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불평했던 것이 모두 이 자료들이 목록화한 ‘학대‘ 사례 속에나타난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일어나지 못하는 것, 일 주일에 한 번 이상 샤워하지 못하는 것, 침대에 누운 사람을 하루에도 몇 번씩 일으켜서 화장실에 데려가고 용변을 보도록 도울 수 없다는 이유로 계속 기저귀를 채워놓고 있는 것... 쟁점은 이런저런 수용 구조나 특정 에파드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저런 인물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체계적 학대가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사방에서 맹위를 떨친다. - P114

따라서 나는 요양원과 공립 병원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즉 환자와 노인, 병약하고 취약한 사람들, ‘돌봄‘ 영역의 소관인 모든 이에게 제공되는 수용 조건들이 전면적으로 용인 불가능한 정도는 아닐지라도, 결함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최소 비용 또는 최대 편익의 경제 논리가 도처에서 그렇듯 여기서도 지배적이라는 데 있다. - P115

어머니의 삶 전체가 구획되고 통제되었으며, 그녀를 대신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어머니는 자율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자유, 사람personne으로서의 지위까지 상실했다. 그렇다. 탈인간화 dépersonnalisation로 인해 노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지경까지 다다른다. - P117

"삶은 죽음에 저항하는 기능들의 총체다." - P119

산다는 것은 시간, 시간성 그리고 당연히 공간성과 관계 맺는 것, 즉 시간 속에 스스로를 투사하고 공간 안에서 움직일 능력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19

공간성의 상실, 시간성의 소멸은 인간 실존의 조건 그 자체를 규정하는 것을 점차 사라지게 한다. - P120

삶은 건강한 삶뿐만 아니라 건강하지 않은 삶, 쇠약해진 삶이기도하다. - P120

브레히트의 이 여성 인물은 "순차적으로 두 삶을 살았다." 더 길었던 첫번째 것이 "딸, 아내, 어머니로서의 삶이었다면, 훨씬 짧았던(고작 몇 년)두번째 것은 "대단치 않지만 충분한 생계 수단을 갖추고 의무는 없는 독신으로서의 삶이었다. 말하자면 "굴종의 오랜 나날" 이후에 "자유의 짧은 나날이 이어진 셈이다. - P131

질병, 인간 존재의 노화 또는 사망은 냄새와 떼어놓을 수 없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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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헌정한 책 『한여자』에서 어머니가 쇠락하기 시작한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녀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일이 처음 발생한 건 내가 학생들의 과제물을 고쳐주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귀를 막아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 끝났어.‘ - P105

어머니는 지나가버린 과거에 매달려 있었다. 그 과거는 그녀에겐 계속되는 것,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 것이었다. 바로 사랑의 열정이었다 - P107

어머니는 크리스타 볼프가 ‘몸앓이‘에서 ‘내면의 고고학‘이라 부른 것의 지층을 가로지르며 탐사를 수행하는 동안 적어도 행복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정서적 드라마의 영역에 속해있었다. 질투, 분노 절망... - P107

"내 모든 시간성은 시간의 부재 속으로 침몰했다."
볼프는 심각한 복막염을 앓은 뒤 자신이 입원했던 경험을 다루는 책에서 이렇게 쓴다. "내 시간은 비非시간처럼 지워진다." - P108

그녀는 자신이 고통받고 있음을 안다. 고통은 시간과 맺는 관계를 무화하고, 이제껏 그녀의 시간과 타자들의 시간에 리듬을 부여했던 모든 것에서 정신과 신체를 빼낸다. - P109

늙고 병들어 고통받는 사람이 시간과 맺는 관계의 변화는 훨씬 첨예하다. 모든 일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것이고(점점 더 가까이 의식 상태에까지 다다르는 노쇠로 인해, 지속적으로 맑은 정신을 전제하는 이런 언어가 거의 무력할지라도) 우리가 시간의 시간성 속에 다시 편입될 수 있다는 식의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엔 사태가 진정될 가능성이 없다. 우리는 이미 빠져든 시간의 공백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 P109

핌의 에파드는 공공시설이니만큼, 확신하건대 수용자들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사설 시설에 비해 훨씬 더 지배적일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이 어머니에게 어떤 나쁜 대우도, 그런 층위의 어떤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한들, 난 폭력적인 것은 바로 이 모든 상황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는 제도가 그녀의 조건을, 그녀와 같은 사람들의 조건을 관리하는 방식에 의해 학대받았다. 이곳에서 ‘의존적‘이라는 단어는 끔찍한 의미를 띤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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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우크라이나에 애인이 있고, 샹젤리제에도 애인이 있건만 그는 혼자였다. 그의 생애 어느 때보다도 더 혼자였다. 그녀의 죽음과 더불어 그의 내면에서 어떤 새로운 것이 분명하게 깨어났다. 이 생명력 넘치고 낙관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인간이 전에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으니 바로 두려움이었다. 신비스럽고 헤아리기 힘들고 여러 가지 뜻을 담은 두려움. 모든 힘을 다해도 자신이 스스로 시작한 엄청난 작업을 완수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너무 일찍 쓰러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일에 빠져서 진짜 삶을 놓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 P450

