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9. 12.


‘박경리는 <시장과 전장>을 쓰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는 남몰래 울었다. 전쟁에 대한 상처가 생각나서 괴로웠기 때문이다. 만드는 건 새로운 일이었다. 만들 때, 음향, 색채, 모양은 결정된다. 시간은 작품에다 멎는다. 작가는 혼자만 영광을 안아본다. 세상이 생겨도 생활만 있었는데, 소설가로 태어나 글을 쓸까를 생각하면 절망했다. 비록 슬픈 이야기라도,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고, 적으면서 박경리는 시와 같이 아름답다고 여겼다. 문자에 대해서 언어와 글은 사랑, 외로움, 예술, 모든 걸 생겨나게 했었고, 언어 장벽에도 갇혀 서로를 알아가지도, 알지도 못하고, 그리워만 하다가 그림자만 밟고 간다. 따라서 언어와 글자는 진실은 아니다. 자뭇 예술가란 언어라는 길을 캐려다 창조자에게 가까워지려는 염원만 남기고 가는 사람이다. 육이오라는 작품 배경 속에서, 사실에 대해서는 상상이라는 재표현으로 다시 글로 표현하고자 했다. 박경리는 여태까지 주로 부정적인 인물 밖에는 그릴 수 없다가도, 이기화를 그리면서, 긍정했다.’

 

씨름장 

 

‘문학을 처음 읽을 때는 먼저 해석들을 참조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맛을 알아가지 못한다면 문학에 대한 정보를 담은 해석들도 무용지물이다. 문학에서 해석한 글들은 사람들이 주로 생각하는 작품에 대한 인상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이란 늘 시대를 염두해두기 때문에 적어도 좋은 작품을 잘 읽는다는 건, 어쩌면 맛을 알아가고, 작품을 이해하고자, 해석들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아닐까. 그렇다. 문학이란 독자라는 우리들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작품과 씨름하면서도, 스스로, 작품에 대한 언어에 대한 해석들을 늘려가는 배움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문학은 실천이고, 배움으로, 모여진 또한 이론이다.’

 

북한 삼팔도

 

지영은 기석을 만났다. 지영의 개 이름은 미미다. 기석은 안경을 꼈다. 지영은 선생이고 늘 어디로 자주 간다. 용산역, 개성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연안행에서 기동차를 타고 떠났다.

 

지령

 

여자를 어디를 가다가 쓰러졌고, 기훈을 만나서, 차 안에서 의사를 불러서 빈혈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여자는 남자를 매우 싫어하고, 동성애에 대해서도, 썩어빠진 남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곰보 사나이는 문둥이에 판다는 놀림거리라는 상처가 있었다. 기훈이 만난 여자는 여자도 남자를 닮은 사람은 싫어한다.

 

푸른 보리

 

지영은 힐끗 쳐다보는 남자를 지나, 초라한 양옥집 앞으로 간다. 교장선생을 만난다. 지영은 하숙집 구할 때까지 기숙사에서 신세 지기로 하고,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 달구지: 짐수레.


지영 성씨는 남씨다. 정순이도 같이 부임했다. 정혜숙은 교감이다.

 

밀짚모자와 나비

 

K다방에서 하기훈은 신흥상사 오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접견한다. 하기훈이 만난 전에 만난 사람은 이가화다. 18호실 아파트 색시이고,

 

행복의 이야기

 

지영은 김인자에게 보고를 받고, 기석을 만났다. 이 선생은 정순이 남편이다. 지영은 김인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친구의 염세자살을 듣는다.

 

