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4


여성주의

 

공산주의를 위한 토론에서 부르주아 자본가들은 어떻게 구조화됐는가.

 

부르주아 의제로부터 수정주의는 현대에도 잔존하는가.

 

2. 페미니즘은 왜 부상할 수 있었고, 그리고 실질적으로 노동 여성들에게 유익한가.

 

3. 법안 요구안들, 임신중절권, 낙태 폐지, 건강법, 차별금지법 등은 과연

민주주의 요구를 내용으로 삼는가.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기능을

더욱 공고화하게 한 또 다른 원인이자 원흉은 아니던가.

 

4. 마르크스주의를 일부 여성 운동가들도 어떻게 오염하도록 하고, 훼손하는가.

그리고 매우 작위적이거나, 인위적이었는가.

 

5. 해당 이론들도, 어떠한 점에서 반동적일 수 있다고 보는가.

맞다면 학술가들은 왜 그러한 논의를 민주주의라고 착각하는가.

좌우파를 비롯한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의제들도

때로는 커다란 의미로는 매우 반동적일 수 있음을 시사하지는 않는가.

왜냐하면 체제 전환에만 몰두하느라,

경제학 분석을 부정하고는 변화로부터 맞서기를 부정하는가.

그리고 오히려 왜 수정주의는 교조주의적인가.

 

- 여성 의회주의도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 기원>을 두고는 가부장제 비판으로만

해석했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노동 계급에 대한 문제도 가볍게 여기거나,

놓치고는 말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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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8. 19.


2012년도, 정치경제학 대담. 김수행론 및 대학가에 활성화된 중상주의 비판.

 

한국 정치경제학사에 대한 대공황 고찰.

 

김수행의 속류경제학 비판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해체. ‘사회화’된 개인들의 모임.

자료조사.

 

1998년에는 IMF 외환공황이 있었다. 1980년대에는 한국사회에서는 변혁운동을 중심으로, 주도세력들로 이뤄졌었는데, 이들은 주로 운동권들이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지배층 학자들도 있었다.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으로만 다뤘고, 현대 자본주의를 분석했다. 2000년대에도 세계대공황은 발생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생산수단, 교환수단으로부터 현대 지배계급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부정하고, 지가반성들도 뒤떨어졌다.

 

미국에서는 윌스트리트 점령 운동도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부터 자산시장으로부터 자유시장경제는 붕괴됐고, 금융시장은 신용위기나 해외 주택 투기들로 외환시장과 유출된 위기, 국가부채 위기, 실물은행 위축, 금융체제 붕괴, 자본주의를 체제라는 역사적 자취로 볼 때 1873년에도, 경제대불황은 있었고, 1929년에는 세계대공황도 발생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고르바초프와 소련 체제는 막을 내렸고, 한국 대학가 세대들도, 암울하게 전개될 자본주의 발전을 두고 논의했다. 2007-2009년 금융시장에 따른 세계위기, 심화된 주택 투기로 인한 미국과 세계 금융시장 붕괴들도 발생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자본가들은 유령회사를 인수해서, 투기한 사건들도 있었다. 2008년에는 세계경제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유로존 위기와 정부정책들만 비판했지, 실제로 제국주의와 전쟁에 따른 위협들, 아프가니스탄, 걸프전 참전에 대한 논의를 깡끄리 무시했다. 참된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자본주의를 단지 체제결함으로 인한 개혁적 비일관성으로 몰거나, 지적할게 아니라, 체제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모순들을 분석하고, 나름대로 연구해야만 한다. 학자들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적용했지만 그들의 논리는 정작 실제로 속류경제학과 중상주의를 비판적으로 지지했을 따름이다.

 

