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5. 05. 


기록장

 

자주 글을 쓰려 노력하는 자세는, 말할 수 없는 이들이 요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민주주의가 정착될수록 꾸준한 독서와 성찰이 요구되는 이유는, 단순히 지식을 과시하거나 '가진 것'을 자랑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러나 언젠부턴가 우리 사회는 독서를 일종의 자랑거리로 여기는 풍토가 자리 잡았고, 정작 기록의 주체가 되어야 할 이들의 자리는 극소수만이 독점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박식하게 지식을 쌓는다는 것이 개인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그것이 곧 타인과 사회 전체가 유익한 것은 아니다. 

 

근래의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은 매체의 발달과 인간 통제를 위한 고도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이러한 인간의 취약한 심리에 기대어 이를 더욱 자극시키는 쪽으로 발달된다. 그것은 본연의 창조를 실현할 수 있는 방식도 아닌, 오히려 그러한 학문이 지닌 자체의 난점으로 인해, 인간이 스스로 생각할 줄 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가 인간 노동에서 벗어나 비평할 시간이 주어져야 하지만, 그 비평이란 단순히 소수의 학자들에 국한된 비평의 시간도 아닐 것이다. 모든 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고,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특혜나 계몽의 수준이 아니라, 노동의 수준에서 다시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록'이란 무엇인가. 기록장은 삶의 ‘오답 노트’이다. 우리는 늘 노동에 대한 자격을 심사받으며 그러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교육만을 받아왔다. 그것을 체제의 순리라 여기며 다시 취업하고,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는 과정에서도 노동의 가치를 되묻기보다 오히려 동료 노동자를 비하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이제 노동자의 삶에도 단순한 생계 보장 임금만이 가득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심사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오답 노트’로서의 기록이 요구된다. 독서와 기록이 진정으로 ‘가난한 노동자’가 될 준비를 마친 이들에게 성찰의 시간으로 채우기를 바란다.


‘가장 민주적인 사람이 독재를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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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4. 27. 


서기장에게,


당을 이끌어갈 서기장 동지에게,

 

먼일이 될지도 모르나, 당과 인민을 위해 헌신하고 있을 귀하에게 이 글을 남기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라 봅니다. 자주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합니다. 문득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당신에게 직접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만원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중, 운전기사로부터 너무 앞에 있어 거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권력이란 결코 자신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의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될 때 그 정당성을 잃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를 잊지 마십시오. 때로 인민들이 정치적 판단에서 미숙해 보이거나 날 선 의문을 던질지라도, 그것은 무지가 아니라 그들의 생존이 걸린 절박한 목소리임을 헤아려야 합니다.

 

한국의 역사를 보더라도, 정부 수립 이후 처절한 투쟁으로 쟁취한 민주화의 결실을 결국 부르주아 계급이 독점해버린 뼈아픈 사례를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반공이라는 구호 아래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혁명가와, 국가 권력이 은폐하려 했던 수많은 정치 공작의 희생자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의 의연한 죽음은 오늘날 우리가 딛고 선 토양입니다.

 

1990년대 소련 연방의 해체 이전에도, 레닌은 우리에게 ‘소비에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권력을 잡느냐’는 문제만이 아니라, ‘무엇이 권력을 만드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비록 소비에트가 권력 투쟁과 부패로 인해 사멸했다는 비판이 있을지라도, 자본주의의 모순이 잔존하는 한 소비에트의 대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여가를 보장받고 정당한 임금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은 가장 소외된 무산자 계급입니다. 오늘날의 공산주의 운동이 국가 사회주의의 한계나 내부적 변질로 인해 수정되고 왜곡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수록 혁명의 고전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고전 속에 담긴 근본적인 원칙은 당신이 길을 잃었을 때 가장 명확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이 서기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직 무산 계급 혁명을 위해 헌신해야 할 엄중한 과제일 뿐입니다. 당신의 자리가 곧 당신의 인격을 규정할 수 있습니다. 대의를 잊는 순간, 당신은 인민의 지도자가 아니라 한 명의 독재자로 추락할 뿐입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며, 얻을 것은 세계입니다. 이들의 요구를 가슴으로 듣고 행동으로 말하는 서기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노동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고, 땀 흘리는 자의 노력이 마땅히 보장받는 일을 완수하시길.