“그럭저럭 십여 년 전의 일이구먼, 동경서 함께 공부할 때 일이었으니까. 나하구 함께 하숙을 했는데, 아주 총명하고 얼굴도 예뻤어요. 그 애가 자살을 했거든. 바로 나하구 함께 자면서 말예요. 그런데 그 애가 노상 하는 말이 이 세상에는 누구나 바라는 그 파랑새가 없다는 거예요. 치루치루 미치루는 산을 넘어 파랑새를 찾아갔다가 못 찾고 집에 와서 파랑새를 보았다 하지만 그건 바보였을 거라는 거예요. 제일 바보들이 회색새를 파랑새라 믿고 살고, 그 다음 바보들이 때때로 회색 새로 보면서 파랑새로 볼려고 애를 쓰고, 그 다음 눈이 바로 박힌 사람들이 제대로 회색을 본다는 거예요. 제일 바보가 인생을 속아 살아서 병신이지만 저 자신은 좋고, 다음은 비겁하고 미련스런 인생을 살고, 세 번째는 숫제 아무 것도 없다는 거예요. 진리는 공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애는 세 번째에 속하니 자기는 아무래도 죽을 수밖에는 없다는 거죠.” … “아니, 그렇게 말한 게 아니오. 살아갈수록 그 애 한 말이 생각이 난단 말이에요. 아무튼 우리는 그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에든 속하지 않겠냐 그 말이오. 그러니까 눈이 푹푹 쏟아지는 밤이었구먼. 요나카 소바의 그 구슬픈 가락도 들려오지 않고 마냥 눈만 쏟아지더군. 그날 밤 잠은 안 오고 해서 우린 눈길을 헤치고 행길로 나갔어요. 겨우 군밤을 사갖고 와서 먹었는데 그 애는 자꾸, 혼자서 웃지 않겠어요? 하도 이상하여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행복은 없어도 그걸 안다는 게 멋이 있어 웃는다는 거예요. 그러다간 인생이 멋 없어 못 살겠다 하곤 또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이튿날 그 애는 병원에서 죽었어요. 약을 먹었지 뭐예요?”

 

남지영, 김인자, 정혜숙, 정순이, 모두 염세자살 이야기를 듣는다. 김인자도 자신의 이모부가 해방 이후 사업에서 큰 돈을 벌었지만, 고독하다는 이유로, 자살을 해버렸다.

 

이후 석산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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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16. 

 

‘무정부주의자’만큼 가장 지독한 말도 없다. 무정부주의자는 그 자신을 지칭하는 모든 언어적 정의를 거부하며, 종국에는 소속된 집단마저 부정하는 극단적 결론에 도달한다. 그들은 무산 계급의 논리에서 공산주의자의 일원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국가의 존립 근거 자체를 부정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며 운동의 결을 달리했다. 이러한 부정의 정치는 모순적으로, 그들이 무산 계급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산 계급 및 소유 계급의 논리를 따른다. 그들이 유산 계급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일종의 역사적 현상이다.

 

그들은 현상의 본질을 간파하는 구도자를 자처하나, 노동 운동의 실천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순은 그들의 사상적 한계 역시 여실히 드러낸다. 모든 투쟁의 형식을 거부하며 유창한 지적 유희를 누리던 푸르동의 후예들은 ‘국가’와 ‘소유 재산’에 대한 정의조차 불분명하게 방치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소시민적 자유를 옹호하는 하위 세력으로 전락했으며, 그것이 ‘가장 반란적인 세력’이라는 수식어는 그들의 사상적 극단성이 맺은 오명이 되었다.

 

독립 국가의 건설 과정에서도 예찬받던 그러한 무정부주의자들이 정작 노동 해방의 국면에서는 국가 체제 내 유공자로 흡수되는 양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이 공산주의자 탄압을 피해갈 수 있었던 원인은 오히려 국가가 그러한 무정부주의자들의 소시민적 성격을 체제 안정의 요소로 포섭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무정부주의자들은 지역적으로 도처에 존재했으나, 결정적인 계급 투쟁의 순간에는 체제에 안주하는 폐쇄적 태도를 보인다. 이는 그들이 발전적이라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모순을 은폐하려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개인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로 변모하기가 더 쉬운 이유는 그 논리가 명료해서가 아니라, 다분히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언어 뒤로 비무장한 가장 취약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사 발전에 맞서며 무산 계급의 실천적 요구마저 외면하고 말았다. 그들은 이른바 선구안이 아닌, 반대로 유산 계급의 일부로 극찬되기도 하며, 그것이 결국 유산 계급 자신의 논리에 맞춘 '모험적' 시도들로 인해 비롯되기도 한다. 그들이 시장 경제의 '교환', '노동', '가치' 등을 논변하면서도 정작 그러한 낡은 정치경제학의 유산을 철폐하지도 못하는 한, 무정부주의는 체제주의를 보완하는 수사에 머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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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13. 


