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협업

 

자본주의적 생산은 개별 자본이 다수의 노동자를 동시에 고용하고, 노동 과정이 대규모로 이루어져 대량의 생산물을 공급하는 시점부터 본격화된다. 많은 노동자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자본가의 지휘 하에 같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형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적·개념적 토대를 구성한다. 생산 방식 자체만 놓고 보면, 초기 공장제 수공업은 동일 자본에 동시 고용된 노동자 수의 증가 외에는 길드 수공업과 큰 차이가 없으며, 사실상 길드 장인의 작업장이 확대된 형태에 불과하다.

 

처음에는 단지 양적 차이만 존재했다. 이미 확인했듯이, 특정 자본이 생산하는 잉여 가치의 총량은 개별 노동자가 산출하는 잉여 가치에 동시 고용된 노동자의 수를 곱한 값과 동일하다. 이 노동자 수는 그 자체만으로는 잉여 가치율이나 노동력의 착취도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상품 가치 일반의 생산에 있어서도 노동 과정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듯 보인다.

 

12시간의 노동일이 6원으로 대상화된다면, 1,200노동일은 6×1,200으로 대상화된다. 1,200명의 노동자가 함께 작업할 경우, 개별 노동자의 12시간 노동이 합산되어 총 12×1,200 노동 시간이 생산물에 집약된다. 가치 생산의 측면에서 볼 때, 다수의 노동자는 언제나 개별 노동자의 단순한 총합으로만 계산된다. 따라서 1,200명의 노동자가 개별적으로 생산하든, 또는 자본의 지휘 아래 통합되어 생산하든, 그 결과로 생산되는 가치의 총량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일정한 한계 내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발생한다. 가치로 대상화되는 노동은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질의 노동, 곧 평균적 노동력이 지출된다. 평균량이란 크기만 다를 뿐 종류가 같은 다수 개별량의 평균에 불과하다. 각 산업 부문에서 개별 노동자는 평균적 노동자와 다소 차이를 보인다. 수학에서 오차또는 편차라 부르는 이러한 개별적 차이는 최소한도의 노동자를 함께 고용하는 순간, 서로 상쇄되어 사라진다. 유명한 궤변가이자 아첨꾼인 버크는 자신의 차지 농업 경험을 근거로 주장한다. 5명으로 구성된 그처럼 작은 집단에서도 이미 노동에서의 모든 개인적 차이는 상쇄되어 소멸하며, 따라서 어떤 5명의 성인 농업 노동자도 동일한 시간 안에 다른 임의의 5명의 성인 농업 노동자가 수행하는 노동과 똑같은 노동을 한다.

 

동시에 고용되는 많은 노동자의 집단적 노동일을 그 노동자의 수로 나눈 값이 곧 하루의 사회적 평균 노동이다 1인 노동일이 12시간일 경우, 12명의 동시 고용 노동자의 집단적 노동일은 144시간이다. 개개인의 노동이 사회적 평균 노동과 다소 차이가 있어 동일 작업에 상이한 시간이 소요될지라도, 각 개인의 노동은 이 144시간 집단적 노동일의 1/12,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질을 갖는다. 12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본가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일은 오직 12명 전체의 노동일로만 존재한다. 각 개별 노동자의 노동일은 이들이 서로 협력하든, 단순히 동일 자본가를 위해 노동하든 관계없이 집단적 노동일의 구성 부분으로만 의미를 가진다.

 

12명의 노동자가 2명씩 나뉘어 각각 6명의 소경영주에게 고용된다면, 각 소경영주가 동일한 가치량을 생산하고 일반적 잉여 가치율을 얻게 될지는 불확실하다. 이러한 분할된 조건에서는 개별적 편차가 명확히 나타난다. 어떤 노동자가 상품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시간보다 현저히 많은 시간을 들인다면, 그의 개별 노동 시간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평균적 노동 시간)과 현저히 차이가 난다. 결과적으로, 그의 노동은 평균적 노동으로 인정될 수 없고, 그의 노동력 또한 평균적 노동력으로 평가될 수 없다.

