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빛의 세기를 열다 - 20세기 사진의 거장전 정식 도록
신수진 지음 / 지엔씨미디어(GNCmedia)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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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잘 모른다. 그리고 솔직히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성곡미술관에서 자주 전시되는 사진전을 보면서도 그다지 감흥이 없는 나이기에 사진전 하면 그림을 전시한 것보다 훨씬 따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편견이지만 그래도 예술을 즐기는 것은 주관적이라고 생각하기에 재미없이 즐기는 예술이란 사실 지옥에 가깝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가능하면 이런 것에 낭비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이 작품전은 전혀 달랐다. 특히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사진전 도록을 구입하면서부터였다.  

  사실 티켓을 사은품으로 갖고 있지 않았다면 과연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졌을까 자문한다면 그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유인책이야말로 미래의 잠재적 소비자를 개발하는 것이니까 나에겐 가장 좋은 효과가 난 셈이다. 도록에서 보인 작품들은 관람을 했던 전시회와 비교해서 결코 뒤지지 않은 표현력을 담았다. 아마도 도록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과 전문가의 지적 수준, 그리고 그들의 자부심이 낳은 결과이리라.  

  20세기의 대표적인 예술로서 자리매김한 사진은 미술을 추상화로 가도록 이끌었으면 직접 본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기록의 영역에서 우선 큰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수단이 생기면 뛰어난 미적감각을 지닌 천재들에 의해 그 속의 미적부분들을 극대화시키고 뛰어난 미적 표현을 개발하는 법이다. 이러기에, 뛰어난 사진작가들이 나오고, 20세기 초에 나타난 그런 뛰어난 작품들을 전시회에서 초대했고 도록에선 담았다.  

  작품 하나하나는 뛰어난 예술적 수준은 물론 삶의 철학이 담겨있었다. 또한 20세기 초에 가장 큰 관심거리였던 도시와 과학 기술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담고 있었다. 특히 관점에 따라 표현되는 작품들은 무척 실감났고 흥미로웠다. 또한 독서라는 주제의 작품들은 독서는 세상과의 소통이지만 동시에 다른 관계와의 단절을 의미하면서 관계나 소통의 독특한 특성을 보여줬다.  

  내가 전시회 마지막 날에 갔던 것이 너무 아쉬웠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기회를 더 많이 가졌을텐데. 그러나 이 도록이 있어 조금 안심이다. 누군가 그랬지? 전시회는 끝나도 도록은 남는다고. 그 말이 가장 실감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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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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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그들은 그렇지만 언제나 타인이었다. 사랑하지만 사랑 받는 타인들에 대한 무지가 단편소설들 곳곳에 담겨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랑하지만 불행을 안게 된다. 사랑하지만 보여줄 수도, 알려줄 수도 없었던 비밀들은 본의는 아니었지만 오해와 불신, 심지어는 분노를 일으키곤 한다. 사랑하기에 알고 싶었던 그것들이 비밀에 싸일 때, 인간의 본원적인 고독과 절망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만남은 쉽사리 헤어짐과 연결되고, 헤어진 이후에도 오해로 인한 분노는 결코 작아지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소설 속의 고통은 시작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랑했지만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하나하나 드러날 때의 충격은 당혹감과 오해로 인한 증오가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상대를 얼마나 알고 믿었는지에 대한 자성을 이끈다. 그리고 정말 상대를 알고나 있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안다고 해서 만남이 다시 이루어지지도, 또한 관계가 회복되지도 않는다. 이미 상대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어떤 곳에 있기 때문이다. 작가 김연수는 이 지점에서 볼 때,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과연 우린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어쩌면 사랑하기에 그럴 것이라고 함부로 단정을 짓고 함부로 처신했는지 우리에게 자성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증오의 근원이 사실은 헛된 것이고 무의미했음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우리들이 자성과 탄식을 반복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과연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오류를 피할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또 한 번 작가의 섬세한 시각은 우울한 분위기를 던져 준다. 결코 이 잘못을 피할 수 없단 사실이다. 신이 아니기에 우린 언제나 잘못되고 오독된, 혹은 멋대로 생각한 세계에 머물 뿐이다. 상대를 생각하지만 사실 생각 속의 상대에겐 진정한 상대가 존재하지 않고 자신이 상정한 상대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기에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되지 않고 봉합되거나 무시나 이별이란 것을 통해 봉합될 뿐이다. 어쩌면 인간은 비겁한지 모르겠다. 알려는 노력보다 회피하는 편리함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한계라는 표현이 적절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생각하든, 쉽지 않은 선택만이 존재할 뿐이다. 
