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상대적 잉여 가치의 생산


15. 기계와 대공업

 

15-1. 기계의 발달

 

존 스튜어트 밀은정치 경제학 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지금까지 기계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어느 누가 그날의 수고를 덜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의 수고를 덜어 준다는 일은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사용되는 기계의 목적이 결코 아니다. 기계는 노동 생산성을 발전시키는 다른 모든 수단과 마찬가지로 상품의 값을 낮추고,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신을 위해 필요한 부분을 단축시키며, 자본가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부분을 연장시킨다. 기계는 오직 잉여 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생산 방식의 변혁은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노동력에서, 대공업에서는 노동 수단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먼저 노동 수단이 어떻게 도구에서 기계로 전환되는지, 곧 기계와 수공업 도구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다만, 사회의 역사 시대가 지질 연대처럼 엄밀한 경계선으로 구분되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큰 일반적 특징에만 초점을 맞춘다.

 

수학자와 기계학자는 일부 영국 경제학자들이 재현하듯이, 도구는 단순한 기계이고, 기계는 복잡한 도구라고 설명하며,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본다. 심지어 지렛대, 경사면, 나사, 쐐기 같은 간단한 역학적 수단까지도 기계라고 부른다. 모든 기계가 그런 간단한 역학적 수단들로 구성되며, 그 결합 방식 때문에 겉으로 복잡해 보인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설명은 역사적 요소가 결여되어 아무 소용이 없다. 또 다른 견해는, 도구에서는 인간력이 동력이고, 기계에서는 동물, , 바람 같은 자연력이 동력이라는 점에서 둘의 차이를 찾는다. 이 논리대로라면, 여러 시대에 사용된 소가 끄는 쟁기는 기계에 해당하나, 노동자 한 명이 1분당 96,000개의 코를 짜내는 클라우센식 회전 기계는 단순한 도구로 전락한다.

 

게다가 같은 직기라도 손으로 운전되면 도구이고, 증기로 운전되면 기계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더욱이 동물의 힘을 이용하는 일은 인류의 가장 오랜 발명 중 하나이므로, 기계적 생산이 수공업적 생산보다 앞섰다는 결론에 이른다. 와이어트가 1735년 방적 기계를 공개하며 18세기 산업 혁명을 알릴 때, 그는 동력이 나귀 몫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이 기계를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방적하는기계라고 불렀다.

 

완전히 발달한 기계는 본질적으로 동력기, 전동 장치, 도구 또는 작업기라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동력기는 전체 기계 장치의 힘을 공급한다. 동력기 중에는 증기 기관, 열기관, 전자기 기관처럼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도 있고, 물레방아의 낙수나 풍차의 바람처럼 외부의 기존 자연력으로부터 동력을 공급받는 것도 있다. 전동 장치는 속도 조절 바퀴, , 톱니바퀴 · 도르래, 피대, 밧줄(로프), 벨트, 작은 톱니바퀴 등 여러 부품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운동을 조절하고, 필요에 따라 운동의 형태를 변경하며(: 수직 운동을 원 운동으로 전환), 운동을 작업기에 분배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기계 장치 중 동력기와 전동 장치는 오직 작업기를 구동시켜, 작업기가 노동 대상을 고정하고,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도록 기능한다. 기계 장치의 이 마지막 부분, 곧 작업기가 바로 18세기 산업 혁명의 출발점이었다. 현재에도 수공업적 생산이나 공장제 수공업적 생산이 기계제 생산으로 이행할 때는 언제나 이 작업기가 출발점이 된다.

 

진정한 작업기를 면밀히 살펴보면, 형태는 크게 달라졌으나 대체로 수공업자나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가 사용하던 장치와 도구와 동일하다. 다만 이것은 더 이상 인간의 도구가 아닌 기계 장치의 도구, 곧 기계적 도구이다. 역직기처럼 기계 전체가 이전 수공업적 도구에서 약간 변형된 기계적 복제이거나, (방적기의 북, 제재기의 톱 따위) 작업기 몸통에 부찪된 구성 부분들은 이미 이전부터 잘 알려진 것들이다. 이 도구들과 기계 몸통은 그 발생 초기부터 구별된다. 도구들은 대개 수공업적 또는 공장제 수공업적 방식으로 계속 생산되며, 그 후 (기계의 생산물인) 작업기 몸통에 맞게 부착된다. 그러므로 작업기는, 일단 가동되면 자체의 도구들을 가지고 (종전 노동자가 했던 것과)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는 기계 장치이다. 동력이 인간에게서 나오든, 기계에서 나오든 사태의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진정한 도구가 인간의 손을 떠나 기계 장치로 옮겨지면, 기계는 단순한 도구를 대체한다. 기계와 도구의 차이는 인간 여전히 원동력인 경우에도 즉시 드러난다. 인간이 한 번에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의 수는 결국, 자신의 자연적 생산 도구, 곧 팔다리와 같은 신체 기관 수로부터 제한된다.

 

독일에서는 초기에 방적공 한 명이 두 개의 물레를 동시에 돌리도록, 곧 두 손과 두 발로 동시에 작업하도록 시도했으나 너무 어려웠다. 이후 발로 움직이는 두 개의 북(방추)을 가진 물레가 발명되었으나, 두 올의 실을 동시에 뽑는 숙련된 방적공은 머리를 둘 가진 사람만큼이나 드물었다. 이와 달리, 다수의 북을 가진 제니(Jenny) 방적기는 처음부터 12개에서 18개의 북으로 방적하며, 양말 직조기는 단번에 수천 개의 바늘로 직조한다. 이처럼 하나의 작업기가 동시에 작동시키는 도구의 수는 애초부터 (수공업자의 도구가 벗어날 수 없던) 생리 기관으로부터의 제한성에서 해방된다.

 

많은 손도구에서 단순한 동력으로의 인간과 진정한 노동자로의 인간은 명확하게 구분된다. 예를 들어, 물레에서 발은 오직 동력으로만 작용하지만, 북에 붙어 작업하는 손은 실을 잡아뽑거나, 꼬는 실제 방적 작업을 수행한다. 산업 혁명은 먼저 수공업적 도구 중 바로 이 후자 부분(여기서는 북)에 주목하고, 동력이라는 순전히 기계적인 기능은 (기계를 감시하고, 오류를 시정하는 새로운 노동과 아울러) 여전히 인간에게 맡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연장 방아를 돌리거나, 펌프질, 풀무질, 절구질처럼 인간이 단순히 동력으로만 기능하는 경우에는, 동물, , 바람이 동력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도구들은 부분적으로는 공장제 수공업 시기에, 또 여러 지역에서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기계로 발전하고 있었으나, 생산 방식 자체를 변혁시키지는 못했다.

 

대공업 시기에 이르면, 이러한 도구들은 손도구 형태에서도 이미 기계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예를 들어, 1836년에서 1837년에 네덜란드 사람들이 할렘 호수의 물을 퍼내고자 사용한 펌프는 일반적인 펌프 원리로 제작되었으나, 그 나들통(피스톤)을 움직이는 일은 인간의 손이 아니라 거대한 증기 기관이었다. 영국에서 대장장이가 사용하던 매우 불완전한 풀무 역시 단순히 그 손잡이를 증기 기관에 연결하면서 송풍기로 전환시켰다.

 

17세기 말 공장제 수공업 시기에 발명되어, 1780년까지 존속한 증기 기관은 아무런 산업 혁명도 일으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작업기의 발명이 증기 기관의 혁명을 필연적으로 만들었다. 인간이 도구를 가지고 노동 대상에 작용하지 않고, 작업기의 단순한 동력이 되는 순간부터, 동력의 담당자가 인간의 근육이라는 사실은 우연적으로 되며, 바람, , 증기 따위가 인간을 대신했다. 물론 이로 인해, 원래 인간의 힘만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 기계 장치에 커다란 기술적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재봉기, 빵 제조기 등 앞으로 진로를 개척해 나가야 할 모든 기계는, 소규모 사용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현재 인간 동력과 순수한 기계적 동력 모두에 맞도록 제작되고 있다. 산업 혁명의 시초가 된 기계는 단 하나의 도구만을 다루던 노동자를 기계 장치로 대체한다. 이 기계 장치는 다수의 같은 도구나 같은 종류의 도구를 한꺼번에 사용하여 작업하며, 단 하나의 동력으로부터 가동된다. 이것은 기계이기는 하나, 아직은 기계제 생산의 단순한 요소로 존재한다.

 

작업기의 규모가 커지고, 작업 도구의 수가 늘어나면, 이를 가동할 더 큰 기계 장치가 요구된다. 이 기계 장치는 자체 저항력을 극복하고자 인간의 동력보다 더 강력한 힘을 필요로 한다(인간이 균일하고, 연속적인 운동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불완전한 도구임을 차지하더라도). 인간이 이미 단순한 동력으로만 작용하며, 작업기가 도구의 위치를 차지했다는 가정 하에, 이제 자연력이 동력으로 인간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공장제 수공업 시기부터 전해 내려온 모든 동력 중에서 마력(馬力, horse power)이 가장 비효율적이다. 이는 말이 자신의 두뇌를 가지고 있어 비용이 많이 들고, 공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말은 대공업의 초기 단계에 매우 폭넓게 사용되었는데, 이는 당시 농학자들의 불평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기계적 힘을 마력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남아 있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바람은 너무나 변화가 심하고 통제할 수 없었다. 더욱이 대공업의 발생지인 영국에서는 수력의 사용이 공장제 수공업 시기에도 우세했다. 이미 17세기에 두 개의 맷돌을 하나의 물레방아로 돌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전동 장치의 규모가 수력에 비해 지나치게 커지자 수력이 불만족스러워졌다. 이는 마찰의 법칙을 더욱 정밀하게 연구하게 만든 한 가지 이유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지렛대를 밀고 당겨 가동하던 제분기에서 동력인 수력의 작용이 불규칙하자, 그 뒤 대공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관성바퀴(fly-wheel)의 이론과 응용이 나타났다. 이처럼 대공업에서 최초의 과학적·기술적 요소들은 이미 공장제 수공업 시기에 발전했다.

 

아크라이트의 스로슬 방적기는 처음부터 물로 운전되었다. 그러나 수력은 그 흐름을 마음대로 늘릴 수 없고, 특정 계절에는 고갈되며, 무엇보다도 지역적 성격을 띠는 등 주된 동력으로 사용하기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와트의 제2의 복동식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부터 비로소 이상적인 원동기가 출현한다. 이 원동기는 석탄과 물을 소비하여 스스로 동력을 생산하고, 그 힘을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 이는 이동할 뿐 아니라, 스스로 이동 수단이 되며, 물레방아처럼 농촌적이 아닌 도시적이다. 또한 생산을 농촌에 분산시키지 않고, 도시에 집중시킬 수 있으며, 기술 적용이 보편적이고, 설치 장소 선정에서 지역적 제약을 거의 받지 않는다.

 

와트의 위대한 천재성은 17844월에 얻은 특허권 명세서에 명확히 나타난다. 그는 거기서 자신의 증기 기관이 특정 목적이 아닌 대공업의 보편적 동력기임을 서술한다. 그가 명세서에서 제시한 사용처 중에는 증기 망치처럼 반세기 이상 지나서야 도입된 것들도 적지 않다. 다만, 그는 증기 기관을 항해에 적용하는 일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었다. 그러나 그의 계승자들인 볼튼·와트 회사는 1851년 런던 산업 박람회에 대양 기선용의 거대한 증기 기관을 선보인다.

 

도구가 인간 유기체의 도구로부터 기계 장치의 도구, 곧 작업기의 도구로 전환된 후에야, 동력 장치 역시 인간력의 제한성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독립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로부터 앞서 살펴보았던 개개의 작업기는 이제 기계제 생산의 단순한 요소로 격화된다. 하나의 동력기가 많은 작업기를 동시에 가동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동시적으로 운동하는 작업장 수가 늘어남에 따라 동력 장치도 커지고, 이와 더불어 전동 장치도 하나의 방대한 장치가 발전한다. 이제 우리는 같은 종류의 수많은 기계 협업과 복합적인 기계 체계를 구분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 제품은 전적으로 동일한 작업가로부터 만들어진다. 이 작업기가 이전에는 한 사람의 수공업자가 자기 도구로(: 직조공이 직조기로) 수행했거나, 또는 여러 수공업자가 순차적으로 각종 도구들을 가지고 수행했던 모든 작업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근대의 편지 봉투 제조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노동자 한 명이 접지 칼로 종이를 접고, 다른 노동자가 풀칠하며, 3의 노동자가 봉투 뚜껑을 접고, 4의 노동자가 꽃 모양을 찍는 식이었다. 이처럼 각각의 부분 작업을 할 때마다, 봉투는 여러 사람에게 옮겨가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단 한 대의 봉투 제조기가 이 모든 작업을 한 번에 수행하여, 1시간에 3,000매 이상의 봉투를 만든다. 1862년 런던 산업 박람회에 출품된 미국제 종이 봉지 제조기는 종이를 자르고, 풀칠하며, 접는 작업을 1분에 300개씩 완성했다. 공장제 수공업 내부에서 일련의 작업들로 분할되어 순차적으로 수행되었던 전체 공정이 이제는 결합된 각종 도구를 작동시키는 한 개의 작업기로 완수된다. 이 작업기가 복잡한 수공업적 도구의 기계적 복제이든, 공장제 수공업에서 전문화된 간단한 각종 도구의 결합이든 관계없이, 두 경우 모두 공장(기계제 생산에 기반을 두는 작업장)에서는 단순 협업이 다시 나타난다.

 

노동자를 일단 도외시하면, 이 협업은 먼저 같은 종류의 작업기가 동시적으로 함께 움직이며, 한곳에 집합한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방직 공장은 같은 건물에 나란히 놓인 많은 역직기로, 재봉 공장은 많은 재봉기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기술상의 통일성이 존재하는데, 많은 같은 종류의 작업기가 공동의 원동기 심장 고동으로부터 전동 장치를 통해 동시에 또 균등하게 박동을 받기 때문이다. 전동 장치 또한 특수한 곁가지가 각 작업기로 갈라져 나가면서 어느 정도까지 작업기들에 공동으로 작용한다. 많은 도구가 한 개의 작업기 기관을 이루듯, 많은 작업기는 동일한 동력 기구의 기관을 형성한다.

 

진정한 기계 체계가 개별적인 독립 기계 대신 등장하는 것은 노동 대상이 일련의 상호 보완적인 각종 작업기로부터 수행되는 서로 관련된 계열의 부분 과정들을 통과할 때 비로소 일어난다. 여기서 우리는 공장제 수공업의 특징인 분업으로부터 비롯된 협업을 다시 목격하는데, 이제 이 협업은 특수한 기능을 가진 작업기들의 결합으로 나타난다. 양모 공장제 수공업의 털 빗질, 털 깎기, 털 직조 작업자들처럼 각종 부분 노동자들이 사용하던 특수한 도구들은 이제 전문화된 작업기의 도구로 전환된다. 이 각 작업기는 결합된 기계 장치 내에서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는 하나의 특수한 기관을 형성한다.

 

기계 체계가 처음 도입되는 분야에서는 대개 공장제 수공업 자체가 생산 과정의 분할(그리고 조직)을 위한 자연적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나 곧 공장제 수공업적 생산과 기계제 생산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전자에서는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손도구를 가지고 특수한 부분 과정을 수행해야 한다. 노동자가 각 부분 과정에 적응하지만, 과정 자체는 미리 노동자에게 적합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주체적인 분업 원칙은 기계제 생산에서 사라진다. 여기서는 총 과정이 객체적으로 그 자체로서 고찰되며, (인간의 손으로 어떻게 수행되는지와 무관하게)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단계로 분할된다. 각각의 부분 과정을 어떻게 수행하고, 상이한 부분 과정을 어떻게 통합하는지는 기계학이나 화학 등의 응용으로부터 해결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이론적 구상은 실제로 축적된 대규모 경험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각각의 부분 기계는 바로 그다음 기계에 원료를 공급하며, 이 기계들은 모두 동시에 작동한다. 따라서 생산물은 항상 형성 과정의 상이한 단계에 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한 생산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행한다. 공장제 수공업에서 부분 노동자들의 직접적 협업이 부분 노동자 집단들 사이에 일정한 수적 비율을 확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편성된 기계 체계에서도 한 부분 기계가 다른 부분 기계와 끊임없이 서로 관련되어 움직이므로, 그들 사이에는 수, 규모, 속도의 일정한 비율이 확립된다.

 

집단적으로 작용하는 작업기 (곧 개별 작업기들 및 개별 작업기 집단으로 조직된 체계)는 총 과정이 연속적일수록, 다시 말해, 원료가 첫 단계에서 마지막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중단되는 일이 적을수록, 더욱 완전해진다. 이는 원료가 인간의 손이 아닌 기계 장치 그 자체로부터 생산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추진될 때 달성된다.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각 부분 과정들의 분리가 분업의 성질이 요구하는 조건이었다면, 발달된 공장에서는 이와 반대로, 각 부분 과정들의 연속이 지배하게 된다.

 

기계 체계는 직조업처럼 같은 종류의 작업기 협업에 기반을 두든, 방적업처럼 다른 종류의 작업기 결합에 기반을 두든, 하나의 자동 원동기로부터 운전되기 시작하면,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자동 장치가 된다. 그러나 체계 전체가 증기 기관으로 운전되더라도, 개별 작업기는 아직 노동자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자동식 뮬 방적기가 도입되기 전이나 세사 방적에서는 노동자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또한, 선반 활대가 자동식으로 전환되기 전의 기계 제작에서처럼, 기계의 특정 부분은 노동자가 손도구를 사용하듯, 직접 조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작업기가 원료 가공에 필요한 모든 운동을 인간의 협력 없이 수행하고, 오직 노동자의 통제만을 필요로 하게 될 때, 기계의 자동 체계가 완성되며, 그 세부는 끊임없이 개량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실 한 올만 끊어져도 방적기를 자동적으로 정지시키는 장치나, 방추 속 씨실이 없어지자마자 동력 직기를 정지시키는 자동 정지기 같은 것이 최근에 발명되었다.

 

생산의 연속성과 자동식 원리가 도입된 실례로 근대적 제지 공장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제지업은 상이한 생산 수단에 바탕을 둔 상이한 생산 방식들의 차이와, 이 생산 방식들이 사회적 생산 관계와 맺는 관련을 매우 상세하게 연구할 수 있는 분야이다. 고대 독일은 수공업적 생산의 표본을, 17세기 네덜란드와 18세기 프랑스는 진정한 공장제 수공업의 표본을, 근대 영국은 자동적 생산의 표본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중국과 인도에는 제지업의 두 가지 상이한 고대 아시아적 형태가 아직도 존재한다.

 

하나의 중앙 자동 장치로부터, 전동 장치로만 운동을 받는 작업기들의 편성 체계는 기계제 생산에서 가장 발달한 형태이다. 여기서는 개별적인 기계 대신 하나의 거대한 기계적 괴물이 등장하는데, 그 몸통은 공장 건물 전체를 차지한다. 그 마술과 같은 힘은 처음에는 거대한 팔다리들의 느리고, 절도 있는 움직임 속에 숨겨져 있지만, 결국에는, 무수한 본래의 작업 기관들이 격렬하게 난무하는 방식으로 폭발한다. 뮬 방적기나 증기 기관 같은 발명품들은 그것들의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노동자가 있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 이는 재봉사가 생기기 전에도 사람들이 옷을 입었던 일과 같다. 그러나 보캉송, 아크라이트, 와트 같은 발명가들이 자신의 발명을 실용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상당수의 숙련된 기계 노동자들을 이미 공장제 수공업 시기에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노동자들 중 일부는 각종 직업의 독립적 수공업자였고, 다른 일부는 (분업이 특히 엄격했던) 공장제 수공업에서 집단적으로 존재했다.

 

발명의 수가 증가하고, 새로 발명된 기계에 대한 수요가 증대함에 따라, 기계 제작업은 다양한 독립 부문으로 분화되고, 기계 제작 공장제 수공업 내 분업이 더욱 발전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공장제 수공업에서 대공업의 직접적인 기술적 토대를 발견한다. 이 공장제 수공업은 기계를 생산했으며, 그 기계의 도움으로 대공업은 (최초로 확보한 생산 부문들에서) 수공업 생산과 공장제 수공업 생산을 제거했다. 이처럼 기계를 생산하는 체계는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은 물질적 토대 위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성된다. 그 체계가 일정한 발전 단계에 도달했을 때, (그동안 종래의 형태로 더욱 발전한) 빌려온 토대를 타도하고, 자신의 생산 방식에 알맞은 새로운 토대를 창조해야 했다. 각각의 기계가 인간의 힘으로만 운전되는 동안은 여전히 작았고, 기계 체계는 증기 기간이 종전의 동력(동물, 바람, 심지어 물)을 대체하기 전에는 자유롭게 발전할 수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공업도 그것에 특징적인 생산 수단인, 기계 그 자체가 개인의 힘과 숙련에 의존하고 있던 동안은 그 발전이 불완전했다. 다시 말해, 기계가 공장제 수공업의 부분 노동자 또는 그 밖 의 수공업자가 작은 도구를 사용하는 데 필요했던 발달한 근육, 예민한 시력, 능란한 솜씨에 의존하고 있던 동안은 불완전했다.

 

기계 제작 비용이 비싸다는 사실(자본가의 기계 사용을 가로막은 지배적 요인)을 차지하고라도, 기계를 이용한 공업 확대와 새로운 생산 부문으로의 침투는 특정 노동자들의 성장에 의존했다. 이들은 직업의 반()장인적 성격으로 인해, 그 수가 비약적이 아닌 점차적으로만 증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자, 대공업은 수공업과 공장제 수공업이 제공한 기술적 토대와 양립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발전 과정에서 다수의 기술적 문제가 자연 발생적으로 발생했다. 동력기, 전동 장치, 작업기의 규모가 커지고, 작업기의 구성 부분이 더욱 복잡 다양해졌으며, 더 엄격한 규칙성으로 운전되어야 함에 따라, 작업기는 그것의 제작을 처음 지배했던 수공업적 모형과 점점 더 괴리되었다. 그리고 오직 기계적 과업으로만 규정되는 자유로운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동시에 자동 체계가 완성되고, 다루기 어려운 자재(: 목재 대신 철)를 사용하는 일이 더욱 불가피해졌다. 이 과업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간 능력의 제한성이 언제나 장애물로 작용했는데, 이는 공장제 수공업에서 집단적 노동자들로부터 어느 정도 극복되었으나, 본질적으로는 타파되지 못한 한계였다. 근대적 수압기, 근대적 동력 직기, 근대적 소모기 같은 기계들은 공장제 수공업으로부터는 결코 공급될 수 없었다.

 

공업의 한 분야에서 발생한 생산 방식의 변혁은 다른 분야에서도 변화를 야기한다. 이는 특히 사회적 분업으로 인해 독립적인 상품을 생산하면서도, 과정상 서로 연결된 공업들에서 먼저 나타난다. 예를 들어, 기계 방적업은 기계 직조업을 필연적으로 요구했고, 이 둘은 표백업, 날염업, 염색업에서 역학적·화학적 혁명을 필요로 했다. 면방적업에서 혁명은 면섬유를 목화씨에서 분리하는 조면기의 발명을 초래했으며, 현재와 같은 대규모 목화 생산은 이로부터 비로소 이루어졌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공업과 농업의 생산 방식 혁명은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일반적 조건들(곧 통신 수단과 운송 수단)의 혁명을 요구했다. 푸리에가 이라 표현한 부업적 가내 공업을 가진 소규모 농업과 도시 수공업 사회의 통신 수단과 운송 수단은, (확대된 사회적 분업, 노동 수단, 노동자의 집중, 식민지 시장을 가진) 공장제 수공업 시기의 생산상 필요를 더 이상 충족시킬 수 없었으므로, 결국 변혁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장제 수공업 시기에서 물려받은 운송 및 통신 수단은 대공업의 폭발적인 생산 속도, 방대한 규모, 자본과 노동자의 끊임없는 이동, 그리고 새로이 형성된 세계 시장적 관련 앞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장애물이었다. 그러므로 돛배 건조의 대변혁 외에도, 통신·운송 수단은 하천 기선, 철도, 해양 기선, 전신 등의 창설로부터 점차 대공업의 생산 방식에 맞게 적응해 간다. 또한 (단조, 용접, 절단, 성형 등의 과정이 필요한) 엄청난 양의 철은 공장제 수공업 시기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거대한 기계들을 요구했다.

 

대공업은 그 특징적인 생산 수단인 기계 그 자체를 스스로 떠맡아, 기계로 기계를 생산해야 만 했다. 이때부터 비로소 대공업은 자신에게 적합한 기술적 토대를 창조했으며, 자기 자신의 두 발로 서게 된다. 19세기 첫 수십 년간 기계 생산이 증가함과 동시에, 기계제 생산이 점차 작업기의 제작을 담당한다. 그러나 대규모 철도 부설과 해양 기선 건조로 인해, 원동기 제작에 오늘날 사용되는 일과 같은 거대한 기계들이 나타나게 된 것은 오직 1866년 이전 10년 동안의 일이다.

 

기계로부터 기계를 생산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생산 조건은 어떤 출력도 낼 수 있으며,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원동기였다. 이 조건은 이미 증기 기관으로 충족되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기계의 개별적인 부분들에 필요한 엄밀한 기하학적인 직선, 평면, , 원통, 원주, 공을 기계로 생산하는 일이 요구되었다. 이 문제는 1810년대, 헨리 모즐레가 선반 활대를 발명하면서 해결되었다. 이것은 곧 자동화되었고, 이후 변경된 형태로 선반 외의 다른 공작 기계에도 적용되었다. 이 기계 장치는 특정 도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을 대체했으며, 절삭 공구로 철이나 다른 노동 재료로부터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 기계의 개별 부분들이 지닌 기하하적 형태를 가장 능숙한 노동자가 아무리 경험을 쌓았다 하더라도, 손으로는 도저히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쉽고 정확하며 신속하게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기계 제작에 사용되는 실질적인 작업기 부분을 살펴보면, 그것은 단지 규모가 대단히 커진 수공업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착공기의 작업기 부분은 증기 기관이 움직이는 거대한 송곳인데, 이것이 없다면 대형 증기 기관이나 수압기의 원통을 생산할 수 없다. 기계 선반은 발로 움직이는 보통 선반의 거대한 재현이며, 평삭기는 (목수가 목재를 가공하는 것과 같은 도구를 가지고) 철을 가공하는 철제 목수이다. 런던의 조선소에서 합판을 베는 도구는 거대한 면도칼이고, 재봉 가위가 천을 베듯이 철을 베는 기계 가위는 거대한 가위이며, 증기 망치는 보통의 망치(토르도 휘두를 수 없는 무게)를 가지고 작업한다. 일례로, 네즈미스가 발명한 증기 망치 중 하나는 무게가 6톤이 넘으며, 7피트 높이에서 중량 36톤의 모루 위에 수직으로 떨어진다. 화강암을 가루로 만드는 것은 이 망치에게 어린애 장난 같은 일이고, 연속적으로 가볍게 두드리면서 연한 목재에 못을 박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쉬운 일이다.

 

기계 형태로 구현된 노동 수단은 인간력을 자연력으로 대체하며, 경험적 숙련을 자연 과학의 의식적 응용으로 대체한다. 공장제 수공업에서 사회적 노동 과정의 조직은 순전히 주체적이며, 부분 노동자들의 결합에 불과했지만, 기계 체계에서는 대공업이 완전히 객체적인 생산 조직을 이룬다. 여기에서 노동자는 이미 존재하는 물질적 생산 조건의 단순한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 협업이나 분업으로 전문화된 협업에서조차 결합된 노동자가 고립된 노동자를 대체하는 일은 아직 어느 정도 우연적 현상이다. 그러나 기계는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오직 결합 노동 또는 공동 노동으로부터만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노동 과정의 협업적 성격이 노동 수단 자체가 강요하는 기술적 필연성이 된다.

