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07.


민주 진영의 난제



어느 자유 시민의 지배적 소견

 

본 논고는 기획된 초고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을 앞서 밝힌다. 본래는 소시민적 사고방식의 태생적 한계를 규명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그러나 지면상의 이유로 간략하게 제시한다. 그것은 현재의 진영 논리가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먼저 정치적 진영의 구분으로 분간하고자 한다. 더불어 논의의 구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진영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전제하였다. 이는 민주 진영 내 지식인 집단이 개인 간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인민들에게 잔존하는 계급적 지형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희석하는 경향이 존재함을 밝힌다. 여기서 전제되는 두 지식인이란 바로 유시민 씨와 조국 씨이다. 그들은 현재 부르주아적 사고방식을 재생산하는 핵심적 주체로 기능하고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인물이 정치·사상적 영역의 전반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후자에 해당하는 인물은 실질적인 법·의회적 상부 구조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유시민 씨는 조국 씨보다 더욱 활발한 저술 활동을 개진했는데,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국가론』 (「민들레」언론사의 수필 형식)

 

2). 『정치경제학 소고』 (『경제 평론』)

 

3). 『사상계』 (『후불제 민주주의』 이후로 이어지는 담론 체계)

 

이 세 부분은 미국이 아닌 프랑스의 근대 시민 혁명의 여파를 국내에 수용하여 자유주의 (또는 개인주의) 계열 부르주아 사회의 존립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방벽을 구축하며, 국가 기구를 민주 진영의 정치적 장치로 자유 진영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의 실상은 개별 주체의 주관적 인식 범위를 확장하는 수준의 평론적 일반화에 머물며, 이후로 그의 중심이었던 사상계는 『후불제 민주주의』 담론으로 이어지는 자유 계열의 핵심적인 부르주아 사회 전반을 지지하는 논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의 국가론 역시 기본적으로 민주 진영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긴밀한 정치적 장치를 토대로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상 ‘나’로 서술되는 평론 방식의 일반화된 경향으로 노골적인 편견을 앞세우거나, 자료 조사를 실시함에 있어 추상화로부터 미흡한 통계적 실태를 상대주의로 보완하여 자본가들에게 자본 이윤의 창출에 몰두할 수 있는 방책과 술수를 더욱 모색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그의 사상의 전반은 기본적으로 제임스 밀과 존 스튜어트 밀을 닮아 그 사회적 영향력을 본받는 경향 역시 인민들에게 지배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앞서 지적한 바대로 (그가 알고 있다면) 유흥 전반의 소비에 불과한 지식인 계급의 밑천을 번복할 뿐이다. 

 

현재의 진영 논리가 극심해지는 국면이 아닌 매우 선명하게 나타남에도, 그는 여전히 정치적 다양성의 수용이라는 명목하에 계급적 구도를 의도적으로 희석하고 있다. 이는 민주 진영의 일부를 구성하도록 유도하여 지식인 계급의 반동적 이탈이나 오류조차 상대주의라는 미명 아래 정당화하는 오래된 논리 구조를 형성한다. 그들은 가히 교조주의와 다름없는 설득된 지지층들에게 여전히 호소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 하나의 난제이다. 그것은 곧 이들의 담론이 인민에게 해방적 사유를 제공하기보다, 부르주아 중심의 편협한 세계관을 고착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이는 지배 계급이 유산 계급과 결합하여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부르주아 전반의 사회 구성원의 일부를 이루는 매우 ‘차별적인’ 사고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이 사고방식을 일반 인민이 파악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실제로 이 작가는 조국 씨와 친분 역시 과시했기 때문에 결국 두 인물이 보여주는 의회 정치로의 경도와 발전사관적 개혁안은 민주 진영 내부에 뿌리 깊은 타협주의의 발현이다. 이는 민주 진영 전반에서 당연히 지지층들의 옹호가 밑바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두 강대국 간의 패권 다툼 속에서 상대적 의존도를 유지해야만 경제 발전을 이룩한다는 군부 독재 시절의 국가주의적 질서를 온전히 청산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종국적으로, 인민의 근본적인 해방이 아니라 관념적 사상의 정립에 있으며, 지배 질서 내에 흡수되어 점진적 '조율 장치'로, 자본주의 질서의 바탕을 더욱 유지하기 위해 인민을 기만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래 위치해야 할 사상이 아닌 정치의 길을 택하고 말았다. 결국 민주 진영은 이 두 지식인과 결코 단절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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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1. 05. 