 

이러한 노동력은 아예 팔리지 않거나 또는 노동력의 평균 가치 이하로 팔린다. 모든 노동에는 노동 능률의 일정한 최저 한도가 전제되며,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 최저 한도를 설정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성과급). 그럼에도, 이 최저 한도는 평균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자본가는 노동력에 대해 그 평균 가치를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6명의 소경영주 중 일부는 일반적 잉여 가치율보다 더 많은 것, 다른 일부는 더 적은 것을 추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균등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상쇄되지만, 개별 소경영주들에게는 그대로 남아 경제적 편차를 야기한다. 그러므로 개별 생산자에게 가치 증식의 법칙이 완전히 실현되는 일은, 그가 자본가로 생산하며 다수의 노동자를 동시에 고용하고, 그들의 노동이 집단적 성격에서 곧 사회적 평균 노동으로 간주될 때뿐이다.

 

작업 방식에 변동이 없더라도, 다수 노동자의 동시적 고용은 노동 과정의 객체적 조건에 혁명을 일으킨다.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건물, 원료 창고, 공동으로 사용하거나 번갈아 쓰는 용기, 기구, 장치 등, 생산 수단의 일부가 이제 노동 과정에서 공동으로 소비된다. 이로 인해 한편으로, 이러한 생산 수단의 교환 가치가 상승하지는 않는다. 상품의 교환 가치는 사용 가치가 더 철저하게 이용된다고 해서 높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생산 수단은 공동으로 사용되며, 이전보다 대규모로 사용된다.

 

20명의 직조공이 20대의 직조기를 사용하는 작업장은 1명의 직조공이 2명의 도제를 거느리는 작업장보다 넓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 20명을 수용하는 작업장 하나를 짓는 노동은 2명씩 수용하는 10개의 작업장을 짓는 노동보다 적게 든다. 따라서 대규모로 공동 사용하는 거대한 생산 수단의 가치는 그 규모와 유용한 효과에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는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생산 수단은 개개의 생산물에 자기 가치의 더 적은 부분을 이전한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 이 생산 수단의 총가치가 더 많은 양의 생산물에 분배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이 생산 수단은 개별적으로 사용될 때보다 절대적으로는 더 큰 가치를 가질지라도, 그 적용 범위를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더 적은 가치를 가지고 생산 과정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효과로 인해 각 상품의 총가치에 포함되는 불변 자본 일부의 가치는 저하하며, 그 저하의 크기에 비례해 상품의 총가치도 역시 저하한다. 그 경제적 효과는 상품의 생산 수단이 더 싸게 생산되는 일과 동일하다. 이러한 생산 수단 사용의 절약은 전적으로 노동 과정에서 다수 인원이 생산 수단을 공동으로 소비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이 생산 수단이 사회적 노동의 필요 조건이라는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은, 노동자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고 단순히 공간적으로 한 곳에 모여 일하는 경우에도 이루어진다. 노동 수단의 일부는 노동 과정 자체가 사회적 성격을 획득하기 이전에 벌써 이러한 사회적 성격(: 큰 건물에 많은 노동가가 모이는 일)을 획득한다.

 

생산 수단의 절약은 두 가지 관점에서 고찰해야 한다.

 

1. 절약이 상품을 값싸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노동력의 가치까지 저하시키는 측면이다.

 

2. 절약이 총 투하 자본(불변 부분과 가변 부분의 가치 총액)에 대한 잉여 가치의 비율(이윤율)을 변동시키는 측면이다.

 

이 두 번째 측면은 이 책 제3권 제1편 제5장에서 비로소 고찰한다. 또한, 여기서 다루어야 할 다른 많은 문제들 역시 서술의 적절한 내적 연관성을 위해 해당 부분으로 미룬다.

 

이러한 연구 대상의 분할은 분석 진행상 불가피하며, 동시에 자본주의적 생산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동자들은 노동 수단을 자신과 독립된 타인의 소유물로 대면한다. 이로 인해 노동 수단 사용상의 절약 역시 노동자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따라서 자신의 생산성 향상 방법과도 관련이 없는 별개의 조작으로 나타난다. 하나의 동일한 생산 과정이나 서로 다르지만 상호 연관된 생산 과정에 많은 사람이 계획적으로 함께 협력해 일하는 노동 형태를 협업이라 부른다.

 

기병 1개 중대의 공격력이나 보병 1개 연대의 방어력이 개별 군인의 능력 총합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듯, 개별 노동자들의 기계적 힘의 총계 역시 사회적 역량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동일한 불가분의 작업(: 무거운 짐을 드는 일, 윈치 회전, 장애물 제거)에 참가할 때 이 사회적 역량이 발휘된다. 이 경우, 결합된 노동의 성과는 고립된 개별 노동으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거나,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거나, 매우 작은 규모로만 달성할 수 있다. 이처럼 협업은 개인의 생산력을 높일 뿐 아니라, 집단적인 힘이라는 새로운 생산력을 창조한다.