 

익명의 서기가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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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3. 28. 


‘민주당의 중도 성향이 바른 길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는 대부분의 야당 견해를 제외했을 때, 되도록 쉽게 말하고 싶다.

 

‘지금은 여당이 된 민주당만이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정당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소위 말하는 정치병에 오염되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분들의 오래된 프레임이 궁금했다. 이들은 보수 진영에서 양산한 지역 갈등 프레임을 여전히 대통합 기제로 여긴다는 점에 있다. 이는 민주당에 소속된 대통령 내외분께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은 보수 진영의 정치적 피해자라는 기제가 한국에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각인된 탓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이 자명해 보인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가치를 추구하는 이익 집단이라 한다면, 단순히 지금의 두 양당 간의 관계가 여전히 상호 간의 정치적 청산이 아니라 집단적 보존에 치중된다면, 그들은 한 나라의 장래를 두고 살리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적 갈등의 씨앗을 더욱 부추기는 일이 될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직면하면 언제나 주권자인 시민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경향이 매우 짙었다. 한국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정당 간의 이동 비율의 격차가 가변적으로 유달리 상승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서민들이 체감하는 국민적 불안감만 더욱 가중시킬 따름이다. 

 

앞서 '아무리 그래도 국힘보다는 민주당이 더 낫다.'는 논리 속에는 '민주당만이 민주주의를 구원한다.'는 정치적 기제로 편승되기가 매우 쉽다는 점이다. 이러한 견해를 갖고 있다면 상당히 심각한 논리적 오류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한국의 유권자들은 대체로 선거철에는 자신의 정치적 무관심을 표하더라도 특히 신중해진다. 자신의 지역구에 속하는 정치인들을 가리는 선거이기 때문에, 이 두 양당만이 대표성을 띠는 현실이라면 대안적인 선택지를 살펴보지 못할 가능성이 더욱 컸던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다당제도 아닌, 양당제만을 여전히 표방한 점에서, 그 자신의 논리적 순환의 모순을 보인다.

 

이처럼, '선의의 구원자'가 된 민주 당원들에게 특히 이러한 '영웅 놀이'에 몰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그 격차는 시민 유권자가 아니라, 그 외의 정치적 집합체에서도 배제되신 분들에게 가장 해당되는 말이다. 특히 민주당의 앞날을 숙고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를 염두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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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3. 28. 


박종철 열사는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지금은 민주화 기념관으로 알려진 '남영동 대공분실'에는 과거 민주 인사들을 비롯한 고문을 받았던 일부가 이곳에 소속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개인적으로 방문한 적도 있었고, 훗날 시내 전역으로 확장된 민주화 운동 당시 군대로 인한 총격 또는 감금 및 고문 등으로 인해 사망한 인물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출판사가 세워지기도 하였는데, 『박종철 출판사』가 바로 이곳이다. 선량하고 무고한 그를 추모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지만, 이곳은 사회·과학 서적을 보급하고, 독립하여 운영되는 서점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곳에 출판된 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맑스·엥겔스 선집』이었으며, 최근 선집의 출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그 출판사이다. 과거에 비해 이러한 서적이 뒤떨어진 이유가 90년을 기점으로 좌익을 표방하는 이들이, 서서히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해 전면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이 출판사는 그 명성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탁 치니 억!'하였다고 말한 어느 고문관이 사망하였다. 당시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고, 그는 사망하기 전까지 목사로 활동하였다는 소식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나 추모가 그러한 기념의 일부가 되는 순간, 그 의도와는 달리 더욱 사회적 문제를 희석시키는 경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비록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지워진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이러한 국가적 폭력에 힘입어 그것을 자행한 이들이 정작 치한에 방조한 '보안법'의 역사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많이 간과하곤 한다. 단순히, 국가적 차원에서는 순국 기념의 의미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의 견해이고, 대중들은 실제로 희생자 분들이 민주화에 헌신하기 전에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깜빡 잊곤 한다. 

