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상대적 잉여 가치의 생산
15. 기계와 대공업
15-1. 기계의 발달
존 스튜어트 밀은『정치 경제학 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지금까지 기계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어느 누가 그날의 수고를 덜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의 수고를 덜어 준다는 일은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사용되는 기계의 목적이 결코 아니다. 기계는 노동 생산성을 발전시키는 다른 모든 수단과 마찬가지로 상품의 값을 낮추고,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신을 위해 필요한 부분을 단축시키며, 자본가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부분을 연장시킨다. 기계는 오직 잉여 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생산 방식의 변혁은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노동력에서, 대공업에서는 노동 수단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먼저 노동 수단이 어떻게 도구에서 기계로 전환되는지, 곧 기계와 수공업 도구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다만, 사회의 역사 시대가 지질 연대처럼 엄밀한 경계선으로 구분되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큰 일반적 특징에만 초점을 맞춘다.
수학자와 기계학자는 일부 영국 경제학자들이 재현하듯이, 도구는 단순한 기계이고, 기계는 복잡한 도구라고 설명하며,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본다. 심지어 지렛대, 경사면, 나사, 쐐기 같은 간단한 역학적 수단까지도 기계라고 부른다. 모든 기계가 그런 간단한 역학적 수단들로 구성되며, 그 결합 방식 때문에 겉으로 복잡해 보인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설명은 역사적 요소가 결여되어 아무 소용이 없다. 또 다른 견해는, 도구에서는 인간력이 동력이고, 기계에서는 동물, 물, 바람 같은 자연력이 동력이라는 점에서 둘의 차이를 찾는다. 이 논리대로라면, 여러 시대에 사용된 소가 끄는 쟁기는 기계에 해당하나, 노동자 한 명이 1분당 96,000개의 코를 짜내는 클라우센식 회전 기계는 단순한 도구로 전락한다.
게다가 같은 직기라도 손으로 운전되면 도구이고, 증기로 운전되면 기계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더욱이 동물의 힘을 이용하는 일은 인류의 가장 오랜 발명 중 하나이므로, 기계적 생산이 수공업적 생산보다 앞섰다는 결론에 이른다. 와이어트가 1735년 방적 기계를 공개하며 18세기 산업 혁명을 알릴 때, 그는 동력이 나귀 몫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이 기계를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방적하는’ 기계라고 불렀다.
완전히 발달한 기계는 본질적으로 동력기, 전동 장치, 도구 또는 작업기라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동력기는 전체 기계 장치의 힘을 공급한다. 동력기 중에는 증기 기관, 열기관, 전자기 기관처럼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도 있고, 물레방아의 낙수나 풍차의 바람처럼 외부의 기존 자연력으로부터 동력을 공급받는 것도 있다. 전동 장치는 속도 조절 바퀴, 축, 톱니바퀴 · 도르래, 피대, 밧줄(로프), 벨트, 작은 톱니바퀴 등 여러 부품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운동을 조절하고, 필요에 따라 운동의 형태를 변경하며(예: 수직 운동을 원 운동으로 전환), 운동을 작업기에 분배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기계 장치 중 동력기와 전동 장치는 오직 작업기를 구동시켜, 작업기가 노동 대상을 고정하고,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도록 기능한다. 기계 장치의 이 마지막 부분, 곧 작업기가 바로 18세기 산업 혁명의 출발점이었다. 현재에도 수공업적 생산이나 공장제 수공업적 생산이 기계제 생산으로 이행할 때는 언제나 이 작업기가 출발점이 된다.
진정한 작업기를 면밀히 살펴보면, 형태는 크게 달라졌으나 대체로 수공업자나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가 사용하던 장치와 도구와 동일하다. 다만 이것은 더 이상 인간의 도구가 아닌 기계 장치의 도구, 곧 기계적 도구이다. 역직기처럼 기계 전체가 이전 수공업적 도구에서 약간 변형된 기계적 복제이거나, (방적기의 북, 제재기의 톱 따위) 작업기 몸통에 부찪된 구성 부분들은 이미 이전부터 잘 알려진 것들이다. 이 도구들과 기계 몸통은 그 발생 초기부터 구별된다. 도구들은 대개 수공업적 또는 공장제 수공업적 방식으로 계속 생산되며, 그 후 (기계의 생산물인) 작업기 몸통에 맞게 부착된다. 그러므로 작업기는, 일단 가동되면 자체의 도구들을 가지고 (종전 노동자가 했던 것과)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는 기계 장치이다. 동력이 인간에게서 나오든, 기계에서 나오든 사태의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진정한 도구가 인간의 손을 떠나 기계 장치로 옮겨지면, 기계는 단순한 도구를 대체한다. 기계와 도구의 차이는 인간 여전히 원동력인 경우에도 즉시 드러난다. 인간이 한 번에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의 수는 결국, 자신의 자연적 생산 도구, 곧 팔다리와 같은 신체 기관 수로부터 제한된다.
독일에서는 초기에 방적공 한 명이 두 개의 물레를 동시에 돌리도록, 곧 두 손과 두 발로 동시에 작업하도록 시도했으나 너무 어려웠다. 이후 발로 움직이는 두 개의 북(방추)을 가진 물레가 발명되었으나, 두 올의 실을 동시에 뽑는 숙련된 방적공은 머리를 둘 가진 사람만큼이나 드물었다. 이와 달리, 다수의 북을 가진 제니(Jenny) 방적기는 처음부터 12개에서 18개의 북으로 방적하며, 양말 직조기는 단번에 수천 개의 바늘로 직조한다. 이처럼 하나의 작업기가 동시에 작동시키는 도구의 수는 애초부터 (수공업자의 도구가 벗어날 수 없던) 생리 기관으로부터의 제한성에서 해방된다.
많은 손도구에서 단순한 동력으로의 인간과 진정한 노동자로의 인간은 명확하게 구분된다. 예를 들어, 물레에서 발은 오직 동력으로만 작용하지만, 북에 붙어 작업하는 손은 실을 잡아뽑거나, 꼬는 실제 방적 작업을 수행한다. 산업 혁명은 먼저 수공업적 도구 중 바로 이 후자 부분(여기서는 북)에 주목하고, 동력이라는 순전히 기계적인 기능은 (기계를 감시하고, 오류를 시정하는 새로운 노동과 아울러) 여전히 인간에게 맡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연장 방아를 돌리거나, 펌프질, 풀무질, 절구질처럼 인간이 단순히 동력으로만 기능하는 경우에는, 동물, 물, 바람이 동력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도구들은 부분적으로는 공장제 수공업 시기에, 또 여러 지역에서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기계로 발전하고 있었으나, 생산 방식 자체를 변혁시키지는 못했다.
대공업 시기에 이르면, 이러한 도구들은 손도구 형태에서도 이미 기계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예를 들어, 1836년에서 1837년에 네덜란드 사람들이 할렘 호수의 물을 퍼내고자 사용한 펌프는 일반적인 펌프 원리로 제작되었으나, 그 나들통(피스톤)을 움직이는 일은 인간의 손이 아니라 거대한 증기 기관이었다. 영국에서 대장장이가 사용하던 매우 불완전한 풀무 역시 단순히 그 손잡이를 증기 기관에 연결하면서 송풍기로 전환시켰다.
17세기 말 공장제 수공업 시기에 발명되어, 1780년까지 존속한 증기 기관은 아무런 산업 혁명도 일으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작업기의 발명이 증기 기관의 혁명을 필연적으로 만들었다. 인간이 도구를 가지고 노동 대상에 작용하지 않고, 작업기의 단순한 동력이 되는 순간부터, 동력의 담당자가 인간의 근육이라는 사실은 우연적으로 되며, 바람, 물, 증기 따위가 인간을 대신했다. 물론 이로 인해, 원래 인간의 힘만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 기계 장치에 커다란 기술적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재봉기, 빵 제조기 등 앞으로 진로를 개척해 나가야 할 모든 기계는, 소규모 사용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현재 인간 동력과 순수한 기계적 동력 모두에 맞도록 제작되고 있다. 산업 혁명의 시초가 된 기계는 단 하나의 도구만을 다루던 노동자를 기계 장치로 대체한다. 이 기계 장치는 다수의 같은 도구나 같은 종류의 도구를 한꺼번에 사용하여 작업하며, 단 하나의 동력으로부터 가동된다. 이것은 기계이기는 하나, 아직은 기계제 생산의 단순한 요소로 존재한다.
작업기의 규모가 커지고, 작업 도구의 수가 늘어나면, 이를 가동할 더 큰 기계 장치가 요구된다. 이 기계 장치는 자체 저항력을 극복하고자 인간의 동력보다 더 강력한 힘을 필요로 한다(인간이 균일하고, 연속적인 운동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불완전한 도구임을 차지하더라도). 인간이 이미 단순한 동력으로만 작용하며, 작업기가 도구의 위치를 차지했다는 가정 하에, 이제 자연력이 동력으로 인간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공장제 수공업 시기부터 전해 내려온 모든 동력 중에서 마력(馬力, horse power)이 가장 비효율적이다. 이는 말이 자신의 두뇌를 가지고 있어 비용이 많이 들고, 공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말은 대공업의 초기 단계에 매우 폭넓게 사용되었는데, 이는 당시 농학자들의 불평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기계적 힘을 마력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남아 있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바람은 너무나 변화가 심하고 통제할 수 없었다. 더욱이 대공업의 발생지인 영국에서는 수력의 사용이 공장제 수공업 시기에도 우세했다. 이미 17세기에 두 개의 맷돌을 하나의 물레방아로 돌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전동 장치의 규모가 수력에 비해 지나치게 커지자 수력이 불만족스러워졌다. 이는 마찰의 법칙을 더욱 정밀하게 연구하게 만든 한 가지 이유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지렛대를 밀고 당겨 가동하던 제분기에서 동력인 수력의 작용이 불규칙하자, 그 뒤 대공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관성바퀴(fly-wheel)의 이론과 응용이 나타났다. 이처럼 대공업에서 최초의 과학적·기술적 요소들은 이미 공장제 수공업 시기에 발전했다.
아크라이트의 스로슬 방적기는 처음부터 물로 운전되었다. 그러나 수력은 그 흐름을 마음대로 늘릴 수 없고, 특정 계절에는 고갈되며, 무엇보다도 지역적 성격을 띠는 등 주된 동력으로 사용하기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와트의 제2의 복동식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부터 비로소 이상적인 원동기가 출현한다. 이 원동기는 석탄과 물을 소비하여 스스로 동력을 생산하고, 그 힘을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 이는 이동할 뿐 아니라, 스스로 이동 수단이 되며, 물레방아처럼 농촌적이 아닌 도시적이다. 또한 생산을 농촌에 분산시키지 않고, 도시에 집중시킬 수 있으며, 기술 적용이 보편적이고, 설치 장소 선정에서 지역적 제약을 거의 받지 않는다.
와트의 위대한 천재성은 1784년 4월에 얻은 특허권 명세서에 명확히 나타난다. 그는 거기서 자신의 증기 기관이 특정 목적이 아닌 대공업의 보편적 동력기임을 서술한다. 그가 명세서에서 제시한 사용처 중에는 증기 망치처럼 반세기 이상 지나서야 도입된 것들도 적지 않다. 다만, 그는 증기 기관을 항해에 적용하는 일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었다. 그러나 그의 계승자들인 볼튼·와트 회사는 1851년 런던 산업 박람회에 대양 기선용의 거대한 증기 기관을 선보인다.
도구가 인간 유기체의 도구로부터 기계 장치의 도구, 곧 작업기의 도구로 전환된 후에야, 동력 장치 역시 인간력의 제한성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독립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로부터 앞서 살펴보았던 개개의 작업기는 이제 기계제 생산의 단순한 요소로 격화된다. 하나의 동력기가 많은 작업기를 동시에 가동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동시적으로 운동하는 작업장 수가 늘어남에 따라 동력 장치도 커지고, 이와 더불어 전동 장치도 하나의 방대한 장치가 발전한다. 이제 우리는 같은 종류의 수많은 기계 협업과 복합적인 기계 체계를 구분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 제품은 전적으로 동일한 작업가로부터 만들어진다. 이 작업기가 이전에는 한 사람의 수공업자가 자기 도구로(예: 직조공이 직조기로) 수행했거나, 또는 여러 수공업자가 순차적으로 각종 도구들을 가지고 수행했던 모든 작업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근대의 편지 봉투 제조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노동자 한 명이 접지 칼로 종이를 접고, 다른 노동자가 풀칠하며, 제3의 노동자가 봉투 뚜껑을 접고, 제4의 노동자가 꽃 모양을 찍는 식이었다. 이처럼 각각의 부분 작업을 할 때마다, 봉투는 여러 사람에게 옮겨가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단 한 대의 봉투 제조기가 이 모든 작업을 한 번에 수행하여, 1시간에 3,000매 이상의 봉투를 만든다. 1862년 런던 산업 박람회에 출품된 미국제 종이 봉지 제조기는 종이를 자르고, 풀칠하며, 접는 작업을 1분에 300개씩 완성했다. 공장제 수공업 내부에서 일련의 작업들로 분할되어 순차적으로 수행되었던 전체 공정이 이제는 결합된 각종 도구를 작동시키는 한 개의 작업기로 완수된다. 이 작업기가 복잡한 수공업적 도구의 기계적 복제이든, 공장제 수공업에서 전문화된 간단한 각종 도구의 결합이든 관계없이, 두 경우 모두 공장(기계제 생산에 기반을 두는 작업장)에서는 단순 협업이 다시 나타난다.
