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가격 변동의 영향
Ⅰ. 원료 가격의 변동. 이윤율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
잉여 가치율이 불변이라는 전제는 사태를 가장 고유한 형태로 고찰하기 위해 필요하다. 비록 잉여 가치율이 일정하게 유지되더라도, 원료 가격 변동에 따른 원료 투입량의 변화는 가용 자본이 고용하는 노동자 수의 증감을 유발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잉여 가치량의 변동이 수반되나, 이는 본 논의의 핵심에서 벗어난 부차적 요소이므로 분석 대상에서 제외한다. 기계 설비의 개량과 원료 가격의 변화가 고용 규모나 임금 수준에 동시에 작용한다면, 1) 불변 자본의 변동이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과 2) 임금 변화가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서 그 최종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앞선 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음의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불변 자본 사용의 절약이나 원료 가격의 변동에서 기인하는 모든 변화는 임금, 잉여 가치율, 잉여 가치량에 아무런 변동이 없더라도 이윤율에는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는 해당 변화가 이윤율 공식 s´ v/C에서 분모인 C의 가치를 변경시키면서 분수 전체의 값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변동이 발생하는 산업 분야가 노동자의 생활 수단이나 그 생산에 필요한 불변 자본을 생산하는 영역인지 여부는 잉여 가치 자체를 고찰할 때는 중요할지 모르나, 본 논의에서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 논의는 노동력의 재생산과 무관한 사치품 생산 부문에서 발생하는 가치 변동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나,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여기서 원료란 인디고 (물감)와 같은 염료뿐만 아니라 석탄, 가스 등의 보조 재료를 모두 포괄한다. 기계 역시 철, 목재, 가죽 등의 원료로 구성되므로, 해당 원료의 가격 변동은 기계 가격의 변동을 유발한다. 기계를 구성하는 원료나 가동에 보조 재료의 가격이 상승하여 기계 가격이 등귀하면 이윤율은 그에 비례하여 하락한다. 가격이 하락할 경우 이윤율은 상승한다.
이후의 분석에서는 상품 생산 과정에 직접 투입되는 원료의 가격 변동만을 고찰하며, 노동 수단인 기계의 원료나 그 유지에 필요한 보조 재료는 분석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기계의 제조와 가동에 필수적인 철, 석탄, 목재 등 자연적 부의 토대는 자본의 생산적 성과로 체현되며, 이는 임금 수준과 무관하게 이윤율을 결정하는 독립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이윤율은 s/C 또는 s/(c+v)로 규정되므로, s와 v 및 그 상호 관계가 고정되더라도, 분모인 C의 크기를 변화시키는 모든 요인은 이윤율의 변동을 초래한다. 불변 자본의 핵심 요소인 원료는 직접적인 가공 대상뿐만 아니라 보조 재료나 기계의 구성품 형태로도 존재하기에, 원료 가격의 변동은 산업 전반의 이윤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원료 가격이 d만큼 하락할 경우 이윤율은 s/(C-d)로 상승하며, 반대로 d만큼 등귀할 경우 s/(C+d)가 되어 이윤율은 하락한다. 곧, 기타 조건이 일정하다면 이윤율은 원료 가격과 반비례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논리는 원료 가격의 변동이 제품 시장의 수급 구조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저렴한 원료 확보가 공업국에 지대한 중요성을 가짐을 시사한다. 또한 대외 무역은 생활 수단의 가격을 낮추어 임금에 영향을 주는 것 외에도, 생산에 투입되는 원료와 보조 재료의 가격을 변동시키면서 이윤율 결정에 개입한다. 그동안 이윤율의 본질과 잉여 가치율과의 차이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경제학계에서는, 실증적 지표를 바탕으로 원료 가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론적 정립에 실패하거나 (토렌즈) (참조. CW 32: 262-263), 일반 원리만을 고수하며 세계 무역이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을 부인하는 (리카도) (참조. CW 32: 71-72) 등 이론적 한계를 보였다.
원료에 대한 수입 관세의 철폐 또는 경감은 공업 부문에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 보호 관세 제도의 합리적 운용은 원료 관세의 극소화를 핵심 원칙으로 삼아왔으며, 이는 곡물세 폐지와 더불어 영국 자유무역론자들의 주요 목표였다. 특히 그들은 면화에 대한 수입 관세 철폐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였다.
‘직접적인 원료가 아닌 보조 재료의 가격 하락이 지닌 중요성은 면공업의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1837년 그레그 분석에 따르면, 당시 영국 면공업의 역직기 10만 대와 수직기 25만 대는 날실의 가공을 위해 연간 약 4,100만 파운드(Ibs)의 밀가루를 소비하였으며, 표백 등 기타 공정에서 그 수량의 1/3이 추가로 투입되었다. 이처럼 보조 재료로 소비된 밀가루의 연평균 가치는 약 342,000파운드에 달했다. 유럽 대륙과의 가격 비교로부터 산출했을 때, 곡물법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공장주들이 추가 부담한 비용은 연간 17만 파운드였으며, 1837년에는 그 금액이 최소 20만 파운드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기업의 경우 밀가루에 대한 추가 지불액만 연간 1,000파운드에 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비용 구조로 인해 철저히 수지 타산을 고려하는 대공장주들은 곡물법이 철폐된다면 노동 시간을 10시간으로 단축하더라도 충분한 이윤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48년 10월 31일』: 98].
1846년 곡물법의 폐지와 함께 면화 및 기타 원료에 대한 수입 관세도 전면 철폐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가 달성되자마자 10시간 노동 법안에 대한 공장주들의 저항은 유례없이 격렬해졌으며, 해당 법안이 최종 확정된 직후 그들은 가장 먼저 전반적인 임금 삭감을 단행하였다.
원료와 보조 재료의 가치는 생산 과정에서 소비됨에 따라 생산물의 가치로 전량 즉시 이전되나, 고정 자본 요소의 가치는 마멸 정도에 따라 점진적으로만 이전된다. 따라서 이윤율이 투하 자본의 소비 여부와 관계없이 사용된 자본 가치 총액에 따라 결정됨에도, 생산물의 최종 가격은 고정 자본의 가격보다 원료 가격의 변동으로부터 훨씬 더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시장 규모의 확대와 축소는 개별 상품의 가격에 의존하며, 시장의 크기는 가격 변동과 반비례 관계를 형성한다. 다만, 본 논의에서는 상품이 그 가치대로 판매된다는 전제하에 경쟁에 따른 가격 변동을 배제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원료 가격의 등락이 제품 가격에 동일한 비율로 나타나지 않으므로, 이윤율은 상품이 그 가치대로 판매될 때보다 원료 가격 상승 시에는 더 큰 폭으로 하락하고, 하락 시에는 더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된다.
한편, 노동 생산성이 발전함에 따라 사용되는 기계의 총량과 가치는 증대하나, 이는 생산물의 증대와 동일한 비율로 증가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노동 대상을 가공하는 산업 분야에서 생산성의 향상은 일정 노동량이 흡수하는 원료량의 증대, 곧 단위 시간당 상품으로 전환되는 원료량의 증가로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생산성이 발전할수록 상품 가치에서 원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확대된다. 이는 원료 가치가 전량 생산물에 이전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별 생산물의 가치 구성 요인 중 기계의 마멸분과 새로 첨가된 노동 분량이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데에서도 기인한다. 물론 이러한 원료 가치 비중의 상대적 증가는 원료 생산 부문의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원료 자체의 가치 하락에 따라 상쇄될 수 있다.
원료와 보조 재료는 임금과 마찬가지로 유동 자본의 구성 부분을 이루므로, 매회의 생산물 판매 대금으로부터 그 전부가 끊임없이 보충되어야 한다. 반면, 기계와 같은 고정 자본은 마멸분만큼만 예비금 형태로 보충하면 족하며, 이 또한 매회의 판매마다 적립할 필요 없이 연간 총판매액에서 공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원료 가격의 등귀는 재생산 과정 전체를 축소하거나 방해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상품 판매 수익이 생산 요소 전반을 보충하기에 부족해지면, 생산 공정의 기술적 토대에 부합하는 규모를 유지하기 어려워짐에 따라 설비의 일부만이 가동되거나 조업 시간이 단축되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원료 폐기물로 인한 손실 규모는 원료 가격의 변동에 정비례한다. 곧, 원료 가격이 등귀하면 폐기 손실액도 증가하며, 가격이 하락하면 손실액 또한 감소한다. 1850년의 기록에 따르면,
‘원료 가격 상승 시 발생하는 막대한 손실은 방적업자들에게 낙면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특히 저급 면사를 생산하는 방적업자의 경우, 원료 가격의 상승분보다 실제 생산 비용이 더 높은 비율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굵은 실을 뽑는 공정에서 발생하는 낙면의 비율이 15%에 달한다면, 면화 가격이 파운드당 3.5펜스일 때의 손실액은 0.5펜스에 불과하지만, 가격이 7펜스로 두 배 상승할 경우 그 손실액 또한 1펜스로 정비례하여 증가하게 된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50년 4월 30일』: 17].
