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특이해서인지 자기계발서 부류는 멀리하는 편이다. 잘난 이들의 과시적 후일담이나 정형화된 잠언들이 어찌나 비루해 보이는지 도무지 몰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공부하는 가족입니다]도 처음엔 그럴 거라 지레짐작하여 한동안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슬쩍 프롤로그를 훑어보다 이게 뭐람!
하며 흠칫했다. 한눈에 예사롭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문학적 감성이 듬뿍 배어 있는 결곡한 글이 눈길을 확 끌었던 것이다. 읽어나갈수록 젠체하는
글이 아님을 또렷이 알 수 있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겸허한 성찰로 빼곡한 문학의 향연이 거기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퍼뜩 가다듬고 작가의
이력이며 목차를 훑어보다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었다. 등단 절차를 거친 정통 소설가가 자신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진솔하게 발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격정과 울분, 위로와 공감이 어우러진 글에서는 선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다
읽고 나니 눈 앞에 약간의 수분이 어른거렸다 할까. 그 묘한 울렁거림은 감정이입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민과 공감, 그리고 이해와 인정의 감정이
뒤섞여 먹먹해진 마음결을 한동안 추스르기 어려웠다.
이렇게
만든 것은 우선 다 갖춘 이들 특유의 재수 없는 냄새를 풍기지 않기 때문이다. 차마 내뱉기 어려운 부끄러운 모습, 적나라한 인간 본성 등을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채무 변제 분으로 빠져나가는 봉급을 살려 보려고 가짜 채무를 설정하여 변제 회피를 시도한 일이나 신혼 초
이웃집 연탄 두 장을 훔친 일 등 너덜너덜 남루한 실상까지 깨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절절한 고백 앞에 독자들은 경계심을 허물고 바짝 당겨 앉을
밖에. 이제 작가의 편이 되어 마음의 경로를 따라 함께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절망의 비탄을 토로할 땐 덩달아 울컥해지도
했다.
“이것도
인생인가. 이런 것도 사람의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열심히 살았는데 우리 가족의 삶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씁쓸하고
허탈했다.”(203쪽)
또
하나 빨려들게 만든 건 어쩜 미련하달 정도로 꿈을 향해 우직하게 나아가는 모습 때문이다. 약삭빠르게 요령을 부려 뜻한 바를 이루려는 모사가
판치는 세상에 이렇게 우공이산으로 뚜벅뚜벅 나가서 되겠는가 하는 걱정이 앞설 정도였다. 그러니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들을 응원할 밖에. 빚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공부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인간공학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참여한다든가, 쩔쩔매게 만드는 엄혹한 현실과
불혹의 나이도 잊고 장편소설 집필에 매달리는 등 그들의 시도는 작은 물방울로 바위를 뚫으려는 무모함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몰입과 천착, 매사
적당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이 늘‘나름대로’와 ‘이 정도면’이라는 말을 빼고 생각하자며 간절한 열정으로 매진한 끝에 그들은 그예 절망이라는 산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매
순간 나 자신에게 물었다. 지금 치열한가. 무슨 일이든 진심으로 이루고자 한다면 거짓 노력은 던져 버려야 한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해야 한다.”(214쪽)
그들도
인간이었기에 흔들리기 마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때론 도피처를 찾기도 했다. 유학길에 오른 미국, 공부와 마라톤이라는 몰입 대상도 어쩜 그들이
피할 바위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약한 모습에서 오히려 인간미를 느꼈다 할까. 연민과 공감을 뭉클 불러일으켰으니. 그들의 공부 몰입, 특히
미국 유학기는 어쩜 도피 행각처럼 보였다. 물론 예정된 유학 코스였지만 번잡하고 발목 잡는 일밖에 없던 한국이라는 카오스를 벗어나 약간이나마
마음의 여유와 평안을 되찾게 되었으니 말이다.