노동자를 일단 도외시하면, 이 협업은 먼저 같은 종류의 작업기가 동시적으로 함께 움직이며, 한곳에 집합한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방직 공장은 같은 건물에 나란히 놓인 많은 역직기로, 재봉 공장은 많은 재봉기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기술상의 통일성이 존재하는데, 많은 같은 종류의 작업기가 공동의 원동기 심장 고동으로부터 전동 장치를 통해 동시에 또 균등하게 박동을 받기 때문이다. 전동 장치 또한 특수한 곁가지가 각 작업기로 갈라져 나가면서 어느 정도까지 작업기들에 공동으로 작용한다. 많은 도구가 한 개의 작업기 기관을 이루듯, 많은 작업기는 동일한 동력 기구의 기관을 형성한다.
진정한 기계 체계가 개별적인 독립 기계 대신 등장하는 것은 노동 대상이 일련의 상호 보완적인 각종 작업기로부터 수행되는 서로 관련된 계열의 부분 과정들을 통과할 때 비로소 일어난다. 여기서 우리는 공장제 수공업의 특징인 분업으로부터 비롯된 협업을 다시 목격하는데, 이제 이 협업은 특수한 기능을 가진 작업기들의 결합으로 나타난다. 양모 공장제 수공업의 털 빗질, 털 깎기, 털 직조 작업자들처럼 각종 부분 노동자들이 사용하던 특수한 도구들은 이제 전문화된 작업기의 도구로 전환된다. 이 각 작업기는 결합된 기계 장치 내에서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는 하나의 특수한 기관을 형성한다.
기계 체계가 처음 도입되는 분야에서는 대개 공장제 수공업 자체가 생산 과정의 분할(그리고 조직)을 위한 자연적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나 곧 공장제 수공업적 생산과 기계제 생산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전자에서는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손도구를 가지고 특수한 부분 과정을 수행해야 한다. 노동자가 각 부분 과정에 적응하지만, 과정 자체는 미리 노동자에게 적합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주체적인 분업 원칙은 기계제 생산에서 사라진다. 여기서는 총 과정이 객체적으로 그 자체로서 고찰되며, (인간의 손으로 어떻게 수행되는지와 무관하게)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단계로 분할된다. 각각의 부분 과정을 어떻게 수행하고, 상이한 부분 과정을 어떻게 통합하는지는 기계학이나 화학 등의 응용으로부터 해결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이론적 구상은 실제로 축적된 대규모 경험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각각의 부분 기계는 바로 그다음 기계에 원료를 공급하며, 이 기계들은 모두 동시에 작동한다. 따라서 생산물은 항상 형성 과정의 상이한 단계에 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한 생산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행한다. 공장제 수공업에서 부분 노동자들의 직접적 협업이 부분 노동자 집단들 사이에 일정한 수적 비율을 확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편성된 기계 체계에서도 한 부분 기계가 다른 부분 기계와 끊임없이 서로 관련되어 움직이므로, 그들 사이에는 수, 규모, 속도의 일정한 비율이 확립된다.
집단적으로 작용하는 작업기 (곧 개별 작업기들 및 개별 작업기 집단으로 조직된 체계)는 총 과정이 연속적일수록, 다시 말해, 원료가 첫 단계에서 마지막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중단되는 일이 적을수록, 더욱 완전해진다. 이는 원료가 인간의 손이 아닌 기계 장치 그 자체로부터 생산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추진될 때 달성된다.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각 부분 과정들의 분리가 분업의 성질이 요구하는 조건이었다면, 발달된 공장에서는 이와 반대로, 각 부분 과정들의 연속이 지배하게 된다.
기계 체계는 직조업처럼 같은 종류의 작업기 협업에 기반을 두든, 방적업처럼 다른 종류의 작업기 결합에 기반을 두든, 하나의 자동 원동기로부터 운전되기 시작하면,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자동 장치가 된다. 그러나 체계 전체가 증기 기관으로 운전되더라도, 개별 작업기는 아직 노동자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자동식 뮬 방적기가 도입되기 전이나 세사 방적에서는 노동자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또한, 선반 활대가 자동식으로 전환되기 전의 기계 제작에서처럼, 기계의 특정 부분은 노동자가 손도구를 사용하듯, 직접 조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작업기가 원료 가공에 필요한 모든 운동을 인간의 협력 없이 수행하고, 오직 노동자의 통제만을 필요로 하게 될 때, 기계의 자동 체계가 완성되며, 그 세부는 끊임없이 개량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실 한 올만 끊어져도 방적기를 자동적으로 정지시키는 장치나, 방추 속 씨실이 없어지자마자 동력 직기를 정지시키는 자동 정지기 같은 것이 최근에 발명되었다.
생산의 연속성과 자동식 원리가 도입된 실례로 근대적 제지 공장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제지업은 상이한 생산 수단에 바탕을 둔 상이한 생산 방식들의 차이와, 이 생산 방식들이 사회적 생산 관계와 맺는 관련을 매우 상세하게 연구할 수 있는 분야이다. 고대 독일은 수공업적 생산의 표본을, 17세기 네덜란드와 18세기 프랑스는 진정한 공장제 수공업의 표본을, 근대 영국은 자동적 생산의 표본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중국과 인도에는 제지업의 두 가지 상이한 고대 아시아적 형태가 아직도 존재한다.
하나의 중앙 자동 장치로부터, 전동 장치로만 운동을 받는 작업기들의 편성 체계는 기계제 생산에서 가장 발달한 형태이다. 여기서는 개별적인 기계 대신 하나의 거대한 기계적 괴물이 등장하는데, 그 몸통은 공장 건물 전체를 차지한다. 그 마술과 같은 힘은 처음에는 거대한 팔다리들의 느리고, 절도 있는 움직임 속에 숨겨져 있지만, 결국에는, 무수한 본래의 작업 기관들이 격렬하게 난무하는 방식으로 폭발한다. 뮬 방적기나 증기 기관 같은 발명품들은 그것들의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노동자가 있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 이는 재봉사가 생기기 전에도 사람들이 옷을 입었던 일과 같다. 그러나 보캉송, 아크라이트, 와트 같은 발명가들이 자신의 발명을 실용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상당수의 숙련된 기계 노동자들을 이미 공장제 수공업 시기에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노동자들 중 일부는 각종 직업의 독립적 수공업자였고, 다른 일부는 (분업이 특히 엄격했던) 공장제 수공업에서 집단적으로 존재했다.
발명의 수가 증가하고, 새로 발명된 기계에 대한 수요가 증대함에 따라, 기계 제작업은 다양한 독립 부문으로 분화되고, 기계 제작 공장제 수공업 내 분업이 더욱 발전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공장제 수공업에서 대공업의 직접적인 기술적 토대를 발견한다. 이 공장제 수공업은 기계를 생산했으며, 그 기계의 도움으로 대공업은 (최초로 확보한 생산 부문들에서) 수공업 생산과 공장제 수공업 생산을 제거했다. 이처럼 기계를 생산하는 체계는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은 물질적 토대 위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성된다. 그 체계가 일정한 발전 단계에 도달했을 때, (그동안 종래의 형태로 더욱 발전한) 빌려온 토대를 타도하고, 자신의 생산 방식에 알맞은 새로운 토대를 창조해야 했다. 각각의 기계가 인간의 힘으로만 운전되는 동안은 여전히 작았고, 기계 체계는 증기 기간이 종전의 동력(동물, 바람, 심지어 물)을 대체하기 전에는 자유롭게 발전할 수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공업도 그것에 특징적인 생산 수단인, 기계 그 자체가 개인의 힘과 숙련에 의존하고 있던 동안은 그 발전이 불완전했다. 다시 말해, 기계가 공장제 수공업의 부분 노동자 또는 그 밖 의 수공업자가 작은 도구를 사용하는 데 필요했던 발달한 근육, 예민한 시력, 능란한 솜씨에 의존하고 있던 동안은 불완전했다.
기계 제작 비용이 비싸다는 사실(자본가의 기계 사용을 가로막은 지배적 요인)을 차지하고라도, 기계를 이용한 공업 확대와 새로운 생산 부문으로의 침투는 특정 노동자들의 성장에 의존했다. 이들은 직업의 반(半)장인적 성격으로 인해, 그 수가 비약적이 아닌 점차적으로만 증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자, 대공업은 수공업과 공장제 수공업이 제공한 기술적 토대와 양립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발전 과정에서 다수의 기술적 문제가 자연 발생적으로 발생했다. 동력기, 전동 장치, 작업기의 규모가 커지고, 작업기의 구성 부분이 더욱 복잡 다양해졌으며, 더 엄격한 규칙성으로 운전되어야 함에 따라, 작업기는 그것의 제작을 처음 지배했던 수공업적 모형과 점점 더 괴리되었다. 그리고 오직 기계적 과업으로만 규정되는 자유로운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동시에 자동 체계가 완성되고, 다루기 어려운 자재(예: 목재 대신 철)를 사용하는 일이 더욱 불가피해졌다. 이 과업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간 능력의 제한성이 언제나 장애물로 작용했는데, 이는 공장제 수공업에서 집단적 노동자들로부터 어느 정도 극복되었으나, 본질적으로는 타파되지 못한 한계였다. 근대적 수압기, 근대적 동력 직기, 근대적 소모기 같은 기계들은 공장제 수공업으로부터는 결코 공급될 수 없었다.
공업의 한 분야에서 발생한 생산 방식의 변혁은 다른 분야에서도 변화를 야기한다. 이는 특히 사회적 분업으로 인해 독립적인 상품을 생산하면서도, 과정상 서로 연결된 공업들에서 먼저 나타난다. 예를 들어, 기계 방적업은 기계 직조업을 필연적으로 요구했고, 이 둘은 표백업, 날염업, 염색업에서 역학적·화학적 혁명을 필요로 했다. 면방적업에서 혁명은 면섬유를 목화씨에서 분리하는 조면기의 발명을 초래했으며, 현재와 같은 대규모 목화 생산은 이로부터 비로소 이루어졌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공업과 농업의 생산 방식 혁명은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일반적 조건들(곧 통신 수단과 운송 수단)의 혁명을 요구했다. 푸리에가 ‘축’이라 표현한 부업적 가내 공업을 가진 소규모 농업과 도시 수공업 사회의 통신 수단과 운송 수단은, (확대된 사회적 분업, 노동 수단, 노동자의 집중, 식민지 시장을 가진) 공장제 수공업 시기의 생산상 필요를 더 이상 충족시킬 수 없었으므로, 결국 변혁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장제 수공업 시기에서 물려받은 운송 및 통신 수단은 대공업의 폭발적인 생산 속도, 방대한 규모, 자본과 노동자의 끊임없는 이동, 그리고 새로이 형성된 세계 시장적 관련 앞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장애물이었다. 그러므로 돛배 건조의 대변혁 외에도, 통신·운송 수단은 하천 기선, 철도, 해양 기선, 전신 등의 창설로부터 점차 대공업의 생산 방식에 맞게 적응해 간다. 또한 (단조, 용접, 절단, 성형 등의 과정이 필요한) 엄청난 양의 철은 공장제 수공업 시기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거대한 기계들을 요구했다.
대공업은 그 특징적인 생산 수단인 기계 그 자체를 스스로 떠맡아, 기계로 기계를 생산해야 만 했다. 이때부터 비로소 대공업은 자신에게 적합한 기술적 토대를 창조했으며, 자기 자신의 두 발로 서게 된다. 19세기 첫 수십 년간 기계 생산이 증가함과 동시에, 기계제 생산이 점차 작업기의 제작을 담당한다. 그러나 대규모 철도 부설과 해양 기선 건조로 인해, 원동기 제작에 오늘날 사용되는 일과 같은 거대한 기계들이 나타나게 된 것은 오직 1866년 이전 10년 동안의 일이다.