 

다수의 힘이 하나의 총력으로 융합되는 데서 생기는 새로운 역량을 제외하고도, 대부분의 생산적 노동에서는 단순한 사회적 접촉만으로도 각 개별 노동자의 작업 능률을 증대시키는 경쟁심이나 혈기와 같은 자극이 발생한다. 그 결과, 함께 일하는 12명의 노동자는 144시간이라는 집단적 1노동일 동안, 각각 12시간씩 일하는 12명의 고립된 노동자나 12일 동안 계속 일하는 1명의 노동자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생산해 낸다. 이는 인간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적 동물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비록 다수가 동일한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에 동시적으로 협동할지라도, 각 개인의 노동은 총노동의 일부로 그 노동 과정에서 상이한 국면을 이룬다. 이로 인해 노동 대상은 협업의 결과 이 국면들을 더 빠르게 통과하게 된다. 예를 들어, 12명의 벽돌공이 벽돌을 사다리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운반하기 위해 열을 지어 선다면, 그들 각 개인은 동일한 일을 하지만, 그들 개개의 행위는 하나의 전체적인 작업의 연속된 부분을 구성한다. 곧 각자의 행위는 각 벽돌이 노동 과정에서 통과해야 할 특수한 국면들이다. 결과적으로, 벽돌은 전체 노동자에 24개의 손을 통과하면서, 각 개별 노동자가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운반할 때보다 더 빠르게 운반된다.

 

노동 대상은 동일한 거리를 더 짧은 시간 안에 통과한다. 또한, 건물을 지을 때처럼 여러 방면에서 동시에 착수하는 경우, 비록 협업하는 사람들은 이때에도 같은 작업이나 같은 종류의 작업을 수행하지만, 노동의 결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짓는 데 있어 1명의 벽돌공이 12일간(144시간) 작업하는 것보다 12명의 벽돌공이 144시간의 집단적 1노동일에 작업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그 이유는 협력해 작업하는 노동자 집단은 앞뒤로 팔과 눈을 가진 것처럼 어느 정도까지 다각적인 동시 작업 능력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물의 상이한 부분들이 동시에 완성되어 간다.

 

우리가 많은 노동자가 같은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을 수행한다는 점을 강조한 이유는, 이러한 공동 노동의 가장 단순한 형태가 협업에서 (심지어 가장 발달한 형태에서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 과정이 복잡해지면, 함께 일하는 사람이 다수라는 사실만으로도 상이한 작업을 각각의 노동자에게 배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그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되며, 결과적으로, 전체 작업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은 단축된다.

 

많은 생산 부문에는 결정적 순간(노동 과정의 성질상 규정되며 일정 성과가 달성되어야 하는 시기)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양 털 깎기나 곡물 추수처럼, 생산물의 양과 질은 이 작업이 일정한 시간 안에 시작되고 끝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경우, 노동 과정이 수행되어야 할 기간은 청어잡이의 경우처럼 미리 정해져 있다. 각 개인이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일을 창출할 수 없지만, 100명의 협업은 1노동일을 1,200시간으로 확대할 수 있다. 작업에 허용되는 기간이 짧다는 젱약은 결정적 순간에 생산 장소에 투입되는 노동의 커다란 규모로부터 보충된다. 이 경우, 제때에 작업을 마무리 짓는 것은 다수의 결합된 노동일 동시 사용에 달려 있으며, 유용한 효과의 크기는 노동자의 수로부터 결정된다. 그러나 이때 노동자의 수는 (동일한 기간에 동일한 규모의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고립된 노동자의 수보다 언제나 적다. 이런 종류의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서부에서는 매년 많은 곡물이, 그리고 영국의 통치로 옛 공동체가 파괴된 인도의 동부 지역에서는 매년 대량의 면화가 낭비되고 있다.