 

15-2. 기계에서 생산물로 이전되는 가치


협업과 분업에서 발생하는 생산력은 자본가에게 아무런 비용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적 노동이 만들어낸 자연력과 같다. 생산 과정에 적용되는 증기, 물 등의 자연력도 역시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호흡에 폐가 필요하듯, 자연력을 생산적으로 소비하려면 인공적 수단이 필수적이다. 물의 힘에는 물레방아가, 증기의 탄력에는 증기 기관이 필요한 이치이다. 전류 범위 내 자석의 치우침이나 전류로부터 철의 자화 같은 과학 법칙도 일단 발견된 후에는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법칙을 전신 등에 활용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복잡한 장치가 필수적이다. 도구는 기계로부터 배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유기체의 단순한 도구에서 인간이 창조한 기계 장치의 도구로 전환되며, 그 규모와 수량이 증가한다. 자본은 이제 노동자에게 손 도구가 아닌 도구를 조종하는 기계로 작업하도록 한다. 대공업이 거대한 자연력과 과학의 성과를 생산 과정에 도입하여 노동 생산성을 급격히 높이는 일은 겉으로 보기에 명백하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력의 상승이 노동 지출의 증가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결코 그처럼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불변 자본의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기계는 그 자체로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다만, 생산되는 생산물에 자신의 가치를 이전할 뿐이다. 기계가 가치를 지니고 생산물에 그 가치를 이전하는 한, 기계는 생산물 가치의 한 구성 부분을 형성한다. 결과적으로, 기계는 생산물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에 비례하여 생산물의 가치를 상승시킨다. 그리고 대공업의 특징적인 노동 수단인 기계와 기계 체계는 수공업적 생산이나 공장제 수공업의 노동 수단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점은 명확하다.

 

먼저 말해 둘 점은, 기계는 노동 과정에는 항상 전체로 참여하지만, 가치 증식 과정에는 언제나 부분적으로만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기계는 마멸로부터 평균적으로 상실하는 가치 이상으로는 결코 생산물에 가치를 더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계의 총 가치와, 일정 기간 동안 기계에서 생산물로 이전되는 가치 부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생산물 형성 요소로 기계와 가치 형성 요소로 기계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의미한다. 동일한 기계가 동일한 노동 과정에서 반복하여 사용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차이는 더욱 커진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어떤 노동 수단이든, 노동 과정에는 항상 전체로 참가하고 가치 증식 과정에는 항상 그것의 매일의 평균적 마멸에 비례해 일부만 참가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용과 마멸 사이의 이러한 차이는 도구의 경우보다 기계의 경우에 훨씬 더 현저하다. 이는 기계가 더 오래 지속되는 재료로 만들어져 수명이 길고, 그 이용이 엄격한 과학적 법칙으로부터 규제되어 부품 교체와 보조 원료 소비로부터 더 경제적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기계의 생산적 활동 범위가 도구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넓다는 점도 주요한 이유이다.

 

기계와 도구는 매일의 평균적 비용(, 평균적 마멸과 기름, 석탄 등의 보조 원료 소비로부터 생사물에 첨가되는 가치 구성 부분)을 제외하고는 인간 노동의 협력 없이 존재하는 자연력과 마찬가지로 무상으로 작용한다. 기계의 생산적 효율성이 도구의 그것보다 클수록, 기계가 제공하는 무상 봉사의 크기 역시 그만큼 더 커진다. 대공업에 이르러서야 인간은 자신의 과거 노동의 산물(이미 대상화된 노동)을 자연력처럼 대규모로 공짜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헙업과 공장제 수공업을 고찰할 때 보았듯이, 건물 같은 일부 일반적 생산 조건들은 개별 수공업자의 분산된 조건들에 비해 공동 소비로부터 절약되며, 그 결과, 생산물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기계 체계에서는 작업기 본체뿐만 아니라, 많은 도구에 딸린 전동 장치의 일부와 함께 다수의 작업기로부터 공동으로 소비된다. 기계의 가치와 기계가 매일 생산물에 이전하는 가치 사이의 차이가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후자의 가치가 생산물의 가격을 상승시키는 정도는 일차적으로 총생산물의 규모, 곧 생산물의 겉넓이에 좌우된다. 이와 관련하여, 블랙번의 베인즈는 1857년의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계산을 제시했다.

 

실제 1 기계 마력은 준비 장치가 갖춰진 자동식 뮬 방추 450, 또는 스로슬 방추 200, 또는 날실을 고르게 하고, 풀을 먹이는 등의 장치가 달린 40인치 직물용 직조기 15대를 구동시킨다.’

 

1 기계 마력의 하루 비용과 이 마력으로 운전되는 기계의 마멸은,

 

1. 450개 뮬 방추의 하루 생산물에 분배된다.

 

2. 200개 스로슬 방추의 하루 생산물에 분배된다.

 

3. 15대 직조기의 하루 생산물에 분배된다.

 

따라서 1파운드의 실이나 1야드의 천에 이전되는 가치 부분은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위에서 예시된 증기 망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증기 망치의 하루 마멸과 석탄 소비 등은 매일 두드리는 방대한 양의 철에 분배되므로, 100파운드의 철에는 극히 적은 가치 부분만이 배당된다. 그러나 이 거대한 도구를 사용하여 작은 못을 박는다면, 생산물당 이전되는 가치 부분은 매우 커진다.

 

작업기의 작업 능력(부착된 도구의 수, 또는 힘이 문제라면 도구의 크기)이 주어져 있을 때, 생산물의 양은 작업기의 작업 속도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방추의 회전 속도나 1분당 망치가 내려치는 횟수와 같다. 앞서 언급된 거대한 망치 중에는 1분에 70번을 내리치는 것도 많으며, 소규모의 증기 망치로 방추를 단조하는 라이더의 특허 단조기는 1분에 700번을 내리친다. 기계의 가치가 생산물로 이전되는 비율이 일정하다면, 이전되는 가치 부분의 크기는 기계 자체의 가치 크기로부터 결정된다. 기계 자체에 체현된 노동이 적을수록, 기계가 생산물에 첨가하는 가치는 감소한다. 기계가 생산물에 이전하는 가치가 적을수록, 기계는 더욱 생산적이며, 기계의 봉사는 자연력의 봉사에 더욱 가까워진다. 결국, 기계로부터 기계의 생산은 기계의 규모와 작용에 비해 기계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수공업적 또는 공장제 수공업적으로 생산된 상품의 단위 가격과 기계로 생산된 동일 상품의 단위 가격을 비교 분석한다면, 일반적으로 기계 생산물의 경우, 노동 수단에서 이전되는 가치 부분이 절대적으로는 감소하지만, 상대적으로는 증가한다. , 이 가치 부분의 절대액은 줄어들지만, 이 절대액이 가령 1파운드의 실과 같은 생산물의 총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진다.

 

분명한 사실은 기계 생산에 투입된 노동과 그 기계의 사용으로 절약되는 노동의 크기가 같다면, 단순한 노동의 대체만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총량은 감소하지 않으며, 노동 생산성도 증가하지 않는다. 또한, 기계 생산에 투입된 노동과 기계 사용으로 절약되는 노동 사이의 차이(, 기계의 생산력 정도)가 기계 자체의 가치와 기계가 대체하는 도구의 가치 사이의 차이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도 명확하다. 기계의 생산에 드는 노동(기계의 가치) 중 생산물로 이전되는 부분이 노동자가 도구를 사용해 생산물에 첨가하는 가치(새로운 가치는 가변 자본(v) + 잉여 자본(s)를 의미)보다 적은 때에만, 비로소 기계는 노동을 절약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계의 생산력은 기계가 대체하는 인간 노동력의 크기로부터 측정된다.

 

베인즈의 계산에 따르면, 1 증기 마력으로 구동되는 450개 뮬 방추(준비 장치 포함)에는 2.5명의 노동자만이 필요하다. 각 자동식 뮬 방추는 10시간 노동일의 1주 동안 평균 굵기의 실 13온스(0.8125파운드)를 생산한다. 따라서 2.5명의 노동자는 1주간 365.625파운드의 실을 생산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366파운드의 면화가 면사로 전환하는 데 흡수되는 노동 시간은 불과 150노동시간(10시간 × 6× 2.5), 15개의 10시간 노동일에 불과하다. 반면, 물레를 사용한다면, (손방적공이 13온스의 면사를 60시간에 생산한다고 가정할 때), 동일한 양의 면화는 2,700개의 10시간 노동일, 또는 27,000 노동 시간을 흡수하게 된다.

 

종래의 목판 날염법(손에 의한 날염법)이 기계 날염으로부터 대체된 경우, 단 한 대의 기계는 한 명의 성인 노동자(또는 소년공)의 협력만으로 1시간에, 이전에는 200명의 성인 노동자가 처리하던 것과 같은 양의 4색 날염직을 날염한다. 위트니가 1793년 조면기를 발명하기 전에는 1파운드의 면화에서 씨를 제거하는 데, 평균 1노동일이 소요되었다. 그의 발명 덕분에 흑인 여자 노동자 1명이 하루에 100파운드의 면화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이후 조면기의 생산 능률은 더욱 현저하게 증대되었다.

 

1파운드의 원면은 이전에는 생산비가 50센트였으나, 그 뒤에는 더 많은 이윤을 내면서도(더 많은 불변 노동을 포함하고도) 10센트에 판매되었다. 인도에서는 면화에서 씨를 제거하고자 반()기계적인 츄르카라는 도구가 사용되며, 이것으로 1명의 남자와 여자가 하루에 28파운드를 처리한다. 수년 전, 포브즈가 발명한 츄르카로는 1명의 성인과 1명의 소년이 하루에 250파운드를 처리한다. 동력(, 증기, )을 이용하는 기계의 경우, 원료를 넣는 사람으로 몇 명의 소년과 소녀만이 필요할 뿐이다. 소가 움직이는 기계 16대는 이전에 하루 평균 750명이 하던 작업을 수행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증기 쟁기는 1시간에 3펜스(0.25실링)의 비용으로, 66명이 15실링의 비용으로 수행하던 작업량과 같은 작업을 수행한다. 오해를 피하고자, 이 사례를 다시 설명할 필요가 있다. 15실링은 결코 66명 노동자가 한 시간 동안 행하는 노동의 화폐적 표현이 아니다. 잉여 노동의 필요 노동에 대한 비율이 100%라면, 66명의 노동자들은 매시간 30실리의 가치를 생산하며, 그들의 임금 15실링은 그 가치의 절반에 불과하다. 따라서 어떤 기계가 그것이 대체하는 노동자 150명의 연간 임금, 가령 3,000원과 같은 비용이 든다고 가정할 경우, 3,000원은 150명 노동자로부터 수행되어 노동 대상에 첨가된 전체 노동의 화폐적 표현이 아니다. 이는 그들의 연간 노동 중 그들 자신을 위해 행하고 임금으로 대표되는 부분(필요 노동)의 화폐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3,000원이라는 기계의 화폐 가치는 기계 생산에 소비된 전체 노동(이 노동이 노동자의 임금과 자본가의 잉여 가치로 어떤 비율로 분할되든 관계없이)을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기계가 비록 그것이 대신하는 노동력과 같은 금액의 비용이 들더라도, 기계에 대상화된 노동은 언제나 기계가 대신하는 살아있는 노동보다 훨씬 적다.

 

기계를 생산물의 염가(廉價) 수단으로만 볼 경우, 그 사용 한계는 기계 자체의 생산에 투입된 노동이 기계 사용으로 대체되는 노동보다 적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자본가가 기계를 활용하는 데에는 그 이상의 한계가 존재한다. 자본가는 노동 자체에 대해 지급하는 것이 아닌, 고용하는 노동력의 가치만을 지불하므로, 자본가의 기계 사용 한계는 기계 가치와 기계가 대체하는 노동력의 가치 사이의 차이로부터 설정된다. 노동일이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으로 분할되는 비율은 국가별, 시기별, 또는 동일 시기에도 생산 부문별로 상이하며, 노동자의 실제 임금은 때로 자기 노동력 가치 이하로 하락하거나, 그 이상으로 상승하기도 한다. 따라서 기계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과 기계가 대신하는 노동 총량 사이의 차이에는 변동이 없다 하더라도, 기계의 가격과 대체되는 노동력 가격 간 차이는 크게 변동할 수 있다.

 

자본가는 상품의 생산비, 곧 비용 가격을 스스로 규정하며, 경쟁은 오직 기계 가격과 기계가 대체하는 노동력 가격 간의 차이만을 강제한다. 오늘날 영국에서 발명된 기계가 임금 수준이 높은 미국에서 사용되듯, 16-17세기 독일의 발명품은 네덜란드에서, 18세기 프랑스의 많은 발명은 영국에서만 이용되었다. 오래전부터 발전한 나라들에서는 일부 부문의 기계 자체가 다른 부문들에서 리카도의 과잉 인원 같은 노동력 과잉을 낳는다. 그 결과, 후자 부문의 임금은 노동력 가치 이하로 하락하며, 이는 기계 사용을 저해한다. 또한, 자본가의 이윤은 고용 노동력의 감소가 아닌 지불 노동의 감소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기계의 사용은 불필요하고, 흔히 불가능해진다.

 

영국 양모 공업의 일부 부문에서 아동 노동이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줄거나 거의 사라진 이유가 있다. 공장법으로 아동들의 2교대제가 도입되어, 한 조는 6시간, 다른 조는 4시간 작업하거나, 두 조가 각각 5시간만 작업할 수밖에 없게 되었음에도, 부모들이 반일공을 이전의 전일공보다 더 싸게는 팔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반일공들은 기계로 대체되었다. 광산에서 여성과 아동(10세 미만)의 노동이 금지되기 전까지, 자본은 탄광 등에서 벌거벗은 부인들과 소녀들을 남자들과 함께 노동시키는 것을 도덕률에 어긋난다고 여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윤 획득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자본은 이 노동이 금지된 이후에야 비로소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돌 부수는 기계를 발명했음에도, 영국에서는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작업을 수행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그들의 노동에 비해 매우 적은 보수만을 받기 때문에, 기계를 사용할 경우, 오히려 자본가들의 생산비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운하에서 배를 끄는 일에 말 대신 아직도 여성을 사용하는 일도 같은 이유에서다. 말과 기계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가치)은 정확히 알려진 크기이지만, 과잉 인구 중 여성들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노동(임금 수준)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계의 나라인 영국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더 파렴치하게 인력을 천한 일에 낭비하고 있다.

 

15-3. 기계제 생산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가장 직접적 영향

 

대공업은 노동 수단의 혁명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공장의 편성된 기계 체계 속에서 가장 발달한 형태에 이른다. 이 객체적 유기체에 인간 재료가 결합되는 양상을 고찰하기에 앞서, 이 혁명이 노동자 자신에게 미치는 일반적 영향을 먼저 살펴본다.

 

. 자본이 추가 노동력을 취득. 여성과 아동의 고용

 

기계는 근육의 힘이 아닌 유연한 팔다리를 요구하는 한, 육체적 발달이 미숙하거나, 근력이 약한 노동자도 활용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여성 노동과 아동 노동의 고용은 자본가 입장에서 기계 사용의 첫 번째 직접적 결과였다. 노동력 자체를 대체하는 강력한 수단인 기계는 즉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노동자 가족 구성원 전부를 자본의 직접적 지배 아래 편입시키며 임금 노동자의 수를 늘렸다. 자본가를 위한 강제 노동은 아동의 유희 시간뿐 아니라 가정 내 가족을 위한 최소한의 자유 노동까지도 빼앗아 버렸다. 노동력의 가치는 개별 성인 노동자뿐 아니라 노동자 가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으로부터 규정된다. 기계는 가족 구성원 전부를 노동 시장으로 내몰면서, 가장의 노동력 가치를 가족 전체로 나눈다. 그 결과, 기계는 가장의 노동력 가치를 저하시킨다.

 

가령 4명의 노동자로 구성된 가족 노동력 구입 비용이 종전에 가장 1명의 노동력 구입 비용보다 더 들 수 있다. 그러나 4노동일이 1노동일을 대체하므로, 4노동일의 잉여 노동이 1노동일의 잉여 노동을 초과하는 것에 비례하여 그들 가족의 노동력 가치는 하락한다. 이제 한 가족이 생활하려면, 4명 모두가 자본가에게 노동뿐 아니라 잉여 노동까지 제공해야 한다. 이와 같이, 기계는 처음부터 자본의 가장 특징적인 착취 대상인 인간적 착취 재료를 추가할 뿐 아니라, 착취의 정도 또한 증가시킨다.

 

기계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상호 관계를 형식적으로 규정하는 계약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킨다. 우리의 첫 전제는 상품 교환의 바탕 위에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자유로운 인격, 곧 한쪽은 화폐와 생산 수단의 소유자로, 다른 쪽은 노동력의 소유자로, 독립적인 상품 소유자로 상대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 자본은 아동과 미성년자의 노동력을 구매한다. 종전에는 노동자가 형식상 자유로운 인격으로 처분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노동력을 팔았는데, 이제 그는 처자를 파는 노예 상인이 되었다. 아동 노동에 대한 구인 광고는 형식상으로도 (미국의 신문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흑인 노예에 대한 구인 광고와 비슷하다. 예를 들어, 영국의 한 공장 감독관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한 주요 공업 도시의 지방 신문에 실린 광고가 내 주의를 끌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3세 이상으로 보이는 소년 12-20명을 구함. 임금은 주당 4실링. 지원 바람.’

 

‘13세로 인정할 수 있는이라는 문구는, 13세 미만 아동의 노동 시간을 6시간으로 제한한 공장법과 연관된다. 나이는 공식적으로 지정된 의사의 증명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공장주는 13세가 된 것처럼 보일 소년들을 찾는다. 최근 20년간 영국 통계에서 13세 미만 고용 아동 수가 급격하고 놀랍게 감소한 주요 원인은, 공장 감독관 자신의 진술에 따르자면, 의사들이 자본가의 착취 욕심과 부모의 아동 판매 요구에 맞추어 아동들의 나이를 실제보다 높게 고쳐주었기 때문이다.

 

런던의 악명 높은 지역인 베스날 그린에서는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아침 공개 시장이 열린다. 이곳에서 9세 이상의 남녀 아동들이 런던의 견직 공장주들에게 자신을 임대한다. ‘보통 조건은 주 1실링 8펜스 (이것은 부모들의 몫이 된다)와 나 자신을 위한 2펜스, 그리고 차(tea)이다. 계약은 오직 1주일을 기한으로 체결된다. 이 시장이 열릴 때의 광경과 그곳의 말씨는 참으로 창피스러운 수준이다.’ 여성들이 구빈원에서 아동들을 데리고 나와 아무 구매자에게나 주 2실링 6펜스로 임대하는일이 지금도 영국에서 벌어진다.

 

법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영국에서는 적어도 2,000명의 소년들이 여전히 부모에게 팔려 살아있는 굴뚝 소제기로 노동한다(심지어 그들을 대체할 기계가 존재함에도). 기계가 노동력의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법률적 관계에 일으킨 혁명은, 전체 거래에서 자유로운 인격 간의 계약이라는 외관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것은 이후 영국 의회가 국가로 하여금 공장 문제에 개입하도록 하는 법적 구실을 제공했다. 종전에는 그 구속을 받지 않던 공업 부문들에서 공장법이 아동 노동을 6시간으로 제한할 때마다, 공장주들은 불만을 제기했다. 일부 부모들이 법적 단속을 받는 부문에서 아동들을 빼내어 노동의 자유가 지배하는 (13세 미만 아동들이 성인처럼 노동하며,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공업 부문에 판매한다는 것이다. 자본은 본래 자기들끼리는 평등주의를 주장한다. , 자본은 모든 생산 분야에서 노동 착취 조건의 평등을 태어날 때부터 권리로 요구한다. 따라서 한 공업 부문에서 아동 노동을 법적으로 제한하면, 다른 공업 부문에서도 아동 노동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기계가 (처음에는 공장에서 직접, 다음으로는 모든 공업 부문에서 간접적으로) 자본의 착취에 종속시킨 아동, 소년·소녀, 부인들의 육체적 파멸에 대해서는 이미 제10장 노동일에서 지적했다. 따라서 여기서는 노동자 계급 가정의 유아 사망률이 대단히 높다는 점만을 언급한다. 영국의 호적 관리 구역들 중 16개 구역에서는 1세 미만 유아 100,000명당 연평균 사망자 수가 9,085(어떤 구역은 7,047명에 불과함)인 반면, 24개 구역에서는 10,000-11,000, 39개 구역에서는 11,000-12,000, 48개 구역에서는 12,000-13,000명으로 증가한다. 특히 심각한 구역들을 보면, 22개 구역에서는 20,000명 이상, 25개 구역은 21,000명 이상, 17개 구역은 22,000명 이상, 11개 구역은 23,000명 이상이다. , 울버햄프턴, 애쉬톤 언더 라인, 프레스톤에서는 24,000명 이상, 노팅엄, 스톡포트, 브래드퍼드에서는 25,000명 이상, 위스비치에서는 26,000, 맨체스터에서는 26,125명에 달한다.

 

1861년 정부 의료 조사에서 증명된 바와 같이, 이처럼 높은 사망률의 원인은 지방적 조건을 제외하면, 주로 어머니의 가정 밖 취업이다. 이로 인해 유아에 대한 무관심과 학대가 발생하며, 부적당한 음식, 영양 부족, 마취제 사용 등이 그 예다. 이 밖에도 어머니와 유아 사이의 부자연스러운 반목, 그 결과인 고의적인 굶김, 독 있는 음식 제공 등이 원인이 된다. 반면, ‘여성 취업이 가장 적은농업 구역들에서는 사망률이 가장 낮다’. 그런데 1861년 조사 위원회는 북해 연안의 일부 순수한 농업 구역들에서 1세 미만 유아의 사망률이 가장 악명 높은 공장 구역들의 사망률과 거의 같다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줄리안 헌터에게 이 현상에 대한 현장 조사를 위임했다. 그의 보고는공중 보건에 관한 제6차 보고서에 수록되어 있다. 당시에는 말라리아와 기타 저습지 특유의 질병들이 유아들의 생명을 앗아간다고 추측되었다. 그러나 조사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말라리아를 없앤 바로 그 사정, 곧 겨울에는 습지, 여름에는 보잘것없는 목장이었던 토지를 비옥한 밀밭으로 전환시킨 것이 오히려 매우 높은 유아 사망률을 낳은 것이다. 헌터가 심문한 그 구역 내 70명 의사들의 의견은 이 점에 대해 놀랄 만큼 일치했다. 이는 토지 경작의 혁명으로 공장식의 노동 제도가 농업 부문에 도입되었음을 시사한다.

 

소년·소녀들과 함께 노동하는 기혼 여성들은 대장(노동 부대 전체를 대신하여 계약하는 자)으로부터 일정한 금액을 받고 차지 농업가의 처분에 맡겨진다. 이 노동 부대는 때때로 촌락에서 수 마일 떨어진 지방까지 이동한다. 따라서 아침저녁으로 길거리에서 이들을 마주칠 수 있는데, 여성들은 짧은 치마, 이에 맞는 저고리, 장화를 착용하고, 때로는 바지를 입은 모습이다. 이들은 보기에는 대단히 힘세고 건강한 듯 보이나, 버릇이 된 부도덕한 행동들로 타락해 있으며, 이런 바쁘고 독립적인 생활 방식에 대한 애착이 집에서 시들고 있는 자식들에게 미치는 치명적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공장 구역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여기에서도 재생산되며, 숨겨진 유아 살해와 아동들에 대한 아편 마취의 정도는 오히려 더 심각한 형편이다. 영국 추밀원의 의무관이자공중 보건에 관한 보고서의 책임 편집자인 사이먼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나는 그런 폐해들을 잘 알고 있기에, 성인 여성들의 산업 내 폭넓은 고용 사실에 대해 깊은 우려를 품게 되는 일은 어쩔 수 없다.’

 

공장 감독관 베이커는 공식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부르짖는다.

 

가족을 둔 모든 기혼 여성들이 섬유 공장에서 노동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는 사실상 영국 공업 지구들을 위해 매우 다행한 일이 될 것이다.’

 

여성 노동과 아동 노동에 대한 자본주의적 착취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타락은, 엥겔스,영국 노동 계급의 상태와 기타 저술가들로부터 이미 남김없이 서술되었다. 필자는 여기에서 다만 그것을 상기시키는 데 그친다. 미성년자를,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단순한 기계로 전환시키면서 인위적으로 초래된 지적 황폐는(이는 정신이 발전 능력을 잃지 않고, 쉬어서 생기는 자연적 무지와는 완전히 구별됨), 결국 영국 의회로 하여금, 초등 교육을 (공장법 적용을 받는 공업 부문에서) 14세 미만 아동들의 생산적고용을 위한 법적 조건으로 선포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자본주의적 생산의 정신은 분명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공장법의 이른바 교육 조항에 담긴 우스꽝스러운 문구에서, 담당 행정 기구가 없다는 점에서(이로 인해 의무 교육은 대부분 허구적인 것이 됨), 이 교육 조항에 대한 공장주들의 반대에서, 그리고 이 조항을 회피하고자 공장주들이 쓰는 온갖 술책에서 그 정신이 명백히 드러난다.

 

비난은 오직 입법부 혼자 받아야 한다. 입법부는 공장에 고용되는 아동들이 교육받아야 한다고 규정했음에도, 이 목적을 달성할 단 하나의 규정도 포함하지 않은 기만적 법률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 법률은 아동들을 주 중의 어느 날들, 그리고 매일 일정한 시간(3시간) 동안 학교라고 불리는 네 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가두어 두어야 한다는 것과, 아동들의 고용주가 매주 교사로부터 그렇게 했다는 증명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고 있다.’

 

1844년의 개정 공장법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교사 자신이 글을 쓸 줄 몰랐기에, X자로 서명한 취학 증명서가 드물지 않았다.

 

이런 취학 증명서를 발급하는 학교라고 불리는 한 곳을 방문했을 때, 나는 교사의 무지에 놀라 그에게, “여보시오, 당신은 글을 읽을 줄이나 압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 조금은.”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증명서를 발행할 자격이 있음을 변명하려는 듯이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어쨌든 나는 내 학생들보다 낫습니다.” 1844년 공장법을 준비하는 동안, 공장 감독관들은 법률상 완전히 유효한 것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른바 학교라는 곳들의 수치스러운 상태와 그곳에서 발행하는 출석 증명서를 고발했다. 그러나 그들이 달성한 것은, 1844년 이후 취학 증명서의 숫자를 교사가 손수 기입해야 한다는 것과, 교사가 자기의 완전한 성명으로 서명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스코틀랜드의 공장 감독관 킨케이드는 이와 비슷한 공무상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우리가 최초로 방문한 학교는 앤 킬리라는 부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이름을 써보라고 했을 때, 그는 당장 실수했으며, 철자를 C로 시작했으나, 곧 정정하면서 자기 이름은 K로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학 증명서에 적힌 그의 서명을 보고 나는 그가 여러 가지로 철자를 다르게 쓰고 있음을 알았으며, 그의 필적으로 보아 가르칠 능력이 없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 자신도 자기의 출석부를 작성할 줄 모른다는 것을 인정했다. 또 다른 한 학교는 길이 15피트, 10피트의 교실에 75명의 아동이 있었으며, 그들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동들이 취학 증명서는 받지만 값어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위에서 말한 참담한 곳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유능한 교사가 있는 많은 학교에서도 그의 노력이 거의 수포로 돌아가는데, 그것은 세 살 난 어린애부터 각 나이의 아동들이 소란스럽게 꽉 차 있기 때문이다. 교사의 생계는 매우 비참하여, 한 장소에 최대한의 아동들을 집어넣고, 그들로부터 받는 푼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더욱이 학교 비품은 매우 빈약하며, 책과 기타 교재들은 부족하고, 숨 막힐 듯한 구역질 나는 공기는 불쌍한 아동들 자신의 기운을 떨어뜨리고 있다. 내가 가서 본 많은 학교들에서는 전체 아동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이것을 취학이라고 증명하고 있으며, 통계 보고에는 이런 아동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공장주들이 교육 의무가 있는 아동들을 최대한 고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공장법의 교육 조항은 공장주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기에, 취학 의무가 있는 아동들은 취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 법이 목적인) 교육의 이익조차 누릴 수 없게 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다.’

 

이런 상황은 특별법1845년의 날염공장법의 규제를 받는 날염 공장에서 기이하고도 무서운 형태로 발현된다.

 

이 법은 아동이 공장 고용 전 6개월 동안 최소 30, 150시간 이상 취학할 것을 의무화하며, 고용 중에도 6개월마다 같은 기간과 시간(30, 150시간)을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규정한다. 수업은 오전 8시와 오후 6시 사이에 이루어져야 하며, 12.5시간 이하 또는 5시간 이상의 수업은 법정 150시간으로 산정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아동들은 30일 동안 매일 오전, 오후로 최소 5시간씩 수업을 받는다. 30일이 지나 법정 수업 시간인 150시간을 채우면, 곧 그들 말대로 출석부를 다 채우면, 다시 날염 공장으로 돌아가 다음 취학 기간까지 6개월간 머문다. 규정된 150시간 수업을 받은 다수의 아동들은 6개월간의 공장 노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면, 이전에 습득했던 것을 모두 잊어버려 처음 수업을 받기 시작했을 때와 똑같은 상태가 된다. 다른 공장들에서는, 취학이 공장의 사업 사정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법정 시간 수는 6개월에 걸쳐 3시간 내지 5시간씩 틈틈이 취학시키며 채워진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이 하루는 아침 8시부터 11, 다음 날은 오후 1시부터 4시이며, 그 후 며칠간 보이지 않다가 다시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나타난다. 3-4일 또는 1주일 연속 출석한 후, 3주일이나 1개월 동안 자취를 감춘다. 그러다 고용주가 마침 그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날, 몇 시간 나오기도 한다. 이와 같이, 아동은 150시간이 채워질 때까지 학교에서 공장으로, 공장에서 학교로, 말하자면 학교와 공장 사이를 시달리며 왕복한다.’

