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사회주의 문헌

 

 

1. 반동적 사회주의

 

 

가) 봉건적 사회주의

 

 

프랑스와 영국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위상으로 인해 오늘날의 유산 계급 사회에 대항하는 격문을 집필할 소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1830년 프랑스 7월 혁명과 영국의 선거법 개혁 운동에서 그들은 졸부 세력에게 다시금 패배하였다. 이에 따라 실질적인 정치 투쟁의 가능성은 소멸하였으며, 그들에게 국한된 영역은 오직 문필적 투쟁뿐이었다.

 

그러나 문필의 영역에서조차 왕정 복고 시대의 낡은 미사여구는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귀족들은 인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권익은 안중에 없이 가장해야 했으며, 오로지 착취받는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여 유산 계급을 성토하는 형식을 취해야만 했다. 그러한 방식으로 그들은 실추된 명예 만회를 도모하였고, 새로운 지배자를 비방하는 풍자시를 읊조리며 지배자의 귓가에 불길한 파멸의 경고를 속삭였다.

 

봉건적 사회주의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성립하였다. 그것은 절반의 장송곡과 절반의 비방문, 절반의 구시대에 대한 복고적 절규와 절반의 도래할 위협이 뒤섞인 기묘한 산물이었다. 때로는 그 통렬하고 해학이 깃든, 폐부를 찌르는 선고로 유산 계급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으나, 고질적으로는 당대 역사의 거대한 행보를 파악하는 데 있어 철저한 불능으로 인해, 종국에는 언제나 조소 섞인 잔상만을 자아낼 뿐이었다.

 

귀족들은 인민을 자신들의 뒤로 포섭하기 위해, 무산 계급의 구걸 주머니를 깃발 삼아 흔들었다. 그러나 인민은 그들의 뒤를 따를 때마다, 귀족들의 등 뒤에 새겨진 낡은 봉건적 문장들을 목격하고서는 불손한 비웃음을 터뜨리며 흩어졌다.

 

프랑스의 정통 왕조파 일부와 ‘청년 영국파’가 이러한 희극적 소동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봉건 영주들은 자신들의 착취 방식이 유산 계급적 착취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변하나, 이는 단지 자신들이 시대착오적이며 이제는 사멸한 조건 아래에서 착취를 자행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일 뿐이다. 또한 자신들의 치하에서는 오늘날의 무산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내세우나, 정작 오늘날의 유산 계급이야말로 자신들이 구축했던 사회 체제의 필연적인 후손이라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게다가 봉건적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가하는 비판의 반동적 성격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 유산 계급을 겨냥해 퍼붓는 주된 비난은, 유산 계급의 지배 아래에서 종래의 사회 체제 전체를 전복할 위험한 계급이 양성되고 있다는 점에 골자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봉건 영주들이 유산 계급을 비난하는 진정한 이유는 단순히 무산 계급을 생산했기 때문이 아니라, 체제를 전복할 혁명적 무산 계급을 양성했다는 점에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정치적 실천에 있어서 노동 계급을 탄압하는 모든 폭력적 방책에 가담한다. 그러면서도 생활 속에서는 자신들이 내뱉었던 모든 고결한 맹세들을 비웃으며 자본의 황금 사과를 보듬기에 여념이 없다. 신의, 사랑, 존엄이라는 가치들을 양모, 사탕무, 그리고 독주의 거래라는 파렴치한 이권 사업과 거리낌 없이 맞바꾸고 있다.

 

종교 세력이 언제나 봉건 영주와 결탁해 왔듯이, 종교적 사회주의 또한 봉건적 사회주의와 행보를 같이한다.

 

종교적 금욕주의에 사회주의적 색채를 덧칠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 종교 역시 사적 소유와 결혼, 그리고 국가에 끊임없이 반대해오지 않았던가. 그들은 그 공백을 자선과 구걸, 독신과 금욕, 은둔 생활과 교단에 대한 굴종으로 채울 것을 설교해왔다. 결국 종교적 사회주의란, 종교 계급이 지배 계급의 광기 어린 가슴에 뿌려주는 아편에 불과하다.

 

 

나) 소시민적 사회주의

 

 

봉건 귀족은 유산 계급의 타격으로 몰락하고, 오늘날의 유산 계급 사회에서 그 생존을 위협받으며 사멸해가는 유일한 계급이 아니다. 중세의 성외 시민층과 소농민층이야말로 오늘날 유산 계급의 전신들이었다. 산업과 상업의 발전이 정체된 국가들에서 이들 계급은 새롭게 부상하는 유산 계급의 틈바구니 속에서 여전히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오늘날의 체제가 고도로 발달한 국가들에서는 새로운 소시민층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무산 계급과 유산 계급 사이를 부유하며 유산 계급 사회의 부속적 부분으로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러나 그 계급 구성원들은 치열한 경쟁에 밀려 부단히 무산 계급의 대열로 전락하고 있다. 그 결과 대공업이 팽창함에 따라, 그들은 자신들이 현대 사회의 독자적인 일원으로서 완전히 소멸하고 상업, 산업, 농업 분야에서 노동 감시원들이나 임금 노동자들로 대체될 시점과 직면하고 있다.

 

농민 계급이 인구의 절반을 훨씬 상회하는 프랑스와 같은 국가들에서는, 유산 계급에 맞서 무산 계급의 진영에 선 문필가들이 유산 계급의 지배를 비판할 때 소시민적 및 소농민적 척도를 들이대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소시민 계급의 관점에 서서 노동자들을 대변했으며, 이러한 기반 위에서 소시민적 사회주의가 형성되었다. 시스몽디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이러한 문헌을 이끄는 수장이다.

 

소시민적 사회주의는 현대 생산 관계에 내재한 모순들을 매우 날카롭게 해부하였으며, 경제학자들의 기만적인 변명들을 낱낱이 폭로하였다. 기계 도입과 분업이 초래한 파괴적 작용, 자본과 토지 소유의 집적, 과잉 생산과 공황, 소시민과 소농민의 필연적 몰락은 물론, 무산 계급의 빈곤과 생산의 무정부성, 부의 극심한 분배 불평등을 반박의 여지 없이 증명해 보였다. 나아가 국가 간의 산업적 섬멸전, 낡은 도덕, 낡은 가족 관계, 그리고 낡은 민족성의 해체 등을 명백히 입증하였다.

 

그러나 그 실천적인 내용의 측면에서 볼 때, 이 사회주의는 낡은 생산 수단과 교통 수단, 그리고 그에 수반된 낡은 소유 관계와 사회 질서를 복구하려 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현대의 거대한 생산 수단과 교통 수단들을 이미 해체되었고 또 해체될 수밖에 없는 낡은 소유 관계의 굴레 속에 억지로 다시 끼워 맞추려 할 뿐이다. 어느 경우든 소시민적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반동적이며 동시에 공상적이다.

 

제조업에서의 동업 조합 (길드) 제도와 농촌의 가부장적 경제, 이것이 이 사회주의의 남긴 마지막 유언이다.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이 세력은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만시지탄의 늪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다) 독일 사회주의 또는 ‘진정한’ 사회주의

 

 

지배 계급인 유산 계급의 억압 속에서 발흥하였으며 그 지배에 맞선 투쟁의 문필적 표현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문헌은, 독일 유산 계급이 봉건 절대주의에 대항한 투쟁을 비로소 시작하려던 시기에 독일로 수입되었다.

 

독일의 지식인 계급은 이 문헌에 열렬히 매달렸다. 그러나 그들은 프랑스의 저작들이 유입될 때 프랑스의 구체적인 사회적 토대까지 함께 옮겨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독일의 낙후된 상황과 마주한 프랑스의 문헌은 직접적인 실천적 동력를 상실한 채 관념적인 형태만을 띠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인간적 본질의 실현’에 관한 추상적 논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18세기 독일 철학자들에게 제1차 프랑스 혁명의 요구는 단지 ‘실천적 판단력’의 일반적 요구라는 추상적 의미에 불과했다. 당시 프랑스 유산 계급의 의사 표명 또한 그들의 해석 체계 내에서는 ‘절대적 결단’, 곧 규범적으로 지녀야 할 ‘주체적 실천 준칙’의 법칙으로만 간주되었을 뿐이다.

 

독일 문필가들의 주된 활동은 새로운 프랑스 사상을 자신들의 낡은 철학적 의식과 매개시키거나, 더 정확히는 자신들의 철학적 관점에 맞추어 프랑스 사상을 전유하는 데 있다.

 

이러한 자기화는 외국어를 전유하는 과정과 부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곧, 이는 번역을 매개로 수행되었으며, 이로부터 프랑스 사상을 자기화하려 했다.

 

수도사들이 고대 다신교의 원전이 기록된 필사본 위에 임의적인 성인전을 표제로 덧씌웠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독일 문필가들은 이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세속적인 프랑스 문헌을 다루었다. 그들은 프랑스 원문 아래에 자신들의 철학적 궤변을 끼워 넣었다. 예컨대 화폐 관계에 대한 경제적 비판 뒤에는 ‘인간 본질의 소외’라는 문구를 써넣었고, 유산 계급 국가에 대한 정치적 비판 뒤에는 ‘추상적 보편성 지배의 지양’ 등의 현학적인 어구들을 덧붙였다.

