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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 - 우리 내면에 숨은 무의식의 정체
김현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꿈속에서 제가 남편이 되어 있었습니다.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 부인이 배우 박근형 씨와 함께 다정하게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다른 건
몰라도 서로 이성문제로 속 썩인 일은 없었기에, 사랑하는 부인(그러니까 접니다.)이 외간 남자와 있는 걸 본 순간 전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박근형 씨한테 분노를 폭발시키며 당장 나가라고 했죠. (278쪽)
어쩜 불륜 냄새가 살짝 나고 그게 남의 얘기니까 재미도 있네요.
사연을 보낸 이들의 얘기는 정말 기상천외한 것뿐입니다. 낙타 공주와 입맞춤을 했다거나 아무리 먹어도 끊임없이 불어나는 자장면, 또 자신은 아직
처녀인데 아기에게 젖을 물리다가 젖꼭지를 물어 뜯겨 기겁한 것 하며 하루 종일 머리만 감고 있는 모습 등 실로 구구절절 기기묘묘한 얘기로
빼곡합니다. 이를 김현철 원장이 해석하여 의미를 풀어주고 나아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처신했으면 좋겠다는 코멘트를 붙이는 방식으로 이 책은
진행됩니다.
사례로 든 꿈의 경우는 출산 직후 우울증에 빠진 아내가 자상한
아버지상으로 각인돼 있는 박근형 씨 같은 이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무의식적 갈망이 나타난 것으로 필자는 풉니다. 그러면서 이런 바람이
남편과의 신의를 저버리는 부도덕한 행위이므로 죄책감을 동반하기 마련인데 이를 남편으로 변신한 자신이 꾸짖어 정신 차리고 균형을 회복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여기서 필자는 꿈을 통한 투사와 해리 등 심리학 이론을 살짝 양념으로 곁들이며 맛깔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 의뢰자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론 깔깔거리며 더러는 심각하게 감정이입이 되곤 하며
정신없이 읽어나갔습니다. 새롭고 신기한 얘기에 넋을 놓고 말입니다. 한참 재미를 붙여 읽어나가다 어느 순간 이건 단순히 흥미진진한 얘기만은
아니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필자의 한 마디씩 살짝 살짝 덧붙인 얘기는 재미를 넘어 독자를 향한, 아니 바로 나를 향한 간곡한 충고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대목에선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놀란 게 아니라 깊은 깨달음 말입니다.
실은 꿈의 첫 장면에 이미 답이 있어요. 빈 수레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고 계셨다는 장면이 바로 그 대목입니다. 왜 꼭 카트에 뭔가를 담아야 하죠? 왜 꼭 굳이 끌고 가야 되죠? 그저 지팡이 용도로 의지하고
걸어가도 되고 그것도 귀찮으면 내버려 두고 산보 가셔도 되요. 카트는 그냥 두고 가시면 점원이 알아서 챙기잖아요. 비우고 그래도 가셔요. 굳이
멈추지 않아도 보이고 천 번 안 흔들려도 됩니다. (179쪽)
멈춰야 비로소 보이고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이 시대의
멘토들의 조언에 아직 멀었구나 하는 무력감에 빠져 있었는데 먹구름을 말끔하게 걷어내는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을 만난 듯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던
것입니다. 필자는 진중한 의미에 매달리고, 짐짓 심각하고 진지한 체하는 무거움보단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가볍고 발랄한 삶의 자세를 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어떤 멘토들의 의미심장한 얘기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 위로가 되었다 할까요? 연령대별로 반드시 해야 할 몇 가지 과업 등등,
타인이 설정한 기준에 못 미친다고 안달할 필요가 없겠다는, 나만 못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뭉클 치솟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재미로 읽다가 서서히 힐링이 되었다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내 무의식의 지형도도 어렴풋 그려지고 현재 정서도 어느 정도 읽혔습니다. 하여 심란하게 꼬일 때마다 두고두고 꺼내보며 마음결 다스리려
합니다. 제 무의식의 좋은 벗 하나 생긴 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