 

  소설 문구 중 하나인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라는 표현은 그래서 무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소설의 그것들을 해석할 수 있다. 즉, 우린 그렇게 하지 말자, 라는 다짐 말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상대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 되살아날 것이고, 우리들의 삶은 과거보다 더욱 풍요롭고 행복의 최소단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기에 의심하는 현세태의 자화상이고 보면 이런 이야기들은 정말 낭만적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앞서의 표현처럼 회의적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을 받아들일 것은 결국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완벽하지 않기에 노력할 수밖에 없는, 짐승에서 진화한 인간이기에 행복을 위한 전제들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정보공개를 요구하기 이전에 타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확신을 닦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어쩌면 우리가 더불어 사는, 그리고 사랑하는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 아닐까? 사랑은 배려이고, 곧 행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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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ek 2009-12-10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때문에 미뤄놓았던 작품인데, 읽어봐야겠습니다.
사랑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World's End Girlfriend노래나 한 곡 들어야겠습니다. ^.^
 
출판편집자가 말하는 편집자 부키 전문직 리포트 13
정은숙 외 22인 지음 / 부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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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책 출판에서의 편집자의 역할은 수북하게 쌓인 원고지에 빨간 색연필로 밑줄을 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의 영향이 컸는지 앞서의 편집자에 대한 이해는 낡은 것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어쩌면 관심 밖의 영역이라 굳이 생각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새롭게 변화되어가고 있는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이 나에게 준 첫 인상이었다.
  편집자들은 중간자이다. 작가의 이상을 실현시켜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갖고 있지만 자본주의 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의 이상을 현실세계에 접목시켜서 예술성은 물로 상품성도 아울러 높여야 하는 어쩌면 이율배반적인 작업을 해야 하는 일종의 사업가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그들의 즐거움과 애환이 녹아 들어있다.
  편집자들은 책 속의 숨은 글장이들이다. 작가에 버금갈지는 모르지만 작가가 만든 작품의 가장 시작을 출판하기 전에 본다는 점에서 그들은 독자에 가깝지만, 그 작품을 이리저리 재단하는 경우, 글솜씨가 부족하다면 그 결과는 최악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글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글의 시장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하면서도 (이것은 작가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작가에겐 세상에 대한 고집이 있어서 시장성을 뒤로 미루는 입장일 것만 같다), 또한 글을 쓰고 싶은 열정 역시 가득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책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보면서 ‘과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23명의 편집자들이 각각의 글에서 편집자로서의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출판편집자가 말하는 편집자]는 23명의 글을 정말 제 각각의 매력을 갖고 있다. 글을 읽다 보면 글 행간엔 자신들도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글을 쓰고 싶었던 열망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각기 다른 글맛을 느끼게 한다. 단편소설이라도 작가 한 사람이 쓸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글색깔로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이 책은 23명의 다른 색으로 물들어져 있어서 단조롭지 않았고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선 편집자의 직업에 대한 각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엔 편집자로서 갖추어야 할 점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투영하는 경우도 있으며, 혹은 편집자로서의 애환을 각자 담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느낄 수 있었던 직업을 통해 얻은 행복, 작가의 이상과 현실을 이어준다는 자부심, 그리고 포기하기 힘든 매력과 희망 등을 읽어 내려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의 경쟁을 몸으로 느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의 애환과 공포, 힘든 생활도 느껴진다. 그들은 그렇고 그런 직장인이란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그 직장인이란 소회 속에서 그들은 강한 프로의식을 갖고 세상에 뛰어든 생활인이자 예술인이다. 편집자로서의 자부심은 취직해서 얻은 것이 아닌, 다양한 경험과 애환, 그리고 성취감을 통해 얻은 것들이다. 저자의 원고를 처음 본다는 기쁨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작품을 세상과 가장 효율적으로 소통시킬 수 있는 다양한 작업을 완수한다는 점에서 사업가의 완숙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23명의 편집자들의 작품을 하나로 묶은 편집자 (아마도 최종 글을 담당한 변정수 편집인이 그일 것 같지만)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역시 이 작품의 어느 부분을 담당했을 것이다.