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15.


세월호 12주기를 맞이하며,



너와 내가 아닌 우리

 

세월호 참사가 12주기를 맞이했다. 이 사건은 여전히 '대참사'에 해당된다. 2014416, 인천항을 떠나 제주항으로 향하던 여객선이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며 승선원 476명 중 304명이 희생되었다. 생존자는 단 172명이었으며,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을 포함해 수 많은 이들은 차가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였다

 

이 참사가 단순한 사고가 아닌 이유는, 국가의 문제를 알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참사의 주요 원인 중에는 초기 대응의 처참한 실패에도 있다

 

당시 정부는 오전 10시에 첫 보고를 받았다고 발표했으나, 2018년 검찰 수사 결과, 실제로 서면 보고 받은 시각은 오전 09:30이었으며, 첫 지시를 내린 시점에서 비서관이 알린 시각은 오전 10:20이었고, 50분 이상의 공백이 발생했다. 이러한 대응에 대한 10:00 보고가 실제로는 09:30이었음에도, 10:20이 되어서야 늦게 대응을 시작한 것이다

 

일부 생존자들은 필사적으로 탈출을 감행하여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증언에도, 선장 및 선박 관계자들은 5-10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며, 관계자 중에는 해외로 도피하다가 끝내 사망하거나, 송환되던 중 횡령 혐의가 발각된 일도 있었다. 당시 세월호 선장은 구조의 지시를 기다리는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남겼고, 선장은 구조선으로 탈출하였지만, 나머지 승객 인원들은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도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선박 속에 가라앉았다

 

이처럼, 당시의 정부 보고에도, 늦장 대응을 하였던 지난 정부와 참사 이후 선박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과 해외 도피 세력에 대한 추적이 이어졌음에도, 관계자들의 횡령 및 비리가 밝혀졌고, 국가 전반의 부패 구조를 드러낸 계기가 되었다. 팽목항에서 나날이 사망자 수습을 기다리던 희생자 유가족들은 특히 정부에 대한 실망을 표출하였다. 단순히 정부의 미흡한 대처도 문제였지만 동시에, 국가 전반에 대한 전 국민적 항쟁이 소환되는 시기였다. 관련 시민 단체들은 이 참사에 대한 해명을 곧바로 요구하였고, 정부 관계자를 포함한 해당 선장 및 관계자들에 대한 수위 높은 처벌을 요구하였다

 

결국 국정 농단의 연유로 탄핵의 국면에 도달한 지난 정부의 연류 의혹들도 사실로 판명되면서 탄핵되었다. 이 과정에서 청년 및 대학생들도 입시 비리 의혹을 드러냈고, 전 국민은 국가 전반에 대한 회의 및 불신을 갖게 되는 시점이었다. 비록 다음 정부가 세월호 수습에 대한 많은 다짐을 보였으나, 내각 구성 및 검찰 관계자와 관련된 사법 개혁을 실패하면서, 지난 정부의 관계자를 국가 원수로 선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사건을 두고 '국가적 폭력'이나 '국민을 배신한 정부'라 언급하기도 하였지만, 중요한 점은 그들의 결탁 관계가 처음으로 알려지는 동안에도, 유가족들은 팽목항에서 지난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미수습자 인원의 구출을 염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정권이 바뀌는 동안 수습에 대한 약속은 이어졌음에도, 근본적인 개혁은 더디었고, 이에 지친 국민들은 결과적으로 부적절한 인물들을 다시 공직의 핵심으로 복귀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국가는 '공직자'의 앉은 모습만 보여준다. 세월호 다음에도 수많은 대참사는 반복되었다. 그럴 때면 국가는 매번 애도를 표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 그러나 실제 대처는 여전히 미흡하다. 참사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생존자와 유가족임에도, 이들에 대한 비난의 말은 큰 상처를 남긴다. 희생자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녀이자 언젠가 어엿한 성인이 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매번 참사가 발생하면 정작 정부는 재발 방지와 예방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이 되풀이된다. 그 당연한 노력이, 국가에게는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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