베네수엘라 긴급 탄원서



사회주의 국가와 극비 전쟁

 

베네수엘라의 마데로 대통령 체포 이면에는 미국의 전략이 깊게 관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전에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사담 후세인의 체포와 관련된 언급이 있었다. 그러나 군사적 개입에 따른 영토 확장에 대한 일차적 우려도 존재하지만, 현재 미국의 목적은 러시아와 중국의 견제에 있다. 이는 핵심적 의도가 군부의 지지를 바탕으로 장기 집권 중인 사회주의 국가와의 전쟁을 공식화하는 데 있다. 비슷한 경우로, 과거 1940-80년대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역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소련과 함께 체제의 본질을 왜곡하면서 장기적인 집권 형태의 체제를 구축한 사례로 꼽힌다. 또 다른 예로는 북한에서는 대대적인 도서 정리 사업으로 일찍부터 이러한 체제의 본질을 쉽게 수정하여 왜곡할 수 있었다.  

 

고도로 발전된 국가의 언론사 전반에서는 정치적 장기 집권을 두고 민주주의 미정착의 증거로 규정하며 인민의 원성을 강조하지만, 그 근거로 주로 활용되는 「민주주의 지표」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먼저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주관하는 이 지표는 (1) 선거 과정, (2) 정부 작동, (3) 정치 참여, (4) 정치 문화, (5) 시민 자유 등 다섯 가지의 주된 항목을 점수화하지만, 이는 객관적 통계라기보다는 주관적 평점에 가깝다. 특히 해당 지표에는 실질적인 경제적 지수나 노동의 질에 대한 관련 통계가 전무하며, 영국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하는 등 자본 중심적 편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GPI(참진보지수), GNH(국내총행복지수) 등과 같은 대안적 지표들조차 결국 GDP라는 자본 생산력에 기반한 통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많이 지적된다.   

 

실질적으로 현대 자본주의 통계의 오류라면 전 세계 총생산량 대비 노동자의 실질적인 기여도와 생산성을 참고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노동력의 가치를 저평가한 채 재화와 용역이라는 물질적 지표로만 국가의 발전도를 측정하기에, 해당 통계에서 실질적인 생활 여건은 누락된다. 사회주의 국가의 장기 집권 형태를 비난하기에 앞서, 부의 분배가 누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역시 외신 보도와 달리 실질적 노동 생산성 지표 측면에서는 여전히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비교 대상이 인민의 삶이 아닌 자본의 축적도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국가의 위기나 몰락을 논할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북유럽을 제외한 이들 국가의 경제 발전률이 절대적으로 낮아 보일지라도, 인민들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은 상대적으로 균등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의 높은 생산 수치와 이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체제 성립의 배경과 목적이 다르다는 점을 무시한 처사다. 외부 세계는 잘못된 통계적 근거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몰락한 경제'로 간주하고 혹독한 비난을 가하지만, 이는 특정 정치 세력이 자국 내 사회주의 열망을 억제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생산해낸 또 다른 편견에 불과하다. 

 

결국 자본주의 국가들이 집착하는 GDP나 주가 지수의 상승이 노동 생산성의 안정성이나 노동자의 삶을 전반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금융 자본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는 베네수엘라와 같은 국가들보다 이러한 발전된 국가들에서 더 큰 경제적 불확실성과 위혐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출발선 역시 다를 수밖에 없기에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 대한 인신 공격을 가하기 이전에 무분별한 비난을 자제하고,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모순을 감추기 위한 정치적 수단임을 증명하고, 그러한 지표가 가진 한계에 존재하는 노동의 실질적 가치와 분배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이다. 

 

- 당초 필자의 시각 역시 잘못된 전제에서 비롯된 양비론이나 주관적 오판에 해당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사태를 심층적으로 다룰수록 이는 일부 여론과 사회 구성원의 집단적 오판으로 보인다. 물론 대립 측에서는 이를 필자의 오판이라 반론할 수 있겠으나, 외부 세력의 개입이 초래하는 문제 역시 현재 진행에서 부각되고 있기 때문에 영토 침공만이 아니라 이를 토대로 제국주의 부상의 명분을 더욱 정당화하는 시도로 해석된다. 비록 현재는 세계 정치의 민감한 기밀 사안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나, 이 또한 제국주의적 개입의 실상에 해당되는 문제이다. 결과적으로, 사태의 급격한 전개 속에서 자본의 본질적 함의를 최대한 놓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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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08.