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도 같은 직업인으로서의 동질감과 연대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애환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자부심을 갖고 생활하는 그들의 마음 속에서 자신도 그런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생활인이 갖는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독특한 매력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편집자들은 참 좋겠다. 자신들의 독특한 매력과 연대감을 갖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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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 - 한지민의 필리핀 도네이션 북
한지민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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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민 님이 할 줄은 몰랐다. 방송활동이 뜸하면 어느 아름다운 섬에서 스타화보 찍고 오는 것이 오늘날의 여배우의 생활패턴의 대세인데,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어느 이름없는 곳으로의 자원봉사 활동은 사실 누가 봐도 의외였다. 이런 것도 스타화보라면 화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학습효과라고 할지 모르지만 혹시 참신하고 좋은 이미지를 심어놓기 위해 그런 험한 곳에 간 것이 아닐까 하는 부정적인 시선도 의식할 수 있는 최근의 상황이고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부담이 됐을 것도 같다. 그래도 그녀는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갔다. 그러면서 그녀가 사실은 한국에서도 다양한 자원봉사와 거리 운동을 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오지는 오지였을 것이다. 스페인에 의한 식민지 시절, 슬픈 역사로 만들어진 마을이라는 정보에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열악한 환경은 도시인 기준으로는 참 살기 힘든 곳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한 때나마 아일랜드나 네덜란드에서 가난의 상징이었던 감자와 아주 비슷해 보이는 ‘가모떼’라는 것을 주식으로 삼는다는 것과 그들의 작은 키의 원인과 관련이 있다는 것 역시 그들의 가난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종종 찾아가 관람하는 ‘성곡미술관’에 전시되곤 하는 많은, 저명한 사진작가들의 사진들 속엔 다소 어두운 얼굴들이 많이 형상화된다. 아마도 작가들의 뛰어난 시선에 포착된 세상은 좀 어두워 보였나 보다. 그 이유는 심오한 철학과 인생을 성찰하는 장면들, 혹은 슬픈 현실을 고발하기 위한 작품들이 넘쳐서일 것이다. 아마, 그것들이 우리 주변의 삶의 현실이고 또 그런 것을 부각시켜야만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작가들의 나름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가장 힘들 것이라고 생각되는 ‘알라원’에서 찍힌 아이들의 모습엔 그런 어두움이 없어 보인다. 한지민의 표현처럼 도우러 갔다가 그곳에서 볼 수 있었던 삶의 건강성을 확인하고, 행복이 풍요로운 물질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통념을 깰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에 담겨 있는 사진들은 참으로 값진 작품들이다. 주민들과 어린이들의 해맑은 모습은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진솔한 인간미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둡게만 느껴지는 우리 사회에서 그 사진작품들은 신선한 청량감을 줄 것 같다. 언젠가 ‘성곡미술관’에 전시회를 따로 가졌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한다. 세상에 힘들다는 지역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린 어쩌면 너무 엄살을 떨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의 작품들은 좀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문명의 이기가 전혀 들어오지 않은 곳에서 학교를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힘든 여정을 한 봉사단체의 애정은 지극정성이 느껴진다. 사진으로 보이는 모습들은 무척 즐겁게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오지는 오지였을 것이다. 무척 힘든 오지이기에 JTS라는 봉사 단체가 지속적인 활동을 하기까지 한다. 그 속에서 그들의 삶이 좀 더 복되게 하기 위해 그 알라원에 학교를 지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아슬아슬하지만 한지민과 노희경 같은 인기인들에 의해 큰 도움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한다.
  한지민이란 여배우는 나하고 묘하게 겹친다. 난 ‘부활’이란 드라마의 열성팬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종종 어떤 선택을 할 때면, 드라마 ‘부활’이 제시했던 주제들이 생각나곤 한다. 그리고 ‘카인과 아벨’ 역시 무척 의미 있게 본 드라마이다. 개인적으로 드라마 홈페이지에 리뷰를 남겼을 만큼 열렬한 팬이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어떻든 좋은 작품에 한지민은 어느 한 편을 맡아서 열연을 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노희경 작가’ 역시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것이 무척 반갑다. 노 작가의 현실과 심오를 아우르는 표현력은 그녀의 작품과 함께 명품으로 여겨지는 것들이다. 이런 분들의 노력과 성심이 좋은 결실을 맺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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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경제학 2 - 서민 경제의 미래 위험한 경제학 2
선대인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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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정치다.
