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5. 16.


'쌍팔년도식' 논변

 


민주 정부를 표방하는 현 정권이 새마을 운동을 경제 발전을 이룩한 진보적 업적으로 평가했다는 소식이다. 이는 현 집권 세력에게 ‘진보’란 결국 산업화 체제의 잔상에 불과함을 자인한 꼴이다.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광주 학살 이전에 쿠데타 희생자들을 기리던 모습과도 대조적으로, 유신 체제의 산물인 새마을 운동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논리적 비약이자 형용 모순이다. 제아무리 지지율 반등을 노린 정치적 행보라 할지라도, 농협 중앙회조차 씻어내지 못한 그 시대의 오명과 유산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한 행태가 오히려 국가의 정당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현 정부는 더 이상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할 정부가 유신 체제와 군사 쿠데타의 핵심이었던 박정희 체제를 비호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광주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며, 지역 갈등을 심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뿐이다. 이른바 ‘산업화의 성과’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은 실상 지역 간 경제적 격차를 심화시키고 불평등을 고착화했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 그 허구적 실체임이 드러난다. 따라서 이는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 명백한 규탄의 대상이다.

 

당시 산업화의 폐해를 증명하는 통계 자료가 산적해 있음에도 이 정부가 새마을 운동을 직접 언급하며 옹호하는 것은 과거 참여 정부 시절 전두환 정권을 방문해 큰 원성을 샀던 과오를 반복하는 처사이다. 청산해야 할 과거를 지역 갈등 회피라는 명목으로 호도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선열들에 대한 기만이기도 하다. 일부 학계 및 언론 논객 일각의 근거 없는 주장을 빌미로 차별과 억압은 은폐한 채 '산업 성취'만을 부각하는 모습은 주관을 객관으로 둔갑시키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역사적 오명으로 기록되어야 할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특정 어용 집단의 일부와 함께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정치적 타락을 의미한다. 선의를 자처하던 이들이 국민을 저버리고 권력 유지를 위해 지지율과 재개발 논리에 매몰된 현실 역시 참담하다. ‘사람이 먼저’라던 구호가 허울 좋은 수식어였으며, 결국 본질은 똑같은 경제 논리였음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5·18 기념일과 6·3 지방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러한 행보를 택한 것은 공존을 거부하는 파괴적 선택이며, 그로 인해 발생할 사회적 파쟁에 대한 책임은 결국 전적으로 현 집권 세력 및 비호 세력들에 있는 것이다. 

 

- 추가로, 본고에서 전개하는 핵심 논지는 내부 투쟁 관점에 철저히 입각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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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16.


시진핑 체제의 불안전성



중국이 표방하는 ‘특색 사회주의’란 본질적으로 중앙 집권 국가 체제에 불과하며, 이를 공산당으로 통칭하는 것은 모순이다. 현재의 체제가 공고화될수록 중국은 공산주의의 본래 의미를 되짚기는커녕 이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이는 중국 체제 역시 내부적 교체기에 직면했음을 시사하며, 특색 사회주의라는 선동이 실제로는 청산되지 못한 봉건주의적 잔재의 연속이자 반동적 실체의 일부임이 드러났다. 미·중 갈등 역시 이념적 대립이 아닌 자본주의 경제 체제 내에서의 패권 경쟁일 뿐이며, 결국 문제의 핵심은 국가 간의 갈등이 아니라 지배 계급의 모순에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이들 지배 계급과 타협하거나 협상할 정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개인적으로 수행 중인 『공산당 선언』의 재검수 작업은 과거 식민지 국가들의 무산 계급 공산당 건설 운동과 무관하며, 이에 대한 추가적인 해명은 불필요하다. 중국이 진정한 의미의 중앙 당국으로서 위상을 지닌 공산당이었다면, 이러한 사상적 과업에 대해서도 개인적 수준만 아니라, 별도의 혁명적 연대를 제공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방치하고 만 중국 당국에 대해서도, 그 책임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진행 중인 미·중 협상 관계는 설령 절차적 동의가 허용되지 않더라도 파기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는 중국 내부의 안정화에 전혀 기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진정 인민을 위한 길도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기만적인 구도에는 명백한 반대를 표한다. 이는 마르크스 관점에서도 명백한 ‘반동’으로 규정될 수 있다. 지금 시진핑 정권이 주력해야 할 과제는 미국과의 타협을 도모하는 협상이 아니라, 오히려 체제 내부의 누적된 폐해와 모순을 직시하고 이를 복구하는 일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기만적 구도에 전면적인 반대를 표명한다. 

 

- 아울러 본 입장은 한국 공산 정당을 지지하며,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일체의 지지 의사 역시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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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02.