 

프랑스의 실천적 담론 밑에 이러한 철학적 미사여구들을 자의적으로 끼워 넣는 행위에 대해, 그들은 ‘행동의 철학’,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주의의 독일적 과학’, ‘사회주의의 이론적 토대’ 등등의 거창한 수사적 외피를 입혔다.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문헌은 문자 그대로 무력화되었다. 독일인의 수중에서 이 문헌은 더 이상 한 계급의 투쟁을 대변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 결과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프랑스의 일면성’을 극복했다고 자부하기에 이르렀다. 곧 구체적 역사적 요구들을 대변하는 대신에 ‘추상적 진리 추구’를, 무산 계급의 이해관계 대신 인간 본질과 추상적 인간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고 믿었다. 그들이 규정하는 인간이란 어느 계급에도 속하지 않으며, 역사적 현실이 아닌 오직 철학적 착각의 안개 자욱한 영역 속에만 존재하는 사상적 유령일 뿐이었다.

 

자신의 설익은 학문적 지적 유희를 그토록 진지하고 엄숙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그렇게 요란하게 떠벌리던 이 독일의 사회주의는,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속물적인 순진무구함을 점차 잃어갔다.

 

당시 독일 유산 계급이 봉건 세력들과 절대 왕정에 맞서 벌인 투쟁, 곧 자유주의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더욱 심각한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한’ 사회주의에는 그토록 갈망하던 기회, 곧 그 정치적 운동에 자유주의 운동에 맞서 사회주의적 요구들을 대립시키며, 자유주의, 대의제 국가, 유산 계급적 경쟁, 유산 계급적 언론의 자유, 유산 계급적 법, 유산 계급적 자유 및 평등에 유산 계급의 지배가 가져올 해악을 성토하며 인민 민중을 상대로 이러한 유산 계급 운동에서는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피력할 기회가 제공되었다.

 

그러나 독일 사회주의는 프랑스의 비판적 문헌들이 현대 유산 계급 사회와 그에 걸맞은 물질적 생활 조건 및 그에 부합하는 정치 체제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곧 독일의 상황은 아직 이러한 전제 조건들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단계에 머물러 있었음에도, 그들은 독일 유산 계급이 봉건 세력에 대항해 막 시작한 투쟁에 대고 프랑스식 비판을 무분별하게 쏟아냈다. 결국 이 사회주의는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유산 계급 사회를 겨냥하여 화살을 돌리는 시대착오적 우를 범한 것이다.

 

독일 사회주의는 위협적으로 부상하던 유산 계급에 견제하는 효과적인 꼭두각시가 되어, 종교 세력과 관제 학자들, 지방 귀족들 (융커들) 및 행정 관료들을 거느린 독일 절대주의 정부들에 부역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사회주의는 독일 절대주의 정부들이 노동자들의 봉기를 진압하며 휘둘렀던 가혹한 채찍과 총알 뒤에 곁들여진, 기만적이고 감미로운 보완물에 불과하였다.

 

이와 같이 ‘진정한’ 사회주의가 유산 계급에 대항하는 독일 정부들의 수중에 있는 무기로 전락했을 때, 이 사회주의는 또한 반동적 이해관계, 곧 소시민층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대변하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16세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소시민 계급이 여러 형태로 부단히 재등장하며, 현존하는 사회 체제의 실질적인 토대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시민 계급을 존속하는 것은 곧 현존하는 독일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같다. 유산 계급의 산업적·정치적 지배는 자본의 집적을 가속화하는 한편, 혁명적 무산 계급을 결집시킨다. 이 이중적인 압박 속에서 소시민 계급은 자신들의 필연적인 몰락에 직면하며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한’ 사회주의는 소시민 계급에게 일거양득의 해법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진정한’ 사회주의는 전염병처럼 사회 전반으로 급격히 확산되었다.

 

사변의 거미줄로 짜고 수려한 수사학적 미사여구들로 수놓았으며, 유약한 정서의 이슬로 적신 화려한 외피, 바로 자신들의 보잘것없고 빈약한 ‘불변의 명제들’을 치장하기 위해 걸친 이 허항된 외피는, 민중 사이에서 그들 상품의 판매고를 올리는 데 기여했을 뿐이다.

 

독일 사회주의는 이 소시민층을 대변하는 희떠운 대변자로서의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급기야 스스로를 독일 국민의 진정한 전형으로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독일 국민을 모범적인 국민이라고 단언하였고, 소시민을 인간의 전형으로 선포하였다. 그들은 독일 소시민의 저열한 행태마다 그 본래의 의미와는 정반대되는 심원하고 고상한 사회주의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그 실체를 왜곡하였다.

 

마침내 독일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의 ‘투박하고 전복적인’ 노선에 정면으로 맞서며, 자신들이야말로 모든 계급 투쟁을 도외시하여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초연한 존재임을 선전하였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현재 독일에서 유통되는 이른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문헌의 태반은 모두 이러한 추악하고 무기력한 부류에 속한다.

 

 

2. 보수적 또는 유산 계급 사회주의

 

 

유산 계급의 일각은 유산 계급 사회의 존속을 공고히하기 위하여 사회적 폐해를 시정하고자 한다.

 

이 부류에는 경제주의자, 박애주의자, 인도주의자, 노동 계급 조건 개선론자, 자선 사업가, 동물 학대 철폐론자, 금주 운동가 등 온갖 종류의 좀스러운 개혁가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형태의 유산 계급 사회주의는 심지어 하나의 완전한 체계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프루동의 저작 『빈곤의 철학』을 든다.

 

사회주의적 유산 계급들은 현대 사회의 생활 조건들을 원하되,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투쟁과 위험 요소들은 배제되기를 갈망한다. 곧, 그들은 현존 사회를 원하면서도 그 사회를 변혁하고 전복시키는 혁명적 요소들이 제거된 상태를 꿈꾸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상적인 사회란 ‘무산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유산 계급만의 사회’이다. 유산 계급은 물론 자신들이 지배하는 세계를 최상의 세계라고 확신하며, 유산 계급 사회주의는 이러한 위안 섞인 관념을, 반쪽이든 완결적이든, 체계화하여 하나의 완성된 이론으로 구축한다.

 

유산 계급 사회주의가 무산 계급에게 자신들의 체계를 실현하고 ‘새로운 이상향’으로 동참할 것을 요구할 때, 사실상 그 실질적인 이면에는 무산 계급이 현 체제 내에 안주하며 머물되, 지배 계급에 대한 적의와 원한만을 버리기를 바라는 기만이 깔려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회주의의 더 실천적이며 덜 체계적인 또 다른 형태는, 노동 계급으로 하여금 모든 혁명적 운동을 거부하게 만드는 데 주력한다. 그들은 정치적 변혁이 아니라 오직 물질적 생활 조건, 곧 경제적 상태의 변동만이 실질적인 실리를 줄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물질적 조건의 변화란, 오직 혁명적 방식으로만 이룩되는 유산 계급적 생산 관계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현존하는 이 생산 관계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행정적 수선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개선은 자본과 임금 노동의 관계에는 어떠한 근본적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 채, 기껏해야 유산 계급의 지배 비용을 절감하고 국가 운영을 간소화하는 수준에 머무를 뿐이다.

 

유산 계급 사회주의는 그것이 단순한 ‘수사적 외피를 두를 때만’ 비로소 그 가장 본질에 부합하는 면모를 드러낸다.

 

노동 계급의 실리를 위한 자유 무역!

 

노동 계급의 실리를 위한 보호 관세!

 

노동 계급의 실리를 위한 독방 감옥!

 

이것이 바로 유산 계급 사회주의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자, 그들이 ‘진정으로’ 내뱉는 유일한 구호다.

 

유산 계급 사회주의는 오로지 ‘유산 계급이 유산 계급인 것이 노동 계급의 실리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요약된다.

 

유산 계급 사회주의의 본질은 결국 유산 계급은 노동 계급의 실리를 위해서만 유산 계급으로서 존재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3. 폭로적·공상적 사회주의

 

 

바뵈프 등의 저작과 같이, 모든 오늘날의 대혁명에서 무산 계급의 요구를 대변했던 문헌은 여기서 논외로 한다.

 

전반적인 격동의 시대이자 봉건 사회 해체기였던 당시,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직접 관철하려 했던 무산 계급의 초기 시도들은 필연적으로 좌초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무산 계급 자체가 미성숙한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무산 계급 해방을 위한 물질적 조건 또한 오직 유산 계급 시대의 산물로서만 형성될 수 있었기에 당시에는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기 무산 계급 운동을 수반했던 혁명적 문헌들은 그 내용 면에서 반동적 성격을 띠었다. 그것은 무차별적인 금욕주의와 원시적인 평등주의를 고취하는 데 머물렀다.

 

생시몽, 푸리에, 오웬 등이 정립한 본래의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체계는 무산 계급과 유산 계급 사이의 투쟁이 충분히 고도화하지 못한 초기 시기에 출현하였다.