기계로부터 기계를 생산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생산 조건은 어떤 출력도 낼 수 있으며,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원동기였다. 이 조건은 이미 증기 기관으로 충족되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기계의 개별적인 부분들에 필요한 엄밀한 기하학적인 직선, 평면, 원, 원통, 원주, 공을 기계로 생산하는 일이 요구되었다. 이 문제는 1810년대, 헨리 모즐레가 선반 활대를 발명하면서 해결되었다. 이것은 곧 자동화되었고, 이후 변경된 형태로 선반 외의 다른 공작 기계에도 적용되었다. 이 기계 장치는 특정 도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을 대체했으며, 절삭 공구로 철이나 다른 노동 재료로부터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 기계의 개별 부분들이 지닌 기하하적 형태를 ‘가장 능숙한 노동자가 아무리 경험을 쌓았다 하더라도, 손으로는 도저히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쉽고 정확하며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기계 제작에 사용되는 실질적인 작업기 부분을 살펴보면, 그것은 단지 규모가 대단히 커진 수공업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착공기의 작업기 부분은 증기 기관이 움직이는 거대한 송곳인데, 이것이 없다면 대형 증기 기관이나 수압기의 원통을 생산할 수 없다. 기계 선반은 발로 움직이는 보통 선반의 거대한 재현이며, 평삭기는 (목수가 목재를 가공하는 것과 같은 도구를 가지고) 철을 가공하는 철제 목수이다. 런던의 조선소에서 합판을 베는 도구는 거대한 면도칼이고, 재봉 가위가 천을 베듯이 철을 베는 기계 가위는 거대한 가위이며, 증기 망치는 보통의 망치(토르도 휘두를 수 없는 무게)를 가지고 작업한다. 일례로, 네즈미스가 발명한 증기 망치 중 하나는 무게가 6톤이 넘으며, 7피트 높이에서 중량 36톤의 모루 위에 수직으로 떨어진다. 화강암을 가루로 만드는 것은 이 망치에게 어린애 장난 같은 일이고, 연속적으로 가볍게 두드리면서 연한 목재에 못을 박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쉬운 일이다.
기계 형태로 구현된 노동 수단은 인간력을 자연력으로 대체하며, 경험적 숙련을 자연 과학의 의식적 응용으로 대체한다. 공장제 수공업에서 사회적 노동 과정의 조직은 순전히 주체적이며, 부분 노동자들의 결합에 불과했지만, 기계 체계에서는 대공업이 완전히 객체적인 생산 조직을 이룬다. 여기에서 노동자는 이미 존재하는 물질적 생산 조건의 단순한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 협업이나 분업으로 전문화된 협업에서조차 결합된 노동자가 고립된 노동자를 대체하는 일은 아직 어느 정도 우연적 현상이다. 그러나 기계는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오직 결합 노동 또는 공동 노동으로부터만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노동 과정의 협업적 성격이 노동 수단 자체가 강요하는 기술적 필연성이 된다.
15-2. 기계에서 생산물로 이전되는 가치
협업과 분업에서 발생하는 생산력은 자본가에게 아무런 비용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적 노동이 만들어낸 자연력과 같다. 생산 과정에 적용되는 증기, 물 등의 자연력도 역시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호흡에 폐가 필요하듯, 자연력을 생산적으로 소비하려면 인공적 수단이 필수적이다. 물의 힘에는 물레방아가, 증기의 탄력에는 증기 기관이 필요한 이치이다. 전류 범위 내 자석의 치우침이나 전류로부터 철의 자화 같은 과학 법칙도 일단 발견된 후에는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법칙을 전신 등에 활용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복잡한 장치가 필수적이다. 도구는 기계로부터 배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유기체의 단순한 도구에서 인간이 창조한 기계 장치의 도구로 전환되며, 그 규모와 수량이 증가한다. 자본은 이제 노동자에게 손 도구가 아닌 도구를 조종하는 기계로 작업하도록 한다. 대공업이 거대한 자연력과 과학의 성과를 생산 과정에 도입하여 노동 생산성을 급격히 높이는 일은 겉으로 보기에 명백하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력의 상승이 노동 지출의 증가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결코 그처럼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불변 자본의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기계는 그 자체로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다만, 생산되는 생산물에 자신의 가치를 이전할 뿐이다. 기계가 가치를 지니고 생산물에 그 가치를 이전하는 한, 기계는 생산물 가치의 한 구성 부분을 형성한다. 결과적으로, 기계는 생산물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에 비례하여 생산물의 가치를 상승시킨다. 그리고 대공업의 특징적인 노동 수단인 기계와 기계 체계는 수공업적 생산이나 공장제 수공업의 노동 수단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점은 명확하다.
먼저 말해 둘 점은, 기계는 노동 과정에는 항상 전체로 참여하지만, 가치 증식 과정에는 언제나 부분적으로만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기계는 마멸로부터 평균적으로 상실하는 가치 이상으로는 결코 생산물에 가치를 더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계의 총 가치와, 일정 기간 동안 기계에서 생산물로 이전되는 가치 부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생산물 형성 요소로 기계와 가치 형성 요소로 기계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의미한다. 동일한 기계가 동일한 노동 과정에서 반복하여 사용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차이는 더욱 커진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어떤 노동 수단이든, 노동 과정에는 항상 전체로 참가하고 가치 증식 과정에는 항상 그것의 매일의 평균적 마멸에 비례해 일부만 참가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용과 마멸 사이의 이러한 차이는 도구의 경우보다 기계의 경우에 훨씬 더 현저하다. 이는 기계가 더 오래 지속되는 재료로 만들어져 수명이 길고, 그 이용이 엄격한 과학적 법칙으로부터 규제되어 부품 교체와 보조 원료 소비로부터 더 경제적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기계의 생산적 활동 범위가 도구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넓다는 점도 주요한 이유이다.
기계와 도구는 매일의 평균적 비용(곧, 평균적 마멸과 기름, 석탄 등의 보조 원료 소비로부터 생사물에 첨가되는 가치 구성 부분)을 제외하고는 인간 노동의 협력 없이 존재하는 자연력과 마찬가지로 무상으로 작용한다. 기계의 생산적 효율성이 도구의 그것보다 클수록, 기계가 제공하는 무상 봉사의 크기 역시 그만큼 더 커진다. 대공업에 이르러서야 인간은 자신의 과거 노동의 산물(이미 대상화된 노동)을 자연력처럼 대규모로 공짜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헙업과 공장제 수공업을 고찰할 때 보았듯이, 건물 같은 일부 일반적 생산 조건들은 개별 수공업자의 분산된 조건들에 비해 공동 소비로부터 절약되며, 그 결과, 생산물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기계 체계에서는 작업기 본체뿐만 아니라, 많은 도구에 딸린 전동 장치의 일부와 함께 다수의 작업기로부터 공동으로 소비된다. 기계의 가치와 기계가 매일 생산물에 이전하는 가치 사이의 차이가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후자의 가치가 생산물의 가격을 상승시키는 정도는 일차적으로 총생산물의 규모, 곧 생산물의 겉넓이에 좌우된다. 이와 관련하여, 블랙번의 베인즈는 1857년의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계산을 제시했다.
‘실제 1 기계 마력은 준비 장치가 갖춰진 자동식 뮬 방추 450개, 또는 스로슬 방추 200개, 또는 날실을 고르게 하고, 풀을 먹이는 등의 장치가 달린 40인치 직물용 직조기 15대를 구동시킨다.’
1 기계 마력의 하루 비용과 이 마력으로 운전되는 기계의 마멸은,
1. 450개 뮬 방추의 하루 생산물에 분배된다.
2. 200개 스로슬 방추의 하루 생산물에 분배된다.
3. 15대 직조기의 하루 생산물에 분배된다.
따라서 1파운드의 실이나 1야드의 천에 이전되는 가치 부분은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위에서 예시된 증기 망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증기 망치의 하루 마멸과 석탄 소비 등은 매일 두드리는 방대한 양의 철에 분배되므로, 100파운드의 철에는 극히 적은 가치 부분만이 배당된다. 그러나 이 거대한 도구를 사용하여 작은 못을 박는다면, 생산물당 이전되는 가치 부분은 매우 커진다.
작업기의 작업 능력(부착된 도구의 수, 또는 힘이 문제라면 도구의 크기)이 주어져 있을 때, 생산물의 양은 작업기의 작업 속도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방추의 회전 속도나 1분당 망치가 내려치는 횟수와 같다. 앞서 언급된 거대한 망치 중에는 1분에 70번을 내리치는 것도 많으며, 소규모의 증기 망치로 방추를 단조하는 라이더의 특허 단조기는 1분에 700번을 내리친다. 기계의 가치가 생산물로 이전되는 비율이 일정하다면, 이전되는 가치 부분의 크기는 기계 자체의 가치 크기로부터 결정된다. 기계 자체에 체현된 노동이 적을수록, 기계가 생산물에 첨가하는 가치는 감소한다. 기계가 생산물에 이전하는 가치가 적을수록, 기계는 더욱 생산적이며, 기계의 봉사는 자연력의 봉사에 더욱 가까워진다. 결국, 기계로부터 기계의 생산은 기계의 규모와 작용에 비해 기계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수공업적 또는 공장제 수공업적으로 생산된 상품의 단위 가격과 기계로 생산된 동일 상품의 단위 가격을 비교 분석한다면, 일반적으로 기계 생산물의 경우, 노동 수단에서 이전되는 가치 부분이 절대적으로는 감소하지만, 상대적으로는 증가한다. 곧, 이 가치 부분의 절대액은 줄어들지만, 이 절대액이 가령 1파운드의 실과 같은 생산물의 총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진다.
분명한 사실은 기계 생산에 투입된 노동과 그 기계의 사용으로 절약되는 노동의 크기가 같다면, 단순한 노동의 대체만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총량은 감소하지 않으며, 노동 생산성도 증가하지 않는다. 또한, 기계 생산에 투입된 노동과 기계 사용으로 절약되는 노동 사이의 차이(곧, 기계의 생산력 정도)가 기계 자체의 가치와 기계가 대체하는 도구의 가치 사이의 차이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도 명확하다. 기계의 생산에 드는 노동(기계의 가치) 중 생산물로 이전되는 부분이 노동자가 도구를 사용해 생산물에 첨가하는 가치(새로운 가치는 가변 자본(v) + 잉여 자본(s)를 의미)보다 적은 때에만, 비로소 기계는 노동을 절약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계의 생산력은 기계가 대체하는 인간 노동력의 크기로부터 측정된다.
베인즈의 계산에 따르면, 1 증기 마력으로 구동되는 450개 뮬 방추(준비 장치 포함)에는 2.5명의 노동자만이 필요하다. 각 자동식 뮬 방추는 10시간 노동일의 1주 동안 평균 굵기의 실 13온스(0.8125파운드)를 생산한다. 따라서 2.5명의 노동자는 1주간 365.625파운드의 실을 생산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약 366파운드의 면화가 면사로 전환하는 데 흡수되는 노동 시간은 불과 150노동시간(10시간 × 6일 × 2.5명), 곧 15개의 10시간 노동일에 불과하다. 반면, 물레를 사용한다면, (손방적공이 13온스의 면사를 60시간에 생산한다고 가정할 때), 동일한 양의 면화는 2,700개의 10시간 노동일, 또는 27,000 노동 시간을 흡수하게 된다.
종래의 목판 날염법(손에 의한 날염법)이 기계 날염으로부터 대체된 경우, 단 한 대의 기계는 한 명의 성인 노동자(또는 소년공)의 협력만으로 1시간에, 이전에는 200명의 성인 노동자가 처리하던 것과 같은 양의 4색 날염직을 날염한다. 위트니가 1793년 조면기를 발명하기 전에는 1파운드의 면화에서 씨를 제거하는 데, 평균 1노동일이 소요되었다. 그의 발명 덕분에 흑인 여자 노동자 1명이 하루에 100파운드의 면화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이후 조면기의 생산 능률은 더욱 현저하게 증대되었다.
