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그들은 그렇지만 언제나 타인이었다. 사랑하지만 사랑 받는 타인들에 대한 무지가 단편소설들 곳곳에 담겨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랑하지만 불행을 안게 된다. 사랑하지만 보여줄 수도, 알려줄 수도 없었던 비밀들은 본의는 아니었지만 오해와 불신, 심지어는 분노를 일으키곤 한다. 사랑하기에 알고 싶었던 그것들이 비밀에 싸일 때, 인간의 본원적인 고독과 절망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만남은 쉽사리 헤어짐과 연결되고, 헤어진 이후에도 오해로 인한 분노는 결코 작아지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소설 속의 고통은 시작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랑했지만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하나하나 드러날 때의 충격은 당혹감과 오해로 인한 증오가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상대를 얼마나 알고 믿었는지에 대한 자성을 이끈다. 그리고 정말 상대를 알고나 있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안다고 해서 만남이 다시 이루어지지도, 또한 관계가 회복되지도 않는다. 이미 상대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어떤 곳에 있기 때문이다. 작가 김연수는 이 지점에서 볼 때,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과연 우린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어쩌면 사랑하기에 그럴 것이라고 함부로 단정을 짓고 함부로 처신했는지 우리에게 자성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증오의 근원이 사실은 헛된 것이고 무의미했음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우리들이 자성과 탄식을 반복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과연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오류를 피할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또 한 번 작가의 섬세한 시각은 우울한 분위기를 던져 준다. 결코 이 잘못을 피할 수 없단 사실이다. 신이 아니기에 우린 언제나 잘못되고 오독된, 혹은 멋대로 생각한 세계에 머물 뿐이다. 상대를 생각하지만 사실 생각 속의 상대에겐 진정한 상대가 존재하지 않고 자신이 상정한 상대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기에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되지 않고 봉합되거나 무시나 이별이란 것을 통해 봉합될 뿐이다. 어쩌면 인간은 비겁한지 모르겠다. 알려는 노력보다 회피하는 편리함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한계라는 표현이 적절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생각하든, 쉽지 않은 선택만이 존재할 뿐이다. 
 

  소설 문구 중 하나인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라는 표현은 그래서 무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소설의 그것들을 해석할 수 있다. 즉, 우린 그렇게 하지 말자, 라는 다짐 말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상대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 되살아날 것이고, 우리들의 삶은 과거보다 더욱 풍요롭고 행복의 최소단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기에 의심하는 현세태의 자화상이고 보면 이런 이야기들은 정말 낭만적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앞서의 표현처럼 회의적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을 받아들일 것은 결국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완벽하지 않기에 노력할 수밖에 없는, 짐승에서 진화한 인간이기에 행복을 위한 전제들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정보공개를 요구하기 이전에 타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확신을 닦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어쩌면 우리가 더불어 사는, 그리고 사랑하는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 아닐까? 사랑은 배려이고, 곧 행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니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eong 2009-12-10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때문에 미뤄놓았던 작품인데, 읽어봐야겠습니다.
사랑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World's End Girlfriend노래나 한 곡 들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