 

이러한 체계들의 창시자들 역시 계급 간의 대립과 지배적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해체적 요소들의 작용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산 계급을 목도하면서도, 이 계급이 지닌 독자적인 역사적 주체성이나 고유한 정치 운동의 실천적 역량을 도출해내지 못하였다.

 

계급 모순의 전개 양상은 산업의 발전 수준에 따라 규정되므로, 그 초기 단계에서 불충분하게 형성된 물질적 토대 위에서 활동한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무산 계급 해방에 필요한 객관적 조건을 현실에서 도출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조건을 주체적·의식적으로 마련하고자 사회 과학과 사회 법칙을 규명하는 데 몰두하였다.

 

그 결과, 사회적 실천은 개인의 주관적인 구상으로 전락하였고, 해방을 위한 역사적 조건은 객관적 법칙이 결여된 주관적인 공상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역사적 발전에 따라 전개되는 무산 계급의 계급 조직화 대신,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고안한 사회 조직을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그들에게 있어 다가올 역사의 과정이란 결국 자신들이 설계한 사회적 기획을 선전하고 실천적으로 이행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노동 계급의 이해관계를 기치로 내걸고, 이들을 가장 고통받는 계급이자 연대할 대상이라 규정한다. 곧, 그들에게 무산 계급이란 역사적 변혁을 이끄는 혁명 주체가 아니라, 오직 구제의 대상인 ‘가장 고통받는 계급’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계급 투쟁의 미성숙한 형태와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열악한 생활 조건으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이 모든 계급 대립을 완전히 초연한 존재라고 간주하였다. 그들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생활 조건을, 심지어 최상층의 조건까지도 무차별적으로 개선하고자 시도한다. 따라서 계급적 구분 없이 사회 전체에, 아니 그중에서도 특히 지배 계급에 대고 끊임없이 호소하기에 이른다.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체계를 이해하기만 하면, 그것이 이상 사회를 위한 최선의 청사진임을 수용하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정치적 행동, 특히 모든 혁명적 행동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들은 대신 비폭력적인 수단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며,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소규모의 시도들, 곧 선례가 지니는 정당성을 빌려 새로운 사회적 공상을 유포할 경로를 구축하려 시도한다.

 

도래할 사회에 대한 이러한 공상적 서술은 무산 계급이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여 자신의 처지를 관념적으로 파악하던 시기에, 사회의 전반적 변혁을 예견하며 표명한 초기의 맹목적인 지향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문헌은 비판적 요소 또한 담고 있다. 이들은 현존 사회의 모든 토대를 비판하며, 노동 계급을 의식화하는 데 매우 가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

 

도래할 사회에 관한 그들이 제시하는 적극적인 명제들, 예컨대 도시와 농촌의 대립 해소, 가족·사적 영리·임금 노동 등의 폐지, 사회적 조화의 선언, 그리고 국가의 역할을 단순한 생산 통제 기구로 전환한다는 주장 등은 모두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계급 대립의 사멸을 표방한다. 당시의 계급 대립은 오직 추상적이고 막연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기에, 계급 대립의 청산을 표현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명제들 역시 필연적으로 공상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폭로적·공상적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가 지니는 역사적 의의는 사회 발전이 거듭될수록 점차 상쇄되는 양상을 보인다. 계급 투쟁이 격화되어 명확하고 구체적인 형태를 확립해 갈수록, 투쟁을 이렇게 관념적으로 도피하거나 주관적으로 무마하려는 그들의 태도는 결국 모든 실천적 근거와 이론적 정당성을 상실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이 체계의 창시자들이 비록 혁명적이었다 할지라도, 그 제자들은 매번 반동적 분파를 형성하게 된다. 그들은 무산 계급의 역사적으로 지속해서 발전함에도 스승들의 낡은 견해만을 고수한다. 그 결과 그들은 시종일관 계급 투쟁을 무력화하고 대립을 중재하는 데 급급하며, 여전히 개별적인 ‘팔랑스테르’ 건립이나 ‘홈 콜로니’ 창설, ‘소 이카리아’ 같은 사회적 이상향의 모색만을 꿈꾼다. 이러한 공상적인 보루를 구축하기 위해 그들은 결국 유산 계급의 박애주의와 재정적 부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직면한다.

 

그들은 결국 앞서 다룬 반동적·보수적 사회주의자들과 다를 바 없는 계급적 한계 내로 전락하게 되며, 단지 더 체계화된 현학적 논리나 자신들이 구축한 사회 과학의 절대적 효력을 추종하는 공상적 맹신에 의존해서만 겨우 그들과 구분될 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동자들의 모든 정치적 운동을 격렬히 반대한다. 그들의 관점에서 노동자들의 계급 행동이란, 오직 자신들이 유포하는 새로운 사회적 공상에 대한 맹목적 거부에서 기인한 이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대에서 영국의 오웬주의자들은 차티스트 운동에 저항하고, 프랑스의 푸리에주의자들은 ‘수정주의자’들과 대치되는 노선을 견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Ⅱ. 무산 계급과 공산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은 무산 계급 전체와 어떠한 관계에 서 있는가.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노동자 정당들과 대립하는 특수한 정당이 결코 아니다.

 

이들은 무산 계급 전체의 이해관계와 분리된 별개의 이해관계라고는 갖고 있지 않다.

 

또한 이들은 무산 계급의 운동을 가두기 위한 어떠한 종파적인 원칙도 내세우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오직 다음과 같은 점들에서만 다른 무산 계급 정당들과 구별된다.

 

첫째, 무산 계급의 여러 국가적 투쟁에 있어 국적에 관계없이 무산 계급 전체의 공동 이해를 제기하고 관철한다는 점이다.

 

둘째, 무산 계급과 유산 계급 사이의 투쟁이 거치는 여러 발전 단계에서 항상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으로 각국의 노동자 정당 중 가장 단호하며, 언제나 운동을 추동하는 선봉이다. 이들은 이론적으로는 무산 계급 운동의 조건과 진행, 및 그 일반적 결과에 대하여 여타 무산 계급 다수 성원들보다 앞선 선견지명을 갖춘다.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목적은 다른 모든 무산 계급 정당들의 그것과 동일하다. 그것은 바로 무산 계급을 하나의 계급으로 형성하는 것, 유산 계급의 지배를 전복하는 것, 그리고 무산 계급이 정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이론적 명제들은 결코 이러저러한 세계 개량가들이 고안하거나 찾아낸 이념이나 원리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 명제들은 다만 현존하는 계급 투쟁의 실제 관계들, 곧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는 역사적 운동의 양상을 일반적으로 정식화한 것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존재해 온 소유 관계들을 폐지한다는 사실 그 자체는 공산주의만의 고유한 특징이 아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모든 소유 관계는 끊임없는 교체와 변천을 거쳐 왔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은 유산 계급적 소유를 확립하기 위해 봉건적 소유를 폐지하였다.

 

이처럼 공산주의를 규정하는 것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바로 유산 계급적 소유의 폐지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유산 계급적 사적 소유는 계급 대립, 곧 한 계급이 주도하는 다른 계급들의 착취에 근거하는 생산물 생산 및 전유 양식의 마지막이자 가장 완성된 형태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사적 소유의 폐지이다.

 

사람들은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스스로 노동하여 얻은 소유를 폐지하려 한다며 비난해 왔다. 곧, 개인의 자유와 활동, 자립성의 기초가 되는 그러한 소유를 말이다.

 

노동으로 얻은 소유, 곧 스스로 벌어들인 정당한 소유라고! 당신들은 유산 계급적 소유에 앞서 존재했던 소시민적, 소농민적 소유를 두고 말하는 것인가. 우리는 그러한 소유를 폐지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미 공업의 발전이 그것을 폐지해 왔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나날이 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들은 현대의 유산 계급적 사적 소유를 두고 말하는 것인가.

 

그러나 과연 임금 노동, 곧 무산 계급의 노동은 이들에게 소유를 가져다주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무산 계급의 노동은 자본을 창출한다. 말하자면 임금 노동을 착취하는 소유를 만들어 내며, 이는 새로운 착취를 위해 다시 임금 노동을 투입한다는 조건하에서만 증식하는 소유를 낳을 뿐이다. 소유는 그 오늘날의 형태에 있어서는 자본과 임금 노동이라는 적대적 대립 속에서 운동한다. 이제 이 대립의 두 측면을 고찰해 보자.

 

자본가가 된다는 것은 생산 체계 내에서 단순히 개인적인 위상을 갖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위상을 점유함을 의미한다. 자본은 결코 홀로 형성될 수 없는 공동의 생산물이며, 수많은 구성원의 공동 활동이 뒷받침되어야만, 나아가 사회 모든 성원의 총화에 기초해서만 가동될 수 있다.

 

이처럼 자본은 결코 개인적 힘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힘인 것이다.

 

따라서 자본이 사회의 모든 성원에게 속하는 공동 소유로 전환된다고 해서, 그것이 개인적 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소유가 가졌던 종래의 사회적 성격만이 변할 뿐이다. 곧, 소유는 특정 계급에 귀속되었던 그 계급적 성격을 상실한다.

 

이제 임금 노동에 대해 분석해 보자.