1파운드의 원면은 이전에는 생산비가 50센트였으나, 그 뒤에는 더 많은 이윤을 내면서도(더 많은 불변 노동을 포함하고도) 10센트에 판매되었다. 인도에서는 면화에서 씨를 제거하고자 반(半)기계적인 츄르카라는 도구가 사용되며, 이것으로 1명의 남자와 여자가 하루에 28파운드를 처리한다. 수년 전, 포브즈가 발명한 츄르카로는 1명의 성인과 1명의 소년이 하루에 250파운드를 처리한다. 동력(소, 증기, 물)을 이용하는 기계의 경우, 원료를 넣는 사람으로 몇 명의 소년과 소녀만이 필요할 뿐이다. 소가 움직이는 기계 16대는 이전에 하루 평균 750명이 하던 작업을 수행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증기 쟁기는 1시간에 3펜스(0.25실링)의 비용으로, 66명이 15실링의 비용으로 수행하던 작업량과 같은 작업을 수행한다. 오해를 피하고자, 이 사례를 다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15실링은 결코 66명 노동자가 한 시간 동안 행하는 노동의 화폐적 표현이 아니다. 잉여 노동의 필요 노동에 대한 비율이 100%라면, 이 66명의 노동자들은 매시간 30실리의 가치를 생산하며, 그들의 임금 15실링은 그 가치의 절반에 불과하다. 따라서 어떤 기계가 그것이 대체하는 노동자 150명의 연간 임금, 가령 3,000원과 같은 비용이 든다고 가정할 경우, 이 3,000원은 150명 노동자로부터 수행되어 노동 대상에 첨가된 전체 노동의 화폐적 표현이 아니다. 이는 그들의 연간 노동 중 그들 자신을 위해 행하고 임금으로 대표되는 부분(필요 노동)의 화폐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3,000원이라는 기계의 화폐 가치는 기계 생산에 소비된 전체 노동(이 노동이 노동자의 임금과 자본가의 잉여 가치로 어떤 비율로 분할되든 관계없이)을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기계가 비록 그것이 대신하는 노동력과 같은 금액의 비용이 들더라도, 기계에 대상화된 노동은 언제나 기계가 대신하는 살아있는 노동보다 훨씬 적다.
기계를 생산물의 염가(廉價) 수단으로만 볼 경우, 그 사용 한계는 기계 자체의 생산에 투입된 노동이 기계 사용으로 대체되는 노동보다 적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자본가가 기계를 활용하는 데에는 그 이상의 한계가 존재한다. 자본가는 노동 자체에 대해 지급하는 것이 아닌, 고용하는 노동력의 가치만을 지불하므로, 자본가의 기계 사용 한계는 기계 가치와 기계가 대체하는 노동력의 가치 사이의 차이로부터 설정된다. 노동일이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으로 분할되는 비율은 국가별, 시기별, 또는 동일 시기에도 생산 부문별로 상이하며, 노동자의 실제 임금은 때로 자기 노동력 가치 이하로 하락하거나, 그 이상으로 상승하기도 한다. 따라서 기계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과 기계가 대신하는 노동 총량 사이의 차이에는 변동이 없다 하더라도, 기계의 가격과 대체되는 노동력 가격 간 차이는 크게 변동할 수 있다.
자본가는 상품의 생산비, 곧 비용 가격을 스스로 규정하며, 경쟁은 오직 기계 가격과 기계가 대체하는 노동력 가격 간의 차이만을 강제한다. 오늘날 영국에서 발명된 기계가 임금 수준이 높은 미국에서 사용되듯, 16-17세기 독일의 발명품은 네덜란드에서, 18세기 프랑스의 많은 발명은 영국에서만 이용되었다. 오래전부터 발전한 나라들에서는 일부 부문의 기계 자체가 다른 부문들에서 리카도의 과잉 인원 같은 노동력 과잉을 낳는다. 그 결과, 후자 부문의 임금은 노동력 가치 이하로 하락하며, 이는 기계 사용을 저해한다. 또한, 자본가의 이윤은 고용 노동력의 감소가 아닌 지불 노동의 감소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기계의 사용은 불필요하고, 흔히 불가능해진다.
영국 양모 공업의 일부 부문에서 아동 노동이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줄거나 거의 사라진 이유가 있다. 공장법으로 아동들의 2교대제가 도입되어, 한 조는 6시간, 다른 조는 4시간 작업하거나, 두 조가 각각 5시간만 작업할 수밖에 없게 되었음에도, 부모들이 반일공을 이전의 전일공보다 더 싸게는 팔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반일공들은 기계로 대체되었다. 광산에서 여성과 아동(10세 미만)의 노동이 금지되기 전까지, 자본은 탄광 등에서 벌거벗은 부인들과 소녀들을 남자들과 함께 노동시키는 것을 도덕률에 어긋난다고 여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윤 획득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자본은 이 노동이 금지된 이후에야 비로소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돌 부수는 기계를 발명했음에도, 영국에서는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작업을 수행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그들의 노동에 비해 매우 적은 보수만을 받기 때문에, 기계를 사용할 경우, 오히려 자본가들의 생산비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운하에서 배를 끄는 일에 말 대신 아직도 여성을 사용하는 일도 같은 이유에서다. 말과 기계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가치)은 정확히 알려진 크기이지만, 과잉 인구 중 여성들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노동(임금 수준)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계의 나라인 영국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더 파렴치하게 인력을 천한 일에 낭비하고 있다.
15-3. 기계제 생산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가장 직접적 영향
대공업은 노동 수단의 혁명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공장의 편성된 기계 체계 속에서 가장 발달한 형태에 이른다. 이 객체적 유기체에 인간 재료가 결합되는 양상을 고찰하기에 앞서, 이 혁명이 노동자 자신에게 미치는 일반적 영향을 먼저 살펴본다.
Ⅰ. 자본이 추가 노동력을 취득. 여성과 아동의 고용
기계는 근육의 힘이 아닌 유연한 팔다리를 요구하는 한, 육체적 발달이 미숙하거나, 근력이 약한 노동자도 활용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여성 노동과 아동 노동의 고용은 자본가 입장에서 기계 사용의 첫 번째 직접적 결과였다. 노동력 자체를 대체하는 강력한 수단인 기계는 즉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노동자 가족 구성원 전부를 자본의 직접적 지배 아래 편입시키며 임금 노동자의 수를 늘렸다. 자본가를 위한 강제 노동은 아동의 유희 시간뿐 아니라 가정 내 가족을 위한 최소한의 자유 노동까지도 빼앗아 버렸다. 노동력의 가치는 개별 성인 노동자뿐 아니라 노동자 가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으로부터 규정된다. 기계는 가족 구성원 전부를 노동 시장으로 내몰면서, 가장의 노동력 가치를 가족 전체로 나눈다. 그 결과, 기계는 가장의 노동력 가치를 저하시킨다.
가령 4명의 노동자로 구성된 가족 노동력 구입 비용이 종전에 가장 1명의 노동력 구입 비용보다 더 들 수 있다. 그러나 4노동일이 1노동일을 대체하므로, 4노동일의 잉여 노동이 1노동일의 잉여 노동을 초과하는 것에 비례하여 그들 가족의 노동력 가치는 하락한다. 이제 한 가족이 생활하려면, 4명 모두가 자본가에게 노동뿐 아니라 잉여 노동까지 제공해야 한다. 이와 같이, 기계는 처음부터 자본의 가장 특징적인 착취 대상인 인간적 착취 재료를 추가할 뿐 아니라, 착취의 정도 또한 증가시킨다.
기계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상호 관계를 형식적으로 규정하는 계약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킨다. 우리의 첫 전제는 상품 교환의 바탕 위에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자유로운 인격, 곧 한쪽은 화폐와 생산 수단의 소유자로, 다른 쪽은 노동력의 소유자로, 독립적인 상품 소유자로 상대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 자본은 아동과 미성년자의 노동력을 구매한다. 종전에는 노동자가 형식상 자유로운 인격으로 처분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노동력을 팔았는데, 이제 그는 처자를 파는 노예 상인이 되었다. 아동 노동에 대한 구인 광고는 형식상으로도 (미국의 신문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흑인 노예에 대한 구인 광고와 비슷하다. 예를 들어, 영국의 한 공장 감독관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한 주요 공업 도시의 지방 신문에 실린 광고가 내 주의를 끌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3세 이상으로 보이는 소년 12-20명을 구함. 임금은 주당 4실링. 지원 바람.’
‘13세로 인정할 수 있는’이라는 문구는, 13세 미만 아동의 노동 시간을 6시간으로 제한한 공장법과 연관된다. 나이는 공식적으로 지정된 의사의 증명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공장주는 13세가 된 것처럼 보일 소년들을 찾는다. 최근 20년간 영국 통계에서 13세 미만 고용 아동 수가 급격하고 놀랍게 감소한 주요 원인은, 공장 감독관 자신의 진술에 따르자면, 의사들이 자본가의 착취 욕심과 부모의 아동 판매 요구에 맞추어 아동들의 나이를 실제보다 높게 고쳐주었기 때문이다.
런던의 악명 높은 지역인 베스날 그린에서는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아침 공개 시장이 열린다. 이곳에서 9세 이상의 남녀 아동들이 런던의 견직 공장주들에게 자신을 임대한다. ‘보통 조건은 주 1실링 8펜스 (이것은 부모들의 몫이 된다)와 나 자신을 위한 2펜스, 그리고 차(tea)이다. 계약은 오직 1주일을 기한으로 체결된다. 이 시장이 열릴 때의 광경과 그곳의 말씨는 참으로 창피스러운 수준이다.’ 여성들이 ‘구빈원에서 아동들을 데리고 나와 아무 구매자에게나 주 2실링 6펜스로 임대하는’ 일이 지금도 영국에서 벌어진다.
법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영국에서는 적어도 2,000명의 소년들이 여전히 부모에게 팔려 살아있는 굴뚝 소제기로 노동한다(심지어 그들을 대체할 기계가 존재함에도). 기계가 노동력의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법률적 관계에 일으킨 혁명은, 전체 거래에서 자유로운 인격 간의 계약이라는 외관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것은 이후 영국 의회가 국가로 하여금 공장 문제에 개입하도록 하는 법적 구실을 제공했다. 종전에는 그 구속을 받지 않던 공업 부문들에서 공장법이 아동 노동을 6시간으로 제한할 때마다, 공장주들은 불만을 제기했다. 일부 부모들이 법적 단속을 받는 부문에서 아동들을 빼내어 ‘노동의 자유’가 지배하는 (곧 13세 미만 아동들이 성인처럼 노동하며,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공업 부문에 판매한다는 것이다. 자본은 본래 자기들끼리는 평등주의를 주장한다. 곧, 자본은 모든 생산 분야에서 노동 착취 조건의 평등을 태어날 때부터 권리로 요구한다. 따라서 한 공업 부문에서 아동 노동을 법적으로 제한하면, 다른 공업 부문에서도 아동 노동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기계가 (처음에는 공장에서 직접, 다음으로는 모든 공업 부문에서 간접적으로) 자본의 착취에 종속시킨 아동, 소년·소녀, 부인들의 육체적 파멸에 대해서는 이미 제10장 노동일에서 지적했다. 따라서 여기서는 노동자 계급 가정의 유아 사망률이 대단히 높다는 점만을 언급한다. 영국의 호적 관리 구역들 중 16개 구역에서는 1세 미만 유아 100,000명당 연평균 사망자 수가 9,085명(어떤 구역은 7,047명에 불과함)인 반면, 24개 구역에서는 10,000-11,000명, 39개 구역에서는 11,000-12,000명, 48개 구역에서는 12,000-13,000명으로 증가한다. 특히 심각한 구역들을 보면, 22개 구역에서는 20,000명 이상, 25개 구역은 21,000명 이상, 17개 구역은 22,000명 이상, 11개 구역은 23,000명 이상이다. 후, 울버햄프턴, 애쉬톤 언더 라인, 프레스톤에서는 24,000명 이상, 노팅엄, 스톡포트, 브래드퍼드에서는 25,000명 이상, 위스비치에서는 26,000명, 맨체스터에서는 26,125명에 달한다.
1861년 정부 의료 조사에서 증명된 바와 같이, 이처럼 높은 사망률의 원인은 지방적 조건을 제외하면, 주로 어머니의 가정 밖 취업이다. 이로 인해 유아에 대한 무관심과 학대가 발생하며, 부적당한 음식, 영양 부족, 마취제 사용 등이 그 예다. 이 밖에도 어머니와 유아 사이의 부자연스러운 반목, 그 결과인 고의적인 굶김, 독 있는 음식 제공 등이 원인이 된다. 반면, ‘여성 취업이 가장 적은’ 농업 구역들에서는 ‘사망률이 가장 낮다’. 그런데 1861년 조사 위원회는 북해 연안의 일부 순수한 농업 구역들에서 1세 미만 유아의 사망률이 가장 악명 높은 공장 구역들의 사망률과 거의 같다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줄리안 헌터에게 이 현상에 대한 현장 조사를 위임했다. 그의 보고는「공중 보건에 관한 제6차 보고서」에 수록되어 있다. 당시에는 말라리아와 기타 저습지 특유의 질병들이 유아들의 생명을 앗아간다고 추측되었다. 그러나 조사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말라리아를 없앤 바로 그 사정, 곧 겨울에는 습지, 여름에는 보잘것없는 목장이었던 토지를 비옥한 밀밭으로 전환시킨 것이 오히려 매우 높은 유아 사망률을 낳은 것이다. 헌터가 심문한 그 구역 내 70명 의사들의 의견은 이 점에 대해 ‘놀랄 만큼 일치’했다. 이는 토지 경작의 혁명으로 공장식의 노동 제도가 농업 부문에 도입되었음을 시사한다.