 

이처럼, 인간에 대한 고문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미국 뉴욕주에는 <중세 고문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중세 시대의 기술을 자랑하는 '화려한' 고문 방식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한 근대 철학자가 감옥 내의 정신병을 다루기 이전에도, 중세가 전반적으로 '암흑기'라 불리는 이유를 볼 수 있다. 민주화 시기 이전에 유럽의 뛰어난 기강을 자랑한 '르네상스'의 부상과 이후에 근대적 국가관을 중심으로 자행되었던 '제노사이드'라 명명되기 이전에도,  《액트 오브 킬링》으로 잘 알려진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 당시에도 이러한 고문의 기술들은 오히려 해당 국가들로부터 통제되어 자행되었다는 사실에는, 그 잔혹한 이면까지 세계적으로 보도될 수 없는 지점들이 상당수가 존재한다.

 

'산 자들이여 따르라'라는 말이 무심할 정도로, 죽은 자들이 방치된 이 고문의 역사는 '숭고한 진리'를 말하기 이전에 마주해야 할 투쟁의 역사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국가가 '안보'를 말할 때 온갖 비속어로 맺어진 조약과도 같다. 지금도 국가 간 전쟁을 개시할 때는 포로에 대한 감금 및 고문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은 현재의 부르주아 역사가 은폐하고 싶은 '어른의 사정'인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평범한 사람에서 무고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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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2. 26. 


자동화

 

지금까지 공학자들은 기계어에 대한 이해를 개념적으로 고찰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진법적 신호에 의한 '컴퓨팅'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그것이 미래형 사고에 입각하다는 발상에서 논의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프로그램 언어의 전반이 종교와 관련된 개념이라는 일부 지적은 기각된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 언어부터 파생된 부르주아적 정의 내에서 수용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프로그램이란 단순히 '강령'이라는 번역이 아닌, 그것의 시스템이라는 지배 체제를 가동시키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언어는 기계의 언어가 아니라, 그것을 정의하기 위한 인간이 그것을 관념적으로 사고한 사상적 언어의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부르주아 사상가들의 일부로 잔존하여 '인지'라는 관념의 일부를 구성한다. 이는 용어 및 개념적 정의부터 상이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고대 철학자들은 이러한 차이가 동일한 것이라 간주했다. '짐승과 기계'의 연구부터 그것의 지배 논리의 질서를 인간에게 대입하며 사고된다고 보았으며, 그것의 오류 전반은 기계 수단에서 인공 수단의 진화로 변천하는 과정, 곧 생산 수단으로 확립된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컴퓨터를 가동시키는 전선들의 집합은 독일의 초기 가내 수공업인 면직물 공업에서 유래한 측면이 강하다. 실감의 조직적 구조가 옷감을 형성하듯이, 그러한 물질적 생산력의 기반이 지금의 기계적 사고를 이루는 자연 언어라는 점을 해명하지 못한 것이다. 

 

초기 애플사의 컴퓨터는 이러한 혁신적인 상품을 발명하였다. 그것은 오락의 발전과 더불어, 밖에서 놀던 아이들을 모두 실내로 불러 교육적으로 통제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컴퓨터 이전 '텔레비전'의 생산은 '매체'의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여 부르주아지를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변질시킬 수 있게 되었고, 자신들의 사유 재산을 정당화시키며 인간의 시각을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사물이 되었다. IT 산업 및 반도체가 지금처럼 부흥하기 이전부터, 스티브 잡스, 스티븐 워즈니악, 빌 게이츠, 제프 베이소스, 젠슨 황 등과 같은 인물, 그 다음 세대의 샘 올트먼, 마크 주크버그, 다니엘 에크, 일런 머스크 등을 필두로 전개된 미국의 기술자 시절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이 지점에서 게이브 뉴웰과 리처드 스톨먼은 기술진의 사태를 앞서 판단했다. 특히 리처드 스톨먼은 이러한 기술진의 사태에서 '모든 개인에게 자신만의 사이트가 보급될 것이라' 짧막하게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사이트의 개발은 자본의 '부분적 유로화'에 따른 진입 장벽으로 인해 이러한 정부 접속 자체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현대의 인공 기술자들은 독일의 '디자인'의 다수에서 영감을 받아 상품에 적용시키고자 하였지만, 그것을 놀이로 대하지 못하였다. 결국 그들은 이마저도 자본의 놀음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기술적 발전에 따른 인간의 '뇌'를 탐구하였고, 뇌의 일정 기능을 통제하여 마비시킬 수 있다는 측면을 활용하여 더욱 강력한 인공 지능을 발달시켰지만, 그 자신의 수명 연장 기술과 더불어 그러한 인간의 미래 연구는  뇌 자체의 연구와 결합되어 그 발생적 구조가 복합적인 측면에서 사고된다. 곧 현대 인공 기술자들은 인간의 부정의 원인을 해명하고자 그것의 부정 자체를 '오류'로 단언하였다. CIA의 고문을 받던 카진스키는 결국 그 자신이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기술주의에 대한 우려를 강력하게 표명하였지만, 지금도 인공 지능 자체가 인간의 언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의 발생은 그것이 인공 지능의 수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생성한 '가공 언어'로 판단되며 결국 그들의 주관을 물질 자체로 환원시키는 오류, 곧 기계적 유물론의 토대를 닦는다. 기계적 유물론이란 일부 부르주아 기술자들이 내재한 사고방식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들의 기술적 우위보다, 그 자신의 무지를 서서히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더욱 깊은 오류를 내재한다. 