정치적 사형 선고



일부 검열의 필요성과 관념주의의 한계 

 

이곳에서 접하는 글 중에는 문장은 잘 다듬어졌으나, '양호한 글'이라 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온갖 학술적 개념어를 화려하게 늘어놓지만, 그 안에는 필자들의 '모호한' 관념적 정신 세계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평론적 수준 또한 과도하게 관념적이라면, 이 매체를 단순한 통신 매체로만 이용하기를 바라는 때가 많다. 관념주의에 빠진 정신 세계의 문제점을 노출하는 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이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짚고 가야 할 비판적 문제임을 인정한다. 


선별을 잘 할 수 있다면, 적어도, 우리 논의를 잘 가리면서 해독하기를 바란다.『독일 이데올로기』를 읽어본 적이 있다면, 그러한 의미가 우리 사회에서도 반대로 만연해진, 기술주의와 결합된 형태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부분 검열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현행 의사 표현들은 사회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가로막는 실질적인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들은 노동자 계급의 정신 세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들의 본위와 입맛에 맞는 태도만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어떤 분야에서도 사회주의 단계에서 무산 혁명의 전환 준비 단계에서는 서로 다른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결국에는, 진정한 공산주의라는 목표로 수렴되기 때문에, 단순히 국한된 언어의 영역에서 이념의 예시를 든다는 점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지점은, 자본주의 경제학이 실제 세계 경제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우리의 큰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문제와도 무관할 수 없다. 

이 통신망에 들어온 이상, 다른 자료를 접하게 될 여지도 충분하다. 다만, 아직은 경고 수준이지만, 별도의 구역을 방문하게 된다면, 지금의 논의 외에 불필요한 저작이나 문서를 보더라도, 그것은 넘기고 가기를 바란다. 특히, 다수의 부정적 여론이 보일 수 있다. 그 부분에서는 동의할 수 없더라도, 감정을 최대한 절제해야 한다. 오직 '순차적으로', 그리고 '침착하게' 자신의 임무(역할)를 수행하면 될 뿐이다. 

 

먼저 이곳을 방문한 동지들에게, 지역적 제한 없이 환영 인사를 전한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적 명분을 내세워 관념적인 정신 세계에 머무르는 자들에게는 우리 역시 더 이상 허용할 수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   

 

내부 문제를 차차 정리하며, 

 

어쩌면, 회원들도 특정 검열을 바랬던 것일 수 있다. 그동안 불필요한 주장들로 인해 오히려 중요한 제안들이 묻혔을 수 있다. 

 

아직은 우리가 직접 제재를 가할 수 없더라도, 첫 단추를 꿰는 일이 중요해진다. 

한 번의 실수는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그 이상 돌이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두 번의 기회를 바라기도 하지만, 어느 세상에서 그러한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그 값을 치르는 것 역시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회원들의 각기 다른 특정 성향에 대한 요구 역시 내려 두고, 집중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알맞은' 시각을 구비하라는 말이 가장 적당하겠다.  

 

※ 주관에 따른 분풀이라면, 다른 곳에서 해소하고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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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07.


국제 서기 연대 기획



진정한 국제주의의 실현

 

기존 국가 주석들 간의 화려한 만찬 등은 필요치 않다. 오히려 여러 국가의 서기장과 연락을 취하거나 교류에 날이 올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 이 지점에서, 잔존하는 공산당의 새로운 서기장들과의 교류는 의미 깊을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노동자들의 추대로 존재하는 지도부이기 때문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공산당은 잠재력이 클 수 있다.  

 

성향이 비슷한 동지들이 반드시 국내에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기술의 발달로 언어의 제약이 더욱 줄어든다면, 허심탄회하게 노동자 국가의 문제를 토로할 기회도 생길 수 있다. 이러한 교류의 장에 참가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이는 연례 학회 행사 수준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국제주의를 표방하는 노동 기관가는 사뭇 다름 걸음이다. 이 제안은 나중에 별도로 논의할 예정이다.  

 

노동자 국가 수립 및 회의 시설 여부

 

언젠가 국회의 기능은 사실상 없어져도 무방하다. 기존 국회 시설이 남아 있다면, 그곳은 회의 시설 및 ‘무산 혁명 기념관’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 용도로, 억울했던 역대 노동자들의 전쟁과 분단, 그리고 노동의 사연들이 모두 담길 수 있다. 