미국 남북 전쟁 (1861-1865)의 영향으로 면화 가격이 유례없는 수준으로 폭등하자, 이에 관한 보고서의 논조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현재 낙면의 판매 가격과 이를 공정에서 원료로 재활용하면서 얻는 이득은 인도산 면화와 미국산 면화 사이의 낙면 발생률 차이 (약 12.5%)를 어느 정도 보전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산 면화의 가공 손실률은 25%에 달하므로, 방적업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비용은 원사에 포함된 순수 면화 비용보다 1/4이나 더 많다. 과거 미국산 면화가 파운드당 5-6펜스였을 당시에는 낙면 손실액이 파운드당 0.75펜스를 넘지 않아 그 중요성이 낮았다. 반면 면화 가격이 파운드당 2실링으로 치솟아 낙면 손실이 6펜스에 이르게 된 현시점에서, 이러한 손실은 경영상 매우 중대한 사안이 되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106].
[엥겔스: 해당 보고서의 말미는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 낙면에 따른 실질 손실액은 6펜스가 아닌 3펜스로 산정함이 타당하다. 이는 인도산 면화의 손실률이 25%에 달하는 것과 달리, 미국산 면화의 손실률은 12.5%에서 15%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파운드당 5-6펜스라는 기준가에는 이러한 비율이 올바르게 적용되고 있다. 다만 남북 전쟁 말기에 유럽으로 수송된 미국산 면화의 경우, 예외적으로 종전보다 높은 낙면 발생률을 보였던 점은 고려되어야 한다].
Ⅱ. 자본의 가치 증가와 가치 감소. 자본의 풀려남과 묶임
본 장에서 다루는 현상들이 온전히 전개되기 위해서는 신용 제도와 세계 시장의 경쟁이라는 전제가 필수적이다. 특히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토대이자 존립 조건을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적 형태들을 포괄적으로 서술하는 작업은 자본의 일반적 성질에 대한 규명이 선행된 이후에야 파악되므로, 본 저작의 범위를 벗어나 차후의 과제로 남겨둔다. 다만, 본 절에서 제시된 현상들은 이윤율 및 이윤량의 변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일반적인 수준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이윤율뿐만 아니라 잉여 가치량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이윤량까지도 잉여 가치의 운동과는 독립적으로 증감할 수 있다는 오류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잉여 가치(율·량)와 이윤의 관계를 명확히 정립하기 위해 이에 대한 간략한 분석을 수행하고자 한다.
자본의 풀려남과 묶임, 그리고 가치 증대와 가치 저락을 각각 독립된 현상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가 일차적인 검토 대상이다.
먼저 자본의 풀려남과 묶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규명해야 한다. 가치 증대와 가치 저락의 의미는 비교적 자명한데, 이는 개별 자본의 특수한 부침이 아니라 일반적인 경제적 조건의 변화로 인해 기존 자본의 가치가 변동함을 뜻한다. 곧, 생산 과정에 투하된 자본 가치가 노동에 따른 가치 증식 과정과는 무관하게 증감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자본의 묶임이란 생산을 종전 규모대로 지속하기 위해 생산물 총가치 중 일정 부분이 추가적으로 불변 자본 또는 가변 자본의 요소로 재전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반면, 자본의 풀려남이란 생산물 총가치 중 기존에 자본으로 재전환되던 부분의 일부가 생산 규모 유지에 불필요해짐으로, 다른 용도로 활용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자본의 풀려남 및 묶임은 수입의 풀려남 및 묶임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가령 자본 C에서 발생하는 연간 잉여 가치가 x일 때, 자본가가 소비하는 상품 가격이 하락하여 종전과 동일한 수준의 향락품 등을 구매하는 데 x-a만으로 충분하다면 수입 중 일부인 a가 풀려난다. 이 풀려난 수입은 소비 확대나 자본 축적에 사용될 수 있다. 반대로, 동일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데 x+a가 소요된다면, 자본가는 생활 수준을 낮추거나 이전 축적에 할당했던 수입 a를 소비 지출로 전환해야 한다.
자본 가치의 증감은 불변 자본이나 가변 자본, 또는 두 자본 모두에서 발생할 수 있다. 불변 자본의 경우에는 원료(보조 재료 및 반제품 포함)와 기계, 기타 고정 자본 전반에 걸쳐 이러한 변동이 나타날 수 있다.
앞 절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원료 가격 (가치)의 변동은 이윤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구체적으로,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하다면 이윤율은 원료 가치의 변동과 반비례 관계를 형성한다는 일반 법칙이 성립한다. 이 법칙은 화폐가 생산 자본으로 전환되어 사업에 최초로 투하되는 자본의 경우에는 예외 없이 적용된다. 새로 투하되는 자본과 달리, 이미 가동 중인 자본의 상당 부분은 유통 영역에 머물며 일부만이 생산 영역에 존재한다. 구체적으로 자본의 일부는 상품 형태로 시장에 출시되어 화폐로의 전환을 대기하고 있으며, 다른 일부는 화폐 형태로 존재하며 생산 요소로의 재전환을 앞두고 있다. 마지막 일부는 생산 영역 내에서 원료·보조 재료·반제품·기계 등 생산 수단이나 미완성 고정품의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자본 가치의 증감이 미치는 파급 효과는 이러한 각 부분의 구성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논의의 명료화를 위해 우선 고정 자본을 제외하고, 원료·보조 재료·반제품·재공품·완성품 등 유동적 성격의 불변 자본만을 대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원료 (예: 면화) 가격이 상승하면 저렴한 원료로 이미 제조된 면사 (반제품)나 면직물 (완성품)의 가격 또한 동반 상승한다. 창고에 보관된 미가공 원료나 현재 공정 중에 있는 원료의 가치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원료는 가치 변동의 소급 작용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많은 노동 시간을 대표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생산물에 전이하는 가치는 자본가가 최초에 지불했던 구매 가치를 상회하게 된다.
따라서 원료 가격 등귀 시점에 상당량의 완제품이나 반제품이 유통 시장에 존재한다면, 해당 상품들의 가치가 증대되면서 기존 자본의 가치 증식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생산자가 보유한 원료 재고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러한 가치 증가는 개별 자본가나 특정 산업 부문 전체에 있어 원료 가격 상승에 따른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거나, 오히려 이를 초과하는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경쟁의 영향을 배제한 채 논의를 보충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창고 내 원료 재고가 충분할 경우, 원료 생산 조건의 변화로 인한 급격한 가격 상승은 어느 정도 억제된다.
2) 시장 내 반제품이나 완성품이 과잉 공급 상태일 경우, 이들의 가격은 원료 가격의 상승 폭에 비례하여 등귀하지 않을 수 있다.
원료 가격이 하락할 경우, 기타 조건이 일정하다면 이윤율은 상승한다. 그러나 이때 시장에 출하된 상품, 공정 중인 재공품, 그리고 보유 중인 원료 재고의 가치가 일제히 하락하게 되며, 이러한 가치 저락은 가격 하락에 따른 이윤율의 상승 효과를 상쇄하거나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원료 가격 변동이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는 재고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령 농산물 수확 직후와 같이 원료가 대량으로 새로 공급되는 시점에서, 생산 현장과 유통 시장의 기존 재고가 적을수록 원료 가격 변동에 따른 효과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본 연구는 모든 가격 등락이 실질적인 가치 변동의 표현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현재 논의의 핵심은 가격 변동이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 그 자체에 있으므로, 가격 변동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가격의 등락이 가치 변동의 산물이 아니라 신용 제도나 시장 경쟁의 결과라 할지라도 본 논의의 타당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윤율은 총 투하 자본 대비 생산물 가치의 초과분 비율로 규정된다. 이에 따라 투하 자본의 가치 감소로 인해 발생하는 이윤율의 상승은 자본가 입장에서 기존 자본 가치의 실질적 손실을 내포할 수 있으며, 반대로, 투하 자본의 가치 증가로 인한 이윤율의 저하는 기존 자본 가치의 증대를 동반할 수 있다.
불변 자본의 여타 부분, 곧 기계나 고정 자본 일반에서 발생하는 가치 증대 (특히 건물 및 토지 등)는 지대론의 범주에 속하므로 본 논의에서는 제외한다. 다만, 고정 자본의 가치 저락과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끊임없는 기술 개량으로 인해 기존의 기계 및 공장 설비 등은 사용 가치의 일부를 상실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교환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새로운 기계가 도입된 초기 단계, 곧 기술적 성숙도에 도달하기 이전의 시기에 특히 두드러진다. 이 시기의 기계는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재생산하기도 전에 새로운 기술로부터 끊임없이 구식화된다. 이러한 이유로, 기계 도입 초기에는 대개 노동 시간의 무제한 연장이나 주야 교대 작업이 강행된다. 이는 기계의 물질적 마멸 비용을 과도하게 부담하지 않으면서 그 가치를 신속히 재생산하기 위함이다. 기술 개량으로 인해 단축된 기계의 가동 수명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보전되지 않는다면, 기계는 이른바 ‘도덕적 마멸 (물질적 마모가 아닌 무형의 가치 하락)’로 인해 자신의 가치를 생산물에 과다하게 이전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수공업 생산 방식과의 경쟁력조차 상실하게 된다.
기계, 공장 건물 등 고정 자본이 일정한 성숙도에 도달하여 그 기본 구조가 장기간 유지되는 경우, 가치 저락은 해당 고정 자본의 재생산 방법이 개량됨에 따라 발생한다. 이때 기계의 가치가 하락하는 원인은 더 생산적인 신형 기계로부터 급속히 대체되거나 물리적으로 마모되기 때문이 아니라, 동일한 기계를 이전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재생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기업이 최초 설립자의 파산 이후 이를 인수한 두 번째 소유자의 수중에서 번영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를 설명한다. 후속 소유자는 기존 설비를 저렴한 가격에 매입하면서 훨씬 적은 자본 투하량으로 생산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업 부문에서는 생산물 가격을 변동시키는 원인들이 자본 가치를 직접 증감시킨다는 사실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농업 자본의 상당 부분이 곡물이나 가축 등 생산물 그 자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리카도).