 

이 지점에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을 기술자가 아니라, '디자이너'라고 표현하였지만, 그는 결국 '디자인'을 상업화시켰다. 하물며 독일의 '바우하우스'의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했음에도, 정작 유럽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디자인 철학'을 기업가의 상업성에 활용하여 '애플'을 주도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그러한 업적을 스스로 다했다는 대중의 착각에 의존하고 있었다. 지금의 애플은 '바우하우스'보다 못한 목표를 가진 채 기존의 제품 생산을 반복하는 형태인 자본주의화 시킨 '선구적인' 장본인이라 판단된다. 따라서 스티브 잡스 역시 애플의 창시자가 아니라, 모방자에 다름아님을 밝힌다. 그것의 수익성을 오히려 자신들의 기회로 창출할 수 있다고 여긴 '지적인 상인'이 그에게 가장 걸맞는 표현인 것이다. 이것이 발달된 형태는 '실리콘 벨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공계의 신화적 부흥에 힘입은 미국 사회의 일론 머스크의 행보가 가장 단적으로 부각된다. 일론 머스크 그 자신의 공화당 지지 행보가 초래한 '화성 탈출 계획'마저 대중의 인지도로 그나마 버티는 이 현대 기술자들의 부상의 이면에는 어쩌면, 미국 사회의 '달러'를 통한 화폐 가치와 기업 가치의 동반 상승이 아닌, 처참한 기술적 몰락과 야만성을 보여준다.   

 

아카이브 

 