  경제의 이면을 하나하나 짚어낸 [위험한 경제학 2]는 [위험한 경제학 1]에서 다소 적게 언급했던 경제현상 뒤의 정치현상을 주된 소재로 사용한다. 경제 행위 뒤에 숨어있는 탐욕의 정치적 문제를 직접적이고 포괄적으로 언급함으로써, 과연 한국은 현재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을지 하는 문제다.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언제나 미시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시장경제를 우선시한다. 그런데 미시경제학에선 언제나 시장경제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정부의 보호를 무시하고 있다. 사실 정부의 보호로 인해 가장 큰 도움을 받는 것이 시장인데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행위를 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강자가 약자와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제발 방관 좀 해달라는 것이다. 사회는 강자든 약자든 서로간의 조화 속에 효율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미시경제를 악용하는 한국의 기득권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이런 기득권 세력을 위해 헌신하는 정권까지 탄생하고 말았으니 한국의 서민들의 위험은 가히 성층권 수준이다.
  현재의 한국의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개발 방식은 후진적이다. 문제는 왜 이런 후진적인 경제개발이 이루어졌고 계속 추진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기득권 세력을 단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김대중 •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켰어도 그들은 언제나 기득권 세력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 역시 탐욕스런 관료, 재벌, 언론 등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의 위기는 바로 그런 현상을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분야일 뿐이다.
  과거에 통했던 건설을 통한 경기부양이 현시점에선 그 효과가 줄어들고 있다. 책의 내용에도 밝혔듯 20년 전과의 비교를 통해서 건설경기는 고용창출효과에 대해선 그다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은 친서민을 자처하며 후진적인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런 후진적인 정책 이면엔 재벌들에게 예산을 조기에 집행함으로써 서민들의 돈을 재벌에게 끌어주는 반서민정책이 숨어 있다. 또한 감세정책은 분명 반서민정책이고 실제로 그 진위를 알 수 없는 ‘신빈곤층’의 지원 역시 도리어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상황만 초래하고 있다. 실업률과 관련된 통계자료를 조작함으로써 체감 실업률과의 큰 차이를 만들어내면서 정부의 자료 조작의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여기에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림으로써 전직장의 알바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불안한 생활을 양산하고 있다.
  이런 부당한 정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무엇보다 인구의 저출산과 고령화의 충격이 조만간 가시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속에서 그들을 책임져야 할 세대는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골드미스족’이라고 선전된 가난한 1인 가구의 증가는 집값 폭락의 또 다른 뇌관이 되고 있다. 또한 막연한 수도권 증가가 집값을 유지시킬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근거로 후진적인 부동산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의 후폭풍은 한국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또 다른 문제점이 이런 부정적인 현상 뒤에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선거와 투표다. 민주주의와 건전한 경제발전을 만들기 위해서보다 자기 당의 직원들과 의원들에게 계속 직위를 유지시켜야 하는 부담을 언제나 짊어지는 리더이기에 국가적 차원의 발전보단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뛰었단 점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공동체적 위기는 도리어 심화됐다.