 

기계는 아동과 여성을 노동자 계급에 대량으로 추가하면서, 성인 남성 노동자가 공장제 수공업 시기 내내 자본의 독재에 맞서 왔던 저항(반항)을 끝내 무너뜨린다.

 

. 노동일의 연장

 

기계는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곧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그러나 기계는 자본의 수중에서, 자신이 처음 정복한 공업 부문들에서 노동일을 모든 자연적 제한을 넘어 연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기계는 한편으로 자본이 이러한 경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을 창출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 노동에 대한 자본의 탐욕을 격화시키는 새로운 동기를 만들어 낸다. 먼저 기계에서 노동 수단의 운동과 활동은 노동자로부터 자립적인 성격을 띤다. 노동 수단은 이제 산업적 영구 기관이 되며, 자기 조수인 인간들의 일정한 자연적 제한성(약한 육체와 강한 의지)에 부딪히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생산을 지속한다. 이 자동 장치는 자본이기에, 자본가라는 인물로부터 의식과 의지를 부여받는다. 그러므로 자본으로의 노동 수단은 인간(완고하지만 신축성 있는 자연적 장애물)의 저항을 최소한으로 축소시키려는 충동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저항은 또한 기계 노동이 겉모양은 힘들지 않다는 사정, 거기에 고용된 여성과 아동들이 온순하며 다루기 쉽다는 사정으로부터 더욱 감소된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기계의 생산성은 기계로부터 제품에 이전되는 가치 크기에 반비례한다. 기계가 기능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계로부터 이전되는 가치가 분배되는 생산물의 양은 그만큼 늘어나며, 따라서 단위 상품에 이전되는 기계 가치는 그만큼 적어진다. 그런데 기계의 활동적 수명은 분명히 노동일의 길이(매일 노동 과정에서 지속되는 시간)에 노동 과정이 반복되는 일수를 곱한 값으로부터 규정된다.

 

기계의 마멸은 기계의 사용 시간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7.5년 동안 매일 16시간씩 사용된 기계는 15년 동안 매일 8시간씩 사용된 동일한 기계와 총 노동 시간이 같으며, 총생산물에 이전시키는 가치 역시 동일하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 기계의 가치는 후자보다 두 배 빨리 재생산된다. 또한 자본가는 후자의 경우, 15년 동안 흡수할 잉여 가치를 전자의 경우 7.5년 동안에 모두 흡수해 버린다.

 

기계의 물리적 마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개개의 주화가 유통되면서 마멸되듯이, 기계를 사용하는 데서 발생한다. 다른 하나는 쓰지 않는 칼이 칼집에서 녹슬 듯이,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데서 발생한다. 이 후자는 자연력의 작용으로 인한 기계의 마멸이다. 첫째 종류의 마멸은 대체로 기계의 사용에 정비례하며, 둘째 종류의 마멸은 어느 정도까지는 기계의 사용에 반비례한다. 기계는 물리적 마멸 외에도 이른바 도덕적(무형의) 가치 감소를 겪는다. 동일한 구조의 기계가 더 싸게 재생산되거나, 또는 더 우수한 기계가 경쟁자로 등장하면, 기계는 교환 가치를 상실한다. 이 경우, 기계가 아무리 새것이며 생명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 가치는 더 이상 그 기계에 실제로 대상화된 노동 시간으로부터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대신, 그 기계의 재생산 또는 더 우수한 기계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으로부터 결정된다. 그러므로 그 기계는 많건 적건 가치를 잃어버린다. 기계의 총 가치가 재생산되는 기간이 짧을수록, 도덕적 가치 감소의 위험은 그만큼 줄어들며, 노동일이 길수록 그 재생산 기간은 그만큼 짧아진다. 기계가 어떤 부문에 처음 도입될 때, 이를 더 싸게 재생산하려는 새로운 방법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며, (개별 부분이나 장치뿐 아니라 전체 구조에 관련된) 개선 또한 계속 나타난다. 그러므로 기계의 생애 초기에는 노동일을 연장하려는 이 특수한 동기가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다.

 

노동일의 길이가 일정하고,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두 배의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서는 기계와 건물에 지출되는 불변 자본 부분과 원료, 보조 원료 등에 지출되는 불변 자본 부분 또한 두 배로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일의 연장은 기계와 건물에 지출되는 자본량을 변경하지 않고도 생산 규모를 확대시킨다. 이로 말미암아, 잉여 가치가 증가할 뿐 아니라, 잉여 가치의 착취에 필요한 지출이 감소한다. 물론 이런 현상은 노동일이 연장되면 대체로 발생하지만, 여기에서는 노동 수단으로 전환된 자본 부분이 훨씬 크기 때문에 더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 기계제 생산의 발전과 함께 자본 중 끊임없이 증가하는 한 부분은, 한편으로는 가치 증식을 위해 계속 사용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노동과 접촉하지 못하면, 자기의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를 모두 잃어버리는 형태(기계와 같은 노동 수단)로 묶인다. 영국의 면공업 거두 애쉬워스는 시니어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농부가 자신의 괭이를 내버려 두면, 그 기간 동안 18펜스의 자본을 쓸모없게 만든다. 반면, 우리 중 한 사람이 공장을 떠나면, 10만 파운드의 비용이 든 자본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과 같다.’

 

생각해 보라. 10만 파운드의 비용이 든 자본을 비록 일순간일지라도 쓸모없게만드는 것은 우리 중 누군가 공장을 떠난다면, 참으로 엄청난 일이다. 시니어가 애쉬워스의 가르침으로부터 잘 알고 있듯이, 기계 사용의 끊임없는 확대는 노동일을 점점 더 연장하는 것을 소망스러운것으로 만든다. 기계가 상대적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노동력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감소시키거나(아동 노동과 여성 노동의 사용, 성인 남성 노동력 가치 감소 등으로부터), 또는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상품을 싸게 만들면서 간접적으로 노동력을 싸게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기계가 처음에 산발적으로 도입될 때는, 기계 소유자가 고용한 노동은 강화되고, 더 효율적인 노동으로 전환되어 생산물의 개별 가치를 그것의 사회적 가치보다 싸게 만든다. 이로부터 자본가는 하루의 생산물 가치 중 더 작은 부분으로 하루의 노동력 가치를 보상할 수 있다(12장 참조). 그러므로 기계 사용이 일종의 독점 상태에 있는 이 과도기에는 이윤이 엄청나게 크며, 자본가는 이 첫사랑의 시기를 최대한 노동일을 연장하면서 철저히 이용하려 한다. 많은 이윤은 더 많은 이윤에 대한 갈망을 격화시킨다.

 

기계가 일정한 생산 부문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면, 기계 생산물의 사회적 가치는 그 개별 가치 수준으로 저하된다. 이로부터 잉여 가치는 기계가 대체한 노동력이 아닌, 그 기계에 붙어 실제로 작업하는 노동력에서 생겨난다는 법칙이 관철된다. 잉여 가치는 자본의 가변 부분에서만 발생하며, 이미 본 바와 같이, 잉여 가치량은 두 가지 요인, 곧 잉여 가치율과 (동시에 고용되는) 노동자 수로부터 규정된다. 노동일의 길이가 일정할 때, 잉여 가치율은 노동일이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으로 분할되는 비율로부터 결정된다. 그리고 동시에 고용되는 노동자 수는 가변 자본 부분과 불변 자본 부분 사이의 비율에 의존한다. 기계가 노동 생산성 향상으로부터 필요 노동을 희생하여 잉여 노동을 확대시킨다 하더라도, 기계 사용은 (일정한 금액의 자본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수를 감소시키면서만 이런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기계 사용은 자본 중 이전의 가변 자본 부분(살아 있는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부분)을 기계, 곧 아무런 잉여 가치도 생산하지 않는 불변 자본으로 전환시킨다. 그러나 예를 들어, 2명의 노동자로부터 24명의 노동자에게서 짜내는 만큼의 잉여 가치를 짜낼 수는 없다. 24명의 노동자가 각각 12시간 노동에서 1시간의 잉여 노동밖에 제공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합계 24시간의 잉여 노동을 제공한다. 2명 노동자의 총노동은 24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잉여 가치 생산을 위한 기계 사용에는 내재적 모순이 존재한다. 일정한 금액의 자본이 창조하는 잉여 가치의 두 요인 중 하나인 잉여 가치율은 다른 요인인 노동자 수를 감소시키지 않고서는 증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내재적 모순은 기계가 어떤 공업 부문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기계가 생산하는 상품 가치가 그 종류의 모든 상품의 사회적 가치를 규제하게 되자마자 나타난다. 그래서 이 모순은 다시금 자본가로 하여금, 그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서도, 착취되는 노동자 수의 상대적 감소를 상대적 그리고 절대적 잉여 노동의 증가로 보상하고자 노동일을 무자비하게 극도로 연장시키게 한다.

 

따라서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한편으로, 노동일의 무제한 연장에 강력한 새로운 동기를 제공하며, 노동 방식 자체와 사회적 노동 유기체의 성격을 크게 변혁시키면서 노동일을 연장하려는 모든 저항을 좌절시킨다. 다른 한편으로,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노동자 계급 중 종전에 자본가의 손에 미치지 않았던 계급들을 복종시키고, 또 기계가 쫓아낸 노동자들을 실업 상태로 만들면서, 자본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과잉 노동 인구를 생산한다. 여기에서 노동일의 길이에 관한 온갖 도덕적·자연적 제한을 없애버리는 근대 산업사의 주목할 만한 현상이 나온다. 또한, 노동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노동자와 그 가족의 모든 생활 시간을 자본의 가치 증식에 이용할 수 있는 노동 시간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된다는 경제적 역설이 발생한다. 고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꿈꾸었다.

 

다이달로스의 작품이 스스로 움직이고, 헤파이스토스의 삼각대가 저절로 신성한 일을 수행했던 것처럼, 각각의 도구가 명령에 따라, 또는 자기 자신의 예견에 따라 해야 할 일을 수행할 수 있다면, 그리고 베틀의 북이 저절로 천을 짠다면, 장인에게는 도제가 필요 없을 것이며, 주인에게는 노예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키케로 시대의 그리스 시인 안티파트로스는 곡물을 찧는 물레방아(모든 생산적 기계 설비의 기본 형태)의 발명을 여성 노예의 해방자이자 황금 시대의 재건자라고 환영했다. , 이교도들이여. 당신들은 총명한 바스티아와 그보다 앞서 더욱 총명했던 매컬록이 발견한 경제학과 기독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예를 들어, 당신들은 기계가 노동일을 연장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는 것을 몰랐다. 당신들은 한 사람의 노예 상태를 다른 사람의 완전한 인간적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거칠고 교양 없는 일부 벼락부자들을 우수한 방적업자’, ‘대규모 소시지 제조업자’, ‘유력한 구두약 장사로 만들고자 대중의 노예화를 설교하는 기독교적 정신을 당신들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 노동의 강화

 

자본의 수중에 있는 기계가 요구하는 노동일의 무제한 연장에 대해,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나중에는 (생명의 근원이 위험에 빠진) 사회가 반작용하여 법적으로 제한된 표준 노동일을 정한다. 이 표준 노동일 아래에서는, 이전에 보았던 현상인 노동의 강화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절대적 잉여 가치를 분석할 때는 먼저 노동의 외연적 크기가 문제였으며, 노동의 강도는 주어진 것으로 전제했다. 이제 우리는 외연적 크기가 내포적 크기로 전환되는 것, 곧 노동의 강도를 고찰해야 한다.

 

기계 사용이 보급되고, 기계 사용에 익숙한 특수 노동 계급의 경험이 축점됨에 따라, 노동의 속도, 따라서 노동의 강도가 자연 발생적으로 증가함은 자명하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반세기 동안 노동일의 연장이 공장 노동의 강도 증가와 나란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다루는 노동은 일시적이거나 발작적인 노동이 아닌 변함없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노동이다. 결국 노동일의 연장과 노동의 강도가 서로 배제하는 지점, 곧 노동일의 연장은 오직 노동 강도의 저하와, 반대로 노동 강도의 강화는 오직 노동일의 단축과만 양립하게 되는 지점이 도래한다. 점차 증대하는 노동 계급의 저항 때문에 의회가 노동 시간을 강제적으로 단축하고, 먼저 진정한 공장에 대해 표준 노동일을 명령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마자, 곧 노동일의 연장으로부터 잉여 가치의 생산 증가가 제한된 바로 그 순간부터, 자본은 기계 체계의 발전을 한층 더 촉진하면서 전력을 다해 상대적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데 몰두했다. 이와 동시에, 상대적 잉여 가치의 성격 변화가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상대적 잉여 가치는 노동 생산성 향상에 힘입어, 노동자가 동일한 노동 지출로, 동일한 시간 안에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생산된다. 동일한 노동 시간은 총생산물에 여전히 동일한 가치를 첨가하지만, 이 변하지 않는 교환 가치가 이제는 더 많은 사용 가치에 분산되므로, 상품 단위당 가치는 저하한다. 그러나 강제적 노동일 단축과 함께 사태는 달라진다. 이 단축은 생산성을 발전시키고, 생산 조건을 절약하도록 강력한 지극을 주는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동일한 시간 안에 노동력 지출을 증가시키고, 노동력의 긴장도를 높이며, 느슨한 노동일을 집약적으로 만드는 것을 강요한다. 다시 말해, 단축된 노동일의 범위 안에서만 달성할 정도로 노동을 농축하도록 강요하게 된다.

 

일정한 시간으로 압축된 더 많은 노동은 당연히 더 많은 노동력으로 계산된다. ‘외연적 크기의 척도(곧 노동 시간)에 더해 노동은 이제 강도, 농축도 또는 밀도라는 척도를 가지게 된다. 10시간 노동일의 더 집약적인 1시간은 12시간 노동일의 더 느슨한 1시간과 비교해 더 많은 노동(곧 지출된 노동력)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더 집약적인 1시간의 생산물은 더 느슨한 1.2시간(1시간 12)의 생산물과 동일하거나 더 큰 가치를 갖는다. 노동 생산성의 상승에 의거한 상대적 잉여 가치의 증대를 제외하더라도, 이제는 예를 들어, 6.6시간(6시간 40)의 필요 노동과 3.3시간(3시간 20)의 잉여 노동이 종전에 8시간의 필요 노동과 4시간의 잉여 노동이 제공하던 것과 동일한 가치량을 자본가에게 제공한다.

 

이제 노동이 어떻게 강화되는지를 알아보자. 노동일 단축의 첫 효과는 노동력의 능률이 노동력의 사용 시간에 반비례한다는 자명한 법칙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노동 시간 단축으로 입은 손실은 일정한 한도 안에서는 노동력 지출의 강도를 증가시키면서 보상된다. 더욱이 자본가는 임금 지급 방법으로부터 노동자가 현실적으로 더 많은 노동력을 지출하도록 유도한다. 기계가 거의 아무런 구실도 하지 못하는 도자기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공장법의 실시로부터 노동일의 단순한 단축이 노동의 규칙성, 균등성, 질서, 계속성, 활력을 놀랄 말큼 높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공장에서 이런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는 의문시되었는데, 여기에서는 노동자가 기계의 계속적이며 균일한 운동에 종속되면서 이미 매우 엄격한 규율이 수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844년에 노동일을 12시간 이하로 단축시키는 문제가 토의되었을 때, 공장주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노동자들의 감독들은 각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감시해 왔다. 노동자들의 경각심과 주의력의 정도는 거의 향상될 수 없다. 기계의 속도와 기타의 모든 조건이 불변이라고 전제하면, 잘 경영되고 있는 공장들에서는 노동자들의 주의력의 향상으로부터 어떤 현저한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여러 실험들로 인해 부정되었다. 가드너는 1844420일 이후 프레스턴에 있는 자신의 대형 공장 두 곳에서 하루 12시간 노동 대신 11시간 노동을 실시했다. 1년이 지난 뒤, 다음과 같은 성과가 나타났다.

 

같은 양의 생산물이 같은 금액의 비용으로 얻어졌으며, 전체 노동자들은 종전에 12시간에 벌던 것과 동일한 금액의 임금을 11시간에 벌었다.’

 

필자는 여기에서 방적실과 소면실의 실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 실험들에서는 기계 속도의 2% 증가가 함께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매우 다종다양한 무늬 있는 새로운 유행품까지도 짜고 있던 직조부에서는 객관적 생산 조건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84416일부터 420일까지는 12시간 노동일에 각 노동자의 주당 평균 임금은 10실링 1.5펜스였으며, 1844420일부터 629일까지는 11시간 노동일에 주당 평균 임금이 10실링 3.5펜스였다.’

 

이 경우, 11시간에 생산한 것이 종전의 12시간에 생산하던 것보다 더 많았는데, 이것은 오로지 노동자들의 더 지속적인 노동과 시간 절약의 결과였다. 노동자들은 동일한 임금을 받고 1시간의 자유 시간을 얻었고, 자본가는 종전과 동일한 생산량을 얻었으며, 1시간분의 석탄, 가스 등의 지출을 절약했다. 호록스·잭슨 합명 회사의 공장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실시되어 동일한 결과를 낳았다.

 

노동일의 단축은 먼저 노동 강도의 강화를 위한 주체적 조건을 만들어낸다. 이는 노동자로 하여금 일정한 시간에 더 많은 노동력을 지출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노동일 단축이 법적으로 강제되자마자, 기계는 자본가의 수중에서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노동을 짜내기 위한 객체적이며 체계적인 수단이 된다. 이는 두 가지 방식, 곧 기계 속도의 증가와 노동자 1인당 감독 또는 운전하는 기계 수의 증가로부터 달성된다. 기계 구조의 개량은, 부분적으로는 노동자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하며, 부분적으로는 이 개량 자체가 노동의 강화를 유발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이는 노동일의 제한이 자본가로 하여금 생산비를 가장 엄격히 절약하지 않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증기 기관의 개량은 나들통(피스톤)의 속도를 증가시키는 한편, 동력의 더 큰 절약으로부터동일하거나 더 적은 양의 석탄을 소비하면서도, 더욱 많은 기계류를 가동할 수 있게 한다. 전동 장치의 개량은 마찰을 감소시키고, 회전축의 직경과 무게를 끊임없이 최저 한도로 줄였다. 이것은 구식 기계와 비교했을 때, 근대적 기계의 명백한 장점이다. 끝으로, 작업기의 개량은 근대적 증기 직기와 같이 크기를 축소하면서 속도와 능률을 증가시켰거나, 또는 방적기와 같이 몸통의 크기를 증대시키면서, 그것이 움직이는 도구 종류들의 수를 늘렸다. 또는 (10년 전에 자동식 뮬 방적기에서 북의 속도를 1/5만큼 상승시켰던 바와 같은) 눈에 띄지 않는 세부적 변경들로부터 이 도구들의 속도를 증가시켰다.

 

노동일을 12시간으로 단축시킨 것은 잉글랜드에서는 1832년이었다. 이미 1836년에 어느 공장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30-40년 전에 비하면, 공장에서 행하는 노동은 기계 속도의 현저한 증가가 노동자에게 주의력과 활동성의 강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대단히 증가했다.’

 

현재 샤프츠베리 백작인 애슐리는 1844년에 하원에서 문서상의 증거를 뒷받침하며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제조 과정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동은 이런 작업들을 도입하던 초기에 비해 3배나 크다. 기계는 의심할 바 없이 수백만 사람들의 힘줄과 근육을 요구하는 작업을 수행했지만, 기계는 또한 그 무서운 운동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노동을 놀랄 만큼 증대시켰다. 1815년에는 하루 12시간 제40번수 실을 방적하는 두 대의 뮬 방적기를 돌보는 노동자는 8마일 거리를 걸어야 했다. 1832년에는 그 거리가 20마일이었으며, 그 이상 되는 경우도 잦았다. 1825년에 방적공은 12시간에 각 뮬 방적기에 820, 따라서 두 대에는 합계 1,640회나 실을 걸어야 했다. 1832년에는 방적공은 12시간 노동일에, 각 뮬 방적기에 2,400, 두 대에는 모두 4,800회 실을 걸어야 했으며, 또 일부 경우에는, 더욱 많은 노동량이 요구되었다. 여기에 1842년에 받은 또 하나의 문서가 있는데, 그것은 노동이 점차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증명한다. 그 이유는 움직이는 거리가 증가하기 때문일 뿐 아니라, 직공의 수는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데 생산되는 상품의 양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노동이 더 많이 요구되는 질 나쁜 면화가 자주 방적되는 것도 원인이다. 소면실에서도 노동이 역시 크게 증가했다. 종전에 두 사람이 담당하던 노동을 지금은 한 사람이 수행한다.

 

직조실에서 기계 속도 증가는 노동 강도를 최근 수년간 10% 이상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대부분 여성인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부담이다. 실제 생산량 증가는 이를 뒷받침한다. 주당 방적 타래 수는 183818,000개에서 184321,000개로 늘었다. 특히, 증기 직기의 씨실 북 운동 속도가 1819년 분당 60회에서 1842년 분당 140회로 급증한 사실은 노동량의 비약적 확대를 명확히 보여준다. 12시간 노동법이 실시되던 1844년에 이미 달성된 이와 같은 주목할 만한 노동 강도에 비추어 보면, 이 방향으로 더 이상 진전이 어렵고, 따라서 노동 시간을 더욱 감소시키는 것은 생산을 감소시키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는 영국 공장주들의 말은 그럴듯하게 보였다. 그들의 이유가 언뜻 보기에 그럴듯했다는 사실은 당시 그들을 성실하게 검열한 공장 감독관 호너의 다음과 같은 말로부터 가장 훌륭하게 증명된다.

 

생산량은 주로 기계 속도로부터 규제되므로, 기계를 다음과 같은 조건들, 곧 지나치게 급속한 마멸로부터 기계를 보호할 것, 제품의 품질을 유지할 것, 그리고 노동자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고, 기계의 운동에 따라갈 수 있을 것 등과 일치하는 최고 속도로 가동시키는 것이 공장주의 이익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공장주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는 위의 조건들을 충분히 고려하며 기계의 최고 운전 속도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공장주가 지나치게 운전 속도를 높여 파손품과 불량품이 많이 나오고, 이익을 상쇄하고도 남게 되어 기계 속도를 다시 완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경우도 많다. 활동적이며 머리 좋은 공장주는 안전한 최대 속도를 틀림없이 발견할 것이므로, 본인은 12시간에 생산하던 것을 11시간에 생산하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본인은 성과급을 받는 노동자가 동일한 노동 강도를 계속 유지하려고 최대한 노력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호너는 가드너 등의 실험에도 불구하고, 노동일을 12시간 이하로 더 단축시킨다면, 생산량은 감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10년 뒤에, 1845년 당시의 위와 같은 자기 견해를 인용하면서, 기계와 인간 노동력의 탄력성이 노동일의 강제적 단축으로 말미암아 매우 크게 팽창하게 된다는 것을 자신이 너무 과소평가한 증거로 제시한다.

 

이제 우리는 잉글랜드의 면 공장, 양모 공장, 명주실 공장, 아마 공장에 1847년의 10시간 노동법이 실시된 시기로 넘어간다.

 

방추의 속도는 1분에 스로슬 방적기에서는 500회전만큼, 뮬 방적기에서는 1,000회전만큼 증가했다. 1839년에 14,500회전이었던 스로슬 방추의 속도는 현재(1862) 5,000회전에 달하며, 5,000회전이었던 뮬 방추의 속도는 현재 16,000회전에 달한다. 이는 전자에서는 1/10, 후자에서는 1/5의 속도 증가에 해당한다.’

 

맨체스터에 가까운 패트리크로프트의 유명한 토목 기사 네즈미스는 1852, 레너드 호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1848년에서 1852년 사이에 이루어진 증기 기관의 개량들을 설명했다. 증기 기관의 마력이 공식적 공장 통계에서는 계속 1828년의 비슷한 증기 기관의 힘을 표준으로 계산되므로, 이는 명목적인 것에 불과하며 현실적 힘의 지표로만 기능할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 뒤, 그는 특히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일한 무게의 증기 기관이 종전보다 평균 50% 더 많이 수행한다는 것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속도가 분당 220피트로 제한되던 시기에 50마력을 내던 동일한 증기 기관들이, 현재에는 석탄을 적게 소비하면서도 100마력 이상을 내고 있다. 100마력을 가진 근대적 증기 기관은 그 구조, 보일러의 용적, 구조상의 개량 등으로 종전보다 훨씬 더 큰 힘으로 운전된다. 그러므로 마력과 비교하면 종전과 동일한 수의 직공이 고용된다 하더라도, 작업기와 비교하면 더 적은 수의 직공이 고용된다. 1850년 영국 공장들에서는 25,638,716개의 북과 301,445대의 직기를 운전하고자 134,217의 명목 마력이 사용되었다. 1856년에는 북과 직기의 수는 각각 33,503,580개와 369,205대였다. 1850년 기준으로 명목 마력을 계산했다면, 1856년에는 175,000마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식 보고에 따르면, 그것은 불과 161,435마력에 지나지 않아 1850년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보다 10,000마력 이상이 적다. 1856년의 보고에서 확인된 사실들은 공장 제도가 매우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는 점, 마력과 대비해서는 종전과 동일한 수의 직공들이 고용되더라도, 작업기와 대비한 직공 수는 감소했다는 점, 증기 기관이 힘의 절약과 기타 방법으로부터 더 큰 무게의 기계들을 운전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작업기와 제조 방법의 개선, 기계 속도의 증가, 기타 많은 원인들의 결과, 노동자의 해고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종 기계들을 크게 개량한 결과, 기계의 생산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노동일의 단축이 이런 개량에 자극을 주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이런 개량과 노동자의 더욱 강화된 노동은 단축된(2시간, 1/6 단축된) 노동일에서 적어도 종전의 더 긴 노동일에 생산되던 양만큼의 제품을 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노동력의 착취가 더욱 강화됨에 따라, 공장주들의 부가 얼마나 증가했는지는 단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잉글랜드 면 공장과 기타 공장 수의 연평균 증가가 1838년부터 1850년까지는 32개였으나, 1850년부터 1856년까지는 86개로 늘어났다.

 

10시간 노동일의 영향을 받아 1848년부터 1856년까지 8년 동안 잉글랜드 공업이 크게 발전했더라도, 그 뒤 1856년부터 1862년까지 6년 동안의 발전은 그것을 훨씬 능가했다.

 

명주실 공장

 

예를 들어, 명주실 공장의 방추 수는 18561,093,799개에서 18621,388,544개로 26.9% 증가했고, 직기 수는 18569,260대에서 186210,709대로 15.6% 증가했다. 이와 반대로, 노동자 수는 185656,137명에서 186252,429명으로 7% 감소했다.

 

소모사 공장

 

1850년에 소모사 공장에서 사용된 방추 수는 875,830, 1856년에는 1,324,549(51.2% 증가), 1862년에는 1,289,172(2.7% 감소)였다. 그러나 복연 방추가 1856년 계산에는 포함되고 1862년 계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방추 수는 1856년 이래 거의 변함이 없었다. 이와 반대로, 방추와 직기의 속도는 1850년 이래 2배로 증가한 경우가 많았다. 소모사 공장의 증기 직기 수는 185032,617, 185638,956, 186243,048대였다. 여기의 종업원 총수는 185079,737, 185687,794, 186286,063명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그중 14세 미만의 아동은 18509,956, 185611,228, 186213,178명으로 증가했다. 결국, 1862년에는 1856년에 비해 직기 수가 현저히 증가했음에도, 취업 노동자 총수는 감소했으며, 착취당하는 아동들의 수는 증가했다.

 

1863427, 페런드는 하원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본인은 랭커셔와 체셔의 16개 지구 노동자 대표들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들이 본인에게 전하는 바에 따르면, 기계 개량의 결과로 공장들에서 노동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종전에는 노동자 1명이 조수를 데리고 2대의 직기를 담당했으나, 현재는 1명이 조수도 없이 3대를 담당하고 있으며, 심지어 4대까지 담당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위에서 든 사실에서 명백하듯이, 12시간 노동이 현재는 10시간 노동 이하로 압축되고 있다. 그러므로 공장 노동자들의 수고가 최근 10년간 얼마나 많이 증가했는지는 자명하다.’