한국에서 공황론을 연구한 사람으로는, 정성진, 김성구가 있다. 정성진은 이윤율 저하 위기 이론을 2012년 세계대공황에 적용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세계시장공황론도 주장했다.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공황에 대한 쟁점들도 논의했었다. 김성구는 국가자본주의를 지지했다.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비판했고, 금융위기와 주기적 과잉생산 결합·중첩 여러 국가에서 나타나는 대규모 구제금융은 실제로는 ‘손실의 사회화’ - ‘사회화의 손실’로 국가독점자본주의 아래에서 나타나고, 국가개입론을 펼친다. 대공황, 축적, 금융, 노동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각론을박’을 벌였는데, 대공황에 대한 기계론적 사고관을 가진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미시적·거시적인 관점에서만 대공황을 살펴봤다. 한국에서 전희상은 가치이론을 연구했다. 조복현: 거시경제의 균형소득, 결정 및 성장, 성장의 내적 불안전성과 마르크스 거시경제에 대한 논의 체계화, 총수요의 구성요소들과 결정요인들 가운데 투자의 중요성 강조, 주식투기, 산업자본가와 금융자본가의 분배대립이 투자에 미치는 영향, 거시경제와 투자이론의 확장. 김명록: 파생금융상품들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해석. 마르크스는 가공자본도 논의했다. 파생금융상품의 특징도 있고, 대공황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금융업계에 있어 파생상품들도 생산했다. 정상준: 임금노동과 화폐교환에 따른 소득분재는 왜 악화되고, 대공황에도 원인을 제공했었다. 실증경제들은 주로 미국경제지에서 발견될 수 있다. 과소소비론적 경향에 따른 공황론들의 근거에 모순을 발견한다. 분배를 강조하는 공황론은 정치적으로, 개혁주의다. -복지 부재, 포퓰리즘 및 사회복지제도의 명암. 세계자본주의는 불균등한 발전을 이뤘고, 세계대공황은 여러 국가들에서도 ‘지역연구’와 대응했다. 미국, 유로존, 스웨덴, 러시아, 한국이었다. 장시복: 2008년 9월 중순 이전 미국 금융시장 붕괴직전 단계와 정부의 불안정 해소에 따른 유출된 경제적 공급장치의 되, 자산 매입은 비관행적인 통화정책 관련된다. 연준 대차대조표상 사유재산 축적, 부채 증가, 구성변화에 따른 모순. 미국에게는 딜레마도 있다. 유승경: 과도한 복지지출에 따른 재정문제가 아닌 유로존의 제도적 결함, 신정완(자유주의): 스웨덴 복지국가 논의: 1990년대 금융위기 통화주의적 거시경제정책, 고조세, 고복지 ‘통화주의적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확립했고, 세계대공황에도 대응했다. 스웨덴은 공황을 극복했는가. 신정완은 복지국가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공황을 무시한다! 김계환: 소련 부정함. 러시아에서 1990년대 신자유주의 개혁 반발, 2000년대 중반에는 국가가 부활했고 산어정책을 대비하게했다. 이후 진행된 국가의 부활, 산업정책 대비,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켰다. 안현호, 박도영, 류동민: 반동경제학. ‘궁핍화 테제’(?!), 박정희 이후 신자유주의적 체제 전개과정, ‘양극화 성장체제’ 박정희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기반을 마련했고(?!), 신자유주의 정책들도,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 최진배는 중상주의에 따른 서민금융기관, 신용협동조합를 내걸었다, 경제적 민주주의, 계급적으로도, 매우 지배계급을 지지하고, 속물적인 태도를 내보인다.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복지와 평화는 성장동력이 된다. 성장체제 구축. 김공회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연구했다. 자본주의에서 국가경제적 의의를 밝혔고, 복지국가의 성격을 분석했다. 복지국가는 자본의 재생산을 쉽게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봉사한다. 무상급식은 보편적 복지, 완전한 복지라고 생각함. 물질적 근거도 있다. 자본가 내부의 이해관계 대립,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 사회화와 비용에 따른 싸움들. 이강국: 세계불균형 문제만 다룬다. 주류경제학, 비주류경제학을 구분함. 신자유주의 성장체제의 모순에서 세계불균형의 근본원인을 찾는다. 주류경제학, 금융개혁에 대한 평가, 계급역관계 안에서 노동 대응 문제, ‘월스트리트 점령하기’ 정치운동성격, 대안과 구체적 실현방안, 이윤율 저하 법칙, 과소소비 이론, 금융위기론, 신자유주의와 국가독점자본주의, 주기적 과잉생산공황, 마르크스주의 위기론, 국가개입주의는 이론적 공백이다. 상품경제로 인한 자본주의경제 위기.

 

 

2007년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발생했고, 세계경제위기도 대두됐다.

