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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라는 가능성 - 나의 세상을 확장하는 낯선 만남들에 대하여
윌 버킹엄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3월
평점 :
타인이라는 가능성
윌 버킹엄 |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인문 에세이 / p.352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80년대의 노퍽 시골에서 낯선 사람의 등장은 언제나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삼촌이 콜롬비아에서 우리 집으로 찾아왔을 때, 삼촌은 조깅용 반바지를 입고 새벽에 마을로 나가 경보를 했다. 이러한 삼촌의 행동은 경악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이 물었다. 동틀 녘에 맨 다리를 내놓고 거리를 걸어 다니는 저 이상하고 까무잡잡한 남자는 누구야?
낯선 사람들의 존재는 현지인 사람들에게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나 또한 아버지의 직장 이동으로 인해 부산에서 대구로 그리고 다시 서울로 이동함에 따라 전학을 해야 했었고, 그때마다 새로운 곳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이미 그 무리에 정착한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존재는 입에 오르내리며 관심사의 대상이 되었고, 무엇보다 낯가림이 심했던 나였기에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조금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언제나 주위의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우리. 태어남과 동시에 가족이라는 집단부터 시작해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 따라 친구, 이성, 직장동료 등 범위를 넓혀가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맺어간다. 그리고 ‘대인관계’에 따라 사회성 발달뿐만 아니라 지적 능력과 정서적 특징의 발달에 영향을 받는다.
「타인이라는 가능성」의 내용이 팬데믹의 장기화로 고립, 단절의 상황이 계속된 요즘 재정상태보다 대인관계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2030세대의 소식과 맞물리며 최근 떠오른 ‘관계 맺기’ 열풍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한다.
집과의 미약한 연결조차 끊어졌을 때, 한 장소와 한 공동체 그리고 그동안 기반을 쌓아왔고 내가 이방인이 아니었던 세상의 한구석과 우리를 이어주는 끈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누구인가?
아내 엘리의 죽음으로 인해 ‘집’이 주는 의미에 대해 그리고 우연히 거리에서 타인으로부터 뜻하지 않게 받은 위로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저자는 엘리와 함께했던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낯선 사람들 곁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세우기 위해, 삶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그렇게 여행을 하게 된 저자를 통해 고대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야>에서 그려진 낯선 만남들과 국적이 다른 이들과 이웃하게 될 때 실제로 벌어지는 일, 풍성한 만찬과 선물에 담긴 의미까지, 다양한 문화 속에서 그들이 이방인을 환대하는 여러 모습을 만나게 된다.
책을 통해 오랫동안 잊고 있던 ‘환대’의 의미를 떠올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손님을 위한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빚을 지던 사람들과 배가 부르다는 손님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래도 정말 못 먹겠냐고 되묻던 주인 그리고 자신의 식사 자리에 초대하고 싶은 마음에 낯선 사람을 거의 납치하다시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던 에피소드에선 불편함이 자리 잡기도 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이 차를 마시자고 권해오면 다른 저의가 있을 거라 의심이 되고, 혹 자리를 함께하게 되어 차를 마시게 되면 외국인이 약물을 탄 차를 마시고 쓰러졌다가 깨어나 보니 여권과 돈, 옷이 없어졌다는 끔찍하고 근거 없는 의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기도 한다는 말에선 절로 공감을 하기도.
그럼에도 용기 내어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건 삶을 공유할 때 느껴지는 안정감에서 온기를 느끼고, 세상의 어려움 앞에서 혼자가 아님을 언제나 우리를 보살펴줄 사람이 있음을 알려주었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