‘소년·소녀들과 함께 노동하는 기혼 여성들은 대장(노동 부대 전체를 대신하여 계약하는 자)으로부터 일정한 금액을 받고 차지 농업가의 처분에 맡겨진다. 이 노동 부대는 때때로 촌락에서 수 마일 떨어진 지방까지 이동한다. 따라서 아침저녁으로 길거리에서 이들을 마주칠 수 있는데, 여성들은 짧은 치마, 이에 맞는 저고리, 장화를 착용하고, 때로는 바지를 입은 모습이다. 이들은 보기에는 대단히 힘세고 건강한 듯 보이나, 버릇이 된 부도덕한 행동들로 타락해 있으며, 이런 바쁘고 독립적인 생활 방식에 대한 애착이 집에서 시들고 있는 자식들에게 미치는 치명적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공장 구역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여기에서도 재생산되며, 숨겨진 유아 살해와 아동들에 대한 아편 마취의 정도는 오히려 더 심각한 형편이다. 영국 추밀원의 의무관이자「공중 보건에 관한 보고서」의 책임 편집자인 사이먼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나는 그런 폐해들을 잘 알고 있기에, 성인 여성들의 산업 내 폭넓은 고용 사실에 대해 깊은 우려를 품게 되는 일은 어쩔 수 없다.’
공장 감독관 베이커는 공식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부르짖는다.
‘가족을 둔 모든 기혼 여성들이 섬유 공장에서 노동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는 사실상 영국 공업 지구들을 위해 매우 다행한 일이 될 것이다.’
여성 노동과 아동 노동에 대한 자본주의적 착취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타락은, 엥겔스,『영국 노동 계급의 상태』와 기타 저술가들로부터 이미 남김없이 서술되었다. 필자는 여기에서 다만 그것을 상기시키는 데 그친다. 미성년자를,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단순한 기계로 전환시키면서 인위적으로 초래된 지적 황폐는(이는 정신이 발전 능력을 잃지 않고, 쉬어서 생기는 자연적 무지와는 완전히 구별됨), 결국 영국 의회로 하여금, 초등 교육을 (공장법 적용을 받는 공업 부문에서) 14세 미만 아동들의 ‘생산적’ 고용을 위한 법적 조건으로 선포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자본주의적 생산의 정신은 분명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공장법의 이른바 교육 조항에 담긴 우스꽝스러운 문구에서, 담당 행정 기구가 없다는 점에서(이로 인해 의무 교육은 대부분 허구적인 것이 됨), 이 교육 조항에 대한 공장주들의 반대에서, 그리고 이 조항을 회피하고자 공장주들이 쓰는 온갖 술책에서 그 정신이 명백히 드러난다.
‘비난은 오직 입법부 혼자 받아야 한다. 입법부는 공장에 고용되는 아동들이 교육받아야 한다고 규정했음에도, 이 목적을 달성할 단 하나의 규정도 포함하지 않은 기만적 법률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 법률은 아동들을 주 중의 어느 날들, 그리고 매일 일정한 시간(3시간) 동안 학교라고 불리는 네 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가두어 두어야 한다는 것과, 아동들의 고용주가 매주 교사로부터 그렇게 했다는 증명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고 있다.’
1844년의 개정 공장법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교사 자신이 글을 쓸 줄 몰랐기에, X자로 서명한 취학 증명서가 드물지 않았다.
‘이런 취학 증명서를 발급하는 학교라고 불리는 한 곳을 방문했을 때, 나는 교사의 무지에 놀라 그에게, “여보시오, 당신은 글을 읽을 줄이나 압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네. 조금은.”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증명서를 발행할 자격이 있음을 변명하려는 듯이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어쨌든 나는 내 학생들보다 낫습니다.” 1844년 공장법을 준비하는 동안, 공장 감독관들은 법률상 완전히 유효한 것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른바 학교라는 곳들의 수치스러운 상태와 그곳에서 발행하는 출석 증명서를 고발했다. 그러나 그들이 달성한 것은, 1844년 이후 취학 증명서의 숫자를 교사가 손수 기입해야 한다는 것과, 교사가 자기의 완전한 성명으로 서명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스코틀랜드의 공장 감독관 킨케이드는 이와 비슷한 공무상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우리가 최초로 방문한 학교는 앤 킬리라는 부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이름을 써보라고 했을 때, 그는 당장 실수했으며, 철자를 C로 시작했으나, 곧 정정하면서 자기 이름은 K로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학 증명서에 적힌 그의 서명을 보고 나는 그가 여러 가지로 철자를 다르게 쓰고 있음을 알았으며, 그의 필적으로 보아 가르칠 능력이 없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 자신도 자기의 출석부를 작성할 줄 모른다는 것을 인정했다. 또 다른 한 학교는 길이 15피트, 폭 10피트의 교실에 75명의 아동이 있었으며, 그들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동들이 취학 증명서는 받지만 값어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위에서 말한 참담한 곳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유능한 교사가 있는 많은 학교에서도 그의 노력이 거의 수포로 돌아가는데, 그것은 세 살 난 어린애부터 각 나이의 아동들이 소란스럽게 꽉 차 있기 때문이다. 교사의 생계는 매우 비참하여, 한 장소에 최대한의 아동들을 집어넣고, 그들로부터 받는 푼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더욱이 학교 비품은 매우 빈약하며, 책과 기타 교재들은 부족하고, 숨 막힐 듯한 구역질 나는 공기는 불쌍한 아동들 자신의 기운을 떨어뜨리고 있다. 내가 가서 본 많은 학교들에서는 전체 아동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이것을 취학이라고 증명하고 있으며, 통계 보고에는 이런 아동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공장주들이 교육 의무가 있는 아동들을 최대한 고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공장법의 교육 조항은 공장주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기에, 취학 의무가 있는 아동들은 취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 법이 목적인) 교육의 이익조차 누릴 수 없게 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다.’
이런 상황은 특별법「1845년의 날염공장법」의 규제를 받는 날염 공장에서 기이하고도 무서운 형태로 발현된다.
‘이 법은 아동이 공장 고용 전 6개월 동안 최소 30일, 150시간 이상 취학할 것을 의무화하며, 고용 중에도 6개월마다 같은 기간과 시간(30일, 150시간)을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규정한다. 수업은 오전 8시와 오후 6시 사이에 이루어져야 하며, 1일 2.5시간 이하 또는 5시간 이상의 수업은 법정 150시간으로 산정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아동들은 30일 동안 매일 오전, 오후로 최소 5시간씩 수업을 받는다. 30일이 지나 법정 수업 시간인 150시간을 채우면, 곧 그들 말대로 출석부를 다 채우면, 다시 날염 공장으로 돌아가 다음 취학 기간까지 6개월간 머문다. 규정된 150시간 수업을 받은 다수의 아동들은 6개월간의 공장 노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면, 이전에 습득했던 것을 모두 잊어버려 처음 수업을 받기 시작했을 때와 똑같은 상태가 된다. 다른 공장들에서는, 취학이 공장의 사업 사정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법정 시간 수는 6개월에 걸쳐 3시간 내지 5시간씩 틈틈이 취학시키며 채워진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이 하루는 아침 8시부터 11시, 다음 날은 오후 1시부터 4시이며, 그 후 며칠간 보이지 않다가 다시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나타난다. 3-4일 또는 1주일 연속 출석한 후, 3주일이나 1개월 동안 자취를 감춘다. 그러다 고용주가 마침 그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날, 몇 시간 나오기도 한다. 이와 같이, 아동은 150시간이 채워질 때까지 학교에서 공장으로, 공장에서 학교로, 말하자면 학교와 공장 사이를 시달리며 왕복한다.’
기계는 아동과 여성을 노동자 계급에 대량으로 추가하면서, 성인 남성 노동자가 공장제 수공업 시기 내내 자본의 독재에 맞서 왔던 저항(반항)을 끝내 무너뜨린다.
Ⅱ. 노동일의 연장
기계는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곧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그러나 기계는 자본의 수중에서, 자신이 처음 정복한 공업 부문들에서 노동일을 모든 자연적 제한을 넘어 연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기계는 한편으로 자본이 이러한 경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을 창출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 노동에 대한 자본의 탐욕을 격화시키는 새로운 동기를 만들어 낸다. 먼저 기계에서 노동 수단의 운동과 활동은 노동자로부터 자립적인 성격을 띤다. 노동 수단은 이제 산업적 영구 기관이 되며, 자기 조수인 인간들의 일정한 자연적 제한성(약한 육체와 강한 의지)에 부딪히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생산을 지속한다. 이 자동 장치는 자본이기에, 자본가라는 인물로부터 의식과 의지를 부여받는다. 그러므로 자본으로의 노동 수단은 인간(완고하지만 신축성 있는 자연적 장애물)의 저항을 최소한으로 축소시키려는 충동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저항은 또한 기계 노동이 겉모양은 힘들지 않다는 사정, 거기에 고용된 여성과 아동들이 온순하며 다루기 쉽다는 사정으로부터 더욱 감소된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기계의 생산성은 기계로부터 제품에 이전되는 가치 크기에 반비례한다. 기계가 기능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계로부터 이전되는 가치가 분배되는 생산물의 양은 그만큼 늘어나며, 따라서 단위 상품에 이전되는 기계 가치는 그만큼 적어진다. 그런데 기계의 활동적 수명은 분명히 노동일의 길이(매일 노동 과정에서 지속되는 시간)에 노동 과정이 반복되는 일수를 곱한 값으로부터 규정된다.
기계의 마멸은 기계의 사용 시간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7.5년 동안 매일 16시간씩 사용된 기계는 15년 동안 매일 8시간씩 사용된 동일한 기계와 총 노동 시간이 같으며, 총생산물에 이전시키는 가치 역시 동일하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 기계의 가치는 후자보다 두 배 빨리 재생산된다. 또한 자본가는 후자의 경우, 15년 동안 흡수할 잉여 가치를 전자의 경우 7.5년 동안에 모두 흡수해 버린다.
기계의 물리적 마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개개의 주화가 유통되면서 마멸되듯이, 기계를 사용하는 데서 발생한다. 다른 하나는 쓰지 않는 칼이 칼집에서 녹슬 듯이,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데서 발생한다. 이 후자는 자연력의 작용으로 인한 기계의 마멸이다. 첫째 종류의 마멸은 대체로 기계의 사용에 정비례하며, 둘째 종류의 마멸은 어느 정도까지는 기계의 사용에 반비례한다. 기계는 물리적 마멸 외에도 이른바 도덕적(무형의) 가치 감소를 겪는다. 동일한 구조의 기계가 더 싸게 재생산되거나, 또는 더 우수한 기계가 경쟁자로 등장하면, 기계는 교환 가치를 상실한다. 이 경우, 기계가 아무리 새것이며 생명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 가치는 더 이상 그 기계에 실제로 대상화된 노동 시간으로부터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대신, 그 기계의 재생산 또는 더 우수한 기계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으로부터 결정된다. 그러므로 그 기계는 많건 적건 가치를 잃어버린다. 기계의 총 가치가 재생산되는 기간이 짧을수록, 도덕적 가치 감소의 위험은 그만큼 줄어들며, 노동일이 길수록 그 재생산 기간은 그만큼 짧아진다. 기계가 어떤 부문에 처음 도입될 때, 이를 더 싸게 재생산하려는 새로운 방법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며, (개별 부분이나 장치뿐 아니라 전체 구조에 관련된) 개선 또한 계속 나타난다. 그러므로 기계의 생애 초기에는 노동일을 연장하려는 이 특수한 동기가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다.
