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푸른 상흔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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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푸른 상흔

프랑수아즈 사강 | 권지현 옮김 | 소담출판사

프랑스 소설 / p.192

사랑에 빠지고 싶다. 사랑 때문에 가슴 저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싶다. 같은 앨범을 열 번이나 되풀이해서 듣고, 아침에 눈을 떠 익숙했던 자연의 축복을 한껏 들이마시고 싶다. p.10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그 마음이 뭔지 알 것만 같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저자가 담담히 써 내려간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꼭 독자에게 말을 걸듯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프랑수아즈 사강. 마치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마저 든다. 그리고 그녀가 1960년 발표한 첫 번째 희곡 '스웨덴의 성'에 나왔던 주인공 세바스티앵과 그의 누이 엘레오노르 두 사람을 「마음의 푸른 상흔」에서 만나게 된다.

저자와 비슷한 또래인 반 밀렘 남매. 무일푼으로 프랑스에 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한마디로 빌붙어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런 남매가 「마음의 푸른 상흔」에서 어떻게 프랑스에서 살아남는지 '소설'로 그려지는 '파리 생존기'와 함께 이 이야기를 집필하고 있는 저자의 '생존기'가 동시에 그려진다. 즉, 소설과 에세이 형신의 중간을 넘나드는 특이한 작품인 것이다.




소설 속 남매는 무일푼임에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현재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어떠한 불안과 나약함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더 불안해했고 그들의 노후까지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그들의 끝이 궁금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희극처럼 다가왔던 남매 이야기 중간중간 저자가 들려주던 자신의 이야기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글을 쓸 때 어떤 심정인지, 팬들이 자신에게 전하던 말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었는지 그리고 현재 사회에 대한 생각과 비판까지. 저자가 반 밀렘 남매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던 시간이었고, 서로 다른 두 이야기에서 조금은 독자가 저자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




처음엔 특이한 형식에 생겼던 호기심이 다였다. 그런데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저자의 필력이라니! 무엇보다 저자가 가진 특유의 문체가 주는 재미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도 있어 좋았고, 저자가 마지막 반 밀렘 남매의 이야기 속 인물이 되어 그들과 함께 하고, '안녕'이란 말과 함께 하나의 이야기로 끝난 마무리까지, 정말 좋았다.

사강 저자의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다른 책을 또 읽고 싶게 만드는 마술이 탑재되어 있는 거 같다. 같은 주제도 다르게 표현되는 그녀만의 문체에 어느덧 푹 빠져들게 되었나 보다. 그래서 또 다음에 읽게 될 책에선 어떻게 그 주제들이 표현이 될지 기대가 된다.

왜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는 가장 훌륭하고 감수성이 강한 작가 한 사람을 잃었다'라고 말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 「마음의 푸른 상흔」이었다.

마음의 푸른 상흔, 인상 깊은 글귀

책추천, 자전적 소설 에세이로 프랑수아즈 사강을 만나다

▶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다. 그렇지만 열다섯 살 때 그랬듯, 내게는 절대적인 것이 없다. 불행히도 나는 삶의 쾌락을 꽤 많이 맛본지라 내게 절대적인 것이란 뒷걸음질, 나약함일 수밖에 없다. 온 힘을 다해 일시적이기를 바란 나약함. 그것은 틀림없이 자만심 때문일 테고, 이번에도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죽음은 최소한의 악이다. p.11

▶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아마 그런 것이리라, 늙는다는 것은. 자기 것을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는 것. 십오 년 전부터 내 몸에 가까이 왔던 수많은 몸들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p.16

▶ 내가 섬기는 유일한 우상, 유일한 신은 시간이다. 오직 시간만이 나에게 심오한 기쁨과 고통을 줄 수 있다. p.42

▶ 생각해 보면 우울증을 피할 수 있다고, 적어도 그 병에서 회복될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면 왜 글을 쓰겠는가? 모든 텍스트의 절대적인, 고유의 존재 이유는, 그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심지어 논문이든, 이처럼 늘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p.135

▶ 행복과 불행, 무사태평, 삶의 기쁨은 백 퍼센트 건전한 요소이다. 우리는 그것을 가질 권리를 백 퍼센트 가지고 있지만 한 번도 만족할 만큼 가지지 못하며 거기에 눈이 먼다. p.172

▶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악몽은 바로 '만약'이다. '만약 내가 알았더라면', '만약 내가 이해했더라면'……. '만약'은 내게 항상 생명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하고 상상만 한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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