2012년 초 주요한 경제에측기관들은 세계경제는 회복된다고 전망했었다. 그러나 IMF는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012년 기준으로, 3.6%에서 3.5%로, 2013년은 4.1%에서 3.9%로 하향조정했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해 한국 GDP 성장률은 1/4분기 0.9%, 2/4분기 0.3%로 성장했고 3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었고, 2/4분기에는 수출과 투자는 각각 1/4%, 7%로 감소했었다. 한국은행은 GDP 성장률 전망치를 2012년의 경우 기존의 3.5%에서 3.0%로, 2013년에는 기존의 4.2%에서 3.8%로 대폭 하향 조정했지만, 상당수 경제에측기관들은 2% 미만으로 전망했었다.

 

한국경제는 2007년에서 2009년까지 글로벌 경제위기 국면에서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았고, 세계경제의 방향은 더욱 결정적이었다. 한국에서는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집 없는 사람’들도 급증했고, 민간소비 감소는 국내시장에서 출구를 찾기도 어려워졌다. 2009년 한국경제는 바닥을 쳤고, 또 내려간다. 세계경제는 침체에 빠졌고, 2007년 위기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위기가 아니라, 1970년대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한 장기불황, 거대한 위기를 맞는 최종적 폭발이라는 국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0년 뒤로는 주요한 자본주의 국가들도 강행했던 긴축정책들에 따른 총수요의 감소는 다시금 경제회복이라는 발목을 잡거나, 긴축정책들에 대한 모순들도 증명한다.

 

한국에서도 지배계급들은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의 누적을 핑계로 됐었고, 긴축정책을 이동했고, 미국에서 발생한 ‘리먼 사태’ 뒤로는 위축됐었던 금융자본들에 대한 권력들도 회복됐다.

 

세계경제위기를 뒤로, 케인즈주의는 부활했고, 주요한 자본주의 국가들에 타격을 가했다.

한국에 있어서는 취약한 금융들이나, 정부 위기 대처 국면에서는 적자재정 지출, ‘금융주도 축적체제’로 전환하기를 주장했거나, 일부 스탈린주의자들도, 자본주의를 위기론으로 일축했고,

교조화했었다. 과소소비론과 불균형설에 따른 절충된 출동이었을 뿐이다. 일부 케인즈주의자들은 공황에 대한 불완전한 성격을 특징으로, 과소소비론, 불균형론, 이윤율 저하론과 다퉜다.

 

주로 김성구, 채만수를 비롯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는 과소소비론만을 두고 공황론을 분석하기만 했다. 또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수용했다. 당대에 스탈린식 소련 정책의 일부였던,

교육정책들과도 일치했다.

 

바란과 스위지는 1966년에 <독점자본>을 수용했다. 또한, 독점자본주의 아래에서는 독점가격이라는 아래로 경직됐기 때문에 기술혁명도 진전되어, 노동생산으로 올라오면, 생산비는 저하하면서 ‘잉여가치’는 증가하고 정체 경향으로 나타난다. 판매노력, 군비지출, 제국주의 팽창으로 흡수된다고 지적한다. 1980년대에는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따른 반노동 공세 아래에서 노동계급들에 대한 실질임금 상승에도 제약을 걸었었다. 곧, 주택담보대출이나 가계부채들도 생겨났고, 소비지출은 증가했지만, 독점자본을 강화하게 되면서부터, ‘독점금융자본’으로 진화됐다. 레즈닉과 울프도, 독점자본주의를 수용했다.

 

김성구, 채만수는 마르크스 공황론을 이윤율 저하 위기론이 아닌 주기적 과잉생산 공황론(산업순환론)으로 단순화한다. 2007년에도 발생했던 위기들도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위기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초과된 생산으로 인한 공황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일부 케인즈주의자들이나, 폴라니주의자들은 자본주의에 따른 위기를 부정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하면서, “국가의 귀환”을 처방으로 내세웠었다. 그로스만, 마틱, 야폐는 마르크스주의를 근본적으로만 해석한다.

 

사상논쟁은 극우적 사고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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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07.


무산 혁명 전환을 위한 에비 단계

 


우리는 민주 공화국의 '비공식' 논리와는 철저히 무관하다. 이 작업의 특성상, 앞으로는 기존의 정치인에 대한 언급은 가급적 자제하며 준비할 것이다. 기존 정치 행보의 수준을 면밀히 지켜본 결과, 우리의 지적 · 정치적 수준에 훨씬 미달한다는 판단이다.