 

임금 노동의 평균 가격은 임금의 최소치, 곧 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생존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 수단 총액이다. 따라서 임금 노동자가 자신의 활동으로 전유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생존을 재생산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는 노동 생산물에 대한 이러한 개인적 전유, 곧 타인의 노동을 지배할 만한 어떠한 순익도 조금도 남기지 않는 생존을 위한 전유를 결코 철폐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폐지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전유의 비참한 성격이다. 곧, 노동자가 자본을 증식시키기 위해서만 생존하며,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가 요구하는 한계 내에서만 생존을 영위해야 하는 그러한 전유의 비참한 성격을 폐지하려고 할 뿐이다.

 

유산 계급 사회에서 살아 있는 노동은 축적된 노동 (자본)을 증식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에서 축적된 노동은 노동자들의 생활 과정을 넓히고 풍요롭게 하며 고양하는 수단일 뿐이다.

 

이처럼 유산 계급 사회에서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현재가 과거를 지배한다. 유산 계급 사회에서는 자본이 자립적이며 개성을 갖는 반면, 활동하는 개인은 비자립적이며 몰개성적이다.

 

그러나 유산 계급은 이러한 관계의 폐지를 두고 개성과 자유의 폐지라 강변한다! 그들의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옳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유산 계급적 개성, 유산 계급적 자립성, 유산 계급적 자유의 폐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산 계급적 생산 관계 아래에서 자유란 자유로운 상업, 곧 자유로운 매매를 의미한다.

 

그러나 매매 자체가 소멸하면 자유로운 매매 또한 존재할 수 없다. 자유로운 매매에 관한 온갖 미사여구는 자유에 관한 유산 계급의 다른 모든 호언 장담과 마찬가지로, 지난날 중세의 결박된 거래나 예속된 시민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지만, 매매의 공산주의적 폐지, 나아가 유산 계급적 생산 관계와 유산 계급 그 자체의 공산주의적 폐지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당신들은 우리가 사적 소유를 폐지한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그러나 당신들의 현존 사회에서 그 사회 구성원의 10분의 9는 이미 사적 소유를 박탈당한 상태다. 모순적이게도, 사적 소유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이들 10분의 9에게 소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당신들은 우리가 사회의 압도적 다수의 무소유를 필수 조건으로 삼는 소유 형태를 폐지하려 한다며 우리를 비난하고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당신들은 우리가 당신들의 소유를 폐지하려 한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렇다. 물론 우리는 정확히 그것을 목표하고 있다.

 

당신들은 노동이 더 이상 자본이나 화폐, 지대로, 곧 독점할 수 있는 사회적 힘으로 전화할 수 없게 되는 그 순간부터, 다시 말해 개인적 소유가 더 이상 유산 계급적 소유로 전화할 수 없게 되는 그 순간부터 개인이 소멸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당신들은 개인을 유산 계급, 곧 유산 계급적 소유자 이외의 그 누구로도 이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의 개인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한다.

 

공산주의는 사회적 생산물을 전유할 권능을 그 누구로부터도 박탈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전유를 수단 삼아 타인의 노동을 자신에게 예속시키는 권력을 박탈할 뿐이다.

 

사람들은 사적 소유가 폐지되면 모든 활동이 마비되고 전반적인 나태가 만연할 것이라 강변해 왔다.

 

그 논리가 옳다면, 유산 계급 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나태 때문에 붕괴했어야 마땅하다. 그 사회에서는 노동하는 자들이 소유하지 못하고, 소유하는 자들은 노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우려는 자본이 사라지면 임금 노동 또한 사라진다는 지극히 당연한 동어 반복에 불과하다.

 

물질적 생산물의 공산주의 전유 및 생산 양식에 가해지는 모든 반론은 정신적 생산물의 전유와 생산 영역에까지 확장되어 있다. 유산 계급에게 계급적 소유의 종말이 곧 생산 자체의 종말을 의미하듯, 계급적 사상의 소멸 또한 사상 그 자체의 소멸과 동일하게 간주된다.

 

그들이 그 상실을 애석해하는 그 정신이란, 압도적 다수에게 있어서는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기 위한 훈련에 불과하다.

 

자유, 정신, 법 등 당신들의 유산 계급적 관념을 척도 삼아 사적 소유의 폐지를 재단하려거든 더 이상 우리와 논쟁하지 말라. 당신들의 법률이란 당신네 계급의 의사를 법률로 명문화한 것에 불과하고, 그 의사의 실질적 내용은 당신네 계급의 물질적 생활 조건으로부터 규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들의 이념 또한 유산 계급적 생산 관계와 소유 관계의 산물일 뿐이다.

 

당신들의 생산 관계와 소유 관계를, 일시적이고 역사적인 관계가 아니라 영구불변의 자연 법칙이자 이성 법칙으로 둔갑시키는 그 이기적 관념은 이미 몰락한 모든 지배 계급이 답습했던 착각이다. 고대적 소유나 봉건적 소유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역사적으로 사멸할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유산 계급적 소유에 대해서는 그 필연적인 종말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가족의 폐지! 공산주의자들의 이 파렴치한 발상 앞에서는 가장 극단적인 급진주의자들조차 격분한다.

 

오늘날의 유산 계급적 가족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자본에, 사적 이윤에. 이러한 형태의 가족은 오직 유산 계급 내에서만 완성된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이는 무산 계급이 처한 부득이한 가족 해체 상태와 공공연한 매춘 속에서 그 보완물로 필연적으로 귀결된다.

 

유산 계급의 가족은 당연히 그 보완물의 제거와 함께 사라지며, 이 둘은 자본의 사멸과 함께 종말을 고한다.

 

우리가 부모가 자행하는 자녀 착취를 근절하려 한다고 우리를 비난하는가. 그것이 죄라면, 우리는 기꺼이 그 죄를 시인하겠다.

 

또한 당신들은 우리가 가정 교육을 사회 교육으로 전환하여 가장 지고한 인간관계들을 말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묻노니, 당신들의 교육 또한 사회가 규정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당신들의 교육은 당신들이 교육을 행하는 그 사회적 관계들로부터, 그리고 사회의 직접적·간접적인 개입으로부터 규정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공산주의자들은 교육에 대한 사회의 개입을 새롭게 고안해 내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개입의 성격을 변화시켜, 교육을 지배 계급의 영향으로부터 구출해 내려는 것뿐이다.

 

대공업의 발전으로 인해 무산 계급의 가족적 유대가 파편화될수록, 어린이들이 단순한 상품이나 노동 도구로 전락할수록, 가족, 교육, 부모 자녀 간의 화목한 관계 등을 들먹이는 유산 계급의 미사여구는 더욱 역겨운 기만에 다름없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은 아내를 공동 소유하려 한다!’라고 유산 계급 전체가 입을 모아 이같이 외친다.

 

유산 계급은 자신의 아내를 단순한 생산 도구로만 간주한다. 따라서 생산 도구가 공동으로 이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듣게 되면, 여성들 또한 그러한 공동 소유의 처지에 놓일 것이라고밖에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유산 계급은 한낱 생산 도구로 취급받는 여성들의 지위를 폐지하는 것이야말로, 본질적인 쟁점이라는 사실을 전혀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공산주의자들이 이른바 ‘공식적 아내 공유제’를 도입하려 한다며 유산 계급이 내보이는 저 고상한 도덕적 전율만큼 조소를 자아내는 것도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아내 공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유산 계급은 공공연한 매춘은 차치하고라도, 무산 계급의 아내와 딸들을 거리낌 없이 농락하는 것에 성에 차지 않아, 서로의 아내를 탐하는 것을 주된 유희로 삼고 있다.

 

실상 유산 계급적 결혼은 사실상 이미 ‘아내 공유제’나 다름없다. 그들이 기껏해야 공산주의자들에게 퍼부을 수 있는 비난이라곤, 고작해야 기만적으로 은폐된 아내 공유제 대신 공식적이고 숨김없는 아내 공유제를 도입하려 한다고 비난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재의 생산 관계가 폐지되면, 그 체제에서 파생된 아내 공유제, 곧 공식적·비공식적 매춘 역시 필연적으로 소멸할 것임은 분명하다.

 

다음으로 공산주의자들은 조국과 국적을 철폐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그들로부터 빼앗을 수는 없다. 무산 계급은 우선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해야 하며, 국가적 계급으로 부상하여 스스로를 민족 주체로 정립해야 하기에, 비록 유산 계급이 정의하는 의미와는 다를지라도 아직은 그 자체로 여전히 국가적 성격을 띤다.

 

인민 간의 국가적 분립과 대립은 이미 유산 계급의 발달, 상업의 자유, 세계 시장의 형성, 공업 생산과 그에 따른 생활 양식의 균질화 등으로 인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무산 계급의 지배는 이러한 민족 간의 분립과 대립을 더욱 가속화하여 소멸시킬 것이다. 적어도 선진 문명국들 사이의 단결된 행동은 무산 계급 해방을 위한 최우선 조건 중 하나이다.

 

한 개인의 다른 개인에 대한 착취가 종식되는 정도에 비례하여, 한 국가의 다른 국가에 대한 착취 또한 종식된다.

