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수용소 - 내 이름은 르네 타르디 슈탈라크ⅡB 수용소의 전쟁 포로였다
자크 타르디 지음, 박홍진 옮김 / 길찾기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1. 이렇게 비뚤어질 수 있다니

 

암울한 톤 일색이다. 음산한 벌판에 비는 사선으로 긋고 감시초소 주변엔 억센 철조망이 위압적으로 가로막는다. 곳곳에 처참하게 파괴된 전차와 군마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이를 배경으로 불쑥 튀어나온 불만투성이 얼굴의 주인공은 시종일관 시니컬하다. 심경을 묻는 아들의 질문에 타박하며 핀잔을 주거나 버럭 화까지 내는 모습이라니. 원망과 비난, 증오로 똘똘 뭉친 그는 실제보다 더 늙고 지쳐 보인다. 한 가닥 희망의 끈도 보이지 않는 듯 신경질적으로 울분을 토로한다.

 

“난 군대와 신부와 선생과 공무원을 저주했다. 특히 공무원들을. 그리고 정부기관을. 히틀러는 물론! 인간 전체를 저주했단다. 이 세상이 멸망해버리길 바랐어!”(80쪽)

 

이 깊은 상처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시대의 광풍에 휩싸여 역사의 희생양이 된 때문이라고 간단히 치부해도 될까? 그러나 무형의 관념인 역사를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오로지 실존하는 것은 소위 역사라는 것을 만들어나가는, 어쩜 역사적 사건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편의에 따라 함부로 정책 결정을 내리는 지배세력의 행태뿐인데 말이다. 더구나 그들은 공리공론에 빠져있기 십상이어서 판단과 실행이 현실과 유리되기 일쑤고 이로 말미암아 빚어질 민중들의 고통과 희생은 아랑곳하지 않게 마련이다. 그들에게 치이고 짓밟히다보니 시립연주단 클라리넷 주자이며 시적인 감성이 풍부했던 낭만주의자 아빠가 이렇게 메마르게 비뚤어져버린 건 아닐까? 연유를 슬몃 알 것 같다.

 

2. 독일군보다 더 미웠던 조국 프랑스

 

수용소에서 프랑스 포로들은 육체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극한의 고통에 시달렸다. 슈탈라크에서의 4년 8개월 동안 늘 굶주렸고 폭력과 강제노역에 내몰렸다. 나치들은 섬세하고도 잔인하게 그들을 겁박했다. 인간을 괴롭히는 별의별 기기묘묘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포로들을 갖고 놀았던 것이다. 천부적인 가학증 환자들 같으니라고. 심지어 사소한 일에도 밸이 꼬이면 약식 사형을 밥 먹듯 했다.

 

그러나 이런 물리적 폭력보다 그들을 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것은 조국 프랑스의 태도였다. 포로가 된 연유부터 납득할 수 없었다. 정부는 어떤 대응 전략도 수립하지 않은 채 독일군에게 국토를 오롯이 내주었고 군 지휘부에서는 아무런 의미 있는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그러니 부득불 각개 전투에 임할 수밖에. 이런 오합지졸이니 독일군의 먹잇감이 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달까. 조국 프랑스가 그들을 사지로 밀어 넣은 셈이다.

 

“조직은 형편없고 명령은 개판이고! 프랑스, 정말 우연히 태어나 나의 조국이 되어버린 이 나라에 염증이 나! 프랑스 국가라도 들으면 토하고 싶을 지경이야. 난 싸웠어. 명령에 복종했고. 하지만 제대로 된 명령이나 보급은 못 받았어. 장난도 아니고!”(68쪽)

 

포로가 된 이후에도 정부는 그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은 것은 물론 어떤 구명 의사도 밝히지 않았던 것이다. 최악의 일은 독일군 패퇴 이후 벌어졌다. 조국을 위해 싸우다 적군의 포로가 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고초를 겪은 후 간신히 귀환했는데도 아무도 그들의 상태와 심경을 헤아리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자유 프랑스 정부는 그들을 항독 레지스탕스처럼 영웅 대접은 못 해주더라도 최소한 일반인 수준의 환영 제스추어 정도는 취해야 했는데 그런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없는 사람마냥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들밖에. 작가 타르디의 장인이 직면한 상황도 황당 그 자체였다. 그는 의사 지망생으로 교수직을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귀환한 후 살펴보니 포로생활로 이미 임용 적정연령을 초과한 상태였고 뿌리 깊은 족벌체제가 여전한 의료계의 생리 탓에 교수의 꿈은 언감생심이었던 것이다. 청춘의 도약은 거기서 멈췄고 미래의 계획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아빠와 장인, 그리고 수용소 동료들은 순식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 잊힌 자가 되었다. 젊은 시절의 고통을 언급조차 못하고 상처만 간직한 채 굴욕적인 생을 이어갈 도리밖에 없었다. 그들의 아픔을 얘기할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고, 고통을 언급할 권리는 법전에나 존재할 따름이었다. 자유 프랑스에서의 삶은 결국 허울뿐이었다. 수용소 포로 생활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루저(loser)로서의 침묵만 강요당하는 지경이었으니 그들은 더욱 음지로 들어가 비뚤어질 수밖에.

