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물 농장

조지 오웰 |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세계문학 / p.157

항상 재독했다는 다른 분들 피드를 보며 ‘난 언제 재독해보나, 재독하면 처음 읽었을 때랑 다른 느낌일까?’ 궁금해했었다. 그래서 열린책들 35주년 기념판에서 동물농장을 봤을 때 ‘나에게도 재독의 기회가!’라며 좋아했다. 그런데 분명 재독인데, 왜 난 처음 읽는 느낌이 드는 걸까?

조지 오웰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정치적 견해를 형성시켜 준 경험을 적은 우크라이나판 서문으로 시작하는 책을 보며 순간적으로 ‘응?’을 외쳤고, 결국 그전에 읽었던 책을 찾아 펼쳐놓고 비교까지 했다. 번역자가 틀리니 문체가 조금 틀릴 뿐 같은 내용이 맞다.

가볍게 재독하려던 마음은 같은 책이지만 문체에서 주는 느낌에 따라 또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으면서 제대로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재독이지만 처음 읽는 자세로 정독을 한 동물농장, 여전히 복서의 결말에 마음이 아프고, 무지한 민중들이 선동되어가는 과정들이 지금의 세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7계명

두 발로 걷는 자는 누구나 적이다.

네 발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누구나 친구다.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p.39

존스 씨와 일꾼들에게 봉기를 일으켜 '매너 농장'을 '동물 농장'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동물들, 처음엔 성공적인 봉기 같아 보였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보다 똑똑했던 돼지들이 다른 동물들을 가르치고 조직하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했고 자신들을 위한 사병까지 만들었으며 풍차 건설을 주장한 이상주의자 스노볼마저 내쫓는다.

이 과정에서 동물들이 지켜야 할 불변의 규율이 되었어야 했던 '7계명'이 조금씩 바뀌어 간다. 돼지들이 침대에서 잠을 자기 시작하자 '침대에서 자서는 안된다.'가 '시트를 깔고 침대에서 자서는 안된다.'로, 술을 마시자 '술을 마시면 안 된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된다.'로, 자백에 따른 처형이 일어나자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가 '이유 없이 죽여서는 안 된다.'로....

그렇게 7계명은 온데간데없고 단 하나의 계명만 남아 있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p.142

처음의 7계명을 기억하며 의문을 표하는 동물들이 있을 때마다 중간에서 그들의 기억이 잘못되었다며 설마 존스 씨가 돌아오길 원하는 거냐고 말하던 스퀼러, 그런 그의 옆에서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라고 외쳐 되는 양들,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더 열심히 일하자', '나폴레옹 동지는 언제나 옳다'라는 좌우명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던 복서.

무엇인가 잘못되어 간다는 걸 은연중에 알았지만 정확하게 무엇이 변화해가는지 모르던 그들,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마다 스노볼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워도 그가 존스와의 한패라는 사실이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고 말해도 글을 모르던 동물들이었기에 결국 자신의 지도자들이 하는 말만 믿었고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을 거라며 나중엔 의문조차 가지지 않는다.

지도자가 말한 대로 정말 더 나아진 세상이 맞긴 한 걸까? 예전과 달라진 게 없는 삶을 살게 된 그들을 보고 있자니 지금 세상 또한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예전과 같은 세상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지 오웰은 어느 꼬마가 굽은 길을 돌 때마다 말에게 채찍을 하는 것을 보고 만약 저 동물이 자기들의 힘을 인식한다면 우리 인간들은 동물을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없을 것이고 인간들이 동물들을 부려먹는 것은 부자들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마르크스의 이론을 동물들의 관점에서 분석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전체주의’ 선전이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문명인들의 의견을 얼마나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지 깨달았던 저자가 이에 대해 경각심을 높이고자 집필했다는 동물농장.

지금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바보들! 바보들 같으니라고! 바보들! 마차 옆에 뭐라고 쓰였는지 보이지 않아?

폐마 도살업 및 아교 제조업

복서! 뛰어내려! 어서 뛰어내려! 저들이 너를 데려가 죽이려고 한단 말이야! p.130~1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똘스또이 | 석영중·정지원 옮김 | 열린책들

세계문학/p.127

카이사르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그러므로 카이사르도 죽는다.

p.73

성공한 판사이자 세련된 교양인,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이반 일리치는 어느 날 새로 이사하는 집에 커튼을 달다 의자에서 떨어지며 옆구리를 부딪힌다. 큰 사고도 아니었고 통증도 사라졌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긴 이 사건이 그에게 죽음으로 다가오게 할 사건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처럼 준비되지 아니 영영 준비 못 할지도 모를 죽음이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면 난 어떤 행동을 보이게 될까?! 이반 일리치가 죽음을 부정하다 깨달음을 얻고 죽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보여주며 만약 당신이 이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온다.




