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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경제학 2 - 서민 경제의 미래 ㅣ 위험한 경제학 2
선대인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9월
평점 :
결국 정치다.
경제의 이면을 하나하나 짚어낸 [위험한 경제학 2]는 [위험한 경제학 1]에서 다소 적게 언급했던 경제현상 뒤의 정치현상을 주된 소재로 사용한다. 경제 행위 뒤에 숨어있는 탐욕의 정치적 문제를 직접적이고 포괄적으로 언급함으로써, 과연 한국은 현재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을지 하는 문제다.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언제나 미시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시장경제를 우선시한다. 그런데 미시경제학에선 언제나 시장경제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정부의 보호를 무시하고 있다. 사실 정부의 보호로 인해 가장 큰 도움을 받는 것이 시장인데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행위를 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강자가 약자와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제발 방관 좀 해달라는 것이다. 사회는 강자든 약자든 서로간의 조화 속에 효율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미시경제를 악용하는 한국의 기득권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이런 기득권 세력을 위해 헌신하는 정권까지 탄생하고 말았으니 한국의 서민들의 위험은 가히 성층권 수준이다.
현재의 한국의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개발 방식은 후진적이다. 문제는 왜 이런 후진적인 경제개발이 이루어졌고 계속 추진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기득권 세력을 단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김대중 •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켰어도 그들은 언제나 기득권 세력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 역시 탐욕스런 관료, 재벌, 언론 등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의 위기는 바로 그런 현상을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분야일 뿐이다.
과거에 통했던 건설을 통한 경기부양이 현시점에선 그 효과가 줄어들고 있다. 책의 내용에도 밝혔듯 20년 전과의 비교를 통해서 건설경기는 고용창출효과에 대해선 그다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은 친서민을 자처하며 후진적인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런 후진적인 정책 이면엔 재벌들에게 예산을 조기에 집행함으로써 서민들의 돈을 재벌에게 끌어주는 반서민정책이 숨어 있다. 또한 감세정책은 분명 반서민정책이고 실제로 그 진위를 알 수 없는 ‘신빈곤층’의 지원 역시 도리어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상황만 초래하고 있다. 실업률과 관련된 통계자료를 조작함으로써 체감 실업률과의 큰 차이를 만들어내면서 정부의 자료 조작의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여기에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림으로써 전직장의 알바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불안한 생활을 양산하고 있다.
이런 부당한 정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무엇보다 인구의 저출산과 고령화의 충격이 조만간 가시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속에서 그들을 책임져야 할 세대는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골드미스족’이라고 선전된 가난한 1인 가구의 증가는 집값 폭락의 또 다른 뇌관이 되고 있다. 또한 막연한 수도권 증가가 집값을 유지시킬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근거로 후진적인 부동산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의 후폭풍은 한국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또 다른 문제점이 이런 부정적인 현상 뒤에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선거와 투표다. 민주주의와 건전한 경제발전을 만들기 위해서보다 자기 당의 직원들과 의원들에게 계속 직위를 유지시켜야 하는 부담을 언제나 짊어지는 리더이기에 국가적 차원의 발전보단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뛰었단 점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공동체적 위기는 도리어 심화됐다.