 

혁명 역량의 구성과 역할

 

공산당의 지침은 모든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의식에 기반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소수의 직업 혁명가로 구성된 지식 계급과의 연계가 예상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프롤레타리아트만으로는 혁명적 결사에 충분한 기반이 될 수 없다. 특히, 이곳이 자본주의 사회임을 이해할 때, 실천적 · 비판적 지식 계급의 중요성과 우리의 활동 도모가 명확해진다. 따라서 지역적인 네트워크의 도움 역시 중요해진다.

 

무산 권력 장악과 정부 형태 전환

 

만약 (이는 가정일 뿐이다) 우리가 직접 권력을 창출할 수단이나 방편을 지니게 된다면, 기존의 선거제는 폐기된다. 우리의 역할은 기존의 정부 형태의 보존이 아닌 최대한의 파괴에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 권력 기구의 수립을 위한 북측과의 협의와 논의를 차차 진행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기존의 주권 정부 형태는 공식적인 협상을 표명한 적이 없으므로, 차분히 계획을 수립할 때, 예전과 같이 유격전을 도모하거나 전투원의 희생을 소모할 필요는 없다. 현대는 전쟁의 양상과 교통이 발전했으므로, 우리는 '혁명적 전환'을 정확히 표기하며 이행하는 것이다.

 

조직적 태도와 주 노선 확립

 

우리는 소수 혁명가 양성과 그 교육 집단의 진지한 양성에 깊은 태도를 보인다. 역사적 교훈을 발판을 삼아, 현 유럽 공산당의 일부 퇴조를 염두에 둔다. 이는 서구 사회가 자본주의에 무력할 뿐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정부(조선) 형태나 대통령과 관련된 언급은 우리 또한 앞으로 다룰 일은 없다. 관련 노동 단체가 있다면, 그들과의 행보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무관하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밝힌다.   

 

추상적인 노동 조직 기구는 반드시 멸한다. 다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 첫 걸음을 직접 실행할 뿐이다. 

 

*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제시된 조직 기구 운영과 이러한 정치적 계획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체계적으로 후술한다. 우리는 이러한 ‘불법적’ 행위의 결과마저 수용하므로, 오히려 ‘무결점’을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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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9. 16.


마르크스주의 연구회를 희망하며

 

생각해보면, 자신만 알고 있는 계획이 그렇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한, 널리 알리는 게 알맞다는 생각이다. 아마 부서 개설로 시작한다면,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알맞겠다. 대학도 사회·과학의 제 기능을 못하고 있을테니까 말이다. 무슨 이유인지, 당원이 되고 싶다는 방문객들이 점점 늘어난다고 느낀다. 해외에서도 관심을 많이 보인다. 아무튼 글이 정돈되니, 집중은 더 잘되니까 말이다. 오히려 선진 국가들은 이미 공산당이 고일 정도로 오랫동안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비선진 국가나 저개발국에서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네팔도 공산당이 있어서 그런지, 반갑기는 하다. 단순히 구호만 외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새로운 생각을 두려워하는 일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두려워 인공 지능도 검열을 받는 세상이니까. 극우든 극좌든, 실질적으로는 국가법이 가진 '사상의 자유'가 '국가의 보안'과 충돌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더 연구를 해봐야겠다. 당신의 지능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선택이 아니라, 이제는 필수가 되어가는구나. 두려웠던 이유가 있었다. 본인의 긴장 속에도 무고한 사람들을 옥 중에 보냈으니까. 이것이 국가의 현실이라면, 어찌해서 맞서지 않을 수 있을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생사가 달려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는 매일 같이 심문을 받고, 조사를 받으며, 사상을 검증받는 자유가 있다. 조직 건설의 체포가 두렵다면, 이미 옥중 수고를 기록했을 테니까. 공부를 하고, 용기를 내야할 때다. 어떤 각오라도 임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동안 대학은 '합법적인' 마르크스주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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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9. 02. 