죽음, 그래, 죽음, 저들은 아무도 몰라.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 날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아. 그냥 놀 따름이야. 저들도 똑같아. 똑같이 죽게 될 거라고. 멍청이들. 내가 조금 먼저 가고, 저들은 조금 늦게 갈 뿐, 결국엔 다 마찬가지야.

p.70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모두 그를 좋아했다는 설명과 함께 뒤이어 바로 나오던 그의 죽음의 소식. 그런데 그의 부고를 전해 듣자마자 동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그의 죽음이 가져다줄 자신과 지인들의 인사이동이나 승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지기 바쁘다. 그리고 죽은 것이 자신이 아닌 그 사람이라는 데에서 모종의 기쁨마저 느낀다.

어쩌겠어, 죽은걸. 어쨌든 나는 아니잖아. p.10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분명 그를 좋아한다던 동료들이지 않았나? 그런데 더 놀라웠던 건 이반 일리치의 아내의 행동이었다. 남편의 사망 시 국가에서 받아 낼 수 있는 모든 지원금의 종류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추도식에 온 동료에게 혹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 이외에 돈을 더 긁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추도식에 온 남편 동료에게 슬쩍 물어본다.

죽음이라는 상황에서 가족과 동료들이 보여주던 모습들이 왠지 모르게 거북함을 느끼게 만든다. 가족과 동료 모두 그의 죽음 앞에 거짓의 가면을 쓰고서 행동해왔다면 오히려 하인 게라심만이 제대로 죽음을 바라본다. 결국은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날까지 유일하게 위로가 되던 사람이 되기도 했던 게라심.

하느님의 뜻이지요. 우리도 결국은 모두 그곳에 갈 텐데요. p.22




살고 싶어, 정말 살고 싶어.

p. 115

편안하고 유쾌하며 품위 있게라는 신조를 가지고 생활하던 이반 일리치.

그가 아내를 맞이함에 따라 자기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과 자신이 속한 상류 사회가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결혼했다고 할 만큼 '위선' 속에 살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특히 권력이 있음에도 오히려 함부로 휘두르지 않으며 약자를 존중한다. 그런 그의 모습에 그들이 자신을 존경한다는 것을 알고 더 위선 속에서 우월감을 느꼈던 그.

그런 그가 정작 자신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보이던 위선적인 행동에 분노한다. 하지만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통해 그 또한 자신의 삶 역시 올바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처음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죽음을 부정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자신과 달리 멀쩡히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으며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억울해하며 절망 속에서 빠지기도 했다. 결국엔 죽음을 수용하며 자신의 지나간 삶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되짚어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끝내 '용서해 줘'라는 말은 하지 못했던 이반 일리치.

한 사람에게 죽음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가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죽음에 대한 자세를 생각해 보게 한다. '내가 그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도 저러했을까?!' 그를 통해 죽음에 대해 간접 체험을 해본다. 그리고 어릴 때 멀고도 먼 죽음이 나이가 들면서 축하하는 일보다 죽음을 애도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몸소 깨닫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조금은 함께 하는 이들과 더 오래오래 하고 싶다. 분명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 가까워질 죽음이지만,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을 떠올리며 막연히 불안해하는 것보다 죽음을 인식하되 내일을, 미래를 계획하며 삶의 행복을 누려봄이 좋지 않을까? 하루하루 행복으로 채워나가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중록 외전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외전으로 돌아온 잠중록!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세계문학 / p.131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거야.

p.101

수없이 많이 들어 아는 책 제목 중 하나인 「노인과 바다」이지만 정작 내용은 자세히 기억 못 하는 소설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저 노인이 아주 큰 물고기를 잡으며 사투를 벌이는 과정의 이야기라고 어렴풋이 기억할 뿐, 노인에게도 산티아고라는 이름이 있었고 노인이 잡은 물고기는 말린(Marlin, 청새치)이었으며 노인에게 제자와 같은 존재 소년이 있었단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은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 저자가 실제로 쿠바의 수도 아바나 근처에서 청새치를 낚시하며 구상했던 이야기로 저자가 12년 동안 쓴 시가 산문으로 옮겨진 것이다. 늙은 어부가 거대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다 뼈만 남은 잔해를 끌고 돌아오는, 어쩌면 약간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단순하면서도 짧은 이 이야기의 어떠한 점이 그렇게 높은 평가를, 그렇게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게 만든 것일까?