'성과 노동’

 

 

부유한 여성이 젠더를 운운할 때면, 가난한 여성은 자신의 섹스에 대해 고민한다. '좋았어'라는 말만큼 가장 곤란한 말도 없다. 이들이 자신에 대해 당당하게 노동자로 밝히는 일은 드물다. 아마도 성과 노동은 젠더로 매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남성과는 달리 가난한 여성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글을 쓰는 일 또한 극히 드물다. 부유한 여성들은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여성들을 포용하며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지만, 가난한 여성들은 그러할 힘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는 부실한 생계를 겨우 유지하며 제 자리를 지켜낼 뿐이다.

 

동성애자들이 무지개를 밝히며 다양성의 권리를 말할 때에도, 가난한 여성은 평생을 고민해 온 자신의 신체 그 자체를 부정하며 외형을 고쳐야 한다는 강박에 다시금 사로잡힌다. 여성들은 서로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노동자 여성에게 ‘자신을 꾸미는 일’조차 여전히 억압이다. 이들에게 가해지는 피상적인 위로가 오히려 이들을 더욱 소외시킨다. 자신에 대해, 그리고 하물며 노동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여성은 전체 중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부르주아 여성의 서사를 성실히 뒤따르며 자리매김하는 동안에도, 일터의 여성들은 일부 남성들의 부당한 대우와 언행을 견디며 사회적 모욕을 감수하거나, 같은 여성 사이의 계급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암묵적으로 겪게 된다. 그러나 일터의 여성들은 자신의 부당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유한 여성처럼 이 세계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오만 자체에 대응할 여력조차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누구보다 가장 성실하게 일하며 또한 자본 노동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을 수 있지만, 그러나 그 대가로 자신을 돌볼 시간마저 빼앗긴다. 부유한 여성들에 비하면 가난한 여성들은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지 못한 채 침묵하는 것, 이것이 여성의 주관성에 부여된 가장 악명 높은 굴레가 된다. 온갖 이론으로 무장한 성적 담론들이 일터에서조차 소외된 그녀들에 대해 오히려 옥죄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은 동등한 성적 권리를 말하면서도 그 대우가 노동자에게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당신들은 가장 우월한 위치에 도취해 상대를 비하할 자격을 갖지만, 그 누구도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저 자신의 경제적 위치를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방식만으로 스스로를 드높이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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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02.


노동절, 여전히 소외된 노동의 현주소

 


올해는 조금 특별한 날이다. 국가가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 대신 ‘노동절’로 공식 명칭을 공표하였기 때문이다. 그간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체적 존재가 아닌, 단순히 ‘성실히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 ‘근로자’라는 명칭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가두어 왔다. 이번 명칭의 개정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비로소 자신을 ‘노동자’ 부를 수 있는 정당한 명분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이처럼 자신의 정체성조차 국가와 법의 허락을 얻어야만 겨우 인정받을 수 있는 현실은, 노동자의 처우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자라는 본성을 지니는 순간, 가족의 안위는 물론 자신의 생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민주노총에서 활약했던 철도 노조원 출신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음에도, 노동절을 하루 앞두고 현장 노동자들에게 ‘책임 의식’만을 강조하고 나섰다. 화물 연대를 비롯한 전국 단위 노조들이 노동권 증진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를 ‘귀족 노조’나 ‘좌파적 요구’라는 형식에 가두며 이제는 정부가 노동자를 책망하고 있다. 노동자 내부의 갈등을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정부가 노동절 전날 공공연하게 노조를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교섭 과정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매일 노동 신문」 등의 보도에 따르면 사측 기업 대부분이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고 있음에도, 「노동자 연대」는 이러한 본질적 문제 전반을 강력히 제기하지 못한 채 정부의 입장에 끌려다니며 간접적으로 대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더욱이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자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거듭 강조하지만, 이는 이미 부유한 정부의 입장에 순응하라는 ‘통합형 요구’이자 노동자의 목소리를 제한하려는 굴레에 불과하다. 그사이 언론의 외면 속에서 화물 노동자들은 불의의 사고로 산재를 당했다. 정부와 노동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하며 침묵을 지켰다.

 

국민들의 개혁 기대감은 높지만, 그 자신의 실적과 지지율의 성과를 의식하며 내뱉는 정부의 ‘친절한’ 발언들은 노동자를 하대하는 태도와 맞물려 모순을 빚고 있다. 이는 투쟁하는 노동자를 회유하기 위해 벌이는 기업의 인질극과 닮아 있다. 성과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할 때에도 논쟁에서 중요한 점은 노동자가 정당한 몫의 임금을 요구하는 것임에도, 정부는 노동자의 처절한 현실 대신 겉으로 보이는 ‘그 사회의 정상성’에만 표면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생존에 위협받는 이들을 더 위험한 노동으로 내몰면서, 정작 복지를 수혜받는 사람들의 ‘투정’으로 치부한다. 사법 시험 합격과 출세주의를 훈장처럼 내세우는 정치인들이 ‘노동자의 정치적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만의 우월한 오만에 대한 발로일 뿐이다. 그리고 그 자신들도 ‘근로’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번 정부의 발언은 여전히 노동자와 선을 긋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비약적인 자본의 축적과 주식 시장의 활황 속에서도 산재 노동자와 현장 노동자들은 스스로 정당한 몫을 요구하지 못한 채, ‘좌파적 요구’라는 제약 속에 갇혀 있다. 오늘 전태일 열사 동상을 자발적으로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반인들의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전태일의 헌신을 잊지 않겠다던 그 ‘청렴한’ 정부가 이제는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는 ‘불손한’ 정부라는 실체를 숨기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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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4. 15.