[CW 32: 172-173 참조].
다음으로 가변 자본에 대하여 고찰해야 한다.
노동력 재생산에 필수적인 생활 수단의 가치 변동에 따라 노동력의 가치가 등락하는 한, 곧 가변 자본의 가치 증감이 오직 이 두 경우만을 의미한다면 노동일의 길이가 일정하다는 전제하에 가치 증가는 잉여 가치의 감소를 초래하고, 가치 감소는 잉여 가치의 증가를 초래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자본의 풀려남과 묶임이라는 또 다른 경제적 사정들이 결부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이하에서 간략히 분석하고자 한다.
노동력의 가치 저하로 인해 임금이 하락하면, 비록 그것이 실질 임금의 상승과 결부될지라도 종전에 임금으로 투하되었던 자본의 일부가 풀려나온다. 곧 가변 자본의 풀려남이 일어난다. 새로 투하되는 자본의 경우 임금 하락은 해당 자본이 더 높은 잉여 가치율로 가동되도록 하는 효과만을 지닌다. 이는 종전보다 적은 화폐량으로 동일한 노동량을 가동하면서 노동의 지불 부분은 줄어드는 반면, 무상 노동 부분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투하되어 가동 중인 자본의 경우에는 잉여 가치율이 상승할 뿐만 아니라 이전에 임금으로 지출되던 자본의 일부가 풀려나온다. 이 부분은 본래 사업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생산물 판매 대금에서 지속적으로 인출되어 가변 자본으로 기능해야 했던, 곧 묶여 있던 자본이다. 이제 이 가용 부분은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게 되며, 동일 사업의 확장이나 타 생산 분야로의 전용을 위한 새로운 자본 투자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500명의 노동자를 1주일간 고용하는 데 최초 500파운드가 소요되었으나 이제 400파운드만으로 충분하다고 전제하자. 매주 생산되는 가치량이 두 경우 모두 1,000파운드라면, 초기에는 잉여 가치량이 500파운드이며 잉여 가치율은 100%가 된다. 그러나 임금 하락 이후 잉여 가치량은 600파운드로 증가하며, 잉여 가치율은 600/400, 곧 150%로 상승한다. 400파운드의 가변 자본과 그에 상응하는 불변 자본으로 사업을 새로 시작하는 자에게는 이러한 잉여 가치율의 증가가 임금 저하에 따른 유일한 효과가 된다. 반면, 이미 가동 중인 사업의 경우 가변 자본의 가치 감소 결과로 잉여 가치량과 잉여 가치율이 각각 600파운드와 150%로 상승할 뿐만 아니라, 기존에 묶여 있던 100파운드의 가변 자본이 풀려나와 추가적인 노동 착취에 투입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곧, 동일한 노동량을 더욱 유리하게 착취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풀려난 100파운드의 자본으로 500파운드라는 기존 가변 자본 규모 내에서 전보다 더 많은 노동자를 더 높은 비율로 착취할 수 있게 된다.
반대의 사례를 고찰하자. 취업 노동자가 500명이고 생산물의 최초 분할이 400v + 600s = 1,000이라 전제하면, 잉여 가치율은 150%이며 노동자 1인당 주당 임금은 4/5파운드 (= 16실링)가 된다. 가변 자본의 가치 증가로 인해 500명의 노동자 고용에 매주 500파운드가 소요된다면, 1인당 주당 임금은 1파운드로 상승하며 기존의 400파운드로는 이제 400명만을 고용할 수 있다. 종전과 동일한 인원의 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가치 분할은 500v + 500s = 1,000이 되어 잉여 가치율은 150%에서 100%로 (곧 1/3만큼) 하락한다. 이 부문에 새로 투하되는 자본에 있어 임금 상승의 효과는 오직 잉여 가치율의 하락으로만 나타나며, 기타 조건이 일정하다면 이윤율 또한 저하한다. 가령 c = 2,000일 때, 초기 상태의 이윤율 p´ = 600/2,400 = 25%이나, 임금 상승 이후에는 500/2,500 = 20%로 하락한다. 반면, 이미 기능 중인 자본에 있어 임금 상승은 이중의 타격을 가한다. 기존의 400파운드로는 100%의 잉여 가치율하에서 400명의 노동자만을 고용할 수 있으며, 생산되는 총 잉여 가치는 400파운드에 그친다. 더욱이 2,000파운드의 불변 자본을 가동하는 데 500명의 노동자가 필수적이라면, 400명의 인원으로는 1,600파운드의 불변 자본만을 운용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생산 규모를 유지하고 설비의 1/5이 유휴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변 자본을 100파운드 확충하여 종전처럼 500명을 고용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 가용 상태였던 자본을 묶어야 하며, 이는 축적 기금이나 개인적 수입으로 전용될 부분을 기존 사업의규모 유지에 투입해야 함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100파운드의 가변 자본이 추가 투하되면서도 생산되는 잉여 가치는 오히려 100파운드 감소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곧, 동일한 노동력을 가동하기 위해 더 많은 자본이 요구됨과 동시에 각 노동자가 제공하는 잉여 가치는 감소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가변 자본의 풀려남에서 발생하는 이익과 묶임에서 비롯되는 불이익은 이미 가동 중이며 동일한 조건에서 자신을 재생산하는 자본에 국한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새로 투하되는 자본의 경우, 이러한 가치 변동의 영향은 오직 잉여 가치율의 등락 및 그에 따른 이윤율의 변동으로만 귀결될 뿐이다.
앞서 고찰한 가변 자본의 풀려남과 묶임은 노동력 재생산 비용, 곧 가변 자본 요소들의 가치 변동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임금률이 일정하더라도 생산성 발전에 힘입어 동일한 규모의 불변 자본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노동자 수가 줄어든다면 가변 자본은 풀려날 수 있다. 반대로, 노동 생산성의 저하로 인해 동일한 불변 자본에 더 많은 노동력이 요구된다면 추가적인 가변 자본이 묶이게 된다.
기존에 가변 자본으로 사용되던 자본의 일부가 불변 자본의 형태로 전용되는 경우, 곧 동일 자본 내 구성 요소 간 배분 비율만이 변경되는 상황이라면 이는 잉여 가치율과 이윤율에는 영향을 미치나 본 절에서 다루는 자본의 풀려남과 묶임이라는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불변 자본 역시 물질적 요소들의 가치 변동에 따라 묶이거나 풀려날 수 있다. 이러한 가치 변동을 제외할 경우, 불변 자본의 묶임은 주로 노동 생산성이 향상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곧, 동일한 노동량이 더 많은 생산물을 생산함에 따라 가동해야 할 불변 자본의 물량이 증대되는 경우다. 다만 이는 가변 자본의 일부가 불변 자본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성립한다. 한편, 농업에서처럼 노동 생산성이 저하되어 동일한 수확량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종자, 비료, 배수 시설 등의 생산 수단이 요구되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불변 자본의 묶임이 일어날 수 있다. 반면, 불변 자본이 자체적인 가치 감소 없이 풀려날 수 있는 것은 각종 기술적 개량이나 자연력의 활용 등으로부터 더 적은 가치의 불변 자본만으로도 과거 더 큰 가치의 불변 자본이 수행하던 기능적 역할을 기술적으로 완벽히 대체할 수 있게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자본』제2권 (제20장 1절-8절)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상품이 화폐로 전환된 이후 그 화폐의 일정 부분은 해당 산업의 기술적 성격이 요구하는 비율에 따라 다시 불변 자본의 물질적 요소들로 재전환되어야 한다. 가변 자본인 임금을 제외하면, 모든 산업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원료와 보조 재료다. 특히 광업이나 채취 산업처럼 진정한 의미의 원료가 투입되지 않는 분야에서는 보조 재료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상품 가격 중 기계의 마멸분을 보충하는 부분은 기계가 가동되는 동안 관념적인 계산상의 수치로 존재한다. 해당 부분은 자본의 회전 기간 중 어느 시점에든 화폐로 전환되어 보상되면 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료는 상황이 다르다. 원료 가격이 급격히 등귀할 경우, 상품 가치에서 임금을 공제한 잔여분만으로는 원료의 완전한 보충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러한 격심한 가격 변동은 재생산 과정의 중단이나 심각한 혼란, 나아가 파국적 상황까지 일으킨다. 특히 유기적 자연에서 유래하는 농산물 원료는 수확량의 변동 등으로 인해 가치 변동에 가장 취약하다. 기후 조건과 같은 통제 불능의 자연적 사정으로 인해 동일한 노동량이 투여되더라도 생산되는 사용 가치의 양이 크게 달라지며, 그 결과 사용 가치 단위당 가격은 극심한 편차를 보이게 된다.
가치 x가 100단위의 a 상품으로 표현될 때의 단위당 가격은 x/100이나, 동일한 가치 x가 1,000단위로 표현된다면 가격은 x/1,000이 된다. 이는 원료 가격 변동을 유발하는 일차적 요인이다. 두 번째 요인은 유기적 원료 생산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식물성 및 동물성 원료는 자연적 성장 주기를 포함한 유기적 법칙의 지배를 받으므로, 자연 조건이 일정하다면 단기간에 증산되는 기계, 석탄, 광석 등과는 달리 공급 확대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고도화될수록 기계 등 고정 자본의 팽창 속도가 유기적 원료의 생산 속도를 앞지르게 되며, 이는 원료 수요의 급증과 가격 등귀를 필연적으로 일으킨다.