거대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며 보인 노인의 바다와 물고기에 임하던 자세가 그리고 생생하게 묘사되는 노인이 처한 현실과 상황이 짧은 독백으로 이루어진 구성과 대조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더 처절하게 다가왔던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돛은 여기저기 밀가루 부대로 기운 것이었는데,

그렇게 접어 놓으니 영원한 패배의 깃발처럼 보였다.

p. 8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혼자 낚시를 하는 노인 그리고 그의 밑에서 어부로서 수련을 하던 소년 마누엘. 노인은 84일째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태였고 이로 인해 40일 동안 함께 했던 소년은 부모에 의해 다른 배를 타고 있는 상황. 하지만 어부 대 어부로 이야기하며 서로를 챙기는 둘.

운이 다한 노인을 그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으려 할 때 소년만이 그의 편이 되어 매일같이 그를 돌보아준다. 노인 또한 거대한 물고기를 마주한 순간순간, 그 소년에 대한 부재를 계속 이야기하며 소년에 대한 마음을 드러낸다. 그 애가 있었더라면 물고기를 잡은 이 순간을 함께했을 것이고 쥐가 난 왼손을 풀어줬을 것이며 코일을 물로 미리 적셔 놓았을 거라고...

물고기와의 사투가 길어질수록 소년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인의 마음에 나 또한 소녀의 부재를 함께 아쉬워하게 만든다.

그 애가 여기 있었더라면, 그 애가 여기 있었더라면. 81

소년이 배에 타지 않기 시작할 때부터 큰소리로 혼잣말을 시작한 노인은 낚시를 하는 과정에서 만난 물고기, 새 그리고 본인에게도 말을 건다. 바다에서 완전히 혼자이면서 완전히 혼자가 아닌 노인, 그가 이렇게 혼잣말을 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던 둥이들은 노인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힘든 과정을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나름의 결론을 낸다.(흠.. 그런가?! 정말 어떤 의미가?!)

85일째 되던 날, 먼바다로 나간 노인은 아주 거대한 물고기를 잡게 된다. 3일 동안 계속되는 사투로 혹여나 노인이 물고기를 놓치면 어쩌나(그럴 일이 일어날 리 없음에도) 초조했고, 배 안에 실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물고기로 인해 배에 묶어갈 땐 앞으로의 일이 예상이 되며 불안했다.

역시나 그 불안은 물고기가 흘린 피에 몰려든 상어떼의 공격으로 일어난다. 상어로부터 물고기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었지만 그저 노인의 처절한 몸부림에 불과했고, 결국 물고기의 몸이 상어에게 뜯겨나가는 것을 봐야 했던 노인은 마치 자신이 공격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나 또한 그런 그에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함께 공격을 당한 느낌을 받았다.(어떡해ㅠㅠ)




거대한 물고기를 잡으며 힘이 부칠 땐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견딜 수 있는지 보여줄 거라며 죽을 때까지 싸울 거라고 의지를 불태우던 노인. 물고기와의 사투가 길어지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자신과 물고기가 안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놈을 죽여야 한다는 자신의 결단을 유지하던 노인. 상어에 의해 사라져가던 물고기의 몸을 보며 너를 잡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던 노인.

모든 상황 속에서 자신은 어부로서 최선을 다한다고 말하던 노인이었다. 만약 내가 그처럼 힘든 상황에 놓였다면 난 과연 끝까지 그 물고기를 잡고 있었을 수 있을까?! 함께 책을 읽은 아이들 또한 자신과 노인의 다른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며 노력해서 이루고자 하는 포기하지 않는 삶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적은 독후감 제목 '포기하지 않는 산티아고 할아버지 - 하율', '힘든 일을 하는 과정의 차이 - 하랑'을 보며 이렇게 저마다의 나름의 교훈을 얻어 가는구나 싶다.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희망이 없다는 건 죄악이야. 어쩌면 물고기를 죽이는 건 죄악일지도 모르지. 생계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더라도 그건 죄악일 수 있어. 그렇다면 모든 게 죄악이야. 죄악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 그런 걸 생각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세상에는 돈 받고 그런 죄악을 저지르는 자들도 있어. 그런 자들이나 죄악에 대해 생각하라고 해. 물고기가 물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넌 어부로 태어났을 뿐이야.