 

그러므로 비록 공장 감독관들이 1844년과 1850년의 공장법이 가져온 유익한 결과들을 꾸준하고 완전히 정당하게 찬양하고 있지만, 그들은 또한 노동일의 단축이 이미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따라서 노동력 자체를 파괴하는 정도의 노동 강도를 야기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대다수의 면 공장, 소모사 공장, 명주실 공장들에서는 최근 수년간 운전 속도가 매우 빨라진 기계를 노동자들이 제대로 관리하고자 극도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폐병으로부터 사망률 증가의 한 원인으로 된 것 같다(그린하우는 최근 자기의 보고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노동일의 연장이 법률로 영구적으로 금지되자, 자본은 이를 보상하고자 노동 강도를 체계적으로 강화하는 경향과, 노동력을 흡수하는 더욱 완전한 수단으로 기계를 개량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얼마 안 가 다시 노동 시간의 새로운 단축을 불가피하게 하는 한계점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반면에, 1848년부터 현재까지의 10시간 노동일 시기에 영국 공업의 급속한 발전은 1833년부터 1847년까지의 12시간 노동일 시기의 발전을 능가한다. 이 급속한 발전의 정도는 공장 제도 도입 이래 첫 반세기(무제한 노동일 시기)의 공업 발전을 12시간 노동일 시기의 발전이 능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

 

15-4. 공장

 

우리는 이 장의 첫머리에서 공장의 본체, 곧 기계 체계를 고찰했다. 그 후, 기계가 여성 및 아동 노동을 활용하며 자본이 착취할 인간 재료의 양을 어떻게 늘리는지, 기계가 노동일의 무제한적 연장으로 노동자의 전체 생활 시간을 어떻게 잠식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욱 방대한 생산물을 더욱 짧은 시간에 이루는) 기계의 발전이 어떻게 노동력의 집약적 착취를 위한 체계적 수단(일정한 시간 동안 더 많은 작업을 하는)이 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공장을 전체로, 그리고 그 가장 발달한 형태에서 고찰할 차례다.

 

자동 공장 전문가 유어는공장 철학: 13-14에서 공장을 두 가지 측면에서 묘사한다. 한편으로, 공장은 중심 동력으로부터 끊임없이 작동하는 생산적 기계 체계를, 꾸준한 숙련을 갖춘 각종 직급의 성년·미성년 노동자들이 결합된 협업으로 운전하는 곳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장은 공동의 물품 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함께 작용하며, 모두가 하나의 자율적인 동력에 종속되는, 각종 기계적이고, 의식 있는 기관들로 구성된 방대한 자동 장치.

 

이 두 표현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전자에서는 결합된 집단적 노동자가 능동적 주체로, 기계적 자동 장치가 객체로 나타난다. 반면 후자에서는 자동 장치 자체가 주체이며, 노동자들은 단지 의식 있는 기관으로 자동 장치의 의식 없는 기관들과 협력하며 중심 동력에 종속될 뿐이다. 첫째 표현은, 기계를 대규모로 사용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존재할 수 있으나, 둘째 표현은, 자본으로부터 기계 사용, 곧 근대적 공장 제도를 특징짓는다. 이 때문에 유어는 동력의 출발점인 중심 기계를 자동 장치뿐 아니라 독재자로 묘사하길 즐겼다.

 

이런 큰 작업장들에서는 증기라는 인자한 임금이 그 주위에 무수한 신하들을 모으고 있다.’

 

노동 도구와 더불어, 그것을 사용하는 노동자의 숙련 역시 기계로 옮겨간다. 이로부터 도구의 작업 능력은 인간 노동력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된다. 따라서 공장제 수공업에서 분업이 의존했던 기술적 토대는 파괴된다. 결과적으로, 공장제 수공업을 특징짓던 전문 노동자들의 위계 제도 대신, 자동 공장에서는 기계 관리인들이 수행해야 할 작업의 균등화 또는 수평화 경향이 나타난다. 또한 부분 노동자들 사이의 인위적 구별은 사라지고, 주로 나이와 성별에 따른 자연적 차이가 지배하게 된다.

 

자동 공장에서 분업은 주로 전문화된 기계들에 노동자들을 분배하는 형태다. 또한 공장의 여러 부문으로 일정한 수의 노동자를 분배하지만, 이들은 유기적 집단을 이루지 않는다. 공장의 각 부문에서 이들은 쭉 늘어선 같은 종류의 작업기에 붙어 작업하며, 이들 사이에는 단순한 협업만 존재할 뿐이다. 여기서는 공장제 수공업과 같은 유기적 집단 대신, 우두머리 노동자와 여러 명의 조수 사이의 결합이 나타난다. 주된 분업은 실제로 작업기에 붙어 노동하는 기계 취급 노동자(원동기를 돌보는 일부 노동자 포함)와 그들의 단순한 조수들(거의 전적으로 아동) 사이에 이루어진다. 대체로 기계에 가공용 재료를 공급하는 원료 공급 노동자들은 모두 조수다.

 

이 두 부류의 주요 노동자들 외에도, 예를 들어, 기술자, 기계공, 목수처럼 모든 기계를 돌보고, 때때로 수리하는 수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인원들이 있다. 이들은, 일부는 과학 교육을, 일부는 수공예 훈련을 받은 고급 노동자층으로, 공장 노동자층과는 구별되며 다만 후자와 함께 집계될 뿐이다. 이 분업은 순전히 기술적인 성격을 띤다. 기계에서 작업하려면 노동자는 자동 장치의 규칙적이고, 연속적인 운동에 자신의 움직임을 적응시키는 법을 어려서부터 배워야 한다. 전체 기계 장치는 집단적으로 동시에 작용하는 각종 기계들의 체계이므로, 이 체계에 의거한 협업은 각종 노동자 집단들을 각종 기계에 분배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기계제 생산에서는 이 분배를 공장제 수공업처럼 고정시켜 동일한 노동자를 동일한 기능에 계속 매어둘 필요가 없다. 공장 전체의 운동이 노동자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노동 과정을 중단시키지 않고도 끊임없이 인원을 교체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가장 뚜렷한 증거는 1848-1850년 영국 공장주들의 반란(10시간 노동법에 대한 반대) 동안 채택되었던 교대 제도다(1권 제10장 제6절 참조). 결국, 기계와 함께하는 작업은 젊은이들도 빨리 배울 수 있기에, 특수한 부류의 노동자들을 기계 취급 노동자로 육성할 필요가 없다. 한편, 공장에서 단순한 조수들의 작업은 어느 정도 기계로 대체하며, 그 작업 자체가 매우 단순하므로, 이 지겨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빠르게, 그리고 끊임없이 교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기계는 기술적 관점에서는 기존의 분업 체계를 타파한다. 그러나 그 분업 체계는 처음에는 공장제 수공업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으로 공장에 존속하며, 다음에는 자본의 노동력 착취 수단으로 더욱 지독한 형태로 체계적으로 재생산되어 고정된다. 이전에는 동일한 도구를 다루는 일이 평생의 전문직이었으나, 이제는 동일한 기계에 봉사하는 일이 평생의 전문직이 된다. 기계는 노동자 자신을 유년 시절부터 특정 기계의 한 부분으로 전환시키는 일에 악용된다. 그 결과, 노동자 자신의 재생산에 필요한 비용이 현저히 줄어들 뿐 아니라, 동시에 공장 전체, 곧 자본가에 대한 노동자의 절망적인 종속이 완성된다.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사회적 생산 과정의 발전에서 나오는 생산성 증대와 그 발전의 자본주의적 이용으로 말미암은 생산성 증대를 구별해야 한다.

 

공장제 수공업과 수공업에서는 노동자가 도구를 사용하지만, 공장에서는 기계가 노동자를 사용한다. 전자에서는 노동 수단의 운동이 노동자로부터 출발하지만, 후자에서는 노동자가 노동 수단의 운동을 뒤따라가야 한다. 공장제 수공업에서 노동자들은 하나의 살아 있는 기구의 구성원이지만, 공장에서는 하나의 생명 없는 기구가 노동자로부터 독립해 존재하며, 노동자는 그것의 단순한 살아 있는 부속물이 되어 있다.

 

똑같은 기계적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싫증나고, 단조로운 고역, 이것은 시시포스의 형벌과도 같다. 노동이라는 무거운 짐이, 바위처럼, 지쳐빠진 노동자 위에 끊임없이 떨어져 내려온다.’

 

공장 노동은 신경 계통을 더할 수 없이 피로하게 만들고, 근육의 다면적 운동을 억압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로운 육체적·정신적 활동을 전혀 할 수 없게 한다. 노동이 가벼워지는 것조차 고통의 근원이 되는데, 이는 기계가 노동자를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노동으로부터 일체의 내용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노동 과정일 뿐 아니라 동시에 자본의 가치 증식 과정이기에, 어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든 노동자가 노동 조건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조건이 노동자를 사용한다는 점이 공통된다. 그러나 이 거꾸로 된 관계는 기계의 출현과 함께, 비로소 기술적으로 분명한 현실성을 얻게 된다. 자동 장치로 전환되면서 노동 수단은 노동 과정의 진행 중에 자본(곧 살아 있는 노동력을 지배하며 흡수하는 죽은 노동)으로 노동자와 대립한다. 생산 과정에서 지적 요소를 육체적 노동에서 분리하고, 전자를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력으로 전환하는 일은, 앞서 지적했듯, 기계를 토대로 세워진 대공업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된다. 개별 기계 취급 노동자의 특수한 기능은 (기계 체계에 체현된) 과학, 거대한 물리력, 사회적 집단 노동 앞에서 보잘것없이 사라진다. 이 기계 체계가 이 세 가지 힘과 결합하여 고용주의 지배력을 구성한다. 바로 그 때문에, 기계 자체와 그 독점권을 머릿속에서 혼동하는 고용주는 직공들과 충돌할 때, 경멸적으로 그들에게 이렇게 부르짖는다.

 

공장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노동이 사실상 매우 저급한 종류의 기능 노동이라는 것, 자기들의 노동처럼 얻기 쉬운 노동은 없으며, 그 질에 비해 이처럼 많은 보수를 받는 노동은 없다는 것, 다른 어떤 노동도 단기간의 훈련으로 이처럼 신속히 또 풍부하게 공급될 수는 없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용주의 기계는 노동자의 노동과 기능(6개월이면 익숙하게 배울 수 있고, 어떤 농촌 일꾼도 배울 수 있는)보다 생산에서 사실상 훨씬 더 중요한 구실을 한다.’

 

노동자를 노동 수단의 규칙적 운동에 기술적으로 종속시켜야 하는 필요성, 그리고 노동 집단이 남녀노소 모든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병영과 같은 규율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 규율은 공장에서 완전한 제도로 정교하게 발전하며, 이미 언급한 감독 노동을 완전히 발달시키면서, 노동자를 육체적 노동자와 노동 감독자, 곧 산업군의 병사와 하사관으로 분할하게 된다.

 

 

‘(자동 공장의) 주된 곤란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규칙적 노동 관습을 버리고 복잡한 자동 장치의 변함없는 규칙성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데 있었다. 그러나 자동 기계의 요구에 알맞은 성공적인 공장 규율집을 만들어내어 실시하는 것은 헤라클레스나 할 만한 사업이었으며, 아크라이트가 이 고귀한 업적을 달성했다. 공장 제도가 완벽하게 조직되어 노동이 더할 수 없이 경감된 오늘날에도, 이미 성년기에 달한 사람을 유용한 공장 노동자로 전환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장 규율집에서 자본가는 노동자들에 대한 독재 권력을 사적 입법자처럼 자기 마음대로, (부르주아지가 그토록 좋아하는 권력 분립도, 그보다 더 좋아하는 대의제도 없이) 규정한다. 이 공장 규율집은 노동 과정에서 사회적 규제(대규모 협업, 특히 노동 수단인 기계의 공동 사용이 행해지는 곳에서는 필요하다)를 자본주의적으로 그린 만화에 불과하다. 노예 감시자의 채찍 대신 노동 감독자의 처벌 규정집이 등장한다. 물론 모든 처벌은 결국 벌금과 임금 삭감이며, 공장 리쿠르구스의 입법적 총명 덕분에 자본가의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 준수하는 것보다 오히려 자본가에게 더 유리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오직 공장 노동이 행해지는 물질적 조건들만을 지적한다. 빈틈없이 설치된 기계들은 계절처럼 규칙적으로 사망자와 부상자의 명단을 제공한다. 이러한 생명의 위험 외에도, 인위적으로 만든 높은 온도, 원료의 먼지로 가득 찬 공기, 고막을 찢는 소음 따위로 말미암아 모든 감각 기관이 손상된다. 공장 제도에서 급속히 성숙되고, 강화되는 사회적 생산 수단 사용의 절약은, 자본의 수중에서는, 작업 중 노동자의 생명에 필요한 것들(곧 공간·공기·광선)을 체계적으로 빼앗아가는 것으로 변한다. 또한 생명에 위험하고, 건강에 해로운 (생산 과정의) 부수물들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모든 수단, 노동자의 편의 시설은 말할 것도 없이, 이를 체계적으로 빼앗아 가는 것으로 변한다. 푸리에가 공장을 완화된 감옥이라고 부른 것이 과연 부당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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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분업과 공장제 수공업

 

14-1. 공장제 수공업의 두 가지 기원

 

공장제 수공업은 분업을 토대로 하는 협업의 전형이다. 이 형태는 대 16세기 중엽부터 18세기 마지막 1/3에 이르는 진정한 공장제 수공업 시기부터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에서 특징적 지배 형태였다.

 

공장제 수공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형성된다.

 

1. 여러 종류의 독립적 수공업 종사 노동자들이 하나의 생산물이 완성하고자 동일한 자본가의 통제 아래 한 작업장에 모인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수레바퀴 제조업자, 마구 제조공, 재봉공, 자물쇠공 등 수많은 독립 수공업자들의 노동 생산물이었던 마차가 이제는 이들 모두가 하나의 작업장에 모여 미완성품을 차례로 넘기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이는 초기에는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이 준비된 단순 협업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중요한 변화가 발생한다. 각 수공업자(: 재봉공, 자물쇠공, 가구공 등)는 마차 제작만을 전업하게 되며, 이들은 자신의 종전 수공업을 전체 범위에서 수행하는 습관과 능력을 점차 상실한다. 그 대신, 이들의 활동은 완전히 일면화되어 협소해진 영역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전문화된다. 최초에는 다양한 독립 수공업들의 결합으로 시작되었던, 마차 공장제 수공업은 점차 마차 생산의 각종 부분 과정들로 세분되며, 각각의 부분 과정은 특정 노동자의 전문 기능으로 고정된다. 최종적으로, 공장제 수공업은 이와 같이 분화된 부분 노동자들의 결합으로부터 전체 작업을 수행한다. 직조 공장제 수공업이나 다른 모든 공장제 수공업들도 한 자본가의 통제 아래 여러 종류의 수공업들을 결합시키면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발생한다.

 

2. 공장제 수공업은 앞서 언급된 방식과는 반대의 방식으로도 발생한다. 하나의 자본가가 같은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을 수행하는 (예컨대 종이, 활자, 바늘 등을 만드는) 수많은 수공업자들을 동시에 동일한 작업장에 고용한다. 이것이 가장 단순한 형태의 협업이다. 초기에는 이 수공업자들 각각이 (때로는 한두 명의 도제와 함께) 하나의 완전한 상품을 만들며, 그 상품 제조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차례로 수행한다. , 그는 여전히 자신의 종전 수공업적 방식대로 작업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외부 사정으로 인해, 동일한 장소에 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과 그들의 노동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게 된다. 이는 단순 협업 상태에서 생산 과정을 세분화하고 특정 작업에 전문화시키는, 곧 분업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정한 기한 내에 더 많은 양의 완성 상품을 공급해야 할 필요가 생기면 작업이 분할된다. 동일한 수공업자에게 다양한 여러 가지 작업을 차례로 시키는 대신, 그 작업들을 분리·고립시키고 공간적으로 나란히 세워 각각의 작업을 서로 다른 수공업장에게 할당한다. 그 결과, 전체 작업이 협업하는 노동자들로부터 동시에 수행된다. 이러한 우연적인 분할이 반복되고 발전하면서 점차 체계적인 분업으로 굳어진다. 상품은 여러 가지 작업을 수행하던 하나의 독립 수공업자의 개인적 생산물로부터, 각자가 언제나 단 한 가지 부분 작업만을 수행하는 수공업자 연합의 사회적 생산물로 변모한다. 예를 들어, 독일 길드의 제지업에서 하나의 수공업자가 행하던 일련의 순차적 작업들은, 네덜란드의 제지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다수의 협업 노동자들이 동시에 나란히 수행하는 수많은 부분 작업으로 독립된다. 또한, 뉘른베르크 길드적 바늘 제조업은 20가지나 되는 일련의 작업을 하나씩 차례로 수행했지만, 영국 바늘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20명의 수공업자가 각각 그중 한 가지 작업만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런 작업들은 경험 축적으로부터 더욱 세분되고 고립되며 완전히 독립적인 것으로 발전하여 개별 노동자들의 전문 기능으로 정착된다.

 

공장제 수공업이 생기고 발달하는 방식은 이와 같이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공장제 수공업은 각종 독립적 수공업의 결합에서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독립적 수공업은 그들의 독립성을 잃고 (하나의 특수한 상품 생산에서 상호 보완적인) 부분 작업으로 전환될 정도로 전문화한다. 다른 한편으로, 공장제 수공업은 같은 종류의 수공업자들의 협업에서 발생한다. 이 경우, 공장제 수공업은 그 수공업을 여러 가지 부분 작업들로 분해하고 고립시켜, 이 부분 작업들이 각각 한 노동자의 전문 기능이 될 정도로까지 독립한다. 공장제 수공업은 한편으로, 생산 과정에 분업을 도입하거나 분업을 한층 더 발전시키며, 다른 한편으로, 이전에는 서로 분리되어 있던 수공업을 결합시킨다. 그러나 그것의 출발점이 무엇이든, 공장제 수공업의 최종적 형태는 항상 동일하다. , 인간을 그것의 기관으로 하는 생산 공장제 수공업이다.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다음의 점을 명심해야 한다.

 

1. 생산 과정을 그 특수 국면으로 분할하는 것은 수공업을 각종 부분 작업으로 분할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 작업이 복잡하든, 단순하든, 각각의 작업은 언제나 손으로 수행하며 수공업적 성격을 보존한다.

 

따라서 각각의 작업은 각 노동자가 자신의 도구를 사용할 때 발휘하는 힘, 기교, 민첩성, 정확성에 의존한다. 수공업이 여전히 그 토대이며 기술적 토대가 협소하기 때문에 생산 과정을 그 구성 부분들로 과학적으로 분할할 수는 없다. 생산물이 통과하는 각각의 부분 과정은 손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하나의 독립된 수공업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수공업자의 숙련이 여전히 생산 과정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각 노동자는 오로지 하나의 부분 기능만을 수행하게 되고, 그의 노동력은 이 부분 기능의 평생 기관으로 전환된다.

 

2. 이 분업은 하나의 특수한 종류의 협업이다. 따라서 분업의 이점 중 상당수는 협업 일반의 성질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협업의 이 특수한 형태로부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14-2. 부분 노동자와 그의 도구

 

더욱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일생 동안 하나의 동일한 단순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신체를 그 작업을 위한 자동적이고 일면적인 도구로 전환시킨다. 따라서 그 작업을 하는 데, 그는 작업 전체를 순차적으로 수행하는 수공업자보다 적은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공장제 수공업의 살아 있는 원리를 형성하는 집단적 노동자는 순전히 이와 같이 일면적으로 전문화된 부분 노동자들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독립적 수공업장에 비해 더 적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이 생산된다. 다시 말해, 노동 생산성이 향상된다. 더욱이 이 부분 노동이 한 사람의 전문 기능으로 확립되면 부분 노동 방법도 개선된다. 동일한 단순 작업을 계속 반복하고 그 작업에 주의를 집중하기 때문에, 힘을 가장 적게 들이면서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방법을 경험으로부터 체득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세대가 어떤 일정한 상품의 공장제 수공업 안에서 함께 일하기 때문에, 이렇게 체득한 기술과 작업 요령은 확립되고 축적되며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공장제 수공업은 이미 사회에 존재하던 직업의 자연 발생적 분화를 작업장 안에서 재생산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끝까지 추진하며 부분 노동자들의 숙련을 생산해낸다. 다른 한편으로, 공장제 수공업이 부분 노동을 한 사람의 평생 직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이전 사회들에서 볼 수 있는 직업의 세습화 경향과 맥을 같이 한다. 옛날에는 직업이 카스트(인도의 세습적 신분)로 화석화되었거나, 또는 일정한 역사적 조건이 카스트 제도와 양립할 수 없는 변화를 낳는 경우, 직업이 길드로 굳어버렸다. 카스트나 길드는 동식물의 종이나 아종(亞種)으로의 분화를 규제하는 것과 동일한 자연 법칙의 작용에서 발생한다. 다만,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면 카스트의 세습성이나 길드의 배타성이 사회의 법률로 규정된다는 차이가 있다.

 

다카(현재는 방글라데시의 수도)에서 생산되는 모슬린은 그 섬세한 점에서, 또 코로만델에서 생산되는 캘리코(옥양목)와 기타 직물은 그 화려하고 오래가는 색채에서 아직까지 최고다. 그러나 그것들은 자본, 기계, 분업 없이 생산되며, 유럽 제조업에 많은 편익을 제공하는 수단 중 어느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다. 직조공은 개인 단독으로 고객의 주문에 따라 제조하며, 사용하는 기계라고는 몇 개의 나뭇가지나 막대기로 엉성하게 얽은 가장 단순한 구조의 직기이다. 그 직기에는 심지어 날실(經絲)을 감아두는 장치조차 없어, 직기는 언제나 전체 길이대로 늘어놓아야 한다. 결국 직기는 생산자의 오두막 안에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따라서 생산자는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일해야 하며, 날씨가 변할 때마다 일을 중단하게 된다.’

 

대대로 축적되어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전해지는 독특한 기술이 이 인도 사람들에게 거미와도 같은 기교를 제공한다. 그런데도 이런 인도 직조공의 작업은 대다수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들의 작업에 비해 대단히 복잡하다. 이는 분업 없이 한 사람이 작업 전체를 숙련된 방식으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완성품 생산에서 여러 부분 과정을 혼자 차례로 수행하는 수공인은, 때로는 장소를 이동하거나 도구를 바꾸어야 한다. 어떤 하나의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옮기는 것은 그의 노동 연속을 중단시키며, 그의 노동일에 이를테면 틈을 만들어낸다. 그가 하루 종일 하나의 동일한 작업을 계속한다면, 이러한 틈은 좁아지고, 작업 전환이 감소하는 것에 비례해 그 틈은 없어진다. 이 경우, 노동 생산성 상승은 주어진 시간 안에 노동력 지출의 증대(노동 강도의 강화) 때문이거나, 또는 노동력의 비생산적 소비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 정지에서 운동으로 이행할 때마다, 필요했던 힘의 추가적 지출은 달성된 표준 속도의 작업 지속 시간을 연장하는 것으로부터 보상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단조로운 노동의 연속은 활동의 전환 자체로부터 조성되는 기분 전환과 자극이 없어지기 때문에 노동자의 긴장감과 활기를 약화시킨다.

 

노동 생산성은 노동자의 숙련뿐 아니라 도구의 질에도 달려 있다. , 천공기, 송곳, 망치 등의 도구들은 서로 다른 노동 과정에서 사용되기도 하고, 또는 같은 도구들이 동일한 노동 과정에서 서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노동 과정에서 서로 다른 작업들이 분리되고 각각의 부분 작업이 특색있는 형태를 취하게 되면, 이전에는 여러 가지 목적에 사용되던 도구들에 변화가 일어난다. 도구의 이와 같은 형태 변화의 방향은 종래의 도구가 노동자에게 어떤 곤란을 주었는지로부터 결정된다. , 전문화된 부분 노동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도구가 개선된다.

 

공장제 수공업의 특징은 노동 도구의 분화와 특수화이다. 노동 도구의 분화로부터 도구는 특수한 용도에 맞는 형태로 고정되며, 노동 도구의 특수화로부터 각각의 특수한 도구들은 특수한 부분 노동자의 손에서만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버밍엄에서만 약 500종에 달하는 망치들이 생산되는데, 그 각각 모두 하나의 특수한 노동 과정에만 사용될 뿐 아니라, 가끔 여러 가지 망치들이 하나의 동일한 노동 과정에서 상이한 작업들에 사용된다. 공장제 수공업 시대는 노동 도구를 각 부분 노동자들의 전문적인 특수 기능에 적합하게 만들면서 그것을 단순화하고 개량하며 다양하게 한다. 그래서 또한 이 시대는 (다수의 간단한 도구들의 결합으로 구성되는) 기계의 출현을 위한 물질적 조건의 하나를 창조한다. 부분 노동자와 그의 도구는 공장제 수공업의 가장 단순한 요소들이다. 이제 우리는 공장제 수공업의 전체 모습을 본다.

 

14-3. 공장제 수공업의 두 가지 형태: 조립형 공장제 수공업과 연속 공정형 공장제 수공업

 

공장제 수공업의 조직에는 두 가지 기본 형태가 존재하며, 이들은 때로는 뒤섞여이지만,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종류이다. 더욱이 공장제 수공업이 기계로부터 근대적 공업으로 전환될 때 전혀 상이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 두 형태는 생산되는 제품의 성질로부터 발생한다. , 그 제품이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부품들의 단순한 기계적 조립으로부터 완성되는가, 또는 그 완성 형태가 상호 관련된 일련의 과정과 조작으로 주어지는가에 따라 구별된다.

 

한 대의 기관차는 5,000대 이상의 독립적인 부품들로 구성되지만, 이는 대공업의 생산물이므로 진정한 공장제 수공업의 첫 번째 종류의 실례로 들 수는 없다. 하지만 시계는 그 실례로 적합하다. 윌리엄 페티도 일찍이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을 설명하고자 시계를 예로 들었다. 이전에는 뉘른베르크에서 한 수공업자의 개인적 생산물이었던 시계는 다음과 같은 무수한 부분 노동자들의 사회적 생산물로 전환되었다.

 

시계 생산에서 전문화된 부분 노동

 

· 부품 제조: 큰 태엽 제조공, 지침반 제조공, 나선형 용수철 제조공, 루비로 된 레버 제조공, 시계 바늘 제조공, 시계 케이스 제조공, 나사못 제조공, 도금공.

 

· 톱니 바퀴 관련 세부 구분: 톱니바퀴 제조공, 시계핀 제조공, 시계추 제조공, 연동 장치 완성공, 추축 제조공, 조립공, 태엽바퀴 완성공.

 

· 지동기 및 정밀 부품: 지동기 제조공, 실린더 지동기인 경우 실린더 제조공, 지동륜 제조공, 평형륜 제조공, 완급침 제조공, 지동기 설치공.

 

· 마감 및 외장: 태엽통 완성공, 강철 연마공, 톱니바퀴 연마공, 나사못 연마공, 문자 기입공, 에나멜공, 용두 제조공, 접철 완성공, 뚜껑 스프링 장치공, 조각공, 시계 케이스 연공 등.

 

이 모든 전문화된 노동 이후, 마지막으로 시계 전체를 최종적으로 조립해 시계가 돌아가도록 하는 완성공이 작업을 마무리한다.

 

시계 부품 중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것은 몇 개 되지 않으며, 이 모든 분산된 부품들은 그것을 하나의 기계적 전체로 결합시키는 한 사람의 손으로 집합한다. 완성된 생산물과 그 다종다양한 구성 요소들 사이의 이러한 외적인 관계는 시계 생산의 경우, (이와 비슷한 다른 제품의 경우도 마찬가지), 부분 노동자들이 동일한 작업장 안에 함께 모이는 일을 우연적으로 만든다. 실제로 세부화된 작업들은 한편으로 스위스의 보 주와 누샤텔 주에서처럼 개별적인 독립적 수공업으로 수행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제네바에 있는 대규모 시계 공장제 수공업처럼 한 자본가의 지휘 아래 부분 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협업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도 지침반, 태엽, 케이스와 같은 부품은 공장제 수공업 자체에서 만들지 않는다.

 

시계 공업의 경우, 노동자들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공장제 수공업적 제작 방식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유리하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 경쟁과 가격 인하: 자기 집에서 일하고자 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경쟁이 매우 치열하기 때문에 그들이 만드는 부품의 가격을 인하할 수 있다.

 

· 도구 공동 이용의 어려움: 수많은 상이한 과정으로 작업이 분할되면서 노동 도구의 공동 이용을 허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

 

· 자본가의 비용 절약: 자본가는 작업을 분산시키면서 작업용 건물 등에 대한 비용을 절약한다.

 

그러나 비록 자택에서 노동한다 하더라도, 자본가(제조업자, 기업가)를 위해 노동하는 이 부분 노동자들의 지위는, 자기 자신의 고객을 위해 노동하는 독립 수공업자(자영업주)의 지위와는 전혀 다르다.