이러한 가격 등귀는 다음과 같은 연쇄적 변화를 초래한다. 1) 원료 가격의 상승이 수송비 부담을 상쇄함에 따라 공급원이 원거리 지역까지 확대된다. 2) 원료 생산의 유인이 강화되나, 생산 주기의 특성상 실질적인 공급량 증가는 최소 1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3) 기존에는 제외되었던 대용품이 도입되며 폐기물의 경제적 재이용 방안이 강구된다. 가격 상승이 생산 확대와 공급량 증대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무렵에는 대개 시장의 전환점에 도달한다. 곧, 원료 및 관련 상품 가격의 장기 상승으로 인해 수요가 감퇴하기 시작하고, 이것이 다시 원료 가격을 압박하는 반작용의 지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료 가격 하락이 자본의 가치 저락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혼란을 제외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사정들이 추가로 나타난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고도화됨에 따라 기계 등 고정 자본을 급속하고 지속적으로 확충할 수 있는 역량이 강화되고, 번영기의 축적이 가속화될수록 기계 및 고정 자본의 상대적 과잉 생산은 심화된다. 이로 인해 식물성·동물성 원료의 상대적 과소 생산 현상이 빈번해지며, 원료 가격의 급등과 그에 따른 하락 반작용은 더욱 격렬해진다. 결과적으로 재생산 과정의 핵심 요소인 원료의 가격 변동에서 기인하는 경제적 혼란 역시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원료 가격의 등귀가 수요 감퇴와 생산 확대를 유발하고, 종래에 의존하지 않던 원거리 지역으로부터의 수입을 촉진하여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게 되면 가격의 폭락이 뒤따른다. 이러한 가치 폭락의 결과는 여러 관점에서 고찰할 수 있다. 먼저 원료 가격의 갑작스러운 폭락은 원료의 재생산을 위축시키며, 그 결과 가장 유리한 조건에서 생산을 수행하는 기존 공급국들의 독점적 지위가 다소 제약은 있을지언정 다시 회복된다.
한편, 자극을 받은 원료의 재생산은 특히 생산을 독점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확대된 규모로 진행된다. 기계류의 증대와 수차례의 가격 상승을 거치며 원료 생산의 토대는 이전의 회전 순환 결과보다 크게 확장되어 표준적 토대를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급격히 확장되었던 이차적인 원료 공급지들의 재생산은 다시금 현저한 위축을 겪게 된다.
수출 통계에 따르면 1865년까지의 30여 년 동안 인도의 면화 생산은 미국의 생산량이 감소할 때마다 증가했으나, 그 이후에는 장기간에 걸쳐 감퇴하는 양상을 보였다. 원료 가격이 급등하는 시기에 산업 자본가들은 생산을 조절하고자 연합체를 결성하기도 한다. 1848년 면화 가격 등귀 당시 맨체스터의 사례나 아일랜드의 아마 생산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위기가 사라지고 ‘가장 저렴한 시장에서 구매한다.’는 경쟁 일반 원칙이 다시금 절대적으로 지배하게 되자마자, 공급의 규제는 다시 ‘가격’ 기구의 손으로 넘어간다. 본래 이러한 연합체들은 특정 원산지의 일시적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그 생산 능력을 장기적으로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원료 생산을 공동으로, 포괄적으로, 또한 장기적으로 통제한다는 사상은 사실상 자본주의적 생산 법칙과 근본적으로 모순된다. 따라서 이러한 시도는 언제나 헛된 희망 사항에 머물거나, 기껏해야 직접적인 파국에 직면했을 때 예외적으로 취해지는 공동 조치에 한정될 뿐이다. 결국 원료의 수급 통제권은 다시 수요와 공급이 스스로를 조절할 것이라는 시장의 신념에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원료 수급에 관한 자본가의 미신적 신념은 매우 완고하여 공장 감독관들조차 보고서로부터 수차례 경악을 표할 정도다. 풍작과 흉작의 교차는 주기적으로 저렴한 원료를 공급하며, 이는 수요 확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이윤율 상승 효과로부터 수요를 더욱 자극한다. 그 결과 기계류의 생산 속도가 원료 생산을 다시금 압도하는 과정이 이전보다 거대한 규모로 반복된다.
원료 생산이 양적 충족만이 아니라 질적 개선 (예: 인도의 면화가 미국산 수준의 품질에 도달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지 생산자의 경제적 조건을 무시하더라도 유럽의 수요가 장기간 규칙적이고 지속적으로 증가해야만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하에서 원료 생산은 발작적으로 급격히 확대되었다가 다시 급격히 축소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은 1861년부터 1865년 사이 미국 남북 전쟁으로 인한 ‘면화 기근’ 시기에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재생산의 필수 요소인 원료가 일시적으로 극심한 부족 상태에 빠졌는데, 이는 공급이 충분하더라도 열등한 생산 조건으로 인해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와는 다른 현실적인 원료 결핍 상황이었다. 북부군이 남부 항구를 봉쇄하면서 면화의 유럽 수출이 완전히 차단되었고, 이로 인해 유례없는 면화 공황이 발생하였다.
생산의 역사에서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유기적 자연이 공급하는 원료의 상대적 가격 등귀와 그에 따른 가치 저락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현상이 주요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더욱 규칙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논의의 타당성은 공장 감독관의 보고서에서 인용한 다음과 같은 실례로부터 구체적으로 입증된다.
역사의 교훈과 농업에 관한 제반 분석이 시사하는 바는 자본주의 체제가 합리적 농업의 실현을 가로막는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농업의 기술적 발전을 촉진하는 측면이 있으나, 근본적으로 합리적 농업은 자본주의 체제와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합리적 농업은 자기 노동에 기반한 소농 형태를 필요로 하거나, 또는 연합한 생산자들로부터 집단적 통제를 요구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영국 공장 감독관의 보고서에 수록된 증언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사업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그러나 기계 설비가 확충됨에 따라 호황과 불황의 주기는 점차 단축되고 있으며, 원료 수요의 증대로 인해 경기 전환의 빈도는 더욱 잦아지고 있다. 1857년 공황 이후 상실되었던 신뢰는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황의 기억조차 거의 망각된 듯 보인다. 이러한 경기 개선의 지속 여부는 원료 가격에 크게 달려있다. 이미 원료 가격이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는데, 이 임계치를 넘어서면 생산의 수익성은 점차 악화되어 결국 이윤을 전혀 창출하지 못하는 지점에 이를 것이다. 소모사 공업이 번영했던 1849년과 1850년의 사례를 보면, 영국산 소모용 양털은 파운드당 13펜스, 호주산은 14-17펜스에 거래되었다. 또한 1841년부터 1850년까지 10년간의 평균 가격은 영국산이 14펜스, 호주산이 17펜스를 상회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공황이 발생한 1857년 초 호주산 양모 가격은 23펜스에 달했으나, 공황이 정점에 이른 12월에는 18펜스로 하락했다가 1858년 중 점진적으로 상승하여 현재는 21펜스에 이르렀다. 영국산 양모 또한 1857년 초 20펜스에서 시작해 4월과 9월에는 21펜스까지 상승했으나, 1858년 1월에는 14펜스로 급락한 뒤 현재는 17펜스까지 반등했다. 이 가격은 앞서 언급한 10개년 평균치보다 파운드당 3펜스가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현상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비슷한 가격 수준이 초래했던 1857년의 파산 사례들을 망각했거나, 현존하는 방추 설비가 소비할 수 있는 양만큼만 양모가 생산되고 있거나, 또는 모직물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추와 직기의 수 및 가동 속도가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프랑스로의 양모 수출 또한 급증하는 상황에서, 농업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가축의 조속한 화폐화로 인해 양의 평균 연령마저 낮아지고 있다. 유기적 법칙에 따라서만 증산할 수 있는 생산물에 사업의 성패를 온전히 걸고 기술과 자본을 투입하는 작금의 행태는 심각한 불안을 자아낸다. 원료의 수급 불일치는 면공업의 빈번한 경기 변동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1857년 가을 영국 양모 시장의 상황과 그에 뒤따른 상업 공황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58년 10월 31일』: 56-61에 있는 베이커의 보고].
요크셔 웨스트 라이딩 소모사 공업의 전성기는 1849년에서 1850년 사이에 형성되었다. 이 시기 취업자 수는 1838년 29,246명에서 1843년 37,060명, 1845년 48,097명을 거쳐 1850년 74,891명으로 급증하였다. 동시에 역직기의 수 또한 1838년 2,768대에서 1841년 11,458대, 1843년 16,870대, 1845년 19,121대로 늘어났으며, 1850년에는 29,539대에 도달하며 폭발적인 확장세를 기록하였다.
[『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50년 10월 31일』: 60].
이러한 번영은 1850년 10월에 이르러 이미 쇠퇴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1851년 4월 보고서에서 부감독관 베이커는 리즈와 브래드포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경기는 얼마 전부터 매우 침체된 상태다. 소모사 방적업자들은 1850년에 거두었던 이윤을 급격히 상실하고 있으며, 직물업자들의 상황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수의 양모 가공 기계가 가동을 멈추었으며, 아마 방적업자들 역시 노동자 해고와 기계 정지를 단행하고 있다. 섬유 공업의 경기 순환은 극도로 불안정하며, 조만간 우리는 방추의 생산 능력과 원료 공급량, 그리고 인구 성장 사이에는 그 어떠한 비례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51년 4월 30일』: 52].