p.103

노인과 바다, 인상 깊은 글귀

▶두 손아, 확실히 잡아당겨라. 양다리야, 굳건히 버텨라. 머리야, 나를 위해 버텨 주어라. 나를 위해 견뎌 줘. 넌 가버리는 법이 없잖아. 이번에는 저놈을 당겨서 물 위로 올릴 거야. p.90

▶물고기야, 넌 나를 죽이고 있어.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넌 그럴 권리가 있어. 난 너처럼 크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고상한 놈을 평생 본 적이 없어. 형제여, 어서 와서 나를 죽여라. 나는 누가 누구를 죽이든 신경 쓰지 않겠다. p.91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이 모든 것을 죽이고 있다고. 낚시는 나를 살리지만 그만큼 나를 죽이기도 해. 하지만 소년은 나를 살리지. p.104

▶이게 꿈이었더라면. 차라리 저 고기를 잡지 말았더라면. 물고기야, 정말 미안하다.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렸어. 물고기야, 난 그렇게 멀리 나가지 말았어야 했어. 너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말이야. 미안하구나, 물고기야. p.108

▶그들과 싸울 거야. 나는 죽을 때까지 싸울 거야. p.114

▶그는 자신이 이제 회복 불능일 정도로 패배했다는 것을 알았다. p.117

▶"이제 우리 같이 고기잡이를 나가요."

"아니야. 나는 운이 없는 사람이야. 더 이상 운이 없어."

"운이 뭐 그리 중요해요?" 소년이 말했다. "제가 운을 불러오면 되잖아요."

"모든 것을 준비해 둘게요. 할아버지는 손을 잘 치료해 두세요."

"난 손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알아. 밤중에 바다에서 이상한 것을 뱉었는데 내 가슴의 뭔가가 깨어진 느낌이야." p.1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평양을 막는 제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7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평양을 막는 제방

마르그리트 뒤라스 | 윤진 옮김 | 민음사

세계문학 / p.394

자신의 인생을 받친 대가로 받은 건

그저 바람 그리고 물뿐이었다.

프랑스 현대 문학에서 독보적 위상을 차지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저자의 책을 만났다. 삶의 고통을 섬세하게 묘사한 '뒤라스적 글쓰기'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라니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원어 낭독으로 먼저 만났던 책이었기에 더없이 반가웠고, 책을 읽는 동안 감미로운 프랑스어가 들려오는 듯했다.

「태평양을 막는 제방」을 읽는 동안 이상하게도 예전에 읽은 '배움의 발견'이 계속 생각났다. 독실한 모르몬교 가정에서 태어난 타라가 정부를 믿지 못하는 아버지 아래 공교육을 받지 못한 채 16년을 살다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박사가 되기까지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그 책이. 분명 다른 이야기임에도 태평양을 막는 제방 속 그들이 보여주던 광기와 폭력이 비슷해 보였던 걸까?

책을 다 읽고 보니 책 제목이 정말 내용 그 자체구나 싶다. 그리고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쉬잔이 아닌 그녀의 어머니였을지도... 책이 출간이 되고 나서 책 내용이 사실을 왜곡했다며 격노한 어머니, 그리고 결국 결별한 둘.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해지는 이야기이다.



당신들은 내 인생의 십오 년, 젊음의 십오 년을 바쳐 모은 돈을 받고 나서 무엇을 줬나요? 소금과 물뿐인 사막이었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당신들에게 건넸죠. 마치 내 몸을 제물로 바치는 기분이었고, 그렇게 바쳐진 내 몸에서 내 아이들을 위한 행복한 미래가 꽃 피어나길 기원했습니다. 당신들이 받은 건 그런 돈이었습니다. 그 봉투 안에 내가 모은 돈 전부가, 나의 모든 희망과 살아갈 이유가, 십오 년 동안의 인내가, 나의 젊음이 송두리째 담겨 있었단 말입니다.

p.294

한때 교사였던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쉬잔과 조제프를 건사하며 15년 동안 열심히 모은 돈으로 식민지 토지국에 토지 불하 신청을 해 땅을 받는다. 하지만 그 땅은 매해 밀려 들어오는 바닷물로 인해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불하지였다. 자신의 젊음이 태평양의 파도 속에 던져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어떻게 해서든 무엇이든 경작해 보려 했던 어머니는 결국 대출을 받아 제방을 세우려고 했고, 그 계획에 평야의 농부 수백 명이 온 힘을 쏟아부으며 광적인 희망을 가지고서 함께 제방을 쌓아 올린다. 하지만 그 제방 또한 단 하룻밤 사이에 태평양 파도의 가차 없는 공격으로 무너져 내린다.