 

한 국가 내의 계급 모순이 해소됨과 함께, 민족 간의 적대적 관계 역시 막을 내린다.

 

종교적, 철학적, 사상적, 이념적 관점에서 공산주의에 제기되는 여타의 비난들은 더 이상 상세히 논할 가치조차 없다.

 

인간의 생활 상태와 사회적 관계, 곧 사회적 존재가 변화함에 따라 인간의 관념, 관점, 개념, 한마디로 의식 또한 변화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무슨 심오한 식견이 필요하단 말인가.

 

사상의 역사는 정신적 생산이 물질적 생산의 변화에 수반하여 변모된다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증명하고 있단 말인가. 어느 시대든 지배적 사상은 늘 지배 계급의 사상이었을 뿐이다.

 

사회 전체를 혁명으로 변혁하는 사상에 대한 논의는, 단지 구체제 내에서 새로운 사회의 요소들이 형성되었다는 사실, 구사상의 해체가 낡은 생활 관계의 해체와 행보를 같이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뿐이다.

 

고대 세계가 몰락할 무렵 고대 종교들은 기독교에 굴복했다. 18세기 기독교 사상이 계몽 사상에 무릎을 꿇었을 때, 봉건 사회는 당시 혁명적이었던 유산 계급과 사활을 건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양심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라는 사상 또한, 다만 지식의 영역에서 자유 경쟁의 지배를 대변했을 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물론 종교적, 도덕적, 철학적, 정치적, 법적 사상 등이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변화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 도덕, 철학, 정치, 법 그 자체는 이러한 변천 속에서도 언제나 유지되었다.

 

나아가 자유나 정의 등과 같이 모든 사회적 상태에 통용되는 영구불멸의 원칙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이러한 불멸의 원칙들을 새로이 형상화하는 대신 아예 철폐한다. 공산주의는 종교와 도덕을 새로이 재구축하는 대신 그것들을 아예 철폐한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적 발전 과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비난의 본질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대립 내에서 전개되어 왔으며, 이러한 대립은 시대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형태가 무엇이든 간에, 사회의 일부분이 다른 일부를 착취해 왔다는 사실은 지나간 모든 세기에 보편된 현상이다. 따라서 모든 세기의 사회적 의식이 그토록 천차만별하고 다채로웠음에도, 일정한 공통의 형태 안에서 움직여 왔다는 점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의식 형태들은 계급 대립이 완전히 소멸한 뒤에야 비로소 완전히 해체될 수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은 구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소유 관계와의 가장 철저한 단절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혁명이 발전 과정에서 구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사상들과 가장 철저하게 결별하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이제 공산주의에 대한 유산 계급의 반론은 이만 그만두기로 하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동자 혁명의 첫걸음은 무산 계급이 혁명 주도 계급의 지위로 올라서 정치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다.

 

무산 계급은 이러한 정치적 지배권을 활용하여 유산 계급으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차례 박탈하고, 모든 생산 도구를 국가의 수중, 곧 지배 계급으로 조직된 무산 계급의 손에 집중시킬 것이며, 따라서 생산력의 총량을 최대한 신속히 증대시키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초기 단계에서 사적 소유권과 유산 계급적 생산 관계에 대한 전제적인 침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비록 이러한 조치들이 경제적으로는 불충분하거나 불안정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변혁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돌파하여 생산 양식 전체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다만 이러한 구체적 방책들은 각국의 실정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선진적인 국가들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들이 거의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1. 토지 소유의 몰수와 지대의 국가 경비 충당.

 

2. 고율의 누진세 부과.

 

3. 상속권의 폐지.

 

4. 모든 망명자 및 반역자의 재산 압류.

 

5. 국가 자본과 배타적 독점권을 가진 국립 은행에 기초한 국가 수중으로의 신용 집중.

 

6. 운송 수단의 국가 수중 집중.

 

7. 국영 공장과 생산 도구의 확충, 공동 계획에 의거한 토지 개간 및 개량.

 

8. 모두에게 동등한 노동 과업 부여 및 산업 대열 편성, 특히 농업을 위한 산업 대열 편성.

 

9. 농업과 공업의 결합 및 도시와 농촌 간 격차의 점진적 해소.

 

10. 모든 아동에 대한 공공 무상 교육 실시, 현행 방식의 아동 공장 노동 폐지, 교육과 물질적 생산의 통일 등.

 

발전 과정 속에서 계급적 차이들이 소멸되고 모든 생산이 연합된 개인들의 수중에 집중되면, 공권력은 그 정치적 성격을 상실하게 된다. 본래 의미의 정치 권력이란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한 계급의 조직된 폭력이다. 무산 계급이 유산 계급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필연적으로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되고, 혁명으로 스스로를 혁명 주도 계급으로 정립하고, 또 지배 계급으로서 낡은 생산 관계들을 혁명적으로 폐기하게 된다면, 이들은 이 생산 관계들과 아울러 계급 모순의 존립 조건들과 계급 일반을 폐기하게 될 것이고, 또 결과적으로 계급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지배도 폐기하게 된다.

 

그리하여, 계급과 계급 대립으로 점철된 낡은 유산 계급 사회를 대신하여,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하나의 연합체가 등장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Ⅰ.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장인과 직인, 요컨대 억압자와 피억업자는 적대하는 대립 관계 속에서 서로 마주하였다. 이들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해 왔으며, 이러한 투쟁은 매번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번혁되거나 투쟁하는 계급들이 동반 몰락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역사적 시대마다 우리는 사회가 예외 없이 각종 신분으로 철저히 분화되어 있었음을, 곧 사회적 지위가 여러 위계로 세분되어 있었음을 목격한다. 고대 로마에는 귀족, 기사, 평민, 노예가 존재하였고, 중세에는 봉건 영주, 가신, 장인, 직인, 농노가 있었으며, 이들 계급 내에는 거의 어디에나 또 다른 특수한 계급적 질서가 존재하였다.

 

봉건 사회의 몰락으로부터 출현한 오늘날 유산 계급 사회는 계급 대립을 폐지하지 못하였다. 이 사회는 다만 새로운 계급, 새로운 억압 조건, 그리고 새로운 투쟁 형태들을 낡은 것들과 바꿔 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 곧 유산 계급 시대는 계급 대립을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특수성을 지닌다. 사회 전체가 두 개의 거대한 적대 진영으로, 곧 서로 직접 대치하는 두 개의 커다란 계급인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으로 더욱 명백히 양분되고 있다.

 

중세 농노로부터 초기 도시의 성외 시민이 출현하였으며, 이 성외 시민층으로부터 유산 계급의 초기 요소들이 발전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진출과 아프리카 항로의 개척은 부상하는 유산 계급에게 새로운 활동 무대를 제공하였다. 동인도 및 중국 시장, 아메리카의 식민지화, 식민지와의 교역, 그리고 교환 수단과 상품 총량의 증대는 상업, 해운, 공업에 전례 없는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붕괴해 가던 봉건 사회 내의 혁명적 요소가 급격히 발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종래의 봉건적 공업 생산 방식, 곧 동업 조합 (길드) 체제는 새로운 시장의 개척과 함께 급증한 수요를 더 이상 충당할 수 없었다. 그 자리를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이 대신하였으며, 길드의 장인들은 공업 중간 계급에 밀려났다. 서로 다른 조합 간의 분업은 개별 작업장 내의 분업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시장은 끊임없이 팽창했고 수요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제 공장제 수공업조차 더 이상 충분하지 않게 되자, 증기와 기계가 공업 생산의 혁명을 일으켰다. 공장제 수공업의 자리에 거대한 대공업이 들어섰으며, 공업 중간 계급이 차지했던 자리는 공업 대자본가들, 곧 거대한 공업 군대의 사령관인 오늘날의 유산 계급이 차지하게 되었다.

 

대공업은 아메리카 대륙의 진출로 기틀이 마련된 세계 시장을 창출하였다.

 

세계 시장의 형성은 상업, 해운, 육상 교통 분야에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이 같은 발전은 다시 공업의 확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공업·상업·해운·철도가 확장되는 속도에 발맞추어 유산 계급 또한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들은 자본을 증식시키는 한편, 중세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모든 계급을 사회의 주변부로 밀어내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유산 계급 자체가 오랜 발전 과정의 산물이며, 생산 및 교류 양식에서 일어난 일련의 변혁이 낳은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유산 계급의 이러한 각각의 발전 단계에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발전이 수반되었다. 봉건 영주의 지배하에서는 피억압자 신분이었고, 코뮌에서는 무장 자치 단체였으며, 어떤 곳에서는 독립적인 도시 공화국으로, 또 다른 곳에서는 군주국의 납세 의무를 지닌 제3신분으로 존재하였다. 이후 공장제 수공업 시대에는 신분제 군주국이나 절대 군주국에서 귀족에 맞서는 대항 세력이자 대국가 체제의 핵심적 기초가 되었다. 마침내 대공업과 세계 시장이 형성된 이후, 유산 계급은 지금의 대의제 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하였다. 오늘날의 국가 기구란 유산 계급 전체의 공동 과업을 관장하는 하나의 집행 위원회에 불과하다.

