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뭔가 생각이 떠오르기는 했는데, 그게 어떤 생각인지 파악할 수가 없다. 멀리 보이는 비구름처럼, 그것은 두툼하고 촘촘한 형태를 띠고 있다. 형태는 알겠는데 윤곽을 잡을 수 없다. 형태와 윤곽 사이에 아무래도 어긋남이 있는 것 같다. - P580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이 ‘1Q84‘년에 오게 된 것은 타의적인 힘에 휩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의 의도에 의해 레일 포인트가 바뀌고, 그 결과 내가 탄 열차는 본선에서 벗어나 이 새롭고 기묘한 세계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을 때, 나는 이곳에 있었다. 두 개의 달이 하늘에 떠 있고, 리틀 피플이 출몰하는 세계에. 그곳에는 입구는 있어도 출구는 없다. - P584

이 세계 속에 내가 포함되고, 나 자신 속에 이 세계가 포함되어 있다. - P585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이 이 세계에서 소멸했다는 것이고, 남겨진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 P591

"사람 하나가 죽는다는 건 어떤 사연이 있건 큰일이야. 이 세계에 구멍 하나가 뻐끔 뚫리는 거니까. 거기에 대해 우리는 올바르게 경의를 표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구멍은 제대로 메워지지 않아." - P594

"하지만 때로 죽은 사람은 몇 가지 비밀을 안고 떠나가." 덴고는 말했다. "그리고 구멍이 메워졌을 때, 그 비밀은 비밀인 채로 끝나버리지."
"내 생각에는, 그것 역시 필요한 일이야." - P594

"만일 죽은 사람이 그걸 안고 떠났다면, 그 비밀은 분명 남겨놓고 갈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던 거야." - P594

"아마 거기에는 죽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이 있었을 거야. 아무리 시간을 들여 말을 늘어놓아도 미처 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그건 죽은 사람이 스스로 안고 가는 수밖에 없는 어떤 일이었어. 특별히 중요한 수하물처럼 말이지." - P594

뒤에 남겨지는 것은 기억뿐이다. 그리고 그 기억도 언젠가는 티끌처럼 사라져버린다. - P598

"아버님은 뭔가 비밀을 안고 그쪽으로 가버렸는지도 몰라. 그 일로 너는 약간 혼란스러운 것처럼 보여.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냐. 하지만 덴고 군은 어두운 입구를 더이상 들여다보지 않는 게 좋아. 그런 건 고양이들에게 맡겨두면 돼. 그런 걸 해봤자 너는 어디로도 갈 수 없어. 그보다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게 좋아." - P598

당신이 내 친아버지였건 아니건, 그건 이미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덴고는 그곳에 있는 어두운 구멍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어느 쪽이든 좋다. 어느 쪽이라 해도 당신은 나의 일부를 가진 채 죽었고, 나는 당신의 일부를 가진 채 이렇게 살아남아 있다. 실제적인 혈연이 있건 없건, 그 사실이 이제 와서 달라지는 건 아니다. 시간은 이미 그만큼 지나갔고, 세계는 앞으로 나아가버렸다. - P602

고통이라는 건 간단하게 일반화할 수 있는 게 아냐. 개개의 고통에는 개개의 특성이 있어. 톨스토이의 유명한 한 구절을 약간 바꿔 말해보자면, 쾌락이라는 건 대체로 고만고만하지만, 고통은 나름나름으로 미묘한 차이가 있지. - P611

인간의 죽음은 모름지기 애도되어야 하는 것이다. 비록 아주 짧은 시간이라 해도. - P631

적당한 야심은 인간을 성장하게 해주지. - P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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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좋은 삶을, 내 유년기보다 훨씬 수월한 삶을 살아왔다.
부족한 것이 없었다. 자기를 사랑하는 두 부모가 있었다. 친구도 많았다. 너른 뒷마당도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교육도 받았다. 그런데도 아이에겐 어쩐지 슬픔이, 불행이 불만족이 있었다. 그건 어디에서 온 걸까? - P154

어쩌면 이언은 이런 불행을 내게만 내보였는지도 모른다. 내 잘못이라고, 나 때문에 자기가 이렇다고 알려주기 위해. 아니면 그보다 훨씬 단순한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저 자기가 뽑은 패에, 자신에게 주어진 아버지에게 실망한 건지도. 아이가 가장 원한 건 그저 다른 삶이었는지도. - P154