 

두 번째 종류의 공장제 수공업의 완성 형태는 서로 연관된 전후 단계들을 통과하는, 곧 일련의 과정들을 한 단계씩 차례로 통과하는 제품을 생산한다. 예를 들어, 바늘 공장제 수공업에서 철사는 72, 때로는 92명의 특수한 부분 노동자의 손을 거친다. 이런 공장제 수공업은 원래 분산되어 있던 수공업들을 결합시키는 만큼, 여러 생산 단계들을 서로 분리시키던 공간적 거리를 단축시킨다. 이와 동시에 제품이 한 단계로부터 다른 단계로 이동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줄어들고, 이 이동을 매개하는 노동도 절약된다. 결과적으로, 수공업에 비해 노동 생산성이 증대하는데, 이러한 증대는 공장제 수공업의 일반적인 협업적 성격에서 발생한다. 다른 한편으로, 공장제 수공업의 특유한 원칙인 분업은 상이한 생산 단계들의 고립화와 상호 독립화를 요구한다. 고립화된 기능들 사이의 관련을 확립하고 유지하려면,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으로, 한 과정으로부터 다른 과정으로 제품이 끊임없이 운반될 필요가 있다. 대공업의 처지에서 볼 때, 이것은 하나의 특징적이며, 비용이 드는, 그리고 또 공장제 수공업의 원칙에 내재하는 약점이다.

 

어떤 일정한 양의 원료(: 제지 공장제 수공업의 넝마나 바늘 공장제 수공업의 철사)에 관심을 국한시키면, 그것은 최종적 형태로 완성될 때까지 다양한 부분 노동자들의 손을 거쳐 일련의 생산 단계를 차례로 통과한다. 이와는 반대로, 작업장 전체를 보면, 원료는 생산의 모든 단계에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많은 부분 노동자들의 결합으로 구성된 집단적 노동자는 어떤 한 종류의 도구로 무장한 하나의 손으로 철사를 뽑고, 동시에 다른 종류의 도구로 무장한 다른 손으로 이 철사를 곧게 펴고, 또 다른 손으로 그것을 끊으며, 또 다른 손으로 그 끝을 뾰족하게 하는 등의 일을 동시적으로 수행한다. 이전에는 시간상 차례로 수행한 서로 다른 부분 과정들이 이제는 공간상 병행해서 동시에 수행된다. 그러므로 동일한 기간에 더 많은 완성품이 생산된다. 이러한 동시성이 총과정의 일반적 협업 형태에서 생긴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장제 수공업은 협업의 기존 조건들을 이용할 뿐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는 수공업적 노동을 다시 세분화하면서 협업의 조건들을 창조해 내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공장제 수공업은 각각의 노동자들을 단 한 가지의 세부 작업에 묶어 두면서만 노동 과정에서 사회적 조직을 이룩한다.

 

부분 노동자 각각의 부분 생산물은 동시에 하나의 동일한 완성품을 만드는 특정 진행 단계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각각의 노동자(또는 노동자 집단)는 다른 노동자(또는 노동자 집단)에게 원료를 공급한다. 한 노동자의 노동 결과는 다른 노동자의 노동 출발점이 되며, 그래서 한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에게 직접 일거리를 제공한다. 각 부분 과정에서 원하는 효과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은 경험으로부터 확정되며, 공장제 수공업의 기구 전체는 일정한 노동 시간 안에 일정한 결과가 달성되리라는 전제에 의거한다. 오직 이 전제에서만 상호 보완적인 각종 노동 과정은 동시에 병행해 중단 없이 수행될 수 있다.

 

개별 작업들 (그리고 개별 노동자들) 사이의 직접적인 상호 의존성이 각각의 노동자로 하여금 자기 작업에 필요 시간만을 지출하도록 강요한다. 그 결과, 독립적 수공업이나 단순 협업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노동의 연속성, 일률성, 규칙성, 질서, 그리고 특히 노동의 강도가 생긴다. 어떤 한 상품 생산에 지출되는 노동 시간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은 상품 생산 일반에서는 경쟁의 외적 강제로 나타나며, 이는 개별 생산자는 누구든지 자기 상품을 시장 가격으로 판매해야 한다는 것으로 피상적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일정한 노동 시간에 일정한 양의 생산물을 생산한다는 일이 생산 과정 그 자체의 기술적 법칙이 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작업에 드는 시간은 서로 같지 않아,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양의 부분 생산물이 생산된다. 따라서 같은 노동자가 날마다 같은 작업을 해야 한다면, 각각의 작업에는 상이한 수의 노동자가 고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활자 공장제 수공업에서 주자공 한 사람이 한 시간에 활자 2,000개를 주조하고, 절단공 한 사람은 4,000개를 끊고, 연마공 한 사람은 8,000개를 연마한다. 이 경우, 연마공 1명에 대해 주자공 4명과 절단공 2명이 고용되어야 한다.

 

여기서 또다시 동일한 종류의 작업을 하는 많은 사람의 동시 취업이라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협업 원칙이 나타나지만, 이는 이제 하나의 유기적 관계를 표현한다. 그래서 공장제 수공업 제도의 분업은 사회의 집단적 노동자의 질적으로 상이한 부분을 단순화시키고 증가시킬 뿐 아니라, 이 부분들의 양적 규모를 규정하는 고정된 수학적 비율 (곧 각각의 전문 기능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수 또는 노동자 집단의 상대적 크기)도 만들어 낸다. 결국,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은 사회적 노동 과정에서 질적 편성과 더불어 그 과정의 양적 규칙과 비례성까지도 발전시킨다.

 

일정한 생산 규모에서 각 집단 사이에 부분 노동자 수의 가장 적합한 비율이 경험적으로 일단 확정되면, 생산 규모는 오직 각 개별 집단 노동자 수의 배수를 고용하면서만 확대될 수 있다. 여기서 덧붙여, 어떤 종류의 작업은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동일한 개인으로부터 마찬가지로 잘 수행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감독이라는 노동이나 부분 생산물을 한 생산 단계에서 다른 생산 단계로 운반하는 노동 등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런 기능을 분리시켜 특정한 노동자에게 할당하는 일은 사용 노동자의 수가 증가할 때만 비로소 유리해진다. 그런데 이러한 증가는 각각의 노동자 집단에게 비례적으로 영향을 미쳐야 한다.

(어떤 특정한 전문 기능을 수행하는) 각각의 노동자 집단은 동질적인 요소들로 구성되며, 전체 기구의 한 특수 기관을 이룬다. 그러나 많은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노동자 집단 자체가 하나의 편성된 노동 조직이며, 전체 기구는 이러한 기본적 생산 유기체의 중복 또는 배가로부터 형성된다. 한 예로, 유리병 공장제 수공업을 보자. 그것은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유리병 공장제 수공업 단계

 

· 준비 단계: 유리의 구성 요소들을 준비하고, 모래와 석회 등을 혼합하며, 이 혼합물을 유동 상태의 유리액으로 용해한다.

 

· 중간 단계(제조): 유동 상태의 유리액을 조작하는 단계다.

 

· 마지막 단계: 건조로에서 유리병을 끄집어내고, 그들을 품종별로 분류하고, 포장하는 일 등이다.

 

첫째 단계와 마지막 단계에서는 각종 부분 노동자들이 작업을 수행한다. 이 두 단계의 중간 단계인 진정한 유리병 제조에서는 유리 화로의 아궁이마다 한 집단의 노동자(‘구멍이라고 부름)가 작업을 한다. 이들은 1명의 병 제조공 또는 마무리공, 1명의 취공(blower), 1명의 모음공, 1명의 쌓음공 또는 닦음공, 1명의 운반공으로 이루어진다.

 

5명의 부분 노동자들은 단일 노동 유기체의 다섯 개 특수한 기관이며, 이 노동 유기체는 하나의 통일체로만 활동할 수 있다. 따라서 오직 다섯 사람의 직접적 협업으로부터만 활동이 이루어지며, 이 노동 유기체는 그 다섯 개 기관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마비되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의 유리 화로에는 몇 개의 아궁이 (영국에서는 4개 내지 6)가 있는데, 그 각각의 아궁이마다 액체 상태의 유리가 들어 있는 내화 도가니가 묻혀 있다. 각 아궁이마다 5명으로 이루어진 노동자 집단이 노동하고 있다. 이때 각 집단의 편성은 분업에 의거하고 있으나, 서로 다른 집단들 사이의 관계는 단순 협업으로 생산 수단의 하나인 유리 화로를 공동 사용하면서 더 경제적으로 이용한다. 이와 같은 유리 화로 하나와 그에 부속된 4-6개 노동자 집단이 하나의 유리 제조장을 구성한다. 최종적으로, 유리 공장제 수공업은 몇 개의 이러한 제조장과 준비 단계 및 마지막 단계를 위한 설비와 노동자를 포괄한다.

 

끝으로, 공장제 수공업 중 일부가 각종 수공업의 결합으로부터 발생하듯이, 다양한 공장제 수공업의 결합으로 발전해 가기도 한다.

 

결합 유형

 

1. 생산 수단과 생산과의 결합: 영국의 대규모 유리 공장들이 내화 도가니를 자체에서 제조하는 일이 그 예다. 이는 도가니의 품질 여하에 따라 생산 과정의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생산 수단을 생산하는 공장제 수공업이 생산물을 생산하는 공장제 수공업과 결합되어 있다.

 

2. 원료/혼합물 사용 공장과의 결합: 생산물을 생산하는 공장제 수공업은 그 생산물 자체를 다시 원료로 쓰는 다른 공장제 수공업, 또는 그 생산물을 자기의 생산물과 혼합시키는 다른 공장제 수공업과 결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납유리 공장제 수공업은 유리 가공 공장제 수공업이나 황동 주조 공장제 수공업과 결합하는데, 황동은 여러 가지 유리 제품의 금속 장식에 필요하다.

 

이와 같이 결합된 각종 공장제 수공업은 하나의 전체 공장제 수공업의 다소 분리된 부문들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 각각은 자기 고유의 분업을 가진 독립된 생산 과정이다. 공장제 수공업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이점에도, 이 결합은 그 자체의 토대 위에서는 완벽한 기술적 통일성을 달성할 수 없다. 이 통일성은 공장제 수공업이 기계로부터 생산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발생한다.

 

공장제 수공업 시대 초기에,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의 단축이라는 원칙이 의식적으로 공식화되고 표명되었다. 기계의 사용도 특히 거대한 힘이 요구되며 대규모로 수행해야 하는 단순한 기초 과정을 위해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초기 제지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넝마의 분쇄가 제지의 분쇄기로부터 수행되었으며, 야금업에서는 광석 분쇄가 쇄광기로부터 수행되었다. 로마 제국은 물레방아의 형태로 모든 기계의 기초적인 형태를 물려주었다.

 

수공업 시대는 나침반, 화약, 인쇄술, 자동 시계와 같은 위대한 발명을 남겼다. 그러나 대체로 기계는 분업과 대비할 때 부차적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애덤 스미스로부터 잘 알 수 있다. 17세기에 일정한 시간을 두고 나타난 기계의 사용이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된 일은, 그것이 그 당시의 위대한 수학자들에게 근대적 역학의 발명을 위한 실질적인 토대와 자극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공장제 수공업 시대의 특징적 기계는 바로 수많은 부분 노동자들의 결합으로부터 형성되는 집단적 노동자 자신이다. 노동 과정에서 한 상품의 생산자가 차례로 수행하는 각종 작업들은 그 생산자에게 여러 가지 능력을 발휘하기를 요구한다. 그는 한 작업에서는 더 많은 힘을, 다른 작업에서는 더 많은 숙련을, 3의 작업에서는 더 많은 주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이러한 모든 자질을 같은 정도로 갖추지는 못한다. 각종 작업이 분리, 독립, 고립된 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자질에 따라 구분, 분류, 편성된다.

 

노동자들이 타고난 재능이 분업의 토대라고 하더라도, 공장제 수공업은 일단 도입된 뒤에는 일면적이고 특수한 기능에만 적합한 새로운 능력(노동자 능력)을 발전시킨다. 이제 집단적 노동자는 생산에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같은 정도로 우수하게 구비하게 된다. 그리고 집단적 노동자는 자기의 모든 기관(개별 노동자나 노동자 집단)을 오직 그 기관의 독특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만 사용하면서 그 자질을 가장 경제적으로 사용한다. 부분 노동자의 일면성과 불완전성조차도 그가 집단적 노동자의 한 기관일 때는 장점으로 된다. 한 가지 일만을 수행하는 습관은 부분 노동자를 결코 실수하는 일이 없는 기관으로 만들며, 전체 기구와의 관련은 그로 하여금 기계의 일부와 같은 규칙성을 가지고 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집단적 노동자가 수행하는 각종 기능에는 단순한 것과 복잡한 것, 저급의 것과 고급의 것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 구성원인 개별 노동력은 정도가 서로 다른 훈련을 필요로 하며, 각각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공장제 수공업은 노동력의 등급제를 발전시키며, 이것에 임금의 등급이 대응하게 된다. 개별 노동자는 한정된 기능에 일생 동안 묶이고, 등급이 매겨진 각종 작업이 선천적, 후천적 능력에 따라 노동자들 사이에 할당된다. 그러나 어떤 생산 과정에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조작들이 있기 마련이며, 그런 조작들도 이제는 내용이 더 풍부한 활동과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에서 분리되어 특수한 개인의 배타적인 기능으로 굳어져 버린다.

 

따라서 공장제 수공업은 자기가 장악하는 모든 업종에서 이른바 미숙련 노동자라는 하나의 부류를 만들어낸다. 수공업은 그 설정상 이런 부류를 엄격히 물리친다. 공장제 수공업이 인간의 전반적 노동 능력의 희생 위에서 일면적 전문성을 완벽한 경지에까지 발전시킨다면, 그것은 또한 미숙련 노동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혀 발전하지 않은 것을 하나의 전문성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등급제의 등급과 나란히 숙련공과 미숙련공이라는 단순한 구분이 나타난다. 미숙련공은 수련비가 들지 않고, 숙련공은 자기 기능이 단순하게 된 결과, 수련비가 수공업 노동자의 경우에 비해 줄어든다. 어느 경우에나 노동력의 가치는 떨어진다. 물론 이 법칙의 예외는 수공업적 경영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거나, 동일한 정도로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포괄적 기능들이 노동 과정의 분할로 말미암아 생기는 경우이다. 수련비의 소멸 또는 감소로 말미암은 노동력의 상대적 가치 저하는 자본의 가치 증식 정도가 더 높아지는 것을 직접적으로 가리킨다. 왜냐하면, 노동력의 재생산에 드는 필요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모든 것은 잉여 노동의 영역을 연장하기 때문이다.

 

14-4.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과 사회 내의 분업

 

우리는 먼저 공장제 수공업의 기원을 고찰했고, 다음에는 그 단순한 요소들 (부분 노동자와 그 도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전체 공장제 수공업을 고찰했다. 이제는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과 (모든 상품 생산의 토대를 형성하는) 사회 안의 분업 사이의 관계를 간단히 고찰한다. 우리가 노동을 그 자체만 염두에 둔다면, 다음과 같이 분업을 구분할 수 있다.

 

분업의 구분

 

· 일반적 분업: 농업, 공업 등과 같은 주요 부문들로 생산이 분할하는 것.

· 특수한 분업: 이들 생산 부문이 종()이나 아종(亞種)으로 분할하는 것.

· 개별적 분업: 한 작업장 내의 분업.

 

사회 안의 분업과 이것에 대응해 개인이 특수한 직업에 묶이게 되는 일은 공장제 수공업 안의 분업처럼 두 개의 서로 대립하는 출발점에서 발전한다. 한 가족 안에서, 그리고 더욱 발전해 한 종족 안에서 남녀와 나이 차이로 말미암아 (곧 순전히 생리적 토대 위에서) 자연 발생적 분업이 나타난다. 이러한 분업은 공동체의 확대, 인구의 증가, 그리고 특히 서로 다른 종족 사이의 충돌과 한 종족이 다른 종족을 예속하는 일과 더불어 발전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생산물의 교환은 서로 다른 가족, 종족들이나 공동체들이 상호 접촉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인류 문명 초기에는 독립된 단위로 상호 관계를 맺는 일은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나 종족 등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공동체들은 그들의 자연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생산 수단과 생활 수단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그 공동체들의 생산 방식, 생활 양식, 생산물은 서로 다르다. 바로 이 자연 발생적 차이 때문에 공동체가 서로 접촉할 때 생산물이 서로 교환되고, 따라서 이 생산물들이 점차 상품으로 전환된다.

 

교환이 생산 영역들 사이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교환은 기존의 상이한 영역들을 서로 관련 맺게 한다. 그들을 확대된 사회적 총생산의 다소 상호 의존적인 부문들로 전환시킨다.

 

사회적 분업의 발전 경로

 

· 독립적 영역의 의존성: 사회적 분업(사회 내의 분업)은 본래부터 상이하며 상호 독립적인 생산 영역들 사이의 교환에서 성립한다. 이 경우, 이전에는 독립적이었던 것이 교환으로부터 의존적으로 된다.

 

· 의존적 기관의 독립성: 이와 반대로, 생리적 분업이 출발점인 경우, 긴밀하게 결합된 전체의 특수한 기관들이 분열된다 (다른 공동체와 상품을 교환하는 것이 이 분열에 큰 자극을 준다). 이 기관들이 상당한 정도의 독립성을 획득하게 되면서, 각종 작업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유대 관계는 생산물을 상품으로 교환하는 것이 된다. 이 경우, 이전에는 의존적이었던 것이 독립적으로 된다.

 

일정한 발전 수준에 도달하고 상품 교환으로부터 생긴 모든 분업의 토대는 도시와 농촌의 분리다. 사회의 경제사 전체는 이 대립의 운동으로 요약될 수 있으나, 여기서는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는다. 동시에 고용되는 노동자의 일정한 수가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을 위한 물질적 전제 조건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구의 크기와 밀도(이것은 하나의 작업장으로 노동자들이 밀집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는 사회 내의 분업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이 밀도는 다소 상대적이다. 인구는 비교적 희박하나 발전한 교통 수단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인구는 더 많으나 교통 수단이 발전하지 못한 나라에 비해 인구 밀도가 더 높다. 이런 의미에서 예를 들어, 미국 북부의 주들은 인도에 비해 인구 밀도가 더 높다.

 

상품 생산과 상품 유통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일반적 전제이다. 따라서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은 사회 내의 분업이 이미 일정한 정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필요로 한다. 또한 거꾸로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은 사회적 분업에 반작용하여 그것을 발전시키며 증가시킨다. 노동 도구의 분화에 따라 이 도구를 생산하는 산업들도 더욱 분화된다. 이때까지는 동일한 생산자가 본업 또는 부업이라는 형태로 함께 경영해 오던 업종들은, 공장제 수공업적 경영이 장악하고 나면 즉시 분리되고 독립한다. 공장제 수공업적 경영이 어떤 상품에서 하나의 특수한 생산 단계를 장악하게 되면, 그 상품의 다른 생산 단계들은 각각 독립 산업으로 전환된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다수의 부품이 조립되어 제품을 만드는 경우에는, 부분 작업 그 자체가 다시 독자적인 수공업으로 독립할 수 있다.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을 더욱 완전하게 달성하고자, 하나의 생산 부문은 원료의 차이나 동일한 원료가 취하는 형태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수많은 공장제 수공업 (부분적으로는 전혀 새로운 공장제 수공업)으로 분할된다. 예를 들어, 이미 18세기 전반, 프랑스에서는 100종 이상의 견직물이 생산되었다. 또 아비뇽에서는 모든 도제들은 각각 한 종류의 직물에만 전념해야 하며, 여러 가지 직물의 제조 방법을 동시에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고 법적으로 규정했다.

 

특정의 생산 부문을 국내의 특정 지역에 국한시키는 지역적 분업은 자연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공장제 수공업적 경영으로부터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세계 시장의 확대와 식민 제도 (공장제 수공업 시대를 탄생시킨 일반적 조건의 일부를 형성)는 사회 내 분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분업이 사회의 경제 영역뿐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을 장악하며, 도처에서 한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모든 능력을 희생시키면서, 단 한 가지의 능력만을 발전시키도록 하는 점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할 수 없다. 다만 후자의 사실은 이미 애덤 스미스의 스승인 퍼거슨으로 하여금 우리는 노예들로만 이루어진 국민이며, 우리 가운데 자유로운 인간은 하나도 없다.”고 외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 내의 분업과 작업장 내의 분업은, 비록 그들 사이에 수많은 공통점과 연관성이 있기는 하나, 정도에서뿐 아니라 본질에서도 서로 다르다. 공통점이 가장 잘 나타나는 일은 하나의 내적 유대로부터 여러 가지 업종이 결합되어 있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목축업자는 날가죽을 생산하고, 피혁업자는 그것을 가죽으로 전환시키며, 제화업자는 그것을 구두로 전환시킨다. 이 경우, 각자의 생산물은 완성품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며, 이 마지막의 완성품은 부분 노동들의 결합 생산물이다. 그밖에도 목축업자, 피혁업자, 제화업자에게 생산 수단을 제공하는 각종 산업 부문이 있다.

 

애덤 스미스와 같이 사회적 분업과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 사이의 차이는 오직 주관적이며 관찰자에게만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한 장소에서 수행되는 수많은 작업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지만, 사회적 분업에서는 작업이 넓은 지역에 분산되어 있고, 각 노동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 그 상호 관련성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축업자·피혁업자·제화업자의 독립된 노동들 사이의 유대를 형성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 각각의 생산물이 상품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을 특징짓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부분 노동자가 생산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품으로 되는 것은 모든 부분 노동자들의 공동 생산물뿐이다.

 

사회 내의 분업은 서로 다른 산업 부문들 사이에서 생산물 매매로부터 매개된다. 반면, 공장제 수공업 내의 여러 부분 노동들 사이의 관련은 여러 노동력이 동일한 자본가에게 판매되어 그로부터 결합 노동력으로 사용된다는 것으로부터 매개된다.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은 한 자본가의 수중에 생산 수단이 집적되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사회 내의 분업은 서로 독립된 다수의 상품 생산자 사이로 생산 수단이 분산되는 것을 전제한다. 공장제 수공업 내에서는 비례성의 철칙이 일정한 수의 노동자들을 일정한 기능들에 종속시킨다. 이와 달리, 공장제 수공업 밖의 사회에서는 우연과 변덕이 작용하여 사회적 노동의 각종 부문들 사이에 생산자들과 그들의 생산 수단이 제멋대로 분배된다.

 

여러 가지 생산 영역들이 끊임없이 균형을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한편으로 각각의 상품 생산자가 어떤 사용 가치를 생산하여 일정한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 욕구들의 크기는 양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이 상이한 크기의 욕구들을 하나의 자연 발생적 체계에 연결하는 내적 유대가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 상품의 가치 법칙은 사회가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전체 노동 시간 중 얼마만큼을 각각의 상품 종류 생산에 지출할 수 있는지를 궁극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생산 영역들이 균형으로 향하는 이 끊임없는 경향은 이 균형의 끊임없는 파괴에 대한 반작용으로 작용할 뿐이다.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이 의거하고 있는 계획되고 규제되는 사전적 체계는, 사회 내의 분업에서는 생산자들의 규제받지 않는 변덕을 통제해야 하는 자연적인 사후적 필연성 (이는 시장 가격의 변동에서 알 수 있다)으로 변한다.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은 자본가에게 속하는 전체 기구의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의 무조건적 권위를 내포한다. 그러나 사회 내의 분업은 경쟁이라는 권위 밖에는, 곧 상품 생산자들 상호 간의 이익 대립이 자기들에게 가하는 강제 외에는 다른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독립적 상품 생산자들을 서로 대립시킨다. 이것은 동물계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대체로 모든 종의 생존 조건으로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작업장 내의 분업과 노동자를 평생 하나의 부분 작업에 묶어두는 것,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완전한 종속 등을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노동의 조직화라고 찬양하는 바로 그 부르주아적 의식은, 생산 과정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고 조정하려는 온갖 의식적 시도를 개별 자본가의 소유권, 자유, 자율적 독창성등과 같은 신성한 것에 대한 침해라고 열렬히 비난한다. 공장 제도의 열광적 변호인들이 사회적 노동의 일반적 조직화를 반대하면서, 이것은 사회 전체를 하나의 공장으로 전환시킨다고 비난하는 일은 매우 모순적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분업의 무정부 상태와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의 독재가 서로 다른 것의 조건으로 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직업의 분화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 응고되고 최후로 법률로부터 고정된 이전의 사회 형태에서는 다음과 같은 양상을 볼 수 있다.

 

사회 노동의 조직: 사회의 노동이 공인된 권위적인 계획에 따라 조직된다.

 

작업장의 분업: 작업장에서는 분업을 완전히 배제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작은 규모로 이따금 우연적으로만 발전시킨다.

 

예를 들어, 인도의 매우 오래된 자급자족 공동체 (부분적으로는 지금까지도 존속)는 토지의 공동 소유, 농업과 수공업의 직접적 결합, 그리고 고정 불변의 분업에 기반을 둔다. 이 분업은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할 때마다 완전한 계획서와 설계도로 기능한다. 이와 같은 공동체는 자급자족적인 완결된 생산 조직을 이루며, 그 영역은 100에이커에서 수천 에이커에 달한다. 생산물의 대부분은 공동체 자체의 직접적인 수요를 위한 것이고 상품은 아니다. 따라서 여기의 생산은 상품 교환으로부터 매개되는 인도 사회 전체의 분업과는 무관하다. 오직 생산물의 잉여만이 상품으로 되며, 그리고 그 잉여의 일부는 국가의 수중에서 비로소 상품으로 된다. (국가는 옛날부터 현물 지대의 형태로 생산물의 일정한 양을 징수해 왔다.)

 

공동체의 형태는 인도 지방에 따라 다르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공동체에서는 토지가 공동으로 경작되며, 생산물은 그 구성원들에게 분배된다. 동시에 방적 및 직조는 각 가정의 부업으로 경영된다. 이와 같이 하나의 동일한 작업에 종사하는 주민들 이외에 다음과 같은 전문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공동체 전체의 비용으로 부양된다.

 

공동체 구성원과 전문 역할

 

· 공동체의 우두머리: 재판관, 경찰관, 징세관을 겸임

· 부기 담당자: 농경 계산 및 관련 기록 담당

· 관리: 범죄인 추적, 여행자 보호 및 안내

· 경계선 경비원: 이웃 공동체 사이의 경계선 경비

· 저수지 감시인: 농경을 위한 공동 저수지 물 분배

· 브라만: 종교적 의식 수행

· 교사: 모래 위에서 아동들에게 쓰기와 읽기 교육

· 역술 브라만 또는 점성가: 파종 및 수확 시기 등 농사일에 좋은 날과 나쁜 날을 예언

· 대장장이와 목수: 모든 농기구 제작 및 수리

· 도자기공: 촌락에서 쓰는 모든 그릇 제조

· 이발사

· 세탁사: 의복 세탁

· 은 세공인

 

어떤 공동체에서는 은 세공인이, 또 다른 공동체에서는 교사가 시인으로 대체되기도 함.

 

인구가 증가하면 새로운 공동체가 원래의 것을 본떠 미개간지에 세워진다. 이 공동체의 전체 기구는 체계적인 분업을 보여주고 있으나, 공장제 수공업에서와 같은 분업은 있을 수 없다. 이는 대장장이나 목수 등이 변하지 않는 시장과 대면하고 있으며, 촌락의 크기에 따라 대장장이나 목수 등은 1명이 아니면 기껏해야 두세 명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분업을 규제하는 법칙은 자연 법칙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권위를 가지고 작용한다. 그러나 대장장이나 목수 등과 같은 각 개별 수공업자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그러나 독립적으로,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작업장 안에서 자기의 모든 작업을 수행한다. (끊임없이 동일한 형태로 자기를 재생산하며 어쩌다가 파괴되더라도 동일한 장소에 동일한 명칭으로 재건하는) 자급자족적인 공동체의 단순한 생산 유기체는 (아시아 국가들의 끊임없는 흥망, 왕조의 쉴 새 없는 교체와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아시아 사회의 불변성이라는 수수께끼를 해명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이 사회의 경제적 기본 요소들의 구조는 정치라는 상공에서 일어나는 폭풍우로부터는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길드 규약은 장인이 고용할 수 있는 직인과 도제의 수를 엄격히 제안, 장인의 자본가화를 의식적으로 견제했다. 장인은 자신이 종사하는 수공업에서만 직인을 고용할 수 있었다. 길드는 유일한 자유 자본 형태인 상인 자본의 침투를 적극적으로 막았다. 상인은 상품 구매는 허용되었지만, 노동력은 상품으로 살 수 없었고, 오직 수공업 생산물의 매매상으로만 허용되었다. 시장 요구에 따라 분업이 세분화될 경우, 기존 길드가 분열되거나 새 길드가 병설되긴 했지만, 여러 가지 수공업이 단일 작업장에 집중되는 일은 없었다. 따라서 길드 조직은 수공업의 분리, 고립, 개선으로부터 공장제 수공업의 물질적 조건을 형성 하는 데 크게 기여했음에도, 공장제 수공업의 특징인 작업장 내 분업은 허용하지 않았다.