부르주아지의 폭력

 

 

부르주아지의 평화

 

여기서 부르주아지는 지배 계급 일체를 말하며, 유산 계급에 속한 사람들도 모두 포함된다. 현대 부르주아지는 더욱 이 둘 간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모든 폭력은 해로우며, 발휘되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계급에 대한 시각과 이론이 조금씩 무르익고 있을 무렵, 평화에 대한 강박이 꼭 지배 계급 간 전쟁이라는 양상으로도 나타난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지배 계급과 유산 계급이 사용하는 폭력이 무엇인지를 알아간다. 특히 이에 대해 현대 철학자들은 모든 폭력에 대해 보편성을 거론한다. 특히 구조적 폭력과 언어적 폭력으로 구분짓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신이 막상 폭력을 사용해야만 하는, 그 상황에 처하게 될 때는 어떻게 사용할지조차 몰랐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일정 부분 지식인이기에, 자신의 계급에 갇힌 협소한 소시민적인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결론을 체제에 순응해야만 한다거나, 그마저도 교훈적인 폭력의 결과에 따른 단상으로만 그치고 만다. 하지만 적어도 본인은 자신의 위치에서나, 계급적인 요구에서 한 조건이 알맞다면, 폭력의 사용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가나 체제를 수호한다거나,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정부 군부에 의존한 무력 간 충돌에 따른 폭력이라거나, 익히 들은 내전의 양상을 띠는 전쟁을 주도하고, 제국주의를 더욱 암묵적으로 드러내고자, 수 많은 무고한 인민들을 학살한 사건들을 보더라도, 오히려 그것이 국내와는 무관한 일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물론 자본주의자들의 끝은 언제나 인민 간 내전으로 가장한 지배 계급 간 전쟁으로 표현되기도 했고, 바로 부르주아적인 평화주의자들도 내세우는 전쟁에 대한 협상에 앞서 더욱 지배 계급 간 협상을 중재하려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표현된 바는 바로 프롤레타리아트를 더욱 고도로 억누를 수 있다는 생각과 통제할 수 있는 시각적인 매체와 지배 계급들의 선동에서도 보여왔다. 


저항을 대표하던 한 정권이 집권을 하게 되면 순식간에 모든 일들은 사라져버리고, 모든 인민들이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환호를 보내는 듯이 보여진다. 하지만 유산자들은 너무나 손 쉽게 노동 자들을 자신의 소유지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로부터 무책임하게 죽음으로 내몬다. 늘어나는 노동자의 수가 대변이라고 해주듯이, 우리는 폭력을 감추고 살거나, 시각적인 매체로부터 지배 계급과 유산 계급 간의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를 축하하면서, 저항한 사람들을 역사적으로 기리고 만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여야당을 막론했다. 우상 숭배에 대한 끝을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전쟁을 반대하기만 하면, 지배 계급들로부터 협상되는 국가의 보호라는 안전망이 언제나 대중들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지배자들과 자본가들은 더욱 튼튼한 건물과 보안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신들의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해간다. 어쩌면 부르주아적인 평화론자들이 구축하고 있는 또 다른 지배 계급과 유산 계급의 모습들인 셈이다. 더 높이 세워지는 건물들과 더 나은 인민을 통제하는 방식은 더 이상 이념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져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지배자가 국내의 모습을 보며, 혁명과 숙청이 일어나냐고 물었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협상에 대한 기대를 그들만의 '평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굳게 믿음으면서, 자신들의 손에서 일궈낼 수 있다고 떠벌리고 다닌다. 그들은 정부의 무기를 가졌고, 방위 업체까지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 쉽게 진압하면서, 앞서 자신들만의 세상을 그려내며, 인민들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지배 계급과 유산 계급이 기대하는, 싸울 수 없도록 노동자마저 줄어들게 만드는 그들의 전략 속에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을 바로 자신들로부터 손 쉽게 진압하고, 학살할 수 있다는 분명한 믿음과 자만에서 때로는 기인하고 있는 것 같다.

 

프롤레타리아트 폭력

 