현재의 IT 기업가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천문학적인 막대한 지분을 자신의 명의로 소유한 채, 사유 재산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된다. 그들이 바로 기능 자본가들이다. 반도체라는 산업 자본과 IT라는 상업 자본의 결합으로, 기술적 수단을 매체로부터 매개하여 전방위적으로 대중들을 홍보하고, 그에 따른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면서도 노동의 생산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노동자 전반에 대해 생계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그러한 '설계'에 개입하게 된다. 중간 관리자들은 그들의 물신성을 숭배하는 부르주아지 집단에 소속되기도 하면서 경쟁 사회를 통한 독식 구조를 바라며 고군분투하게 된다. 이러한 경쟁들이 모여 결국, 부르주아 사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보안 업체 집단까지 별도로 고용하고, '해킹'과 '범죄' 사이에서 이러한 기술력을 합법화시킬 수 있는 '유능한 인재'들을 교육적으로 배출하게 된다. 그들은 업무에 가담하면서 이러한 '유능한 인재'를 지휘할 수 있다는 착각까지 범하며 광범위하게 이들의 기술력 전반을 지배하고자 하는 시도와 더불어 자신들만의 '아카이브'라는 업적의 수단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것이 현재의 부르주아 언론들이 바라는 인공 기술의 범위를 증폭시켜 자신들의 지분의 확대와 사적 이윤 추구의 법적 명분을 더욱 정당화시키도록 홍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 사회에 진입한 자본가들은 정치화라는 경제적 지위까지 차지하며, 자신들을 보호하는 무장된 (임베디드) 장비를 착용한 상태로 치외 법권을 옹호하며 자신들의 폭력까지 정당화시키는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오히려 무력한 존재들이기에 그들에게 별도의 비용까지 과감하게 지출하게 된다. 곧 경제적 예산 낭비의 형태는 그들에게 지출되는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보호 수단'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인력의 동력을 무한한 기계가 대신한다는 이 모순, 곧 노동력의 체납된 지불이 이제는 국가 전번에 채무로 초과되었다. 그들은 노동자라는 존재를 '추상화'하거나, 이들의 투쟁 자체를 제거 및 삭제했으며, 노동자가 '자본화'된 상인들만이 남을 것이라는 지극히 자본가적 발상을 추구한다. 각국의 명문대를 나온 기술자들은 작은 사무실에서 앉아 자신들의 흥미를 사업화시킬 명분을 찾게 되고, 그것의 공공 발전마저 저해시키는 사익화된 수단들을 찾는 과정에서 부르주아지의 생산 수단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한다. 그것의 시작이 바로 '컴퓨터'라는 본체의 탄생이었다. 이러한 '모델링'의 작업은 결국 그들의 '사유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가상 화폐'의 전면 추상화 작업인 셈이다. 그것은 '은행'을 대체할 수도 있고, 자신들의 자본의 생산 수단을 개척하는 방식으로, 고정된 부르주아 설계는 현재의 국가 사회 전반의 기틀을 '전멸'시킬 수 있는 종말을 부추긴다. 도메인의 생성부터, 비즈니스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고객 맞춤 서비스'란 개인 용역까지 고용하여 '자동화'의 도입을 통한 소비만으로 충당되는 자본가 기업의 정당성을 공포하고, '황폐화'된 세상까지 최후의 종언을 자신의 승리라 자부하게 된다. 

 

프로그램 

 

초창기 '프로그래밍' 언어는 단순한 명령어였지만, 그것은 이제 막대한 이윤 추구를 위한 무제한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그러한 사고조차 가닿기 힘든 고유한 물리 계산법을 더하여 개발 언어에 대한 자유를 부르주아지의 언어로 변환시킨다. 그것은 곧 언어의 '수정'이며, 자본가들의 독창적인 언어를 뇌와 전류의 연결로부터 인간의 심리 기제를 '조종'한다는 '기계적 유물론'으로 환원된다. 관념의 중독처럼 '독창적인' 연구를 중단하지 못한 일부 수학자 및 과학자들은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부르주아 간의 경쟁에서 심화된 전쟁의 발전을 이끌고, 그들만의 법이 곧 강령이 되는 '짐이 곧 왕이다.'라는 군주제 선언을 현대화시킴으로 인해 지배 사회의 매체 전반을 통제할 수 있음을 선포한다. 그것은 머나먼 미래의 노동자이 소멸할 '선언문'과 '강령'으로 작동하고, 그들만의 맞춤 우상 숭배 대상이 '물신 숭배'의 지배 대상으로 구체화 되어 자본의 사고에 종속된 그들은 자본가 '강령'의 노예에 불과하게 된다. 그들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강령을 제시하고 처리하지도 못하도록 무지한 존재들로 규정하고 말았다. 이러한 기괴한 무지함이 보여준 결과가 바로, 자신들이 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다는 객관적 대상 자체로의 '자본가'라는 존재임을 망각하고 만 것이다. '프로그래밍 언어'란 결국 자신들이 작성할 수밖에 없는 명령·지시의 도구화를 대체하고, 간편화할 수단을 찾게 되고, 그것을 '기계'에 대입하여 '스크립트', '구조 형성'에 매우 획기적인 기반을 마련할 노동자들을 요구하고, '자동화' 작업을 위한 무제한의 이윤 창출을 위한 가상 화폐 및 암호 화폐를 고안하게 된다. 그것은 금융 · 주식 전반에서 자신들의 명의를 이전시킬 수 있는, '기밀 문서'등과 같은 증거 자료를 삭제하고, 도덕성의 검증조차 자신들의 쪽수로 밀어붙일 수 있는 막강한 변호사들, 그리고 기술진들이 합세하여 '프로그래밍'시키고, 잉여 가치 창출을 위한 수단들을 끊임없이 검증 없이 '합법화'시킨다. 