“공부를
하다 보면 앞날에 대한 두려움도, 빚을 짊어진 설움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62쪽)
또
하나, 그들이 기댈 언덕은 마라톤이었다. 가족의 화합을 위해 시도된 마라톤을 통해 그들은 치유의 경험을 맛본다. 견딜 수 없는 극한의 고통 앞에
무릎 꿇지 않고 그마저 이겨내면 절정의 평안에 이르게 된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체득한 것이다. 이런 육체적 고통 해소의 경험은 일상에서의 팍팍한
삶을 견디는 데도 적용되어 의욕을 돋우는 활력소가 되었다.
그런데
실은 이 책에도 약간 재수 없는 게 있다. 아이들 말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하는데 엄마의 눈에 비친 아이들의 모습이라 실제보다
미화된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들은 남달랐다. 세상에 이런 애들이 다 있을까 싶게 아이들은 영특하면서도 착했다. 그렇게 적응력이 뛰어나고
도덕심과 배려심을 갖춘 공부 잘 하는 범생이는 세상에 거의 없는데 말이다.
똑소리
나게 지혜로운 엄마의 모습도 살짝 재수 없었달까. 내가 못 가진 것을 오롯이 갖추고 있는 이에 대한 질투심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말로
지시하기보단 함께 공부하고 함께 행동하는 엄마, 끝까지 참고 기다려주는 엄마, 경험을 자극하고 작은 성취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엄마, 이런 걸
어떻게 다 생각해 내었을까? 따로 배운 건 아닐 텐데 어찌 깨우쳤을까? 화룡점정은 아이들에게 집안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해와 공감을 유발한
일이라 하겠다. 아이들을 마냥 철모르는 어린애로 여기지 않고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해 준 셈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동지요, 상호 성장을 돕고
자극하는 동반자 관계로 발전할 밖에.
“나와
두 아이는 각자의 꿈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었다. 나란히 죽림서실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우리는 엄마와 자식이 아닌 동지가 되었다.
서로에게서 자극과 용기를 얻었다.”(144쪽)
어쩜
이런 재수 없는 미덕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그 지난한 과정을 뚫고 오늘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시기심이 발동된 탓에 재수 없다고 했지만 실은 정말
좋아 보였다.
이
책에는 유용한 팁을 곳곳에 숨겨 놓고 있다. 공부 방법이나 외국 생활 적응에 필요한 노하우 등 실용적인 것은 물론이고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완성도 높은 글 여러 편을 보여주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딸아이가 장학생 지원 서류로 제출한 자기소개서, 아들이 가족들에게 갈등을 극복하자는
간곡한 마음을 담아 보낸 편지, 엄마가 아들의 수험 과정을 지켜보며 쓴 수험 뒷바라지 일기 등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지혜로 가득한 글이 실려
있다. 하나 같이 겉멋으로 허투루 쓴 글이 아니다. 헤어나기 어려운 난처한 상황,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 듯 리얼한 글은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아울러 이 글들은 입학이나 취업 등 실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문장의 전범으로 손색이 없다 하겠다. 진솔한 마음을 결곡하게 담은 글은 상대방의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리며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수험생이나 입사준비생, 또는 그 후견인들에게 무척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책 말미에 실린 딸이 엄마에게 쓴 편지, 늘 고마워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는 연우의 마지막 편지는 이 책을 고요하며 의미 있게, 또
따뜻하게 마무리하는 글이다. 나도 누군가에게서 이런 진심을 담은 편지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하여
이 책은 잘난 이의 자기과시가 결코 아니었다. 낮은 자의 자기고백이자 그 지난한 과정에도 정신줄 놓지 않고 어떻게든 지혜롭게 헤쳐 나가고자
발버둥친 이의 진솔한 모습이라 하겠다. 그러니 읽는 동안 위압감이나 경외심 등 권위주의적인 감정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어떨 땐 읽고 있는
내가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네며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 싶기도 했다. 저자와 독자, 빼어난 자와 뒤쳐진 자의 역학관계나 거리감 같은 건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눈높이를 맞추며 조근조근 발언하는 감성적인 글에서 위로와 공감과 평화를 듬뿍 맛보았다 할까. 더불어 그간 축적한 소중한 자료까지
기꺼이 내어 놓는 재능 기부까지 하고 있다. 이런 미덕을 두루 갖춘 책이니 더욱 널리 회자되길 소망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