 

기존의 국회 의원 수는 실제로 남아 나지 않는다. 마침 옆에 도서관도 있어 기념관 용도로 적합하다. 참고로, 우리는 별도의 출입증이 없더라도, 바로 옆에서 노동자의 책을 학습할 수 있다. 이처럼, 사실 시행할 수 있는 공산주의 제도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단순히, 자유 · 민주 시민 단체 따위의 평화 호소문에 더 이상 국한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노동자 국가가 된 세상에서 국회의 유무는 중요한 논점이다. 왜냐하면, 여러 제안들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시민 단체의 제안은 저절로 소멸되거나 기각된다. 그때는 굳이 부르주아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노동 계급에게 정권의 창출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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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09


한국 언론의 이중성: 특권층 대변과 구조적 문제

 


· 언론 기능의 상실: 왜곡된 역학 관계

 

민주당이 표방하는 검찰 개혁은 정당 간의 화합을 통한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특정 인사의 행태가 언론으로부터 공공연하게 노출되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이진숙 씨 사례처럼 최근 체포 경력이 있는 인사가 민간인 신분임에도 다수 언론에 등장하여,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고자 출석 확인 차 얼굴 도장을 찍고 있다. 이는 특정 개인을 위한 정치적 의도 표출의 장으로 변질된 언론의 충격적인 현주소를 드러낸다. 당내 분위기의 냉랭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개인의 '옷깃 세우기' 시도는 언론 지형의 왜곡을 보여준다.  

 

· 언론의 정치적 도구화와 자본 종속성 심화 형태

 

방송통신위원직과 같은 주요 공직을 둘러싼 논쟁에서 다수의 자유·민주 인사들이 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현상은 언론이 사실상 특정 세력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시사한다. 수정된 방송사법의 통과에도 불구하고, 특정 정당에 대한 대외적 홍보 기능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한다. 민주당 수준에서는 국민의힘이나 개혁신당에 대한 '공식적' 언급을 자제하는 듯하나, 근본적인 문제는 오히려 언론 자체에 있다. 언론의 중립적 보도 기능은 이미 크게 손상되었으며, 특정 정치 세력에 유리한 기회를 부여하는 형태로 기능한다. 공영 방송사의 기능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와는 별개로, 특히 미국 언론사의 합작 등을 통한 해외 보도에서 이미 편파적 보도가 여과 없이 노출되는 사례는 심각하다. 이러한 편향된 시각은 국내 언론에도 영향을 미쳐, 주류 시각과 상반된 견해를 기피하거나, 이에 맞서는 노력이 약화되는 현상을 초래한다. 이는 사실상 또 다른 형태의 언론 통제와 소수 편향적 시각의 공존이라는 놀라운 현실을 보여준다.  

 

· 방송 3법 개정과 매체를 통한 대중 분열 조장

 

방송 3법 개정에 대한 일부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은 기업의 힘과 통솔 아래 자극적인 보도와 특정 세대 및 성별 분열을 의도적으로 조장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공영 및 종편 방송사가 모두 자본에 묶여 있다는 구조적 한계는 특정 계층의 시각을 강화하고 대변하는 문제를 심화시킨다. 이러한 상황은 시민들의 언론 개혁 요구를 촉발한 계기이며, 특히 명절 편성 등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특권 의식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증폭시킨다. 민주당, 국민의힘, 그리고 개혁신당에 이르는 거대 양당 및 신당의 정치적 행태는 오늘날 정치에서 특권층의 비중이 증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적어도 민주적 교육을 받은 시민이라면 다양한 시각의 공존을 이해하지만, 상반된 견해를 문제시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곧 한국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소수 정당 보도 기회의 부족은 이러한 문제를 가속한다. 언론은 거대 양당의 충돌을 이분법적으로 보도하며, 정작 다수를 대변하려는 소수 정당들의 새로운 의제 제기는 상업적 가치가 낮다는 이유로 외면한다. 이는 다양한 정치적 시각의 출현을 막고, 양당 중심의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국민들은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요구한다. 

 

· 자극적인 대량 보도의 위험성과 근본적 문제 회피

 

앞으로 미국 언론과의 연계를 포함한 자본 결탁형의 대량 양산형 보도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이러한 보도의 과잉이 초래할 사회적 결과는 예측하기 어려우므로, 섣부른 진단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단순히 보도된 사실만으로는 문제의 현상을 올바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시위나 특정 요구를 다룰 때, 언론은 더 빠르고 단편적인 시각을 제시하거나, 문제의 겉모습만을 다루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오히려 문제의 본질인 자본주의라는 구조적 원리를 가리는 역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다양한 시각의 유지를 포기하고, 상반된 견해를 존중하지 않는, 특정한 방향으로 쏠리는 한국 언론의 생태계는 공존 대신 자기 파괴적인 길을 걷고 있다. 이에 대한 피해는 결국 공정 보도를 요구하는 기자들에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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