 

각국의 부르주아지 전반에서 '오라클'의 관리 및 동작과 터미널을 통한 '웹'의 생성과, 처벌받지 못한 비범죄화된 존재들을 사회적으로 용인하고, 이들을 통합시켜 금융 전반에서 경영 관리자들의 데이터 자료 입력과 비효율적인 관리 생성 체계를 입출력하게 된다. 주식 선물 및 옵션, 그들의 서버 및 통신망을 제어 및 관리하면서 상품에 붙는 세금에 대한 무역 과세를 높이고,  이러한 부르주아 금융 통합 체계를 달성하게 되면서 '뱅킹'과 '모듈'의 일부를 복잡화시킨다. 그들의 '데이터 베이스'는 부르주아만의 독창적인 연구소이다. 그것은 입력·출구 방식에서 '컴퓨터 언어' 전반의 설계를 자신들의 이윤 추구의 획기적인 발상으로, 노동자의 노동력을 끊임없이 소모시킬 수 있는 임의적 기준을 재정립하게 된다. 이는 군대 및 경찰에 의한 국가 폭력과 '프로파일링'을 통한 경찰 치안의 방관에 대한 기록 말소 효과와 국가 중앙 수사국 및 정보국, 그리고 단속국의 기밀 문서 등과 같은 은폐되었던 대량의 기밀 문서 유출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자국의 금융 전반을 지배할 수 있는 가상 발전 체계를 '가상 서명' 방식의 동의 요구를 수동적으로 제어하며 그러한 작동 방식을 '무지한' 노동자들에게 요구하게 된다. 결국 노동자 간의 경쟁 심화 현상은 이러한 중간 관리자들의 위치가 부르주아지 집단의 일부로 소속된 상태에서 국가법과 그 형식하에 암묵적인 동의까지 요구한다. 그것은 단순히 정부 전산 시스템의 불필요함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 세금' 관련 문제를 노동 계급에 엄격하게 한정시키며, 부르주아 자신들만의 강령을 노동자들이 처리할 행정 업무로 주입시킨다. 

 

시스템 

 

정부의 전산 시스템의 관리자들의 기술은 금융 전산 시스템의 프로그램들과 동일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관리자들 간의 '엔지니어링'이란 지배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별도의 '안보망'을 구축하면서 국방 전산 시스템 등 치안 유지를 위한 일부 시스템을 구축하며 인간의 사고 전반을 부르주아 사회에 통폐합시킬 수 있는 비효율적인 교육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그들은 그것을 '기억한다.' 다만, 자본가 그 자신의 시스템을 기만하고,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시킬 수 있는, 식민지의 수탈의 역사적 기록을 '삭제'시키고, 자본에 의한 산업 발전이라는 인공화된 기억을 주입하면서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고대하게 된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더욱 고도로 발전한다. 이러한 통제하에 각국의 범죄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의 원인이 가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정신 질환에서 오는 것이라 믿는다. 특히 프롤레타리아트 범죄자들은 관리 대상으로, 그리고 일반인들과 분리된 존재라는 규정으로 인해 범죄 문학의 생산은 심화되어 결국, 이러한 체제 일환의 원동력을 기회로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선 노동자를 살해하는 부르주아지를 위한 범죄자로 거듭난다. 그들의 살해는 곧 시스템의 주역인 부르주아지들의 기회가 된다. 모든 물적 거래는 '가상화'되고, '자동화'되어 그것에서 보호받아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착각'이 자본가 간에도 전파된다. 

 

기계화란 부르주아 사회와 격리된 상태에서 자신들의 안전을 보호받는 시스템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반대로, '새로고침'을 취한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손쉽게 제도화하여 체제화시키고, 부르주아지 가문에 종사하는 더 유능한 인력을 발탁하여 그들만의 출신 성분의 기틀을 다질 수 있는 명분을 더욱 생산한다. 부르주아 자신의 범죄 기록을 말소하고, 그것과 무관한 범죄자들의 흔적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자의적·임의적 처리가 기능하면서 '아무것도 사고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은 무일푼으로 자본의 노동에 종사하는 임금 기계의 일부로 활동하게 된다. 모든 이들은 '디바이스'의 일부만이 자신의 전부라 가정하며 부르주아 논리가 무엇인지도 평생을 가닿지 못한 채 방대한 데이터 더미에 갇히거나, 목적을 잃은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이 노동자라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자본가의 통제를 받는다. 자본 관리의 인공화가 더욱 진행됨에 따라 이들을 통제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이들의 신분증이 곧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급은 더욱 세분화되고, 이러한 각층의 구성원들은 시간의 변화가 마비된 채 군대의 시간처럼 비효율적인 관리 수단의 대상으로, 또는 '무결성'된 결함없는 인간만이 남는 특정 인종 및 성별만이 잔존하도록, 소수 부르주아지들에 의해 '감시'되고, '도촬'된다. 