면공업도 마찬가지다. 1858년 10월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공장 노동 시간이 고정된 이후, 모든 섬유 공업에서 원료 소비액, 생산액, 임금 사이의 상관관계는 명확한 비례식으로 단순화되었다. 블랙번 시장 베인즈가 최근 면공업에 관해 행한 강연 내용을 인용하자면, 그는 자신의 지역 통계를 바탕으로 이 비례 관계를 매우 정확하게 요약하고 있다. 1실마력은 (제Ⅰ권 제15장 2절 주 25 참조)은 전방기가 부착된 450개의 자동 방추, 또는 200개의 스로슬 방추, 또는 실을 감고 뒤틀고 풀칠하는 부속 기계가 포함된 40인치 직물용 직기 15대를 가동할 수 있다. 또한 1마력당 방적 공정에서는 2.5명의 노동자를, 직포 공정에서는 1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며 이들의 평균 주급은 1인당 10실링 6펜스다. 생산되는 평균 번수는 날실용 30-32번, 씨실용 34-36번이다. 방추당 매주 생산되는 방사량을 13온스로 전제할 때, 주당 총 824,700파운드 (Ibs)의 방사가 생산되며 이를 위해 약 970,000파운드 (2,300꾸러미)의 면화가 소비된다. 블랙번을 중심으로 반경 5마일 이내 지역의 주당 면화 소비량은 1,530,000파운드 (3,650꾸러미)에 달하며 그 가치는 44,625파운드이다. 이는 영국 전체 면방적업의 1/18이고, 기계 직포업 전체의 1/6을 차지하는 규모다.’
‘베인즈의 계산에 따르면 영국 전체의 면방추 총수는 2,880만 개에 달하며, 이 설비들이 상시 가동된다고 전제할 경우 연간 면화 소비량은 1,4억 3,208만 파운드 (Ibs)로 추산된다. 그러나 실제 면화 수입량에서 수출량을 제한 소비량은 1856년과 1857년 기준 10억 2,257만 6,832파운드에 불과했으므로, 약 4억 950만 파운드의 공급 부족이 발생한다. 이와 관련하여 베인즈는 블랙번 지역의 통계에 근거한 연간 소비량 추계가 방적 번수의 차이나 기계 효율의 격차로 인해 다소 과대평가되었을 수 있다고 제기했다. 그의 추계에 따르면 영국의 실질적인 연간 면화 소비량은 약 10억 파운드다. 이 수치가 정확하여 실제로 약 2,257만 파운드의 공급 초과가 존재한다면, 시장의 수요와 공급은 거의 안정 상태에 도달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베인즈가 언급한 블랙번 및 여타 지역에서 가동을 준비 중인 새로운 방추와 직기 등의 추가 설비는 고려 대상에 제외된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58년 10월 31일』: 59, 60, 61].
Ⅲ. 일반적 예증: 1861-1865년의 면화 공황
준비의 시기: 1845-1860
1845년은 면화 가격의 기록적인 저락에 힘입어 면공업이 전례 없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당시 공장 감독관 호너는 10월 보고서로부터 지난 8년 중 가장 활발한 경기 양상이 전개되었음을 기록하며, 특히 면방적업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당시의 호황은 실질적인 자본 투하의 비약적인 증대로 이어졌다. 구체적으로는 대규모 자본 투입으로부터 신규 공상의 건설뿐만 아니라, 장기간 가동이 중단되었던 유휴 설비들이 새로운 임차인을 맞이하며 재가동에 들어가는 양상을 보였다. 또한 기존 공장 내에서는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마력의 증기 기관으로 교체하는 설비 고도화가 단행되었으며, 이에 대응하는 작업기의 증설이 병행되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45년 10월 31일』: 13].
1846년, 면공업계에는 사업 부진에 대한 불만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공장 감독관 호너의 보고에 따르면, 당시 다수의 공장이 조업 시간을 기존 12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하는 등 경기 침체의 징후가 뚜렷해졌다.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원료 가격의 급등과 제품 가격의 하락이라는 이중고에 있었다. 지난 4년간 면방적 공장이 급증함에 따라 원료 수요와 제품 공급이 동시에 확대되었으나, 실제 시장 상황은 이와 상반되게 전개되었다. 면화 공급은 오히려 부족해진 반면, 국내외 시장의 제품 수요는 감퇴하면서 이윤폭이 급격히 축소된 것이다. 결국 설비 확장에 따른 생산 능력의 증대는 원료 수급의 불일치와 맞물려 자본의 수익성을 심각하게 압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46년 10월 31일』: 100].
원료에 대한 수요 증대는 필연적으로 완제품의 공급 과잉을 동반한다. 당시의 산업 확장과 뒤이은 침체는 비단 면공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소모사 공업의 중심지 브래드포드의 경우, 공장 수가 1836년 318개에서 1846년 490개로 급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생산의 실질적인 증가폭을 온전히 나타내지 못하는데, 이는 기존 공장들 역시 대대적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 방적업에서도 해당된다.
‘지난 10년간의 모든 요인이 시장의 과잉 공급에 기여하였으며, 당면한 경기 침체의 주된 원인 또한 여기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곧, 경기 침체는 공장과 기계 설비의 급속한 증설로부터 초래된 필연적인 결과로 해석된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46년 10월 31일』: 30].
1847년 10월, 잉글랜드 은행의 할인율이 8%에 달하며 화폐 공황이 본격화되었다. 철도 및 동인도 융통 어음 투기는 이미 붕괴했으나, 실물 경제의 위기는 더욱 깊은 구조적 원인을 내포하고 있었다.
‘베어커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단행된 면·양모·아마 공업의 대대적인 확장이 원료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대시켰다. 이러한 수요 급증이 원료 공급의 감소기와 맞물린 사실은 화폐적 혼란을 배제하더라도 당시 공업계의 부진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해당 산업들은 할인율이 5% 이하로 낮았던 시기에도 이미 심각한 침체 상태에 놓여 있었다. 반면, 풍부한 공급과 적정한 가격을 유지하며 활기를 띠던 견직업은 최근 발생한 화폐 공황의 여파로 공장주뿐 아니라 주요 고객인 유행품 제조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으며 급격히 위축되었다.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면공업은 최근 3년간 약 27% 확장되었으며, 그 결과 면화 가격이 파운드당 4펜스에서 6펜스로 급등한 반면, 꼰실 가격은 공급 과잉으로 인해 종전 수준을 소폭 상회하는 데 그쳤다. 양모 공업 역시 1836년 이후 요크셔에서 40%, 스코틀랜드에서 그 이상의 확장을 기록했으며, 소모사 공업은 같은 기간 74%라는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원모 소비를 가속화했다. 아마 공업 또한 1839년 이래 잉글랜드 25%, 스코틀랜드 22%, 아일랜드 90% 전역에서 급격히 팽창했다. 이러한 설비 확장은 아마 흉작과 맞물려 원료 가격을 톤당 10파운드 인상시킨 반면, 아마사 가격은 묶음당 6펜스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47년 10월 31일』: 30-31].
1849년, 경기는 1848년 말엽부터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다시 아마 가격은 장래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당한 이윤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였으며, 이에 힘입어 공장주들은 안정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수 있었다.
‘아마 공업 역시 연초에 일시적인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공장 감독관은 양모 제품의 위탁 판매가 실제 수요를 대체하고 있다는 점과, 완전 조업이 반드시 진정한 수요의 증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외관상의 번영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한편, 소모사 공업은 수개월 동안 상당한 호황을 구가하였다. 해당 기간 초입에 양모 가격이 극히 낮게 형성되자 방적업자들은 선제적으로 대량의 원료를 확보하였다. 이후 봄철 경매에서 양모 가격이 등귀함에 따라 저가에 확보한 원료는 시세 차익으로 이어졌으며, 제품에 대한 견고한 수요가 뒷받침되면서 확보된 이윤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49년 4월 30일』: 42].
‘최근 3-4년간 공업 지대에서 전개된 급격한 경기 변동의 기저에는 구조적인 교란 원인이 존재한다고 판단된다. 특히 비약적으로 증대된 기계 설비의 거대한 생산력은 이러한 경기 교란의 핵심적인 새로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49년 4월 30일』: 42, 43].
1848년 11월부터 1849년 5월, 그리고 같은 해 여름에서 10월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의 사업 활동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브래드포드와 핼리팩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소모사 직물업은 유례없는 규모로 팽창하며 극도의 활기를 띠었다. 반면, 면공업은 원면 투기와 향후 공급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타 산업보다 심각한 혼란과 빈번한 경기 변동에 직면하였다. 특히 저급 면제품의 재고가 누적되면서 대규모 방적업자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확산되었고, 실질적인 손실이 발생함에 따라 일부 공장에서는 조업 단축이 단행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특정 부문의 외관상 번영 속에서도 원료 수급의 불안정과 과잉 생산에 따른 재고 문제는 산업 자본의 안정적 재생산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49년 10월 31일』: 64-65].
1850년 4월, 산업 전반의 호황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특정 부문에서는 예외적인 위기 징후가 포착되었다.