 

협업은 한편으로, 배수, , 관개, 운하, 도로, 철도 건설과 같이 노동 대상의 물리적 구조 자체가 요구하는 노동 과정에서는 작업을 넓은 공간에서 수행할 수 있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협업은 생산 규모를 확대하면서도 생산의 공간적 영역을 상대적으로 축소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생산 규모 확대와 동시에 노동의 공간적 범위가 축소되는 현상은 거액의 공비(空費, 간접 비용)를 절약하게 하며, 이는 많은 노동자의 밀집, 각종 노동 과정의 집합, 그리고 생산 수단의 집적에서 비롯된다.

 

결합된 노동일은 동일한 크기에 개별 노동일의 단순 합계에 비해 더 많은 양의 사용 가치를 생산하며, 결과적으로 주어진 유용 효과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을 감소시킨다. 결합된 노동일이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원인이 무엇이건, 곧 기계적 힘의 증대, 공간적 작용 범위의 확대, 생산 공간의 상대적 축소, 결정적 순간의 노동 동원, 개인의 경쟁심 자극, 같은 종류 작업의 연속성 및 다면성 부여, 서로 다른 작업의 동시 수행, 공동 사용으로부터 생산 수단 절약, 또는 개개인 노동에 사회적 평균 노동의 성격 부여 때문이건, 어떤 경우라도 결합된 노동일의 특수한 생산력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다. 이 생산력은 협업 그 자체로부터 발생한다. 다른 노동자들과 체계적으로 협력하는 노동자는 자기 개별성의 족쇄를 벗어 던지고, 자기 종족(인류)의 능력을 발전시킨다.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함께 모여야만 협력할 수 있으며, 일정한 장소에 집결하는 것이 협업의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임금 노동자는 동일한 자본가에게 동시에 고용되고, 노동력이 동시에 구매되는 경우에만 협업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들의 노동력의 총가치(하루 또는 1주일 등의 임금 총액)가 생산 과정 개시 전에 자본가의 주머니에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300명의 노동자에게 단 하루분을 지불하는데도 소수의 노동자에게 1주일에 한 번씩 1년간 지불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본 지출이 필요할 수 있다. 결국, 협업 노동자의 수(협업의 규모)는 개별 자본가가 노동력 구매에 지출할 수 있는 자본의 크기, 곧 각 개별 자본가가 다수 노동자의 생활 수단을 구매할 수 있는 정도에 의존한다.

 

이러한 자본 규모의 의존성은 가변 자본뿐 아니라 불변 자본에도 해당한다. 3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본가가 원료에 지불하는 금액은 10명을 고용하는 자본가 지출의 30배에 달한다. 공동으로 이용하는 노동 수단의 가치나 양은 노동자 수와 같은 비율로 증가하지 않더라도 현저하게 증가한다. 따라서 개별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대량의 생산 수단이 집적되는 것은 임금 노동자들의 협업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며, 협업의 범위 또는 생산의 규모는 이러한 집적의 정도에 의존한다.

 

앞 장에서 확인했듯이, 고용주를 육체 노동에서 해방하고, 소경영주에서 자본가로 전환시키며, 자본 관계를 형태적으로 성립시키려면 일정한 최소 한도의 자본액이 필수적이었다. 이제 이 최소 한도의 자본은 다수의 분산되고 상호 독립적인 노동 과정들을 하나의 결합된 사회적 노동 과정으로 전환시키는 물질적 조건으로 나타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동의 자본에 대한 종속은 처음에는 노동자가 자신이 아닌 자본가에게 노동한다는 형태적 결과에 불과했다. 그러나 많은 임금 노동자의 협업에 따라 자본의 지휘는 노동 과정 그 자체의 수행을 위한 필요 조건, 곧 생산의 현실적 조건으로 발전한다. 생산 장소에서 자본가의 지휘는 이제 전쟁터에서 장군의 지휘와 마찬가지로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대규모로 수행되는 모든 직접적인 사회적 노동 또는 공동 노동은 개인들의 활동을 조화시키고 일반적 기능(생산 유기체 전체의 운동에서 발생하는)을 수행하고자 지휘자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바이올린 독주자는 자신이 직접 지휘자가 될 수 있지만, 교향악단은 독립적인 지휘자를 필요로 한다. 지휘, 감독, 조절의 기능은 노동이 자본의 지배 아래에서 협업적으로 되자마자 곧바로 자본의 한 기능이 된다. 자본의 독자적인 기능으로 지휘 기능은 자기 자신의 특수한 성격을 획득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추진하는 동기와 규정하는 목적은 자본을 최대 한도로 증식시키는 것, , 최대의 잉여 가치를 생산하고 최대한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다. 협업하는 노동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자본의 지배에 대한 그들의 요구도 증대하며, 이 요구를 억누르기 위한 자본의 압력 또한 필연적으로 증대한다. 자본가로부터의 통제는 단순히 사회적 노동 과정의 성질에서 유래하는 특수 기능일 뿐 아니라, 동시에 이 사회적 노동 과정을 착취하는 기능이며, 따라서 착취자와 그의 착취 대상(노동자) 사이의 불가피한 적대 관계에 뿌리를 둔다.