노동일의 길이가 일정하고,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두 배의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서는 기계와 건물에 지출되는 불변 자본 부분과 원료, 보조 원료 등에 지출되는 불변 자본 부분 또한 두 배로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일의 연장은 기계와 건물에 지출되는 자본량을 변경하지 않고도 생산 규모를 확대시킨다. 이로 말미암아, 잉여 가치가 증가할 뿐 아니라, 잉여 가치의 착취에 필요한 지출이 감소한다. 물론 이런 현상은 노동일이 연장되면 대체로 발생하지만, 여기에서는 노동 수단으로 전환된 자본 부분이 훨씬 크기 때문에 더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곧, 기계제 생산의 발전과 함께 자본 중 끊임없이 증가하는 한 부분은, 한편으로는 가치 증식을 위해 계속 사용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노동과 접촉하지 못하면, 자기의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를 모두 잃어버리는 형태(기계와 같은 노동 수단)로 묶인다. 영국의 면공업 거두 애쉬워스는 시니어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농부가 자신의 괭이를 내버려 두면, 그 기간 동안 18펜스의 자본을 쓸모없게 만든다. 반면, 우리 중 한 사람이 공장을 떠나면, 10만 파운드의 비용이 든 자본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과 같다.’
생각해 보라. 10만 파운드의 비용이 든 자본을 비록 일순간일지라도 ‘쓸모없게’ 만드는 것은 우리 중 누군가 공장을 떠난다면, 참으로 엄청난 일이다. 시니어가 애쉬워스의 가르침으로부터 잘 알고 있듯이, 기계 사용의 끊임없는 확대는 노동일을 점점 더 연장하는 것을 ‘소망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기계가 상대적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노동력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감소시키거나(아동 노동과 여성 노동의 사용, 성인 남성 노동력 가치 감소 등으로부터), 또는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상품을 싸게 만들면서 간접적으로 노동력을 싸게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기계가 처음에 산발적으로 도입될 때는, 기계 소유자가 고용한 노동은 강화되고, 더 효율적인 노동으로 전환되어 생산물의 개별 가치를 그것의 사회적 가치보다 싸게 만든다. 이로부터 자본가는 하루의 생산물 가치 중 더 작은 부분으로 하루의 노동력 가치를 보상할 수 있다(제12장 참조). 그러므로 기계 사용이 일종의 독점 상태에 있는 이 과도기에는 이윤이 엄청나게 크며, 자본가는 이 ‘첫사랑의 시기’를 최대한 노동일을 연장하면서 철저히 이용하려 한다. 많은 이윤은 더 많은 이윤에 대한 갈망을 격화시킨다.
기계가 일정한 생산 부문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면, 기계 생산물의 사회적 가치는 그 개별 가치 수준으로 저하된다. 이로부터 잉여 가치는 기계가 대체한 노동력이 아닌, 그 기계에 붙어 실제로 작업하는 노동력에서 생겨난다는 법칙이 관철된다. 잉여 가치는 자본의 가변 부분에서만 발생하며, 이미 본 바와 같이, 잉여 가치량은 두 가지 요인, 곧 잉여 가치율과 (동시에 고용되는) 노동자 수로부터 규정된다. 노동일의 길이가 일정할 때, 잉여 가치율은 노동일이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으로 분할되는 비율로부터 결정된다. 그리고 동시에 고용되는 노동자 수는 가변 자본 부분과 불변 자본 부분 사이의 비율에 의존한다. 기계가 노동 생산성 향상으로부터 필요 노동을 희생하여 잉여 노동을 확대시킨다 하더라도, 기계 사용은 (일정한 금액의 자본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수를 감소시키면서만 이런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기계 사용은 자본 중 이전의 가변 자본 부분(살아 있는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부분)을 기계, 곧 아무런 잉여 가치도 생산하지 않는 불변 자본으로 전환시킨다. 그러나 예를 들어, 2명의 노동자로부터 24명의 노동자에게서 짜내는 만큼의 잉여 가치를 짜낼 수는 없다. 24명의 노동자가 각각 12시간 노동에서 1시간의 잉여 노동밖에 제공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합계 24시간의 잉여 노동을 제공한다. 2명 노동자의 총노동은 24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잉여 가치 생산을 위한 기계 사용에는 내재적 모순이 존재한다. 일정한 금액의 자본이 창조하는 잉여 가치의 두 요인 중 하나인 잉여 가치율은 다른 요인인 노동자 수를 감소시키지 않고서는 증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내재적 모순은 기계가 어떤 공업 부문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기계가 생산하는 상품 가치가 그 종류의 모든 상품의 사회적 가치를 규제하게 되자마자 나타난다. 그래서 이 모순은 다시금 자본가로 하여금, 그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서도, 착취되는 노동자 수의 상대적 감소를 상대적 그리고 절대적 잉여 노동의 증가로 보상하고자 노동일을 무자비하게 극도로 연장시키게 한다.
따라서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한편으로, 노동일의 무제한 연장에 강력한 새로운 동기를 제공하며, 노동 방식 자체와 사회적 노동 유기체의 성격을 크게 변혁시키면서 노동일을 연장하려는 모든 저항을 좌절시킨다. 다른 한편으로,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노동자 계급 중 종전에 자본가의 손에 미치지 않았던 계급들을 복종시키고, 또 기계가 쫓아낸 노동자들을 실업 상태로 만들면서, 자본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과잉 노동 인구를 생산한다. 여기에서 노동일의 길이에 관한 온갖 도덕적·자연적 제한을 없애버리는 근대 산업사의 주목할 만한 현상이 나온다. 또한, 노동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노동자와 그 가족의 모든 생활 시간을 자본의 가치 증식에 이용할 수 있는 노동 시간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된다는 경제적 역설이 발생한다. 고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꿈꾸었다.
‘다이달로스의 작품이 스스로 움직이고, 헤파이스토스의 삼각대가 저절로 신성한 일을 수행했던 것처럼, 각각의 도구가 명령에 따라, 또는 자기 자신의 예견에 따라 해야 할 일을 수행할 수 있다면, 그리고 베틀의 북이 저절로 천을 짠다면, 장인에게는 도제가 필요 없을 것이며, 주인에게는 노예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키케로 시대의 그리스 시인 안티파트로스는 곡물을 찧는 물레방아(모든 생산적 기계 설비의 기본 형태)의 발명을 여성 노예의 해방자이자 황금 시대의 재건자라고 환영했다. 오, 이교도들이여. 당신들은 총명한 바스티아와 그보다 앞서 더욱 총명했던 매컬록이 발견한 경제학과 기독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예를 들어, 당신들은 기계가 노동일을 연장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는 것을 몰랐다. 당신들은 한 사람의 노예 상태를 다른 사람의 완전한 인간적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거칠고 교양 없는 일부 벼락부자들을 ‘우수한 방적업자’, ‘대규모 소시지 제조업자’, ‘유력한 구두약 장사’로 만들고자 대중의 노예화를 설교하는 기독교적 정신을 당신들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Ⅲ. 노동의 강화
자본의 수중에 있는 기계가 요구하는 노동일의 무제한 연장에 대해,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나중에는 (생명의 근원이 위험에 빠진) 사회가 반작용하여 법적으로 제한된 표준 노동일을 정한다. 이 표준 노동일 아래에서는, 이전에 보았던 현상인 노동의 강화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절대적 잉여 가치를 분석할 때는 먼저 노동의 외연적 크기가 문제였으며, 노동의 강도는 주어진 것으로 전제했다. 이제 우리는 외연적 크기가 내포적 크기로 전환되는 것, 곧 노동의 강도를 고찰해야 한다.
기계 사용이 보급되고, 기계 사용에 익숙한 특수 노동 계급의 경험이 축점됨에 따라, 노동의 속도, 따라서 노동의 강도가 자연 발생적으로 증가함은 자명하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반세기 동안 노동일의 연장이 공장 노동의 강도 증가와 나란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다루는 노동은 일시적이거나 발작적인 노동이 아닌 변함없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노동이다. 결국 노동일의 연장과 노동의 강도가 서로 배제하는 지점, 곧 노동일의 연장은 오직 노동 강도의 저하와, 반대로 노동 강도의 강화는 오직 노동일의 단축과만 양립하게 되는 지점이 도래한다. 점차 증대하는 노동 계급의 저항 때문에 의회가 노동 시간을 강제적으로 단축하고, 먼저 진정한 공장에 대해 표준 노동일을 명령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마자, 곧 노동일의 연장으로부터 잉여 가치의 생산 증가가 제한된 바로 그 순간부터, 자본은 기계 체계의 발전을 한층 더 촉진하면서 전력을 다해 상대적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데 몰두했다. 이와 동시에, 상대적 잉여 가치의 성격 변화가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상대적 잉여 가치는 노동 생산성 향상에 힘입어, 노동자가 동일한 노동 지출로, 동일한 시간 안에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생산된다. 동일한 노동 시간은 총생산물에 여전히 동일한 가치를 첨가하지만, 이 변하지 않는 교환 가치가 이제는 더 많은 사용 가치에 분산되므로, 상품 단위당 가치는 저하한다. 그러나 강제적 노동일 단축과 함께 사태는 달라진다. 이 단축은 생산성을 발전시키고, 생산 조건을 절약하도록 강력한 지극을 주는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동일한 시간 안에 노동력 지출을 증가시키고, 노동력의 긴장도를 높이며, 느슨한 노동일을 집약적으로 만드는 것을 강요한다. 다시 말해, 단축된 노동일의 범위 안에서만 달성할 정도로 노동을 농축하도록 강요하게 된다.
일정한 시간으로 압축된 더 많은 노동은 당연히 더 많은 노동력으로 계산된다. ‘외연적 크기’의 척도(곧 노동 시간)에 더해 노동은 이제 강도, 농축도 또는 밀도라는 척도를 가지게 된다. 10시간 노동일의 더 집약적인 1시간은 12시간 노동일의 더 느슨한 1시간과 비교해 더 많은 노동(곧 지출된 노동력)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더 집약적인 1시간의 생산물은 더 느슨한 1.2시간(1시간 12분)의 생산물과 동일하거나 더 큰 가치를 갖는다. 노동 생산성의 상승에 의거한 상대적 잉여 가치의 증대를 제외하더라도, 이제는 예를 들어, 6.6시간(6시간 40분)의 필요 노동과 3.3시간(3시간 20분)의 잉여 노동이 종전에 8시간의 필요 노동과 4시간의 잉여 노동이 제공하던 것과 동일한 가치량을 자본가에게 제공한다.
이제 노동이 어떻게 강화되는지를 알아보자. 노동일 단축의 첫 효과는 노동력의 능률이 노동력의 사용 시간에 반비례한다는 자명한 법칙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노동 시간 단축으로 입은 손실은 일정한 한도 안에서는 노동력 지출의 강도를 증가시키면서 보상된다. 더욱이 자본가는 임금 지급 방법으로부터 노동자가 현실적으로 더 많은 노동력을 지출하도록 유도한다. 기계가 거의 아무런 구실도 하지 못하는 도자기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공장법의 실시로부터 노동일의 단순한 단축이 노동의 규칙성, 균등성, 질서, 계속성, 활력을 놀랄 말큼 높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공장에서 이런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는 의문시되었는데, 여기에서는 노동자가 기계의 계속적이며 균일한 운동에 종속되면서 이미 매우 엄격한 규율이 수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844년에 노동일을 12시간 이하로 단축시키는 문제가 토의되었을 때, 공장주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노동자들의 감독들은 각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감시해 왔다. 노동자들의 경각심과 주의력의 정도는 거의 향상될 수 없다. 기계의 속도와 기타의 모든 조건이 불변이라고 전제하면, 잘 경영되고 있는 공장들에서는 노동자들의 주의력의 향상으로부터 어떤 현저한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여러 실험들로 인해 부정되었다. 가드너는 1844년 4월 20일 이후 프레스턴에 있는 자신의 대형 공장 두 곳에서 하루 12시간 노동 대신 11시간 노동을 실시했다. 약 1년이 지난 뒤, 다음과 같은 성과가 나타났다.
‘같은 양의 생산물이 같은 금액의 비용으로 얻어졌으며, 전체 노동자들은 종전에 12시간에 벌던 것과 동일한 금액의 임금을 11시간에 벌었다.’
필자는 여기에서 방적실과 소면실의 실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 실험들에서는 기계 속도의 2% 증가가 함께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매우 다종다양한 무늬 있는 새로운 유행품까지도 짜고 있던 직조부에서는 객관적 생산 조건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844년 1월 6일부터 4월 20일까지는 12시간 노동일에 각 노동자의 주당 평균 임금은 10실링 1.5펜스였으며, 1844년 4월 20일부터 6월 29일까지는 11시간 노동일에 주당 평균 임금이 10실링 3.5펜스였다.’