 

길드 조직에서 노동자와 생산 수단은 달팽이와 달팽이집처럼 긴밀히 통합되어 있었다. 따라서 공장제 수공업의 제1토대, 곧 생산 수단이 노동자로부터 자본으로 독립하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 전반의 분업은 상품 교환 여부와 무관하게, 다양한 경제 사회 구성체에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공장제 수공업에서 실현되는 작업장 내 분업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고유한 산물이다.

 

14-5. 공장제 수공업의 자본주의적 성격

 

협업 일반과 공장제 수공업의 자연 발생적 출발점은 동일 자본가 지휘 아래 많은 노동자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에서는 노동자 수의 증가가 기술적 필연성을 띤다. 자본가가 고용해야 할 최소 한도의 노동자 수는 기존 분업으로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 나아가, 분업에서 진전된 이익은 오직 노동자 수를 증가시켜야만 얻을 수 있으며, 이는 각 부분 집단이 일정한 비율로 배가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진다.

 

이러한 자본의 가변적 구성 부분(노동자) 증가는 그 불변적 구성 부분의 증가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이는 건물, 용광로 등 공동 생산 조건의 규모 확대뿐 아니라, 특히 노동자 수 증가보다 훨씬 급속하게 수요가 증가하는 원료의 증가를 의미한다. 분업으로 노동 생산성이 향상함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일정한 노동량으로 소비되는 원료량은 비례적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공장제 수공업의 기술적 성격상, 개별 자본가가 보유해야 할 최소 한도의 자본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대해야 하며, 이는 사회적 생산 수단 및 생활 수단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규모가 계속 커저야 한다는 법칙을 낳는다.

 

집단적 노동 유기체는 단순 협업과 마찬가지로 공장제 수공업에서도 자본의 존재 형태이다. 다수의 개별 부분 노동자로 구성된 이 사회적 생산 조직은 자본가에게 귀속되며, 따라서 각종 노동의 결합에서 비롯되는 생산력은 자본의 생산력으로 발현된다. 진정한 공장제 수공업은 이전에 독립적이었던 노동자들을 자본의 지휘와 규율에 복종시킬 뿐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에 등급적 계급을 형성한다. 단순 협업이 개개인의 노동 방식을 대체로 바꾸지 않는 데 반해, 공장제 수공업은 그것을 철저히 변혁시키고 개별 노동력을 완전히 장악한다. 공장제 수공업은 노동자의 모든 생산적 능력과 소질을 억압하고 특수한 기능만을 촉진하여 노동자를 기형적인 불구자로 만든다.

 

이는 라플라타 강 유역 국가들에서 가죽이나 지방을 얻고자 동물을 통째로 도살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부분 노동이 서로 다른 개인들에게 분배될 뿐 아니라, 개인 자체가 분할되어 부분 노동의 자동 장치로 전락한다. 따라서 위장을 귀족, 손발을 평민으로 묘사하며 영양분을 공급한다는 메네니우스 아그리파의 우화가 현실화된다.

 

노동자가 처음에는 상품 생산을 위한 물질적 수단 부재로 노동력을 자본에 판매했지만, 이제는 그의 개별 노동력 자체가 자본에 판매되지 않으면 쓸모없게 된다. 개별 노동력은 오직 다른 노동력들과의 연관 속에서만 기능하며, 이 연관은 노동력이 판매된 후 자본가의 작업장에서 비로소 형성된다. 독립적인 물품 생산에 부적합해진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는 오직 자본가 작업장의 부속물로만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있다. 여호와가 선택한 민족이 몸에 소유의 증표(할례)를 지니듯, 분업은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에게 자본의 소유물이라는 낙인을 새긴다.

 

야만인이 모든 전쟁 기술을 개인의 책략으로 발휘하듯, 독립적 농민이나 수공업자는 비록 작은 규모라도 지식, 판단력, 의지를 발휘했다. 그러나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이러한 능력이 오직 작업장 전체를 위해서만 필요하다. 생산상의 정신적 능력이 한 방면에서 확대되는 동시에, 다른 여러 방면에서는 완전히 소멸된다. 부분 노동자들이 잃는 능력은 그들과 대립하는 자본에 집적된다.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의 결과, 부분 노동자들은 물질적 생산 과정에서 정신적 능력을 타인의 소유물이자 자기를 지배하는 힘으로 대하게 된다.

 

이 분리 과정(지식과 노동의 분리), 자본가가 결합된 노동의 통일성과 의지를 대변하는 단순 협업에서 시작된다. 이는 노동자를 부분 노동자로 전락시켜 불구자로 만드는 공장제 수공업에서 더욱 발전한다. 최종적으로, 이 과정은 과학을 자립적 생산력으로 노동과 분리시켜 자본에 봉사하게 하는 대공업에서 완성된다. 공장제 수공업은 집단적 노동자와 이로부터 나오는 자본의 사회적 생산력을 풍부하게 하고자 노동자의 개인적 생산력을 빈약하게 만들어야 한다.

 

무지는 미신의 어머니인 동시에 근면의 어머니이다. 숙고와 사변은 과오를 범하기 쉽지만, 손발을 움직이는 습관은 숙고나 사변과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공장제 수공업이 가장 번창하는 곳은 인간이 거의 정신을 쓰지 않는 곳이며, 작업장이 인간을 그 부품으로 하는 기계로 간주되는 곳이다.’

 

18세기 중엽, 일부 공장제 수공업은 단순하지만, 기업 비밀로 취급되는 특정 작업에 지적 능력이 미비한 자를 고용하는 일을 선호했다. 이에 대해 애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이해력은 그들의 일상적 업무로부터 필연적으로 형성된다. 일생을 결과물이 항상 같거나, 거의 같은 단순하 작업 몇 가지에 소비하는 이들은,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제거하는 방법을 발견하거나, 이해력을 발휘하거나, 창조력을 행사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자연히 그러한 노력을 하는 습관을 잃고, 일반적으로, 인간으로는 가장 둔해지고, 무지해진다.’

 

앞서 부분 노동자가 어리석고 둔해지는 것을 묘사한 후, 애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생활이 단조롭고 변화가 없기 때문에 그는 자연히 용기도 잃고, 불규칙적이고, 불안정하며, 모험적인 군인 생활을 꺼리게 된다. 또한, 육체의 활발한 활동이 제한되어, 그가 배워 온 직업 외의 어떤 직업에서도 활기차고, 참을성 있게 그의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의 특수한 직무상의 기교는 지적, 사회적, 군사적 덕목을 희생하며 얻어지는 듯하다. 발달한 모든 문명 사회에서 정부의 방지 노력이 없다면, 노동 빈민, 곧 대다수 국민은 이런 상황에 필연적으로 빠지게 된다.’

 

분업으로 인해 국민 대중이 완전히 퇴화하는 일을 방지하고자, 스미스는 국가가 최소한의 국민 교육을 신중하게 시행하기를 주장한다. 이에 대해 그의 저서 불어 역자이자 주석자인 가르니에는 이를 철저히 반대한다. 가르니에는 국민 교육이 분업의 제1법칙을 위반하며, 그 실시가 우리의 사회 제도 전체가 폐지될 것이다.’라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다른 모든 분업들과 마찬가지로 손 노동과 두뇌 노동 사이의 분업도 사회(그는 이 용어를 자본, 토지 소유와 이 둘에 속하는 국가를 가리키는 의미로 옳게 사용하고 있다)가 부유해짐에 따라 더욱 명백해지고 결정적으로 된다. 다른 모든 분업과 마찬가지로, 이 분업도 과거 진보의 결과이며, 또 장래 발전의 원인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 분업을 방해하고, 그 자연적 진행을 저지해야 한단 말인가. 분할과 분리를 지향하는 이 두 종류의 노동을 혼합하고 뒤섞어 놓기 위한 시도에 정부가 국고금의 일부를 지출해야 한단 말인가.’

 

사회의 전반적 분업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의 정신적·육체적 불구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공장제 수공업은 이러한 노동 부문들의 사회적 분할을 더욱 심화시키고, 공장제 수공업 특유의 분업으로부터 개인 생명의 근원을 공격한다. 따라서 공장제 수공업은 산업 병리학에 재료와 자극을 제공한 첫 번째 장본인이다.

 

인간을 세분(subdivide)하는 행위는, 그에게 세분 선고가 내려진다면 사형에 처하는 것이고, 세분 선고를 받지 않는다면 암살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의 세분은 국민의 암살이다.’

 

분업에 기반을 둔 협업, 곧 공장제 수공업은 초기에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었다. 이것이 어느 정도의 일관성과 적용 범위를 갖추자, 곧 자본주의적 생산의 의식적, 규칙적, 체계적 형태로 변모했다. 진정한 공장제 수공업의 역사는, 그 특유의 분업이 처음에는 경험으로부터 가장 적합한 형태를 자연스럽게 찾았음을 보여준다. 그 후 (길드적 수공업처럼) 일단 찾아낸 그 형태를 고수하려 했고,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수세기 동안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 형태에 작은 변화를 제외한 주요 변동이 발생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노동 도구의 혁명 때문이다.

 

근대적 공장제 수공업(기계 기반의 대공업은 제외)은 두 가지 방식으로 형성된다. 예를 들어, 대도시의 의복 공장제 수공업처럼 이미 분산되어 있는 사지(四肢)(각종 부분 노동자들)를 단순히 모으기만 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제본업의 경우처럼, 수공업의 각종 작업을 개별 노동자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면서 분업의 원리를 쉽게 적용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각 기능에 필요한 노동자 수 사이의 비율을 결정하는 데는 일주일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

 

수공업 활동의 분해, 노동 도구의 전문화, 부분 노동자의 형성, 그리고 이들을 분류해 단일 기구로 결합시키는 과정으로부터,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은 사회적 생산 과정에 질적 편성과 양적 비례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은 사회적 노동의 일정한 조직을 창조하며, 동시에 노동의 새로운 사회적 생산력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분업은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독특한 자본주의적 형태(주어진 조건에서 필연적이었던)로 나타나며, 결국 상대적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특수한 방법, 곧 노동자의 희생 위에서 자본(일반적으로 사회적 부, 또는 국민의 부라 불리는)의 자기 증식을 증대시키는 특수한 수단에 불과하다.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을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닌 자본가를 위해 증대시키며, 이 과정에서 개별 노동자를 불구로 만든다. 이 분업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강화하는 새로운 조건을 조성한다. 이처럼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은 역사적으로, 한편에서는 사회의 경제 발전에서 필연적인 단계로, 다른 한편에서는 더 문명화되고 세련된 착취의 한 방법으로 나타난다.

 

공장제 수공업 시대에 비로소 독립된 과학으로 등장한 경제학은, 사회 내 분업을 공장제 수공업 내 분업의 관점에서 고찰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사회 분업을 같은 양의 노동으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수단, 곧 상품 가격을 낮추고, 자본 축적을 촉진하는 수단으로만 파악했다. 이러한 양과 교환 가치를 강조하는 시각은 오직 질과 사용 가치에만 주목했던 고대 저술가들의 태도와는 정반대이다. 고대 저술가들은 사회적 생산 부문 분리의 결과로, 상품이 개선되어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성향과 재능에 적합한 활동 분야를 선택하며, 활동 분야가 어느 정도 제한되지 않고서는 훌륭한 성과가 얻어질 수 없다고 보았다. , 분업으로부터 생산물과 생산자 모두가 개선된다는 시각이다.

 

고대 저술가들이 때로 생산량 증가를 언급할 때도, 이는 단지 사용 가치가 더욱 풍부해지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었을 뿐, 교화 가치나 상품의 저렴화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용 가치의 시각은 분업을 사회의 신분적 구분 토대로 간주한 플라톤이나, 부르주아적 본능으로 이미 작업장 내 분업에 접근했던 크세노폰도 채택했다.

 

플라톤,공화국은 상이한 시민 신분 사이의 분업을 국가의 형성 원리로 여긴다는 점에서, 이집트식 신분 제도를 아테네 사람이 이상화한 것에 불과하다. 이집트는 플라톤과 동시대 저술가들(: 이소크라테스)과 로마 제국 시대의 그리스인들에게 산업상의 모범국으로 여겨졌다.

 

진정한 공장제 수공업 시대(자본주의적 생산을 지배하던 시기)에는 공장제 수공업 특유의 경향들이 완전히 발전하는 데 여러 장애에 부딪쳤다. 공장제 수공업은 노동자를 숙련 노동자와 미숙련 노동자로 구분해 등급 구조에 편입시켰으나, 숙련 노동자의 압도적 우세로 미숙련 노동자 수는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또한, 공장제 수공업이 여러 부분 작업을 노동 도구(노동자)의 성숙도, , 발달 정도에 맞추면서 부녀자와 아동 착취의 길을 열었지만, 이러한 경향은 관습과 성인 남성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혀 대체로 좌절되었다.

 

수공업의 분할이 노동자의 육성비를 저하시켜 그의 가치를 낮추었음에도, 비교적 어려운 부분 노동은 여전히 긴 수련 기간을 필요로 했으며, 불필요한 경우에도 노동자들은 이를 고집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7년간의 수련 기간을 규정한 도제법이 공장제 수공업 시대 말기까지 완전히 유효했고, 대공업의 출현 후에야 비로소 폐지되었다. 수공업적 훈련은 여전히 공장제 수공업의 토대이며, 공장제 수공업의 원리 전체가 노동자 자신들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골격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자의 불복종 행위와 싸워야 했다. 우리가 잘 아는 유어는,공장 철학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인간성이 가진 결함 때문에, 노동자는 숙련될수록 더욱 제멋대로 되고, 다루기 어렵게 되며, 이는 당연히 기계적 체계의 부품으로 잘 맞지 않게 된다. 그는 전체 기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된다.’

 

공장제 수공업 시대 전체로부터 노동자의 규율 부족에 대한 불평이 끊이지 않는다. 당시 저술가들의 증언이 없더라도, 다음 두 가지 사실이 이를 충분히 입증한다. 자본은 16세기부터 대공업 시대까지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들의 확보할 수 있는 노동 시간 전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공장제 수공업은 노동자들의 이동에 따라 소재지를 옮기면서 수명이 짧았다.

 

1770,상공업에 관한 평론저자는 어떻게 해서든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로부터 66년 뒤 유어는, ‘분업의 형식에 얽매인 (스콜라적) 교리에 기반을 둔 공장제 수공업에서, 부족했던 이 질서를 이제 아크라이트(방적 기계 발명자)가 창조했다.’고 단언한다.

 

공장제 수공업은 사회의 생산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거나, 근본적으로 변혁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도시의 수공업과 농촌의 가내 공업이라는 폭넓은 기반 위에 세워진 인위적 경제 조직이었다. 공장제 수공업이 일정 발전 단계에 도달하자, 그 협소한 기술적 토대는 스스로 창출한 생산상의 여러 가지 필요(: 대량 생산)와 모순을 일으키게 되었다. 공장제 수공업의 가장 완벽한 성과 중 하나는 노동 도구 자체, 특히 이미 사용 중인 복잡한 기계적 장치를 생산하는 작업장이었다. 이에 대해 유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계 공장(노동 도구 자체를 생산하는 작업장)은 수많은 단계의 분업을 보여주었다. 절단기, 착공기, 선반은 각각 숙련 등급에 따라 편성된 노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의 성과인 이 작업장은 결국 기계를 생산했다. 이 기계는 수공업적 노동자가 사회적 생산에서 규제 원리로 기능하는 것을 철폐한다. 그 결과, 한편으로 노동자를 일정한 부분적 기능에 평생 얽매어 두던 기술적 이유가 소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규제 원리가 자본의 지배에 가한 장애물들 역시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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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협업

 

자본주의적 생산은 개별 자본이 다수의 노동자를 동시에 고용하고, 노동 과정이 대규모로 이루어져 대량의 생산물을 공급하는 시점부터 본격화된다. 많은 노동자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자본가의 지휘 하에 같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형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적·개념적 토대를 구성한다. 생산 방식 자체만 놓고 보면, 초기 공장제 수공업은 동일 자본에 동시 고용된 노동자 수의 증가 외에는 길드 수공업과 큰 차이가 없으며, 사실상 길드 장인의 작업장이 확대된 형태에 불과하다.

 

처음에는 단지 양적 차이만 존재했다. 이미 확인했듯이, 특정 자본이 생산하는 잉여 가치의 총량은 개별 노동자가 산출하는 잉여 가치에 동시 고용된 노동자의 수를 곱한 값과 동일하다. 이 노동자 수는 그 자체만으로는 잉여 가치율이나 노동력의 착취도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상품 가치 일반의 생산에 있어서도 노동 과정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듯 보인다.

 

12시간의 노동일이 6원으로 대상화된다면, 1,200노동일은 6×1,200으로 대상화된다. 1,200명의 노동자가 함께 작업할 경우, 개별 노동자의 12시간 노동이 합산되어 총 12×1,200 노동 시간이 생산물에 집약된다. 가치 생산의 측면에서 볼 때, 다수의 노동자는 언제나 개별 노동자의 단순한 총합으로만 계산된다. 따라서 1,200명의 노동자가 개별적으로 생산하든, 또는 자본의 지휘 아래 통합되어 생산하든, 그 결과로 생산되는 가치의 총량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일정한 한계 내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발생한다. 가치로 대상화되는 노동은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질의 노동, 곧 평균적 노동력이 지출된다. 평균량이란 크기만 다를 뿐 종류가 같은 다수 개별량의 평균에 불과하다. 각 산업 부문에서 개별 노동자는 평균적 노동자와 다소 차이를 보인다. 수학에서 오차또는 편차라 부르는 이러한 개별적 차이는 최소한도의 노동자를 함께 고용하는 순간, 서로 상쇄되어 사라진다. 유명한 궤변가이자 아첨꾼인 버크는 자신의 차지 농업 경험을 근거로 주장한다. 5명으로 구성된 그처럼 작은 집단에서도 이미 노동에서의 모든 개인적 차이는 상쇄되어 소멸하며, 따라서 어떤 5명의 성인 농업 노동자도 동일한 시간 안에 다른 임의의 5명의 성인 농업 노동자가 수행하는 노동과 똑같은 노동을 한다.

 

동시에 고용되는 많은 노동자의 집단적 노동일을 그 노동자의 수로 나눈 값이 곧 하루의 사회적 평균 노동이다 1인 노동일이 12시간일 경우, 12명의 동시 고용 노동자의 집단적 노동일은 144시간이다. 개개인의 노동이 사회적 평균 노동과 다소 차이가 있어 동일 작업에 상이한 시간이 소요될지라도, 각 개인의 노동은 이 144시간 집단적 노동일의 1/12,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질을 갖는다. 12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본가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일은 오직 12명 전체의 노동일로만 존재한다. 각 개별 노동자의 노동일은 이들이 서로 협력하든, 단순히 동일 자본가를 위해 노동하든 관계없이 집단적 노동일의 구성 부분으로만 의미를 가진다.

 

12명의 노동자가 2명씩 나뉘어 각각 6명의 소경영주에게 고용된다면, 각 소경영주가 동일한 가치량을 생산하고 일반적 잉여 가치율을 얻게 될지는 불확실하다. 이러한 분할된 조건에서는 개별적 편차가 명확히 나타난다. 어떤 노동자가 상품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시간보다 현저히 많은 시간을 들인다면, 그의 개별 노동 시간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평균적 노동 시간)과 현저히 차이가 난다. 결과적으로, 그의 노동은 평균적 노동으로 인정될 수 없고, 그의 노동력 또한 평균적 노동력으로 평가될 수 없다.

 

이러한 노동력은 아예 팔리지 않거나 또는 노동력의 평균 가치 이하로 팔린다. 모든 노동에는 노동 능률의 일정한 최저 한도가 전제되며,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 최저 한도를 설정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성과급). 그럼에도, 이 최저 한도는 평균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자본가는 노동력에 대해 그 평균 가치를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6명의 소경영주 중 일부는 일반적 잉여 가치율보다 더 많은 것, 다른 일부는 더 적은 것을 추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균등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상쇄되지만, 개별 소경영주들에게는 그대로 남아 경제적 편차를 야기한다. 그러므로 개별 생산자에게 가치 증식의 법칙이 완전히 실현되는 일은, 그가 자본가로 생산하며 다수의 노동자를 동시에 고용하고, 그들의 노동이 집단적 성격에서 곧 사회적 평균 노동으로 간주될 때뿐이다.

 

작업 방식에 변동이 없더라도, 다수 노동자의 동시적 고용은 노동 과정의 객체적 조건에 혁명을 일으킨다.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건물, 원료 창고, 공동으로 사용하거나 번갈아 쓰는 용기, 기구, 장치 등, 생산 수단의 일부가 이제 노동 과정에서 공동으로 소비된다. 이로 인해 한편으로, 이러한 생산 수단의 교환 가치가 상승하지는 않는다. 상품의 교환 가치는 사용 가치가 더 철저하게 이용된다고 해서 높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생산 수단은 공동으로 사용되며, 이전보다 대규모로 사용된다.

 

20명의 직조공이 20대의 직조기를 사용하는 작업장은 1명의 직조공이 2명의 도제를 거느리는 작업장보다 넓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 20명을 수용하는 작업장 하나를 짓는 노동은 2명씩 수용하는 10개의 작업장을 짓는 노동보다 적게 든다. 따라서 대규모로 공동 사용하는 거대한 생산 수단의 가치는 그 규모와 유용한 효과에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는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생산 수단은 개개의 생산물에 자기 가치의 더 적은 부분을 이전한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 이 생산 수단의 총가치가 더 많은 양의 생산물에 분배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이 생산 수단은 개별적으로 사용될 때보다 절대적으로는 더 큰 가치를 가질지라도, 그 적용 범위를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더 적은 가치를 가지고 생산 과정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효과로 인해 각 상품의 총가치에 포함되는 불변 자본 일부의 가치는 저하하며, 그 저하의 크기에 비례해 상품의 총가치도 역시 저하한다. 그 경제적 효과는 상품의 생산 수단이 더 싸게 생산되는 일과 동일하다. 이러한 생산 수단 사용의 절약은 전적으로 노동 과정에서 다수 인원이 생산 수단을 공동으로 소비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이 생산 수단이 사회적 노동의 필요 조건이라는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은, 노동자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고 단순히 공간적으로 한 곳에 모여 일하는 경우에도 이루어진다. 노동 수단의 일부는 노동 과정 자체가 사회적 성격을 획득하기 이전에 벌써 이러한 사회적 성격(: 큰 건물에 많은 노동가가 모이는 일)을 획득한다.

 

생산 수단의 절약은 두 가지 관점에서 고찰해야 한다.

 

1. 절약이 상품을 값싸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노동력의 가치까지 저하시키는 측면이다.

 

2. 절약이 총 투하 자본(불변 부분과 가변 부분의 가치 총액)에 대한 잉여 가치의 비율(이윤율)을 변동시키는 측면이다.

 

이 두 번째 측면은 이 책 제3권 제1편 제5장에서 비로소 고찰한다. 또한, 여기서 다루어야 할 다른 많은 문제들 역시 서술의 적절한 내적 연관성을 위해 해당 부분으로 미룬다.

 

이러한 연구 대상의 분할은 분석 진행상 불가피하며, 동시에 자본주의적 생산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동자들은 노동 수단을 자신과 독립된 타인의 소유물로 대면한다. 이로 인해 노동 수단 사용상의 절약 역시 노동자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따라서 자신의 생산성 향상 방법과도 관련이 없는 별개의 조작으로 나타난다. 하나의 동일한 생산 과정이나 서로 다르지만 상호 연관된 생산 과정에 많은 사람이 계획적으로 함께 협력해 일하는 노동 형태를 협업이라 부른다.

 

기병 1개 중대의 공격력이나 보병 1개 연대의 방어력이 개별 군인의 능력 총합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듯, 개별 노동자들의 기계적 힘의 총계 역시 사회적 역량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동일한 불가분의 작업(: 무거운 짐을 드는 일, 윈치 회전, 장애물 제거)에 참가할 때 이 사회적 역량이 발휘된다. 이 경우, 결합된 노동의 성과는 고립된 개별 노동으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거나,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거나, 매우 작은 규모로만 달성할 수 있다. 이처럼 협업은 개인의 생산력을 높일 뿐 아니라, 집단적인 힘이라는 새로운 생산력을 창조한다.

 

다수의 힘이 하나의 총력으로 융합되는 데서 생기는 새로운 역량을 제외하고도, 대부분의 생산적 노동에서는 단순한 사회적 접촉만으로도 각 개별 노동자의 작업 능률을 증대시키는 경쟁심이나 혈기와 같은 자극이 발생한다. 그 결과, 함께 일하는 12명의 노동자는 144시간이라는 집단적 1노동일 동안, 각각 12시간씩 일하는 12명의 고립된 노동자나 12일 동안 계속 일하는 1명의 노동자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생산해 낸다. 이는 인간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적 동물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비록 다수가 동일한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에 동시적으로 협동할지라도, 각 개인의 노동은 총노동의 일부로 그 노동 과정에서 상이한 국면을 이룬다. 이로 인해 노동 대상은 협업의 결과 이 국면들을 더 빠르게 통과하게 된다. 예를 들어, 12명의 벽돌공이 벽돌을 사다리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운반하기 위해 열을 지어 선다면, 그들 각 개인은 동일한 일을 하지만, 그들 개개의 행위는 하나의 전체적인 작업의 연속된 부분을 구성한다. 곧 각자의 행위는 각 벽돌이 노동 과정에서 통과해야 할 특수한 국면들이다. 결과적으로, 벽돌은 전체 노동자에 24개의 손을 통과하면서, 각 개별 노동자가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운반할 때보다 더 빠르게 운반된다.

 

노동 대상은 동일한 거리를 더 짧은 시간 안에 통과한다. 또한, 건물을 지을 때처럼 여러 방면에서 동시에 착수하는 경우, 비록 협업하는 사람들은 이때에도 같은 작업이나 같은 종류의 작업을 수행하지만, 노동의 결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짓는 데 있어 1명의 벽돌공이 12일간(144시간) 작업하는 것보다 12명의 벽돌공이 144시간의 집단적 1노동일에 작업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그 이유는 협력해 작업하는 노동자 집단은 앞뒤로 팔과 눈을 가진 것처럼 어느 정도까지 다각적인 동시 작업 능력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물의 상이한 부분들이 동시에 완성되어 간다.

 

우리가 많은 노동자가 같은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을 수행한다는 점을 강조한 이유는, 이러한 공동 노동의 가장 단순한 형태가 협업에서 (심지어 가장 발달한 형태에서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 과정이 복잡해지면, 함께 일하는 사람이 다수라는 사실만으로도 상이한 작업을 각각의 노동자에게 배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그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되며, 결과적으로, 전체 작업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은 단축된다.

 

많은 생산 부문에는 결정적 순간(노동 과정의 성질상 규정되며 일정 성과가 달성되어야 하는 시기)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양 털 깎기나 곡물 추수처럼, 생산물의 양과 질은 이 작업이 일정한 시간 안에 시작되고 끝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경우, 노동 과정이 수행되어야 할 기간은 청어잡이의 경우처럼 미리 정해져 있다. 각 개인이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일을 창출할 수 없지만, 100명의 협업은 1노동일을 1,200시간으로 확대할 수 있다. 작업에 허용되는 기간이 짧다는 젱약은 결정적 순간에 생산 장소에 투입되는 노동의 커다란 규모로부터 보충된다. 이 경우, 제때에 작업을 마무리 짓는 것은 다수의 결합된 노동일 동시 사용에 달려 있으며, 유용한 효과의 크기는 노동자의 수로부터 결정된다. 그러나 이때 노동자의 수는 (동일한 기간에 동일한 규모의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고립된 노동자의 수보다 언제나 적다. 이런 종류의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서부에서는 매년 많은 곡물이, 그리고 영국의 통치로 옛 공동체가 파괴된 인도의 동부 지역에서는 매년 대량의 면화가 낭비되고 있다.

 

협업은 한편으로, 배수, , 관개, 운하, 도로, 철도 건설과 같이 노동 대상의 물리적 구조 자체가 요구하는 노동 과정에서는 작업을 넓은 공간에서 수행할 수 있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협업은 생산 규모를 확대하면서도 생산의 공간적 영역을 상대적으로 축소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생산 규모 확대와 동시에 노동의 공간적 범위가 축소되는 현상은 거액의 공비(空費, 간접 비용)를 절약하게 하며, 이는 많은 노동자의 밀집, 각종 노동 과정의 집합, 그리고 생산 수단의 집적에서 비롯된다.