 

유산 계급은 역사 속에서 지극히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지배권을 장악한 곳에서 유산 계급은 모든 봉건적인, 가부장적인, 목가적인 관계를 여지없이 파괴하였다. 그들은 인간을 타고난 상전에게 묶어 두었던 다채로운 봉건적 유대들을 무자비하게 끊어 버렸으며, 인간과 인간 사이에 적나라한 이해관계와 냉혹한 ‘현금 타산’ 외에는 그 어떤 끈도 남겨두지 않았다. 신앙적 광신, 기사도적 열광, 속물적 감상주의 등이 자아내던 성스러운 경외심은 이기적 타산이라는 차디찬 얼음물 속에 잠기게 했다. 유산 계급은 인간의 존엄을 교환 가치로 해체해 버렸으며, 문서로 보장되거나 정당하게 쟁취한 수많은 자유를 단 하나의 파렴치한 상업적 자유로 대체하였다. 한마디로 그들은 종교적, 정치적 허구 속에 은폐되어 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도 무미건조한 착취로 치환시킨 것이다.

 

유산 계급은 지금까지 권위의 대상이자 초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모든 직종에서 그 도덕적 배경을 걷어냈다. 그들은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들을 자신들에게 고용된 유급 임금 노동자로 전락시켰다.

 

유산 계급은 가족 관계를 감싸고 있던 심금을 울리는 정서적 외피를 벗겨내고, 이를 순전한 금전 관계로 치환해 버렸다.

 

유산 계급은 반동 세력이 중세에 그토록 찬미했던 야만적인 힘의 과시가 어떻게 나태하기 짝이 없는 게으름뱅이 생활과 결탁해 있었는지를 폭로하였다. 그들은 인간의 활동이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지를 최초로 증명해 보였다. 유산 계급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로마의 수로, 고딕 양식의 성당과는 완전히 범주가 다른 위업을 성취하였으며, 집단 이주나 십자군 원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개척을 수행하였다.

 

유산 계급은 생산 도구와 생산 관계, 나아가 사회 관계 전반에 부단한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 없다. 반면 이전의 산업 계급들에게는 재래식의 생산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제1의 존립 조건이었다. 생산의 부단한 혁명, 모든 사회 상태의 지속적인 불안정, 항구적인 불확실성과 격변은 유산 계급 시대를 이전의 모든 시대와 구별하는 특징이다. 고착화된 모든 관계는 오랫동안 절대화되어 온 관념 및 견해들과 함께 해체되며, 새로이 형성된 모든 것들조차 정착되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 버린다. 모든 위계적인 것과 고정된 것은 증발하고, 불가침의 모든 것은 모독당한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마침내 자신의 생활 조건과 상호 관계를 냉철한 시각으로 직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생산물의 판로를 부단히 확장하려는 동인은 유산 계급을 전 지구상으로 내몬다. 그들은 도처에 뿌리를 내려야 하며, 어디에서든 정착하고 연계를 맺어야만 한다.

 

유산 계급은 세계 시장을 개척함에 따라 모든 국가의 생산과 수요를 전 지구적인 체제로 재편하였다. 반동 세력에게는 개탄할 일이나, 유산 계급은 공업의 발밑에서 토착적 토대를 제거해 버렸다. 전래의 역사를 지닌 국가적 공업들은 파멸하였거나 나날이 몰락하고 있다. 이러한 노후한 공업들은, 그 도입이 모든 선진 국가의 사활이 걸린 새로운 공업으로 인하여 밀려나고 있다. 새로운 공업은 이제 현지의 원료가 아닌 원거리 지대의 원료를 가공하며, 그 상품은 자국 내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대륙에서 동시에 소비된다. 국산품으로 충족되던 종래의 수요 대신, 멀리 떨어진 국가와 지리적 특성의 생산물을 요구하는 새로운 수요들이 등장한다. 종래의 지역적·국가적 자급자족과 폐쇄성의 자리에는 국가 간의 전면적인 교류와 상호 의존이 들어선다. 이는 물질적 생산뿐만 아니라 정신적 생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별 국가의 정신적 산물은 인류 공동의 재산이 된다. 국가적 단편성과 협착성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며, 수많은 국가적·지역적 문학으로부터 하나의 ‘세계 문학’이 형성된다.

 

유산 계급은 모든 생산 수단의 급속한 개선과 비약적으로 고도화된 교통 수단을 매개로, 가장 낙후된 민족들까지도 체제 속으로 끌어들인다. 유산 계급이 내세우는 저렴한 상품 가격은, 모든 폐쇄적 장벽을 무너뜨리고 외국인에 대한 낙후된 민족들의 완강한 거부 반응마저 무력화시키는 핵심 병기이다. 그들은 모든 민족에게 멸망하지 않으려거든 자신들의 생산 양식을 도입하라고 강요한다. 곧 이른바 체제를 받아들일 것, 다시 말해 스스로 유산 계급이 될 것을 압박한다. 한마디로 유산 계급은 자신의 형상대로 세계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유산 계급은 농촌을 도시의 지배 아래 복속시켰다. 그들은 거대 도시들을 건설하고 농촌 인구 대비 도시 인구의 비중을 비약적으로 높임에 따라, 인구의 상당 부분을 농촌 생활의 단절과 낙수성으로부터 견인해 내었다. 유산 계급이 농촌을 도시에 종속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미개발 및 저개발 국가들은 선진국에, 농업 민족들은 유산 계급 민족에, 동양은 서양에 의존하게 되었다.

 

유산 계급은 생산 수단과 소유 및 인구의 분산 상태를 점진적으로 타파한다. 그들은 인구를 밀집시키고 생산 수단을 집약시켰으며, 소유를 소수의 손에 집적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집중이 초래한 필연적 결과는 정치적 중앙 집권이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법률, 상이한 정부와 관세 체계를 가진 채 오직 느슨한 동맹 관계로만 결속되어 있던 독립적인 지역들이 하나의 국민, 하나의 정부, 하나의 법률, 하나의 국가적 계급 이해관계, 단일한 관세 구역을 갖춘 통합된 국가로 결집하였다.

 

유산 계급은 백 년도 채 되지 않는 계급 지배 기간 동안, 선행하는 모든 역사적 주기를 합친 것보다 더 방대하고 거대한 생산력을 창출하였다. 자연력의 정복, 기계 장치의 도입, 공업 및 농업에 대한 화학의 응용, 증기전 항해, 철도, 전신, 전 대륙의 개간, 하천의 운하화, 사실상 땅 밑에서 솟아난 듯한 방대한 인구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거대한 생산력이 사회적 노동의 기저에서 잠자고 있었다는 것을 선행하는 어느 역사적 단계가 예견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규명하게 된다. 유산 계급 형성의 토대가 된 생산 수단과 교류 수단은 봉건 사회 내에서 마련되었다. 이 생산 및 교류 수단이 일정 발전 단계에 도달하자, 생산과 교환을 작동시키던 기존의 관계들, 농업과 제조업의 봉건적 조직과 봉건적 소유 관계는 이미 고도화된 생산력에 더 이상 부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소유 관계는 생산을 촉진하기는커녕 오히려 저해하는 족쇄로 전락하였다. 결국 그것들은 마땅히 타파되어야 했으며, 마침내 타파되었다.

 

그 자리를 대신하여 자유 경쟁과 그에 부합하는 사회적·정치적 제도, 곧 유산 계급의 경제적·정치적 지배가 등장하였다.

 

오늘날 우리 눈앞에서도 이와 동일한 양상의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강력한 생산 및 교류 수단을 가공할 기술로 불러낸 오늘날의 유산 사회는, 이제 자신이 수단으로 불러낸 통제권 밖의 힘을 더 이상 제어할 수 없게 된 운용자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 지난 수십 년간의 공업과 상업의 역사는 당대의 생산 관계, 곧 유산 계급의 생존과 지배의 기초인 소유 관계에 대한 오늘날의 생산력의 저항 역사에 다름 아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며 유산 사회 전체의 존립을 더욱 위협하는 상업 공황이 그 명백한 증거이다. 공황이 닥치면 생산된 생산물뿐만 아니라 이미 구축된 생산력의 상당 부분까지도 파괴된다. 이 시기에는 선행하는 모든 시대에 논리적 불가로 보였을 사회적 연쇄 오류, 곧 ‘과잉 생산’이라는 연쇄 오류가 확산한다. 사회는 갑자기 일시적인 무질서 상태로 퇴행한 듯 보이며, 물적 결핍과 전면적인 파괴전이 사회로부터 모든 생활 수단을 앗아가 공업과 상업이 완전히 기능 정지된 듯한 형국이 된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사회가 너무 많은 문명과 생할 수단, 과도한 공업과 상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가용한 생산력은 더 이상 유산 계급의 소유 관계를 촉진하는 데 복무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력은 이러한 관계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강력해졌으며, 기존의 소유 관계는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생산력이 이 장애물을 돌파하려는 순간 유산 사회 전체는 무질서에 빠지며, 유산 계급 소유의 존립 자체가 무력화된다. 유산 계급 생산 관계는 스스로 창출한 막대한 부를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협착해진 것이다. 유산 계급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 공황을 타개하는가. 한편으로는 거대한 생산력을 강제로 파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기존 시장을 더욱 철저히 착취하는 방식으로 이를 관철한다. 결국 이는 더욱 폭넓고 강력한 공황을 예비하며, 방지할 수단마저 스스로 소진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유산 계급이 봉건제를 타도할 때 사용했던 무기들이 이제는 유산 계급 자신을 겨누고 있다.