 

타인의 소유물로 임금 노동자와 대립하는 생산 수단의 규모가 증대함에 따라, 생산 수단이 적절하게 사용되도록 효과적으로 통제할 필요성도 커진다. 더욱이 임금 노동자들의 협업은 전적으로 그들을 고용하는 자본으로부터 발생한다. 노동자들 스스로는 그들을 단일의 생산체로 통일시키거나 개별 기능들 사이에 관련을 형성할 능력이 없다. 이는 그들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그들을 모아 함께 일하도록 만든 자본의 행위에 속한다. 따라서 그들의 다양한 노동 사이의 상호 관련은 관념적으로는 자본가의 계획으로, 실무적으로는 노동자들의 활동을 자본가의 목적에 종속시키는 권위(타인의 강력한 의지)로 노동자들과 대립한다. 그래서 자본가의 지휘는 그 내용에서 이중의 성격을 갖는다. 그가 지휘하는 생산 과정 자체가 생산물의 생산을 위한 사회적 노동 과정인 동시에 자본의 가치 증식 과정이라는 이중의 성격 때문이다. 자본가의 지휘는 그 형식상 독재적이다. 협업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이 독재 또한 특유한 형태들을 발전시킨다. 자본가는 자신의 자본이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을 개시할 최소 한도에 도달하자마자, 먼저 육체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개별 노동자 및 노동자 집단에 대한 직접적이고 끊임없는 감독 업무를 특수한 종류의 임금 노동자들에게 위임한다.

 

군대가 장교와 하사관을 필요로 하듯, 동일 자본의 지휘 아래 있는 산업 노동자 집단 역시 노동 과정 중에 자본의 이름으로 지휘할 장교(지배인)와 하사관(십장, 감시자)을 필요로 한다. 이들에게 감독 업무가 전문적인 기능으로 확정된다. 경제학자들은 분산된 농민이나 독립적 수공업자의 생산 방식과 노예 제도를 비교할 때, 노예 제도의 감독 노동을 생산상의 공비로 계산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을 고찰할 때는 이와 달리, 집단적 노동 과정의 성질에서 발생하는 지휘 기능과 노동 과정의 자본주의적·적대적 성격에서 필요해지는 감독 기능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 산업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자본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본가이기 때문에 산업의 지도자가 된다. 봉건 시대에 장군이나 판사의 기능이 토지 소유의 속성이었던 것처럼, 이제산업의 지도 기능은 자본의 속성으로 확립된다.

 