‘특히 굵은 번수의 면사 방적이나 거친 면제품 제조에 투입되는 원료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면공업의 일부 분과에서는 심각한 대불황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소모사 공업 부문에서도 비슷한 반작용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되었다. 베이커의 계산에 따르면, 1849년 한 해 동안 소모사 직기로부터 생산물은 40%, 방추로부터 생산물은 25-30% 급증하였으며, 설비 증설은 여전히 동일한 속도로 진행 중이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50년 4월 30일』: 54].
결국 기계 설비의 폭발적인 증가에 따른 생산력의 급등은 원료 수급의 한계를 초과하면서, 호황의 이면에서 생산 가동 중단이나 이윤율 저하를 초래하는 구조적 모순을 심화시키고 있었다.
1850년 10월.
‘원료 가격의 고공 행진은 관련 산업 전반에 심각한 불황을 일으켰다. 특히 면화 가격의 등귀는 원료비가 생산 원가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부문에서 더욱 현격한 타격을 입혔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50년 10월 31일』: 14].
보고서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왕립 아마 재배 촉진 협회는 시장의 가격 신호를 바탕으로 향후 생산량의 급증을 전망하였다. 당시 아마 가격은 고공 행진을 이어간 반면, 기타 농산물의 가격은 저조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에, 상대적 수익성이 높은 아마로 재배 역량이 집중될 것으로 분석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50년 10월 31일』: 33].
1853년 4월, 산업 전반은 극도의 호황 국면에 진입하였다. 공장 감독관 호너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랭커셔 공업 지역을 관할해 온 지난 17년 중에서 이와 같은 전면적인 호황은 유례가 없었다. 모든 산업 부문에서 생산 활동은 매우 활발하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53년 4월 30일』: 19].
1853년 10월, 극도에 달했던 호황은 꺾이고 면공업은 다시금 불황 국면으로 진입하였다.
‘과잉 생산.’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53년 10월 31일』: 15].
1854년 4월.
‘양모 공업은 비록 활항은 아니었으나 관련 공장의 완전 가동을 유지하였으며, 면공장 역시 이와 비슷한 상태를 보였다. 반면 소모사 공업은 최근 반년 동안 불확실한 경기 전망과 수익성 악화로 인해 전반적으로 침체된 양상을 나타냈다. 한편, 아마 및 대마 공업은 크림 전쟁의 발발로 인해 주요 공급원인 러시아로부터의 원료 수급이 차단됨에 따라 심각한 생산 차질에 직면하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54년 4월 30일』: 37].
1859년.
‘스코틀랜드의 아마 공업은 원료 부족과 가격 고등으로 인해 여전히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주요 공급처인 발트해 연안국들의 작황 부진과 품질 저하는 해당 산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원료난 속에서 기존의 아마를 점진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한 황마는 비교적 안정적인 가격과 공급량을 유지했다. 그 결과 던디 지역 방적 설비의 약 절반이 황마 생산으로 전환되는 등, 원료의 희소성이 생산 공정의 기술적 이행과 대체재로의 자본 이동을 가속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59년 4월 30일』: 19].
‘원료 가격의 고공 행진으로 인해 아마 방적업의 수익성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타 산업의 공장들이 완전 조업을 지속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아마 방적 설비가 가동을 멈춘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반면, 황마 방적업은 최근 원료 가격이 매우 낮은 수준으로 하락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태에 진입하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59년 10월 31일』: 20].
1861-1864. 미국의 남북 전쟁. 면화 기근. 원료 부족과 가격 등귀가 생산 과정을 중단시킨 최대의 실례
1860년 4월.
‘당시 견직업을 제외한 모든 섬유 산업은 원료 가격의 상승세 속에서도 전반적인 활황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일부 면공업 지대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인해 노포크 등지의 농촌 인구까지 대거 유입되는 등 노동 수요가 정점에 달해 있었다. 당시 산업 전반의 유일한 제약 요인은 원료의 절대적 부족이었다. 면공업 부문에서는 새로운 공장의 건설과 기존 설비의 확장, 그리고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유례없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으며, 모든 자본이 원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0년 4월 30일』: 57].
1860년 10월.
‘면공업과 양모 및 아마 공업 지역의 경기는 전반적으로 호조를 띠었다. 특히 아일랜드의 경우 1년 이상 매우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였다는 보고가 잇따랐다. 다만 높은 원료 가격이 경제적 성과를 일정 부분 제약하였으며, 원료 가격이 안정적이었다면 더욱 비약적인 호황을 누렸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마 방적업자들은 원료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망 확장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그들은 인도 철도망의 개방과 인도 농업의 발전으로부터 자국 공업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아마가 공급되기를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고대하고 있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0년 10월 31일』: 37].
1861년 4월.
‘산업 경기는 본격적인 불황 국면에 진입하였다. 상당수의 면공장이 조업을 단축하기 시작하였으며, 비단 공장들 역시 부분 가동에 머무는 등 생산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위기의 근본 원인은 원료 가격의 과도한 상승에 있었다. 섬유 공업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원료 시세는 일반 소비자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최종 제품 가격의 임계치를 넘어선 상태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1년 4월 30일』: 33].
1860년 면공업의 과잉 생산은 분명한 사실로 드러났으며, 그 여파는 이후 수년간 산업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세계 시장에서 1860년에 발생한 과잉 생산 물량을 완전히 흡수하는 데 2-3년이 걸렸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127].
‘1860년 초 동양 시장에서 발생한 면제품 불황은 블랙번 지역의 경기에 즉각적인 타격을 입혔다. 당시 블랙번은 약 30,000대의 역직기를 동양 수출용 직물 생산에 전적으로 투입하고 있었기에 그 영향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 남북 전쟁으로 면화 봉쇄의 여파가 본격화되기 수개월 전부터 이미 노동 수요는 급격히 위축된 상태였다. 이러한 사전 불황은 다수의 방적업자와 직포업자들에게 파산을 면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면화 기근으로 인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재고의 가치가 상승하였고, 결과적으로 공황 상황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자산 가치 하락을 방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2년 10월 31일』: 29, 31].
1861년 10월.
‘산업 경기는 이미 심각한 불황 국면에 처해 있었다. 다가올 겨울 동안 많은 공장이 조업을 대폭 단축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된 사태였다. 미국산 면화의 수급 불일치와 수출 중단이라는 외부적 요인이 없더라도, 최근 3년간 단행된 방대한 생산 설비의 증설과 인도·중국 시장의 불안정한 상태는 이미 조업 단축을 피할 수 없는 필연적 결과로 만들고 있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1년 10월 31일』: 19].
낙면. 동인도산 면화(수라트). 임금에 미치는 영향. 기계의 개량. 풀과 광물로부터 면화의 대체. 이 풀칠이 노동자에 미치는 영향. 굵지 않은 번수 방사의 방적업자. 공장주의 기만
‘낙면과 동인도산 수라트 면화의 사용, 기계 개량 및 풀과 광물질을 이용한 원료 대체는 노동자의 임금과 작업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면화 가격의 등귀는 방적업자들로 하여금 원료 소비를 줄이기 위해 기존보다 가느다란 번수의 실을 뽑아내도록 유도하였다. 예컨대 12번수 대신 16번수를, 16번수 대신 22번수를 방적하는 방식으로 단위당 면화 사용량을 최소화한 것이다. 이러한 공정 변화는 직물업 단계에서 수치스러운 기만 행위로 이어졌다. 가늘어진 실로 인해 가벼워진 면포의 무게를 보전하기 위해 과도한 양의 풀을 먹이는 수법이 폭넓게 동원되었다. 조사에 따르면 8파운드 무게의 수출용 셔츠천 한 필이 단 5.25파운드의 면화와 2.75파운드의 풀로 구성되는 사례가 빈번하였으며, 일부 직물에서는 풀의 비중이 50%에 육박하였다. 결국 공장주들은 완제품을 파운드당 원료 가격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면서도, 실제로는 면화 대신 투입된 저렴한 풀과 광물질로부터 막대한 부당 이익을 취하였다. 이러한 원료의 대체와 기만적 가공은 제품의 질 저하뿐만 아니라 작업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고통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4년 4월 30일』: 27].
‘직포공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 사이에서 급증하는 질병의 주요 원인은 날실에 사용되는 특수한 풀인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동인도산 수라트 면화의 날실에 적용되는 이 물질은 과거에 사용하던 곡물 가루가 아닌 화합물 대용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대용품은 15파운드의 방사를 20파운드 분량의 직물로 불려낼 수 있을 만큼 제품의 무게를 인위적으로 증폭시키는 경제적 이점을 지닌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5년 10월 31일』: 63].
이른바 ‘차이나 클레이’로 불리는 분말활석이나, ‘프렌치 초크’라 불리는 석고가 곡물 가루를 대신하여 날실용 풀로 사용되었다.
‘저급 대용품의 도입은 직포공의 실질 수입을 급격히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해당 물질은 방사의 무게를 늘리는 데는 효과적이었으나, 실을 지나치게 뻣뻣하고 부서지기 쉬운 상태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뻣뻣하게 풀칠 된 날실은 직기에서 실의 위치를 고정하는 경통의 실올을 수시로 절단시켰다. 실이 끊어질 때마다 이를 다시 잇는 작업에 약 5분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직포공들은 과거보다 최소 10배 이상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 결속 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결과적으로 노동 시간 내 직기의 실질 생산 능력은 현저히 저하되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5년 10월 31일』: 42-43].
