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루는 말한다. "우리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살아 있는 거야. 아무리 주의해도 지나칠 일은 없어." - P637

그 이후로 내가 그녀를 줄곧 생각해온 것과 똑같이 그녀도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덴고에게는 믿기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거세게 변화하는 이 미궁과도 같은 세계에서, 삼십 년 동안 얼굴 한번 마주한 일 없이,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 소년과 소녀의 마음이- 지금껏 변하는 일 없이 하나로 이어져왔다는 것이. - P664

시간이 걸린다면, 그것도 좋다. 덴고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자신의 거처를 정했다. 이렇게 시간을 자연스럽게, 균등하게 흘러가게 하는 것, 그것이 지금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 P673

시간은 어떤 때는 견디기 힘들 만큼 변죽을 울리며 천천히 흐르고, 그리고 어떤 때는 몇 개의 과정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 P674

아오마메도 침묵을 지켰다. 두 사람은 얼어붙은 미끄럼틀 위에서 말없이 손을 마주잡고 있었다. 그들은 열 살의 소년과 열 살의 소녀로 돌아가 있었다. 고독한 한 소년과 고독한 한 소녀다. 초겨울의 방과후 교실. 상대에게 무엇을 내밀어야 할지, 상대에게 무엇을 원해야 할지, 두 사람은 힘을 갖지 못했고 지식도 갖지 못했다.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사랑받은 적도 없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 적도 없었다. 누군가를 꼭 껴안은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꼭 안겨본 적도 없었다. 그 일이 앞으로 두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려 하는지, 그것도 알지 못했다. 그들이 그때 발을 들인 곳은 문이 없는 방이었다. 거기에서 나갈 수는 없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다른 누구도 그 방에 들어올 수 없다. 그때의 두 사람은 알지 못했지만, 그곳은 세계에 단 하나뿐인 완결된 장소였다. 한없이 고립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고독에 물들지 않는 장소. - P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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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을 나누는 사고는 창작이 상상이라는 통념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도 사회 안에서 기존 언어를 기반 삼아 나오는 것이다. - P27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글을 다루려면 자신의 윤리와 정치적 판단에 관한 여러 번의 점검이 필요하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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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 P120

몸과 숨을 분리할 수 없듯이 영혼과 자유를 분리할 수 없음을 인식하기 위해, 먼저 어둠의 시간이, 아마도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간이 우리에게 닥쳐야 했습니다. - P120

오로지 폭력만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자유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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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뭔가 생각이 떠오르기는 했는데, 그게 어떤 생각인지 파악할 수가 없다. 멀리 보이는 비구름처럼, 그것은 두툼하고 촘촘한 형태를 띠고 있다. 형태는 알겠는데 윤곽을 잡을 수 없다. 형태와 윤곽 사이에 아무래도 어긋남이 있는 것 같다. - P580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이 ‘1Q84‘년에 오게 된 것은 타의적인 힘에 휩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의 의도에 의해 레일 포인트가 바뀌고, 그 결과 내가 탄 열차는 본선에서 벗어나 이 새롭고 기묘한 세계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을 때, 나는 이곳에 있었다. 두 개의 달이 하늘에 떠 있고, 리틀 피플이 출몰하는 세계에. 그곳에는 입구는 있어도 출구는 없다. - P584

이 세계 속에 내가 포함되고, 나 자신 속에 이 세계가 포함되어 있다. - P585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이 이 세계에서 소멸했다는 것이고, 남겨진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 P591

"사람 하나가 죽는다는 건 어떤 사연이 있건 큰일이야. 이 세계에 구멍 하나가 뻐끔 뚫리는 거니까. 거기에 대해 우리는 올바르게 경의를 표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구멍은 제대로 메워지지 않아." - P594

"하지만 때로 죽은 사람은 몇 가지 비밀을 안고 떠나가." 덴고는 말했다. "그리고 구멍이 메워졌을 때, 그 비밀은 비밀인 채로 끝나버리지."
"내 생각에는, 그것 역시 필요한 일이야." - P594

"만일 죽은 사람이 그걸 안고 떠났다면, 그 비밀은 분명 남겨놓고 갈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던 거야." - P594

"아마 거기에는 죽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이 있었을 거야. 아무리 시간을 들여 말을 늘어놓아도 미처 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그건 죽은 사람이 스스로 안고 가는 수밖에 없는 어떤 일이었어. 특별히 중요한 수하물처럼 말이지." - P594

뒤에 남겨지는 것은 기억뿐이다. 그리고 그 기억도 언젠가는 티끌처럼 사라져버린다. - P598

"아버님은 뭔가 비밀을 안고 그쪽으로 가버렸는지도 몰라. 그 일로 너는 약간 혼란스러운 것처럼 보여.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냐. 하지만 덴고 군은 어두운 입구를 더이상 들여다보지 않는 게 좋아. 그런 건 고양이들에게 맡겨두면 돼. 그런 걸 해봤자 너는 어디로도 갈 수 없어. 그보다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게 좋아." - P598

당신이 내 친아버지였건 아니건, 그건 이미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덴고는 그곳에 있는 어두운 구멍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어느 쪽이든 좋다. 어느 쪽이라 해도 당신은 나의 일부를 가진 채 죽었고, 나는 당신의 일부를 가진 채 이렇게 살아남아 있다. 실제적인 혈연이 있건 없건, 그 사실이 이제 와서 달라지는 건 아니다. 시간은 이미 그만큼 지나갔고, 세계는 앞으로 나아가버렸다. - P602

고통이라는 건 간단하게 일반화할 수 있는 게 아냐. 개개의 고통에는 개개의 특성이 있어. 톨스토이의 유명한 한 구절을 약간 바꿔 말해보자면, 쾌락이라는 건 대체로 고만고만하지만, 고통은 나름나름으로 미묘한 차이가 있지. - P611

인간의 죽음은 모름지기 애도되어야 하는 것이다. 비록 아주 짧은 시간이라 해도. - P631

적당한 야심은 인간을 성장하게 해주지. - P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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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좋은 삶을, 내 유년기보다 훨씬 수월한 삶을 살아왔다.
부족한 것이 없었다. 자기를 사랑하는 두 부모가 있었다. 친구도 많았다. 너른 뒷마당도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교육도 받았다. 그런데도 아이에겐 어쩐지 슬픔이, 불행이 불만족이 있었다. 그건 어디에서 온 걸까? - P154

어쩌면 이언은 이런 불행을 내게만 내보였는지도 모른다. 내 잘못이라고, 나 때문에 자기가 이렇다고 알려주기 위해. 아니면 그보다 훨씬 단순한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저 자기가 뽑은 패에, 자신에게 주어진 아버지에게 실망한 건지도. 아이가 가장 원한 건 그저 다른 삶이었는지도. - P154

"부모라고 언제나 완벽하진 않아." 나는 말했다. "우리도 자주 일을 망쳐. 결함이 많은 사람들이지. 적어도 부모들 대부분은." 내가 하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계속 이어갔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아빠는 다른 부모들 대다수보다 더 결함이 많은지도 몰라. 하지만 네 말이 맞아. 아빠가 거기 있었어야 해. 네 말이 전적으로 맞아."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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