이 경우, 11시간에 생산한 것이 종전의 12시간에 생산하던 것보다 더 많았는데, 이것은 오로지 노동자들의 더 지속적인 노동과 시간 절약의 결과였다. 노동자들은 동일한 임금을 받고 1시간의 자유 시간을 얻었고, 자본가는 종전과 동일한 생산량을 얻었으며, 1시간분의 석탄, 가스 등의 지출을 절약했다. 호록스·잭슨 합명 회사의 공장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실시되어 동일한 결과를 낳았다.
노동일의 단축은 먼저 노동 강도의 강화를 위한 주체적 조건을 만들어낸다. 이는 노동자로 하여금 일정한 시간에 더 많은 노동력을 지출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노동일 단축이 법적으로 강제되자마자, 기계는 자본가의 수중에서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노동을 짜내기 위한 객체적이며 체계적인 수단이 된다. 이는 두 가지 방식, 곧 기계 속도의 증가와 노동자 1인당 감독 또는 운전하는 기계 수의 증가로부터 달성된다. 기계 구조의 개량은, 부분적으로는 노동자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하며, 부분적으로는 이 개량 자체가 노동의 강화를 유발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이는 노동일의 제한이 자본가로 하여금 생산비를 가장 엄격히 절약하지 않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증기 기관의 개량은 나들통(피스톤)의 속도를 증가시키는 한편, 동력의 더 큰 절약으로부터동일하거나 더 적은 양의 석탄을 소비하면서도, 더욱 많은 기계류를 가동할 수 있게 한다. 전동 장치의 개량은 마찰을 감소시키고, 회전축의 직경과 무게를 끊임없이 최저 한도로 줄였다. 이것은 구식 기계와 비교했을 때, 근대적 기계의 명백한 장점이다. 끝으로, 작업기의 개량은 근대적 증기 직기와 같이 크기를 축소하면서 속도와 능률을 증가시켰거나, 또는 방적기와 같이 몸통의 크기를 증대시키면서, 그것이 움직이는 도구 종류들의 수를 늘렸다. 또는 (10년 전에 자동식 뮬 방적기에서 북의 속도를 1/5만큼 상승시켰던 바와 같은) 눈에 띄지 않는 세부적 변경들로부터 이 도구들의 속도를 증가시켰다.
노동일을 12시간으로 단축시킨 것은 잉글랜드에서는 1832년이었다. 이미 1836년에 어느 공장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30-40년 전에 비하면, 공장에서 행하는 노동은 기계 속도의 현저한 증가가 노동자에게 주의력과 활동성의 강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대단히 증가했다.’
현재 샤프츠베리 백작인 애슐리는 1844년에 하원에서 문서상의 증거를 뒷받침하며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제조 과정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동은 이런 작업들을 도입하던 초기에 비해 3배나 크다. 기계는 의심할 바 없이 수백만 사람들의 힘줄과 근육을 요구하는 작업을 수행했지만, 기계는 또한 그 무서운 운동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노동을 놀랄 만큼 증대시켰다. 1815년에는 하루 12시간 제40번수 실을 방적하는 두 대의 뮬 방적기를 돌보는 노동자는 8마일 거리를 걸어야 했다. 1832년에는 그 거리가 20마일이었으며, 그 이상 되는 경우도 잦았다. 1825년에 방적공은 12시간에 각 뮬 방적기에 820회, 따라서 두 대에는 합계 1,640회나 실을 걸어야 했다. 1832년에는 방적공은 12시간 노동일에, 각 뮬 방적기에 2,400회, 두 대에는 모두 4,800회 실을 걸어야 했으며, 또 일부 경우에는, 더욱 많은 노동량이 요구되었다. 여기에 1842년에 받은 또 하나의 문서가 있는데, 그것은 노동이 점차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증명한다. 그 이유는 움직이는 거리가 증가하기 때문일 뿐 아니라, 직공의 수는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데 생산되는 상품의 양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노동이 더 많이 요구되는 질 나쁜 면화가 자주 방적되는 것도 원인이다. 소면실에서도 노동이 역시 크게 증가했다. 종전에 두 사람이 담당하던 노동을 지금은 한 사람이 수행한다.
직조실에서 기계 속도 증가는 노동 강도를 최근 수년간 10% 이상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대부분 여성인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부담이다. 실제 생산량 증가는 이를 뒷받침한다. 주당 방적 타래 수는 1838년 18,000개에서 1843년 21,000개로 늘었다. 특히, 증기 직기의 씨실 북 운동 속도가 1819년 분당 60회에서 1842년 분당 140회로 급증한 사실은 노동량의 비약적 확대를 명확히 보여준다. 12시간 노동법이 실시되던 1844년에 이미 달성된 이와 같은 주목할 만한 노동 강도에 비추어 보면, 이 방향으로 더 이상 진전이 어렵고, 따라서 노동 시간을 더욱 감소시키는 것은 생산을 감소시키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는 영국 공장주들의 말은 그럴듯하게 보였다. 그들의 이유가 언뜻 보기에 그럴듯했다는 사실은 당시 그들을 성실하게 검열한 공장 감독관 호너의 다음과 같은 말로부터 가장 훌륭하게 증명된다.
‘생산량은 주로 기계 속도로부터 규제되므로, 기계를 다음과 같은 조건들, 곧 지나치게 급속한 마멸로부터 기계를 보호할 것, 제품의 품질을 유지할 것, 그리고 노동자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고, 기계의 운동에 따라갈 수 있을 것 등과 일치하는 최고 속도로 가동시키는 것이 공장주의 이익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공장주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는 위의 조건들을 충분히 고려하며 기계의 최고 운전 속도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공장주가 지나치게 운전 속도를 높여 파손품과 불량품이 많이 나오고, 이익을 상쇄하고도 남게 되어 기계 속도를 다시 완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경우도 많다. 활동적이며 머리 좋은 공장주는 안전한 최대 속도를 틀림없이 발견할 것이므로, 본인은 12시간에 생산하던 것을 11시간에 생산하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본인은 성과급을 받는 노동자가 동일한 노동 강도를 계속 유지하려고 최대한 노력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호너는 가드너 등의 실험에도 불구하고, 노동일을 12시간 이하로 더 단축시킨다면, 생산량은 감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10년 뒤에, 1845년 당시의 위와 같은 자기 견해를 인용하면서, 기계와 인간 노동력의 탄력성이 노동일의 강제적 단축으로 말미암아 매우 크게 팽창하게 된다는 것을 자신이 너무 과소평가한 증거로 제시한다.
이제 우리는 잉글랜드의 면 공장, 양모 공장, 명주실 공장, 아마 공장에 1847년의 10시간 노동법이 실시된 시기로 넘어간다.
‘방추의 속도는 1분에 스로슬 방적기에서는 500회전만큼, 뮬 방적기에서는 1,000회전만큼 증가했다. 곧 1839년에 1분 4,500회전이었던 스로슬 방추의 속도는 현재(1862년) 5,000회전에 달하며, 5,000회전이었던 뮬 방추의 속도는 현재 1분 6,000회전에 달한다. 이는 전자에서는 1/10, 후자에서는 1/5의 속도 증가에 해당한다.’
맨체스터에 가까운 패트리크로프트의 유명한 토목 기사 네즈미스는 1852년, 레너드 호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1848년에서 1852년 사이에 이루어진 증기 기관의 개량들을 설명했다. 증기 기관의 마력이 공식적 공장 통계에서는 계속 1828년의 비슷한 증기 기관의 힘을 표준으로 계산되므로, 이는 명목적인 것에 불과하며 현실적 힘의 지표로만 기능할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 뒤, 그는 특히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일한 무게의 증기 기관이 종전보다 평균 50% 더 많이 수행한다는 것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속도가 분당 220피트로 제한되던 시기에 50마력을 내던 동일한 증기 기관들이, 현재에는 석탄을 적게 소비하면서도 100마력 이상을 내고 있다. 100마력을 가진 근대적 증기 기관은 그 구조, 보일러의 용적, 구조상의 개량 등으로 종전보다 훨씬 더 큰 힘으로 운전된다. 그러므로 마력과 비교하면 종전과 동일한 수의 직공이 고용된다 하더라도, 작업기와 비교하면 더 적은 수의 직공이 고용된다. 1850년 영국 공장들에서는 25,638,716개의 북과 301,445대의 직기를 운전하고자 134,217의 명목 마력이 사용되었다. 1856년에는 북과 직기의 수는 각각 33,503,580개와 369,205대였다. 1850년 기준으로 명목 마력을 계산했다면, 1856년에는 175,000마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식 보고에 따르면, 그것은 불과 161,435마력에 지나지 않아 1850년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보다 10,000마력 이상이 적다. 1856년의 보고에서 확인된 사실들은 공장 제도가 매우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는 점, 마력과 대비해서는 종전과 동일한 수의 직공들이 고용되더라도, 작업기와 대비한 직공 수는 감소했다는 점, 증기 기관이 힘의 절약과 기타 방법으로부터 더 큰 무게의 기계들을 운전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작업기와 제조 방법의 개선, 기계 속도의 증가, 기타 많은 원인들의 결과, 노동자의 해고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종 기계들을 크게 개량한 결과, 기계의 생산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노동일의 단축이 이런 개량에 자극을 주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이런 개량과 노동자의 더욱 강화된 노동은 단축된(2시간, 곧 1/6 단축된) 노동일에서 적어도 종전의 더 긴 노동일에 생산되던 양만큼의 제품을 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노동력의 착취가 더욱 강화됨에 따라, 공장주들의 부가 얼마나 증가했는지는 단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잉글랜드 면 공장과 기타 공장 수의 연평균 증가가 1838년부터 1850년까지는 32개였으나, 1850년부터 1856년까지는 86개로 늘어났다.
10시간 노동일의 영향을 받아 1848년부터 1856년까지 8년 동안 잉글랜드 공업이 크게 발전했더라도, 그 뒤 1856년부터 1862년까지 6년 동안의 발전은 그것을 훨씬 능가했다.
명주실 공장
예를 들어, 명주실 공장의 방추 수는 1856년 1,093,799개에서 1862년 1,388,544개로 26.9% 증가했고, 직기 수는 1856년 9,260대에서 1862년 10,709대로 15.6% 증가했다. 이와 반대로, 노동자 수는 1856년 56,137명에서 1862년 52,429명으로 7% 감소했다.
소모사 공장
1850년에 소모사 공장에서 사용된 방추 수는 875,830개, 1856년에는 1,324,549개(51.2% 증가), 1862년에는 1,289,172개(2.7% 감소)였다. 그러나 복연 방추가 1856년 계산에는 포함되고 1862년 계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방추 수는 1856년 이래 거의 변함이 없었다. 이와 반대로, 방추와 직기의 속도는 1850년 이래 2배로 증가한 경우가 많았다. 소모사 공장의 증기 직기 수는 1850년 32,617대, 1856년 38,956대, 1862년 43,048대였다. 여기의 종업원 총수는 1850년 79,737명, 1856년 87,794명, 1862년 86,063명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그중 14세 미만의 아동은 1850년 9,956명, 1856년 11,228명, 1862년 13,178명으로 증가했다. 결국, 1862년에는 1856년에 비해 직기 수가 현저히 증가했음에도, 취업 노동자 총수는 감소했으며, 착취당하는 아동들의 수는 증가했다.
1863년 4월 27일, 페런드는 하원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본인은 랭커셔와 체셔의 16개 지구 노동자 대표들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들이 본인에게 전하는 바에 따르면, 기계 개량의 결과로 공장들에서 노동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종전에는 노동자 1명이 조수를 데리고 2대의 직기를 담당했으나, 현재는 1명이 조수도 없이 3대를 담당하고 있으며, 심지어 4대까지 담당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위에서 든 사실에서 명백하듯이, 12시간 노동이 현재는 10시간 노동 이하로 압축되고 있다. 그러므로 공장 노동자들의 수고가 최근 10년간 얼마나 많이 증가했는지는 자명하다.’