 

이러한 문법들의 조직은 '데이터 스토리'가 되고, 기밀 코드를 작성하고, 그들만의 언어를 동작시키는 새로운 컴퓨터 언어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사생활 보호를 명분으로 바이러스를 늘리면서 결과적으로, 바이러스 노출을 위협하여 별도의 프로그램 설치를 요구하게 된다. 동작 언어를 활용하여 노동자에게 기능적 복종을 요구한다. 이러한 부르주아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 방식과, 최근 '화성인 탈출 계획'까지 인간이 도달하는 '최고의 경지'가 아니라, '최악의 역사'가 기록됨에도, 그러한 자본가의 자존심이란 자본 사회의 심화된 개인 경쟁과 정치적 자금줄을 형성하여 부르주아 지식인 출신 노엄 촘스키 그 자신이 창안한 '변용 언어'와 컴퓨팅의 대입의 기여로, 이러한 '수동적 존재'를 인위적으로 '자동적 존재'로, 자신의 모호한 주장과 행적을 숨기고, 이러한 교제를 정당화하는 '선구적인' 변절자로 남는다. 부르주아지 전반의 네트워크를 위한 프레임워크, 라이브러리, 유지 보수의 Solid (SRP, OCP, LSP, ISP, DIP), 와이어 샤크, 테라포밍, 트래픽 제어, 하드 웨어 관리 및 물리 구조 방정식 등 복잡 언어의 존재는 인공 생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애자일에 의한 비즈니스 소통 방식은 SRE, ARM, GIC, 트랜스포머, 블랙 박스 등 이러한 광범위한 제어 기능들을 토대가 사물의 통제 원인으로, 기능 고장을 방지하기 위한 대부분의 예방책을 차선책으로 간주하여 사고 충돌의 원인을 일시적으로 제거한다. 그것은 결국, 이러한 복잡 언어의 개념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부르주아 유학파 출신의 기술자들이 의도한 개념 혼동을 초래하고, 노동자 간의 모호한 정의에 의존한 채 사고 방지가 사고 유발이 되는 '기적의' 원인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소스 코드 (원인)과 오픈 코드 (결과)는 결국 자본의 유로화 방침을 제공하기 위한 자본가들만의 코드가 된다. 그것의 생성은 곧 자본의 독점 수단을 위한 일종의 방편과 독점의 재부상과 같으며 그것의 무상화가 아니라, 수익 창출을 위한 '부분적 유료화'를 프로그램에 확대한다. 결국 인공 수단은 제어하지 못하고, 자본가들의 통제만 강한 '자유로운 네트워크'가 기능하여 마치 '원자력의 통제'가 '양자 컴퓨터'의 접촉된 계산과, 핵 융합 회로의 건설을 '정당하게' 추진하며 지배 계급 간의 전쟁을 부추기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한 위험성과 경고는 기술진 내에서도 기밀로 부쳐지고, 그것을 세간에 공개한 이들은 '의문사'를 초래하고, 도리어 자본주의의 동력 자체의 활성화로 '희생된다.' 이들의 의문은 '블랙스크린'으로 가려진 채 세부 조사마저 은폐된다. 그것은 자체로 붕괴된 핵 폭발의 위험성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의 폭발성', 그 실체인 것이다. 