가끔 체 게바라의 『게릴라전』을 읽는다. 가진 것이 없어서 범죄를 일으키고, 소요에 그치고 마는 과격한 시위로 머무는 운동들은 군대와 경찰들에게 체포되면서 쉽게 멈추고 만다. 그러한 간접적인 장면이라도 볼 때면, 단순히 지도자의 부재라기 보다는, 오히려 현대 혁명 전략과 전술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아직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실 전 세계에서도 시위가 일어나는 양상들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그 힘이 미숙해서 충분히 발휘해내지 못하거나, 일찍 그치기도 하기도 해서, 장기적으로 분명한 목적과 끈기 면에서 아쉬울 때도 많이 보였다. 심지어 그러한 훈련의 경험이 없어 은행마저 어떻게 점거하는지를 미숙한 태도마저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이제는 게임에서도 시뮬레이션으로 손 쉽게 이러한 경험을 체험해볼 수 있지만, 현실은 아무리 훌륭한 전략과 전술을 갖추더라도, 모든 범죄들로 재판 받고 곧바로 없는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는 과정 속에서 부르주아지들만의 의회가 자신들의 복장 따위로 논쟁을 벌인, 그러한 연회의 수준마저 은연 중에 드러내고 말았다. 여기서는 군부 독재를 일으켜 반대를 부르짖는 장본인들마저, 이제는 국회 속으로 하나가 되어, 그들만의 파티를 즐기는 중이다. 우리에게는 폭력을 사용할 여지도, 그러한 힘도 갖추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파괴적인 본능에 힘 입어 때려부실 수 있다는 생각은 그들과 우리가 같다는 점만 드러낼 뿐이다. 이러한 논리를 각국의 평화론자들은 자신의 희생으로 귀결시키면서, 부르주아지들에게 맞설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양상도, 변화되는 과정도 분명 다를 수밖에는 없다. 지금과는 다른 고도의 기술적인 발전을 앞세우고, 지배 정부를 앞세운 모든 국가들에서는 하물며 유산 계급들의 파티마저 지배 계급들도 자신들의 벗들을 찾아 노동 계급과 무산 계급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출판되는 연구 이론들은 대체로 앞으로 희망찬 전망을 말하면서, 더욱 무의미해지는 혁명의 필요 조건과 필수 조건에 대해서는 단순히 위험하고, 잔인한 생각이므로 멈추기를 바라고 만다. 노동자들이 사고로 가장한 자본으로부터의 살인마저 꾸준하게 그 수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말이다. 더욱 부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어 가고, 생계에 대한 위협을 받는 사람들도 늘어났다는 요즘에도, 포화 속의 글만큼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또 아니면 부유한 사람을 꿈꾸며, 뼈 빠지게 일해서 그나마 누릴 수 있는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인민 대중에게 있어 부르주아지들의 폭력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소시민이 말하는 평화적인 방식과는 무엇이 달라야만 하는가. 가끔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무산 혁명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듣고는 했다. 하지만 한강에서 가만히 앉아 생각해봤다. 


그 말이 과연 희박한 확률일까. 그렇다고 해서 쉽게 자본주의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생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배 계급과 유산 계급이 무너질 수 있을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교과서처럼 민주주의를 배워왔고, 체제를 잘 유지하고, 세우는 게 당연하다고 배웠다. 정작 세상 밖으로 나와 겪은 것은, 소중한 사람들의 헛된 죽음이었고, 돈이라는 욕망에도 눈이 먼 사람들이었다. 그 눈으로 가려진 채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가난한 사람들은 폭력을 쓸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그리고 단순하기 때문에, 폭력에 따른 혁명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렇다면 왜 그러한 체제를 붕괴시키는 폭동에 더욱 가담했을까. 무산 계급에게도 군대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정부 속의 군대로부터 억지로 징집되거나,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처럼, 단순히 인민을 대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필연적인 결과이지만, 어쩌면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준비를 앞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덧, 저 부르주아지들의 비웃음에 갇혀버린 우리들의 무력한 모습 속에서, 계급 운동이 더욱 살아나도록 도울 필요는 있다. 그럼에도 정부군의 역사가 아닌,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에서도 보여주고 있듯이 혁명군이라는 무산 계급의 무장을 위해서도 미리 전략과 전술을 앞서 잘 세울 필요는 있어 보인다. 더욱 당연해지고, 첨예해진 계급 간 관계와 사유 재산를 두고 둘러싼 긴장 간 전쟁, 착취된 토지의 부름에 있어서도, 그리고 조국으로 인해 먼저 간 노동자를 위해서도 비록 건장한 체력은 아니지만, 본인도 필요하다면 군부 폭동의 가담이 아니라, 누군가 죽음을 비웃고, 아무리 실패로 끝나더라도, 부르주아지들에게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은 참가하고, 도울 의지는 충분해진다. 그리고 그 문제는 단순히 노동 계급으로부터 표출된 그 이상의 요구를 담아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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