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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권력에 대한 이상한 향수가 역사의 깊이일수 없듯이 그것은 깊이가 아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깊이의 반대다.

맥락을 따진다는 것은 사람과 그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맥락 뒤에는 또다른 맥락이 있다. 이렇듯 삶의 깊이가 거기 있기에 맥락을 따지는 일은 쉽지 않다.

판단하고 선택하기 전에 모든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가려놓은 채, 생명에 삽질을 하고 시멘트를 발라 둑을 쌓아둔다면, 거기 고이는 것은 창조하는 자의 사랑이 아니라 굴종하는 자의 증오일 것이다.

용맹정진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비루한 시대도 위대한 시대가 된다.

정신이 음악처럼 흐르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폭력 속에 살고 있고, 그 폭력에 의지하여 살기까지 한다. 긴급한 이유도 없이 강의 물줄기를 바꿔 시멘트를 처바르고, 수수만년 세월이 만든 바닷가의 아름다운 바위를 한 시절의 이득을 위해 깨부수는 것이 폭력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고속도로를 160킬로의 속도로 달리는 것도 폭력이고, 복잡한 거리에서 꼬리물기를 하는 것도 폭력이다. 저 높은 크레인 위에 한 인간을 1년이 다 되도록 세워둔 것이나, 그 일에 항의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불안은 슬픔보다 더 끔찍하다.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폭력이 폭력인 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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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만우절이라 한들 그런 장난이나 유머가 오가는 집안도 아니었다. 유머라니. 유머는 우리 집안에서 일종의 금기였다. 그렇다고 유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유머일 수밖에 없고 유머여야 하는 순간에도 내 부모는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했고, 그게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니 우리 집안에 유머가 있었다기보다 혁명을 목전에 둔 듯 진지한 그들의어떤 행위나 삶의 방식이 유머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어렸던 그때도 지금도 나는 저러한 급작스러운 전이가 도무지 이해되질 않는다. 사상이란 저렇듯 느닷없이 타인을 포용하게 만드는 대단한 것일까. 내부모에게는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저 느닷없는 친밀감과 포용이 퍼스트 클래스에 탄 돈 많은 자들끼리의 유대감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이란 이렇게나 미욱하다.

탓을 하는 인생은 이미 루저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가 평생 당하고만 살지는 않았다. 당하지 않으려고 사회주의에 발을 디뎠고, 선택한 싸움에서 쓸쓸하게 패배했을 뿐이다. 아버지는 십대 후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여든둘 된 노동절 새벽,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짊어졌다. 사회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묻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수 있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빨갱이 새끼들은 다 때려죽여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렀고, 아직도 휴전 중인 데다 남북의 이데올로기가 다르니 의견의 합치를 보기는 진작에 글러먹은 일, 게다가 나는 옳고 그름을 따질 만한 주제도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한 단 한순간도 유물론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 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그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워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사후의세계를 창조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한들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탓하는 사람은 루저니 뭐니 그럴싸하게 작은아버지를 무시했지만 본능적으로 나는 아버지 딸인지도 몰랐다. 이데올로기의 격류에 휩쓸렸던 형과 아우가 죽음 앞에서라도 평범한 형과 아우로 화해할 수 있기를, 나는 아무래도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진정한 사람은 싸우지 않는다. 가타부타 말할 수 있는사람도 싸우지 않는다. 똑똑한 아버지가 그건 몰랐다. 그래서 아버지는 분이 머리끝까지 차 싸움에 임하는 사람을 절대 이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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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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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삶의 진실과 따로 노는 코드는 경코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유희와 노름은 늘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지만, 삶과 노동은 이미 이루어놓은 결과에 줄곧 얽매여야 한다.

현실을 현실 아닌 것으로 바꾸고, 역사의 사실을 사실 아닌 것으로 눈가림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비겁하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살아 있는 삶, 다시 말해서 죽음이 함께 깃들어 있는 삶을 고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군대 생활이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군대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저마다 자기들이 서 있는 자리보다 조금 앞선 자리에 특별하게 가치있는 어떤 것이 있기를 바랐고, 자신의 끈기로 그것을 증명했다. 특별한 것은 사실 그 끈기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두텁고 불투명한 일상과 비루한 삶의 시간을 헤치고 저마다의 믿음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전리품이었기 때문이다. 아흐레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의 광장에 구절양장을 그린 긴 행렬은 이 삶을 다른 삶과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의 끈질긴 시위였다.