 

클라우드 

 

'모든 것을 공유하고, 전유하고, 연결한다는' 이러한 만능의 자연적 무한성을 닮은 '클라우드 서비스'가 USB보다 못한 메모리 칩의 수준에서 발전하여 그들의 세부 정보와 자료들의 민감한 모든 '영상 및 사진'들까지 첨부하게 되면서 그들만의 소유 전반을 관리하고 형성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클라우드'가 아니라, 뜬구름인 것이다. 이러한 '모국어'의 말살 사태를 보기까지 클라우드의 집단적 형성은 부르주아에 의한 정신 질환, 아니 오히려 정신 병원에 수용되어야 할 대상이 바로 그들임을 증명하고 만 것이다. '클라우드' 속의 세상에서 진보를 자치하고, 선의를 위장한 채 자신의 성욕을 담는 그릇까지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하고 요청한다. 그것의 일상은 밀접하게 공유되고, 희화화되고, 자신의 시각을 계급적 구분이 아닌, 이를 희석한 혼재된 '사이트 내의 구성원'으로, 이를테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면 하드웨어를 구매할 수 없는, 곧 '마이크로소프트'만이 전부인, 그것을 제작한 노동자들이 아니라, '빌 게이츠'의 명의로 도배된 경제적 클라우드의 부르주아 속성을 대변하게 된다. 그리고 원대한 '실리콘 밸리'의 제자들은 새로운 꿈을 찾아 정치적 입지의 영역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그들의 음향을 조정하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공유하여 저작권 전반의 모든 소유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환원시켜 '자유롭게 공유'하고, 상품에 대한 물신 숭배의 대상으로, 노동자의 범죄를 더욱 부추기고, 자신들의 과오를 가리는 식으로 모든 계급적 논의를 희석시키며 배제시킨다. 그들은 출판물 및 서적에 대한 관리까지 저작권을 독점한다. 예술 자체가 이제 그들만의 소유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업물에 대한 창작 의욕까지 망각한 상태로 '클라우드'의 일부가 되어 자본가에게 독점화된다. 그것이 곧 음향 제어, 소리 통제가 유도하는 가장 큰 함정이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곧바로 '음소거'하는 것.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여 통계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 자본 화폐의 배후에 물가 폭증과 노동자의 필연적 죽음이 발생한 것. 그것은 족쇄를 자신에게 채우면서 자유롭다 말한다.   

 

개발진 

 

개발진들은 그 자신이 임금 노동자임에도, '화폐 가치'보다 더한 잉여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만다. 이들은 결국 '서버'라는 영화에 고용된 자막의 일부분이며 부품일 뿐이다. 금융업계의 발달로 인해 그것을 제어할 통제 권한이 있음에도, 자본가 집단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그들 중 일부는 '성실하게 일하여' 관리자의 일부로 겨우 가담하여 자회사를 위한 출판에도 손을 뻗는다. 그러한 평가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평생의 연금 보장과 주택 대출을 갚기 위한 노고로 치환되어 자신의 생존을 위한 지름길이라 평하며 소개한다. 개발진들은 자신들의 영업 기밀까지 기업 간 거래 수단이 되어 상품으로 교환된다. 그것은 물론 불법이지만, 모든 국가들은 이러한 불법을 합법화시키는 명분들도 '정상화'시킨다. 개발진들은 자신들의 상품을 개발하기 전까지 '밤샘 노동'을 더하여 주·야간과 일정한 임금 보수를 받는 대가로, 그리고 성실한 신분의 진급을 위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들의 '이상'에 투자할 가치로부터 남은 연금을 수령하며 노후에 만족하며 평생의 시간을 개발과 더욱 무관해진, 사내의 상사와 고객 맞춤의 명령을 받고, 자본가의 '수익 창출'을 위한 노동 수단을 활용하게 된다. 그들이 소모되면 부품의 역할을 완수하고, '보수가 아니면 대안이 없는 식'의 논리를 구축하여 오히려 더 폐쇄적인 인간으로 변모한다. 그들의 자녀에게도 자신의 가치를 주입시켜 자신들이 소외된 존재라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평생을 잊고,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마저 잊고 산 채, 정치적으로는 당시 링컨이 처했던 남·북 전쟁과 노예제 앞에 선 공화당보다 더 처참한, 자본가를 살리고자 공화당 내 '경제적 민주화'를 노예처럼 외친다. 그것은 이제 그들이 생산한 '인공 수단', 즉, 자본가의 생산 수단의 일부가 됨을 방관하게 된다. 그리고 부르주아지를 지지하며 '민주주의'로 인해 '행복'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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