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밤에 잠도 잘 잤고, 꿈에 기차를 자주 보았다. 특히 자주 나오는 기차가 있었는데, 그는 석탄 연기 냄새를 맡으며 그 기차에 타고 있었다. 세상이 휙휙 지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그 세상 속에 서 있고, 기차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 P79
글래디스는 이 모든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도 말해주었다. 그녀는 죽음 때문에 미래를 잃었고, 산 자들에게 아이를 잃었다. 케이트는 불길을 피해 도망쳤다. - P82
그가 왜 찾아가기도 힘든 그 오두막으로 자꾸만 가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마 한두 명쯤 있었겠지만, 그레이니어는 단 한번도 말해주지 않았다. 거기에 머무르기로 서약했기 때문이라는 진실을. 그는 숲이 불탄 뒤 십 년쯤 지났을 때 일어난 모종의 일에 놀란 나머지 그런 서약을 하게 되었다. - P102
짐승들의 합창은 보름달이 뜬 밤에 가장 화려해지는 것 같았다. 가장 광란의 소리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비루했다. - P103
틀림없이 산꼭대기와 능선에서 모이강을 내려다보는 동물 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녀석들이 한 마리도 빠지지 않고 울어대는 것 같았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짐승들을 그 무엇도 달랠 수 없다는 듯이. 그레이니어는 감히 잠을 자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엄청난 징조 같아서였다. 어쩌면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경보일 수도 있었다. - P103
그가 더 가까이 다가가는데도 아이는 굳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알아본 기색 같은 것이 저절로 나타나서 이 아이가 케이트임을 증명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이의 눈에는 오로지 두려움뿐이었다. 늑대의 눈처럼. 그래도. 그래도. 케이트였지만, 이제 케이트가 아니었다. 이제 케이트가 아닌 아이가 모로 누워 있었다. 옆으로 구부러진 왼쪽 다리의 무릎 아래에 부서진 뼈가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와 있었다. 세 발로 기어다니다가 완전히 지쳐서 부서진 다리를 질질 끌고 온 아이일 뿐이었다. 그는 가끔 아기 케이트의 머리카락이 어떤 모양인지, 아이가 그대로 살았다면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아이는 거의 대머리였다. 듬성듬성 몇 군데에만 머리카락이 있을 뿐이었다. - P106
아이는 숨이 반만 붙어 있는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그는 한참동안 아이를 지켜보았다. 노인처럼 피부가 쪼글쪼글했다. 손은 아래로 구부러지고, 손목 등 쪽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발은 나무의 마디처럼 단단하고 울퉁불퉁했다. 잠들어 있는데도 왜 얼굴이 늑대처럼, 짐승처럼 보이는 걸까? 그는 답을 알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있는 얼굴에는 생기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이 생물의 머릿속에는 눈에 보이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 P108
저쪽 세컨드 스트리트에서 감리교 신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보너스 읍내에서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레이니어는 아직 드물게 예배에 참석했다. 마침 예배가 있는 시간에 읍내에 나왔을 때. 교회에서 사람들은 그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글래디스와 함께 거의 매주 예배에 나오던 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체로 교회에 간 것을 후회하는 편이었다. 교회에서 그는 자주 울었다. 모이 계곡에서 살 때는 자잘하게 할 일이 워낙 많아서 다른 데 신경을 쓸 틈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슬프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러다 찬송가가 시작되면 기억이 났다. - P111
그레이니어는 여든 살이 넘어서 1960년대까지 살았다. 살아있는 동안 태평양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서부까지 여행한 적도 있지만,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동쪽으로 가장 멀리 간 곳은 몬태나주 경계선 안쪽으로 40마일 거리인 리비였다. 그가 사랑한 사람은 한 명(아내 글래디스)이었으며, 재산은 땅 1에이커, 말 두 마리, 수레 한 대였다. 그는 술에 취한 적이 없고, 총기를 구매한 적도 없고, 전화기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기차를 자주 탔지만 자동차도 많이 탔고 비행기도 한 번 타본 적이 있었다. 말년의 십 년 동안 그는 읍내에 나올 때마다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으며, 자손을 남기지도 않았다. - P119
그 지역의 거의 모든 사람이 로버트 그레이니어를 알았지만,1968년 11월 언제쯤에 잠을 자다 숨을 거둔 그가 가을과 겨울내내 오두막에 혼자 누워 있었어도 그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봄에 등산객 두 명이 우연히 그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다음날 의사를 데리고 왔다. 의사는 사망증명서를 작성한 뒤 두 등산객과 함께 오두막에 기대어져 있던 삽으로 땅을 파서 마당에 무덤을 만들었다.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지금도 그곳에 잠들어있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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