발자크에게 있어서 바라보는 것은 곧 꿰뚫는 것이며, 배우지 않고도 알고, 마법을 통해 알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 P457

그의 소설들이 해마다 더 높은 수입을 올리고 엄청난 전집이 준비중에 있고, 그의 문학적인 지위가 유럽적인 수준에 오른 지금보다. 과격한 자신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기가 좋았던 적이 없었다. - P464

그러나 질서를 원치 않는 것이 그의 삶의 깊은 의미였다. - P465

발자크의 생애에서는, 예술작품에서 모든 상황을 빈틈없는 눈길로 조망하고 꿰뚫어보던 그 두뇌가 현실에서는 어린애처럼 믿기 잘하고 순진하기 짝이 없어진다는 이 역설적인 현상이 징그러울 정도로 정확하게 되풀이된다. - P472

예술가로서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동일한 상황을 실제 삶에서 부딪치면 그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가르칠 수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 P473

<파시노 칸>이라는 허구의 상황에서는 보물 찾는 사람을 바보라고 여겼지만, 지금 자신이 이런 생각을 지닌 바보가 되고 만 것이다. - P476

비극적인 아이러니지만 그의 모든 계획들. 인쇄업, 활자제조업, ‘자르디‘의 부동산 사업 등에서 발자크는 계산만은 올바르게 했다. 그의 직관적인 눈길이 잘못 보았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 부자가 되려고 했던 계획을 통해서 남들은 정말로 부자가 되었다. - P481

발자크의 후각은 언제나 옳았다. 그러나 이 후각은 언제나 예술가로서의 그에게만 호의적이었고,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려고만 하면 언제나 그를 잘못 인도하였다. 발자크가 자신의 환상을 작업으로 바꾸면 그 환상은 그에게 수십만금과 그밖에도 불멸의 작품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그가 환상을 돈으로 바꾸려고만 하면 빚만 쌓이고, 그 결과 수십 배, 수백 배의 노동이 대가로 돌아왔다. - P482

발자크의 소설을 특징짓는 것은 위대한 장면들이 아니라, 인물들이 천천히 변화하는 과정이며, 그들이 환경 및 풍경과 연결되는 과정에 있었다. - P494

발자크의 경우에 실패는 언제나 두 배, 열 배의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가졌다. - P499

자르디 건축, 누라의 은광산, 희곡 생산. 이 세 가지 엄청난 멍청이 짓은 마흔 살 먹은 남자가 스무 살 때나 서른 살때나 다름없이 세상사에는 순진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멍청한 짓들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차원이 더 커지고, 더욱 환상적이고, 충동적이고 우스꽝스럽고 악마적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거리감을 통해서 분명한 시각을 얻기 쉬운 우리에게는, 존경을 모르는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눈먼 그의 행동만 보느라 그의 명석함을 잊어버린 일과, 그의 파괴적인 멍청함만 쳐다보느라 그 창조적인 작품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 P506

그가 삶을 진행할수록, 생존이 그를 가혹하게 뒤흔들수록 발자크는 더욱더 사실주의자가 된다.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점점 더 불신을 품은 눈길로 그는 상황과 관계들을 꿰뚫어본다. 그리고 점점 더 예언자적인 인식으로 전체의 맥락을 조망한다. - P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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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의 사상 전체가 아니라 파편으로 이해되지. 실언 하나로 커리어가 박살 나는 정치가나 연예인은 그 나쁜 예지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할 수 있어. 예컨대 괴테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속 한 마디만으로 이 철학자를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 P168

결국 작가나 사상가는 어딘가에서 날아온 나뭇잎 한 장으로 자신의 숲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잖아. 그렇다면 우리들 독자 쪽에서도 그 책 중 한 장으로 새로운 사원을 짓지 않으면…… - P168

아무튼 인문주의 시대는 명언 기록장 commonplace book의 시대이기도 해서, 당시는 언령신앙이라고 해야 하나, 명언을 말하면 그 말의 힘을 습득할 수 있다고 믿었대. 그 믿음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명언을 기념품 머그컵에 새기고, 문구류에 인쇄하고, 벽에다 낙서로 쓰고, 별거 아닌 대화 속에 끼워 넣으면 교양인인 척할 수도 있고...... 그 후로도 명언집 전통은 이어져서 존 헤이우드나 라로슈푸코 같은 작가들이 나왔고, 프랭클린의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도 등장했지. 여기까지는 여전히 교양 있는 개인이 고대부터 존재했던 말들을 명언집으로 모아서 소개하는 계몽주의의 분위기가 짙게 풍겼어. 이윽고 매스 미디어의 시대가 오자 정치가, 운동선수, 종교 지도자, 팝 가수가 명언을 인용하기 시작해. 그들은 그야말로 제멋대로 명언을 사용했어. 그게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지. ‘거짓말도 자주 하면 진실이 된다‘라고 레닌이 절묘하게 표현했듯이 인용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말은 진실이 돼. 그리고 지금, 온갖 SNS에서 명언은 항상 팝적으로 생산,복제되고 있어 - P200

