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와 내가 같은 사람과 독특한 우정을 맺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어떤 의미에서 평행하면서도 별개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 P268

가끔 나는 칼리가 이러는 모습을 보면 슬퍼졌다. 따지고 보면 사실 진짜 문제는 그 여자가 아님을 나는 알기 때문이었다. 칼리를 정말로 괴롭히는 건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고, 그것을 그 여자에 대한 온갖 미움으로 표출하고 있을 뿐이었다. - P273

한동안 우리는 히메나가 그리웠다. 대학 신입생이 처음 몇 주 동안 부모를 그리워하듯이 히메나를 그리워했다. 히메나가 우리 옆에 있다는 것, 우리 둘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을 알 때 느꼈던 위안을 그리워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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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만들던 다큐멘터리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그건 진짜 프로젝트라기보다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혹은 뭘하면서 인생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위한 소일거리에 가까웠다. 게다가 파티에 갔을 때 현재 내가 왜 무직 상태인지를 설명할 편리한 방법이기도 했다. - P244

다른 모든 면에서 히메나는 무척 확신이 강하고 침착한 사람 같았지만, 예술에 관해 얘기할 때는 갑자기 모호해지고 작아지고 수줍어졌다. - P249

그해 봄에는 나이들어간다는 것을 한층 실감했다. 물론 거울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느꼈다. 예컨대 슈퍼마켓에서 젊은이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의식하거나 쳐다보지 않았다. 가장 큰 슬픔은 바로 그런 인정의 부재에서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현실, 유령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가는 현실이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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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이 별거가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다. 알렉시스는 나와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확실히 말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의 결혼생활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강하게 단련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요즘 자신이 굉장히 어두운 곳에 빠져들었고 거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혼자 있는 이 시간이 - 저녁에 시내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고. - P205

그건 몇 달 전에 시작된 우리 둘의 놀이였다. 책에서 관련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에 따르면 부모에게 중요한 것들을 아이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그런 경험은 부모에게나 아이들에게나 모두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리아에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대부분 내가 더 어린나이에 좋아했던 음악-조이 디비전, 더 스미스, 에코 앤드더 버니맨 같은 종류의 밴드-을 소개해주었다. - P214

나는 내 아버지가 내게 했을 법한 방식으로 리아의 오류를 바로잡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 노래가 리아에게 그런 의미라면 그 의미가 맞았다. 내가 뭐라고 그걸 망가뜨리나? - P216

리아는 자기가 한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혹은 이해는 하지만 왜 벌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 P217

배경에서 리아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가, 엘리엇 스미스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때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우리가 다른 단계로, 좀더 깊은 단계로, 끝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저멀리 마당 끝자락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지만 그곳 어둠 속 어딘가로 그들이 돌아왔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세탁실 벽 주위를 느린 동작으로 선회하며 아마도 그 숫자를 점점 불려가고 있을 그들이. - P230

포솔레* 수프. 나는 마흔세 살이었다. 둘째 아이가 막 태어났다. 그 밖에는 인생에서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었다. 이 소박한 점심은 나의 비밀이었다. - P231

이 식당 밖의 세상에서 내 인생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집에 어린아이가 둘 있어서 아내와 나는 잠을 거의 못 자고 심지어 대화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 이 식당에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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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지난 몇 주 동안 형이 죽은 뒤 처음으로 내 삶이 방향을 잡았다고 느끼게 해준 일들을 지나오고 있었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고, 훈련을 받고, 뉴욕 주 운전면허시험을 통과하고, 지문을 등록하고, 근무복 제작실에서 미술관의 재단사가 내 치수를 재고… 그리고 마침내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내가 할 유일한 일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망을 보는 것.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은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 이는 정말 특별한 느낌이다. 기나길게 느껴진 몇 분이 더 지난 후, 나는 이것이 진정으로 나의 역할이 될 수 있겠다고 믿기 시작한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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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한참을 그런 식으로 -어색하게 띄엄띄엄 - 뚜렷한 방향도 목표도 없이 계속되었다. 분명 폴과 개릿은 어떤 화제를 피하고 있었다. 예컨대 내가 심리학과에서 일하던 시절, 폴의 연구 주제, 개릿이 이룬 업적을 비롯해 내가 예민하게 반응할 거라고 판단되는 모든 것들을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공통의 관심사 없이는, 애초에 오래전 우리 사이에 유대감을 형성했던 그런 주제들 없이는 할 얘기가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 P178

사실은 부모가 되면, 적어도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더 불행해진다는 상당히 강력한 증거도 있다,라고 말했다. - P182

"아이들이 둥지를 떠난 뒤에도요. 나이가 들어 향수에 젖은 채 인생을 돌아볼 때조차도. 그때조차 자식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더라는 거죠."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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