인간이 수수 천년사용해 온 말 속에는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고통과 슬픔이, 그리고 희망이 들어 있다. 제가 쓰는 말을 통해, 그 길고 깊은 어둠 속에서 그친 적이 없이 빛났던, 그리고 지금도 빛나는 작은 불빛들을 저 광채의 세계와 연결하려는, 또한 그 세계가 드문드문이라도 한 뼘씩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던 시인에게 30만 원과 3백만원의 차이 같은 것은 없다. 그의 용기는 당신이 한순간이라도 꿈꾸었던 세계가 허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로 결심한 사람의 용기이다.

정치가 근대화를 지향할 때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모든 삶을 환하개 들여다보면서 백성들을 빈틈없이 다스리려는 의도가 있다.

과거를 영예롭게도 비열하게도 만드는 것은 언제나 현재다.

어떤 아름답고 거룩한 일에 제힘을 다 바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지 않는다. 그 실패담이 제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였다는 승리의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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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에도 자신을 던지며 계속 나아가는 것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죄악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바보의 표지가 아니라 승리자의 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작은 것들은 아름답지는 않아도, 단 한 종류의 큰 꽃 백송이보다 내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미적 관심과 구별되는 과학적 관심을 보여주는 특별한 증거는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게 마음을 쓰는 일이다.

다윈에 따르면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불변의 경계선도없다.

"나는 아이에게 꼬리를 붙들려 카펫 위로 끌려가는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진화론자들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목적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으로 산다는 건 가혹한 운명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우리는 세상이 기본적으로 냉담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운 보장되지 않고, 수십만 명울 상대로 경쟁해야 하며, 자연 앞에서 무방비 상태이고,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이 결국에는 파괴될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은 거짓말 하나가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낼 수도 있고, 인생의 시련 속에서 계속 밀고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으며, 그 시련 속에서 가끔 우리는 우연한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우주의 냉엄한 진실이다.
우리는 작은 티끌들, 깜빡거리듯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우주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명민하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호흡, 모든 걸음마다 우리의 사소함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연민이었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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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게 아직도 생생해. 영원히 과거가 되지 않은 채 현재로 남아 있어. 그러니까, 너에게도 나라는 사람의 어떤 부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게 분명해. 뭐든 일방적인 것은 없으니까.

낡고 오래된 것들은 깎이고 버려지고 사라져 버리기 마련이니까. 그게 세상의 이치니까.

익명이기에 얻을 수 있는 한줌의 자유.

비밀은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조숙하게 만들어 버리곤 한다.

보편의 무엇에 속할 수 없다는 것

만약 기억이 통조림이라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모두와 잘 지내는 사람은 결국 아무와도 깊이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어쩌면 상대를 가엾게 여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걸 다 잃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관계도 있는 법이니까.

진심이라는 감정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어떤 형태가 실은 매우 연약하다는 진리를 배웠다.

사는건 때때로 초콜릿처럼 달콤하지만 대부분 쓰고 힘들다.

결핍은 인간을 쪼그라들게 했다. 특히나 생존과 직결된 문제는 사람을 더욱 방어적으로 만들기 마련이었다.

때때로 절대 과거가 되지 않는 기억들도 있다.

때때로 애정은 그 무엇보다도 폭력적이고 직설적인 감정으로 돌변하곤 한다.

떠나간 것은 떠나보내야 한다. 기억도 사람도 기억의 주인은 나다.

알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을 알게 되었을 때의 고독감.

어쩌면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일지도 몰랐다. 커다란 고민에 맞닥뜨렸을 때 충실히 고민하는 대신, 일상의 과업들로 도망쳐버리는 사람. 그렇게 함으로써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다잡고 기어이 모든 감정을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리는 사람.

지금껏 내가 읽어온 책 속 고난과 불행들은 언제나 극복되기 위해 존재했다. 손오공과 해리 포터, 나나와 루피에게는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이 주어졌고, 그것은 곧 다가올 행복을 더욱 아름답게 빛나게 해주는 장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일상의 불행은 결코 쉽게 극복되지 않으며, 아주 길게, 어쩌면 평생 동안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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