그러므로 비록 공장 감독관들이 1844년과 1850년의 공장법이 가져온 유익한 결과들을 꾸준하고 완전히 정당하게 찬양하고 있지만, 그들은 또한 노동일의 단축이 이미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따라서 노동력 자체를 파괴하는 정도의 노동 강도를 야기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대다수의 면 공장, 소모사 공장, 명주실 공장들에서는 최근 수년간 운전 속도가 매우 빨라진 기계를 노동자들이 제대로 관리하고자 극도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폐병으로부터 사망률 증가의 한 원인으로 된 것 같다(그린하우는 최근 자기의 보고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노동일의 연장이 법률로 영구적으로 금지되자, 자본은 이를 보상하고자 노동 강도를 체계적으로 강화하는 경향과, 노동력을 흡수하는 더욱 완전한 수단으로 기계를 개량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얼마 안 가 다시 노동 시간의 새로운 단축을 불가피하게 하는 한계점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반면에, 1848년부터 현재까지의 10시간 노동일 시기에 영국 공업의 급속한 발전은 1833년부터 1847년까지의 12시간 노동일 시기의 발전을 능가한다. 이 급속한 발전의 정도는 공장 제도 도입 이래 첫 반세기(무제한 노동일 시기)의 공업 발전을 12시간 노동일 시기의 발전이 능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
15-4. 공장
우리는 이 장의 첫머리에서 공장의 본체, 곧 기계 체계를 고찰했다. 그 후, 기계가 여성 및 아동 노동을 활용하며 자본이 착취할 인간 재료의 양을 어떻게 늘리는지, 기계가 노동일의 무제한적 연장으로 노동자의 전체 생활 시간을 어떻게 잠식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욱 방대한 생산물을 더욱 짧은 시간에 이루는) 기계의 발전이 어떻게 노동력의 집약적 착취를 위한 체계적 수단(일정한 시간 동안 더 많은 작업을 하는)이 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공장을 전체로, 그리고 그 가장 발달한 형태에서 고찰할 차례다.
자동 공장 전문가 유어는『공장 철학: 13-14』에서 공장을 두 가지 측면에서 묘사한다. 한편으로, 공장은 ‘중심 동력으로부터 끊임없이 작동하는 생산적 기계 체계를, 꾸준한 숙련을 갖춘 각종 직급의 성년·미성년 노동자들이 결합된 협업’으로 운전하는 곳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장은 ‘공동의 물품 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함께 작용하며, 모두가 하나의 자율적인 동력에 종속되는, 각종 기계적이고, 의식 있는 기관들로 구성된 방대한 자동 장치’다.
이 두 표현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전자에서는 결합된 집단적 노동자가 능동적 주체로, 기계적 자동 장치가 객체로 나타난다. 반면 후자에서는 자동 장치 자체가 주체이며, 노동자들은 단지 의식 있는 기관으로 자동 장치의 의식 없는 기관들과 협력하며 중심 동력에 종속될 뿐이다. 첫째 표현은, 기계를 대규모로 사용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존재할 수 있으나, 둘째 표현은, 자본으로부터 기계 사용, 곧 근대적 공장 제도를 특징짓는다. 이 때문에 유어는 동력의 출발점인 중심 기계를 자동 장치뿐 아니라 독재자로 묘사하길 즐겼다.
‘이런 큰 작업장들에서는 증기라는 인자한 임금이 그 주위에 무수한 신하들을 모으고 있다.’
노동 도구와 더불어, 그것을 사용하는 노동자의 숙련 역시 기계로 옮겨간다. 이로부터 도구의 작업 능력은 인간 노동력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된다. 따라서 공장제 수공업에서 분업이 의존했던 기술적 토대는 파괴된다. 결과적으로, 공장제 수공업을 특징짓던 전문 노동자들의 위계 제도 대신, 자동 공장에서는 기계 관리인들이 수행해야 할 작업의 균등화 또는 수평화 경향이 나타난다. 또한 부분 노동자들 사이의 인위적 구별은 사라지고, 주로 나이와 성별에 따른 자연적 차이가 지배하게 된다.
자동 공장에서 분업은 주로 전문화된 기계들에 노동자들을 분배하는 형태다. 또한 공장의 여러 부문으로 일정한 수의 노동자를 분배하지만, 이들은 유기적 집단을 이루지 않는다. 공장의 각 부문에서 이들은 쭉 늘어선 같은 종류의 작업기에 붙어 작업하며, 이들 사이에는 단순한 협업만 존재할 뿐이다. 여기서는 공장제 수공업과 같은 유기적 집단 대신, 우두머리 노동자와 여러 명의 조수 사이의 결합이 나타난다. 주된 분업은 실제로 작업기에 붙어 노동하는 기계 취급 노동자(원동기를 돌보는 일부 노동자 포함)와 그들의 단순한 조수들(거의 전적으로 아동) 사이에 이루어진다. 대체로 기계에 가공용 재료를 공급하는 원료 공급 노동자들은 모두 조수다.
이 두 부류의 주요 노동자들 외에도, 예를 들어, 기술자, 기계공, 목수처럼 모든 기계를 돌보고, 때때로 수리하는 수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인원들이 있다. 이들은, 일부는 과학 교육을, 일부는 수공예 훈련을 받은 고급 노동자층으로, 공장 노동자층과는 구별되며 다만 후자와 함께 집계될 뿐이다. 이 분업은 순전히 기술적인 성격을 띤다. 기계에서 작업하려면 노동자는 자동 장치의 규칙적이고, 연속적인 운동에 자신의 움직임을 적응시키는 법을 어려서부터 배워야 한다. 전체 기계 장치는 집단적으로 동시에 작용하는 각종 기계들의 체계이므로, 이 체계에 의거한 협업은 각종 노동자 집단들을 각종 기계에 분배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기계제 생산에서는 이 분배를 공장제 수공업처럼 고정시켜 동일한 노동자를 동일한 기능에 계속 매어둘 필요가 없다. 공장 전체의 운동이 노동자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노동 과정을 중단시키지 않고도 끊임없이 인원을 교체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가장 뚜렷한 증거는 1848-1850년 영국 공장주들의 반란(10시간 노동법에 대한 반대) 동안 채택되었던 교대 제도다(제1권 제10장 제6절 참조). 결국, 기계와 함께하는 작업은 젊은이들도 빨리 배울 수 있기에, 특수한 부류의 노동자들을 기계 취급 노동자로 육성할 필요가 없다. 한편, 공장에서 단순한 조수들의 작업은 어느 정도 기계로 대체하며, 그 작업 자체가 매우 단순하므로, 이 지겨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빠르게, 그리고 끊임없이 교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기계는 기술적 관점에서는 기존의 분업 체계를 타파한다. 그러나 그 분업 체계는 처음에는 공장제 수공업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으로 공장에 존속하며, 다음에는 자본의 노동력 착취 수단으로 더욱 지독한 형태로 체계적으로 재생산되어 고정된다. 이전에는 동일한 도구를 다루는 일이 평생의 전문직이었으나, 이제는 동일한 기계에 봉사하는 일이 평생의 전문직이 된다. 기계는 노동자 자신을 유년 시절부터 특정 기계의 한 부분으로 전환시키는 일에 악용된다. 그 결과, 노동자 자신의 재생산에 필요한 비용이 현저히 줄어들 뿐 아니라, 동시에 공장 전체, 곧 자본가에 대한 노동자의 절망적인 종속이 완성된다.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사회적 생산 과정의 발전에서 나오는 생산성 증대와 그 발전의 자본주의적 이용으로 말미암은 생산성 증대를 구별해야 한다.
공장제 수공업과 수공업에서는 노동자가 도구를 사용하지만, 공장에서는 기계가 노동자를 사용한다. 전자에서는 노동 수단의 운동이 노동자로부터 출발하지만, 후자에서는 노동자가 노동 수단의 운동을 뒤따라가야 한다. 공장제 수공업에서 노동자들은 하나의 살아 있는 기구의 구성원이지만, 공장에서는 하나의 생명 없는 기구가 노동자로부터 독립해 존재하며, 노동자는 그것의 단순한 살아 있는 부속물이 되어 있다.
‘똑같은 기계적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싫증나고, 단조로운 고역, 이것은 시시포스의 형벌과도 같다. 노동이라는 무거운 짐이, 바위처럼, 지쳐빠진 노동자 위에 끊임없이 떨어져 내려온다.’
공장 노동은 신경 계통을 더할 수 없이 피로하게 만들고, 근육의 다면적 운동을 억압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로운 육체적·정신적 활동을 전혀 할 수 없게 한다. 노동이 가벼워지는 것조차 고통의 근원이 되는데, 이는 기계가 노동자를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노동으로부터 일체의 내용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노동 과정일 뿐 아니라 동시에 자본의 가치 증식 과정이기에, 어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든 노동자가 노동 조건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조건이 노동자를 사용한다는 점이 공통된다. 그러나 이 거꾸로 된 관계는 기계의 출현과 함께, 비로소 기술적으로 분명한 현실성을 얻게 된다. 자동 장치로 전환되면서 노동 수단은 노동 과정의 진행 중에 자본(곧 살아 있는 노동력을 지배하며 흡수하는 죽은 노동)으로 노동자와 대립한다. 생산 과정에서 지적 요소를 육체적 노동에서 분리하고, 전자를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력으로 전환하는 일은, 앞서 지적했듯, 기계를 토대로 세워진 대공업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된다. 개별 기계 취급 노동자의 특수한 기능은 (기계 체계에 체현된) 과학, 거대한 물리력, 사회적 집단 노동 앞에서 보잘것없이 사라진다. 이 기계 체계가 이 세 가지 힘과 결합하여 고용주의 지배력을 구성한다. 바로 그 때문에, 기계 자체와 그 독점권을 머릿속에서 혼동하는 고용주는 ‘직공들’과 충돌할 때, 경멸적으로 그들에게 이렇게 부르짖는다.
‘공장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노동이 사실상 매우 저급한 종류의 기능 노동이라는 것, 자기들의 노동처럼 얻기 쉬운 노동은 없으며, 그 질에 비해 이처럼 많은 보수를 받는 노동은 없다는 것, 다른 어떤 노동도 단기간의 훈련으로 이처럼 신속히 또 풍부하게 공급될 수는 없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용주의 기계는 노동자의 노동과 기능(6개월이면 익숙하게 배울 수 있고, 어떤 농촌 일꾼도 배울 수 있는)보다 생산에서 사실상 훨씬 더 중요한 구실을 한다.’
노동자를 노동 수단의 규칙적 운동에 기술적으로 종속시켜야 하는 필요성, 그리고 노동 집단이 남녀노소 모든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병영과 같은 규율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 규율은 공장에서 완전한 제도로 정교하게 발전하며, 이미 언급한 감독 노동을 완전히 발달시키면서, 노동자를 육체적 노동자와 노동 감독자, 곧 산업군의 병사와 하사관으로 분할하게 된다.
‘(자동 공장의) 주된 곤란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규칙적 노동 관습을 버리고 복잡한 자동 장치의 변함없는 규칙성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데 있었다. 그러나 자동 기계의 요구에 알맞은 성공적인 공장 규율집을 만들어내어 실시하는 것은 헤라클레스나 할 만한 사업이었으며, 아크라이트가 이 고귀한 업적을 달성했다. 공장 제도가 완벽하게 조직되어 노동이 더할 수 없이 경감된 오늘날에도, 이미 성년기에 달한 사람을 유용한 공장 노동자로 전환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장 규율집에서 자본가는 노동자들에 대한 독재 권력을 사적 입법자처럼 자기 마음대로, (부르주아지가 그토록 좋아하는 권력 분립도, 그보다 더 좋아하는 대의제도 없이) 규정한다. 이 공장 규율집은 노동 과정에서 사회적 규제(대규모 협업, 특히 노동 수단인 기계의 공동 사용이 행해지는 곳에서는 필요하다)를 자본주의적으로 그린 만화에 불과하다. 노예 감시자의 채찍 대신 노동 감독자의 처벌 규정집이 등장한다. 물론 모든 처벌은 결국 벌금과 임금 삭감이며, 공장 리쿠르구스의 입법적 총명 덕분에 자본가의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 준수하는 것보다 오히려 자본가에게 더 유리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오직 공장 노동이 행해지는 물질적 조건들만을 지적한다. 빈틈없이 설치된 기계들은 계절처럼 규칙적으로 사망자와 부상자의 명단을 제공한다. 이러한 생명의 위험 외에도, 인위적으로 만든 높은 온도, 원료의 먼지로 가득 찬 공기, 고막을 찢는 소음 따위로 말미암아 모든 감각 기관이 손상된다. 공장 제도에서 급속히 성숙되고, 강화되는 사회적 생산 수단 사용의 절약은, 자본의 수중에서는, 작업 중 노동자의 생명에 필요한 것들(곧 공간·공기·광선)을 체계적으로 빼앗아가는 것으로 변한다. 또한 생명에 위험하고, 건강에 해로운 (생산 과정의) 부수물들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모든 수단, 노동자의 편의 시설은 말할 것도 없이, 이를 체계적으로 빼앗아 가는 것으로 변한다. 푸리에가 공장을 ‘완화된 감옥’이라고 부른 것이 과연 부당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