감언이설은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이로운 조건을 꾀는 말을 뜻한다. 이 말을 김어준, 유시민, 조국과 같은 인물들이 자유 언론에 기대어 온갖 음모론과 터무니도 없는 설전을 벌이며 정치에 대해 친근하게 발언한다. 그들은 가끔 자신의 서적을 출판하여 '고전'을 강조하고, 자신들이 새로운 사상의 주역인 양 떠들어대는 꼴을 보게 된다. 사탕발림같은 소리와 더불어 오늘도 정부 예찬과 약간의 책동을 말하며 계급적 희롱을 일삼고 있다. 그리고 친분이 두터운 서평가들을 인질로 그러한 '감칠맛'으로 포장한다. 

 

14시간 이상 자본가들과 협상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에게,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고 말하는 주요 언론사들이 여전히 없는 체를 하며, 노동자들이야말로 소유자라는 '기가 막힌' 논변을 내리며 그들의 이익을 강변하고 있다. 고작 소수인 한 인간 때문에 지금도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사이에도, 일부 국민들은 주가 안정에 대한 방어와 깊은 안도에 안주하며, 전 세계의 전쟁을 볼모로 자신의 생계 노동을 대신할 조그마한 불로 소득을 챙기고자 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것이 일종의 재미가 되고, 자신이 자본의 투자자가 될 수 있다 위안 삼으며, 사람들은 경제학을 공부하고, 경영학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가 주입하는 국민에 대한 또 다른 아편에 불과하다. 특히 연령대와 무관하게 이 취약한 국민들은 그러한 주식이라는 아편에서 약간의 수익을 얻거나, 자신의 주린 배를 조금은 채울 수 있는 방식을 터득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다. 

 

아무도, 정부가 유도하는 주식의 가치와 그것의 한계를 여전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놀랍게도, 어떠한 신문 논설에서도 그러한 말들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이 정부가 주는 아편에 심취하기라도 한 것일까. 그들에게는 투쟁에 대해 잊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바로 자본을 주는 것임을 터득한 정부가, 이번에는 국민들을 우롱하기 시작한다. 불과 선거를 치른 국민들은 다음 정부에 대해 비난을 가하면서도 정작 소득 분배에 따른 국가가 주는 보조금에 감사해 하며 힘찬 보도에 속아 또다시 안도한다. 평화·안녕·행복 등 혀가 긴 가치를 나열하고,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그다음에도, 정부는 국민들에게 또다시 감사하다 말하며, 선거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뒤에서는 노동자들을 희롱할 수 있는 가장 극악무도한 방식을 수단으로 가족의 해체와 온갖 사상을 주입시킬 수 있다. 그것은 기술의 발달 덕분에 자신들의 소유 전반으로 가로채 그것을 이용하고자 시도한다.

 

아, 인간이여, 언제까지 어리석은가. 그리고 독서의 편식도 이제는 주식에 '몰빵한' 빈 잔고와 함께 애꿎은 책만 나무라며, 자신들은 나약하다고 여기며 자책만 하고 있는 꼴을 보면서 똑같이 우스워하고만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저들은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며, 국가의 정상화를 유지할 수 있는 발판을 찾아 갖은 애를 쓰고 있다. 두 체제가 똑같이 지배자의 국가를 경영하고, 운영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 사이에도 두 사람은 마치 이산가족처럼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미련만 남은 운명을 사랑이라 여기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애틋한 것만이 우정으로 남았고, 결국, 처벌 수위도 낮은, 심지어 마땅한 형벌도 없는, '쿠데타를 모의한 자'들에게는 자유라는 '빨간줄'만 그어졌다.  

 

그들의 사탕발림은 시대를 막론한다. 시간이 흘러도, 그렇게도 뻔뻔하고, 비열한 장난을 치며 국민 정책을 우롱한다. 다음 선거를 치르기 위하여, 그나마 차지할 수 있는 의석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끝까지 두 체제가 부패할 수 있다는 점을 더욱 자처하기 위하여, 그것을 은폐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자부가 그 극단에 치달을 때조차도, 우리는 차분하게 그러한 미친 광경을 또다시 목도하고 있다.  

 

좌파라 자칭하던 반동 분자들이 이제는 '가족 파괴범'이 되어 '보수주의자'라 떠벌린다. 그 피해자란 또다시 국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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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05. 