그 투표력의 기반은 베이비붐 세대라는 전체 인구의 대략 15% 이상을 차지하는 바로 지금의 50대의 부모세대가 그것이다. 그들의 생활방식은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 다른 이의 아들을 착취하고 말았지만 자신의 자식 역시 그런 착취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기막힌 구조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이기적인 행동만을 일삼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부동산 투기에 적극 가담, 그곳에서 경제부담을 다른 세대에게 뒤집어 씌우는 행태를 보이면서라도 임대료 수입 등을 챙기기 위해 부동산 투기를 적극 지지하는 정권에 투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집값은 언제나 높아야 했고 그를 부정하는 정치 세력을 그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자식들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에겐 다른 것들에 관심 없었고 오직 기득권 세력과 야합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들은 오늘날 베이비붐 세대라고 불린다. 조만간 그들은 생산력 부분에서 강퇴당한다. 그들의 은퇴는 한국사회에 암울한 미래를 보여준다. 구매력의 엄청난 상실은 물론, 그들이 키울 데로 키운 버블이 터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자신들끼리 소비했던 아파트들을 후배들과 후손들은 더 이상 살 수 있는 경제력이 없으니까. 서울이나 수도권 인구들이 책의 분석처럼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20-30대의 파괴된 소비력으로는 30평 아파트를 억대의 금액으로 살 수 없다. 산다면 그것은 거의 빚으로 살 것이고 그것은 다른 분야에서의 소비를 위축시킬 뿐, 결코 건전하지도 한다. 더욱이 자신들의 자식을 위해 다른 집안의 자식들을 착취한 구조 덕분에 형편없는 생활력을 지닌 젊은 세대들이 어른들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을 우습게 여길 가능성이 더욱 많아졌다. 그런 짐을 강제하도록 투표력을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현대판 ‘고려장’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배려를 하지 않은 베이비붐 세대의 비극은 국민연금을 비롯해서 다양한 보조금 등의 부족이나 붕괴로 이어지고 3억대 이상의 아파트 한 채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손자 삼대가 동시에 사는 기막힌 사태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은 슬픈 동거가 이어지는 것이다.
올해 ‘패권주의 정당체제’라 대표적인 예로 평가되던 일본의 자민당 중심 구조가 투표로 깨졌다. 비록 투표를 한 일본시민이 얼마나 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해 투표했는지 모르지만 어떻든 변화의 조짐은 보이고 있다. 한국은 앞서서 국민투표에 의한 변화가 있었지만 그 덕분에 정권 잡은 권력자들 역시 박정희-전두환 정권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부동산 정책으로 자산가치를 키우는 정책만 해서 거품을 키웠다. 아마도 정치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베이비붐 세대들의 투표력을 의식한 정치 행태를 보인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좀 바꾸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단기적인 미래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제 한국은 부동산 투기로 가장 이익을 받았던 과다 인구 세대들의 은퇴를 바라보게 됐다. 그들이 60대가 되어도 결국 같은 투표 행위를 보이겠지만 88만원 세대보다 더욱 혹독한 경제상황을 겪을 현재의 10대들이 그들의 투표수를 갉아먹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10-20대의 선택은 과거 세대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기에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를 부양할 의지는 물론 능력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 점에서 한국은 또 한 번 거대한 사회적 회오리를 당할 가능성이 많다. 유럽의 몇 개 국가들처럼 Grey 정치를 할 수는 있겠지만 부모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보복 역시 마찬가지로 가혹할 것이다. 사회적 연대를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자식을 위해 다른 자식들의 행복을 무너뜨리려 했던 기존 세력의 폐해를 미래에 당할 가능성이 많다. 자신들만을 위한 탐욕을 억제해서 사회적 연대를 구성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이런 처참한 미래를 보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그런 인식 자체가 없었다.
미래는 어려울 것 같다. 일본 역시 다 당하고 나서야 변했을 뿐, 자민당은 위기 이후에도 일정기간 건재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집권당 역시 자민당과의 유사성이 차별성보다 더 크다는 분석가도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일본의 ‘난까이 세대’ 역시 건재함을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베이비붐 세대가 일으킨 문젯거리 때문에 고난을 많이 겪고 있다. 점점 불거지고 있는 세대간의 갈등은 지역주의, 재벌문제, 부패관리문제 등과 함께 또 하나로 추가될 것이다. 그들이 계속 부동산 투기를 막는 것을 집요하게 방해한다면 다음 세대들은 그런 구식세대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고 이것은 한국사회가 붕괴되는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다.
우린 이런 암울한 미래를 갖고 있다. 저자의 경고는 분명 새롭지 않다. 많은 연구기관이나 분석가들이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 결과는 방해와 비겁함으로 묻혀서인지 잘 보이지 않은 곳에 저장됐을 뿐이다.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실을 말하기 위한 용기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 선대인과 김광수 경제연구소는 확실히 큰 용기를 보여준다. 누군가가 말하지 않으면 거대 언론기관들에 의해 사라질 판도라의 상자 속 정보들을 현실을 위해 개봉했다. 그런 그들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길 바란다. 다만 그 노력을 얻는 방식이 책을 읽어서가 아니라 한국이 한 번 호되게 당할 경제적 참사를 당한 이후 알게 될 것 같아 걱정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