 

결합된 노동일은 동일한 크기에 개별 노동일의 단순 합계에 비해 더 많은 양의 사용 가치를 생산하며, 결과적으로 주어진 유용 효과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을 감소시킨다. 결합된 노동일이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원인이 무엇이건, 곧 기계적 힘의 증대, 공간적 작용 범위의 확대, 생산 공간의 상대적 축소, 결정적 순간의 노동 동원, 개인의 경쟁심 자극, 같은 종류 작업의 연속성 및 다면성 부여, 서로 다른 작업의 동시 수행, 공동 사용으로부터 생산 수단 절약, 또는 개개인 노동에 사회적 평균 노동의 성격 부여 때문이건, 어떤 경우라도 결합된 노동일의 특수한 생산력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다. 이 생산력은 협업 그 자체로부터 발생한다. 다른 노동자들과 체계적으로 협력하는 노동자는 자기 개별성의 족쇄를 벗어 던지고, 자기 종족(인류)의 능력을 발전시킨다.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함께 모여야만 협력할 수 있으며, 일정한 장소에 집결하는 것이 협업의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임금 노동자는 동일한 자본가에게 동시에 고용되고, 노동력이 동시에 구매되는 경우에만 협업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들의 노동력의 총가치(하루 또는 1주일 등의 임금 총액)가 생산 과정 개시 전에 자본가의 주머니에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300명의 노동자에게 단 하루분을 지불하는데도 소수의 노동자에게 1주일에 한 번씩 1년간 지불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본 지출이 필요할 수 있다. 결국, 협업 노동자의 수(협업의 규모)는 개별 자본가가 노동력 구매에 지출할 수 있는 자본의 크기, 곧 각 개별 자본가가 다수 노동자의 생활 수단을 구매할 수 있는 정도에 의존한다.

 

이러한 자본 규모의 의존성은 가변 자본뿐 아니라 불변 자본에도 해당한다. 3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본가가 원료에 지불하는 금액은 10명을 고용하는 자본가 지출의 30배에 달한다. 공동으로 이용하는 노동 수단의 가치나 양은 노동자 수와 같은 비율로 증가하지 않더라도 현저하게 증가한다. 따라서 개별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대량의 생산 수단이 집적되는 것은 임금 노동자들의 협업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며, 협업의 범위 또는 생산의 규모는 이러한 집적의 정도에 의존한다.

 

앞 장에서 확인했듯이, 고용주를 육체 노동에서 해방하고, 소경영주에서 자본가로 전환시키며, 자본 관계를 형태적으로 성립시키려면 일정한 최소 한도의 자본액이 필수적이었다. 이제 이 최소 한도의 자본은 다수의 분산되고 상호 독립적인 노동 과정들을 하나의 결합된 사회적 노동 과정으로 전환시키는 물질적 조건으로 나타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동의 자본에 대한 종속은 처음에는 노동자가 자신이 아닌 자본가에게 노동한다는 형태적 결과에 불과했다. 그러나 많은 임금 노동자의 협업에 따라 자본의 지휘는 노동 과정 그 자체의 수행을 위한 필요 조건, 곧 생산의 현실적 조건으로 발전한다. 생산 장소에서 자본가의 지휘는 이제 전쟁터에서 장군의 지휘와 마찬가지로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대규모로 수행되는 모든 직접적인 사회적 노동 또는 공동 노동은 개인들의 활동을 조화시키고 일반적 기능(생산 유기체 전체의 운동에서 발생하는)을 수행하고자 지휘자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바이올린 독주자는 자신이 직접 지휘자가 될 수 있지만, 교향악단은 독립적인 지휘자를 필요로 한다. 지휘, 감독, 조절의 기능은 노동이 자본의 지배 아래에서 협업적으로 되자마자 곧바로 자본의 한 기능이 된다. 자본의 독자적인 기능으로 지휘 기능은 자기 자신의 특수한 성격을 획득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추진하는 동기와 규정하는 목적은 자본을 최대 한도로 증식시키는 것, , 최대의 잉여 가치를 생산하고 최대한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다. 협업하는 노동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자본의 지배에 대한 그들의 요구도 증대하며, 이 요구를 억누르기 위한 자본의 압력 또한 필연적으로 증대한다. 자본가로부터의 통제는 단순히 사회적 노동 과정의 성질에서 유래하는 특수 기능일 뿐 아니라, 동시에 이 사회적 노동 과정을 착취하는 기능이며, 따라서 착취자와 그의 착취 대상(노동자) 사이의 불가피한 적대 관계에 뿌리를 둔다.

 

타인의 소유물로 임금 노동자와 대립하는 생산 수단의 규모가 증대함에 따라, 생산 수단이 적절하게 사용되도록 효과적으로 통제할 필요성도 커진다. 더욱이 임금 노동자들의 협업은 전적으로 그들을 고용하는 자본으로부터 발생한다. 노동자들 스스로는 그들을 단일의 생산체로 통일시키거나 개별 기능들 사이에 관련을 형성할 능력이 없다. 이는 그들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그들을 모아 함께 일하도록 만든 자본의 행위에 속한다. 따라서 그들의 다양한 노동 사이의 상호 관련은 관념적으로는 자본가의 계획으로, 실무적으로는 노동자들의 활동을 자본가의 목적에 종속시키는 권위(타인의 강력한 의지)로 노동자들과 대립한다. 그래서 자본가의 지휘는 그 내용에서 이중의 성격을 갖는다. 그가 지휘하는 생산 과정 자체가 생산물의 생산을 위한 사회적 노동 과정인 동시에 자본의 가치 증식 과정이라는 이중의 성격 때문이다. 자본가의 지휘는 그 형식상 독재적이다. 협업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이 독재 또한 특유한 형태들을 발전시킨다. 자본가는 자신의 자본이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을 개시할 최소 한도에 도달하자마자, 먼저 육체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개별 노동자 및 노동자 집단에 대한 직접적이고 끊임없는 감독 업무를 특수한 종류의 임금 노동자들에게 위임한다.

 

군대가 장교와 하사관을 필요로 하듯, 동일 자본의 지휘 아래 있는 산업 노동자 집단 역시 노동 과정 중에 자본의 이름으로 지휘할 장교(지배인)와 하사관(십장, 감시자)을 필요로 한다. 이들에게 감독 업무가 전문적인 기능으로 확정된다. 경제학자들은 분산된 농민이나 독립적 수공업자의 생산 방식과 노예 제도를 비교할 때, 노예 제도의 감독 노동을 생산상의 공비로 계산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을 고찰할 때는 이와 달리, 집단적 노동 과정의 성질에서 발생하는 지휘 기능과 노동 과정의 자본주의적·적대적 성격에서 필요해지는 감독 기능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 산업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자본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본가이기 때문에 산업의 지도자가 된다. 봉건 시대에 장군이나 판사의 기능이 토지 소유의 속성이었던 것처럼, 이제산업의 지도 기능은 자본의 속성으로 확립된다.

 

노동자는 자기 노동력의 판매 계약을 체결할 때까지는 그 노동력의 소유자이며, 그는 오직 자신이 소유한 개인적이고 고립된 노동력만을 판매할 수 있다. 자본가가 1명의 노동력이 아닌 100명의 노동력을 구입하고,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100명의 노동자와 개별적으로 계약을 체결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상황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자본가는 이 100명의 노동자를 협업시키지 않고도 일을 시킬 수 있다. 자본가는 100명의 독립적인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는 것이지, 100명의 결합된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독립한 인격으로 노동자들은 제각각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자본가와 관계를 맺을 뿐 자기들 서로 간에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협업은 노동 과정에서 비로소 시작되며, 그때에는 이미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동 과정에 편입되자마자 그들은 자본에 흡수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협업하는 사람으로, 또는 하나의 활동적인 유기체의 구성원으로 노동자들은 자본의 특수한 존재 양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협업에서 발휘하는 생산력은 자본의 생산력으로 간주된다.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은 노동자들이 일정한 조건 아래 놓일 때마다 무상으로 발휘되는데, 자본은 바로 이 조건을 조성한다. 이 사회적 생산력은 자본에게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 것이며, 노동자의 노동이 자본에 속하기 전에는 노동자 자신으로부터 발휘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생산력은 자본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또는 자본에 내재하는 생산력으로 나타난다. 단순 협업의 엄청난 효과는 고대 아시아, 이집트, 에트루리아인 등이 건설한 거대한 건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이 아시아 국가들은 행정비와 군사비를 충당하고도 생활 수단의 잉여를 가졌으며, 이를 호화로운 건축물이나 유용한 토목 공사에 활용할 수 있었다. 그 국가들은 거의 모든 비농업 인구의 노동을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그 위력을 과시하는 거대한 기념물들을 건설할 수 있었다. 비옥한 나일강 유역은 수많은 비농업 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을 생산했으며, 왕과 승려가 소유하던 식량은 국토 전역에 거대한 기념비들을 세울 수단을 제공했던 것이다. 거대한 석상과 대량의 자재가 운송된 것은 그 자체로 불가사의하며, 이는 거의 전적으로 인간 노동의 아낌없는 사용으로부터 이뤄졌다. 이러한 공사에는 수많은 일꾼들과 그들의 노력의 집중만으로 충분했다. 거대한 산호초가 바다 깊은 곳에서 솟아 섬이나 육지가 되는 과정에서 개개의 침전물이 보잘것없는 것에 지나지 않듯, 아시아 왕국의 비농업 일꾼들은 개인적인 육체적 힘 외에 공사에 기여할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들의 수가 곧 그들의 힘이었다. 그리고 이 큰 무리들을 지휘하는 권력이 오늘날까지 남아 우리를 놀라게 하고 황홀하게 만드는 궁전, 사원, 피라미드, 거대한 석상들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종류의 사업은 일꾼들을 먹여 살릴 만한 소득이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현될 수 있었다.’

 

아시아와 이집트의 왕들 그리고 에트루리아의 승려들이 가졌던 이와 같은 지휘 권력은 근대 사회에서는 자본가에게로 이양되었다. 여기서 자본가가 개별 자본가로 등장하든, 또는 주식 회사처럼 집단적 자본가로 등장하든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인류 문명의 초기 수렵 민족이나 인도 공동체의 농업에서 볼 수 있는 노동 과정의 협업은,

 

1. 생산 조건의 공동 소유에 기반을 둔다.

 

2. 개개인이 씨족 또는 공동체의 탯줄을 끊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기반을 둔다.

 

이러한 두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이 협업은 자본주의적 협업과 구별된다. 고대, 중세 및 근대 식민지에서 때때로 이용된 대규모 협업은 직접적인 지배와 예속의 관계(대부분의 경우 노예 제도)에 기반을 두었다. 이와 달리, 자본주의적 형태의 협업은 처음부터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자신의 노동력을 자본에 판매하는)를 전제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적 협업은 소농민적 경영과 독립적 수공업(길드 형태 여부와 무관하게)에 대립하며 발전한다. 소농민과 수공업자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적 협업이 협업의 특수한 역사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협업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에서 특유하고 독특한 역사적 형태로 나타난다.

 

협업으로부터 발휘되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 자본의 생산력으로 나타나듯이, 협업 그 자체도 분산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자나 소경영주가 수행하는 생산 과정과 대립하며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에서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현실의 노동 과정이 자본에 종속될 때 경험하는 최초의 변화이며, 이 변화는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난다. 동일한 노동 과정에 많은 임금 노동자를 동시에 고용하는 것이 이 변화의 전제 조건이자 자본주의적 생산의 출발점이다. 이 출발점은 자본 자체의 출현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은 노동 과정을 사회적 과정으로 전환시키고자 역사적으로 필요한 조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 과정에서 이러한 사회적 형태는 자본이 노동의 생산력을 높여 노동을 더 유리하게 착취하는 방법이다.

 

위에서 분석한 단순 형태의 협업은 모든 대규모 생산의 필연적 부수물이다. 하지만 단순 협업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특수한 발전 단계를 특징짓는 고정된 형태는 아니다. 단순 협업이 대략이나마 이러한 형태로 나타났던 것은 공장제 수공업의 초기 단계와, (주로 동시 고용 노동자 수와 생산 수단 집적의 규모로 농민 경영과 구별되는) 대규모 농업에서였다. 자본이 큰 규모로 사용되지만, 분업과 기계가 아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생산 부문에서는 단순 협업이 언제나 지배적인 형태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단순 협업은 더욱 발전된 형태들과 나란히 하나의 특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협업은 언제나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기본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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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

 

12. 상대적 잉여 가치 개념

 

필요 노동 시간은 노동력 가치의 등가물이 생산되는, 자본이 지불한 노동 부분으로, 주어진 생산 조건 아래에서는 그 크기가 불변이다. 노동자는 이 불변의 필요 노동 시간을 넘어 2시간, 3시간, 4시간, 6시간 등 더 노동할 수 있으며, 이 연장된 노동의 크기가 잉여 가치율과 노동일의 총 길이를 결정한다. , 필요 노동 시간은 고정적이지만, 노동일 전체의 길이는 가변적이다. 이제 노동일의 길이와, 그 내부의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 사이의 분할이 주어진 조건임을 가정한다.

 

노동일 A-C의 전체 길이는 12시간으로 불변한다. 잉여 가치 증대의 과제는 노동일 A-C를 연장하지 않고, 곧 절대적 잉여 가치 생산 방식이 아닌 다른 경로를 찾는 데 있다. 이는 필요 노동 시간(A-B)를 단축하고, 그만큼 잉여 노동 시간(B-C)을 상대적으로 연장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필요 노동 시간 A-B10시간에서 A-B´(9시간)으로 1시간 단축된다고 가정하자. 이 단축은 노동자의 생존 수단 가치의 하락, 곧 생산성 향상으로 인해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이 줄어들면서 이뤄진다. 이때, 노동일 A-C12시간으로 유지되므로, 잉여 노동 시간 B-CB´-C로 상대적으로 연장된다.

 

· B’C = ACAB’

· B’C = 12시간 9시간 = 3시간

 

결과적으로, 잉여 노동은 B-C(2시간)에서 B´-C(3시간)으로 1시간 증대한다. 이 증가는 B-B´ 구간에 해당하며, 이는 B-C의 절반(1시간)과 같다. 이처럼 노동일의 길이 자체는 변하지 않으면서 잉여 노동 시간을 연장하여 잉여 가치를 증대시키는 방식을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이라 한다.

 

노동일 A-C의 총 길이(12시간)가 고정된 상태에서 잉여 가치를 증대하는 방식은 상대적 이여 가치 생산으로 규정된다. 필요 노동(A-B)10시간에서 A-B´(9시간)으로 1시간 단축되면, 그 단축된 1시간만큼 잉여 노동(B-C)B´-C(3시간)로 상대적으로 연장된다. 잉여 노동은 2시간에서 3시간으로 50% 증가하며, 이는 정확한 필요 노동의 단축분과 일치한다. 이 변화는 노동일의 절대적 길이(A-C)를 건드리지 않는다. 다만,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필요했던 노동 시간의 일부가 자본가를 위한 노동 시간으로 전환될 뿐이다. 결국, 노동일의 총량은 불변하지만,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 간 분할 비율이 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한다. , 잉여 노동 시간의 증가는 노동 생산성 증대로부터 필요 노동 시간 단축을 전제한다.

 

 

노동일의 총 길이와 노동력의 가치가 확정되면, 잉여 노동의 크기 또한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노동력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그 노동력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생활 수단의 가치로 규정된다. 이 생활 수단 가치의 등가물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곧 필요 노동 시간이다. 구체적인 예로, 노동 시간 1시간이 금량 0.5원에 해당하고, 노동력의 일일 가치가 5원이라하자.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받은 노동력 대가로 5원을 재생산하고자 다음과 같이 10시간을 노동해야 한다.

 

노동력의 일일 가치 (5)/ 노동 1시간의 가치 (0.5) = 필요 노동 시간 (10시간)

 

따라서 생활 수단의 가치(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지면, 필요 노동 시간이 확정되고, 노동일의 총 길이에서 이 필요 노동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가 잉여 노동 시간으로 명확히 규정된다. 이 관계는 잉여 노동 크기가 외적 요인으로 주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동일 A-C12시간과 필요 노동 10시간이 주어지면, 잉여 노동은 2시간으로 고정된다. (12시간 10시간 = 2시간). 주어진 조건 내에서 이 잉여 노동을 증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본가가 노동자의 가치(5)보다 낮은 임금(: 4.5)을 지급하는 방법이 존재한다. 1시간 노동이 0.5원의 가치를 창출한다고 할 때, 4.5원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은 다음과 같다.

 

지급된 임금 (4.5) / 노동 1시간의 가치 (0.5) 새로운 필요 노동 시간 (9시간)

 

이 경우, 12시간 노동일 중 필요 노동이 9시간으로 줄어들면서, 잉여 노동은 3시간 (12시간 9시간 = 3시간)으로 증가한다. 이에 따라 잉여 가치도 1원에서 1.5으로 증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잉여 노동의 증가는 노동자의 임금을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인하하는, 곧 착취의 정도(착취도)를 높이는 방식으로만 달성된다. 이는 노동력에 대한 불완전한 지불로부터 잉여 가치를 증대시키는 방법이다.

 

노동자가 9시간 노동으로 생산하는 4.5원의 임금을 받을 경우, 이는 이전 노동력 가치(5)에 비해 1/10만큼 감소한 금액이다. 이로 인해 노동자는 이전보다 적은 양의 생활 수단을 획득하게 되고, 그의 노동력 재생산은 위축된 상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잉여 노동은 정상적인 한계를 벗어나 연장되며, 잉여 노동 영역은 필요 노동 시간 영역을 강탈하면서 확대된다. 노동력에 대한 가치 이하의 임금 지불로부터 잉여 가치 증대 방식은 현실적으로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고찰 대상에서 제외한다. 우리는 모든 상품이 완전한 가치대로 매매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 전제 하에서, 노동력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은 노동자의 임금이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하락하는 방식으로 감소될 수 없다. 오직 노동력의 가치 그 자체가 하락하는 경우에만 필요 노동 시간이 감소하며, 이는 곧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의 전제가 된다.

   

노동일의 총 길이가 고정된 상황에서, 잉여 노동의 연장은 필요 노동 시간이 단축된 결과로 발생하며,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 필요 노동 시간의 단축이 잉여 노동 연장의 선행 조건이다. 앞선 예에서, 필요 노동 시간이 10시간에서 9시간으로 1/10만큼 축소되고, 그 결과, 잉여 노동이 2시간에서 3시간으로 연장되려면, 노동력의 가치가 실제로 1/10만큼 하락해야 한다. 노동력 가치의 하락은 주로 노동 생산성 증대로 인해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생활 수단의 가치가 하락할 때 발생한다. 이는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에서 핵심 원리를 구성한다.

 

노동력의 가치가 1/10만큼 하락한다는 것은,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동일한 양의 생활 수단이 이제 10시간이 아닌 9시간에 생산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 생산성의 향상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예를 들어, 제화공이 12시간 노동일에 한 켤레의 장화를 생산한다고 가정하자. 그가 동일한 12시간 동안 두 켤레의 장화를 생산하게 된다면, 그의 노동 생산성은 두 배로 증가한다. 이러한 생산성 증대는 노동 수단이나 노동 방법의 변화, 또는 이 둘의 결합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상대적 잉여 가치를 생산하려면 노동의 생산 조건, 곧 생산 방식과 노동 과정 자체에 혁명적 변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노동 생산성의 상승은 노동 과정에 질적 변화가 발생하여 상품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이 단축됨을 의미한다. 그 결과, 주어진 양의 노동이 더 많은 양의 사용 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과거 절대적 잉여 가치 생산을 위해 노동일 연장을 고찰했을 때는, 생산 방식이 고정되어 불변하는 것으로 전제되었다. 그러나 필요 노동이 잉여 노동으로 전환되며 상대적 잉여 가치가 생산되어야 하는 현 단계에서는, 자본이 전통적인 노동 과정을 단순히 계승하고 그 지속 시간만을 연장하는 일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잉여 가치의 증대를 위해서는 생산 방식 자체의 변혁이 필수적이다.

 

노동 생산성의 증가는 노동 과정에서 기술적, 사회적 조건, 곧 생산 방식 자체가 변혁될 때 비로소 이뤄진다. 이러한 변혁으로만 노동력의 가치는 저하되고, 노동일 중 이 가치의 재생산에 필요한 부분(필요 노동 시간) 역시 단축될 수 있다. 필자는 노동일의 연장으로부터 생산되는 잉여 가치를 절대적 잉여 가치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필요 노동 시간의 단축과 그에 따라 노동일의 두 부분(필요 노동, 잉여 노동) 길이 변화로부터 발생하는 잉여 가치를 상대적 잉여 가치라고 부른다. 이는 잉여 가치 증대에서 두 가지 근본적인 경로를 명확히 구분한다.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키려면, 그 가치를 직접 결정하는 생산물(일상적 생활 수단 또는 그 대체품)이 생산되는 산업 부문에서 노동 생산성이 상승해야 한다. 상품 가치는 그 상품을 최종 형태로 만드는 노동의 양뿐만 아니라, 그 상품 생산에 투입되는 생산 수단(불변 자본)에 들어 있는 노동의 양에서도 결정된다. 예를 들어, 장화의 가치는 제화공의 노동 외에 가죽, 왁스, 실 등의 가치에서도 규정된다. 따라서 생활 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불변 자본의 물질적 요소들(노동 수단과 노동 재료)을 공급하는 산업 부문들에서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상품 가격이 하락하는 일 또한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필요한 생활 수단을 직접 공급하지도 않거나, 또는 생활 수단의 생산을 위한 생산 수단을 공급하지 않는 부문들에서 노동 생산성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노동력의 가치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이는 노동력 가치와 상대적 잉여 가치의 연관 관계가 특정 산업 부문에 한정됨을 시사한다.

   

특정 상품의 가격 하락은 그 상품이 노동력 재생산에 기여하는 비율만큼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킨다. 예를 들어, 속옷은 필수적인 생활 수단이지만, 이는 노동자가 소비하는 수많은 생활 필수품 중 일부에 불과하다. 속옷 가격이 하락하면, 이는 노동자의 속옷 구입 지출을 줄이는 데 그친다. 생활 필수품의 총량은 여러 산업 부문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상품들로 구성되며, 이 상품들 각각의 가치가 노동력 가치의 특정 부분을 이룬다.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이 감소함에 따라 저하한다. 이때 필요 노동 시간의 총감소량은 노동력 재생산에 관련된 상이한 모든 생산 부문에서 발생한 노동 시간 단축의 총합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는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이 폭넓은 생산성 향상을 전제함을 명확히 한다.

 

여기서 우리는 노동력 가치 저하라는 일반적 결과를 각 개별 자본이 직접 목표로 삼아 달성하는 결과처럼 취급한다. 하지만 개별 자본가가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켜 예를 들어, 속옷의 가치를 저하시킬 때, 그의 직접적인 목표는 반드시 노동력 가치를 저하시키고 필요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일이 아니다. 개별 자본가가 속옷 가치를 저하시켜 결과적으로, 노동력 가치 저하와 필요 노동 시간 단축에 기여하는 한, 그는 일반적 잉여 가치율의 상승에 기여하게 된다. 자본의 일반적이고 필연적인 경향들은 그것들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 형태와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별 자본의 동기는 상대적 잉여 가치 창출이라는 자본의 일반적 운동 법칙과 구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이 개별 자본들의 외적 운동으로 발현되어 경쟁이 강제하는 법칙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개별 자본가의 동기로 의식에 도달하는 방식은 여기서 직접적인 고찰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경쟁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자본의 내적 본성을 파악한 뒤에야 비로소 이뤄진다. 이는 천체의 외관상 운동이 그 진정한 운동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해석되는 일과 같다. 다만,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을 이해하고 이미 얻어진 결과들을 토대로, 다음의 사실을 추가하여 논리를 진전할 수 있다.

 

노동 1시간이 6원의 가치를 구현한다면, 12시간 노동일에는 총 72원의 새로운 가치가 생산된다.

 

· 생산성 향상 이전

 

현재 지배적인 노동 생산성 하에서, 12시간 노동에 12개의 상품이 생산된다고 가정한다. 상품 1개당 소비되는 원료 및 기타 생산 수단(불변 자본)의 가치는 6원이다.

이때 상품 1개의 총 가치는 다음과 같다.

 

· [생산 수단의 총 가치 + 12시간의 새로 생산된 가치] / 총 생산량 = 상품 1개의 가치

 

· [(6× 12) + 72] / 12 = [72+ 72] / 12 = 12

 

· 생산 수단(c) 가치: 6

· 새로 첨가된 노동(v+s) 가치: 6

 

· 생산성 향상 이후

 

어떤 자본가가 노동 생산성을 2배로 향상시켜 12시간 노동일에 24개의 상품을 생산하게 되었다. 생산 수단 가치는 변동 없이 유지된다.

 

상품 1개의 총 가치는 다음과 같이 하락했다.

 

· [생산 수단의 총 가치 + 12시간의 새로 창조된 가치] / 총 생산량

= 상품 1개의 새로운 가치

 

· [(6× 24) + 72] / 24 = [144+ 72] / 24 = 9

 

· 생산 수단(c) 가치: 6(불변)

· 새로 첨가된 노동(v+s) 가치: 3

 

결론적으로, 노동 생산성이 2배가 되었음에도, 1노동일이 생산하는 새로운 가치 총량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72원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생산량 증가로 인해 상품 1개당 가치는 12원에서 9원으로 하락한다.

 

12시간 노동일 동안 생산되는 72원의 새로운 가치는 이제 2배로 증가한 24개의 생산물에 분할된다. 결과적으로, 생산물 1개가 포함하는 새로운 가치는 종전의 1/12(6) 대신 1/24(3)으로 하락한다. 달리 말해, 생산 수단을 가공하는 데 투입되는 노동, 곧 상품 1개당 첨가되는 노동 시간은 이전의 1시간이 아닌 1/2시간으로 단축된다. 이때, 해당 상품의 개별 가치는 9(6+3)으로, 여전히 12원인 사회적 평균 가치보다 낮다. 이는 생산성 향상에 성공한 개별 자본가의 상품에 사회적 평균 조건에서 생산된 대다수 동종 상품보다 적은 노동 시간이 응고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상품 1개의 사회적 평균 가치는 12원이며, 이는 2시간의 사회적 필요 노동을 대표한다. 그러나 노동 생산성 향상을 이룬 변경된 생산 방식에서는, 상품 1개의 개별 가치는 9, 투입된 노동 시간은 1.5시간(1시간 30)으로 감소했다. 상품의 현실적 가치는 그 개별 가치가 아닌 사회적 가치로부터 결정된다. , 상품 가치는 개별적인 실제 투입 노동 시간이 아닌, 그 상품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으로부터 측정되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을 채택한 자본가가 자신의 상품을 사회적 가치인 12원에 판매할 경우, 그는 상품을 개별 가치(9)보다 3원 더 비싸게 판매하는 일과 같다. 3원은 특별(특수) 잉여 가치로 자본가에게 귀속된다.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킨 자본가에게는 12시간 노동일의 생산물이 종전의 12개에 24개로 증가하여 나타난다. 2배의 생산물을 판매하려면 판로가 2배로 확장되어야 하며, 이는 곧 시장 확대를 요구한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자본가는 가격 인하로부터만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상품을 개별 가치(9)보다는 비싸게, 그러나 사회적 가치(12)보다는 싸게 판매하는 전략을 취한다. 예를 들어, 상품을 10원에 판매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자본가는 상품 1개당 1원의 특별 잉여 가치(10-9=1)를 얻게 된다. 이 특별 잉여 가치로부터 잉여 가치의 증대는 그가 생산하는 상품이 노동력의 일반적 가치를 결정하는 생활 필수품에 속하든, 속하지 않든, 개별 자본가 자신에게 귀속된다. 결국, 각 개별 자본가는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상품 가치를 저렴하게 만들려는 직접적인 동기를 가지게 된다. 이는 특별 잉여 가치 획득을 위한 경쟁 원리에서 비롯한다.

 

노동 생산성 향상으로부터 잉여 가치 증대는 본질적으로 필요 노동 시간의 단축과 이에 따른 잉여 노동의 연장에서 비롯한다. 원래의 조건은 필요 노동 시간 10시간(노동력의 하루 가치 60)과 잉여 노동 2시간(매일 생산되는 잉여 가치 12)이다.