  그 투표력의 기반은 베이비붐 세대라는 전체 인구의 대략 15% 이상을 차지하는 바로 지금의 50대의 부모세대가 그것이다. 그들의 생활방식은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 다른 이의 아들을 착취하고 말았지만 자신의 자식 역시 그런 착취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기막힌 구조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이기적인 행동만을 일삼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부동산 투기에 적극 가담, 그곳에서 경제부담을 다른 세대에게 뒤집어 씌우는 행태를 보이면서라도 임대료 수입 등을 챙기기 위해 부동산 투기를 적극 지지하는 정권에 투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집값은 언제나 높아야 했고 그를 부정하는 정치 세력을 그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자식들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에겐 다른 것들에 관심 없었고 오직 기득권 세력과 야합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들은 오늘날 베이비붐 세대라고 불린다. 조만간 그들은 생산력 부분에서 강퇴당한다. 그들의 은퇴는 한국사회에 암울한 미래를 보여준다. 구매력의 엄청난 상실은 물론, 그들이 키울 데로 키운 버블이 터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자신들끼리 소비했던 아파트들을 후배들과 후손들은 더 이상 살 수 있는 경제력이 없으니까. 서울이나 수도권 인구들이 책의 분석처럼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20-30대의 파괴된 소비력으로는 30평 아파트를 억대의 금액으로 살 수 없다. 산다면 그것은 거의 빚으로 살 것이고 그것은 다른 분야에서의 소비를 위축시킬 뿐, 결코 건전하지도 한다. 더욱이 자신들의 자식을 위해 다른 집안의 자식들을 착취한 구조 덕분에 형편없는 생활력을 지닌 젊은 세대들이 어른들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을 우습게 여길 가능성이 더욱 많아졌다. 그런 짐을 강제하도록 투표력을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현대판 ‘고려장’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배려를 하지 않은 베이비붐 세대의 비극은 국민연금을 비롯해서 다양한 보조금 등의 부족이나 붕괴로 이어지고 3억대 이상의 아파트 한 채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손자 삼대가 동시에 사는 기막힌 사태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은 슬픈 동거가 이어지는 것이다.
  올해 ‘패권주의 정당체제’라 대표적인 예로 평가되던 일본의 자민당 중심 구조가 투표로 깨졌다. 비록 투표를 한 일본시민이 얼마나 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해 투표했는지 모르지만 어떻든 변화의 조짐은 보이고 있다. 한국은 앞서서 국민투표에 의한 변화가 있었지만 그 덕분에 정권 잡은 권력자들 역시 박정희-전두환 정권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부동산 정책으로 자산가치를 키우는 정책만 해서 거품을 키웠다. 아마도 정치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베이비붐 세대들의 투표력을 의식한 정치 행태를 보인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좀 바꾸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단기적인 미래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제 한국은 부동산 투기로 가장 이익을 받았던 과다 인구 세대들의 은퇴를 바라보게 됐다. 그들이 60대가 되어도 결국 같은 투표 행위를 보이겠지만 88만원 세대보다 더욱 혹독한 경제상황을 겪을 현재의 10대들이 그들의 투표수를 갉아먹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10-20대의 선택은 과거 세대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기에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를 부양할 의지는 물론 능력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 점에서 한국은 또 한 번 거대한 사회적 회오리를 당할 가능성이 많다. 유럽의 몇 개 국가들처럼 Grey 정치를 할 수는 있겠지만 부모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보복 역시 마찬가지로 가혹할 것이다. 사회적 연대를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자식을 위해 다른 자식들의 행복을 무너뜨리려 했던 기존 세력의 폐해를 미래에 당할 가능성이 많다. 자신들만을 위한 탐욕을 억제해서 사회적 연대를 구성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이런 처참한 미래를 보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그런 인식 자체가 없었다.
  미래는 어려울 것 같다. 일본 역시 다 당하고 나서야 변했을 뿐, 자민당은 위기 이후에도 일정기간 건재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집권당 역시 자민당과의 유사성이 차별성보다 더 크다는 분석가도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일본의 ‘난까이 세대’ 역시 건재함을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베이비붐 세대가 일으킨 문젯거리 때문에 고난을 많이 겪고 있다. 점점 불거지고 있는 세대간의 갈등은 지역주의, 재벌문제, 부패관리문제 등과 함께 또 하나로 추가될 것이다. 그들이 계속 부동산 투기를 막는 것을 집요하게 방해한다면 다음 세대들은 그런 구식세대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고 이것은 한국사회가 붕괴되는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다.
  우린 이런 암울한 미래를 갖고 있다. 저자의 경고는 분명 새롭지 않다. 많은 연구기관이나 분석가들이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 결과는 방해와 비겁함으로 묻혀서인지 잘 보이지 않은 곳에 저장됐을 뿐이다.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실을 말하기 위한 용기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 선대인과 김광수 경제연구소는 확실히 큰 용기를 보여준다. 누군가가 말하지 않으면 거대 언론기관들에 의해 사라질 판도라의 상자 속 정보들을 현실을 위해 개봉했다. 그런 그들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길 바란다. 다만 그 노력을 얻는 방식이 책을 읽어서가 아니라 한국이 한 번 호되게 당할 경제적 참사를 당한 이후 알게 될 것 같아 걱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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