세월호 12주기를 맞이하며,



너와 내가 아닌 우리

 

세월호 참사가 12주기를 맞이했다. 이 사건은 여전히 '대참사'에 해당된다. 2014년 4월 16일, 인천항을 떠나 제주항으로 향하던 여객선이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며 승선원 476명 중 304명이 희생되었다. 생존자는 단 172명이었으며,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을 포함해 수 많은 이들은 차가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였다. 

 

이 참사가 단순한 사고가 아닌 이유는, 국가의 문제를 알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참사의 주요 원인 중에는 초기 대응의 처참한 실패에도 있다. 

 

당시 정부는 오전 10시에 첫 보고를 받았다고 발표했으나, 2018년 검찰 수사 결과, 실제로 서면 보고 받은 시각은 오전 09:30이었으며, 첫 지시를 내린 시점에서 비서관이 알린 시각은 오전 10:20이었고, 약 50분 이상의 공백이 발생했다. 이러한 대응에 대한 10:00 보고가 실제로는 09:30이었음에도, 10:20이 되어서야 늦게 대응을 시작한 것이다. 

 

일부 생존자들은 필사적으로 탈출을 감행하여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증언에도, 선장 및 선박 관계자들은 5-10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며, 관계자 중에는 해외로 도피하다가 끝내 사망하거나, 송환되던 중 횡령 혐의가 발각된 일도 있었다. 당시 세월호 선장은 구조의 지시를 기다리는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남겼고, 선장은 구조선으로 탈출하였지만, 나머지 승객 인원들은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도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선박 속에 가라앉았다. 

 

이처럼, 당시의 정부 보고에도, 늦장 대응을 하였던 지난 정부와 참사 이후 선박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과 해외 도피 세력에 대한 추적이 이어졌음에도, 관계자들의 횡령 및 비리가 밝혀졌고, 국가 전반의 부패 구조를 드러낸 계기가 되었다. 팽목항에서 나날이 사망자 수습을 기다리던 희생자 유가족들은 특히 정부에 대한 실망을 표출하였다. 단순히 정부의 미흡한 대처도 문제였지만 동시에, 국가 전반에 대한 전 국민적 항쟁이 소환되는 시기였다. 관련 시민 단체들은 이 참사에 대한 해명을 곧바로 요구하였고, 정부 관계자를 포함한 해당 선장 및 관계자들에 대한 수위 높은 처벌을 요구하였다. 

 

결국 국정 농단의 연유로 탄핵의 국면에 도달한 지난 정부의 연류 의혹들도 사실로 판명되면서 탄핵되었다. 이 과정에서 청년 및 대학생들도 입시 비리 의혹을 드러냈고, 전 국민은 국가 전반에 대한 회의 및 불신을 갖게 되는 시점이었다. 비록 다음 정부가 세월호 수습에 대한 많은 다짐을 보였으나, 내각 구성 및 검찰 관계자와 관련된 사법 개혁을 실패하면서, 지난 정부의 관계자를 국가 원수로 선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사건을 두고 '국가적 폭력'이나 '국민을 배신한 정부'라 언급하기도 하였지만, 중요한 점은 그들의 결탁 관계가 처음으로 알려지는 동안에도, 유가족들은 팽목항에서 지난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미수습자 인원의 구출을 염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정권이 바뀌는 동안 수습에 대한 약속은 이어졌음에도, 근본적인 개혁은 더디었고, 이에 지친 국민들은 결과적으로 부적절한 인물들을 다시 공직의 핵심으로 복귀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국가는 '공직자'의 앉은 모습만 보여준다. 세월호 다음에도 수많은 대참사는 반복되었다. 그럴 때면 국가는 매번 애도를 표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 그러나 실제 대처는 여전히 미흡하다. 참사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생존자와 유가족임에도, 이들에 대한 비난의 말은 큰 상처를 남긴다. 희생자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녀이자 언젠가 어엿한 성인이 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매번 참사가 발생하면 정작 정부는 재발 방지와 예방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이 되풀이된다. 그 당연한 노력이, 국가에게는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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