 

그러나 유산 계급은 자신에게 파멸을 가져올 무기들을 주조했을 뿐만 아니라, 그 무기를 휘두를 주체인 오늘날의 노동자, 곧 무산 계급 또한 탄생시켰다.

 

유산 계급, 곧 자본이 발전함에 따라 오늘날의 노동 계급인 무산 계급도 함께 양산된다. 이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때만 생존할 수 있으며, 자신들의 노동이 자본을 증식시키는 한에서만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스스로를 조각내어 팔아야만 하는 이 노동자들은 여느 품목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이며, 경쟁의 모든 파동과 시장의 모든 변동에 고스란히 종속되어 있다.

 

무산 계급 노동은 기계 장치의 확대와 분업의 심화로 인해 모든 자립적 성격을 잃게 되었으며, 그 결과 노동자에게 주는 모든 유인을 상실하였다. 무산 계급은 이제 가장 단순하고 기계적이며 숙달하기 수월한 동작만을 요구받는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였다. 따라서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비용은 거의 생계를 유지하고 종족을 번식시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 수단으로 국한된다. 상품의 가격, 곧 노동 가격은 그 생산 비용과 일치하기에, 노동의 고역이 가중될수록 임금은 하락한다. 나아가 기계 도입과 분업이 확대됨에 따라 노동 시간의 연장, 정해진 시간 내 요구되는 노동 강도의 강화 또는 기계 운전 속도의 가속 등으로 노동의 총량 또한 가파르게 증가한다.

 

현대적 공업은 가부장적인 장인의 소규모 작업장을 산업 자본가의 거대한 공장으로 재편했다. 공장에 밀집된 노동자 집단은 군대식 편제로 조직된다. 이들은 산업 군단의 병사로서 하사관과 장교들로 구성된 철저한 위계적 감시 체제 아래 놓인다. 이들은 유산 계급과 유산 국가의 노예일 뿐만 아니라, 매일 매시간 기계와 감독관, 그리고 무엇보다 개별 공장주인 유산 계급으로부터 예속된다. 이러한 전제 정치는 영리 추구가 그 유일한 목적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낼수록, 더욱 비열하고 가증스러우며 가혹한 성격을 띠게 된다.

 

육체 노동이 숙련도와 완력을 덜 요구하게 될수록, 곧 현대적 공업이 발전할수록 남성 노동은 여성 노동으로 대체된다. 성별과 연령의 차이는 노동 계급에게 더 이상 어떠한 사회적 유효성 지니지 않는다. 기껏해야 단지 연령과 성별에 따라 그 활용 비용이 각기 다른 노동 도구로서 존재할 뿐이다.

 

공장주로부터 노동자 착취가 일단락되어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을 화폐로 지불받고 나면, 유산 계급의 또 다른 성분인 곧 집주인, 소매상, 전당포 업자 등이 그에게 달려든다.

 

종래의 소중간층, 곧 소공업가, 소상인, 소액 금리 생활자, 수공업자 및 농민 등과 같은 이 모든 계급들은 점차 무산 계급으로 전락한다. 이는 일부는 그들의 취약한 자본이 대공업을 운용하기에 불충분하여 거대 자본가들과의 경쟁에서 퇴출되기 때문이며, 일부는 그들이 보유한 기술적 숙련이 새로운 생산 양식 앞에서는 무가치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무산 계급은 인구의 모든 계급으로부터 끊임없이 충원된다.

 

무산 계급은 여러 발전 단계를 경과한다. 유산 계급에 대립하는 이들의 투쟁은 계급의 존립과 함께 시작된다.

 

초기에는 개별 노동자가, 그 다음에는 특정 공장의 노동자들이, 나아가 한 지역의 특정 부문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직접 착취하는 개별 유산 계급에 대항하여 투쟁을 전개한다. 노동자들은 공격의 대상을 단순히 유산 계급 생산 관계에 한정하지 않고 생산 수단 그 자체로 확대한다. 이들은 경쟁 관계에 있는 외국 상품을 파괴하고, 기계를 부수며, 공장에 불을 지름으로 이미 몰락해버린 중세 노동자의 지위를 되찾으려 시도한다.

 

이 단계에서 노동자들은 전국에 걸쳐 산재해 있으며, 상호 경쟁으로 인해 파편화된 집단을 형성한다. 노동자들의 집단적 결속은 아직 이들 자신의 자발적 단결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유산 계급의 단결에 기인한 산물이다. 유산 계급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산 계급 전체를 동원해야만 하며, 또 아직 당분간은 그것이 유효한 상태에 있다. 따라서 이 시기의 무산 계급은 자신의 직접적인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적의 적 곧 절대 군주제의 잔재, 토지 소유자, 비산업 유산 계급, 그리고 소시민과 투쟁한다. 결과적으로 역사적 운동의 모든 주도권은 유산 계급의 손에 집중되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쟁취한 모든 승리는 곧 유산 계급의 승리가 된다.

 

그러나 공업의 발전에 따라 무산 계급은 단순히 수적으로만 증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더 거대한 집단으로 집결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자신의 힘을 점차 자각하게 된다. 기계화가 점점 더 노동의 격차를 소멸시키며 임금을 거의 모든 곳에서 동일하게 낮은 수준으로 저하시킴에 따라, 무산 계급 내의 이해관계와 생활 조건은 더욱 균등해진다. 유산 계급 사이의 격화되는 경쟁과 그로 인한 상업 공황은 노동자의 임금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며, 끊임없이 지속되는 급격한 기계의 개선은 노동자의 생활 지위 전반을 동요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개별 노동자와 개별 유산자 사이의 충돌은 점차 두 계급 간의 충돌이라는 성격을 띠게 된다. 노동자들은 유산 계급에 대항하여 결사체를 조직하는 일부터 시작하며, 임금을 수호하기 위해 단결하여 행동한다. 나아가 이들은 일시적인 봉기에 대비하여 상설 단체까지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 투쟁은 곳에 따라 격렬한 충돌로 분출되기도 한다.

 

노동자들은 때때로 승리하지만, 그 승리는 단지 일시적일 뿐이다. 투쟁의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전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날로 확대되는 노동자들의 단결에 있다. 이러한 단결은 대공업이 창출한 교통 수단의 발전에 힘입어 서로 다른 지역의 노동자들이 상호 접점을 맺으며 촉진된다. 그런데 이 접점이 확립되면 어디서나 동일한 성격을 띠던 수많은 지역적 투쟁들은 하나의 전국적 투쟁, 곧 하나의 계급 투쟁으로 결집한다. 그리고 모든 계급 투쟁은 곧 정치 투쟁이다. 중세 시민들이 열악한 도로 체계 아래서 수세기에 걸쳐 이룩했던 단결을, 철도를 보유한 오늘날의 무산 계급은 불과 몇 년 만에 달성한다.

 

무산 계급이 계급으로, 나아가 정당으로 조직화되는 과정은 노동자 상호 간의 경쟁으로 인해 끊임없이 와해된다. 그러나 이 조직화는 매번 다시 더욱 강력하고 견고하며 위력적인 모습으로 재건된다. 또한 이들은 유산 계급 내의 분열을 활용하여 노동자의 개별적 이익을 법률적 형태로 관철하도록 강제한다. 영국의 10시간 노동법 제정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반적으로 구체제 내의 충돌은 무산 계급의 발전 과정을 다각도로 촉진한다. 유산 계급은 끊임없는 투쟁의 각축장에 놓여 있다. 곧 초기에는 귀족에 대항하였고, 이후에는 공업의 발달과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가진 유산 계급 내부 세력과 충돌하며, 나아가 모든 해외의 유산 계급과 상시적으로 투쟁한다. 이 모든 투쟁 과정에서 유산 계급은 무산 계급에게 호소하며 이들의 원조를 구하고, 결국 그들을 정치 운동의 전면으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유산 계급은 무산 계급에게 자신들이 누리던 정치적 요소들, 곧 훗날 자신들을 겨누게 될 무기를 스스로 제공하는 셈이다.

 

더욱이 산업의 발달로 인해 지배 계급의 상당수 구성원들이 무산 계급으로 전락하거나, 적어도 그들의 생활 조건 전반을 위협받게 된다. 또한 이들 역시 무산 계급에게 방대한 정치적 요소들을 수혈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계급 투쟁이 결전을 앞둔 시기에 이르면, 지배 계급 내부와 구체제 전체를 관통하는 해체 과정이 매우 격렬하고 첨예한 양상을 띠게 된다. 이에 따라 지배 계급의 일부가 대열에서 이탈하여 혁명 계급, 곧 미래를 거머쥔 계급의 편에 가담하기에 이른다. 그러한 까닭에 일찍이 귀족의 일부가 유산 계급에게 넘어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는 유산 계급의 일부, 특히 역사적 운동 전반의 이론적 이해에 도달한 유산 계급 지식인들 중 일부가 무산 계급 진영으로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유산 계급에 대립하는 모든 계급들 중에서 오직 무산 계급만이 참으로 혁명 계급이다. 여타 계급들은 대공업의 발전과 함께 쇠퇴하고 몰락한다. 그러나 무산 계급은 대공업의 가장 본질적인 산물이다.