‘애슈튼, 스탤리브리지, 모슬리, 올댐 등 주요 공업 지대에서는 노동 시간이 1/3가량 전격적으로 단축되었으며, 이러한 추세는 매주 심화되고 있다. 노동 시간의 급격한 축소와 병행하여 대다수 산업 분야에서는 실질 임금의 삭감까지 단행되는 실정이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1년 10월 31일』: 12-13].
1861년 초 랭커셔 일부 지역에서 기계 직물공들의 파업이 발생하였다. 이는 공장주들이 선포한 5-7.5%의 임금 인하 조치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되었으며, 직물공들은 임금률을 보존하는 대신 노동 시간을 단축할 것을 요구하며 맞섰다. 그러나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은 채 한 달여 만에 노동자 측이 패배를 인정함에 따라 이들의 처지는 더욱 악화되었다.
‘노동자들은 마침내 동의한 임금 인하 이외에도 많은 공장들은 지금 조업을 단축하고 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1년 4월 30일』: 23].
1862년 4월.
‘지난 보고 시점 이후 노동자 계급이 직면한 생활상의 고통은 한층 가중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급격하고 가혹한 빈곤의 전개에도, 노동자들이 보여준 침묵에 찬 체념과 인내심 있는 자제력은 공업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일이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2년 4월 30일』: 10].
‘1862년 5월 현재, 완전 실업자의 비율 자체는 일반적인 공황기였던 1848년의 수준과 비교해 월등히 높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1848년 5월 당시 맨체스터 면업 노동자의 15%가 완전 실업, 12%가 조업 단축, 70%가 정규 시간 노동 상태였던 것과 비교하면, 1862년 5월 28일 기준으로는 완전 실업 15%, 조업 단축 35%, 정규 시간 노동 49%로 나타났다. 곧, 완전 실업률은 동일하나 조업 단축 노동자의 비중이 대폭 증가하여 실질적인 고용의 질이 악화되었다. 지역별 편차도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스토크포트와 같은 지역은 맨체스터에 비해 완전 실업 및 조업 단축의 비율이 월등히 높고 정규 노동 비율은 낮다. 이는 해당 지역이 원료 소비량이 많은 굵은 번수의 실을 주력으로 생산함에 따라, 면화 기근으로 인한 원료 수급 불일치의 타격을 더욱 직접적으로 입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2년 4월 30일』: 16].
1862년 10월.
‘당시 영국 내 면업 공장 2,887개 중 73%에 해당하는 2,109개가 랭커셔와 체셔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조사 결과, 해당 지역 공장들의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영세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전체 공장의 19%인 392개소는 동력이 10마력 이하였으며, 16%인 345개소는 10-20마력에 불과하였다. 곧, 20마력 이상의 동력을 갖춘 1,372개소를 제외한 상당수의 사업장이 소규모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러한 소규모 공장주 중 1/3 이상은 과거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축적된 자본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따라서 면화 기근으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불황의 충격은 자본력을 갖춘 나머지 2/3의 공장주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노출하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2년 10월 31일』: 18-19].
동일 보고서에 따르면, 랭커셔와 체셔 지역 면업 노동자 총수 중 정규 시간 노동자는 40,146명 (11.3%)에 불과한 반면, 134,767명 (38%)은 조업 단축 상태에 있었으며 179,721명 (50.7%)은 실업자로 전락해 있었다. 특히 면화 부족의 타격을 비교적 덜 받는 세번수(가느다란 실) 방적 중심지인 맨체스터와 볼튼의 수치를 제외할 경우, 고용 상황은 더욱 참혹한 양상을 띤다. 이들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권역의 완전 취업자는 8.5%로 급감하며, 불완전 취업자 38%, 실업자 53.5%라는 극단적인 고용 붕괴 현상이 나타난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2년 10월 31일』: 19-20].
‘원료 면화의 품질은 노동자의 실질 소득을 결정짓는 핵심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1862년 초, 공장주들은 생산 비용 절감을 위해 저가 면화를 무분별하게 도입하였으며, 이에 따라 양질의 원료를 취급하던 공장들에 저급 면화가 대거 유입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는 노동자의 임금 구조에 심각한 삭감을 초래하여 폭넓은 파업의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의 개수 임금제 하에서 노동자들은 불량한 원료로 인해 빈번해진 실 끊김과 기계 정지를 감당해야 했으며, 이는 작업 강도의 강화에도 실질 생산량의 급감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정규 노동 시간을 모두 채우더라도 저급 면화를 가공할 경우 수령하는 임금은 종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였다. 결과적으로 자본의 원료비 절감 전략은 노동자 계급에게 생계 불능 수준의 임금 삭감과 노동 조건 악화라는 이중의 수탈로 전가되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2년 10월 31일』: 27].
1863년 4월.
‘금년의 전망에 따르면, 당해 면업 노동자 중 정규 시간 동안 온전히 고용을 유지하는 완전 취업자의 비중은 전체의 1/2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할 것이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4월 30일』: 14].
‘동인도산 수라트 면화의 강제적 도입이 초래한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은 가공 공정 내 기계 가동 속도의 현저한 저하이다. 지난 수년간 기술 혁신으로 기계적 생산성을 극대화해 온 노력은 저급 원료의 물성 한계로 인해 무력화되었다. 이러한 속도의 감소는 단순히 공장주의 이윤 감소에 그치지 않고, 작업량에 비례하여 보상을 받는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실제로 방적공은 실의 중량에 따라, 직포공은 완성된 직물의 필 수에 따라 임금을 수령하므로, 기계 속도의 저하는 곧 실질 소득의 수직 하락을 의미한다. 주급제 노동자들 또한 생산 규모 축소에 따른 임금 삭감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863년의 조사와 증언을 종합하면, 1861년의 임금률을 기준으로 할 때 노동자들의 평균 수입은 약 20% 감소하였으며, 일부 공정에서는 최대 50%에 이르는 극단적인 소득 낙폭이 관측되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4월 30일』: 13].
‘1863년 10월 현재, 노동자들의 수입은 가공 원료의 성질에 따라 편차를 보이고 있으나, 기계 개량과 원료 처리 지식의 발전에 힘입어 초기 전례 없는 곤란을 겪던 작년 동기보다는 다소 개선된 양상을 띤다. 그러나 실질적인 소득 수준은 여전히 처참한 상태이다. 프레스튼의 실업자 재봉 학교로 돌아온 소녀들의 사례에서 보듯, 주 4실링의 수입을 기대하고 복귀한 공장에서 실제 벌어들인 금액은 1실링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실제 자동 직기 직공은 2주간의 정규 노동을 거쳐 8실링 11펜스를 수령하였으나, 여기서 집세를 공제하고 나면 남은 금액은 6실링 11펜스에 불과하였다. (얼마나 관대한가!) 이는 1862년 말 자동 직기 직공이 주 5-9실링, 일반 직포공이 2-6실링을 벌어들였던 것과 비교하여 수입의 급격한 축소를 의미한다. 이러한 소득 감소의 근본 원인은 동인도 면화 특유의 짧은 섬유 길이와 불순물, 그리고 여기에 다량의 낙면을 섞어 쓰는 관행에 있다. 섬유가 짧고 약한 원료는 방적 과정에서 실이 쉽게 끊어지게 하여 기계의 지속 운전을 방해하며, 직포공으로 하여금 극도의 주의를 요하게 하면서 1인당 담당 직기 수를 강제적으로 축소시켰다. 여기에 5%-10%에 달하는 직접적인 임금 삭감과 더불어, 불량한 원료로 양질의 직물을 생산하지 못할 경우 부과되는 가혹한 벌금 제도는 노동자의 실질 소득을 이중으로 수탈하는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41-43].
정규 시간 노동에도 임금 수준은 처참한 지경에 머물렀다. 면공업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지방 정부의 구호를 신청하는 한편, (이는 사실상 공장주에 대한 보조의 한 형태이었다. 제Ⅰ권 제23장: 782-784를 보라) 배수 공사, 도로 건설, 돌깨기, 도로 포장 등 각종 공공 사업에 자발적으로 투입되었다. 이는 사실상 공장주에 대한 간접적인 보조금 지급 형태와 다름없었다. 이 과정에서 유산 계급은 노동자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감시 체계를 구축하였다. 구호 위원회는 (CW 19: 239-242 참조.) 기아 임금 수준의 일자리를 거부하는 노동자를 명단에서 즉각 제외하면서, 이들이 굶주림을 선택하거나 자본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임금 조건을 수용하도록 강제하는 주구 역할을 수행하였다. 공장주들은 정부와의 밀약하에 노동자들의 국외 이주를 조직적으로 방해하였다. 이는 향후 경기가 호전될 때 투입할 살아있는 자본으로의 노동력을 보존함과 동시에, 노동자들로부터 징수하는 집세 수입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구호 위원회의 엄격한 운영 원칙에 따라, 일자리를 제의받은 노동자는 그 임금액이 사실상 명목에 불과하고 노동 강도가 살인적일지라도 이를 거부할 권리가 박탈되었다. 제의 거부는 곧 구호 중단과 아사를 의미하였기에, 노동자들은 유산 계급의 이익을 위해 고착화된 가혹한 노동 조건 속으로 포섭될 수밖에 없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97].