 

3. 유난히 안쓰러웠던 이유

 

그런데 아빠 타르디와 동료들이 겪은 고통이 왠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의 아픔이 깊은 울림이 되어 사무치는 듯했다. 왜일까 곰곰 짚어보니 우리 민족의 지난한 삶이 자연스레 오버랩 되었다. 늘 외세에 치이고 독재 권력의 질곡에 시달렸으니 수용소에서의 포로들의 삶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지배세력은 당파 싸움으로 이전투구를 일삼다 제 잇속을 위해 나라를 송두리째 팔아넘기고도 언제나 승승장구했고 이름 없는 민초들은 엄동설한에 거친 들판으로 내몰린 신세로 숨죽이며 살아왔던 것이다. 자유 대한민국은 또 어땠을까? 오십보백보랄까.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하고 해방 이후에도 모멸과 질시를 견디며 혼자서만 끙끙 앓던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처럼 평생 국가를 원망하며 지낸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어쩜 일제 식민치하보다 해방된 대한민국에서 당한 설움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야속했을까, 속으로 눈물은 또 얼마나 삼켰을까? 이런 뼈아픈 모습이 겹쳐져 그들의 시련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4. 그들도 레지스탕스였다

 

그러나 아빠 타르디와 동료들을 루저(loser)라고 매도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무기력하게 눌러앉아 있었던 게 아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포로 신세였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적국 독일에 맞선 것이다. 조국 프랑스를 위해, 아니 그들을 내친 사실조차 잊어버렸거나 알고도 짐짓 모른 체 하는 프랑스를 위해서 그런 건 아닐 테다. 눈앞의 적, 독일을 싫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적개심이 발동된 것이리라. 그들은 교묘하게 수용소 관리에 훼방을 놓는다. 레지스탕스 활동이 따로 없었다. 아빠 타르디는 문서 변조와 허위 공문서 작성으로 제3제국의 시스템에 오류를 일으키려 했고 일반 수용자들은 점호 시 인원 파악 방해를 꾀하며 점령군을 끝끝내 괴롭혔다. 이로 인해 독일 정부에서는 많은 인원과 물자를 투입해야 했으며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붇고도 수용소 운영을 겨우겨우 해나갈 수 있었다. 또 아빠와 동료들은 엄혹한 수용소 생활 와중에도 나무를 깎아 예술 작품을 만들고 국경을 넘어 우정을 쌓았으며 탈출 모의도 꾀하는 등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을 지키려고 발버둥쳤다. 인간성까지 피폐해져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길 바랐던 점령국 통치 전략에 결코 순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적국 독일에 협력하며 일신의 안녕을 꾀했던 이들에 비해 그들은 거의 영웅적으로 저항한 셈이다.

 

5. 언성 히어로(unsung hero), 칭송받지 못한 영웅들을 복권하라!

 

하여 그들은 루저도, 잊힐 존재도 결코 아니었다. 조국 프랑스 공직자들의 어이없는 처신으로 사지에 내몰려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와중에도 인간의 자존을 지켰으며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끝까지 저항한 이름 없는 영웅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자들이 있었다. 교묘한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배적 위치를 고수한 이들 말이다. 자유 프랑스 정부의 주축으로 참여하기도 한 이들에게 타르디 아빠와 동료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들이 죽은 체 눌러있어야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어떤 칭송의 헌사도, 꽃도 십자가도 없을 수밖에. 고립무원의 벌판으로 다시 내쳐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신은 길게 호흡을 고르다가 언젠가는 일어나 심판의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아니 들이대곤 했다. 그간의 인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그때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뒷전으로 밀렸던 자들이 복권되어 양지로 나오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작가 타르디는 아빠와 그 동료들, 영웅적으로 저항한 이들에게 헌사를 바치며 그들의 복권을 청원하고 있다. 역사의 신이 재림하도록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꽃과 십자가를 준비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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