 

자본가는 생산성 향상 이 24개의 상품을 생산해 이를 1개당 10원에 판매하여, 240원의 판매액을 실현한다. 상품 24개에 투하된 생산 수단(불변 자본)의 총 가치는 144(=6×24)이다. 판매액 240원 중 투하된 불변 자본의 가치 144원을 대체하는 데 필요한 상품 수량은 다음과 같다.

 

불변 상품의 총 가치(144) / 상품 개당 판매 가격(10) = 14.4(142/5)

 

결과적으로, 생산물 중 14.4개의 판매액이 투하된 불변 자본을 회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12시간 노동일 동안 생산된 24개의 상품 중 불변 자본(생산 수단 가치)을 대체하고 남은 생산물은 9.6(9= 2414.4), 이는 새로 생산된 가치의 물질적 표현이다.

 

주어진 조건

 

· 노동력의 가격(노동자가 임금으로 받는 가치): 60

· 생산성 향상 후 상품 1개당 판매 가격: 10

· 12시간 동안 새로 생산된 가치에 해당하는 총 생산물: 9.6(93/5)

 

· 필요 노동의 생산물(임금 회수분)

 

필요 노동은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노동력 가격 60)을 상쇄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이며, 이느 곧 해당 가치만큼의 상품 수량으로 표현된다.

 

· 필요 노동 생산물 수량 = 노동력 가격 / 상품 1개 판매 가격

 

· 필요 노동 생산물 수량 = 60/ 10= 6

 

따라서 노동자는 자신의 임금 60원에 해당하는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6개의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

 

· 잉여 노동의 생산물(잉여 가치분)

 

잉여 노동은 전체 노동일 중 필요 노동을 초과하는 부분이며, 이는 새로 생산된 총 가치를 표현하는 생산물(9.6)에서 필요 노동에 해당하는 생산물을 제외한 나머지 수량이다.

 

· 잉여 노동 생산물 수량 = 총 창조 가치 생산물 필요 노동 생산물

 

· 잉여 노동 생산물 수량 = 9.66= 3.6

 

, 노동자가 생산성 향상 후 12시간 동안 새로 만들어낸 9.6개의 상품 중에서 6개는 노동자 자신(임금)을 위해, 나머지 3.6개는 자본가(잉여 가치)를 위해 생산된다. 결과적으로,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의 비율은 6 : 3.6(5 : 3)으로 변화한다. 이는 사회적 평균 조건의 5 : 1(10시간 : 2시간) 비율보다 잉여 노동에 유리하게 증가한다.

 

12시간 노동일 생산물 24개를 10원에 판매하여 얻는 총 가치는 240(240=10×24)이다. 이 중 생산 수단의 가치(144)를 제외한 나머지 96원이 1노동일 동안 새로 생산된 가치의 화폐적 표현이다. 96원은 동일한 종류의 사회적 평균 노동(12시간)이 생산하는 가치인 72원보다 더 크다. 이는 생산성이 예외적으로 높은 노동이 강화된 노동으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 이 노동은 동일한 시간 안에 사회적 평균 노동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한다.

 

자본가는 노동력의 하루 가치에 대해 이전과 동일한 60원을 지급한다. 앞서 생산성이 향상된 노동은 12시간 동안 96원의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며 강화된 노동으로 작용했다. 12시간 노동 중 60원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다음과 같이 산출된다.

 

생산된 총 가치(96) / 총 노동 시간(12시간) = 시간당 생산 가치(8)

 

노동력 가치(60) / 시간당 생산 가치(8) = 새로운 필요 노동 시간(7.5시간=7시간 30)

 

따라서 노동자는 이제 60원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종전의 10시간이 아닌 7.5시간만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그의 잉여 노동은 12시간 7.5시간 = 4.5시간이 되며, 이는 종전 2시간에서 2.5시간만큼 증가한다.

 

그가 생산하는 잉여 가치는 96(총 생산 가치)에서 60(노동력 가치)을 제외한 36원으로 증가한다. 이는 종전 12원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개선된 생산 방식을 채택한 자본가는 동일 생산 부문의 다른 자본가에 비해 1노동일 중 더 큰 부분을 잉여 노동으로 확보한다. 그는 총체적 자본이 상대적 잉여 가치를 생산할 때, 집단적으로 수행하는 일을 개별적으로 선취하는 셈이다.

 

그러나 새로운 생산 방식이 일반화되어 상품의 개별 가치와 사회적 가치 사이의 차이가 해소되는 즉시, 기존에 존재했던 특별 잉여 가치는 소멸한다. 노동 시간으로 가치를 결정하는 법칙은 이제 새로운 방법을 채택한 자본가에게 자신의 상품을 그 사회적 가치 이하로 판매하도록 강요하는 형태로 발현된다. 동시에 바로 이 법칙이 경쟁의 강제 법칙으로 기능하며, 경쟁자들 역시 새로운 생산 방법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과정은 상대적 잉여 가치의 일반화를 위한 자본의 끊임없는 생산성 혁신을 촉진한다. 이러한 과정으로부터 궁극적으로, 일반적 잉여 가치율이 상승하는 현상은, 노동 생산성의 증가가 생활 필수품 생산 산업에서 발생하여 노동력의 가치를 구성하는 상품들의 가격을 하락시켰을 때 비로소 현실화된다. 이 관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상품 가치는 노동 생산성에 반비례 한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상품 가치는 하락한다.

 

2. 노동력의 가치는 그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상품의 가치로부터 규정되므로, 노동력의 가치 역시 노동 생산성에 반비례한다.

 

3. 반면에, 상대적 잉여 가치는 노동 생산성에 정비례한다.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면 필요 노동 시간이 단축되어 상대적 잉여 가치는 증가하고, 생산성이 저하하면 잉여 가치도 저하한다.

 

화폐 가치가 불변하다는 전제 하에, 12시간의 사회적 평균 노동일은 72원이라는 동일한 새로운 가치를 언제나 창출한다. 이 가치 총액이 임금(가변 자본)과 잉여 가치로 어떻게 분할되는지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여 생산 수단의 가치가 저하되고 그 결과, 노동력의 하루 가치가 60원에서 36원으로 하락한다고 가정한다. 이 경우, 잉여 가치는 12원에서 7236= 36원으로 증가한다. 노동력 가치 36원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필요 노동 시간은 다음과 같이 산출된다.

 

· 노동일의 총 생산 가치(72) / 총 노동 시간(12시간) = 시간당 생산 가치(6)

 

· 노동력 가치(36) / 시간당 생산 가치(6) = 새로운 필요 노동 시간(6시간)

 

따라서 노동력 가치 재생산에 10시간이 필요했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6시간의 노동만이 요구된다. 결과적으로, 4시간의 노동이 필요 노동의 영역에서 떨어져 나와 잉여 노동의 영역에 편입된다. 이러한 상대적 잉여 가치 증대를 위해 상품을 값싸게 하고, 나아가 노동자 자체(노동력 가치)를 값싸게 하려는 노동 생산성 증가는 자본의 내재적 충동이자 끊임없는 경향이다.

 

상품을 생산하는 자본가는 상품의 절대적 가치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자본가의 관심은 오직 상품에 내포되어 판매로부터 실현되는 잉여 가치에만 집중된다. 잉여 가치의 실현은 투하된 가치의 회수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상품 가치는 노동 생산성의 발전에 반비례하는 반면, 상대적 잉여 가치는 노동 생산성의 발전에 정비례하여 증가한다. 결국, 동일한 과정(노동 생산성의 발전)이 상품을 값싸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상품에 내재된 잉여 가치를 증대시킨다. 이로부터 교환 가치의 생산만을 추구하는 자본가가 왜 상품의 교환 가치를 끊임없이 떨어뜨리려 노력하는가 하는 수수께끼가 해명된다. 이 수수께끼는 경제학 창시자 가운데 한 명인 케네가 논적들을 괴롭혔으나 아무런 해답을 얻지 못했던 문제다. 케네는상업과 수공업자의 노동에 대한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당신들 스스로 인정하듯, 공산품 제조에서는 생산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노동 지출 또는 노동 비율을 감축할수록 이익은 증대한다. 이는 곧 제품 가격을 인하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노동자의 노동에서 생기는 부의 생산이 그들의 생산물에서 교환 가치가 증대하는 데 있다고 믿고 있다.”

 

케네의 이 발언은 상업과 수공업의 가치 생산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들의 논리가 노동 절약(가치 하락)의 유용성을 인정하면서도 가치 증대를 부의 원천으로 본다는 모순을 지적한다. 이는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의 해명으로부터 비로소 해결되는 핵심적인 역설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동 생산성의 발전에 따른 노동의 절약은 결코 노동일의 단축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 절약이 겨냥하는 것은 오직 일정한 양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의 단축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켜 1시간에 종전의 10배의 상품을 생산하게 되고, 따라서 상품 1개당 투입되는 노동 시간이 이전의 1/10로 단축된다 해도, 이는 그가 종전과 마찬가지로 하루 12시간 노동하면서 120개가 아닌 1,200개의 상품을 생산하는 일을 막지 않는다. 노동 절약의 목적은 상대적 잉여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지, 노동자에게 여가 시간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다. 노동자의 노동일은 단축되지 않고 오히려 연장되어, 14시간 동안 1,400개의 상품을 생산하도록 강요받을 여지까지 존재한다.

 

매컬록, 유어, 시니어와 같은 부류의 경제학자들 저서에서 발견되는 모순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생산력 발전으로 필요 노동 시간이 단축되었으므로, 노동자는 이에 대해 자본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쪽에서는 노동자가 그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앞으로는 하루 10시간이 아닌 15시간 동안 노동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동의 절약이 필요 노동 단축으로부터 잉여 노동 연장을 목적으로 하며, 결코 노동자의 개선이나 노동일 단축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틀 안에서 노동 생산성의 상승은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노동해야 할 부분(필요 노동 시간)을 단축한다. 이 과정은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본가를 위해 공짜로 노동할 수 있는 나머지 부분(잉여 노동 시간)을 연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상품의 가격을 하락시키지 않고도 이러한 결과(잉여 노동 연장)를 어느 정도까지 달성할 수 있는지는, 우리가 다음 단계에서 검토할 상대적 잉여 가치의 여러 특수한 생산 방식들을 분석할 때 비로소 명확히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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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잉여 가치율과 잉여 가치량

 

본 장에서도 이전과 동일하게, 노동력의 가치와, 이에 따른 노동일 중 노동력의 재생산 또는 유지에 필요한 부분은 주어진 불변의크기라고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 하에서, 잉여 가치율은 개별 노동자가 일정 기간 자본가에게 제공하는 잉여 가치량을 직접적으로 지시한다. 예를 들어, 필요 노동이 하루 6시간이고 이를 금량으로 표현한 것이 3원이라면, 3원은 1노동력의 하루 가치 또는 1노동력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자본의 가치이다. 나아가, 잉여 가치율이 100%일 경우, 3원의 가변 자본은 3원의 잉여 가치량을 생산한다. , 노동자는 매일 6시간의 잉여 노동량을 제공한다. 가변 자본은 자본가가 동시에 고용하는 모든 노동력의 총가치를 화폐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투하 가변 자본의 가치는 1노동력의 평균 가치에 고용된 노동력의 수를 곱한 값과 같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진 경우, 가변 자본의 크기는 동시에 고용되는 노동자의 수에 정비례한다. 예를 들어, 1노동력의 하루 가치가 3원이라면, 매일 100노동력을 착취하려면 300원의 자본을, 매일 n노동력을 착취하려면 3n원의 자본을 투하해야 한다.

 

1노동력의 하루 가치인 3원의 가변 자본이 매일 3원의 잉여 가치를 창출한다면, 300원의 가변 자본은 매일 300원의 잉여 가치를, 3n원의 가변 자본은 매일 3n원의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 그러므로 총 잉여 가치량은 개별 노동자의 1노동일이 산출하는 잉여 가치에 고용된 총 노동자 수를 곱한 값과 일치한다. 나아가, 개별 노동자가 생산하는 잉여 가치량은 (노동력의 가치가 확정된 경우) 잉여 가치율로부터 결정되므로, 1법칙이 도출된다. , 생산되는 총 잉여 가치량은 투하한 가변 자본의 크기에 잉여 가치율을 곱한 것과 같다. 이는 동일한 자본가에게 동시 착취되는 노동력의 수와 (1노동력의 평균 가치 및) 개별 노동력 착취도의 곱으로 결정된다.

 

잉여 가치량은 S, 개별 노동자가 하루에 평균적으로 제공하는 잉여 가치는 s, 1노동력 구매에 매일 투하되는 가변 자본은 v, 가변 자본의 총액은 V, 평균 노동력의 가치는 P, 그 착취도(잉여노동/평균노동)a´/a, 그리고 고용되는 노동자 수는 n으로 각각 표시할 경우, 다음 공식이 성립한다.

 

잉여 가치율(m´)

 

= 잉여 가치(s) / 가변 자본(v)

 

잉여 가치량(S)

 

= 잉여 가치(s) × 고용된 노동자 수(n)

= [잉여 가치(s) / 가변 자본(v)] × 가변 자본 총액(V)

= 평균 노동력 가치(P) × [잉여 노동(a´) / 평균 노동(a)] × 고용된 노동자 수(n)

 

본 논의는 하나의 평균 노동력 가치가 불변하며, 자본가가 고용하는 노동자들 모두가 평균적 노동자로 환원되었다는 전제를 지속적으로 바탕에 둔다. 생산되는 잉여 가치가 착취되는 노동자 수에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는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나, 그러한 경우에는 노동력의 가치도 역시 불변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일정한 잉여 가치량을 산출할 때, 한 요인의 감소는 다른 요인의 증대로부터 상쇄될 수 있다. 특히, 가변 자본이 감소하는 동시에 잉여 가치율이 동일 비율로 증대된다면,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은 불변으로 유지된다. 이전 가정에 따르면, 자본가가 하루 100명의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 300원을 투자하고, 잉여 가치율이 50%일 경우, 300원의 가변 자본은 150(1.5× 100)의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

 

잉여 가치율이 2배인 100%로 증가하고 (노동일이 6시간에서 12시간으로 연장되며), 동시에 가변 자본이 절반인 150원으로 감소하더라도, 이때 역시 150(3× 50)의 잉여 가치가 생산된다. 따라서 가변 자본의 감소는 이와 비례하는 노동력 착취도의 증가로 상쇄되며, 고용 노동자 수의 감소는 이와 비례하는 노동일의 연장으로 보상된다. 그러므로 일정한 한계 내에서는 자본이 착취한 노동의 공급은 노동자의 공급과 무관할 수 있다. 반대로, 잉여 가치율의 감소는 가변 자본의 크기 또는 고용 노동자 수가 이에 비례하여 증가한다면,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을 불변으로 유지된다.

 

노동자 수(또는 투하된 가변 자본의 크기)의 감소를 잉여 가치율 증대(노동일의 연장)로 보상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노동력의 가치와 무관하게, 노동자의 생활 유지에 필요한 노동 시간이 2시간이든, 10시간이든, 한 노동자가 매일 생산할 수 있는 총 가치는 24시간의 노동이 대상화되는 가치보다 항상 적다. 이 대상화된 24시간 노동의 화폐적 표현이 12원이라면, 생산되는 총가치는 언제나 12원 미만이다.

 

노동력 자체를 생산하거나 노동력 구매에 투하한 자본 가치를 대체하기 위해, 매일 6시간의 노동이 필요하다는 앞선 가정에 근거할 때, 100%의 잉여 가치율(12시간 노동일)5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1,500원의 가변 자본은 매일 1,500원의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 그러나 200%의 잉여 가치율(18시간 노동일)1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300원의 가변 자본은 기껏해야 600원의 잉여 가치만 생산할 수 있다. 이는 노동일의 절대적 한계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평균 노동일의 절대적 한계는 본래 24시간보다 짧으며, 이는 가변 자본 감소를 잉여 가치율 증대로 보상하는 행위, 곧 착취 노동자 수 감소를 노동력 착취도 상승으로 보상하는 행위의 절대적 한계를 규정한다. 이 자명한 제2법칙은 고용 노동자 수(가변 자본 부분)를 최대한 축소시키려는 자본의 경향과, 최대한 많은 잉여 가치량을 생산하려는 또 다른 경향과 모순된다. 이 모순은 다수의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이다. 반면, 고용 노동력의 양(가변 자본의 크기)이 잉여 가치율 감소와 같은 비율로 증대되지 못한다면,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은 감소한다.

 

3법칙은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이 잉여 가치율과 투하되는 가변 자본량이라는 두 가지 요인으로 결정된다는 사실로부터 도출된다. 잉여 가치율(노동력의 착취도)과 노동력의 가치(필요 노동 시간)가 주어진다면, 가변 자본이 클수록 생산되는 총 가치량과 잉여 가치량 또한 커진다는 것은 자명하다. 노동일의 한계와 필요 노동 부분의 한계가 주어진 상황에서는, 개별 자본가가 생산하는 가치와 잉여 가치의 양은 전적으로 그가 동원하는 노동량으로부터 규정된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그러나 이 노동량은 앞선 가정에서 그가 착취하는 노동력의 양 또는 노동자의 수로부터 결정되며, 이 수는 또한 그가 투하하는 가변 자본의 크기로부터 결정된다. 그러므로 잉여 가치율과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져 있다면,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은 투하 가변 자본의 크기에 정비례한다. 자본가는 자신의 자본을 두 부분으로 분할한다. 한 부분은 생산 수단에 지출되며, 이는 자본의 불변 부분을 이룬다. 다른 부분은 살아 있는 노동력에 지출되며, 이 부분이 그의 가변 자본을 형성한다.

 

동일한 생산 방식 하에서도 생산 부문에 따라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 사이의 자본 분할은 상이해지며, 동일 부문 내에서도 생산 과정의 기술적 토대와 사회적 결합의 변화에 따라 그 분할은 달라진다. 그러나 주어진 자본의 불변 부분과 가변 부분 사이의 비율(1:2, 1:10, 1:x)이 어떠하든, 바로 앞에서 정립한 법칙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는 앞선 분석에 근거할 때, 불변 자본의 가치는 비록 생산물의 가치에 재현되더라도, 새로 생산되는 가치(새로 창조되는 가치 생산물) 속에는 편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1,000명의 방적공을 고용하려면 100명의 방적공을 고용할 때보다 더 많은 원료와 방추 등이 필요하지만, 이 추가 생산 수단의 가치는 (등귀, 하락, 불변, 크기 등과 무관하게) 생산 수단을 움직이는 노동력으로부터 수행되는 가치 증식 과정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 확인된 제3법칙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제시된다.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져 있고 노동력의 착취도가 동일할 경우, 서로 다른 자본이 창조하는 가치 및 잉여 가치의 양은, 이들 자본에서 가변 자본의 크기(살아 있는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부분의 크기)에 정비례한다.

 

이 제3법칙은 평균 이윤율의 형성과 같은 현상의 겉모습에 근거한 모든 경험적 관찰과 명확히 모순된다. 주지하다시피, 사용된 총자본에 대한 백분율을 고려할 때, 비교적 많은 불변 자본과 적은 가변 자본을 사용하는 방적업자가, 비교적 적은 불변 자본과 많은 가변 자본을 사용하는 빵 제조업자보다 더 적은 이윤(잉여 가치)를 얻지는 않는다. 이 겉모습의 모순을 해결하려면 아직 다수의 매개항이 필요하며, 이는 초등 대수학의 입장에서 0/0이 현실적인 크기를 표시할 수 있음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매개항이 요구되는 것과 비슷하다.

 

고전파 경제학은 이 제3법칙을 공식화하지는 못했으나, 가치 법칙의 필연적 결론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를 견지했다. 그들은 이 법칙을 무리한 추상으로부터 현상의 모순을 구출하려 시도했다. 리카도 학파가 이 난관에 어떻게 봉착했는지는 추후 논의된다. ‘아무것도 학습하지 못한속류 경제학은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현상을 규제하고 설명하는 법칙을 무시하고 현상의 외관에 집착한다. 스피노자의 발언, 무지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와는 대조적으로, 속류 경제학은 무지가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믿는다.

 

한 사회 내에서 총자본이 매일 동원하는 노동은 하나의 단일 노동일로 간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 수가 백만 명이고, 평균 노동일이 10시간이라면, 사회적 노동일은 1,000만 시간이 된다. 개별 노동자의 평균 노동일의 길이가 주어진 경우(그 한계가 육체적 또는 사회적 조건으로 설정되든), 잉여 가치량은 오직 노동자 수(노동 인구)의 증가로부터만 증대한다. 이 경우, 인구 증가는 사회적 총자본의 잉여 가치 생산을 결정하는 수학적 한계가 된다. 반대로, 인구 크기가 고정된 경우, 그 한계는 노동일 연장의 범위로부터 규정된다. 다음 장에서 다루겠지만, 이 법칙은 오직 지금까지 고찰된 형태의 잉여 가치(절대적 잉여 가치)에만 해당된다.

 

지금까지의 잉여 가치 생산 고찰로부터, 임의의 화폐액(가치액)이 모두 자본으로 전환될 수는 없으며, 특정한 최소 한도의 화폐(교환 가치)가 개별 화폐 소유자 또는 상품 소유자의 수중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가변 자본의 최소 한도는 잉여 가치의 생산을 위해 1년 내내 고용되는 1노동력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금액이다.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자로 사는 일에 만족한다면, 그는 자신의 생활 수단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 하루 8시간)만 노동하면 충분하며, 그에게 필요한 생산 수단도 이 8시간의 노동분에 상응하는 양이면 충분하다. 이와 반대로, 이 노동자에게 8시간 외에 추가로 4시간의 잉여 노동을 하게 만드는 자본가는 추가적 생산 수단을 마련하고자 추가적 화폐액을 필요로 한다. 앞선 가정에 의거할 때, 자본가가 매일 취득하는 잉여 가치로 노동장와 동등한 수준의 생활, 곧 필수적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최소한 두 사람의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

 

(노동자 한 명이 4시간의 잉여 노동을 제공하므로, 두 노동자는 총 8시간의 잉여 노동을 제공하며, 8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필요 노동과 동일하다.) 이 경우, 자본가의 생산 목적은 단순한 생활 유지일 뿐, 부의 증대는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본질적으로 부의 증대를 전제한다. 자본가가 일반 노동자보다 겨우 2배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고, 생산된 잉여 가치의 절반을 자본으로 재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그는 노동자의 수와 투하 자본의 최소 한도를 8배로 증대시켜야 한다. (이는 그가 32시간의 잉여 노동을 획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스스로 노동자와 동일하게 직접 생산 과정에 참여할 수 있으나, 그러한 경우, 그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혼합형인 소경영주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일정한 발전 단계에 도달하면, 자본가는 인격화된 자본으로 기능하는 시간 전체를 타인 노동의 취득 및 감독과 노동 생산물의 판매에 전념해야 한다.

 

중세의 길드 제도는 개별 장인(마스터)이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 수의 최대 한도를 극히 적게 제한하면서, 수공업적 장인이 자본가로 전환하는 과정을 강제적으로 저지하려 했다. 화폐 소유자 또는 상품 소유자는 (생산을 위해 투하하는 최소 금액이 중세의 최대 한도를 훨씬 초과하는 시점에서) 비로소 현실적으로 자본가로 변모한다. 여기에서도 헤겔이논리학에서 정립한 법칙, 곧 단순한 양적 차이가 일정한 지점에 도달하면 질적 차이로 이행한다는 법칙의 정당성이 자연 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입증된다.

 

개별 화폐 소유자 또는 상품 소유자가 자본가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가치액의 최소 한도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 단계에 따라 변화하며, 동일 발전 단계에서도 각 생산 분야의 특수한 기술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일부 생산 분야는 이미 자본주의적 생산 초기부터 개인이 소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규모의 최소 자본을 요구한다. 이로 인해, 한편으로는 콜베르 시대의 프랑스나 현재의 여러 독일 주에서처럼 국가가 개인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공업 및 상업 부문의 경영에 법률상의 독점권을 갖는 회사, 곧 근대적 주식 회사의 선구자가 설립되었다 우리는 생산 과정의 진행 중에 발생하는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 사이의 관계 변화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더 이상 다루지 않으며, 따라서 자본 그 자체의 특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멈추려 한다. 다만, 몇 가지 요점만을 강조한다.

 

생산 과정의 내부에서 자본은 노동(활동 중인 노동력 또는 노동자 그 자체)을 지휘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인격화된 자본인 자본가는 노동자가 작업을 규칙적이며 상당한 강도로 수행하도록 감시한다. 더 나아가, 자본은 노동자 계급에게 그들 자신의 좁은 범위의 욕구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동을 강제로 수행하게 만드는 관계로까지 심화되었다. 그리고 타인에게 노동을 시키고, 잉여 노동을 착취하며, 노동력을 착취하는 자본은 그 정력, 탐욕, 능률 면에서 직접적 강제 노동에 기반을 둔 종전의 모든 생산 제도를 압도적으로 능가한다.

 

자본은 우선 역사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기술적 조건을 그대로 활용하여 노동을 자신에게 예속시킨다. 따라서 자본은 생산 방식을 즉각적으로 변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까지 고찰한 형태의 잉여 가치 생산(노동일의 단순한 연장으로부터 잉여 가치 생산)은 생산 방식 자체의 어떠한 변화와도 무관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잉여 가치의 생산은 구식 빵 제조업에서나 근대적 면공장에서나 동일하게 효력을 발휘했다.

 

생산 과정을 단순한 노동 과정의 관점에서 고찰하면, 노동자는 생산 수단을 자본이 아닌 자신의 합목적적 생산 활동을 위한 단순한 수단과 재료로 대한다. 예를 들어, 가죽 공장 노동자는 가죽을 자신의 노동 대상으로 취급할 뿐이며, 그의 무두질 작업은 자본가를 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생산 과정을 가치 증식 과정의 관점에서 고찰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생산 수단은 즉시 타인의 노동을 흡수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환된다. 이제 노동자가 생산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수단이 노동자를 사용하는 역전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노동자가 생산 수단을 자신의 생산 활동을 위한 소재적 요소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수단이 노동자를 자기 자신의 생활 과정에 필요한 효모로 소비한다. 이때 자본의 생활 과정은 자기 증식하는 가치로서의 자본 운동에 불과하다.

 

야간에 가동이 중단되어 살아 있는 노동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는 용광로나 작업장은 자본가의 관점에서 볼 때 순전한 손실이다. 따라서 용광로와 작업장은 노동력의 야간 노동을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 화폐가 생산 과정에서 객체적 요소(생산 수단)로 전환되자마자, 생산 수단은 당연한 권리와 힘을 부여받아 타인 노동과 잉여 노동을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이처럼 죽은 노동과 살아 있는 노동 (가치와 가치 창조력)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도 또는 왜곡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고유한 특징이며, 이것이 자본가들의 의식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하나의 사례로부터 최종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영국의 공장주들이 반발했던 1848-1850년 당시, 서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유서 깊고 명망 있는 회사 중 하나인 칼라인 부자회사(1752년부터 1세기 동안 존속하며, 동일 가족으로부터 4대째 경영된 페이즐리의 아마 및 면화 방적 공장)의 사장인 한 박식한 신사가 1849425일자글래스고 데일리 매일지에 교대 제도라는 제하의 편지를 기고했는데, 그 내용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소박한 다음 구절이 담겨 있다.

 

이제 노동 시간을 12시간에서 10시간으로 단축하는 데서 발생하는 해악을 고찰하자. 이는 공장주의 기대와 재산에 가장 중대한 손상을 초래한다. (공장주, 곧 그의 직공들)가 과거 12시간 작업했으나, 앞으로 10시간으로 제한된다면, 그의 공장에 있는 기계나 방추의 수는 12개당 10개로 축소되며, 그가 공장 매각을 고려하더라도 10개로만 평가될 것이다. 따라서 전국 모든 공장은 그 가치의 1/6을 상실하게 된다.’

 

‘4세대 자본가적 속성을 물려받은 이 서부 스코틀랜드인의 자본가적 두뇌 속에서는, 방추 등 생산 수단의 가치와, 생산 수단이 자본으로 갖는 속성(, 자기 자신의 가치를 증식시키며 매일 타인의 지불받지 않는 노동을 일정량 흡수하는 속성)이 구별 없이 혼재되어 있다. 결국, 이 칼라일 회사 사장은 공장을 매각할 경우, 방추 등 생산 수단의 가치뿐 아니라, 그 위에 덧붙여 방추 등의 잉여 가치 취득에 대해서까지도 대가를 지급받는다고 실제로 예상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방추 등 생산 수단에 체현된 노동(방추 등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에 대해서뿐 아니라, 방추 등의 도움으로 매일 페이즐리의 용감한 서부 스코틀랜드인들로부터 짜내는 잉여 노동에 대해서까지도 대가를 지불받을거라 망상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노동일이 2시간으로 단축되면(12시간에서 10시간으로), 방적 기계 12대의 판매 가격이 10대의 판매 가격으로 축소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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