면공업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공공 사업법에 따른 그 어떠한 작업에도 투입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근로 작업의 조직 원칙은 도시마다 상이하였으나, 옥외 노동이 일반적인 고용 형태가 아니었던 지역에서조차 해당 노동이 사실상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는 옥외 노동에 대해 규정된 구호금 또는 그에 준하는 최저 수준의 임금이 지불됨에 따라, 공공 사업이 실업 노동자들을 수용하는 거대한 저임금 노동 시장으로 기능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공공 사업법은 위기 시기에 노동력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핵심적인 통제 기제로 작용하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69].
‘1863년의 공공 사업법은 실업 상태의 노동자를 단순 수혜자가 아닌 독립적인 임금 노동자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폐단을 시정하고자 하였다. 이 법은 세 가지 핵심 목적을 지향한다. 첫째, 지방 정부가 중앙 구호 위원장의 승인을 거쳐 재무부 대출 담당관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하는 것이다. 둘째, 면업 중심 도시들의 기반 시설 및 도시 개량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셋째, 실업 노동장들에게 적절한 일터와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보장하여 이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었다.’
이러한 정책적 기반 하에 1863년 10월 말까지 총 883,700파운드의 대출이 승인되었으며, 이는 면화 기근으로 붕괴된 지역 경제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려는 국가적 수준의 개입이 본격화되었음을 입증한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70].
공공 사업법에 따라 추진된 주요 사업은 운하 및 도로 건설, 도로 포장, 저수지 건설 등이었다.
블랙번 구호 위원장 핸더슨의 증언에 따르면, 공장 감독관 레드그레이브에게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실업 상태의 면업 노동자들이 이 가혹한 옥외 노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극명한 대조와 비극적 실상이 나타난다. 섬세한 기교와 정확성을 요하는 공장 내부 작업에 익숙했던 면방적공들이 14-18피트 깊이의 하수도 굴착 작업에 투입되는 광경은 공업 역사상 유례없는 대조를 이루었다. 당시 시 당국은 이중적인 수탈 구조로부터 이익을 취하였다. 저리 대출을 활용하여 낙후된 도시 기반 시설을 개량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가족 수에 따라 주 4-12실링이라는 기아 임금을 지급하였다. 특히 12실링이라는 최대 지급액조차 8인 가족의 생계를 지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음에도, 시청 측은 이를 정당한 대가인 양 포장하였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상태와 저임금,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중노동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공공사업을 수용하였다. 이들은 10-20인치 높이의 진흙과 물속에 발을 담금 채 차가운 습기를 견디며 하수도와 배수관을 파 내려가는 등 극한의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였다. 본래 보수의 1/3 수준에 불과한 임금을 감수하면서까지 옥외 노동에 투신한 이들의 행보에는, 유산 계급의 위선적 구제 정책 이면에 숨겨진 노동자 계급의 비극적인 자기희생과 생존을 향한 처절한 사투가 내포되어 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91-92].
‘옥외 노동을 수용하고 이를 완수하려는 노동자들의 태도는 거의 비난할 여지가 없을 만큼 헌신적이었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69].
1864년 4월.
‘여러 지방에서 직포업 등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노동력 부족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 가용 노동 인구의 절대적 부족이라기보다, 저급 방사 가공으로 인한 실질 임금 하락이 노동자들의 이탈을 부추긴 결과로 분석된다. 임금을 둘러싼 공장주와 노동자 간의 분쟁과 파업이 빈번해지는 가운데, 공장주들은 공공사업법에 따른 일자리 제공을 자사의 인력 수급을 방해하는 유해한 경쟁 관계로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바컵 지역의 구호 위원회는 공장이 완전 가동되지 않음에도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활동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4년 4월 30일』: 9, 10].
결과적으로 공장주들이 누리던 일방적인 수탈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였다. 공공사업법의 시행으로 노동 수요가 창출되면서, 공장 노동자들이 바컵의 채석장 등지에서 하루 4-5실링의 임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직후 설치된 ‘국민 작업장’이 노동자 계급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면, 영국의 공공사업은 철저히 유산 계급의 이익을 위해 고안된 형태였다. 따라서 해당 사업이 더 이상 자본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고 오히려 저임금 노동력 유지에 걸림돌이 되자, 유산 계급으로 인해 점진적으로 폐기되는 수순을 밟게 되었다.
‘가치없는 물건’에 대한 실험
‘정규 시간 노동에도 노동자들의 실질 수입은 지극히 불안정한 양상을 보였다. 공장주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면화와 낙면의 배합 비율을 끊임없이 변경하며 실험을 지속함에 따라, 노동자의 수입은 원료의 질에 종속되어 극심하게 요동쳤다. 배합 상태에 따라 수입은 평시 대비 15%에서 많게는 50-60%까지 급격히 하락하며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였다.’
공장 감독관 레드그레이브가 제시한 실제 임금 자료는 이러한 참상을 구체적으로 증명한다.
A, 직포공, 가족 6명, 주 4일 노동, 6실링 8.5펜스;
B, 연사공, 주 4.5일 노동, 6실링;
C, 직포공, 가족 4명, 주 5일 노동, 5실링 1펜스;
D, 전방공, 가족 6명, 주4일 노동, 7실링 10펜스;
E, 직포공, 가족 7명, 주 3일 노동, 5실링, 등
레드 그레이브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노동으로 얻는 임금 총액이 가족 전체가 실직했을 때 지급되는 구호금보다 적은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그 차액을 보전해 주는 추가적 구호 조치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취업은 오히려 가계의 전체 수입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결국 당시의 노동은 가족의 최소한의 생존 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불충분한 수단으로 전락하였으며, 자본의 이윤 추구가 노동자의 근본적인 필요마저 철저히 외면했음을 시사한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50-53].
‘1863년 6월 5일 이후, 면업 노동자 전체의 주간 평균 노동 시간은 2일 7시간여의 범위를 단 한 차례도 상회하지 못하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121].
공황이 개시된 시점부터 1863년 3월 25일에 이르기까지 구빈 당국과 중앙 구호 위원회, 그리고 런던시 위원회로부터 집행된 구호 기금은 총 3백만 파운드 스털링에 달하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13].
‘원료 면화의 품종 교체와 혼합 사용은 노동자의 소득 구조를 더욱 심각하게 파괴하였다. 최세번수 (가장 가는 실) 방적 지역에서는 원료가 사우스 시 아일랜드산에서 이집트산으로 변경됨에 따라 약 15%의 간접적인 임금 삭감이 발생하였다. 또한 동인도 면화와 낙면을 혼합 사용하는 지역의 방적공들은 5%의 직접적인 임금 삭감 외에도, 조악한 원료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능률 저하로 인해 20-30%의 추가적인 소득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직포 공정에서의 타격은 더욱 가시적이었다. 노동자 1인당 담당 직기 수는 기존 4대에서 2대로 축소되었으며, 직기 1대당 평균 수익 역시 1860년 5실링 7펜스에서 1863년 3실링 4펜스로 급락하였다. 여기에 미국산 면화 사용 시 3-6펜스 수준이었던 벌금이 원료 불량에 따른 제품 결함을 이유로 1실링-3실링 6펜스까지 폭등하며 노동자의 실질 임금을 이중으로 압착하였다.’
이집트 면화와 동인도 면화가 혼합되는 지역의 뮬 방적공들 또한 극심한 임금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1860년 주당 18-25실링에 달하던 평균 임금은 1863년 10-18실링으로 하락하였다. 이러한 감소는 원료의 품질 저하뿐 아니라, 실의 강도를 확보하기 위해 기계 속도를 강제적으로 늦춘 데서 기인하였다. 평시라면 이러한 속도 저하에 따른 손실은 임금 보전의 대상이 되었으나, 공황기 자본은 이를 온전히 노동자의 부담으로 전가하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43-44].
‘동인도 면화의 도입은 공장주들에게 원가 절감의 기회를 제공하며 이익을 안겨주었으나, 노동자들에게는 1861년 대비 심각한 실질 소득의 손해를 초래하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53의 임금표를 보라].
‘동인도산 면화의 사용이 상시화될 경우, 노동자들은 공정상의 난이도와 노동 강도 증가에 상응하는 1861년 수준의 임금 보전을 강력히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원료가나 제품 가격에서 이러한 비용 상승분을 상쇄하지 못할 경우, 공장주는 심각한 이윤 감소에 직면하게 된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105].
집세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주거지가 공장주의 소유인 경우, 조업 단축 상황에서도 집세는 임금에서 우선적으로 공제되었다. 그러나 불황의 장기화로 인해 부동산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하였으며, 그 결과 평시보다 25-50%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차 계약이 이루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일례로 종전에 주당 3실링 6펜스에 달하던 주거 비용은 현재 2실링 4펜스 또는 그 이하의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57].
국외 이주
공장주들이 노동자의 국외 이주를 조직적으로 저지한 배경에는 철저한 자본 논리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로, 그들은 면공업이 불황을 극복하고 회복기에 접어들었을 때 공장을 가장 효율적으로 재가동하기 위한 필수 생산 수단으로 노동력을 보존하고자 하였다.’ 둘째로, ‘다수의 공장주가 노동자 거주 주택의 소유주로, 노동자들이 체납한 집세를 추후 임금에서 환수하려는 채권자적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장 감독관의 보고. 1863년 10월 31일』: 96].
오스본은 1864년 10월 22일 국회 의원 유권자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랭커셔의 노동자들은 고대의 철학자들 (스토아 학파)처럼 행동하였다고 말하였다. 양처럼 행동한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