자신의 명언 찾기는 결코 의미 없는 짓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반드시 이어져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무언가로부터 생겨났고, 우리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 P212

실로 조물주의 사랑은 하나의 꽃에서 모든 꽃을 싹트게 했습니다. 그걸 알면 우리 인간도 언젠가는 혼란 없이 뒤섞이리라 믿을 수 있습니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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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다.‘ - P104

"세상은 언제나 똑같군. 여러 가지 상태가 항상 반복되지. 어느 민족이건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살고, 사랑하고, 느끼고 있어.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우리는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형식이나 표현으로 되풀이할 뿐이야." - P116

"실생활에서 따오든 책에서 따오든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어. 제대로 사용했는지 아닌지, 그것만이 중요하지! 나의 메피스토펠레스도 셰익스피어의 노래를 부른다만, 왜 그게 안 된다는 건가? 셰익스피어의 노래가 그 장면에 딱 들어맞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속 시원히 말해주는데 어째서 내가 고생해서 나의 글을 새로 써야 할까? 예술에는 전체적으로 혈통이라는 게 있어. 옛 독일 청년들은 대화 마디마디에 성서를 인용할 수 있도록 교육받았는데, 그건 결국 감정이나 사건이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명시하지. 우리의 사상을 표현하는 데 옛사람들이 엄선한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할 때, 그들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우리보다 더 정교하게 열어서 보여준다는 점을 인정하는 게야. 거장들은 항상 옛사람의 장점을 이용하는데, 그 점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다네." - P117

"셰익스피어가 노렸던 건 오직 하나야. 각각 장면에 꼭 맞는 효과적인 명문구를 자신의 등장인물이 말하게 하는 거지." - P119

"그에게 있었고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없는 건 사랑이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방언으로 말을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나의 파우스트를 구원하는 열쇠도 거기에 있다네." - P119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들지." - P120

"파우스트 마지막 장에서는 모든 우주의 시공간이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하지만 각 세계는 저마다의 특성을 잃지 않지요. 그것이야말로 괴테의 꿈이었습니다. 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Goethe" - P121

괴테의 "사랑이 띠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결국은 모든게 바벨탑일 뿐이다"(히로바, 1999)라는 말과 헤세의 "온 세상이 노아의 방주에 올라타듯이 끝없는 행렬을 이루어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이리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이해하고, 그것과 하나가 된다"(운데이, 1971)라는 말은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 이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을 바벨에서 구하여 성령 강림일에 이르게 한다. - P128

"시는 자연과 마찬가지로 창조의 과정에서 빛과 그림자를 숭고함과 그로테스크함을, 다시 말해 영혼과 육체, 정신과 짐승성을 혼동하지 않고 혼합하기 시작할 것이다." - P130

요컨대 다른 것을 모조리 뒤섞어 봤자 이상적인 하얀색은 얻을 수 없다. 괴테는 전체성 개념에서 모든 색이 각각 빛나야 ‘하나이면서 전체 Hen kai pan‘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며 보다 전문적인 방법으로 설명했다. - P144

"하지만 이건 정말 그런 이야기야. 결국 우린 과거의 시대를 남겨진 조각으로 상상하는 수밖에 없어. 고전학자가 착각했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다만 우리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획득함과 동시에 고대인의 시각을 잃어버리기도 한다는 점은 잊어서는 안 돼." - P147

"지금도 우리는 노아의 시대와 같은 무지개를 보고 있어. 그저 거기서 더 많은 이름을 읽어낼 수 있을 뿐이지." - P149

"도이치, 말을 찾는 건 학자의 본분이지. 구렁이 잡으러 갔다가 구렁이한테 잡아먹혀도 상관없다네. 하지만 말이란 끝까지 불편한 도구야. 도무지 익숙해지는 법이 없거든. 난 아직도 가즈코랑 싸워. 가끔 만나는 젊은 학생의 말을 가로막을 때도 있지. 누군가가 하는 말을 전혀 못 알아들어서 귀가 어두운 척하며 어물쩍 넘어가기도 하고・・・・・・ 그걸 대신할 도구를 도통 찾을 수가 없어서 계속 쓰고 있을 뿐이야. 난 심지어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어. 가령 섹스는어떨까." - P153

어쩌면 모든 말은 어떤 형태로든 기도가 되려 한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몰라. - P154

내가 아직 자네의 선생인 셈 치고 한마디 하자면, 네 노력은 사랑 속에 있어야 하고, 네 생활은 실천 속에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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