이 땅을 사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모든 즐거움을 희생했던 어머니, 그녀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던 이 땅을 태평양의 물이 평야를 마음껏 적시도록 내버려 두기까지의 고통이 그녀를 병들게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그녀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이지 않은가?! 그녀가 쉬잔과 조제프에게 가한 폭력과 폭언이 이로 인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망상에 사로잡힌 어머니를 사랑했기에 떠날 수 없었던 쉬잔과 조제프였고, 조제프는 유일하게 쉬잔에게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되었으며 어느 날 부유하지만 외모는 아니었던 조 씨의 등장은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유일한 희망이 된다.



무너진 제방처럼, 죽어 버린 말처럼

저 남자 역시 불운일 뿐이다.

아무도 아니고, 그저 불운이었다.

p.75

쉬잔에게 반해 구애를 하는 조 씨에게 결혼하기 전까지는 쉬잔과 자지 못한다며 결혼을 강요하는 어머니와 조제프. 조 씨는 투명한 존재였고, 짜릿한 돈의 약속을 엿보기 위해 거쳐 가야 하는 얼굴일 뿐이었다. p.104

그녀가 욕실로 들어가면 어김없이 조 씨가 문을 두드린다. 문 좀 열어봐요, 쉬잔. 열어 봐요. p.106

쉬잔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조 씨이지만 내 눈에는 그저 욕망으로만 보인다. 조 씨 그대로의 자신에게 쉬잔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돈이 가진 능력을 이용했고 축음기를 선물함으로써 늘 문을 두드리는 그였고 그녀도 그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줬다. 점점 애타는 마음에 측음기보다 몇 배나 비싼 다이아몬드까지 주는 그의 마음이 정말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이아몬드를 쉬잔이 받은 것을 보고 숨겨놓던 어머니는 보석처럼 역겨운 건 없다며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고 말하더니 쉬잔을 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광경을 조제프는 지켜만 본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의 폭력이 행사될 때면 헉! 한다. 그리고 의문만이 가득해진다. '왜?' 조 씨와 자지 않았다고 해도 어머니가 계속 때리자 결국 쉬잔이 조 씨와 잤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네가 그런 아이가 아닌 걸 안다면서 또 때린다. 왜?

쉬잔이 조 씨와 결혼만 한다면 조 씨에게서 돈을 구해 제방을 다시 쌓고 방갈로 공사를 마무리하고 자동차도 바꾸고 조제프의 이도 치료해 줄 생각이었던 어머니, 이 모든 계획이 지체되는 건 쉬잔의 책임이라 생각하는 어머니. 다이아몬드가 어머니의 내면에 억압된 감정을 건드리며 그 감정에 못 이겨 쉬잔에게 달려들었다는 설명이 있었음에도, 제방의 전후 사정을 알고 있음에도 이해는 되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이 이렇게 그려졌다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이야기. 조 씨로부터 측음기와 다이아몬드를 받으면서도 오빠가 누릴 즐거움을 떠올리던 쉬잔은 친오빠 이상의 감정을 가진듯하다. 후에 카르멘을 통해 어머니로부터 떠나고 싶어 했던 그녀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청춘기에 사랑과 절망을 동시에 경험한 저자 뒤라스의 분신들이라고 할 수 있는 「태평양을 막는 제방」와 「연인」 , 이제는 일흔에 쓴 「연인」을 읽으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으려나?

태평양을 막는 제방, 인상 깊은 글귀

사실 아이들은 죽어야 했다. 평야는 좁았고, 여전히 어머니의 바람과 달리 바다는 앞으로도 긴 세월 동안 물러나지 않을 터였다. 바닷물이 어디까지 올라오든 아이들은 악착같이 태어났다. 그래서 아이들이 죽어야 했다. p.120

다이아몬드는 다른 세상에 속했다. 다이아몬드는 과거와 미래를 매개하는 물건이었다. 미래를 열고 과거를 봉인하는 열쇠였다. p.129

어머니는 방조 제방과 은행과 자신의 병과 방갈로 지붕과 피아노 교습과 토지국을, 자신의 늙음과 고단함을,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p.139

안락한 생활이 주는 놀라운 여유를 드러내는 전체적인 움직임 속에서 몸짓 하나하나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에 반해 쉬잔은 우스꽝스러웠고, 눈에 띄었다. p.191

어머니의 불행은, 결국, 뿌리칠 수 없는 마법 같은 거야. p.2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