난 다른 여자의 남편과 함께 이 호화롭고 불건전한 건물에서 뭘 하고 있는 거죠? 이런 창녀 같은 옷차림으로? 나는 딴 생각을 하면서 남의 가정을 깨뜨리는, 생 제르맹 데 프레의 타락한 아가씨들의 전형이 아닐까요? p.121

▶ '네 삶을 어떻게 할 건데? 네 삶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데?'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아무것도.' p.123

▶ 행복은 표시가 없는, 평평한 사물이다. …… 아마도 나 같은 사람들에게 행복은 일종의 부재일 뿐인 지도 모른다. 권태의 부재, 신뢰의 부재. p.126

▶나는 너에게 모든 걸 말할 수 있어. 그리고 그게 참 좋아. 프랑수아즈에게는 내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겐 멋지고 적절한 애정의 토대가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거야. 그녀와 나 사이의 애정의 토대는 무엇보다도 내 피곤함, 내 퀀태야. 어떻게 보면 견고한 토대지. 훌륭하기도 하고. 우리는 고독, 권태 같은 것들 위에 지속적이고 아름다운 결혼 관계를 건설할 수 있어. 적어도 그것들은 움직이지 않으니까. p.166

▶ 나는 그 곡의 음표 하나하나를 알고 있었고, 미모사 향기를 떠올렸다. 돈을 내면 그것들을 가질 수가 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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