기록장

 

자주 글을 쓰려 노력하는 자세는, 말할 수 없는 이들이 요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민주주의가 정착될수록 꾸준한 독서와 성찰이 요구되는 이유는, 단순히 지식을 과시하거나 '가진 것'을 자랑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러나 언젠부턴가 우리 사회는 독서를 일종의 자랑거리로 여기는 풍토가 자리 잡았고, 정작 기록의 주체가 되어야 할 이들의 자리는 극소수만이 독점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박식하게 지식을 쌓는다는 것이 개인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그것이 곧 타인과 사회 전체가 유익한 것은 아니다. 

 

근래의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은 매체의 발달과 인간 통제를 위한 고도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이러한 인간의 취약한 심리에 기대어 이를 더욱 자극시키는 쪽으로 발달된다. 그것은 본연의 창조를 실현할 수 있는 방식도 아닌, 오히려 그러한 학문이 지닌 자체의 난점으로 인해, 인간이 스스로 생각할 줄 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가 인간 노동에서 벗어나 비평할 시간이 주어져야 하지만, 그 비평이란 단순히 소수의 학자들에 국한된 비평의 시간도 아닐 것이다. 모든 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고,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특혜나 계몽의 수준이 아니라, 노동의 수준에서 다시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록'이란 무엇인가. 기록장은 삶의 ‘오답 노트’이다. 우리는 늘 노동에 대한 자격을 심사받으며 그러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교육만을 받아왔다. 그것을 체제의 순리라 여기며 다시 취업하고,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는 과정에서도 노동의 가치를 되묻기보다 오히려 동료 노동자를 비하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이제 노동자의 삶에도 단순한 생계 보장 임금만이 가득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심사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오답 노트’로서의 기록이 요구된다. 독서와 기록이 진정으로 ‘가난한 노동자’가 될 준비를 마친 이들에게 성찰의 시간으로 채우기를 바란다.


‘가장 민주적인 사람이 독재를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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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4. 27. 


서기장에게,


당을 이끌어갈 서기장 동지에게,

 

먼일이 될지도 모르나, 당과 인민을 위해 헌신하고 있을 귀하에게 이 글을 남기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라 봅니다. 자주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합니다. 문득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당신에게 직접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만원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중, 운전기사로부터 너무 앞에 있어 거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권력이란 결코 자신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의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될 때 그 정당성을 잃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를 잊지 마십시오. 때로 인민들이 정치적 판단에서 미숙해 보이거나 날 선 의문을 던질지라도, 그것은 무지가 아니라 그들의 생존이 걸린 절박한 목소리임을 헤아려야 합니다.

 

한국의 역사를 보더라도, 정부 수립 이후 처절한 투쟁으로 쟁취한 민주화의 결실을 결국 부르주아 계급이 독점해버린 뼈아픈 사례를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반공이라는 구호 아래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혁명가와, 국가 권력이 은폐하려 했던 수많은 정치 공작의 희생자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의 의연한 죽음은 오늘날 우리가 딛고 선 토양입니다.

 

1990년대 소련 연방의 해체 이전에도, 레닌은 우리에게 ‘소비에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권력을 잡느냐’는 문제만이 아니라, ‘무엇이 권력을 만드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비록 소비에트가 권력 투쟁과 부패로 인해 사멸했다는 비판이 있을지라도, 자본주의의 모순이 잔존하는 한 소비에트의 대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여가를 보장받고 정당한 임금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은 가장 소외된 무산자 계급입니다. 오늘날의 공산주의 운동이 국가 사회주의의 한계나 내부적 변질로 인해 수정되고 왜곡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수록 혁명의 고전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고전 속에 담긴 근본적인 원칙은 당신이 길을 잃었을 때 가장 명확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이 서기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직 무산 계급 혁명을 위해 헌신해야 할 엄중한 과제일 뿐입니다. 당신의 자리가 곧 당신의 인격을 규정할 수 있습니다. 대의를 잊는 순간, 당신은 인민의 지도자가 아니라 한 명의 독재자로 추락할 뿐입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며, 얻을 것은 세계입니다. 이들의 요구를 가슴으로 듣고 행동으로 말하는 서기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노동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고, 땀 흘리는 자의 노력이 마땅히 보장받는 일을 완수하시길.

 

익명의 서기가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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