"부모라고 언제나 완벽하진 않아." 나는 말했다. "우리도 자주 일을 망쳐. 결함이 많은 사람들이지. 적어도 부모들 대부분은." 내가 하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계속 이어갔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아빠는 다른 부모들 대다수보다 더 결함이 많은지도 몰라. 하지만 네 말이 맞아. 아빠가 거기 있었어야 해. 네 말이 전적으로 맞아."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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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후로 나는 인간의 모든 일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선하고 유효할 수 있는지 알았다. 자기 자신과 모든 목표 및 목적을 완전히 잊고, 오직 도달할 수 없는 궁극적 목표인 완벽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 P83

"신중해지자. 이것은 독일인만의 내부 문제다. 독일인들이 자기네 나라에서 뭘 하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그냥 두자. 독일인들이 서로 잘 알아서 할 것이다. 국경을 넘지 않는 한,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심각한 착오다! 어떤 판단을 내릴 때, 내 나라냐 남의 나라냐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 어쩔 수 없이 늘 같은 형태로 발생하는 착오다. 모든 인간은 권리와 신성한 의무를 지닌 불가분의 통일체고 어떤 깃발과 이름과 이념으로 저질러지든 범죄는 범죄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 발생하는 착오다. - P103

침묵, 뚫을 수 없는 침묵, 끝없는 침묵, 끔찍한 침묵. 나는 그 침묵을 밤에도 낮에도 듣는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로 내 귀와 영혼을 가득 채운다. 그것은 어떤 소음보다 견디기 힘들고, 천둥보다, 사이렌의 울부짖음보다, 폭발음보다 더 끔찍하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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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잃고 깊은 혼수에 빠진 것과 생명을 잃어버린 것 사이에, 현재로서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 영양보급과 배설 처리가 필요 없어진 것뿐이다. 다만 이대로 두면 며칠 내에 부패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큰 차이가 된다. - P526

인간은 죽은 이에게 자연스러운 경의를 표한다. 상대는 방금 전에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 P529

사실이 명확해질수록 진실은 점점 더 멀어져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 P540

아버지는 덴고의 정신에 무겁고 농밀한 그림자를 남기고 갔다. 우체국 예금통장 하나와 함께. - P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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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이 되고 어떻게 변하든 항상 그리고 누구에게나 시작점, 첫 번째 방향을 제시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적어도 스스로 지난 세월의 잔해 속에서 이 첫 번째 순간을 찾아내, 무엇이 우리의 특별한 삶의 방식을 탄생시켰는지 자신에게 또는 자식이나 친구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P70

위대한 사람들은 거의 항상 매우 친절하다. 그리고 과하게 나서지 않는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관대하다. 이것이 첫번째 교훈이었다. - P74

자기 일에 전념하는 사람은 언제나 큰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산다. - P75

그의 끊임없는 탐구와 노력의 전 생애가 마치 박물관처럼 이곳에 모여 있었고, 방금 시작된 것과 완성된 것, 토르소와 깨진 잔해가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다. - P76

그는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었고, 나는 그런 모습에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자기가 초대한 손님이 뒤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낮인지 밤인지조차 몰랐으며, 시간도 장소도 잊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작품과 그 너머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그가 성취하고자 했던 더 높고 더 진실한 형태만 응시했다. - P79

시간과 공간과 세상을 그토록 완벽하게 잊을 수 있다니, 젊은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큰 충격이었다. 그 한 시간에 나는 세상의 모든 예술과 성과의 궁극적 비밀을 확실히 이해했다. 그것은 바로 집중이었다. 크든 작든 어떤 작업이든, 수행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너무 자주 수백 가지 사소한 일에 분산되고 쪼개지는 의지를 진정으로 원하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영혼의 결단이 있어야만, 오직 그런 결단력으로만 진정으로 일할 수 있다. - P80

그 한 시간에, 나는 지금까지 내게 없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완벽을 향한 의지로 모든 것을 잊는 열정! 크든 작든 자기 일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다른 마법은 없다. 나는 그 한 시간에 이것을 깨달았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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