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퍼크로스가 불과 5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긴 해도, 원래 있던 곳에서 벗어나 다른 무리 속으로 옮겨가게 되면 대화나 견해, 생각이 완전히 확 바뀌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머물 때마다 항상 그런 인상을 받았다. 다른 가족들도 여기로 와서, 켈린치홀에서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고 모든 관심이 집중될 만한 일들이 여기에서는 얼마나 무심하고 대수롭지 않게 취급되는지 보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자신의 세계밖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하는 교훈도 깨우쳐주곤 했다. - P63

앤은 앞으로도 이런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며, 레이디 러셀처럼 진심으로 자기 처지를 알아주는 벗이 하나라도 있다는 특별한 축복에 더욱 감사를 느꼈다. - P64

그의 삶에서 짧은 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열네 살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누군가 진정한 안목이나 정당한 평가로 자신의 연주에 귀 기울여주거나 격려해주는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앤은 음악에 관해서는 늘 세상에 홀로 있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 P70

대개 남편과 아내는 반대가 통하지 않는 때를 아는 법이다. - P83

그러나 곧 앤은 이성을 되찾고 감정을 다스리려 애썼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후로 8년, 거의 8년이 지났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희미한 먼 기억으로 사라진 감정의 격동이 되살아나다니 얼마나 이상한가! 8년이란 세월이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수많은 설명, 변화, 소원함, 사라짐, 그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과거를 잊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가! 그가 살아온 삶의 3분의 1에 달하는 시간이라도 말이다. - P89

어쩌면 좋은가! 앤은 곰곰이 따져본 끝에 감정을 잘 간직하는 사람에게는 8년의 세월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P90

그는 앤 엘리엇을 아직도 용서하지 못했다. 앤은 그에게 잘못을 저질렀다. 그를 버렸고 실망시켰다. 그 과정에서 앤은 나약한 면을 보여주었고, 그의 단호하고 자존심 센 기질로는 이를 견뎌낼 수 없었다. 앤은 다른 사람들의 뜻에 따라 그를 포기했다. 설득에 쉽게 넘어간 탓이었다. 나약함과 비겁함의 결과였다. - P91

한때는 서로에게 그토록 큰 의미였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라니!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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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건데, 모든 직업이 다 나름대로 필요하고 명예롭기는 하지만, 고생하지 않고 시골에서 자기 시간을 마음대로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재산을 더 늘리려 애쓸 필요도 없이 자기 재산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축복받은 건강을 누리고 최상의 외모를 유지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 P34

스물일곱 살의 앤은 녈아홉 살 때와는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 레이디 러셀을 원망하지도, 그의 말대로 따른 자신을 탓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비슷한 처지의 젊은이가 자신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절대로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당장 눈앞의 불행을 감수하라는 말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 P46

어린 나이의 앤 엘리엇이 어떻게 인간의 노력을 모욕하고 신의 섭리를 불신하는 듯한 과도한 우려와 조심성에 맞서 뜨거운 애정과 미래에 대한 기운찬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소망을 열렬히 토로할 수 있었겠는가! 어린 시절부터 신중한 태도를 강요받다가 나이 들어 로맨스를 배웠으니, 어쩌면 부자연스러운 시작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 P47

부적절한 식으로라도 도움 된다는 말을 듣는 쪽이, 적어도 아예 그런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앤은 자기가 뭔가 쓸모 있다고 생각해주는 것이 고맙고, 뭐가 되었건 의무로 주어진 일이 생겼다는 게 기뻤으며, 무엇보다 시골, 자신이 사랑했던 시골에서 지내는 것도 싫지 않아서 메리와 머무는 데 기꺼이 동의했다. - P51

앤은 항상 그들을 지인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향락을 전부 다 준다 해도 자신의 우아하고 세련된 정신세계와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부러운 것이 있다면, 이들 자매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배려하며 진심 어린 애정으로 대한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자매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감정이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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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엘리엇은 분별 있고 상냥한 성품의 훌륭한 여자였다. 젊은 날의 열정으로 엘리엇 경과 혼인했다는 사실만 눈감아준다면, 이후의 판단력과 품행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레이디 엘리엇은 남편의 잘못을 달래고 누그러뜨리고 감추어주며 그에게 헌신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의무와 친구들, 아이들에게서 삶에 애착을 가질 만한 이유를 충분히 찾아냈다. 하늘의 부름을 받아 그들 곁을 떠나게 되었을 때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 P9

고귀한 정신과 다정한 성품을 지닌 앤은 참된 이해력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높이 평가받을지언정, 아버지나 언니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그의 말은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항상 다른 이를 위해 양보해야 했다. 그는 그냥 앤이었다. - P11

남들이 겪지 않는 일을 나만 겪는다고 믿을 때 가장 고통스러운 법이지.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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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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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계엄 선포부터 4월까지 작가님의 일상적인 삶과 생각, 느낌을 기록한 일기. 작가님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기쁘다.
덧붙여 작가님이 세상이 완전히 망할 때까지 단 한 권의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선택한 책, 배리 로페즈의 ‘호라이즌‘ 궁금해서 얼른 주문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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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과 다정을, 조용한 애정을 알아보고 눈치채는 마음. - P152

"혼자서는 어떤 이야기도 그리 멀리까지 이끌어갈 수 없다." - P167

아름다운 가위란 어쩌면 누군가 오래 사용한 가위인지도 모르겠다. - P170

언제나 가능성은 있다. - P171

하지만 가능성만을 바랄 수 있을 뿐인 세계는 얼마나 울적한가. 희망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기가 너무나 어려운 세계, 그 어려움이 기본인 세계는 얼마나 낡아빠진 세계인가. 너무 낡아서, 자기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세계. 다만 이어질 뿐인.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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