 

소공업자, 소상인, 수공업자, 농민 등과 같은 이들 모두는 중간 계급으로서의 존립을 몰락으로부터 지켜 내기 위하여 유산 계급과 투쟁한다. 따라서 이들은 혁명적이기보다 보수적이며, 나아가 반동적이다.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고 한다. 이들이 혁명적 면모를 보인다면, 그것은 곧 자신들이 무산 계급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임박한 필연을 직시하는 한에서일 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현재의 이익이 아닌 장래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며, 따라서 무산 계급의 관점을 수용하기 위해 그들 자신의 본래적 입장을 스스로 포기하기에 이른다.

 

룸펜 계급 (부랑 계급), 곧 구체제 최하층에서 발생하는 이 수동적인 부패물은 때때로 무산 계급 혁명 과정에서 운동에 가담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전반적인 생활 조건으로 인해 반동적 음모에 매수되는 쪽을 훨씬 선호한다.

 

구체제의 생활 조건은 무산 계급의 생활 조건 속에서 이미 철저히 파괴되었다. 무산 계급에게는 소유한 재산이 없으며, 아내와 자식들과의 관계 또한 유산 계급 가족 관계와는 더 이상 어떠한 공통점도 지니지 않는다. 영국과 프랑스, 아메리카와 독일에 이르기까지 자본에 예속된 현대의 공업 노동은 무산 계급에게서 모든 민족적 성격을 박탈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법률, 도덕, 종교 등은 그 배후에 유산 계급의 이해관계를 은닉하고 있는 허울 좋은 편견들에 불과하다.

 

지배권을 획득했던 이전의 모든 계급은 사회 전체를 자신들의 영리 조건에 복속시킴에 따라 이미 확보한 생활 조건에 따른 지위를 보전하고자 했다. 무산 계급은 자신들의 기존 전유 양식, 나아가 모든 전유 양식 자체를 폐지함에 따라 비로소 사회적 생산력을 장악할 수 있다. 무산 계급에게는 보존해야 할 자기 소유의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모든 사적 안전과 보장 장치들을 파괴해야만 한다.

 

역사가 증명하는 모든 운동은 소수의 운동이었거나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운동이었다. 반면 무산 계급 운동은 압도적 다수의 이익을 위해 압도적 다수가 전개하는 주체적인 운동이다. 현 사회의 최하층인 무산 계급은 공식 사회를 구성하는 계급들의 상부 구조물 전체를 폭파하여 공중으로 날려 보내지 않고서는 결코 일어설 수도, 허리를 펼 수도 없는 것이다.

 

유산 계급에 맞서는 무산 계급 투쟁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국제적이나, 외견상으로는 우선 일국적인 양상을 띤다. 각국의 무산 계급은 당연히 맨 먼저 자국의 유산 계급을 타도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무산 계급 형성 과정의 가장 일반적인 단계들을 고찰함에 따라, 현 사회 내부의 다소간 은폐된 내전의 과정을 추적하였다. 이 내전이 공개적인 혁명으로 분출되고, 무산 계급이 유산 계급을 혁명적 수단으로 전복하여 자신의 지배권을 확립하는 지점에 이르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규명한 것이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는 억압 계급과 피억압 계급의 대립에 기초해 왔다. 그러나 특정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서는 피억압 계급이 적어도 노예적 생존이나마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보장되어야 한다. 봉건 시대의 농노는 농노제라는 예속 안에서도 코뮌 성원의 지위로 나아갔으며, 소시민은 봉건적 전제주의의 굴레 아래에서도 유산 계급으로 부상해 갔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날의 노동자는 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지위가 상승하기는커녕, 자신의 생존 조건 이하로 끊임없이 침몰하고 있다. 노동자는 빈민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빈곤은 인구와 부의 증가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상의 사실에서 유산 계급이 더 이상 사회의 지배 계급으로 군림할 수 없으며, 사회에 자신들의 생활 조건을 규제적 법칙으로서 강요할 능력이 없음이 분명해진다. 유산 계급은 무산 계급 (피지배 계급)에게 노예 상태의 생존조차 보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부양받는 대신 유산 계급이 무산 계급을 부양해야만 하는 처지로 무산 계급을 몰아넣고 있기 때문에 지배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사회는 더 이상 유산 계급의 지배 아래 존속할 수 없다. 곧, 유산 계급의 존립은 이제 더 이상 사회의 존립과 양립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유산 계급의 존립과 지배를 뒷받침하는 본질적 조건은 사적 소유에 기반한 부의 축적, 곧 자본의 형성과 증식이다. 자본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임금 노동이다. 임금 노동은 오로지 노동자 상호 간의 경쟁에 기반한다. 그러나 유산 계급이 의도치 않게 추진하는 공업의 발전은 경쟁이 초래한 노동자들의 파편화를 타파하고, 결사에 따른 혁명적 단결을 촉진한다. 따라서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유산 계급이 부를 생산하고 전유하던 토대 자체가 그들의 발밑에서 무너져 내린다. 결과적으로 유산 계급은 무엇보다 자신의 매장인을 스스로 주조해 내는 셈이다. 유산 계급의 몰락과 무산 계급의 승리는 이처럼 모두 피할 수 없는 역사의 필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유럽 전역에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경찰을 포함한 옛 유럽의 모든 지배 세력은 이 유령을 저지하기 위해 신성 동맹을 결성하였다.

 

집권 세력으로부터 공산주의라는 비난을 받지 않은 반대당은 존재하지 않으며, 더 혁명적인 반대파나 반동적인 적대 세력을 겨냥하여 공산주의라는 낙인을 찍으며 역공하지 않은 반대당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의 사실로부터 두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첫째, 공산주의는 이미 유럽의 모든 통치 세력으로부터 하나의 실질적인 세력으로 공인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이제 공산주의자들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신의 입장과 강령, 노선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여, 공산주의 유령이라는 허황된 담론을 당 자체의 선언으로 대체해야 할 결정적 시점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취지를 달성하고자 각국의 공산주의자들이 런던에 결집하여 다음과 같은 선언을 기초하였으며, 이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플랑드르어 및 덴마크어로 공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중에 유통되는 『자본』에 대한 관심을 지닌 독자라면 많은 판본들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일부 개론서와 함께 읽는다면 『자본』을 파악하는 데 큰 무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검수판은 시중 출판 및 유통된 것도 아닌, 오로지 개인 작업에 기반한 저작물임에도, 철저히 원문에 기초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기존 출판 회사들이 저작권을 고수하며 지식의 배타적 성격을 유지할 때, 그것이 오히려 자본 체제를 공고히 하는 기능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간과한 것과는 대조적인 지점이다. 


더군다나, 『자본』이 난해했다는 이유가 당대의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며 자본주의 내적 모순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방대한 논리적 체계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대상을 막연히 현상하는 것과 그 내재적 원리와 법칙을 이해하는 것은 수준이 다른 문제이다. 모든 독서가 그렇지만, 스스로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면 현상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수용될 뿐이다. 이처럼, 인간의 시각에도 많은 왜곡이 담겨 있기에, 이에 대한 과학적 비판과 논쟁 역시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그러한 점에서 필자의 『자본』은 새로운 이행을 위한 발판이자 도움으로 삼았으면 한다. 장난감을 조립할 때 초보자에게 설명서가 필요하다. 그것의 수준을 논하기 이전에도, 범람하는 판본과 개론서 속에서도 원문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안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외국어 문법 체계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문장 구조와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한 것 역시 독서라는 행위가 지니는 필연적 노력에 따른 결과이다. 이는 본격적인 논쟁에 앞서 전수되는 과정에서 본질적 작업이기도 하다.


전문 용어는 최대한 풀어쓰고자 했다. 『자본』 본래 의도를 자의적으로 수정하지 않고, 가급적 원문에 충실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였다. 국가 체제로 고정된 자본주의에 내재한 모순은 현재까지도 노동자 생활을 압박하고 있으며, 자본가는 그 이면에 숨겨진 축적의 원리를 치밀하게 은폐해 왔다. 이는 ‘사적 소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본가 계급이 경제적·역사적으로도 개입하며 방대한 논리 체계를 구축해 왔음을 의미한다. 산업, 상업, 금융, 지대 자본 등 자본가들의 변모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은 자칫 자본주의 정당화 논변에 대한 단순한 학술적 이의 제기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 역시 또 다른 유산 계급의 논리로 포섭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본』이 제시하는 전반적 구조들이 단순한 개인의 논거가 아니라, 각국 자본주의가 내포한 현존하는 사실을 분석하는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 다가올 계급 투쟁을 준비하며,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노동자 여러분, 산업 재해 등으로 인한 유가족 분들, 그리고 재작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친다. 

 

2026. 05. 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