노동자는 자기 노동력의 판매 계약을 체결할 때까지는 그 노동력의 소유자이며, 그는 오직 자신이 소유한 개인적이고 고립된 노동력만을 판매할 수 있다. 자본가가 1명의 노동력이 아닌 100명의 노동력을 구입하고,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100명의 노동자와 개별적으로 계약을 체결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상황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자본가는 이 100명의 노동자를 협업시키지 않고도 일을 시킬 수 있다. 자본가는 100명의 독립적인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는 것이지, 100명의 결합된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독립한 인격으로 노동자들은 제각각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자본가와 관계를 맺을 뿐 자기들 서로 간에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협업은 노동 과정에서 비로소 시작되며, 그때에는 이미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동 과정에 편입되자마자 그들은 자본에 흡수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협업하는 사람으로, 또는 하나의 활동적인 유기체의 구성원으로 노동자들은 자본의 특수한 존재 양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협업에서 발휘하는 생산력은 자본의 생산력으로 간주된다.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은 노동자들이 일정한 조건 아래 놓일 때마다 무상으로 발휘되는데, 자본은 바로 이 조건을 조성한다. 이 사회적 생산력은 자본에게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 것이며, 노동자의 노동이 자본에 속하기 전에는 노동자 자신으로부터 발휘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생산력은 자본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또는 자본에 내재하는 생산력으로 나타난다. 단순 협업의 엄청난 효과는 고대 아시아, 이집트, 에트루리아인 등이 건설한 거대한 건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이 아시아 국가들은 행정비와 군사비를 충당하고도 생활 수단의 잉여를 가졌으며, 이를 호화로운 건축물이나 유용한 토목 공사에 활용할 수 있었다. 그 국가들은 거의 모든 비농업 인구의 노동을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그 위력을 과시하는 거대한 기념물들을 건설할 수 있었다. 비옥한 나일강 유역은 수많은 비농업 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을 생산했으며, 왕과 승려가 소유하던 식량은 국토 전역에 거대한 기념비들을 세울 수단을 제공했던 것이다. 거대한 석상과 대량의 자재가 운송된 것은 그 자체로 불가사의하며, 이는 거의 전적으로 인간 노동의 아낌없는 사용으로부터 이뤄졌다. 이러한 공사에는 수많은 일꾼들과 그들의 노력의 집중만으로 충분했다. 거대한 산호초가 바다 깊은 곳에서 솟아 섬이나 육지가 되는 과정에서 개개의 침전물이 보잘것없는 것에 지나지 않듯, 아시아 왕국의 비농업 일꾼들은 개인적인 육체적 힘 외에 공사에 기여할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들의 수가 곧 그들의 힘이었다. 그리고 이 큰 무리들을 지휘하는 권력이 오늘날까지 남아 우리를 놀라게 하고 황홀하게 만드는 궁전, 사원, 피라미드, 거대한 석상들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종류의 사업은 일꾼들을 먹여 살릴 만한 소득이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현될 수 있었다.’

 

아시아와 이집트의 왕들 그리고 에트루리아의 승려들이 가졌던 이와 같은 지휘 권력은 근대 사회에서는 자본가에게로 이양되었다. 여기서 자본가가 개별 자본가로 등장하든, 또는 주식 회사처럼 집단적 자본가로 등장하든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인류 문명의 초기 수렵 민족이나 인도 공동체의 농업에서 볼 수 있는 노동 과정의 협업은,

 

1. 생산 조건의 공동 소유에 기반을 둔다.

 

2. 개개인이 씨족 또는 공동체의 탯줄을 끊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기반을 둔다.

 

이러한 두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이 협업은 자본주의적 협업과 구별된다. 고대, 중세 및 근대 식민지에서 때때로 이용된 대규모 협업은 직접적인 지배와 예속의 관계(대부분의 경우 노예 제도)에 기반을 두었다. 이와 달리, 자본주의적 형태의 협업은 처음부터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자신의 노동력을 자본에 판매하는)를 전제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적 협업은 소농민적 경영과 독립적 수공업(길드 형태 여부와 무관하게)에 대립하며 발전한다. 소농민과 수공업자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적 협업이 협업의 특수한 역사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협업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에서 특유하고 독특한 역사적 형태로 나타난다.

 

협업으로부터 발휘되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 자본의 생산력으로 나타나듯이, 협업 그 자체도 분산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자나 소경영주가 수행하는 생산 과정과 대립하며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에서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현실의 노동 과정이 자본에 종속될 때 경험하는 최초의 변화이며, 이 변화는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난다. 동일한 노동 과정에 많은 임금 노동자를 동시에 고용하는 것이 이 변화의 전제 조건이자 자본주의적 생산의 출발점이다. 이 출발점은 자본 자체의 출현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은 노동 과정을 사회적 과정으로 전환시키고자 역사적으로 필요한 조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 과정에서 이러한 사회적 형태는 자본이 노동의 생산력을 높여 노동을 더 유리하게 착취하는 방법이다.

 

위에서 분석한 단순 형태의 협업은 모든 대규모 생산의 필연적 부수물이다. 하지만 단순 협업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특수한 발전 단계를 특징짓는 고정된 형태는 아니다. 단순 협업이 대략이나마 이러한 형태로 나타났던 것은 공장제 수공업의 초기 단계와, (주로 동시 고용 노동자 수와 생산 수단 집적의 규모로 농민 경영과 구별되는) 대규모 농업에서였다. 자본이 큰 규모로 사용되지만, 분업과 기계가 아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생산 부문에서는 단순 협업이 언제나 지배적인 형태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단순 협업은 더욱 발전된 형태들과 나란히 하나의 특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협업은 언제나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기본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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