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5. 16.
‘무정부주의자’만큼 가장 지독한 말도 없다. 무정부주의자는 그 자신을 지칭하는 모든 언어적 정의를 거부하며, 종국에는 소속된 집단마저 부정하는 극단적 결론에 도달한다. 그들은 무산 계급의 논리에서 공산주의자의 일원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국가의 존립 근거 자체를 부정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며 운동의 결을 달리했다. 이러한 부정의 정치는 모순적으로, 그들이 무산 계급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산 계급 및 소유 계급의 논리를 따른다. 그들이 유산 계급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일종의 역사적 현상이다.
그들은 현상의 본질을 간파하는 구도자를 자처하나, 노동 운동의 실천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순은 그들의 사상적 한계 역시 여실히 드러낸다. 모든 투쟁의 형식을 거부하며 유창한 지적 유희를 누리던 푸르동의 후예들은 ‘국가’와 ‘소유 재산’에 대한 정의조차 불분명하게 방치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소시민적 자유를 옹호하는 하위 세력으로 전락했으며, 그것이 ‘가장 반란적인 세력’이라는 수식어는 그들의 사상적 극단성이 맺은 오명이 되었다.
독립 국가의 건설 과정에서도 예찬받던 그러한 무정부주의자들이 정작 노동 해방의 국면에서는 국가 체제 내 유공자로 흡수되는 양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이 공산주의자 탄압을 피해갈 수 있었던 원인은 오히려 국가가 그러한 무정부주의자들의 소시민적 성격을 체제 안정의 요소로 포섭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무정부주의자들은 지역적으로 도처에 존재했으나, 결정적인 계급 투쟁의 순간에는 체제에 안주하는 폐쇄적 태도를 보인다. 이는 그들이 발전적이라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모순을 은폐하려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개인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로 변모하기가 더 쉬운 이유는 그 논리가 명료해서가 아니라, 다분히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언어 뒤로 비무장한 가장 취약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사 발전에 맞서며 무산 계급의 실천적 요구마저 외면하고 말았다. 그들은 이른바 선구안이 아닌, 반대로 유산 계급의 일부로 극찬되기도 하며, 그것이 결국 유산 계급 자신의 논리에 맞춘 '모험적' 시도들로 인해 비롯되기도 한다. 그들이 시장 경제의 '교환', '노동', '가치' 등을 논변하면서도 정작 그러한 낡은 정치경제학의 유산을 철폐하지도 못하는 한, 무정부주의는 체제주의를 보완하는 수사에 머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